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큰 구원(히 2:1-18), 김덕선 목사

liefd 2024. 5. 31. 0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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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신앙 생활 할 때 특별히 조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함이 마땅하니라라. 우리는 들은 말씀에서 벗어나지 않도록 그것을 마음에 깊이 간직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순간 그대로 실천하겠다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들은 모든 말씀을 다 알고 있다고 착각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알고 있는 말씀을 한가지씩 실천해야 합니다. 우리가 흔히 빠지기 쉬운 오류는 알고 있는 것하고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우리가 많은 것을 알고 있다 하더라도 그대로 하지 않는다면 흘러 떠내려 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오늘 본문 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이 견고하게 되어 모든 범죄함과 순종하지 아니함이 공정한 보응을 받았거든. 하나님께서 천사들을 통하여 주신 말씀도 권위가 있어서, 그 말씀을 따라 살지 않거나 순종하지 않는 사람은 모두 공정한 처벌을 받았습니다.

 

오늘 본문 3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피하리요 이 구원은 처음에 주로 말씀하신 바요 들은 자들이 우리에게 확증한 바니”. 하물며 이같이 큰 구원을 소홀히 여긴다면 어떻게 형벌을 피할 수 있겠습니까? 이 구원에 대해 처음 말씀하신 분이 바로 주님이십니다. 그 말씀을 들은 사람이 이것이 진실이라고 우리에게 증거해 주었습니다.

 

오늘 본문 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도 표적들과 기사들과 여러 가지 능력과 및 자기 뜻을 따라 성령의 나눠주신 것으로써 저희와 함께 증거하셨느니라”. 하나님께서도 놀라운 기적과 여러 가지 능력과 자기의 뜻을 따라 성령이 나누어주시는 것으로써 그들과 함께 증언하셨느니라." 구원은 단순한 공식이나 이론의 차원이 아니라 구체적인 사건입니다.

 

과연 우리는 구원의 사건을 대단히 놀라운 사건으로 여기고 있습니까? 과거에 처음 주님 만났을 때 내 생애의 최고의 사건으로 여겼던 그 가치가 아직도 바뀌지 않고 그대로 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본문 3절은 이같이 큰구원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은 것처럼 여기며 살아가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분명하게 꼬집고 있습니다. 또한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긴다면 어떻게 큰 형벌을 피할 수 있겠냐?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우리는 그동안 어떻게 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는가?에 관심을 많이 쏟아왔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의 죄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누구든지 이 사실을 믿으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간주해 왔습니다. 우리의 한계는 어떤 목표에 도달하기까지는 열심히 하는데 일단 그 목표에 도달하면 다 됐다고 생각하는 경향의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일단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면 이제는 신자로서 할 일은 거의 다 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사회의 커다란 병폐 가운데 하나는 방법론에 너무 치중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자녀들에게 어떻게 공부해야 하는지에 대래서는 많은 강조를 해 왔습니다. 그런데 공부를 왜 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별로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공부를 많이 해서 어떻게 섬겨야 하는 것에 대해서는 거의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도 이와 비슷한 현상이 그대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인간을 왜 구원하시지 않으시면 안되었는지 그 이유를 바로 깨달아야 합니다. 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시지 않으면 안되었던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아무 죄가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그렇게 많은 멸시와 고난을 겪어야만 하셨는지 그 이유를 알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목적인 과연 무엇인지 알고 계십니까? 구원의 사건이 지금 현재의 생활에 계속해서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히브리서 1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께서 어느 때에 천사 중 누구에게 네가 내 아들이라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 하셨으며 또 다시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하셨느냐”. 이 말씀은 얼핏보면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에 한 천사에게 이렇게 말씀하신 것처럼 오해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하셨느냐라는 표현은 그렇게 하신 적이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들 중에 어느 누구에게도 너는 내 아들이다 오늘날 내가 너를 낳았다이렇게 말씀하신 적이 없었습니다. 또한 이렇게 말씀하시지도 않았습니다. “나는 그에게 아버지가 되고 그는 내게 아들이 되리라

 

히브리서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또 그가 맏아들을 이끌어 세상에 다시 들어오게 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든 천사들은 그에게 경배할지어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천사들은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를 섬기라고 보낸 존재입니다. 또한 천사들은 앞으로 구원받을 사람들을 섬기라고 하나님이 보내신 일꾼에 불과합니다. 히브리서 114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모든 천사들은 섬기는 영으로서 구원 받을 상속자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냐

 

하나님께서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이 통치하도록 맡기지 않으셨습니다. 오늘 본문 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말한 바 장차 올 세상을 천사들에게 복종하게 하심이 아니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누구에게 그 통치를 맡기셨을까요? 오늘 본문 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물을 그 발 아래에 복종하게 하셨은즉 복종하지 않은 것이 하나도 없어야 하겠으나 지금 우리가 만물이 아직 그에게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고." 하나님께서는 모든 만물을 예수님의 발 아래 복종케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10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이 그를 위하고 또한 그로  말미암은 이가 많은 아들들을 이끌어 영광에 들어가게 하시는 일에 그들의  구원의 창시자를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심이 합당하도다”. 만물을 창조하시고 만물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이 많은 믿음의 자녀들이 그분과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길 바라셨습니다.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고난을 통해서 예수님을 완전한 구원자가 되게 하셨습니다.

 

오늘 본문 9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그러나 우리는 지금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예수님은 잠시동안 천사들보다 낮아지셨지만 고난당하시고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의 관을 쓰셨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신 것입니다.

 

오늘 본문 11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거룩하게 하시는 이와 거룩하게 함을 입은 자들이 다 한 근원에서 난지라 그러므로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아니하시고“. 사람들을 거룩케 하신 예수님과 거룩하게 된 사람은 모두 한 하나님에서 나왔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그들을 형제라 부르는 것을 조금도 부끄러워하시지 않았습니다.

 

오늘 본문 12-13절에서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르시되 내가 주의 이름을 내 형제들에게 선포하고 내가 주를 교회 중에서 찬송하리라 하셨으며 또 다시 내가 그를 의지하리라 하시고 또 다시 볼지어다 나와 및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자녀라 하셨으니”. 예수님께서는 교회에서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고 찬양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자들이 교회에 나와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를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신자가 하나님을 의지하는 삶이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또한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확인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런데 모든 만물을 복종케 하시는 예수님께서 왜 십자가의 죽음을 당하셔야만 하셨을까요? 그 이유가 오늘 본문 14-15절의 말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자녀들은 혈과 육에 속하였으매 그도 또한 같은 모양으로 혈과 육을 함께 지니심은 죽음을 통하여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멸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한평생 매여 종노릇 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 하심이니

 

인간의 죄를 담당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이 세상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인간의 몸을 입고 오셔서 사람들이 겪는 것과 똑 같은 것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통해서 죽음의 권세를 잡은 마귀를 멸망시키시고 일생동안 죽음데 대한 두려움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들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오늘 본문 1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는 확실히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은 천사들을 도우려 오신 것이 아니라 아브라함의 자손들을 도우려고 오셨습니다. 여기서 아브라함의 자손이란 구원받은 자들을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99절 다갘이 읽겠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 갈라디아서 32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그리스도께 속한 자면 곧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약속대로 유업을 이을 자니라.

 

오늘 본문 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느니라”. 예수님은 몸소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기 때문에 시험당하는 사람들을 넉넉히 도우실 수 있습니다. 구원의 사건은 죄사함의 구원뿐만 아니라 환경의 구원까지 반드시 연결되어 있습니다. 앞으로 이같은 구원의 놀라운 사건이 계속해서 우리의 생활에 절대적인 영향을 끼치는 복이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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