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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리더쉽의 실현 : 팀웍, 이동원

by liefd 2024. 11.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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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번 주간에 여러분은 리더십이라는 단어를 계속해서 접하게 될 것입니다. 리더십의 실현 또 리더의 꿈, 리더의 환상, 리더의 비전, 이런 것들은 혼자서 하는 것은 아니고 팀웍을 통해서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리더십을 생각할 때 한 번쯤은 우리가 진지하게 팀웍의 문제를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입니다.

 

진 윌킨스라는 분이 한 얘기 가운데 이런 말이 있습니다. "리더는 프로 골퍼가 아니라 축구팀의 코치와 같은 존재이다." 그러니까 리더는 솔로이스트 영웅이 아니라 함께 일하고 있는 하나의 팀을 동기부여하고 또 움직여 갈 수 있는 사람이 진정한 리더이다. 라는 얘기가 되겠지요. 요즘 리더십에 대해서 미국에서 굉장히 큰 영향을 끼치고 있는 그런 리더십 아주 젊은 학자, 스피커 가운데 목사님 출신이신 잔 맥스웰이라는 분이 계십니다. 그 분의 얘기 가운데에서 제가 이런 얘기를 기억을 합니다.

 

보험 회사의 한 팀을 맡고 있는 팀장이 어느 날 친구인 축구 코치를 만났습니다. 그래서 자기 직업의 애로 사항을 얘기하고 나누다가 자기가 데리고 있는 자기의 팀원들의 보험 성적이 신통치 않고 결과가 좋지 않다. 몇 번씩 이렇게 저렇게 트라이(try)를 해 보고 노력을 해 보고 시도했지만 보험 성적이 별로 올라가지 않는다. 아무래도 팀 멤버를 몇 사람 교체하고 좀 바꾸어야겠다.

 

그랬더니 축구 코치인 친구가 그 보험 회사의 팀장을 한참 뚫어지게 쳐다보면서 하는 얘기가 "여보게, 나도 팀을 이끌고 있는 일종의 팀장이지 축구 코치니까. 그런데 축구 선수들이 계속 성적이 나쁘고 계속 발전이 없다면 결국은 축구 코치를 바꾸어 야 하네. 선수를 바꿀 것이 아니라 코치를 바꾸어야 하네." 이것은 하나의 팀웍이라는 것은 우선 그 리더십, 그 팀을 이끌고 있는 리더가 어떤 생각을 갖고 어떤 철학을 갖고 그 팀을 이끌고 있느냐에 달려 있다는 얘기로 우리는 이해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리더라는 것은 언제나 공동체를 기반으로 해서 존재합니다. 혼자서 리더가 되는 것은 아니에요. 나는 리더라고 선전했다고 해서 누가 그것을 알아줍니까? 따라 오는 사람, 소위 팔로워(follower)가 없이는 리더는 존재할 수가 없고 따라 오는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지는 개인들이 아니라, 고독한 섬들처럼 흩어져 있는 섬들이 아니라 그들이 모여져서 거기서 어떤 응집력을 발휘하고 거기서 분출되는 파워 와 생산력이 결국 한 팀의 기여를 결정하는 것이라고 생각을 합니다. 그래서 리더는 결국 팀웍을 통해서 자신의 꿈 혹은 공동체의 꿈을 실현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팀웍이라는 것은 조직만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조직을 만들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조직을 만들게 될 것입니다. 또 어떠한 단체도 조직이라는 것이 없이는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 교회도 하나의 조직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교회는 조직체이기에 앞서서 생명체이어야 합니다. 유기체이어야 합니다. 혹은 오가니즘(organism), 생명체, 유기체. 교회는 먼저 생명을 가진 공동체가 되어야 하지만 그 생명을 표현하기 위해서는 동시에 조직을 필요로 합니다. 조직체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이 부분의 비유에 관한 탁월한 어떤 성서적 설명, 소위 바울 사도의 설명이 바로 교회를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비유한 사실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 몸이라는 것은 제일 중요한 게 생명이지요. 생명이 없이 몸은 존재할 수도 없고 유지될 수도 없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몸은 또 하나의 조직체입니다. 아 무리 생명이 있어도 이 정교한 조직체가 없으면 안 됩니다. 우리의 몸처럼 정교한 조직을 가진 그런 생명체가 또 어디에 있겠는가 라는 생각을 합니다.

