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발람의 예언(민수기 24장), 김덕선 목사

liefd 2024. 1. 21. 21: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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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압에서 발람은 발락의 사주를 받아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세 번이나 산꼭대기에 섰습니다.

그러나 그의 저주는 바뀌어 축복이 되고 말았습니다.발람은 하나님으로부터 네 가지의 말씀을 받습니다. 이 네 가지 말씀은 발람이 스스로 말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넣어준 말씀이었기 때문에 신탁(oracle)이라고 합니다.

세 가지의 신탁은 저주가 도리어 축복으로 바뀐 신탁이었으며, 네 번째 신탁은 오늘 우리가 중점적으로 생각하고자 하는 야곱의 별에 관한 예언의 말씀입니다.

 

1. 세 가지 신탁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발람이 앞서 말한 세 가지 신탁은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처음에 발람은 민수기 22 41절의 말씀처럼 바알의 산당에 올라가서 일곱 제단을 쌓고, 각 제단마다 수송아지와 수양 한 마리씩을 번제로 태워서 제사를 드렸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을 저주하려고 섰을 때 하나님께서 발람의 입에 도리어 축복의 말씀을 넣어주셨습니다.

민수기 23 8절에서 발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이 저주치 않으신 자를 내 어찌 저주하며 여호와께서 꾸짖지 않으신 자를 내 어찌 꾸짖을꼬이 말씀은 택한 백성을 보호(protection)하시는 하나님의 축복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에게는 아무나 저주를 할 수 없습니다. 점쟁이나 술사가 와서 아무리 우리에게 저주를 받으라고 해도 저주는 도리어 저에게 돌아갈 뿐입니다.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은 저주할 수 없고,

하나님께서 주신 축복은 결코 없어지지 않습니다. 따라서 하나님께서 축복하신 백성은 하나님 왕국의 특별한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첫 번째 신탁의 내용이었습니다.

 

두 번째로 발람은 민수기 23 14절 말씀처럼 비스가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수양 일곱 마리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서도 발람의 노래는 저주에서

축복으로 바뀌었습니다. “내가 축복의 명을 받았으니 그가 하신 축복을 내가 돌이킬 수 없도다( 23:20).”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면 어떤 복술자도 돌이킬 수가 없다는 말입니다. 이어서 21절에는여호와는 야곱의 허물을 보지

아니하시며 이스라엘의 패역을 보지 아니하시는도다라고 기록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허물과 패역을 보지 않으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의 허물과 패역도 보지 않으십니다.

왜 그러실까요? 우리의 허물과 패역은 이미 십자가 위의 예수님께서 모두 담당하셨기 때문입니다.

발람은 계속해서 말합니다. “여호와 그의 하나님이 그와 함께 계시니 왕을 부르는 소리가 그 중에 있도다... 야곱을 해할

사술이 없고 이스라엘을 해할 복술이 없도다( 23:21, 23).”

이와 같이 발람이 받은 두 번째 신탁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임재하셨다(presence of God)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가운데 임재하신 백성들은 허물과 패역이 있더라도 사함받은 백성이요, 어떤 사술과 복술도 해칠 수 없는 백성입니다.

 

세 번째는 발람은 광야가 내려다보이는 브올산 꼭대기에 올라갔습니다.

그 곳에서도 역시 일곱 단을 쌓고 수송아지와 수양 일곱 마리씩을 번제로 드렸습니다. 이번에도 역시 하나님께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신탁을 내리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으니 그 힘이 들소와 같도다.

그 적국을 삼키고 그들의 뼈를 꺾으며 화살로 쏘아 꿰뚫으리로다( 24:8).”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power)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함께 하시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패배할 수 없으며 반드시 승리한다는 의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우리와 성정이 똑같은 백성들입니다. 그들에게도 원죄가 있고, 갖가지 자범죄로 찌들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영원무궁토록 사랑하셔서 보호(protection)와 임재(presence)와 능력(power)

세 가지 축복을 주신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를 구주로 믿게 된 성도 여러분들은 비록

패역과 허물이 많다할지라도 하나님께서 보호와 임재와 능력의 축복으로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네 번째 신탁

이처럼 세 번이나 이스라엘을 저주하려다가 실패한 모압왕 발락은 포기를 합니다. 발람도 약속받은 명예와 재물을 포기하고 돌아가려 할 때 하나님께서 네 번째 신탁의 말씀을 주십니다. 네 번째 신탁은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 24 15절로부터 시작됩니다.

먼저 16절에서 발람은 자신을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가 말하며 지극히 높으신 자의 지식을 아는 자, 전능자의 이상을 보는 자, 엎드려서 눈을 뜬 자가 말하기를” 발람의 자기 소개는 자화자찬격인 교만한 소개입니다. 그러나 이 교만한 거짓 선지자의 입술에서 참으로 아름다운 복음의 말씀이 선포됩니다. “내가 그를 보아도 이때의 일이 아니며 내가 그를 바라보아도 가까운 일이 아니로다.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나서 모압을 이 편에서 저 편까지 쳐서 파하고 또 소동하는 자식들을 다 멸하리로다( 24:17

