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liefd 2024. 1. 18. 2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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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존감 평가하는 세 가지 질문

내가 나에 관하여 좋아하는 점 1. 2. 3.

내가 나에 관하여 좋아하지 않는 점 1, 2, 3

내가 나에 관하여 변화되기를 원하는 점 1, 2, 3

 

자존감의 차원

감정 : 나는 나에게 무엇을 느끼는가?

신념 ; 나는 나에 대하여 무엇을 믿는가?

가치 : 나는 나를 얼마나 소중히 여기는가?

인식 ; 나는 나 자신을 어떻게 보는가?

대화 : 나는 나 자신에게 어떻게 말하는가?

행동 : 나는 어떻게 행동하는가?

 

건강한 자존감의 기준

겸손은 굴욕과는 다르다

겸손은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자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인식하는 것이다.

겸손이란 자신의 장점뿐만 아니라 약점까지도 수용하는 것이다.

굴욕이란 현재 자신의 모습에 대해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현재 자신의 모습을 무가치하게 느끼는 무력감을 말한다.

 

죄의 본성을 벗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르다

옛사람을 벗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의 부패성과 죄에서 자신을 구원해 주신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인식하고 있는 것이다

 

자기 부인은 자기비하와 다르다

자기 부인이란 내가 기꺼이 죄된 이기적인 욕구들과 행동들을 벗어버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자신을 무시하거나 스스로를 소멸시키는 자기비하와는 다르다.

 

자격이 없는 것은 무가치한 것과는 다르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와 은혜를 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러나 자격없음을 무가치함과 혼동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께 너무나 소중한 가치를 지닌 자라고 분명하게 가르치고 있다.

자기 사랑은 이기심과 다르다

이기심은 상대방을 희생해서 나의 필요를 먼저 챙기는 태도와 행동이다.

자기사랑은 상대방의 필요를 나의 것만큼 중요하게 생각하는 태도와 행동이다.

내가 상대방의 유익을 위해서는 나 자신의 것을 자발적으로 포기하는 것을 의미한다.

자기 긍정은 과대평가와 다르다 

나는 할 수 있어는 자기긍정이지만, 나는 굉장한 사람이야는 자기 과대 평가이다.

자기 가치는 자기숭배와 다르다

나는 나의 중요성을 과장함으로써 나를 숭배하지 않는다.

나는 하나님과 그분의 계획과의 관계 속에서 나 자신을 듣고 보며 느낀다.

나는 나의 창조자이자 구원자를 예배하며 하나님의 형상을 지음 받은 자로서 나 자신을 소중히 여긴다.

나는 나의 순종과 봉사를 통해 하나님의 선하심과 위대하심을 드러낸다.

자기 인식은 자기 열심과 다르다

책임감 있고 건설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면 내가 누구이며 무엇을 느끼고 믿으며, 무엇을 소중히 여기고 인식하며,

말하고 행동하는 지 알 필요가 있다. 이것을 자기 인식이라고 말한다.

단지 나 자신만을 의식하는 것은 자기도취주의자와 같은 미성숙한 자기 강박관념이다.

 

기독교적인 자존감은 나는 가장 위대하며, 가장 현명하며, 가장 강하며, 최고야라는 것을 나는 있는 그대로의 나이며,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 하나님의 은혜로 구속받은 죄인, 그리고 그리스도의 몸의 중요한 부분이야

변환시키는 것으로부터 생겨난다.

성경적인 자존감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나를 사랑스럽고 소중하며 능력이 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과 그분의 관점, 그분의 행위에 둔 자존감이 궁극적이다.

 

자신감을 회복하는 도전 인생

유대인들은 안식일에 세 가지를 점검한다.

첫째, 그들을 뒤를 돌아본다.

과거를 점검하는 것이다. 내가 과연 제대로 인생을 살았는지, 나의 열심히 정당했는지, 정직한 인생을 살았는지.

둘째, 위를 쳐다본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는다. 하나님을 바라보는 순간 내 안에 독이 제거되고,

은혜의 체험을 하게 되어 새 힘을 공급받는다.

셋째, 앞을 내다본다

미래를 바라보며 행동하는 발걸음을 내딛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는 확신과 자신감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인생을 산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기를 용납한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인식한다.

그리고 자기를 있는 모습 그대로 허용한다. 자기를 허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를 고유한 모습 그대로 허용할 수 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남으로 산다. 하나님은 남으로 살지 않고 자신으로 살아갈 때 그를 사랑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다. 야곱은 야곱으로 살아야 한다. `

 

사랑은 열등감을 이긴다. 자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부모는 없다. 사랑에는 열등감이 생기지 않는다.

예루살렘 교회가 안디옥 교회의 부흥의 소문을 듣고 바나바를 보냈다, 그런데 바나바는 하나님의 은혜를 보고 기뻐하였다(11:22-23).

오늘날 많은 사람이 교회에서 실망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보지 않고 사람들만 보기 때문이다.

아들이 성적표를 받아 왔는데 전 과목이 에 한 과목만 이었다. 보통 아버지는 이걸 성적이라고 받아왔니라고

소리쳤을 것이다. 그런데 이 아버지는 너무 한 과목만 집중해서 공부하지 말라고 했다.

 

처음에 교회에 나왔다고 서로 다투고 비난하는 성도들을 보고 딸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어머니, 다시는 교회에 오지 마세요. 일요일이면 내가 소풍을 모시고 다실 테니. 다시는 교회에 오지 맙시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교회에 딱 하루 나와서 참 많은 것을 보았구나.“

이에 딸은 깨달았다. 어머니는 자기처럼 저속하게 문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가치를 볼 줄 아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다.

 

행복하게 살아가는 사람과 불행하게 살아가는 사람을 관찰해 보면, 그들의 삶 가운데 일어나는 고난이 거의 비슷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문제는 그 고난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 하는 것이다.

행복하게 사는 사람은 찾아온 실패를 실패로 인정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실패를 과정으로 생각한다.

실패하지 않는 사람은 없다. 나도 종종 실패한다. 다만 실패할 때마다 일어섰을 뿐이다.”

넘어졌다고 일어선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은 자신있는 인생을 산다.

 

성도의 자신감은 하나님을 믿는 믿음 안에 존재한다. 진짜 신앙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이다.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이다. 또한 신앙은 기다리는 마음이다. 모든 것을 다 해주는 힘에서 사랑이 나오는 것이 아니다.

해주고 싶지만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거기에서 진실이 나온다. 사랑은 안타까움을 이해하는 마음이다.

반대를 포용하면 그만큼 넒어진다. 반대를 포용하면 그만큼 더 강해지고 반대를 포용하면 더 자신감이 생긴다(고후 6:13).

 

행복과 불행, 성공과 실패를 좌우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왜 어떤 사람은 성공적이고 생동감 있는 생활을 하고, 다른 사람은 좋은 조건에서도 무기력하고 패배적인 삶은 사는가?

이 책의 저자 제임스 돕슨을 비롯한 현대 심리학자들은 그것이 건강한 자아상, 긍정적 자아 개념, 높은 자존감으로

표현되는 자신감이라고 주장한다...

 

자존감을 주제로 다루는 이 책은 1974년에 처음 출간된 이후 1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판매 부수가 200만 권에 달하는

경이적 기록을 세웠다...이 책의 원제는 The New Hide or Seek이다. 외로운 고독 속에 숨어들지(hide) 말고, 적극적으로 자아 실현을 위한 기회를 찾으라(seek)는 의미에서 붙여진 이름이다...

 

사람이 내리는 판단 가운데 자신에 대하여 내리는 판단만큼 중요한 판단은 없다고 했다.