 

잘 알고 있는 시편에, 시편 기자가 참 내 육체가 지어져 가는 모습, 어머니의 모태에서 지어져 가는 그 모습을 묘사한 탁월한 그 시편의 메시지를 우리가 기억하지 않습니까? 내가 얼마나 신묘막측하게 지어 졌는지 잘못 읽어서 신묘 망측하다고 우리가 부르면 안 되겠습니다 마는 아주 원더풀리,(wonderfully) 아주 놀랍게 신묘하게 놀랍게 우리의 육체가 얼마나 그물망처럼 조직체로 짜여져 있습니까?

 

또 조직만 가지고 있다고 해서 이 조직이 서로 상호 피차에 어떤 생명을 주고받는 역할이 자동적으로 이루어지지는 않습니다. 조직은 필요합니다. 그러나 팀웍이라는 것은 조직 이상의 것입니다. 마치  체의 각 지체들이 상호 어떤 역동적 관계를 유지하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몸이 얼마큼 건강하냐 혹은 불건강하냐가 결정될 수밖에 없는 것처럼 조직을 구성하는 구성원의 상호관계, 교회는 교회를 만들고 있는 모든 교인들의 상호관계, 지도자와 교인의 관계, 지도자와 지도자와의 관계, 이런 관계가 어떻게 형성되느냐에 따라서 그 교회의 건강성이 결정되지 않겠습니까? 요즘 단연 기독교계의 가장 커다란 화두는 더 이상 성장이 아닙니다.

 

우리는 지나간 한 20, 30년 동안 한국 교회를 포함해서 전세계 교회가 성장에 매달려 왔어요. 어떻게 성장할 수가 있느냐 성장을 위한 온갖 방법과 수단과 전략들 을 우리가 시험해 보았습니다. 피곤하도록 우리는 교회 성장 세미나를 쫓아 다녔고 또 성장시킬 수 있다고 생각되는 모든 것들을 우리는 이렇게 다니면서 배우고자 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성장주의가 가져 온 만만치 않은 그런 부작용을 오늘 우리는 이 시대에서 경험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현장이 한국 교회라고 생각해요. 성장한 것은 사실이에요.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은 성장들도 있어 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성장이 빚어 낸 그 만만치 않은 부작용 을 오늘 우리는 경험하고 있습니다. 성장하고도 존경받지 못하는 교회, 그리 고 사회와 역사 속에 기여하지 못하고 그리고 어떤 영향력을 주지 못하고 있는 그런 교회가 바로 한국 교회의 현장이고 또 한국 교회의 현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단연 지금 전세계 기독교계의 가장 중요한 화두는 건강입니다. 더 이상 성장 이 아니라 어떻게 건강을 추구할 수 있느냐, 건강한 교회가 될 수가 있느냐? 팀웍에 달려 있다고 생각합니다. 튐웍. 그리고 조직체가 하나의 건강한 팀, 강력한 팀, 그리고 생산적인 팀으로 이렇게 발전해 가기 위해서는 저는 무엇 보다 제일 중요한 것이 비전(vision)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은 꿈, 드림(dream). 아주 영감적인 꿈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제가 작년에는 이 자리에 와서 비전에 관한 강의를 했습니다. 비전은 여러분이 제가 안 해도 계속 아마 나오는 강사마다 강조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비전의 측면에 대해서 많은 강조를 하지는 않겠어요. 그러나 비전이 없이는 한 팀웍이 생산적인 팀웍, 건강한 팀웍, 그리고 공동체의 궁극적인 목표를 향해서 헌신하는 강력한 팀웍이 될 수가 없잖아요. 아직도 많은 교회들이 헌신 예배를 계속하고 있습니다 마는 저는 요즘 헌신 예배라는 것에 관한 회의가 무척 많습니다

 

또 아무리 헌신 예배를 드려도 헌신이라고 이름을 붙여서 그런지 계속 사람들이 헌 신만 신고 있고 새 신을 갈아 신지 않더라고요. 그래서 헌신 예배 드리지 말고 신발 벗기 예배를 드려야 하지 않을까? 네 발의 신을 벗어라 그랬으니까. 그리고 새 신을 신어야만 되지 않을 까 생각하는데 여러분, 헌신합시다. 헌신합시다. 그리고 뭐 하나 됩시다. 이러 한 우리들의 구호, 열창, 독려, 강조, 아우성, 소리침 이것만 가지고 저절로 팀웍이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이지요.

