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치 않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삼하 21장), 김덕선 목사
하나님의 백성들이 말씀을 따라 신실하게 살면 열악한 환경에서도 축복을 약속하셨고, 정반대로 말씀을 불순종하고 불성실하게 살면 하나님을 믿지 않는 이방인들보다 더 고통스러운 재앙과 심판을 받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 우리는 그와 같은 하나님의 원칙을 재확인하면서 때로 우리가 원치 않는 어려운 문제에 직면하게 될 때 그것을 주변 환경 탓으로만 생각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신실하지 못했던 부분이 무엇인가를 먼저 돌이켜보는 믿음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1. 어려운 문제의 원인을 찾으십시오
이스라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하기에는 너무나 지정학적으로 강대국에 둘러 쌓여 항상 전쟁의 위협과 평야 지대가 많지 못한 열악한 자연 환경 때문에 풍요로운 삶을 기대하기 어려웠습니다. 그러므로 매년 농사를 지을 때마다 하늘에서 비가 내리지 아니하면 흉년을 당하여 온 백성들이 기근의 고통을 맛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므로 기근은 이스라엘 백성들만이 아니라 육신을 가진 모든 사람이 두려워하는 고통 중에 하나였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가나안 사람들은 그것을 면해보려고 그 대안으로 바알이라는 풍요의 신을 만들어 대대로 우상을 숭배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한 지리적인 상황에서 하나님은 유일하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그 한 가운데 심어 놓으시고 그들만이 유일하게 눈에 보이지 아니하시는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되게 하시고 그들을 통해서 우상을 숭배하는 주변 나라들이 여호와 하나님께로 돌이키기를 기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에 대한 신앙만이 아니라 삶의 방식에 있어서도 이방나라 사람들과는 구별된 삶을 살아가야만 하였으며 그 지침서로 하나님이 주신 것이 바로 율법의 말씀입니다.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언약입니다. 언약의 주체는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이며, 그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맹세한 것은 반드시 이행을 하여야 하며, 만일 언약을 하고서도 지키지 아니하면 그것은 신실한 하나님의 이름을 훼손한 것이기 때문에 죽거나 벌을 받게 되었습니다.
오늘 성경의 배경은 다윗이 왕이 된 후 얼마 오래지 아니하여 일어났던 것을 기록한 말씀입니다. 다윗의 집권기간 중 이스라엘 백성들이 제일 무서워하는 기근이 자그만치 삼 년이나 계속되었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러한 경우 그 원인을 자연 환경적인 데서 원인을 찾으려고 합니다. 날이 가물어서, 아니면 병충해가 심해서, 종자를 잘못 파종해서 라고 생각하고 그 것을 바꾸어 기근을 면해보려고 먼저 노력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삼년 동안이나 계속되는 기근의 원인이 자연적인 데만 있다고 생각하지 않고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 그 원인이 어디에 있는가를 생각하면서 계속적으로 기도를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다윗의 기도를 외면하지 않으시고 그 원인이 어디에서 왔는가 하는 근본적인 문제를 깨우쳐 주셨습니다(11절).
다윗의 이러한 모습은 오늘도 우리 성도들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려운 문제를 만나게 될 때 그 문제를 어떻게풀어가야 할지를 교훈하는 좋은 본보기입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 다윗은 비록 그것이 육신의 양식이 문제라고 할지라도 그것을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점검하는 기회로 삼았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삼년 연속의 기근을 놓고 여호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그 원인이 사울 왕이 기브온 사람들에게 잘못한 죄 때문이라고 깨우쳐 주셨습니다.
인간의 생각으로 기근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기도보다는 어디에 가서 양식을 구해오는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것을 믿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기근에 대한 최선의 대안은 양식이 아니라 기도라는 것을 믿었을 것입니다. 이것이 불신자와 다른 점입니다. 견디기 힘든 어려움 속에서 먼저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살펴보고 과연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으며, 그 문제를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과연 신앙적인 자세인가를 살피고, 마음이 아프지만 인내와 소망을 가지고 실천에 옮기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바로 믿음의 자세인 것입니다.
2. 어려운 문제에 대한 대책을 세우십시오.
하나님께서 다윗이 통치하는 이스라엘 나라에 삼년이나 연속으로 기근을 내리신 원인이 다윗의 죄 때문이 아니라 사울의 죄 때문이라는 말씀은 무슨 뜻입니까? 그것을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정복하던 여호수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합니다.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지나고 요단 강을 건너 파죽지세로 가나안 땅을 점령해 들어갈 때 기브온 사람들은 살아남기 위해 간교한 연극을 하였습니다. 그들은 여호수아에 화친을 위한 사절을 보낼 때 다 헤어진 전대와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다 낡은 신을 신고 다 헤어진 옷을 입고 다 마르고 곰팡이 난 떡을 내어 보이면서 자기들은 멀리서 왔으며 자기 백성들을 이스라엘의 노예로 삼고 죽이지 않을 것을 조약해 달라고 매어 달렸습니다.