자존감은 우리의 건강과 행복과 성공을 좌우하는 열쇠이다. 자신의 가치와 능력에 대하여 낮은 판단을 하는 사람은 실패와 무능으로 점철된 삶을 산다.

그래서 심리학자들은 성공은 성공의 어머니이며, 실패는 실패의 어머니라고 지적하고 있다.

가정은 "자아상을 빚어내는 공장"(self-image factory)이다. 현재 우리 나라의 가정과 학교는 자존감이 낮은, 낙심한

아이들을 양산하고 있다.

이제는 출세하는 자녀 대신 행복한 자녀를 키우는 것으로 우리의 교육 목표를 수정해야 할 때이다.

 

2주 전에 저는 전도폭발 본부에서 훈련자와 훈련생들과 함께 한 여자 분에게 복음을 제시하기 위해 식당에서 찾아갔습니다. 그 여자 분은 신앙 생활한지 5년이나 되었는데 그만 교회에서 받은 상처로 인해 그동안 교회를 다니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분의 하는 말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은 잘 하다가도 갑자기 변하는 것에 대해 실망을 느꼈던 모양입니다. 자신이 교회에 대해 너무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복음을 잘 들으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이와 같이 복음에 대한 참된 감격을 느끼지 못한 채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반면에 직장 생활 하다가 상처를 받아 그만 두는 경우가 그렇게 많지 않습니다.

물론 직장에서도 마음이 상하고 관계 문제로 인해 갈등하는 경우가 종종 있지만 대개 삭이면서 넘어갑니다.

그런데 교회에서는 그게 잘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중에 하나가 건전한 자존감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생기는 경우가 많습니다.

 

신자들 가운데 자신을 부인하고 자기를 포기하고 희생하라는 이야기를 잘못 이해해서 일종의 피해의식을 가진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신을 위해 무언가 한다는 것이 마치 죄악인 것처럼 생각합니다. 자신을 사랑해 본적이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로부터 쉽게 상처를 받고 상호간에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매우 힘이 듭니다.

우리 사회의 분위기 자체가 올바른 자존감을 갖기가 대단히 어렵습니다.

 

우리는 어렸을 때부터 머리가 좋고, 예쁘고 친구가 많고, 재주가 있고, 부자이거나 생산적인 사람들이 존중받고 사랑받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자녀들이 이런 가치에 의해 판단되고 그들 또한 친구들과 형제들을 이것으로 판단합니다.

극히 일부만이 이것을 잘 견뎌내고 대부분은 자존감을 잃게 됩니다.

새로운 가치들을 배우지 않는 한 이런 주기는 다음 세대에서 반복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가치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그 형상이 회복되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웠졌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 자존감을 말하며 이것은 견고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 그것은 세상의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과는 다른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가치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그 형상이 회복되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웠졌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 자존감을 말하며 이것은 견고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과는 다른 것입니다.

 

1.잘못된 자존감(2:18-23)

 

2:18절에 보면 누구든지 일부로 겸손함과 천사 숭배함을 인하여 너희 상을 빼앗지 못하게 하라 저가 그 본 것을 의지하여 그 육체의 마음을 좇아 헛되이 과장하고”.

당시 골로새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일부로 겸손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천사 숭배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하고

있는 천사를 숭배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복음이 아닌 그릇된 행위와 의식을 주장하여 그것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신비한 체험을 근거로 자신을 자랑하며 성도들로 하여금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겸손을 가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헛되이 과장하려고 하는 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어떻게 보면 하나님을 위하여 그렇게 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육체의 마음을 좇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자신의 마음은 전혀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유혹을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겸손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부로 겸손해지는 것은 상황에 따라 언제나 교만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가지고 겸손해지는 것은 자기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교만으로 빠지게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참된 겸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어야 가능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 순간에 교만의 충동에 빠지게 됩니다. 자신이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 앞에서 진정한 겸손을

체험해야 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자존감으로 인해 영적으로 방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심지어 잘못된 자존감으로 인해 우울증과 정신분열증과 죄책감에 시달려 고통받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자의적 숭배와 겸손과 몸을 괴롭게 하는 것이 마치 신앙이 좋은 것으로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겸손은 굴욕과는 다릅니다. 죄의 본성을 벗어버리는 것은 자신을 무시하는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부인은 자기비하와 다릅니다. 자격이 없는 것은 무가치한 것과는 다릅니다. 자기 긍정은 자기 과대평가와 다릅니다. 자기가치는 자기숭배와 다릅니다. 자기인식은 자기열심과 다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힘든 문제 중에서 심리적인 것은 상당히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사단은 또한 그것을 이용합니다. 그중의 하나가 낮은 자존감입니다. 낮은 자존감이란 열등감과 부족하게 느끼는 것과

자신의 가치를 무시하는 감정등을 말합니다. 이러한 낮은 자존감을 우리의 생활을 패배와 실패로 이끕니다.

낮은 자존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의 가치를 무시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스스로를 신뢰하지 못하게 하고 그러한

감정을 다른 사람으로부터 채우려고 한다. , 주위 사람들 (친구, 남편, 아내, 형제, 애인, 선생님, 목사님 등)에게 의지하는데 그것은 그들에게 요구하기에는 너무 큰 것이다. 결국 그러한 요구는 자신을 만족시킬 수 없고 다시 절망에 빠지

는 악순환이 되풀이 된다. 이것은 대인관계를 파괴시키고 자신의 꿈, 이상 그리고 하나님의 사역은 망친다.

 

2.건강한 자존감(스바냐 3:14-17)

잘못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공통된 특징이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이 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은 이미 그런 운명으로 타고 났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크게 놀라게 됩니다. 신자는 더 이상 저주받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잘못된 자존감을 가진 사람의 또 다른 특징 가운데 하나는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쉽게 포기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스바냐 317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건강한 자존감이란 관계적인 문제입니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올바른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가치들을 소유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셨고 구속하셨으며 능력을 주셨기 때문에 나는 사랑스럽고 소중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았고, 그 형상이 회복되었으며, 성령으로 말미암아

새로웠졌다는 확신에 기반을 둔 자존감을 말하며 이것은 견고하며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세상의 변덕스럽고 예측할 수 없는 반응과는 다른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볼 때 다른

사람도 그러한 관점에서 사랑하게 됩니다.

부모,형제 자매,동료, 선생님, 그리고 다른 중요한 사람들과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문상담가인 머리스 와그너 박사는 그의 훌륭한 저서인 [가치있는 사람이 된 느낌]에서 건전한

자화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요소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속감입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원하며 용납하며 돌보아 주며, 즐기며 사랑한다는 것을 단순히 느끼는 것입니다.

 

두번째 요소는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적믿음과 감정을 의미합니다. 나는 가치가 있어, 내게는 뭔가 내놓을만한 것이 있거든.

 

세번째 요소는 자신감입니다.

이것은 느낌으로부터 오는 생각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잘 처신해 나갈 수 있지,나는 생애 대한 자신감이 있어

 

당신이 자신을 깎아내릴 때마다 하나님께 그것이 옳은가 그른가 판단하십시오. 누가 당신을 칭찬할 때 어떻게 합니까? “

감사합니다. 혹은 좋게 생각해주시니 기쁘군요. 그렇게 말해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그렇지 않으면

자신을 깍아내리려고 하십니까? 자신을 깍아내리는 가장 나쁜 방법은 그것을 전적으로 미화시키는 일입니다.

아 그래요 그것은 제가 한 것이 아니고 주님이 하신 것이죠. 물론 이러한 대답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언제든지 그렇게 말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십자가와 그리스도인의 자신감

 

오늘날 성도들 가운데 자신을 무기치한 무용지물이라고 여기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하나님이 독생자를 보내셔서 그분을 위해 죽게 하신 유일한 이유는 그분의 무한한 자비일뿐이다.

