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택함 받았다는 사실로 인하여(살전 1:4), 김덕선 목사

liefd 2024. 5. 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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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사랑하심을 받은 형제들아 너희를 택하심을 아노라 이는 우리 복음이 말로만 너희에게 이른 것이 아니라 오직 능력과 성령과 큰 확신으로 된 것이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너희를 위하여 어떠한 사람이 된 것은 너희 아는 바와 같으니라."

 

여러 환난과 시험이 오고 비록 병중에 있을지라도 구원만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나같은 사람을 택했다는 것입니다. ‘나같은 죄인을 살리셨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설 수 없는 죄인중에 죄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를 선택하신 것은 사랑 때문입니다. 다른 이유나 조건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사랑 받는 자로 선택하셨습니다.

 

선택받았다는 사실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서 가족과 이웃으로부터 배척 받고 손가락질을 당할 때 바울은 그들을 향해 세상은 너를 버렸지만 너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하나님이 선택한 자임을 강조합니다. 이 세상 가운데서 어떤 상황에서도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는 힘은 내가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자요

하나님 앞에 선택받은 자라는 사실입니다.

 

그 선택에 대해 에베소서 14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내가 예수 믿게 된 것은 하나님은 창세 전에 예정하고 선택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만이 아는 비밀입니다. 그런데 우리도 이 비밀을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전도입니다. 우리가 전도할 때 하나님의 선택이 드러나게 돼 있습니다.

 

우리가 선택 받았는지 받지 않았는지 아는 방법이 있습니다. 내가 이 자리에 있는 것이 선택받은 것입니다. 우리가 전도를 통해 복음을 듣고 예수님을 믿게 된 것이 바로 선택의 결과입니다.

 

바울이 음란하고 타락한 도시, 소망이 없어 보이는 고린도에서 목회를 한 이유가 있습니다. 밤에 주께서 환상중에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고린도에서 2년동안 목회를 한 것입니다. 엘리야는 는 바알에게 무릎 꿇지 않은 7천명의 택한 백성이 남아 있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담대히 전도하는 것입니다. 이미 택한 자는 전도를 통해 구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함께 하시고 지금 역사한다는 사실을 복음 전하는 자는 압니다. 왜냐하면 복음을 전할 때 큰 능력과 확신으로 성령이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본문으로 똑같은 메시지를 전해도 성령이 기름부으시면 다른 현상이 나타납니다. 은혜가 쏟아지고 변화가 일어납니다. 설교를 하는 사람뿐만 아니라 듣는 사람 심령에도 큰 확신으로 역사합니다. 성령님은 말씀 전하는자와 받는자 속에서 내적인 확신으로 동시에 역사합니다.

 

6절을 보십시오. "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지금 형편은 예수 믿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도저히 은혜 받을 수 없을 것 같은데 자신도 예상치 못했던 은혜와 기쁨이 있고 말씀이 들리는 것은 성령의 역사입니다.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역사해야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합니다.

 

성령이 역사하실 때 그 말씀을 성령의 검이라고 합니다.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으심이 있을 때 성령의 검인 말씀은 우리의 생각과 마음과 골수를 찔러 쪼개서 마음의 생각을 드러내고 회개케하고 변화시킵니다.

 

말씀이 없는 성령의 역사는 신비주의와 열광주의에 빠집니다. 이는 마치 전쟁터에서 무기 없이 소리만 지르는 것과 똑같습니다. 반면에 말씀만 있고 성령이 없는 것은 종이 호랑이입니다. 성령이 역사하지 않으면 단순한 윤리이고 지식일 뿐입니다. 그것은 율법에 그칠 수 밖에 없습니다.

 

바울이 감사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가 고린도에서 이 편지를 썼을 때는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지 1년이 채 되지 않았을 때입니다. 그런데 1년도 되지 않은 이들이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어 있습니다. 이에 바울은 감사합니다. 6,7절을 보십시오."또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도를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는지라."

 

오랫 동안 신앙생활을 한 사람이 본이 되는 것은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막 예수 믿기 시작한 사람이 본을 보일 때 먼저 믿은 우리를 부끄럽게하는 것입니다. 고린도 후서 81, 2절에는 이 마게도냐 교회가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된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형제들아 하나님께서 마게도냐 교회들에게 주신 은혜를 우리가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환난의 많은 시련 가운데서 저희 넘치는 기쁨과 극한 가난이 저희로 풍성한 연보를 넘치도록 하게 하였느니라."

 

이 말씀은 가장 부자교회였던 고린도교회를 책망하기위해 주신 말씀입니다. 가장 부요하고 은혜를 많이 받은 교회임에도 하나님앞에 드리는데 인색한 이 교회를 부끄럽게 하기위해 마게도냐 교회를 봐라 본이 되고 있지 않느냐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특별히 본이 되는 이유중 하나는 많은 환난 가운데도 큰 기쁨으로 말씀을 받은 것입니다. 본이 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다. 신앙생활을 잘하는 비결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도 많이 해야 합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좋은 그리스도인을 만나는 것입니다. 우리 인격의 성숙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제자 훈련 방법은 성경공부가 아니었습니다. 제자도는 공부가 아닙니다. 삶속에서 본을 보임으로 가르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 만나는 사람이 중요합니다. 새벽기도하는 사람을 처음 만나면 새벽기도를 시작합니다. 기도원 자주 가는 사람 만나면 기도원에 자주 가게 됩니다. 선교사를 만나면 선교사를 따라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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