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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인과 가정과 교회

liefd 2024. 5. 8. 12: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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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자 선택의 표준

하나님의 존재양태를 가장 잘 드러내는 것 : 교회, 부부

 

부부의 원형은 교회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이 아내는 남편을 대하라는 것입니다(5:22-24).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는 것이 곧 내 자신을 사랑하는 것입니다(5:25-30).

 

내외란 이렇게 두 개의 육체가 공존하는 것이 아니라 한 육체가 공존합니다(5:31-33).

 

남편과 아내가 취해야 할 태도는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하라, 어떻게 순종하느냐,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순종하듯 하라. 남편은 아내를 사랑하라. 어떻게 사랑하느냐?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시사 당신을 주심같이 사랑하라.  

 

성경이 아내에게 가르치는 것은 자기 남편에게 굴종하라는 것이 아니라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교회가 그리스도께 어떻게 순종합니까? 교회의 구성원 하나하나는 각자의 개성과 의식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뜻이 무엇인지를 살피고, 과연 그런가 확인하고, 다같이 성령님을 의지해서 한 마음으로 나아갑니다. 이것이 교회가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방식입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가 있기 전에 생명나무가 있었다(2:8-9, 계 22:2-3). 생명의 계시가 있은 다음에 무엇을 하면 죽는다는 죽음에 대한 경고가 있었다.

 

선악과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선악과를 따먹는 행위 자체에 문제가 있었다.

 

선악과 언약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의 목표를 향해 발전해 가도록 하시려는 그분의 의도이다.

 

법률을 공부해 보면 무슨 금지가 선포되면 그것에 순종한 행위에 대해서는 상이 따르고, 어긴 행위에 대해서는 벌이 따라야 합니다. 그렇게 양쪽으로 실행되어야 법은 공평합니다.

 

아담이 지음을 받고 자기의 거룩한 사명의 길을 걷고 있을 때, 상당히 그 사명을 수행하느랴고 짐승들에게 이름을 다 주었을 때, 이성의 중요한 활동을 발휘한 다음에 아담의 배필을 창조하셨습니다.

 

남자가 아내를 처음 만났을 때는 두 개의 서로 다른 인격이지만, 원칙상 하나님께서 경영하신 그대로는 그게 하나의 몸이요, 하나의 살로서 존재하는 것입니다.

 

하와를 만들었을 때는 이미 선악과의 금령이 있은 다음인 까닭에, 하와는 아담에게서 금령을 배웠습니다.

 

아담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고 하나님의 법을 가르쳤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아담을 하와가 죽음으로 끌고 들어간 것입니다.

 

혼인에 앞서 사명에 대한 인식이 있어야 한다.

 

사랑하니까 혼인을 하겠다, 자기의 행복을 위해서 혼인을 하겠다 하는 것은 중대한 과오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사는 자가 없기 때문입니다(14:7-9).

 

거룩한 목적과 사명 아래 진실되게 살아갈 때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은 참으로 감사한 것이고, 그것이 변함없고 신선하고 건강한 것이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는 것이다.

 

주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깨달아 거기에 부응해 드리려고 사는 것입니다.

 

남자는 머리 노릇을 해야 하고 아내는 심장역할을 해야 한다.

 

무슨 일을 하려고 하기에 앞서서,

 

우리는 첫째 이 일은 내가 주를 사랑하는 까닭에 하는가?,

 

둘째 이 일을 하지 위한 충분한 은사가 내게 있는가?

 

셋째, 하나님께서 한 걸음씩 이 길로 나를 인도하신 분명한 경험을 내가 가지고 있는가?

 

혼인에도 마찬가지로 적용된다.

 

내가 이 남자를 선택한 것은 내가 그를 사랑하기보다는 내가 주를 더 사랑하기 때문에, 그렇게 하는 것이 주님께 훨씬 더 유용한 도구가 되는 까닭에 내가 그를 사랑하는가?

 

이것을 먼저 판단해야 하고, 둘째는 일 일을 감당하기에 충분한 은사, 즉 충분한 지능이 내게 있느냐?

 

또한 내가 그와 혼인함으로 말미암아 내 기능이 낭비되지 않고 충분히 사용될 수 있는 부부가 되겠느냐?