그것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사명에 대한 충만한 잠재력을 실현하지 못하고 있으며, 하나님이 그들을 향해 게획하신 일들을 성취하지 못하고 있다.

혈통을 자존감의 근거로 사용한 가장 두드러진 성경의 예는 빌립보서 34-5절이다.

자존감 증대에 능력과 기술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예는 성경에도 많이 나온다(18:11-12, 7:22, 3:6).

 

자존감의 기초

자존감과 혈통

혈통이란, 개인의 역할 중 나는 누구이며 어디서 왔는가?의 측면이라 할 수 있지만 자존감을 높이는 방편도 될 수 있다.

마태복음 1:1-17과 누가복음 3:23-38 서두에 나오는 족보는 예수님이 참 유대인이요 아담의 자손임을 보여 준다.

그러나 혈통을 자존감의 근거로 사용한 가장 두드러진 성경의 예는 빌립보서 34-5절이다.

자존감과 역할수행 

역할 수행이란 개인의 역할 중 나는 무엇을 하는가?의 측면이라 할 수 있다. 이것은 능력과 성취에 관한 것이며,

소유나 부에 반영될 수도 있다. 자존감 증대에 능력과 기술과 행동이 중요하다는 예는 성경에도 많이 나온다(18:11-12, 7;22, 3:6).

자존감과 타인의 사랑

자존감의 일부 요소는 성취보다 호감이나 매력과 더 직결된다. 외모, 성적인 면, , , 가치가 그에 해당된다.

건강도 이 영역에 들 수 있다. 자신을 남들과 사랑받는 존재로 지각할 때 실패의 여파는 줄어들 수 있다.

자존감과 영원한 의미

영원한 의미에 대한 갈망은 인간의 불멸에 대한 집착과 광활한 우주에 비해 자신이 상대적으로 작은 존재라는 의식에

잘 나타난다. 인간은 세상에 자신의 흔적을 내거나 후손을 남기거나 혹은 최대한 오래 살고자 애쓰기도 한다.

 

자존감의 기능

긍정적 자존감은 건강한 신체, 원만한 대인관계, 타인에 대한 관용과 포용력, 미래에 대한 희망과도 연관된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부정적 자존감은 전반적인 건강 부진, 지나친 굴종, 수동성과 동도, 악평을 옳은 것으로 수용하는 경향, 학업과 직장생활의 부진, 남을 헐뜯는 성향과 연관된 것으로 밝혀졌다.

 

기독교적인 자존감

칼 로저스가 개발한 치료접근은 사람이 자신을 수용하면 심리적으로 건강한 인간이 된다는 가정에 기초한다

하지만 인간 본성에 정말 문제가 있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기독교적인 관점은 진실한 슬픔과 뉘우침에서 비롯되는

회개야 말로 진정한 자기 수용의 필수요소라는 것이다.

 

자존감의 객관적 기초 : 십자가

그리스도는 우리 인간의 상황에 들어오셔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과 죄를 나누셨다. 그분은 모든 것을 십자가로 가져 가셨다. 따라서 우리 역시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박혔다. 그분이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다. 이렇듯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의 객관적 기초를 쌓는다. 바로 거기서 하나님은 우리와 관계를 맺으셨다. 죄는 해결되었다.

일반 심리학 이론들은 죄의 실체와 그 심각성과 위력을 회피하지만 복음은 그것을 인정한다.

자존감에 필요한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 이루셨기 때문에 우리는 안심할 수 있다.

하지만 죄를 인식한다고 해서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이 훼손되어서는 안된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자기 삶에 죄의 존재가 계속된다는 이유로 자신을 경멸하거나 미워해서는 안된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죄를 범할 때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다.

 

 

자존감 회복에 관한 기독교 상담적 접근

 

최근의 여성들에게 가장 문제로까지 야기되고 있는 다이어트만 하더라도 잘못된 외적 기준들로 인하여 외적 모습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일을 하는 자세에까지 영향을 미치게 되고 우월감이나 열등감으로 표현된다.

그러나 이것은 부분적인 것이며 실제로 자신에 관해 평가하게 되면서 갖는 자존감은 긍정적인가, 부정적인가에 따라서 많은 차이를 갖게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여러 문제에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임하므로 성공적인 결과들을 가져온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며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되고 문제에 직면했을 때

외면하거나 회피할 수 없을 경우 마지못해 임하게 되기 때문에 성공보다 실패로 가게 된다.

 

각 시기에 자신에 대한 평가는 삶의 여러 문제들을 결정하는데 영향을 끼치게 된다. 청년기는 자신에 대해 제일 예민한

시기로서 자신에 대한 자아 정체감을 가지는 길목에 있는 시기이다. 그리고 이때 갖는 자존감은 일생동안 계속적인 영향을 끼치게 된다. 그러므로 청년기의 자존감의 수준을 좀더 긍정적인 방향으로 변화하여 어떤 문제가 있을 때 긍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은 필요하다.

 

교회 내에서 신앙을 가진 청년들도 자존감이 낮은 사람이 많으며 이런 낮은 자존감은 신앙에도 영향을 끼치는데 이것은

예배생활이나 성경읽기 등 외적인 분야 등에서는 별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절대자에 대한 신뢰나 내적 성숙에 대해서는

차이가 보인다.

 

김숙향은 기독교인중에서도 교회의 주일학교 교육이 길수록, 중생의 체험이 있을 때 긍정적인 자아개념을 가진다고 하였다.

김성진은 자아개념은 신앙 생활의 유형에 따라 외형적인 면, 예배 참석 빈도, 성경읽기, 기도생활에서는 큰 차이를 보이지 않으나 내적인 성숙이나 절대자에 대한 신뢰도, 말씀의 영향력, 절대자의 사랑, 주관적인 신앙발달 단계 등에서는 자아개념이 높은 사람이 높은 성숙도를 보인다고 한다.

 

자존감이 결핍되면 기독교인들 중에서도 정신병이나 알콜 중독, 약물 중독 등이 생길 수 있다.

자존감은 다른 문제를 발생케 하는 근본적인 문제다.

 

자존감은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고 있는 가에 대한 개인적인 평가이며, 자신의 행동이나 목적을 나타내는 일에서

나타나게 되는 자신의 가치, 유용성, 자신의 능력에 관한 기본적인 느낌을 말한다.

자존감은 자신의 역할, 성격 특성, 신체적 외모, 기술 및 능력에 대하여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형성되며,

여기서 역할은 개인이나 가정이나 직장 그리고 기타 생활 속에서 수행하는 책임, , 기대 등을 포함한다.

 

일반적인 자존감은 개인의 만족에 있으나 성경적 자존감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회복을 제시한다.

자존감의 방향이 일반적 자존감은 개인 자신으로 향해 있으나 성경은 타인을 섬기는 방향으로 말하고 있다.

성경적 자존감이란 하나님의 지음을 받은 자로서 자신이 누구인지를 바르게 인식하는 것이며. 자신의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죄에 대한 본성을 벗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다.

즉 자신을 평가하는 기준이 하나님께 있게 하는 것이다.

 

바울은 자신을 죄수중의 죄수(딤전 1:5)라고 표현할 정도로 큰 죄인으로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숨기려 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신을 보고 배우라고 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다. 그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기 때문이며

그러므로 자신의 이전 생활을 계속적으로 문제시 하지 않았다(3:13).

 

바울은 자신을 죄인이라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자신을 자랑했으며,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우리의 만족함이 있음을 나타냈다(고후 3:4-5). 그리고 자신은 연약하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권능을 받는 사람이라고 하였다.

