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눅 13:22-30), 김덕선 목사
앙드레 지드의 좁은 문이라는 소설이 있습니다.요즈음에는 좁은 문이 입시문, 취업문이 되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십자가에 처형당하시기 위해 여행하는 중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이 예수께 찾아와서 심각하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주여 구원받는 숫자가 적습니까? 이에 대해 당시 유대교 내에서 두 가지 견해가 있었습니다. 극소수의 사람들만이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견해와 극악한 죄인들을 제외한 대다수의 유대인들은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견해였습니다.
오늘날 버전으로 말하면 교회에 다니는 사람들 가운데 천국에 들어가는 사람들이 많습니까, 아니면 적습니까 하는 질문입니다. 예수 당시에 유대인들은 자신들은 구원받고 이방인들은 버림을 받는다는 고정 관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구원받는 숫자가 적은 가?라는 질문에 대해 예수께서는 구원의 때에 관해 말씀하십니다. 이런 문제를 가지고 토론하는데 시간을 낭비하지 말고 너 자신을 살펴 보라. 너는 구원을 얻었으냐.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습니다. 왜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하셨을까요?
그 문은 사람들이 단단히 결심하고 들어가려고 힘써야만 들어갈 수 있을 정도로 좁은 문입니다. 물론 자기의 의나 선행이나 공로로 천국에 들어가는 것은 아닙니다. 오직 믿음의 문을 통과해야 들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좁은 문을 통과했다고 말하면서 넓은 길을 가고 있습니다.
“힘쓰라'는 것은 운동경기'에서 전력투구하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방해하는 모든 내적, 외적 적들과의 영적인 싸움에서 이겨야 할 것을 의미합니다. 현재의 삶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기를 힘쓰라는 것입니다. 신앙은 구체적인 삶 속에서 바른 관계를 맺는 것입니다.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들어가지 못하는 자가 있다는 것은 구원의 기회가 정해진 기한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으면 다 천국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들어가고 싶다고 들어갈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들어가려고 힘써야 합니다. 집 주인이 되신 예수님이 문을 한번 닫으면 아무리 문을 두드려도 열리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 앞에서 먹고 마셨고, 주님이 길거리에서 성경을 가르치실 때 배운 적이 있다고 말합니다. 먹고 마셨다는 것은 친밀한 교제를 나누었다는 것입니다.
또한 마태복음 7장 22절에는 그들이 예수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을 했고 귀신을 쫓아냈으며 많은 권능을 행했다고 주장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것들이 그들의 구원을 보장해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주님은 나는 너희가 어디서 왔는지 모른다고 하십니다.
불의를 행하는 자들아, 행악하는 모든 자들아 나를 떠나 가라고 하십니다. 마태복음 7장 23절에 보면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단언하십니다. 이스라엘 공동체에서 범죄자를 추방(追放)할 때 사용하는 관용적 표현인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라는 표현을 썼습니다.
나는 너희가 어디서 온 자인지 알지 못한다고 하십니다. 문을 두드리면서 자신들이 주를 잘 알고 있는 것처럼 말합니다. 중요한 것은 주님이 우리를 알아 주셔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을 안다고 해서 되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께 알려져야 합니다. 그들에게 뭐가 잘못된 것일까요? 그들의 봉사나 섬기는 것 자체가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중요한 것을 그들은 놓쳤습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일을 소홀히 여겼던 것입니다. 자신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의 아버지의 뜻대로 살지 않고 자기 뜻대로 살았습니다. 그것이 결정적인 문제였습니다. 그들은 천국에 들어가고 싶었지만 여전히 악을 사랑하고 거룩한 삶을 원치 않았습니다. 거룩함이 없이는 아무도 주님을 보지 못합니다(히 12:14).
유대인들은 택한 백성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천국에 들어갈 것으로 기대했는데 차질이 생긴 것입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들은 천국에 있지만 그들이 자신들의 조상이라고 내세우는 유대인들은 밖에서 이를 갈며 슬피 울고 이를 갈면서 절망적으로 후회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이 생각할 때 천국에 들어갈 수 없다고 생각했던 이방인들이 동서남북, 전 세계로부터 하늘에서의 잔치에 참여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나중된 자가 먼저 될 자도 있고, 먼저 된 자가 나중 될 자도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먼저 선택받았던 유대인들은 교만과 불신으로 인해 구원 받지 못하고, 멸시받던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이유는 잘못된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넓은 문, 넓은 길을 선택했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구원의 문을 통과하셨습니까? 당신은 구원의 길을 가고 있습니까? 당신이 십자가의 회전문을 통과하지 않고는 결코 그 길에 들어갈 수 없습니다. 회전문이라고 해서 넓은 문이 아니라 한사람씩 들어가는 좁은 문입니다. 왜 좁은 문인지 아십니까? 내 뜻을 꺾어 버리고 주님의 뜻대로 살아가야 하기 때문에 좁은 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개인의 세속적인 인기나 지위, 재물, 혈통, 권력이 아니라 그리스도에 대한 믿음과 헌신을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좁은문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그러나 좁은문이라고 해서 기쁨이 없고 고통스러운 것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에 아무런 재미도 없고 소망도 없는 것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0장 10절에 보면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입니다. 그 말씀에 순종하려고 하면 그렇게 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십니다. 마지막에 승리하는 인생을 삽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