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절박한 가운데 일하시는 하나님(출애굽기 14장 10-11절), 김덕선 목사

liefd 2024. 6. 22. 1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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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은 이제는 됐다는 하는 것이 없고 계속입니다. 아들 딸 시집 장가보내면 이제는 된 걸까요? 또 다른 것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는 이젠 됐다고 하는 생각을 하는 순간 안도감을 느끼며 살아가는 것 뿐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드디어 430년간의 애굽의 포로 생활을 마치고 해방되던 날 감격의 순간이었습니다.

 

드디어 출애굽의 여정이 시작됩니다. 모세는 요셉의 유골(50:26)을 가지고 나옵니다. 이것은 신앙의 유산이 350년이 지난 후에도 그대로 계승되어 온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라암셋에서 출발하여 숙곳을 지나서 광야 끝 에담에 장막을 칩니다. 애굽을 떠난 지 이틀이 소요되었을 것입니다.

 

낮에는 뜨거운 태양 아래 구름 기둥으로, 밤에는 춥기 때문에 뜨거운 불 기둥으로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인도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백성들을 친히 인도하시고 보호하신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날도 자기 백성들을 눈동자같이 보호하시고 지켜주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새로운 코스를 명령하십니다. 출애굽기 142절입니다. 돌이켜 바다와 믹돌 사이의 비하히롯 앞 곧 바알스본 맞은편 바닷가에 장막을 치게 하라.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갇힌 바 되었다는 소식을 듣게 됩니다. 바로와 신하들이 이스라엘 백성들을 내보낸 것에 대해 후회하게 됩니.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지 않고 도망친 사실을 알고 격분하였습니다. 그래서 바로가 선발된 병거 육백 대와 애굽의 모든 병거를 동원하여 지휘관들과 함께 추격전에 나서게 됩니다.

 

먼저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을 떠날 때 해방을 시켜 준 것입니까? 아니면 사흘 동안 광야에 나가서 희생 제사를 드리라고 휴가를 준 것입니까?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다시 돌아오는 줄로 알았습니다(5:3, 12:31). 그랬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도망친 것을 알고 분노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바로 왕의 마음을 완악하게 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을 추격하게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착한 바로 왕의 마음을 고의로 강팍하게 하신 것이 아닙니다. 바로 왕이 스스로 강팍해진 마음을 꺾지 않으시고 그대로 내버려 두셨다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하기 위함입니다(4). 하나님께서 신자들이 이 세상에 살아가는 동안 불신자들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드러내기를 원하십니다. 이로 인해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박한 가운데 빠지게 됩니다. 애굽 군대와 바로의 말들과 병거들이 그들이 장막을 친 뒤로 가까이 오고 있습니다.

 

아마도 이때는 이스라엘이 출애굽 한지 약 6일쯤 되는 것 같습니다. 그 근거는 유대인의 전승에 따르면 홍해를 건넌 것이 니산(아빕)21일 밤이라는 사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한편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돌아오지 않고 계속 가나안을 향해 나아간다는 소식을 들은 것은 4일 후였기 때문에(5) 바로 왕이 추적하여 따라잡은 날은 불과 2일밖에 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시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반응이 어떠했을까요? 심히 두려워하여 여호와께 부르짖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양쪽은 산이 막혀 있습니다. 뒤쪽에는 애굽 군대가 추격합니다. 왼쪽은 시퍼런 홍해가 혀를 날름거리고 있습니다. 진퇴양난의 위기입니다. 장기에서 말하면 외통수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여호와께 부르짖어 도와 달라고 합니다.

 

기도한다고 하지만 모세를 향하여 원망을 쏟아냅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당신이 우리를 이끌어 내어 광야에서 죽게 합니까? 어떻게 당신이 우리를 애굽에서 이끌어 내어 우리에게 이렇게 할 수 있습니까? 우리가 애굽에 있을 때 뭐라고 했습니까? 제발 우리를 내버려 두십시오. 우리가 그냥 애굽 사람을 섬기겠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지 않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어려운 상황에 처하면 늘 애굽에 우거하기로 고집합니다. 사탄은 늘 우리를 이렇게 유혹합니다. 신앙생활 하다 어려운 일이 생기면 예수 믿기 이전에 좋았는데 예수를 믿어서 이런 일이 생겼다고 원망합니다. 모세가 출애굽 여정의 코스를 잘못 잡아서 이런 일이 벌어진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이 코스는 하나님이 잡아 주신 것입니다.

 

본래 블레셋 사람들이 사는 땅이 길을 가깝지만 하나님은 좀 먼 길 홍해의 광야 길로 코스를 정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제까지 숙곳에서 에담까지 줄곧 행군해 왔던 북동쪽 방향으로부터 갑자기 돌이켜서 다른 방향, 즉 남동쪽 방향으로 행군하도록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호전적인 블레셋과 전쟁을 하게 되면 다시 애굽으로 돌아가자고 할까봐 그렇게 정하신 것입니다. 결국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당장 위기 상황에 처했다고 왜 애굽에서 데려 나왔느냐고 불평하는 것입니다. 신자가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이 행하신 일들을 잊어버리는 순간 두려워하며 불안해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들은 과거의 노예근성에 사로잡혀서 애굽 군대를 보는 순간 기절촉풍하였던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특별하게 일하십니다

 

모세는 이러한 절박한 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합니까?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 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 너희는 가만히 있을지니라(13-14). 그리고 모세는 하나님께 계속 부르짖어 기도합니다. 드디어 절박한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십니다.