자신에 대한 평가는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물임을 기억하고 인간의 죄악들을 인정하는 것으로부터 출발해야 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자존감이란 아담의 타락으로 인간은 죄악된 존재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이루지 못하고 불

완전상태에 있는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 사함을 통해 새로운 피조물로서 자신을 하나님의 용남하심을 통해

보는 것이다. 우리 자신의 평가 기준을 불완전한 인간에서 완전한 하나님께로 옮기는 것이다.

 

성경적 자존감을 형성하는 요소들

1. 죄의 용서

우리 안의 죄의식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평가하게 하며, 사람이 죄의식에 사로잡히면 그는 자신을 경멸하게 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속의 은혜를 주셨고, 우리가 회개를 통하여 하나님께 자신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완전히 의로운 자가 되며 죄 의식에서 벗어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므로(고후 5:17) 새로운 존재로 자신을 인식할 수 있고 긍정적인 자존감을 갖게 된다.

2. 하나님의 용납하심

인간은 누구에게나 용납되어져야 할 필요를 가진다. 그래야만 자신도 용납하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완전히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의로운 자라 칭하신 하나님은 또한 우리를 용납하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 안에서 용납된 자들이며 이것은 결코 변하지 않는 용납이다.

용서와 용납을 받게 되면 우리는 해방감, 곧 이전에 우리가 얻고자 씨름했던 안정, 평화, 사랑이 온전히 주어지는 느낌을

받게 된다. 하나님으로부터 조건 없는 용납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과의 관계적인 면에서 겸손을 표현할 수 있으며,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용납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된다.

 

자존감을 회복하는 구체적인 사례로는 먼저 자신의 장점, 자신의 단점을 기록해 보고, 그것에 대한 나의 시각,

하나님의 시각을 정리해 본다. 그리고 단점을 해결하기 위한 자신의 노력들에 대해 살펴본다.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3:16)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자신감이 필요하다. 자신감은 생활의 활력소다. 자신감이 있으면 생각이 넓어지고 매사에

적극적이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으면 생각이 위축되고 수동적이며 열등감이 생긴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뇌가 20% 줄어들면서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다.

 

자신감에는 두 가지가 있다. 외면적 자신감과 내면적 자신감이다.

 

외면적인 자신감은 외면적인 조건의 만족에서 오는 자신감이다. 예를 들어 키가 작거나 잘 생긴 외모, 좋은 학벌과 능력.

남보다 우월한 가문, 재력, 명예, 높은 신분 및 권력 등에서 생기는 자신감을 말한다.

를 영어로는 Self-Competence 라고 말한다. 이러한 자신감의 요인들은 수평문화에 속한다.

 

내면적인 자신감은 내면적인 조건의 만족에서 오는 자신감을 말한다. 이는 자신의 내면적, 심층적, 그리고 존재적인

자신감이다. 이것을 심리적, 철학적 및 종교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을 때 높아진다.

이를 영어로는 Self-Confidence라고 말한다. 이러한 내면적 자신감은 수직문화에 속한다.

 

사도 바울은 내면적 자신감(자긍심)을 속사람(3:16)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반면에 외면적 자신감은 겉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온전한 자신감 = 내면적 자신감(심리적, 종교적, 철학적 자긍심이 높을 때 생기는 자신감)+ 외면적 자신감(외모, 학벌, 소유, 전공, 권력, 명예 등 외적 조건에서 오는 자신감)

 

자신감은 열등감과 상반된 개념이다. 자신감이 없을 때 열등감이 생긴다. 반대로 자신감이 넘치면 열등감이 사라진다.

따라서 외면적인 자신감과 내면적인 자신감 2가지 혹은 어느 한 가지 자신감이 결여되었을 때 열등감을 가질 수 있다.

 

인간은 외면적인 자신감과 내면적인 자신감의 강약에 따라 4가지 종류의 사람으로

구분될 수 있다.

 

첫째, 외면적인 자신감도 없고 내면적인 자신감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외형적으로나 혹은 정신적으로 뭐 하나 내놓을 것이 없는 사람을 말한다.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주위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열등의식이 강해 피해의식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다.

그것은 오만불손, 허풍, 남보다 낫게 보이고자 하는 가식 등으로 나타날 수 있다.

이들이 반항하면 사회적으로 큰 해가 될 수 있다. 지존파가 막가파도 이러한 부류에 속한다.

 

둘째, 외면적 조건이 잘 갖춰져 외면적 자신감은 있다 해도 내면적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이다.

이러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잘 나갈 때에는 남에게 부러울 것이 없고 자신감이 있는 듯하다.

그러나 인간은 외면적 자신감이 있다 해도 늘 마음 한 구석이 외롭고 허전하며 전체적인 자신감이 부족할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인간의 내면적인 면에서 철학적, 종교적인 안정감이 약할 때 나타난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였지만 종종 열등의식이 나타나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더욱 육적인 욕구로 과도하게 채우려고 한다.

그 결말은 허무와 파멸에 이르는 수가 많다.

 

셋째, 외면적인 조건이 부족해도 내면적인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 있다.

이러한 사람은 내면적으로 철학적, 종교적인 안정성이 강한 사람이다. 내면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설사 외면적인 것이 약해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는다. 외면적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비굴해지지 않는다.

 

넷째, 외면적인 자신감과 내면적인 자신감이 모두 동시에 충만한 사람이다.

이집트 왕자였던 모세나 사도 바울이 그 예이다. 그들은 족보나 학력이나 경력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엘리트였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크고 넓게 그리고 귀하게 쓰셨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내면적인 자신감이 외면적인 자신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다. 그리고 내면적 자신감과 함께 외면적인 자신감도 함께 기른다면 열등의식을 해소할 수 있고, 또한 열등의식이 있다 해도 잘 절제할 수 있다.

 

내면적인 자신감은 높은 자긍심을 가질 때 가능하다. 자긍심이란 먼저 자신을 사랑하고 존중하는 데서부터 시작됩니다.

그렇게 할 때 남도 귀하게 여기고 존중하게 됩니다. 원래 자긍심이란 남과 경쟁하거나 비교해서 얻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인생관이 분명히 정립된 사람에게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살아야 하는가?, 창조의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확실한 답에서 얻어진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생각이 깊고 넒으며, 의지가 강하고, 참을성과 끈기가 많다. 매사에 홀로 설 수 있는 독립심이

강하며. 반면 자긍심이 낮은 사람은 의지력이 약하고 참을성과 끈기가 부족하다. 또한 독립심도 약해서 남에게 의지하려는 경향이 많으며 주위의 유혹에도 약하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재물이나 권력 및 명예를 얻어도 그들의 마음이 쉽게 부패하지 않고 그것들을 오래 간직할 수 있다. 억대 연봉자의 3/4이상이 자기 일에 대한 집중력이 뛰어나고 목표의식이 뚜렷할뿐더러 끈기가 있었다.

이른바 과제지향적 인간이다. 무엇보다 매사에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자신감이 넘치는 사람들이다.

 

자긍심이 낮은 사람의 특성은 외적 조건에 지나치게 민감하고 투지를 많이 한다. 남에게 보란 듯이 큰 집을 사고, 유난히

비산 상표의 옷을 입고, 고급차를 선호하는 것 등이다. 이것은 열등의식의 뿌리에 기인한다. 유대인의 탈무드에 다음과

같은 격언이 있다. “자기의 지위를 다른 사람들 앞에서 과시하는 사람은 이미 스스로의 인격에 상처를 입고 있다.”