여호수아는 경솔하게 그들의 외모만을 보고 여호와께 묻지 아니한 채 그들의 요구대로 화친의 언약을 맺었습니다(수 9:14-15). 그러나 삼일이 지난 후에 기브온 사람들의 말이 거짓임이 드러났지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를 한 것이기 때문에 그 조약은 유효한 것이 되었고 기브온 사람들은 죽지 않고 살게 되었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기브온 사람들이 거짓말을 해서 맺은 조약이기 때문에 무효가 되어야 하는데도 신실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조약을 자자손손 지켜야만 하였습니다.
성경에는 자세히 나타나 있지 않으나 그 기브온 자손들이 사울 왕 때에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 함께 살고 있었으며 사울은 그것이 못마땅하여 무죄한 기브온 사람들을 학살한 일이 있었습니다. 어느 민족보다 민족주의가 강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사울의 그와 같은 처사에 대해서 잘못된 것이라고 지적하지 않고 다 좋게 생각하고 다윗 때까지 넘어온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도 그 일에 대해서 침묵해 오시다가 왜 다윗이 왕이 된 후에 지나간 과거사를 다시 되돌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년 이나 거듭 기근의 재앙을 내리신 것일까요?
그것은 사울 왕만의 죄가 아니라 그 시대에 동참하고 있던 다윗을 포함한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일에 방관하고 동참하였기 때문입닞다. 다윗이 왕이 된 이후에도 그것을 여전히 깨닫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다윗조차 비로소 삼년 기근이 연속된 후에야 기도 중에 비로소 그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우리들의 모습이 아닌지요? 분명히 내가 그 사람을 추대하였고 그 현장에 내가 있었고 그 일을 목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일의 결과에 대해서는 아무런 책임도 느끼거나 나누려고 하지 않는 무책임이 공동체를 어렵게 만드는 것입니다. 비록 다윗이 뒤늦게 그 사실을 깨달았지만 다윗은 그것이 왜 내 책임이냐고? 하나님께서 흉년을 내리시려거든 사울 왕 때 내리시지 않고 왜 이제 와서 나에게 그 책임을 물으시는가 라고 원망 불평해야 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그렇게 하지 않고 그것을 시인하고 그 대책을 강구하였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왕이었습니다. 그에게도 누구 못지 않은 강력한 왕권과 더불어 자존심이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이 잘못한 과거사를 청산하기 위해 기브온 사람들을 불러모았습니다. 그리고는 그 잘못된 것을 다윗의 일방적인 생각대로 처리하지 않고 약소민족인 기브온 사람들에게 어떻게 그 한을 풀어 주면 되겠는지 그들의 요구를 물어 보았습니다.
그때 비로소 기브온 사람들은 그동안 마음 속 깊이 품고 있던 그들의 억울함을 드러내 놓았습니다(4절). 그것은 돈으로 해결할 문제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억울한 사람들을 죽인 사울 왕의 자손들에게 이는 이로 눈으로 눈으로 갚아야 할 문제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사울이 생전에 다윗을 그렇게 괴롭혔지만 다윗은 사울 왕과 같이 대하지 아니하고 그의 가문을 지켜왔던 것을 기억합니다. 그런데 기브온 사람들이 그 사울 왕가의 가족들의 생명을 요구하였을 때 다윗은 어떻게 했을까요?
약소 민족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를 묵살하고 사울 왕가를 살려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다윗은 기브온 사람들의 요구대로 사울왕의 자손 일곱명을 기브온 사람들에게 내어 주는 결단을 하였습니다. 기브온 사람들은 그 일곱 명을 처단하였습니다(9절). 그것이 기브온 사람들의 맺은 한은 풀었는지 모르나 그 일곱 사람의 죽음을 목격해야만 하는 사울 왕의 첩이었던 리스바에게는 역시 크나 큰 또 하나의 한이 되고 말았습니다(10절).
그렇다면 왜 그러한 결과가 계속해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게 되었을까요? 그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목숨을 걸고 맹세한 언약을 지키지 않은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택하신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그 책임을 묻지 않고 넘어가신다면 하나님은 신실하심을 무효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무죄한 피를 흘렸다면 역시 그 죄는 피로써만이 갚아지는 것이 곧 대속의 원리인 것입니다. 사울의 후손 일곱명이 죽임을 당함으로 무죄한 피를 흘린 죄에 대한 결과가 어떤 것인가 하는 하나님의 공의를 여실히 드러내주는 것입니다.