 

본문 15절입니다. 모세야 어찌하여 부르짖고 있느냐?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하여 앞으로 나아가게 하라. 우리가 기도할 때가 있고 행동할 때가 있습니다. 라틴어로 "ora et labora"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하고 일하라"는 뜻입니다. 신자는 무엇을 하든지 기도하고 일해야 합니다. 신자가 기도하지 않고 일만 해서는 안됩니다. 기도만 하고 일을 하지 않는 것도 지혜롭지 못합니다. 우리는 어떤 일을 만나든지 그 가운데서 어떻게 해야 하는지 기도하고 일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앞서 인도하던 구름 기둥의 위치로 뒤로 옮겨갑니다. 애굽 진영과 이스라엘 진영 사이에 섭니다. 애굽 쪽에는 구름과 흑암이 있고, 이스라엘 진영에는 밤이 밝으므로 밤새도록 저쪽이 이쪽이 가까이 못하도록 막으십니다. 단순히 구름 기둥의 방향만 바뀌어진 것이 아니라 여호와의 사자가 그들을 지켜주고 있는 것입니다. 낮에 해와 밤이 달이 신자들을 너를 상치 않겠네. 나의 발이 실족않게 주가 깨어 지키며 택한 백성 항상 지켜 길이 보호하시네. 너의 출입 지금부터 영영 인도하시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그러면 바다가 갈라지리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마른 땅으로 걸어가도록 하라. 내가 애굽 사람들의 마음을 완악하게 해서 그들이 따라 들어가게 할 것이다. 모세가 바다 위로 손을 내밉니다. 바로 그때 큰 동풍이 밤새도록 바닷물을 물러가게 하십니다. 정말로 바다가 마른 땅이 된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걸어가고 물은 그들의 좌우에 벽이 됩니다. 신자는 절박한 가운데 하나님이 일하고 계신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문제는 애굽 사람들과 바로의 말들, 병거들과 마병들이 다 그들의 뒤를 추격하여 바다 가운데로 들어옵니다. 그러나 모세는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애굽 군대들이 바다 가운데로 뒤따라 들어가게 해서 이로 인해 애굽 사람들이 나를 여호와인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저자는 "애굽 사람들은 이것을 시험하다가 빠져 죽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11:29). 한편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다를 통과한 것은 하나님의 약속(명령)이며 또한 그에 대한 그들의 믿음이었습니다.

 

새벽(오후 2시경)에 하나님께서 불과 구름 기둥 가운데서 애굽 군대를 보시기 애굽 군대를 어지럽게 하십니다. 병거 바퀴를 벗겨서 달리기가 어렵게 하십니다. 애굽 군대가 우리가 도망가자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싸워 우리를 치신다.

 

바로 이때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네 손을 바다 위로 내밀라. 물이 애굽 사람들과 그들의 병거들과 마병들 위에 다시 흐르게 하라. 그랬더니 바닷물이 그들을 다 덮으니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를 육지로 행하였습니다. 이곳을 약 200만 가량의 남녀 노소 및 각종 짐승들이 무사히 밤 사이에 건너가기 위해서는 갈라진 통로의 폭이 적어도 1,609m 정도는 되었을 것입니다.

 

 

절박한 상황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통합적으로 일하십니다

 

홍해 바다로 이스라엘을 몰아넣으신 하나님께서는 절박한 가운데 자기 백성들을 구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경외하는 신앙을 갖기를 원하셨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께서 홍해 바다와 같이 절박한 상황으로 몰아가실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렇게 하시는 하나님의 충분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믿고 기다려야 합니다.

 

출애굽기 1514-16절입니다. “여러 나라가 듣고 떨며 블레셋 주민이 두려움에 잡히며 에돔 두령들이 놀라고 모압 영웅이 떨림에 잡히며 가나안 주민이 다 낙담하나이다.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같이 침묵하였사오니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괴하기 까지였나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를 통과하여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될 때까지 어떠한 상황 가운데서도 하나님이 보호해 주시고 지켜주십니다.

 

절박한 상황 가운데 처해 있을 때 두 가지를 점검하셔야 합니다. 이것이 내가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인가, 아니면 주님 때문에 생긴 것인가? 지나친 욕심 때문에 생긴 것이면 당황하지 말고 회개하고 돌이키면서 지혜를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주님을 기뻐하시는 일을 하다가 생긴 일이면 불평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주님이 행하시는 일을 기다리십시오.

 

그 상황에서 해야 하는 일을 한가지씩 실천하십시오. 절박한 상황 가운데서 주님이 종합적으로 일하고 계신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지금은 이해할 수 없는 일이 너무 많지만 차츰차츰 안개는 걷히고 주님이 행하시는 일이 또렷이 보이게 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어떻게 하든지 우리를 애굽에 미련을 느끼도록 계속 쫓아옵니다. 우리의 옛습관과 육체에 대한 욕심은 애굽 군대가 홍해 바다 가운데로 들어오는 것처럼 그림자처럼 따라옵니다. 우리의 의지와 노력 으로 끊어버릴 수 없습니다. 주의 능력이 나타나서 죄와 허물로 죽었던 우리를 살려주실 때 가능합니다.

 

고린도전서 101-2절에서 홍해 바다를 건넌 사건을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 받은 사건으로 설명합니다. 세상(애굽)의 옛사람의 모습은 죽고 새 사람을 입은 자로서 살아가야 할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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