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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세계관, 이건창

liefd 2024. 6. 8. 2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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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세계관은 성경적 세계관 또는 가치관이라고 말할 수 있다.

 

1장 생각의 틀 깨기

 

삶의 모든 영역의 기초가 어디에 놓여 있느냐는 곧 그 사람의 가치관 또는 세계관에 따라 달라집니다. 기독교세계관에서는 하나님의 생각을 대적하는 견고한 진이나 그 어떤 이론도 용납하지 않습니다(고후 10:4-5).

생각이 변화되면 생활이 달라진다.

 

죄 사함의 선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하여 이루고자 하시는 위대한 일을 위한 시작에 불과합니다.

성숙은 히브리서 62절의 표현을 빌리면 완전을 의미합니다. 이러한 성숙은 당연이 그에 합당한 생각과 가치관을 요구합니다. 바로 이것이 기독교세게관입니다.

 

2장 세계관의 변화는 참된 예배로부터(4:23)

예배에 대한 고정 관념을 깨라. 올바른 예배 없는 사역은 위험하다.

사실 기독교세계관의 출발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입니다.

 

우리가 매주 드리는 주일예배의 의미가 일 주일동안 주님의 말씀대로 충실하게 살지 못한 것에 대한 회개와 위로를 받는 차원에서 벗어나지 못합니다. 결국은 주일예배가 자기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사람들이 모여 기도하고 찬송하는 모임이라는 것으로 받아들여집니다.

 

예배는 바로 하나님의 구속을 입은 자들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이 받으실 존귀와 영광을 마땅히 돌려드리는 아주 고결한 행위입니다(4;8-11, 5:11-14).

 

예배에 있어서 더 중요한 것은 내 생각의 모든 부분, 그로 말미암은 나의 생업과 관게된 모든 일을 일주일 동안 하나님의 말씀에 적용해서 그 결과로 맺은 아름다운 열매들을 영적인 바구니에 가득 담아서 다시 주님께 드리는 영적행위가 예배라는 사실을 개달아야 합니다. 이런 예배가 반복될 때 예배드림이 기쁨이 됩니다.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유일한 대제사장이시라면, 예배는 대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들이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유일한 화답입니다. 예배 안에 우리의 모든 삶이 응축되어 있습니다.

고든 맥도날드 목사, 내면세계의 질서와 영적 성장, 좇기는 자는 자신이 마음의 주인인데 반해, 부르심을 입은 사람은 마음 가운데 하나님이 거하십니다.

 

올바른 예배 없는 사역은 위험하다. 이사야 6장에 스랍은 여섯 개의 날개를 갖고 있는데 네 개는 섬기는데, 에배드리는 데 사용하고 있습니다. 두 개만 사역을 위해 사용하고 있습니다.

 

사무엘상 13장에 사울의 잘못된 예배행위로 인한 비극적인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적과 대치되는 상황에서 사무엘만을 기디리다가는 더 위험한 상황에 처할 것 같아서 대신 번제를 드렸습니다. 이는 예배의 중요한 근본을 간과한 것입니다.

 

사울은 예배를 드리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했지만 에배는 드리는 것에만 의미가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배는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합니다. 예배는 인간적으로 볼 때는 따분하기 짝이 없습니다. 그 시간에 오히려 다른 일을 하는 것이 더 효과적이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예배는 하나님에 대한 순종의 표현입니다.

 

3장 세계관이 변화된 그리스도인(3:10)

 

새로운 피조물이란 바로 지식에까지 새롭게 하심을 받은 자들을 의미합니다(1:8, 3:10). 지식이 변화되었다고 하는 것은 세계관이 변했다는 것을 지칭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다는 선언을 받은 것이지, 우리의 과거 모든 성격과 습관이 순식간에 변하여 그야말로 완벽한 영국신사니 중세기사처럼 되었다는 것은 아닙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순간 이제까지 영적거지로서 살았던 우리는 순식간에 하나님의 자녀라는 왕자의 신분을 선언 받게 됩니다(1:12, 고후 5:17)

진정한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나는 무엇을 변화시키고 있는가?

