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에게 무엇이 필요한가?(창 2:7-15), 김덕선 목사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7절).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것 저것 많은 것으로 채우려고 했지만 무엇인가 중요한 것이 빠져버린 것 같은 허전함이 있습니다. 신앙인의 경우에도 예외가 아닌 것 같습니다. 믿음만 가지고 있으면 진정으로 행복할 줄 알았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는 생각을 자꾸하게 됩니다. 예수님 한 분만으로 만족하기를 원하지만 그게 잘 되지 않습니다. 뭔가 다른 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을 지워 버릴 수 없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무엇이 부족해서 그런 것인가? 그런데 이러한 문제는 세속적인 것과 거룩한 것을 이원화시키기 때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우리의 문화, 직업 일상생활 등은 세속의 영역에 속하고, 교회의 일, 기도, 성경 읽기, 전도 등은 거룩한 영역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거룩한 영역에 속하는 일을 하는 것은 영적인 일이며 가치있는 일이고, 그것 외에는 세속적이며 별로 가치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만일 제가 여러분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한다면 어떻게 대답하시겠습니까? "당신은 직장 생활을 하면서 어떤 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습니까? 대부분의 그리스도인들은 자기가 돈을 벌어서 교회에 헌금하고 복음 사업을 돕는데 쓰기 때문에 그것이 영적인 가치가 있는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또는 직장에서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선교적 사명을 감당할 수 있기 때문에 직장에서 일하는 것이 영적인 것이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직장에서 열심히 일하고 나머지 시간에는 교회를 섬길 수 있기 때문에 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고 대답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이러한 대답의 문제점은 일 그 자체가 하나님께 대하여 별 가치가 없는 것으로 이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일을 하지만 일 그 자체가 영적인 가치를 가지고 있다기 보다는 다른 영적인 것을 위한 수단으로 대치시켜 버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모든 만물들이 아름답고 선하다고 하시면서 우리가 그것들을 즐기고 다스리고 통제하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는 일 그 자체가 영적인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이 일해야 할 독특한 사역의 장소를 정해 주셨습니다. 그곳이 어디인지 정확하게 깨닫는 것이 우리 삶에서의 능력 발휘에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세상에 살고 있는 50억의 사람들 중에서 당신의 가정에서 당신이 맡고 있는 역할은 당신 한 사람 뿐입니다. 오늘 저는 본문을 통해서 인간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부분이 무엇인지 깨닫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1. 인간에게는 반드시 해야 하는 일, 하고 싶은 일이 있어야 합니다(15절).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가장 행복한 처소가 있는 에덴동산으로 친히 이끄셨습니다. 에덴 동산의 실제 위치가 어디에 있는지 우리는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에덴 동산에서 흘러 나온 강들이 세계에서 가장 비옥하다고 알려진 땅 메소포타미아 지역을 적시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이는 에덴 동산이 사람이 살 수 있는 최상의 조건을 갖춘 지상의 낙원임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인류의 조상 아담과 하와가 처음 거주한 에덴 동산은 하나님에 의해 특별히 마련된 행복한 처소였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존재하기 위한 터전이 필요하듯이 하나님께서는 첫사람 아담에게 가장 확실하고 튼튼한 삶의 터전을 주셔서 번영토록 하셨습니다. 이 삶의 터전은 인간의 노력에 의해서 마련된 불안전하고 흔들리는 터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의 주권적인 섭리와 창조에 의하여 주어진 완벽한 터전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담으로 하여금 "에덴 동산에 두셨다"는 것은 외부의 침입이나 내부의 근심이 전혀 없는 절대 평안을 유지하는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 아름답고 평화로운 동산을 아담은 마음껏 거닐며 즐겼을 것입니다. 이러한 평화와 축복의 터전이 바로 하나님과 동행하는 성도들에게 마련된 터전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삶을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게 살아서 영원히 흔들리지 않는 영적 에덴 동산의 평화와 축복을 누리시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이끌러 에덴 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시고"란 표현이 히브리어 원문에 충실한 번역에 의하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시고"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인간은 본래 일하도록 지음을 받은 존재라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에덴 동산은 아무런 일도 하지 않고 그저 먹고 마시면서 놀기만 하는 곳이 아니라 함께 가꾸며 지키며 관리해야 할 삶의 터전임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어디서 무슨 일 을 하든지 간에 그것이 하나님께서 주신 거룩한 과업임을 알고 항상 기쁨과 즐거움으로 그 일에 종사해야 합니다.
1955년 어느 가을 미국 오렌곤주 유게네라는 마을에서의 이야기입니다. 그날 그곳의 신문에는 마을 회관에서 종교영화를 상영한다는 광고가 났습니다. 그 중에 한 농부 부부도 참석했습니다. 그 날의 영화는 한국전쟁 과정에서 생긴 고아들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 고아들을 돌볼 수 있는 손길을 찾는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집회가 끝나자 그 농부 부부는 집으로 돌아가면서 "우리는 가난한 농부야. 우리같은 농부가 무엇을 할 수 있을라고"하는 자탄을 하면서 모든 것을 잊어버렸습니다. 그러나 날이 갈수록 그날의 가슴 아픈 장면들이 선명하게 기억되었습니다.
