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진짜 복이 무엇일까요?(눅 1:45), 김덕선 목사

liefd 2024. 6. 21. 1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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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짜 복이 무엇일까요? 그러면 가짜 복이 있다는 말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제가 말하는 진짜 복이란 진정한 의미에서의 복이란 의미입니다. 이런 복이 최고의 복인데 많은 신자들이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많으면 복 많이 받았다고 합니다. 하나님께 받은 것이 거의 없으면 복을 지지리도 못 받았다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산상 수훈에서 말하는 복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그 자체가 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떤 상황에 있든지 하나님을 가까이하는 것이 복입니다. 가브리엘 천사가 마리아에게 나타나서 축복의 메시지를 전합니다. 누가복음 129절입니다. “은혜를 받은 자여 평안할지어다 주께서 너와 함께 하시도다.”

 

진짜 복이 무엇일까요? 누구나 어떠한 경우에도 붙잡아야 할 복이 무엇일까요? 누가복음 145절입니다.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 진짜 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것을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새삼스럽게 복이 될 수 있을까요?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다 믿는 것 같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세 가지 반응이 나타납니다. 

 

첫 번째 부류는 이스라엘 백성들처럼 말씀을 들을 때는 아멘으로 받아들이지만 뒤돌아서면 부인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5:27-28).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실 때 우리가 듣고 행하겠다고 고백합니다(5:27-28). 그들의 고백을 듣고 그들이 항상 이같은 마음을 품어 나를 경외하고 말씀에 순종해서 너희와 자손들이 영원히 복 받기를 원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모세가 십계명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올 때 그들은 금송아지 앞에서 절을 하며 춤을 추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말씀을 듣기만 하고 생활 속에서는 금송아지를 숭배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고 시작했다가 중간에 자신에게로 돌아가려고 합니다. 성령으로 시작했다가 육체로 마치려고 합니다.

 

두 번째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이 다른 사람들에게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모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찾아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는 일에 내가 너를 불렀다고 말씀하시지만 그는 보낼만한 자를 보내라고 항변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가지 표징을 보여 주시지만 마이웨이를 고집합니다. 주여 보낼만한 자를 보내십시오. 주님의 능력을 모세는 믿었지만 다른 사람을 보내라는 것입니다(4:10). 아무래도 자신은 아니라고 항변합니다.

 

세 번째 부류는 하나님의 말씀이 자기에게 이루어질 것을 그대로 믿었던 한 여인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45절에서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라리고 믿은 그 여자는 누구일까요? 마리아입니다.

무엇보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들려지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말씀이 내게 주시는 교훈으로 들려지기 시작하는 순간 영적 세계가 열리기 시작합니다.

 

연애할 때에 사랑하는 사람의 말이 나를 위한 것으로 들려지는 순간은 행복한 순간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에 은혜를 받았다고 하지만 그 말씀이 자신의 삶 속에서 잘 이루어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합니다. 단순히 기억력의 문제일까요? 체력이 딸려서 그런 걸까요? 너무 바쁘게 살다 보니 그런 걸까요?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면 좋겠는데 걱정이 될 때가 있습니다

 

마리아도 천사에게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의문을 제기합니다. 혼전관계를 맺지 않았는데 어떻게 임신이 가능한지 묻고 있습니다. 인간의 이성으로는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일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말씀대로 살고 싶지만 예상되는 문제들로 인해 은혜만 받고 끝납니다.

 

그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에 대해서는 엄두를 내지 못합니다. 그것은 목회자나 선교사님에게 가능한 것이고 우리와 같은 평신도에게는 불가능합니다. 마리아는 제사장이나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저 시골 동네에서 태어나 평범한 처녀로서 요셉과 약혼한 상태입니다.

 

마리아가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한다고 했을 때 그렇게 쉬운 결단이 아닙니다. 자신은 성령의 능력으로 임신했다는 것을 믿는다 손치더라도 누가 그것을 고지 곧대로 믿어 주겠습니까? 심지어 마리아의 부모들조차도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아마도 상심해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을 것입니다.