 

이원론적인 삶, 또 다른 함정

그리스도인의 삶은 대개 교회생활, 가정생활, 그리고 직장생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세 가지가 균형이 잡혀 있어야 합니다.

학문의 주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창세전부터 계시고 성부 하나님과 함께 직접 만물을 창조하고 모든 만물을 붙들고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엘리 가정에 비극이 일어난 이유는 하나님께 먼저 드려야 할 제물에 손을 댔다는 사실입니다. 둘째, 자기 아들들을 하나님보다 더 중히 여겼다는 것입니다.

 

세계관이 변화된다는 것

골로새서 310-11절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사실은 새 사람은 옛사람과는 달리 지식 곧 생각이 변화되었다는 것입니다. 말하자면 세계관이 변화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임명받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이제 합당한 생활을 영위하려는 의지와 노력이 항상 수반되어야 할 것이다.

 

예수님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는 자를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이유는 그 사람이 과실을 맺을 수 있는 가망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의 계명을 가지고 지키기 위해서 선행되어야 할 것은 우리가 참 포도나무이신 예수님께 붙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순종을 통하여 그분께 붙어 있을 수 있습니다.

 

4장 세계관에 대한 다섯 가지 질문

 

질문 1, 참된 최고의 실재는 무엇인가? 돈이냐 하나님이냐?

혼합 신앙의 첫 번째 특징은 항상 나 중심으로 모든 것을 생각하도록 강력히 권고한다는 것입니다.

 

질문 2, 인간은 어떻게 생겼났으며 그 존재 의의는 무엇인가?

우리가 존재하는 의의는 하나님과의 진정한 관계 회복에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하나님의 방법으로만 가능합니다. 이 복음의 핵심이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 회복이야말로 우리 인간이 이 땅에 존재하는 최고의 의의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질문 3. 죽음 뒤에 어떻게 됩니까?

한번 죽는 것은 사람에게 정하신 것이요 그 후에는 심판이 있으리니(9:27). 그러나 여기에는 예외가 있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자는 영생을 이르고 심판에 이르지 않습니다.

죽음을 당당하게인정하고 죽음 뒤의 결과까지도 분명히 알고 삶에 최선을 다하는 것이야 말로 그리스도인의 특권이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질문 4. 도덕은 어디에서 비롯된 것인가?

어떻게 시대마다 지역마다 민족마다 공통적인 도덕 기준이 형성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이 도덕이 절대적인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나왔기 때문입니다.

 

질문 5.인간역사의 의의는 무엇인가?

인간의 역사는 우연의 연속과 필연의 연속 중에 어느 것에 속할까요? 인간의 역사 또한 하나님의 손 안에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대하 29:10-13)

역사는 필연의 연속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역사의 수레바퀴를 돌리심으로 지속되는 것입니다.

 

5장 세속 문화와 기독교세계관

 

세속문화와 기독교세계관은 서로 상충관계에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에 거하였다고 하는 것은 아브라함이 그 땅에서 살기 힘들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했음을 의미합니다(13:12). 반면에 롯은 평지 성읍들에 머무르며 그것도 모자라 그의 장막을 옮겨 소돔까지 이르렀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것과는 관계없이 자기의 소욕을 따라 움직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관심사는 어직 아브라함이었습니다.

 

네덜란드의 철학자 하우쯔바르트는 경제주의, 과학주의, 기술주의가 20세기의 3대 우상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는 모두 눈에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공통점입니다.

 

6장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

 

한 사람의 세상을 보는 창, 가치, 세계관은 환경과 문화에 뿌리를 두고 있다. 바나바와 바울의 다툼은 세계관이 첨예하게 대립된 것입니다(15:39). 또한 기독교 세계관은 우리가 정신 프로그램으로 가지고 있는 문화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다시 말해 내가 갖고 있는 환경과 자라온 문화환경으로 인하여 남들과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축복으로 인식하도록 깨닫게 한다는 것입니다.

 

남들과 다른 시간으로 사물을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은 다른 지체들과 함께 동역할 수 있도록 동기부여를 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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