3. 어려운 문제의 원인을 발견하고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이스라엘만이 아니라 온 세상 백성들을 포함하고 있으며, 그들을 구원하시려고 이스라엘을 택하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을 통해 이방인들까지 구원하기를 원하셨습니다.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그 이방인들과의 약속을 해 놓고 지키지 않고 약소민족이라고 짓밟고 억울하게 대할 때 하나님은 결코 그것을 용납하지 않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약소국 이스라엘을 택하신 이유도, 예수님이 그 땅에 오신 이유도, 세상에서 별 볼일이 없는 저와 여러분을 택하시고 예수 믿게 하시고 구원하여 잘 살게 하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는 것입니다. 기브온 사람들이 사울의 자손 일곱 사람을 처형하는 것은 역시 잔인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것을 허락하신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책임한 조약과 그것을 사울왕이 지키지 않고 억울한 사람들의 죽음에 대해 그 후손이 그대로 당함으로 생명은 생명으로만이 대속 되어짐을 뜻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한 후 삼 년 동안 비 한 방울 내리지 않다가 그 즉시 하늘에서 비가 내렸습니다(10절). 뿐만 아니라 사람이 고난을 당하여 하나님께 아무리 부르짖어도 응답이 없던 기도가 다시 응답되었습니다. 이처럼 사울 왕 때 죽임을 당한 기브온 사람들의 억울함을 하나님이 외면하지 않으시고 다윗 세대에 와서 그것을 속죄하게 하신 것은 하나님은 결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만 유리하게 하시는 민족 신이 아니라 세계 만민의 하나님이심을 깨우쳐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빈손으로 태어나지만 굶어죽지 않고 살아남는 것은 하나님의 돌보시는 은혜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와 같은 인간들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더욱 믿음으로 살아야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마 6:31-32). 그러나 하나님은 다른 사람이 아닌 그의 택하신 백성들에게 주리고 목마른 기근의 고통을 허락하신 때가 종종 있으셨습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과 오늘 말씀의 주인공 다윗과 이스라엘 백성들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오늘 성경 말씀도 바로 그와 같은 맥락에서 다윗이 저지른 죄가 아니라 사울이 범한 죄였지만 그것은 기브온과 이스라엘 공동체와 맺은 언약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이스라엘 공동체와 개인이 공동적인 책임이 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삼년 동안 계속해서 기근이 찾아왔다는 것은 죽음에 가까운 고난입니다. 그 원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였거나 제사를 드리지 않았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아무런 문제가 없었습니다. 다만 과거에 사울 왕이 히틀러처럼 민족주의에 빠져 변질된 애국심으로 자기 나라 땅에 살고 있는 이방인 기브온 족속을 학살한 것이 결과적으로 자기 백성들을 더 고통에 빠뜨리게 된 것입니다.
결론
오늘 성경에서 삼년 연속된 기근의 원인은 하나님과 사람앞에서 언약을 지키지 않은 죄 때문이었습니다. 만약에 오늘도 그 같은 원칙이 적용되어진다면 해마다 기근이 임해야 하고, 조상의 죄로 인해 후손된 우리들이 대속의 죽음을 죽어야 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들에게 그와 같은 일들이 일어나지 않는 까닭은 과연 무엇 때문일까요?
하나님이 그 원칙을 위에게 적용하신다면 단 한사람도 무사할 사람이 없고 평생 고통을 겪으며 살아도 그 빚을 다 갚을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기근보다 더 두려운 문제는 곧 죽음과 심판입니다. 그에 대한 대안이 우리에게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한 우리를 위해 예수님이 최선의 대안이 되어주셔서 우리가 살게 되었고, 구원받았습니다(사 53:5).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그렇게 되지 않고 평화롭게 살아가는 것은 바로 우리가 죄로 말미암아 당하게 되는 고통을 우리가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죄를 대속하기 위해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으심 때문에 우리가 이처럼 평화롭게 살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아무렇게나 살아도 상관이 없습니까? 아닙니다. 그리스도를 닮아 공동체 속에서 대속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좋은 일에는 함께 라고 말하지만 책임을 져야 하는 일에 대해서는 내 책임이 아니라고 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최소한 우리라고 말하는 곳에 영광의 몫만이 아니라 고통에 대한 책임도 분담해야 함을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커지고 강해질수록 교만하지 말고 하나님과의 관계는 물론 인간과의 관계, 심지어 불신자와의 관계에서도 신실하게 지켜 신실하신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세계 역사를 보십시오. 그러한 책임 의식을 가지고 사는 민족을 강대국이 되게 하시고, 그러한 책임의식을 가지고 사는 사람을 성공하는 지도자가 되게 하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