 

그러나 어떤 꿈을 보여주면 꿈. 비전을 보여주면 그 꿈 때문에 하나가 될 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5월에 제가 개척한 교회도 5주년을 넘기면서 5, 개척교회 5해를 5년을 넘기면서 <감사와 비전의 축제>라는 이름으로 지나간 5년을 감사하고 또 새로운 5, 10년을 내다보기 위한 그런 비전 축제를 저희 교회도 가졌습니다. 가지면서 저희 교회 평신도 지도자들 몇 사람하고 인터뷰를 하고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있었어요. 제가 처음 교회를 개척할 때 수지, 저는 미국에서 살다 왔으니까 수지가 어디인지도 모르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다가 거기서 교회를 개척하게 되었는데 그 때 수지에 아파트가 하나도 없을 때입니다.

 

분당에서 하려고 그랬더니 분당이 너무 비싸서 할 수도 없고 돈도 없고 우리 아버지는 부자인데 나는 부자가 아니라. 장소 빌리는 것도 쉽지 않고 그러다가 누군가의 힌트로 거기 선경 마그네틱이라는 회사, 카세트 테이프 만드는 공장이에요. 공장의 5층에 올라가면 그렇게 크지는 않지만 한 300명 들어가는 강당이 있다. 하는 인포메이션(information)을 듣고 그 공장의 강당 을 빌려서 저희 교회를 처음에 시작을 했습니다. 그런데 뭐 여름철에 보통 우리가 계획을 세워 가지고 가을에 모임을 갖기 시작했었는데요, 제일 힘들었던 것이 무엇이냐 하면 5층에 강당이 있는데 5층 굉장히 가팔라요. 아주 층계가 가파른데 제가 미국 살다가 처음 와서 받았던 문화 충격 가운데 하나는 5층인데 엘리베이터가 없더라구요. 희한한 일이라고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서 5층을 항상 누구라도 걸어 올라가야 되는데 그런데 제일 힘들었던 것이 여름철인데 그렇게 힘들게 올라가 보면 에어컨 시설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그래서 참 고생을 많이 했습니다. 거기다가 카세트 테이프 만드는 공장에서 화약 비슷한 그런 코를 찌르는 이상한 냄새들이 악취를 뿜어내는데 참 견디기가 힘들었습니다. 그러니까 저희가 초창기 멤버들이 하는 얘기가, 지난번에 앉아서 얘기를 하는데 그 때 당시 초창기에 그들이 늘 교회에 올 때마다 그들이 한 생각 은 이런 생각이었대요. '5층을, 저 높은 곳을 향하여!' 한 층계씩 올라가면서 그 무더운 날. 그것도 가까이서 오는 교인들도 없지요. 30, 1시간씩 그 당시에 1시간 반. 차 타고 와서 가까스로 5층을 헐레벌떡 올라가면서 생각이 딱 하나밖에 없었대요. '이번 주일이 마지막이다. 다시는 안 온다.'

 

그런데 제가 그 당시에 교회에 처음 오는 사람들에게는 어떤 후레시한 이미지가 필요한데 교회에 대해서 보여줄 게 있어야지요. 건물도 남의 건물 빌리지, 또 공장에서 지독한 냄새는 나지, 성가대가 조직이 되어 있습니까? 뭐가 있습니까? 여기처럼 이렇게 부잣집처럼 이렇게 멋있는 이런 것도 없고 아무 것도 없고 뭐 그러니까 그 때 제가 가진 유일한 재산, 유일한 재산은 딱 하나밖에 없어요. 꿈밖에 없다는 거지요. .