발람이 선포한 복음은 자기 시대의 일이 아니라 먼 장래에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임을 알려줍니다. 먼 장래에 한 별이 야곱에게서 나오며 한 홀이 이스라엘에게서 일어날 것입니다. (scepter)은 왕이 가지고 있는 지팡이입니다. 이것은 왕권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왕권을 가진 존재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 왕권을 가진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이 모압과 에돔과 아말렉과 겐 족속을 모두 정복하고 이길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역사적으로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다윗왕을 가리킵니다. 다윗왕은 발람이 예언한 대로 이방인들을 모두 쳐서 점령했습니다. 모압과 에돔, 아말렉과 겐족속을 정복하고 이스라엘 영토를 남방, 북방으로 가장 크게 확장한 왕이 다윗입니다. 그러나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은 역사적인 의미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이 별은 예언적이고 영적인 의미를 갖습니다. 다윗은 그림자요, 예표일 뿐이며 실체는 바로 예수 그리스도인 것입니다. “나 예수는 교회들을 위하여 내 사자를 보내어 이것들을 너희에게 증거하게 하였노라. 나는 다윗의 뿌리요 자손이니 곧 광명한 새벽별이라( 22:16)”

 

3.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의 의미

그렇다면 야곱에게서 나오는 별,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이 별은 도대체 무슨 의미를 가지고 있을까요?

첫째로 별은 왕권을 의미합니다. 별과 홀은 같은 본문에서 동어반복적으로 쓰이고 있습니다. 19절을 보면주권자가 야곱에게서 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별은 왕을 의미합니다. 오늘날에도 별은 국가의 최고 통수권자를 의미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야곱에게서 나온 별이라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통치권자이며 만왕의 왕이 되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수님께서는 오늘도 왕으로서 우리를 다스리고 통치하시며 복 줄 사람에게 복을 주시고 벌 줄 사람에게 벌을 주십니다. 우리는 왕 되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

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둘째로 별은 광명을 의미합니다. 빛이 없는 별은 별이 아닙니다. 다니엘서 12 3절에도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한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고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도 예수 그리스도는 세상의 빛이라고 했습니다. “참 빛 곧 세상에 와서 각 사람에게 비취는 빛이 있었나니 그가 세상에 계셨으며 세상은 그로 말미암아 지은바 되었으되 세상이 그를 알지 못하였고( 1:9-10)” 그러나 사람들은 자기를 지으신 창조자를 알지 못했습니다. 이 세상은 어둠이기 때문입니다.  

이 어두운 세상을 홀로 비추며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주는 분은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류 역사에 대한 참 지식을 주십니다

셋째로 별은 인도자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밤중에 나가서 어두컴컴한 하늘을 봐도 북쪽과 남쪽을 구분할 수 있는 것은 북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동방박사들도 별의 인도를 받고 예수님께서 탄생하신 베들레헴에 도착했습니다. 이처럼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인도자가 되셔서 우리의 삶을 인도하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쁘고 자발적인 마음으로 예수님의 인도를 따라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따라서 살다보면 그 곳에서 자유와 생명과 평안과 영생과 부활을 발견하게 됩니다.

넷째로 별은 인간의 삶에 끼치는 영향력을 의미합니다. 흔히 점성술가들은 별의 움직임이 인간의 운명과 아주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고 믿으며 별점을 쳤습니다. 그릇된 점성술은 성경의 말씀과 위배되지만, 별이 하나님의 주관하에 있기 때문에 별의 움직임에 따라 인간의 때에 변화와 영향이 온다는 것을 성경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욥기 38 31-32절을 보면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 되게 하겠느냐? 삼성의 띠를 풀겠느냐? 네가 열두 궁성을 때를 따라 이끌어 내겠느냐? 북두성과 그 속한 별들을 인도하겠느냐?”고 기록되었습니다. 묘성(Pleiades)을 눈으로 보면 별이 일곱 개쯤 모여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망원경을 사용하면 별이 백 개 이상이 모여서 집합체를 이루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욥은 하나님의 말씀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네가 묘성을 매어 떨기되게 하겠느냐?” 떨기(cluster) 란 그룹이죠. 별이 그룹을 형성하고 있다는 말인데, 눈으로 확인하면 대여섯 개로만 보이는 이 묘성이 그룹별임을 욥은 어떻게 알 수 있었을까요?

 오리온 좌는 사냥꾼의 모습을 하고 있는데, 이 오리온 좌의 허리에 세 개의 빛나는 별이 바로 삼성입니다. 삼성은 오리온 좌의 띠를 이루고 있습니다. 욥은 이를 보며삼성의 띠를 풀겠느냐?”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욥이 그 시대에 천문학자들이 이야기하는 사실을 알 수 있었을까요? 한편 묘성은 봄에 발견할 수 있는 별로서 사람들은 묘성이 뜨면 만물이 소생하는 영향력을 갖게 되고, 삼성이 뜨면 겨울이 오기 때문에 만물의 휴식기가 왔다는 사실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별이 인간만사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런 사상이 성경에도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이 참으로 하나님의 영감을 받은 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별과 같이 인간 사회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께서 인간 사회에 들어오시면 모든 것이 좋아집니다. 기독교 신앙은 인류 문명의 기초이며, 인류 문화의 기초입니다. 예수님께서 들어오시면 어떤 사회라도, 어떤 가정이라도 반드시 좋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 대한민국이 잘 살게 된 것도 예수님을 모

셨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훌륭한 지도자가 있거나 민족성이 좋아서 이처럼 잘 살게

된 것이 아닙니다. 오직 우리 백성들이 예수님을 믿기로 결심하고 교회를 세우며 아침

마다 새벽기도를 하니 하나님께서 이 백성에게 복을 주시고 선한 영향력을 주신 것입

니다. 사람도 마찬가지입니다. 수님께서 들어오시면 반드시 선한 영향력이 나타난다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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