그들 부부는 기도하였으며 이윽고 농장을 팔고 직접 한국에까지 와서 8명의 혼혈 아들을 양자로 데려오게 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마을 신문에 사진과 함께 기사로 나가자 각곳에서그들을 돕는 편지가 왔고, 어떤 가정에서는 그런 혼혈고아를 양자로 맡겠다는 연락이 왓습니다. 이 농부는 차츰 농토를 팔고 이 일에 전적으로 매달리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 부부는 1만 6천여명의 전쟁 고아를 각 가정에 맺어주게 되었습니다. 이 농부가 그 유명한 홀트 양자회 주인공인 해리 홀트씨입니다."
우리가 무엇을 할 수 있으랴"고 겸손히 시작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께서 가장 위대한 진리를 맡겨주신다는 사실을 발견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일은 결코 돈에 죄우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을 하며, 그 일이 하나님께 영광이 될 것이라고 하는 확신 가운데 시작하는 일에 하나님은 지혜도 돈도 풍성히 주십니다.
우리는 무엇을 하든지 그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어떤 집에 들어가면 "이곳은 주님이 집입니다"라는 무구를 붙여 놓은 것을 보게 되는데 일하는 곳에도 그런 문구를 붙이십시오. 그러한 마음을 지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어떤 일을 하든지 주님을 위해 한다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우리의 실제적인 과제입니다. 게다가 우리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의 생기를 공급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공급해 주시는 힘으로 해야 합니다.
2. 인간에게는 영적인 존재로 만들어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생기가 있어야 합니다(7절).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땅에서 물이 솟아 올라와서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메마른 땅의 표면을 적심으로써(6절) 사람을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계획이 구체화되기 시작했습니다. 하나님은 물에 적셔진 땅의 흙(아파르)을 가지고서 마치 토기장이가 그릇을 빚어 만드는 것과도 같이 사람 모양을 만드셨습니다(사 29:16). 그리고 나서 하나님은 인간의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음으로써 그 흙덩어리로 하여금 살아있는 존재가 되게 하셨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만들어졌다고 하는 것은 결국 사람이 땅과 깊은 관계를 가진 존재요, 땅에 의존해서 살아가는 존재이며, 결국은 흙으로 돌아갈 수 밖에 없는 연약하고 유한한 존재입니다(창3:19). 흙으로 만든 만든 인간의 코에 하나님은 친히 생기를 불어 넣어주셨습니다. 여기서 "생기"란 호흡, 영혼, 기운이라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습니다. "생기"란 바로 하나님
의 생명을 말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원전부터 갖고 계신 생명이며 그리스도를 통해 보여 주신 바로 그 생명입니다.
생명의 근원이 되는 예수님과의 관계는 우리 삶에 진정한 행복을 가져다 줍니다. 우리는 거리의 윈도우에 마네킹을 봅니다. 그러나 그것은 움직이지 못합니다. 왜 그럴까요? 생명이 없기 때문입니다. 생동감이 없이 죽은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생명의 근원되신 예수 그리스도와 연관된 사람은 항상 역경중에도 기쁨으로, 죽음 앞에서도 웃으며, 고통 가운데서도 감사하는 생명이 넘칩니다.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존재이기 때문에 세상의 다른 어떤 것으로도 참된 만족을 누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하나님과 더불어 인격적인 관계를 맺을 때 진정한 행복을 누릴 수 있도록 만들어진 존재입니다. 원종수 박사가 하루는 이렇게 기도했다고 합니다. "하나님 제가 더 많은 사람들을 진료하게 되면 그들의 병은 고침받게 되고, 저는 더 많은 돈을 벌어 하나님 나라에 많은 선교 헌금을 드릴 수 있지 않겠습니까?
그때 주님께서는 그에게 이런 영어로 응답을 하셨다고 합니다. "I don't need result. I need relationship" -나는 그런 결과를 원치 않아 나는 너와의 관계를 원한다.-원종수 박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일이나 사역을 필요로 하시는 것이 아니라 당신과의 관계를 필요로 하신다는 것을 깊이 깨달았다고 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하나님의 생기를 어떻게 공급받을 수 있습니까? 에스겔 선지자는 이스라엘의 절망적인 상태를 마른 뼈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벨론 포로로 사로잡혀 갔습니다. 고국에 남겨졌던 사람들도 죽임을 당하거나 애굽으로 피난해야 했습니다. 이역 만리에서 고통스러운 하루 하루를 보내는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삶의 용기와 희망이 있을리 만무했습니다. 겔37:2절에 보면 이 뼈들이 아주 말랐다고 표현되어 있습니다. 완전한 절망, 회복 불가능의 상태를 가리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서 생기를 얻었습니다. 겔 37:4절에 보면 "너희 마른 뼈들아 여호와의 말씀을 들을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탈골되었던 뼈들입니다. 그런데 말씀을 선포하자 이 뼈들이 연결됩니다.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오르며 가죽이 덮이게 됩니다. 불가능에서 가능으로, 죽음에서 생명으로 변화시키는 사역은 말씀의 능력 외에는 없습니다.
겔 37:8절에 보면 말씀을 접한 뼈들에게 아직 생기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명령에 의해 에스겔이 생기를 불어넣자 뼈들이 생기를 회복하여 큰 군대가 되었습니다. 여기서 생기는 성령을 가리킵니다. 성령을 체험한 자만이 능력있는 열매맺는 신자가 됩니다. 우리가 뜨거운 마음으로 기도할 때 성령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기도를 통해서 회개의 역사가 나타날 때 유쾌한 날이 이르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