 

그러니까 제가 거의 교회 시작하면서 한 석 달 동안 매 주일 거의 상투적으로 혹은 의도적으로 설교를 할 때마다 한 번도 빼 놓지 않은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그것은 뭐냐면 "한국에 굉장히 교회가 많은데 그 많은 교회 제가 교회 하나 더 만들려고 여러분 복잡하게 해 드리려고 한국에 나온 것은 아닙니다. 저도 미국 땅에서 이민 목회 아주 보람있고 재미있는 목회, 또 잘 건강하게 성장하는 좋은 교회를 목회하고 있었지만 한국에 교회가 없어서 또 하나 세우려고 온 것은 아니고 정말 이 땅의 역사에 보탬이 될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이 땅의 방황하고 피곤해 하고 상처받은 많은 사람들에게 정말 새로운 생명과 비전을 보여줄 수 있는 꿈을 가질 수 있는 우리 민족의 역사에 플러스가 되고 하나님 나라에 기여가 될 수가 있고 그럴 수 있는 정말 내가 참 교회를 선택하기를 잘했다. 여러분이 행복하게 죽을 수 있는 교회, 그리고 행복하게 봉사할 수 있는 교회, 그리고 이 땅의 역사에 정말 보탬이 될 수 있는 그런 놀라운 교회 한 번 만들고 싶어서 이 교회를 시작했습니다."

 

매일 꿈 얘기를 했어요. 매일 비전 얘기를 했어요. 한 석 달 동안 매일 그 얘기만 했습니다. 요한계시록 2장과 3장에 나타난 7교회의 얘기를 하면서 그 7교회가 실수했던 대목들을 우리가 어떻게 넘어 서서 극복하고 건강한 교회, 아름다운 교회, 거룩한 교회, 영광스러운 교회, 계속 꿈 얘기를 합니다. 그러면 우리 교인들이 예배시간에 설교 시간에 은혜를 받고 내려가면서 그렇게 얘기를 했대요. '에이 다음 주에 한 번만 더 나오자' 그래서 속아서 5년 나왔습니다. 그렇더라고요. 속아서 5년 나왔습니다.

 

조금이라는 것이 굉장히 중요 한 것이에요. 조금이라는 것이. 꿈이 교회를 교회되게 하는 것입니다. 꿈이 한 공동체를 살아 움직이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전을 본 사람들이 모여서 어떤 다이내믹스를 가지고 어떤 팀웍을 형성하느냐 이것이 또 하 나의 중요한 과제입니다. 저는 세속 사회에서도 리더십을 말할 때마다 팀웍을 강조합니다 마는 특별히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적 시각에서 이 팀 리더십을 강조해야 할 충분히 성서적인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그래서 이 팀 리더십의 성경적 근거를 생각해 보겠습니다.

 

우선 예수님도, 여러분 예수님이야 말로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있는 가능성 이 있는 유일한 분입니다. 그 분밖에 없지요. 그 분은 하실 수 있는 분이 아닙니까?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분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시고 전지하신 하나님이라면 그 분은 혼자 모든 일을 다 할 수가 있다는 말이지요.그런데 그럴 수 있는 그 분이 혼자서 하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그는 제자들 을 부르셔서 이 제자들을 팀을 만드시고 그들과 더불어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시작하셨다. 우리가 이 부분을 주목해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태복음 935절 이하 101절까지의 말씀을 읽어보시면 예수님이 제자들 을 어떤 상황 속에서 어떤 배경 속에서 제자들을 부르셨는가 우리가 알 수가 있지요. , 우리 마태복음 9장을 한 번 찾아보겠어요. 마태복음 9장입니다. 이 시간이 쉽지 않은 시간이지요? 점심 먹고 나셔서 밖에는 덥고 안에는 시원하고. 우리가 입신하기에 딱 좋은 환경적 상황을 갖고 있습니다. 괜찮아요. 주무시고 싶으면 주무세요. 저는 주무시는 분보고 신경질 내거나 그러치 않으니까 제 눈치 자꾸만 보면서 잤다, 깼다 이렇게 고통스럽게 하지 마시고 안심하고 푹 주무세요. 제가 처음부터 이렇게 여유 있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옛날에는 저는 그냥 자는 사람 있으면 "명 설교를 듣고 자다니, 일어나십시오!" 소리를 질러서 깨웠는데 미국에서 목회를 할 때요, 젊은 친구가 처음부터 자요. 저는 항상 중간부터 자는 분에 대해서는 내가 상당한 책임을 져야 한다. 이렇게 생각을 하는데 이 처음부터 자는 것은 내 책임은 아니잖아요. 그래서 제가 끝나고 나서 그 친구보고 "아 당신은 늙은 사람도 아니고 젊은데 어떻게 이렇게 초장부터 잠을 자느냐? 거의 습관이 아니냐? 내가 지난 주일도 보니까 졸더라." 그러니까 이 친구가 그렇더라고요.