왜 일부 일류대학 출신은 누가 물어보지 않는데도 자신의 출신학교를 남에게 알리고 싶어하는가? 내면적 자신감이 약하기 때문이다. 열등감과 우월감은 사촌지간이다.

 

한국인들 가운데 열등의식이 많은 이유는 유교의 영향으로 사람을 평가할 때 인간의 내면세계보다는 외면에 보이는 형식 및 결과를 더 중요한 기준으로 삼아 왔기 때문이다. 많은 사람들이 남보다 나아지려고 혹은 남에게 인정받고자 출세위주의 삶을 지향하고 있다. 그러나 기독교 가치관은 남을 배려하고 남을 위해 희생하는 삶이다.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이러한 외적 조건을 가졌어도 남에게 드러내 놓고 자랑하지 않는다. 이러한 외면적인 조건들은

자신의 내면적인 가치에 비하면 하찮은 것들이기 때문이다. 또한 자긍심이 높은 사람은 내면적인 자신감이 큰 사람이기 때문에 인간관계에서도 사소한 일에 연연하지 않고 여유를 갖는다. 넉넉한 마음을 갖고 있기 때문이다.

 

사람은 누구나 크건 작건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다. 열등의식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열등의식이 자신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한다. 사회생활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동기유발이 되기 때문이다. 다만 과도한 열등의식이 나쁘다는

말이다. 열등의식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열등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2가지 자신감, 내면적 자신감과 외면적 자심감을 고루 갖도록 해야 한다.

 

먼저 내면적인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신앙의 사람으로 교육해야 한다.

신앙심이 강해지면 자신의 영적인 소속감이 분명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며 자아형성이 뚜렷해진다. 신앙심이 강해지면

속사람이 강해진다. 바울은 교인들을 위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도록 기도하였다”(3:16). 그리고 신앙심이 강해지면 삶의 목적도 뚜렷해진다. 즉 자긍심이 높아진다. 이것이 바로 내면적 자신감의 핵이다.

 

미국 바나 리서치 그룹에서 성인 3천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조사한 결과 무신론자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해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앙이 깊을수록 자신감, 행복감, 자족감이 높게 나타났다.

신앙의 용장 다윗이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이유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굳게 믿었기 때문이다(139:13-16).

 

둘째, 어려서부터 뿌리교육, 철학, 역사, 사상 및 고전 교육을 많이 시켜 수직문화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지체 높은 알렉산더 대왕이 나무통에서 책을 읽고 읽는 디오게네스에게 찾아와 물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철학자는 대왕을 한번 쳐다보고는 대왕께선 햇볕을 거리지 마십시오.”라고 답했다.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말이다.

이 말을 듣고는 알렉산더가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셋째, 이론적 내면적 자긍심을 키움과 동시에 실천적 내긍심을 키우기 위해 고난의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한다.

그리고 실제 고난을 통한 극기 훈련을 시켜야 한다. 전인 교육은 교실에서 가르치는 이론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니다.

실제 고난을 체험하면서 깨달음과 지혜와 인내가 생긴다. 그리고 강인해진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게 된다.

인생의 철이 든다. 깊이 있는 내면적 자긍심이 생긴다.

고난은 하나님의 교육방법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고난의 의리를 깨달았다(23:10-14).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신문배달이나 아르바이트 등 힘든 노동을 시키는 것이 자녀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다음은 외면적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월간중앙 조사 20068월에서도 외면적 자신감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다. 학력별로 보면 고학력일수록 현저하게 긍정적 태도를 보였고, 긍정적 태도는 고소득 기여 요인에 대한 인식과도

관계가 있다. 소득이 높을수록 매사에 자신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았다.

 

기독교인은 청빈만 강조하거나 무능력하더라도 마음이 착한 것으로 덕을 삼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것은 잘못된 교육이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내면적 자신감뿐 아니라 외면적인 실력도 함께 갖추어야 한다. 즉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키워야 한다.

 

기독교인도 외면적 자신감을 높여야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고(6:9-13), 이를 위하여 땀흘려 노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각자의 생업은 대단히 중요하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도 이 땅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이 땅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해야 한다. 남에게 꾸어줄망정 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28:12-13).

하나님께 풍성히 바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실력을 갖추고 여유가 있어야 한다.

남을 돕는 것은 물질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 또는 전문분야도 보이지 않는 재산이다.

 

셋째, 인간은 아무리 신앙심이 좋다 해도 인간이다. 누구나 다소의 열등의식이 있게 마련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적

자신감뿐 아니라 외면적 자신감의 조건도 만족시켜야 한다.

 

넷째, 하나님은 내면적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쓰시지만, 이왕이면 외면적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받은 사람을 더 크고 넓게 쓰시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열등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첫째, 물질, 명예 및 권력과 같은 외면적 조건들에 굴하지 않고 이를 초월할 수 있는 내면적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둘째, 이에 대하여 이웃도 도울 수 있는 그리고 사회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외적 조건들을 개발하여 외면적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하다.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다.

 

내면적 자신감 교육의 내용은 인성교육의 내용이다. 인성교육이란 도덕적 인격을 형성하는 내면적 성품, 성질 혹은 성격 및 강한 의지를 계발하고 이를 외면적 착한 행실로 나타나게 하는 교육이다.

 

인성이 균형있게 잘 발달되려면 다음 다섯 가지 교육이 필요하다,

첫째 신앙교육, 둘째 EQ교육, 셋째 수직문화 교육, 넷째 효도교육, 다섯째 고난의 역사교육

 

반면에 외면적 자신감 교육의 내용은 첫째 IQ 계발, 둘째 지식 및 전문교육, 셋째 체력 단련 등입니다.

자녀가 어릴수록 인성교육 위주로 가르치며 내면적 자신감 교육에 치중해야 한다. 그리고 그 터 위에 서서히 조금씩

외면적 자신감 교육인 세상 학문을 함께 가르쳐야 한다.

 

자존감과 열등감

 

나는 나를 어떤 관점에서 보고 있는가? 자존감과 열등감은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자신의 마음을 이해하고 관점을 바꾸면 열등감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다.

모든 사람은 이 세상에서 유일무이한 존재이다. 그 어느 누구도 똑같은 사람은 없다. 자신만의 영혼과 마음을 지닌 유일한 존재로서의 인간은 그렇기 때문에 모두 귀하고 특별하다.

 

여유와 편안함은 열등감이라는 열차에서 내려 자존감이라는 인생의 열차로 갈아탈 때 생기는 것이다.

손주가 왜 그렇게 이쁠까요? 학벌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인기가 있어서가 아니다. 미모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은 아니다.

손주가 그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조건 때문이 아니다. 우리 가족의 일원로 태어나 준 그 자체가 고맙고 귀하다.

조건이 아니고 존재 자체 때문에 소중하다.

 

열등감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에서 나온다. “나는 못난이야, 나는 무능해, 나는 배운 것이 없어.”그래서 사람들이

자기를 무시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열등감이다. 열등감은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덩치와 무기가 아니라 관점과 신앙의 차이였다.

열등감은 자신을 항상 비판적이고 부정적인 쪽으로 생각하게 만들기 때문에 문제가 된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어떤 특징이 있을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신체에 대한 만족도가 높다. 공감 능력도 높다. 남의 감정을 파악하는 능력을 EQ라고 하는데,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EQ도 높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저 사람이 나를 어떻게 볼까? 에 신경 쓰느냐고 상대방의 감정을 읽을 여유가 없다. 상대방의 감정을 자기 식대로 부정적으로 해석해 버린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리더가 된다. 리더는 사람을 좋아할 뿐 아니라 그 사람이 잠재능력을 발휘하는 것을 돕는다.