 

자신은 그대로 믿는다고 하더라도 약혼자 요셉에게는 그걸 어떻게 설명합니까? 미스 마리아가 어떻게 말할까 고심하던 차에 미스터 요셉에게 찾아가서 자신이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합니다. 요셉에게 나는 결백해, 성령으로 잉태된 것이라고 아무리 말해도 믿으려고 하지 않습니다.

 

요셉은 조용히 마리아와의 관계를 끊으려고 합니다. 알고 보면 요셉은 참 괜찮은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19절입니다. “그의 남편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라 그를 드러내지 아니하고 가만히 끊고자 하여 주의 천사가 꿈에 나타나서 이렇게 말합니다.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를 데려오기를 무서워하지 말라 그에게 잉태된 자는 성령으로 된 것이니라.“

 

인간의 차원에서 주님의 말씀이 이해가 되지 않아도, 상황이 도저히 불가능하게 보인다 하더라도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마음을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어가십니다. 자신의 능력, 경험, 교육 수준, 재정 상태로 보면 많은 한계가 있더라도 당신이 주님을 신뢰한다면 당신의 인생은 쓰임받게 될 것입니다.

 

주님께서 내게 주신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십시오. 요셉은 마리아와의 관계를 조용히 끊으려고 했지만 주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어 꿈에 나타남으로 그 어려운 오해의 장벽을 해결해 주십니다. 주님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지기를 원하지 않기 때문에 주님이 일하심을 체험하지 못한 채 힘겨운 신앙생활을 하고 있지 않습니까?

 

때로는 슬픔의 무게에 짓눌려 괴롭고 희망이 모이지 않더라도 주님의 말씀을 붙잡고 인내하며 최선을 다하시면 하나님의 때에 그분이 이루십니다. 반드시 하나님께서 생각지 않은 방법으로 이루셨다는 간증을 하게 될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이루어지기를 원하면 주님께서 이루어가십니다

 

가브리엘 천사는 마음이 복잡한 마리아에게 네 친족 엘리사벳도 늙어서 자녀를 임신했다는 소식을 전해 주면서 임신한 지 이미 6개월이 되었다는 소식을 전해줍니다. 주의 사자가 초음파 검사도 안했는 데, 아니 임신도 하기 전에 성별도 가르쳐줍니다. 이것은 태몽이 아닙니다.

 

마리아는 천사가 전해 준 소식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두 임신부의 미팅의 기쁨을 나누고 싶어서 유대의 한 산골 동네에 있는 엘리사벳 집으로 사흘이 걸리는 길, 150킬로 떨어진 머나먼 길을 설레임으로 찾아갑니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말씀이 어떻게 성취었는지 현장을 보고 싶은 갈망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월요일부터 실천하는 현장에서 살고 싶은 갈망이 과연 나에게 있습니까?

 

마리아는 엘리사벳에게 미리 간다는 기별을 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 인사를 듣는 순간 아이가 갑자기 복중에서 뛰놉니다. 엘리사벳이 성령이 충만해서 큰 소리로 이렇게 축복합니다. 주의 말씀을 들었던 두 임신부가 만났을 때 그들은 성령으로 충만했습니다. 주님 안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만남인지 모릅니다.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성령의 충만한 상태에서는 상대방을 향해 축복을 하게 됩니다. 복음을 경험한 사람들은 서로를 향해 축복으로 만나고 싶어합니다.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이게 어떻게 된 일입니까? 보라 네 문안하는 소리가 내 귀에 들릴 때에 아이가 내 복중에서 기쁨으로 뛰고 놀았습니다. 임신 6개월이 되면 태중에 아이가 뛰노는 것은 자연적인 현상이 아닙니까? 이는 아기 예수의 방문을 요한이 태중에서 알고 그렇게 기뻐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 마리아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어떻게 알았을까요? 성령이 충만함으로 하나님이 알려 주셨습니다. 심지어 엘리사벳에 태중에 있는 요한이도 아기 예수를 알아봅니다. 태아도 예수님을 이렇게 알아보는데 신앙 생활한지 10, 20, 30년이나 했는데 교회에 왔다가 주님도 만나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면 되겠습니까?