 

셋째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분명히 나를 한걸음씩 그 앞으로 인도하신 확실한 생활의 경험이 있는가?

 

혼인이란 하나님이 내신 제도로서, 남편과 아내 둘이 한 몸을 이루어서 하나님의 거룩한 영광의 크신 일을 같이 감당하게 만들어주는 것입니다.   

 

믿지 않는 자와 멍에를 같이 하지 말라(고후 6:14. 22:9). 소와 나귀를 겨리하지 말라. 우리 인생의 길을 겨리하여 갈 때 우리가 누구하고 겨리를 해가지고 나가야 할 것인데, 하나는 저쪽으로 가겠다 하고 하나는 동쪽으로 가겠다 하면 오도가도 못하게 됩니다.

 

종교생활이 예수 믿는 증거나 내용의 전부는 아닙니다. 예수를 믿는다고 할 때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택하시고 구원하셨으며, 우리는 이세상에서 어떤 위치와 상태에서 어떤 목표를 향하여 살아가라고 하셨는지를 깨달아서, 그러한 인생의 길을 바르게 가는 점에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혼인예식은 서약의 예배로서 엄숙히 드려야 합니다. 신랑 신부 두 사람이 하나님의 보좌 앞에 나아가 하나님께로부터 짝지어 주심을 받는 사실을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혼인예식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엄숙하게 경배를 드리는 것이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에 서약의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 앞에 혼인을 서약하는 일을 경솔히 생각하는 까닭에 교회 안에서조차 이혼하는 사람들이 많이 생깁니다.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선택은 너희끼리 했지만 이제 하나님의 신성한 보좌 앞에 이른 순간부터는 너희가 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거기 엄숙하게 임재하셨다. 관여하셨다. 하나님이 짝지어 주셨다. 그러므로 못나눈다는 것입니다.  

 

혼인에서 제일 중요한 것은 반지를 주고 받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하나님 앞에 서서  서약하는 것이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처음에 신랑이 들어오고 신부가 들어오는 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가 서약하기 위함입니다.

 

신랑 신부도 예배 드릴 때 찬양을 드려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어느 때 어떤 환경에서든지 찬송을 받으셔야 할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신랑 신부가 주례하는 사람을 쳐다보라는 것은 하나님 보좌 앞에 면하고 서라는 것이며, 하나님께서는 여인의 머리는 남자요, 남자의 머리는 그리스도이다. 해서 순서를 정한 까닭에 남자가, 머리된 남자가 서고, 그 옆에 왼쪽으로 다음 자리에 아내를 세우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신성한 서약을 하고 난 다음에 돌아갈 때에는 신랑이 신부의 뒤를 돌아서 다시 신부를 자기 왼쪽에 두고 그를 데리고 나갑니다.

 

서약을 할 때 명심해야 할 것

 

1.  사명수행에서 돕는 배필이 되라(벧전 3:7)

 

2.  생육하고 번성하라(1:28). 이것은 거룩한 교회의 확장을 위한 일

 

3.  혼인예식은 위층에서 하고 축하식은 아래층에서 하는 것이 좋습니다.

 

신랑 신부 퇴장시에 연주하는 곡이 거의 통일되어 있습니다. 대개 신부 입장 때에는 피터 바그너의 가극, 로엔 그린에 나오는 결혼행진곡, 퇴장 때는 멘델스존의 한 여름 밤의 꿈에 나오는 곡을 연주합니다. 그 곡 안에는 예배의 정신이 전혀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형통 관계만을 가지고 모친, 형제, 자매를 이야기 하지 않고 누구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들을 가리켜 당신의 모친 형제, 자매라고 하셨습니다(12:46-50)

  

5:1-6:9 가정에 대한 교훈

 

5:1-2은 사랑을 입은 자녀 같이 너희도 사랑 가운데서 행하라, 맨 먼저 사랑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 그 다음에 성도 간에 피차 복종할 것을 가르칩니다. 그리고 22절부터 사랑과 부부의 대강령이 사랑과 복종이라는 두 단어가 나타난다.

 

1.     사랑 가운데 행하라(5:22-33)

 

2.     빛에 거하라(8), 빛의 열매

 

3.     지혜있는 자가 될라(15-16), 세월을 아끼라,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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