갈등을 풀고 생산적인 결과를 도출해 낸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인정이 많고 자신감이 있으며 미래에 대해서도

희망적이기 때문에 따르는 사람이 많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성공에 대한 확신이 있다.

 

자존감이란 자신에 대한 스스로의 평가이다.

첫째, 자기 가치감이다. ‘

나는 가치 있는 사람이다. 나는 남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고 사랑받을만한 사람이다고 평가할 때 일어나는 감정이다.

따라서 자존감이 높은 사람들은 사람들을 만날 때 마음이 즐겁고 편하다. 반면에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기가 상대방에게 혐오감을 줄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사람 만나는 것이 힘들다.

둘째, 자신감이다.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나는 유능한 사람이다. 내게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감이 없다. 아무 것도 할 수 없다는 무기력증에 잘 빠진다. 자신은 무능력하기 때문에 노력해 봤자 별수 없다는 상태가 무기력의 상태다.

즉 자존감은 자기 가치감, 나는 호감을 줄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평가와 자신감, 나는 맡겨진 일을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야라는 평가로 이루어진다.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을까?

그렇다. 유아기의 부정적 경험을 통해서 형성된 열등감도 바꿀 수 있다. 조건에 상관없이 자신을 좋아해 주고 인정해 주는 경험을 반복하면 낮아진 자존감을 회복할 수 있다.

 

외모 열등감 ; 못생겨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외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이다. 사람들이 열등감을 느끼게 되는 가장 일반적인 원인은 외모에 대한

것이다. 눈에 대한 열등감이 제일 많고, 다음은 코, 여성의 경우 가슴 등의 순이다.

외모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유별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한다. 남들에게 내가 흉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한다.

그러나 남의 거울에 미친 나를 나로 착각하지 말라. 세상에는 다양한 거울이 있다. 어릴 때에는 비판 능력이 없어서

그 거울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알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는 당신이 남의 거울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인간을 전체 상황 속에서 이해할 수 있다.

깨진 거울에 비친 당신의 모습만 보지 말고, 당신을 비추고 있는 거울이 온전한지 평가해야 한다.

 

집안 열등감 :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교육을 많이 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부모나 친척을 둔 사람에게 부러움을 느끼고 가난하고 무식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집안 열등감이다.

L 박사는 알코올 중독자 아버지를 현실로 받아들였다. 그리고 평화를 회복했다. 물론 그가 그럴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인격이 성숙해졌기 때문이다. 이렇게 마음 속의 아이가 자라면 헌실을 수용하기가 쉬워진다.

정신과 의사들은 환자가 현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면 아 많이 좋아졌구나하고 안도한다.

 

타고난 조건에 대한 열등감 : 마음에 달렸다.

선천적 조건에 대한 열등감이 모든 열등감의 60%를 넘는다. 이런 선천적 열등감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다. 현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하고 꾸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하다. 자기를 알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이다.

중요한 것은 세상을 바라보는 패러다임의 변화다.

 

아무리 노력해도 이거밖에 안돼 : 능력과 열등감

나는 무능해, 나는 승진도 못하고 항상 이 모양이야, 대돌정도는 돼야 사람 대접을 받을텐데 나는 고졸이야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할거야.

학생들은 성적이 올라 갈 때 자존감을 느낀다. 직장인들은 연봉이 높아질 대 자신감이 생긴다. 능력에 위한 자존감은

객관적이고 가시적인 성공을 이를 때 얻는 자존감이다. 이런 자존감은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생각될 때만 유지된다.

능력 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은 유년기의 패배경험이 현재의 생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사실 전능한 사람은 없다. 경쟁에서 늘 이길 수 없다. 그러나 건강한 직장인은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며

산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자존감을 유지하며 산다. 그것이 건강한 인생이다.

 

가난과 열등감: 가난해서 결혼도 못하겠네

부자들은 자존감을 느낀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열등감을 느낀다.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을 보면 자존심이 상한다.

가난하다는 것은 불편할 뿐인데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다.

남이 가진 재산이나 탤런트를 부러워하고 좌절감을 느끼는 것이 열등감이다. 반면에 자기 탤런트를 개발하고 키우는 것이 효과적인 열등감 극복이다.

예를 들면 가난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잘 할 수 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승부를 걸자.

사람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다.ㅡ 이것은 탤런트 혹은 달란트이다.

 

내가 고졸이라서 무시하나 : 학별 열등감

고졸 출신의 어떤 부인이 자기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했지만 소장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다.

자존심이 팍 상했다. “내가 고졸이라고 인사도 안받는구나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관리 소장이 그녀의 학벌을 알 리가

없다. 자기 혼자 하는 생각뿐이다. 비현실적인 생각이다.

 

인간에게는 두 개의 현실이 있다. 하나는 실제적 현실이다. 객관적 현실이다.

다른 하나는 심리적 현실이다. 마음이 만들어 낸 주관적 현실이다.

그녀가 관리소장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실제적 현실이 아니고 심리적 현실이다.

 

그 부인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학벌이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다.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낮다. 이런 사람은 나는 창피한 인간이야라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후천적 경험에 의해서 생긴 열등감이다.

 

정신과에는 그 부인이 과일 가게에서 있었던 일을 일기에 쓰라고 한다.

 

1) 사건 : 오늘 과일 가계에 갔다. 과일을 고르고 있는데 젊은 점원이 과일을 주무르면 팔지 못한다고 나를 책망했다.

 

2) 떠오른 생각 : 몹시 불쾌했다. 그리고 점원이 내가 고졸인 것을 알고 있는 것 같았다. ‘내가 대졸로 보였다면 젊은 사람이 감히 손님에게 저렇게 불손할 수 없을거다.’라는 생각을 했다.

 

3) 합리적 비판과 수정행동 : 그러나 점원이 내 학벌을 알리가 없다. 내 생각일 뿐이다. 점원에서 손님에게 그렇게

소리지르지 말아요. 나는 과일 안 주물렀는데 그런 손님들이 많은가 봐요?’라고 말해 줄 걸 그랬다.

다음에는 그렇게 말해 주어야지

 

이것을 인지 행동치료라고 한다. 어떤 연구에 의하면 이렇게 일기를 써본 사람들의 80% 이상이 만족하는 결과를

얻었다고 한다.

 

학벌 열등감이 심해서 너무 고통스러운 사람은 가능하다면 학교에 가는 것도 좋다. 그러나 여건이 허락지 않는다면 관점을 바꾸어야 한다. 학벌 한 가지로 나를 평가하지 말자. 나는 건강하고 얘들도잘 키웠고, 나를 사랑해 주는 성실한 남편도

있다. 이만하면 먹고 살만큼 가게도 잘 꾸렸다. 우리 가정은 내 자랑이다. 나는 전체적으로 평가하자.

 

자존감을 추락시키는 실직

실직은 인생의 큰 고통이다. 특히 남성들은 여성보다 일 자리에 더 큰 의미를 둔다. 일을 잃으면 동시에 자기 인생도

무너지는 것으로 느끼는 인생들이 많다. 특히 성격이 경쟁적인 사람이나 성공지향적인 이들은 실직을 못 견딘다.

실직자를 괴롭히는 것은 경제적인 어려움만이 아니다. 제일 못 견디게 만드는 것은 주위의 시선이다. 자존심이 상하는 것이 제일 괴롭다. 다음으로 실직자들을 괴롭히는 것은 증오심과 억울함이다. 그리고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공포에 가까운 걱정이다.