 

엘리사벳의 마리아를 향하여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온다고 표현합니다. 신약성경 어느 곳에서도 마리아를 가리켜 '하나님의 어머니' 라고 언급한 곳은 없습니다. 마리아도 엘리사벳이 자기의 태중에 있는 아기 예수를 축하하는 것을 보고 놀랍니다. 더구나 마리아가 주의 말씀이 내게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엘리사벳이 그대로 전합니다.

 

 

주의 말씀이 자신에게 반드시 이루어지기를 믿는 사람이 진짜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엘리사벳은 마리아에게 주께서 하신 말씀이 반드시 이루어지리라고 믿은 그 여자에게 복이 있도다고 축복합니다. 이 말씀은 어떻게 보면 소름이 끼치는 말입니다. 누가복음 138절에서 마리아가 천사에게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고백한 내용과 똑같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여자에게 복이 있다는 것은 여자들 가운데 네가 가장 복된 자라는 것입니다. 성령으로 하나된 사람은 서로에 대해 이렇게 알아봅니다. 주님께서 하신 말씀은 주님께서 반드시 이루어가십니다. 능하신 이가 큰 일을 내게 행하셨다는 마리아의 고백이 또한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의 말씀은 어떠한 경우에도 상식 이하가 아니라 상실을 넘어섭니다. 누가복음 148절에 보면 은수저라 금수저와는 상관이 없습니다. “그의 여종의 비천함을 돌보셨음이라 보라 이제 후로는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 일컬으리로다.” 마리아는 비천한 신분에 시골 동네에 평범한 처녀였습니다.

 

하지만 주의 천사가 그에게 나타나서 말씀을 주실 때 그대로 자신에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믿었습니다. 반면에 사가랴는 아내 엘리사벳이 아이를 낳을 것이라고 말했지만 그것을 진짜로 믿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종종 마리아보다는 사가랴처럼 행동할 때가 많습니다.

 

주님의 말씀이 우리 안에 이루어질 때에 성도들의 관계가 변화됩니다. 서로의 자존심이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엘라사벳이 나이가 훨씬 많은데 새파란 젊은 아가씨 마리에게 내 주의 어머니가 내게 나아오니 어찌된 일이냐고 말합니다. 엘리사벳은 주의 어머니를 츅복합니다. 신자의 진짜 복은 우리가 말씀에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교회는 에배만 드리고 빨리 집에 가기 위해 있는 곳이 아닙니다. 서로간에 만난을 통해 주님이 일하심을 찬양하고 함께 나누기 위해 있는 것입니다.

 

말씀이 자신에게 이루어지기를 원하는 사람은 일시적인 복이 아니라 영원한 복을 누리게 됩니다. 자신만 복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구상에 모든 사람들이 만세에 나를 복이 있다고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하지만 주의 말씀을 붙드는 사람을 높이 들어쓰십니다. 주리는 자를 좋은 것으로 배부르게 하십니다. 그 사람 때문에 자기 민족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십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얼마만큼 우리를 사로잡느냐에 따라서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할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주님의 일은 자신감으로 하는 것도 아니고 패배의식도 사라져야 합니다. 우리는 마리아처럼 주의 계집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더 이상 우리는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지 말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을 바라보는 관점을 갖기를 원합니다.

 

자신에게 집중된 생각에서 벗어납시다. 상처를 평안으로 바꾸는 관점을 가집시다. 많이 기도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말씀에 대한 강력한 순종이 더욱 중요합니다. 주일에 받은 은혜의 말씀을 월요일부터 빨리 달려가서 주님의 일하심을 기대합시다. 주의 말씀이 반드시 내게 이루어지기를 결단하는 것이 진짜 복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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