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라의 반역(민수기 16:20-50)
당시 이스라엘 회중에서 지도급에 있는 쟁쟁한 인사들이 결탁하여 반역을 일으켰습니다.
고라는 시기심 때문에 반역을 주도했는데, 그러면 르우벤 지파 사람들은 왜 이 반역에 가담했을까요?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1. 르우벤 지파의 오래 된 불만 때문이었습니다.
르우벤은 야곱의 장남이었습니다. 그래서 르우벤은 자신이 모든 형제들 앞에 있어야 야 했습니다
그런데 메시야가 태어나는 특권도 유다 지파에게 넘어갔고, 따라서 이스라엘 진이 행군할 때도 유다 대에 밀려 뒤따라 가는 것이 늘 못마땅했습니다.
그러니 그들에게는 늘 모세와 아론에 대한 불만이 마음 속 깊은 곳에 감추어져 있었습니다. 그런 불편한 심기에 고라가
불을 질렀고, 르우벤 자손들은 '이 때다' 싶어 모세와 아론에게 반기를 든 것입니다.
2. 고핫 자손과 르우벤 자손은 다같이 회막 남쪽에 진을 치고 있었던 이웃이기 때문이었습니다.
서로 옆에 있으니 작당하기가 좋았던 것 입니다. 사람이 누구와 함께 있고, 누구와 가까이 하며, 누구와 함께 시간을
보내느냐 하는 것이 참으로 중요하다는 진리를 재삼 느끼게됩니다. 사람은 가까이 있는 사람을 닮게 마련입니다.
이것도 바라봄의 법칙입니다.
더군다나 불만으로 가득한 사람들이 같이 모였으니 그 결과는 불을 보듯 뻔하지 않겠습니까?
고라 일당의 반역은 단순히 모세와 아론에 대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불만이요 도전입니다.
오늘날 한국교회 안에 목회자와 당회, 당회와 제직회, 때로는 성도간의 갈등이 있습니다.
그 갈등이 대화와 협력을 통해 해결되지 못하고, 갈등과 분열의 양상으로 갑니다.
그래서 서로 싸우고, 갈라지고, 심지어는 세상 법정에서 시시비비를 가리기도 합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기억해야 할 것은 영적 리더들에 대해서 불순종하거나 대항하는 자리에 서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영적 리더들이 책임감과 사명감을 가지고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사소한 갈등이라도 일어나지 않도록 항상 자신을 돌아보고, 부단한 자기 갱신의 노력을 하는 것은 마땅합니다.
그리고 교회를 바르게 이끌어 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하고 부족한 존재이기에 실수하기도 하고, 넘어지기도 합니다. 때로는 내가 보기에 이해하기 힘든 결정을 하거나 받아들이기 어려운 일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이럴 경우에 과연 어떻게 처신하고, 대처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내 입장에서 판단하거나 생각하지 말고, 공동체 전체의 관점에서 먼저 접근해야 합니다. 어떤 경우는 자기의 자존심이나 이기심을 가지고 반대하거나 거부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못합니다. 자신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하여 자기주장을 굽히지 않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것은 누가 보아도 합당하지 못한 태도입니다. 교회 공동체는 결코 자기주장을 내세우거나, 자기 우월성을 강조하는 곳이 아닙니다. 모든 결정과 행동의 중심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해야 합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기뻐할 수 있는 일이냐가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내가 하는 말과 행동이
공동체의 덕과 질서를 세우는데 합당하냐 입니다. 아무리 내 판단이 옳아도 그것이 교회 공동체의 덕과 질서를 깨뜨린다고 생각하면 절제해야 합니다.
좀 더 지혜로운 방법을 찾아야 합니다. 지혜로운 그리스도인은 비난하는 자가 아니라 창조적인 대안을 가지고 접근해야
합니다. 이런 훈련이 되지 않으면 고라 일당처럼 영적 리더들과 대적하기 쉽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어쩌면 우리들의 삶은 하나님을 대적하고, 영적 리더들의 권위에 순종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길이 참으시고, 회개할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고라와 그의 일당을 타이르며 회개를 촉구합니다. 12-13절 말씀에 “모세가 엘리압의 아들 다단과 아비람을 부르러 사람을 보냈더니 그들이 이르되 우리는 올라가지 않겠노라. 네가 우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서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이려 함이 어찌 작은 일이기에 오히려 스스로 우리 위에 왕이 되려 하느냐.”
이미 마음이 완악해지고 걍퍅해진 그들은 오히려 원망과 비난을 하며 올라가지 않겠다고 버팁니다. 한번 마음이 삐딱해진 사람은 타이르는 말을 들어도 소용이 없습니다. 충고를 들어도 소용이 없고, 설교를 들어도 깨닫지 못합니다.
이미 그 마음이 사탄에게 빼앗겨 버렸기 때문에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고라 일당은 회개의 기회를 오히려 또 다른 대적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그래서 모세가 심히 노했다고 했습니다.
회개의 기회를 주셨는데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으면 하나님이 노하십니다.
하
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잘못에 대해서 즉각적으로 심판하지 않습니다. 계속해서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주십니다. 그런데도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계속 하나님을 대적하면 심판이 임합니다.
모세는 심히 노하며 하나님의 심판이 임할 것을 암시했습니다. “주는 그들의 예물을 돌아보지 마옵소서”(15절).
고라 일당에게 마지막 경고의 기회가 주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온 회중을 회막 문에 모아 놓고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
결국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이 임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회중에게서 떠나라 내가 순식간에 그들을 멸하려 하노라”(21절). 결국 깨닫지 못하고 회개하지 아니한 그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했습니다. 주동했던 고라와 다단과 아비람과 온은 땅이 갈라져 죽습니다.
그들의 모든 재산과 가족들까지 죽임을 당합니다. 또한 고라 일당의 반역에 동참했던 250명의 지도자들은 불에 타죽었습니다. 그리고 반역의 결과 엄청난 하나님의 심판이 있음을 보고도 깨닫지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염병을 내리십니다.
모세의 중보기도를 통해 염병을 그치는 방법을 제시하셔서 모든 백성을 멸하는 것은 막았지만 1만 4천 7백 명이 죽고 말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