 

그러나 자학을 해서는 안된다. 자신감을 잃으면 그것이 오히려 더 큰 위기를 몰고 온다. 이럴 때일수록 산책도 하고

규칙적인 생활로 건강관리를 해야 한다. 그리고 배우자들은 실직자에게 비난이나 원망의 말을 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당신은 다했어요. 나는 사실 당신이 자랑스러워요. 이보댜 더 어려운 고비를 넘어왔잖아요. 이번에도 당신은

잘 할꺼에요. 자리를 잃었을 때 자존감까지 잃어서는 안된다. 인생의 많은 고비 중에 하나에 봉착했다고 생각해야 한다.

실패의 산이 높을수록 정상엔 누리는 기쁨도 크다(119:71).

 

왕따 경험과 열등감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유년기 경험 중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왕따 경험이다. 왕따란 집단 괴롭힘이다.

요즈음은 은따, 은근히 따돌린다는 뜻이다.

반항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나 같은 놈은 비열한 놈이다. 창피해서 죽고 싶다.

 

일상에서 행복할 수 있으면 자존감이 높은 사람이다. 그런데 낮은 자존감을 가진 사람들의 심리를 분석해 보면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때까지 나는 행복할 수 없다고 믿고 있다. 하지만 이제는 나를 싫어하는 사람은 그냥 싫어하게 놔두자. 상황이 바뀌거나 그의 생각이 달라지면 사과하고 돌아올 수 있다.

그의 감정을 그에게 맡기고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사랑하며 살자.

 

자학적 성격을 가진 이들은 자존감을 높이기 위해서 지나치게 희생적인 생활을 한다. 광신적으로 종교에 매달리기도 한다. 그러나 종교가 그에게 평화를 주시는커녕 죄책감과 갈등만 부추긴다.

가혹한 초자아는 유년기에 너무 암한 부모, 너무 처벌적인 부모가 그렇게 만든다. 아이가 도달할 수 없는 너무 높은 이상을 요구하는 것도 문제의 초자아를 만든다. 부모가 너무 나약하고 부드러워도 초자아는 비정상적이 된다.

 

낮은 자존감으로 괴로워하는 사람들은 자신의 성격을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  성격이 강박적인 사람은 주도권이 자존감을 준다.

 

성격이 강박적인 사람은 세 가지 특징이 있다. 첫째는 청결, 둘째는 정리정돈, 셋째는 시간 엄수다.

이런 성격은 언제든지 주도권을 쥐려고 한다. 자기는 항상 옳고 신중한 결론을 내리고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주도권을 잃을까 두려워서 그러는 것이다. 주도권을 쥐어야 비로소 안심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야 쟈존감을 유지할 수 있다.

히스테리 성격은 인기가 자존감을 유지해 준다. 자기애적 성격은 권력과 돈이 자존감을 준다. 소위 공주병이 여기에

속한다.

 

누구나 자존감을 높일 수 있다

 

열등감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자신에 대한 관점이 부정적이기 떼문에 생기는 것이다. 열등감은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댜 더 낮게 보는 관점의 문제다.

대개 자신에 대한 관점은 유년기의 경험이 좌우한다. 마음속의 아이의 영향 때문에 열등감이 생긴다.

열등감은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때 사라진다. 무조건적 수용의 경험이 필수다.

 

무조건 수용이란 조건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경험이다. 이런 사람들은 진정으로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치유가 나타난다. 무엇보다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기억할 때 회복된다.

외모도 , 지위도, 성공도 다 일시적이지만 변하지 않는 것은 내면적인 자존감이다.

미운 오리 새끼의 자존감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이외로 많다. “넌 왜 그모양이니, 뭘 좀 제대로 해봐라.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자존감은 대물림 된다

낮은 자존감이 대물림된다는 것은 충격적이다. 자신감이 없는 부모는 자신감 없는 아이로 키운다. 그래서 아이를 지나치게 걱정한다. 이런 걱정 때문에 과도한 간섭을 하게 된다. 아이를 과잉보호하게 된다. 그렇게 로봇 자존감은 대물림된다.

성취감이 모여서 자신감이 된다. 아이들은 놀이를 통해서 성취감을 느끼고 성취감을 통해서 자신감이 생긴다.

그렇다고 해서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무조건 허용하는 것은 또 다른 괴잉 보호다. 아이의 기를 살려 준다고 과도한 칭찬을 하는 것은 좋지 않다. 엄친아, 임친딸을 자기 자녀와 자꾸 비교하는 것도 등을 대물림하는 부작용을 낳는다.

 

자존감은 엄마에게 대물림 된다

코허트 박사는 갓난아이 때 건강한 자기애가 생긴다고 했다. 엄마는 아이의 거울이다. 그래서 엄마를 반사자기대상이라고 부른다. 엄마가 아이를 예뻐하고 좋아하면 아이는 자기가 상대방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라고 하는 자존감이 생긴다.

반대로 아이가 사랑받지 못하고, 천대받으면 사람들이 자기를 싫어할 것이라는 낮은 자존감을 갖게 된다.

자존감이 낮은 아이는 분리불안이 심하다. 그래서 엄마와 떨어지지 않으려고 유치원에 가지 않으려고 한다.

높은 자존감을 갖기 위해서는 어머니의 태도가 아주 중요하다. 좋은 부모를 만난 아이들은 자존감이 높다.

 

자존감이 높아지면 용서할 수 있다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기란 정말 힘들다. “이웃 사랑은 이를 악물고 하는 거예요라고 안이숙 여사는 말했다. 용서도 이를 악물고 하는 것이다.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의지로 용서하는 것이다.

또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된다. “아버지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렇게 용서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진다. 자신감이 생긴다.

열등감,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당신에게 있다. 원망하고 도피하는 열등감쪽 반응을 택한 것은 당신이다.

 

자존감을 회복시키는 자기 위로

내가 못나서 그런 일을 당한 거야’, ‘는 복대가리가 없어서 그런 일을 당한 거야라고 스스로의 비난을 멈추라.

비난은 가해자가 받아야 한다. 자기를 비난하지 말고 위로하자.

마음속 깊은 곳에서 이렇게 살수 없잖아. 힘을 내야지. 자 스스로 작아지지 말자. 힘을 내자, 모든 일이 잘 될 거야

 

공사 중임을 받아들이면 자존감이 유지된다

공사 중 통행에 불편을 드려 죄송합니다.“ 그 팻말과 같이 인간관계에 있어서 고통을 당할 때 아하,

그래 김씨가 공사중이야, 그래서 내 통행을 막고 있는 거였어, 그러면 갑자기 상대를 미워하던 마음이 사라지고 이해하게 된다.

 

자신의 참 모습을 직면할 때 자존감이 회복된다

위니코트 박사는 가짜 자기진짜 자기라는 학설을 발표했다. ‘가짜 자기는 자기가 그렇게 되기를 바라는 자기이다.

진짜 자기는 부모의 사랑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하고 부모의 사랑을 받기 위해 만들어 낸 자기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은 숨기고, 부모가 원하는 말 잘 듣고 모범적인 착한 아이로 위장하는 것이다.

그렇게 성격이 형성되면 가짜로서 인생을 산다. 진짜 자기가 드러날까봐 노심초사한다.

더 이상 자기의 참모습을 회피하지 말고 자신의 참 모습을 발견해야 한다. 이때 진정한 자존감이 우러나온다.

 

아이의 자존감을 높이는 10가지 방법

1. 일관성 있는 규칙을 세운다
아이에겐 안정감을 느낄 수 있는 체계가 필요해요. 모든 규칙은 자녀 모두에게 공평하게 적용해야 하며 제대로 실천하지

못할 벌칙을 정해선 안되요.

2. 평온하고 비폭력적인 가정 분위기를 만든다
아이는 안정감을 느낄수 있어야 신뢰를 배우며 성장해요. 행복한 가정 분위기를 만드세요.

