탐욕과의 전쟁(민 11:4-9), 김덕선 목사
지난 한 주 동안에 원망과의 전쟁에서 승리하셨습니까? 이번 주는 탐욕과의 전쟁이라는 제목으로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탐욕이란 다른 사람의 것에 대한 지나친 애착을 갖는 것을 말합니다. 성경은 모든 죄의 근원이 욕심에서 비롯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야고보서 1장 14-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
탐욕이란 죄는 남녀노소할 것이 없이 누구에게나 일어나고 있습니다. 특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많은 문제는 제도적인 문제도 있지만 사실은 탐욕으로 인해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탐욕으로 인해 거짓말을 합니다. 탐욕으로 인해 살인을 합니다. 탐욕으로 임해 간음을 합니다. 탐욕으로 인해 도적질을 합니다. 탐욕은 자기의 것에 대한 불만이 남의 것에 대한 질투로 결국 남의 것을 내 것으로 만들려고 하는 욕심으로 발전하게 됩니다.
아합이 나발의 포도원을 빼앗는 것이 그 대표적인 경우입니다(왕상 21:2, 25). 그런데 성경에는 탐욕의 죄에 대해서는 단 한 번도 지나간 적이 없으십니다. 구약에서는 아간은 욕심 때문에(수 7:24-26) 신약에서는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욕심 때문에 죽음을 맞게 됩니다(행 5:3). 탐욕을 갖게 되는 것이 사단의 충동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원망 불평하다가 여호와의 불로 화를 당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시 탐욕을 품고 원망하고 불평하기 시작했습니다. 민수기 11장 4-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스라엘 중에 섞여 사는 무리가 탐욕을 품으매 이스라엘 자선도 다시 울며 가로되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에는 값없이 생선과 외와 수박과 부추와 파와 마늘들을 먹은 것이 생각나거늘 이제는 우리 정력이 쇠약하되 이 만나 외에는 보이는 것이 아무 것도 없도다 하니.”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노예생활을 하면서 살아가는 동안에는 원망 불평하지 않고 그렇게 하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습니다. 그런데 지금 광야에서 하나님의 은혜로 공짜로 만나를 먹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원망 불평을 하였습니다. 자신이 댓가를 치루는 일에는 고생스러워도 당연하게 여기는데 은혜로 공짜로 주시는 것에 대해서는 오히려 원망 불평을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 무엇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고기를 먹고 싶은 충동 때문에 그들은 울고 있습니다. 자신의 욕심 때문에 울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과연 무엇 때문에 울고 있습니까? 혹시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욕심 때문에 울고 있지는 않습니까?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함께 섞여 사는 무리에 동요되어 탐욕을 품고 원망 불평을 하였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언제나 믿음이 없는 사람들에게 동요되어 탐욕을 품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탐욕으로 인하여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하여 하나님은 어떻게 행하셨습니까? 민수기 11장 18-20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 몸을 거룩히 하여 내일 고기 먹기를 기다리라 너희가 울며 이르기를 누가 우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할꼬 애굽에 있을 때가 우리에게 재미있었다 하는 말이 여호와께 들렸으므로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고기를 주어 먹게 하실 것이라 하루나 이틀이나 닷새나 열흘이나 이십일만 먹을 뿐 아니라 코에서 넘쳐서 싫어하기까지 일개월간을 먹게 하시리니 이는 너희가 너희 중에 거하시는 여호와를 멸시하고 그 앞에서 울며 이르기를 우리가 어찌하여 애굽에서 나왔던고 함이라 하라.”
탐욕으로 인하여 원망 불평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그들의 요구대로 엄청난 양의 메추라기를 내려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것들은 그들에게 주신 축복이 아니라 징계였습니다. 시편 106장 15절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저희의 요구한 것을 주셨을지라도 그 영혼을 파리하게 하셨도다.” 이와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다 주셨다고 해서 축복은 아닙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많은 축복을 받았다고 해도 영혼이 파리하게 시들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징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민수기 11장 33-3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고기가 아직 이 사이에 있어 씹히기 전에 여호와께서 백성에게 대하여 진노하사 심히 큰 재앙으로 치셨으므로 그곳 이름을 기브롯 핫다아와라 칭하였으니 탐욕을 낸 백성을 거기 장사함이었더라.” 현대인들이 특별히 경계해야 할 것 가운데 하나가 바로 탐욕, 즉 탐심입니다.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드는 이유 가운데 하나도 탐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십계명 가운데 제 십계명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출애굽기 20장 1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네 이웃의 집을 탐내지 말찌니라 네 이웃의 아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나귀나 무릇 네 이웃의 소유를 탐내지 말찌니라”. 이웃의 집이나 물질이나 사람에 대해서 탐내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후서 2장 3절 말씀을 다같이 읽겠습니다. “저희가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을 가지고 너희로 이를 삼으니 저희 심판은 옛적부터 지체하지 아니하며 저희 멸망은 자지 아니하느니라”. 예수 믿으면 먹지 말라는 것이 많다고 원망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를 들면 제사음식이나 술이나 담배 등을 먹지 말라고 하기 때문에 교회에 안나오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우리 사회는 탐심을 인하여 지은 말이 너무나 팽배해 있습니다. 당장에 자신의 이익 때문에 서로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듭니다. 탐심의 죄는 대단히 무서운 죄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골로새서 3장 5절에 보면 “탐심은 우상숭배”의 죄와 같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탐심의 기준이 무엇입니까?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많이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치 못한 자가 탐심하는 자요 우상숭배하는 자라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자기를 위하여 이 땅에 많이 쌓아두었습니까? 아니면 하늘에 많아 쌓아두었습니까? 만약에 자기를 위하여 땅에 보불을 더 많이 쌓아두었다면 당신은 탐심하는 자입니다.
우리가 가정에서 서로 다투는 아유가 바로 욕심 때문에 비롯된 것인지 아닌지 점검해야 해야 합니다. 우리가 기도하고 있지만 응답받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욕심 때문이 아닌가요? 지금 우리가 울고 속상해 하는 것이 욕심 때문이 아닌가요? 야고보서 4장 1-3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 다툼이 어디로 좇아 나느뇨 너희 지체 중에 싸우는 정욕으로 좇아 난 것이 아니냐 너희가 욕심을 내어도 얻지 못하고 살인하며 시기하여도 능히 취하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우는도다 너희가 얻지 못함은 구하지 아니함이요 구하여도 받지 못함은 정욕으로 쓰려고 잘못 구함이니라.”
디모데전서 6장 18-1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며 동정하는 자가 되게 하라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