3. 아이에게 늘 의견을 묻는다
의견을 구함으로써 아이의 생각을 높이 평가하고 있음을 보여주세요

4. 함께 지내는 동안 아이에게 온전히 집중한다.
아이는 어른이 다른데 정신을 팔고 있는 것을 금새 알아채요.아이에게 집중하기위해 몇 시간만이라도 TV를 끄고 휴대전화를 멀리하세요.

5. 아이가 열중할 수 있는 일을 찾도록 돕는다.
재미를 느끼는 일을 함으로써 아이가 자신에 대해 파악하고 능력을 개발하게 해주세요.

6. 솔직하게 구체적으로 칭찬한다.
칭찬은 아이가 주목받고 있다고 느끼게 해요.

7. 아이의 별난 행동을 넓은 아량으로 받아준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자신을 평가해요. 부모가 너무 많은 질문을 퍼붓는 산만한 아이가 아니라 열성적이며 호기심이 많은 아이라고 생각하면 자신에 대한 아이의 생각 역시 달라져요.

8. 부정적이거나 상처를 주는 말을 했다면 기꺼이 사과한다.
잘못을 바로잡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아이에게도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가르치세요. 부모라고 해서 완벽해야 하는 것은

아니에요. 오히려 아이는 부모를 통해 실수를 했을때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를 배울수 있어요

9. 아이를 위한 자리에 반드시 참석하세요.
아이와 한 약속은 반드시 지키세요. 학교연극, 운동경기, 피아노 독주회등 중요한 행사를 꼼꼼하게 챙기세요.

10. 사랑이 담긴 쪽지를 남기세요.

 

* 자존감을 높이는 방법

자존감(Self-esteem)은 말 그대로 자신을 존중하고 사랑하는 마음이다. 자신의 능력과 한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전반적인 의견이다. 스스로 가치있는 존재임을 인식하고, 인생의 역경에 맞서 이겨낼 수 있는 자신의 능력을 믿고

자신의 노력에 따라 삶에서 성취를 이뤄낼 수 있다는 일종의 자기 확신이다.

 

자존감이 적당하게 잘 형성된 사람은 자신을 소중히 여기며, 다른 사람과 긍정적인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학교나 직장에서도 자신의 능력에 자신감을 보여 잘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을 지탱해 주는 감정의 심지가 굳건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비난이나 어쩌다 생기는 실수에도 바람 앞의 등잔불처럼 흔들리지 않는다. 인생의 굴곡 앞에서도 유연하게 대처할 수 있다.

 

하지만 자존감이 약한 사람은 자신의 실체와는 별개로 남의 시선을 의식해가며 전전긍긍 살아간다.

자신감이 부족하기 때문에 대인관계가 원만하지 않고 열등감이 심하다. 그렇다고 해서 자기존중감이 높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니다. 하늘을 찌를 듯이 자존감이 너무 높은 것도 사회생활에서 문제가 될 수 있다.

자기를 너무 존중하다보니 자칫 타인을 무시하기 쉽다. 이러한 자존감은 극단에 치우치기보다 적당히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

 

[낮은 자존감의 예] “나를 깊게 알게 되면 실망할 지 몰라.”

 

[높은 자존감의 예] “나는 남들보다 우월하기 때문에 언제나 존중받아야 해.” 또는 나는 언제 어디서나 항상 최고야.”

자존감도 급이 있다!

 

자존감은 상황과 시간이 지남에 따라 바뀌는 경향이 있다. 특히 성장 과정에서 타인이 자신을 어떻게 평가하는지에 따라

건강한 자부심을 가지게 될 수도 있고, 그렇지 못한 상태로 자랄 수 있다.

 

지나치게 자존감이 높을 때

다른 사람보다 자신을 더 높이 평가하는 경우다. 주위 사람보다 자신이 더 뛰어나다고 느낀다. 오만하며, 제멋대로고

특권을 받을 자격이 있다고 생각할 수 있다. 물론 인생을 살면서 어느 정도의 자존감과 자신감은 중요하다.

그러나 지나치면 자만심으로 발전해 남을 배려하는 마음이 결여되고, 남들과 자신을 비교하며 우월감을 느끼게 된다.

문제는 본인이 자존감이 높다는 것을 인정하지 못하고 당연하게 여기거나 자신감으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다는 것이다.

 

지나치게 자존감이 낮을 때

자신의 업적, 아이디어 등을 낮게 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장점보다 약점이나 결함에 초점을 맞추기 때문에 자신보다 남들이 더 능력이 뛰어나다고 생각한다.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이 자신에 대해 어떻게 느끼는지를 기준으로 하여 자신의 현재 행동들을 결정한다.

칭찬이나 긍정적인 반응을 받아들이지 못하는 경우도 있다. 직장이나 학교에서 실패를 두려워해 성공하지 못한다.

시험 점수를 잘 받았거나 칭찬을 받는 것과 같은 좋은 감정도 오래 지속되지 못하고 잠깐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

 

균형잡힌 건강한 자존감

건강하고 바람직한 자존감은 두 극단 사이에 자리잡고 있다.

자존감이 건강하다는 뜻은 자신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볼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를 들면,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자존감은 가까운 사람 등 타인과의 관계, 경험, 생각 등에 의해서 형성된다. 어린 시절에는 부모, 형제자매, 선생님,

종교인 등과 같이 가까운 사람들과의 관계가 자존감 형성에 큰 역할을 한다.

가까운 관계의 사람들로부터 긍정적인 피드백을 받을 경우 자신에 대한 믿음이 높아지고,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치를

적절하게 평가할 수 있는 건강한 자존감을 지닌 사람으로 형성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애정이 결여된 냉혹한 비판,

습관적인 비난, 조롱 등과 부정적인 피드백을 받고 자란 경우 자존감이 결핍된 사람으로 성장할 가능성이 높다.

 

낮은 자존감 높이는 3단계 방법

낮은 자존감을 가지고 있으면 매사에 소극적이 되어, 자신이 존중받아야 할 가치가 충분히 있음에도 점수를 낮게 매겨

저평가하는 경향이 있다. 비록 어린 시절부터 형성된 것이어도 자부심은 자신의 태도와 의지에 따라 얼마든지 건강하게

가꿀 수 있다. 자존감은 인생의 모든 면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지나치게 자존감이 낮다면 끌어 올릴 필요가 있다.

 

자신을 용서하기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실수를 저지르면 자신을 질타하거나 창피해하며 이를 극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실수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저지르는 행동으로, 순간의 잘못이 인생 전체를 좌지우지하지 않는다. 자신을 용서하고 다시는 실수를 저지르지 않도록 노력하는 것이 중요하다.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비관적으로 생각을 하면 그대로 실현될 가능성이 높다. 가령, 프리젠테이션을 앞두고 나는 잘 해내지 못할 거야라는

생각을 가지면 실제로도 이를 망칠 가능성이 높다. 반대로 잘 해낼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가지면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라도 긍정적으로 맞닥뜨릴 수 있다. 만약 실패했더라도 좌절하지 말고 그간의 노력과 목표를 달성했다는데 의의를 두도록 하자.

 

자기 격려하기
자존감이 낮고 비관적인 사람은 내가 시험을 잘 본건 문제가 쉬웠기 때문이다라며 자신의 성과를 인정하지 못하는 경향이 있다. 자신의 능력이 충분하고, 열심히 노력했는데도 불구하고 부정적인 결론에 도달하는 것이다. 자신을 과소평가하고

실수에 예민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항상 자신을 격려하고 용기를 북돋아 주는 자세가 필요하다.

나를 격려하고 칭찬하면 긍정적인 에너지를 받아 힘을 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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