 

"목사님, 목사님은 목회만 하셨지요. 이 이민 생활, 미국 생활 목사님은 미국 사회라는 것을 혹시 모르실 지도 몰라요. 한국에서 와 가지고 미국에서 조금 공부는 하고 직장은 잡았지만 영어가 그렇게 술술 나옵니까? 이 시원찮은 영 어로 미국 직장에서 억지로 영어를 하면서 벌어먹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지 목사님은 모르실 거예요." 그러니까 그 다음에 하는 소리가, "그래서요?" 그러니까 "그러다가 그렇게 스트레스 받고 일하다가 아버지 집, 교회에 오면 저절로 잠이 와요." , 그렇구나, 그런 형제도 있구나. 그래서 지금부터 주무시는 분은 그런 비슷한 사정이 있다고 제가 이해를 할 테니까 주무시기 바랍니다.

 

우리 같이 한 번 마태복음 936절을 읽어보겠어요. 같이 한 번 마태복음 936, 시작!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이제 좀 진정하세요. 36절을 보시면 무리를 보시고 민망히 여기시니 이는 저희가 무리들이 사람들 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방황하는 사람들 보면서 예수께서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제자들보고 하신 말씀이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군을 적다.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군들을 보내어 주소서 하라. 너희들이 나하고 같이 기도하자. 추수하는 주인에게 좀 일군 보내 달라고 기도하자. 이 많은 사람들, 방황하고 있는 양떼들, 이 고통과 절망 속에 목표 없이 방황하고 있는 이 수많은 사람들. 그 사람들을 잘 세워 주고 또 훈련하고 또 그들을 통 해서 이 세상이 어떤 영향을 받고 충격을 받고 변화되기 위해서는 나와 같이 일할 수 있는 일군들이 필요하다. 우리 함께 기도하자 추수할 주인에게 요청하자.

 

그래서 우리가 직접적인 예수님의 어떤 팀웍을 형성하게 된 동기는 이 수많은 사람들, 도움을 기다리고 사랑을 기다리고 하나님의 터치를 기다리고, 주의 긍휼과 그리고 주님의 꿈을 필요로 하는 수없이 많은 방황하는 사람들, 이 많은 사람들을 보았을 때 참 그들에게 도움이 필요하다. 그런데 뭐로 돕느냐? 그들을 도울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하지요. 사람이. 저는 사람이 제일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도 목회를 하면서 늘 느끼는 것이 저희 교회가 어린 교회고 또 급속도로 빨리 숫자들이 많이 유입되고 성장하다 보니까 참 일군이 많이 필요한데 사람은 많은데 사람이 없다. 이런 딜레마를 느낄 때가 많아요. 평신도 지도자도 그렇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동역자들도 참 사람이 많은 것 같은데 그런데 사람이 없다. 저는 그것이 주님의 마음이 아니었는가 생각을 해요.

 

그래서 참 이 많은 사람들을 제대로 세울 수 있는 지도자들이 필요하다. 그런데 팀웍을 구성하는 방법에 있어서 이것이 어떤 세속적인 세큘라 리더십에서 전혀 말하지 않은 부분일지도 모르지요. 예수님은 그런 리더십을, 팀 리더십 을 형성하기 위해서 먼저 그 분이 제안하신 것이 뭐냐하면 "우리가 함께 기도하자, 추수할 주인에게 요청해서 함께 기도하자"

 

저는 기도 속에서 비전도 탄생한다고 믿습니다. 또 기도 속에서 팀웍도 탄생 할 수 있다고 믿어요. 그래서 저는 사실 저와 같이 일하는 동역자들을 이렇게 미국에서 제가 목회할 때도 그랬고 신문에 광고를 내 가지고 좋은 사람 찾는 다고 공채를 해 가지고 객관적 사회적인 조건이 우수한 사람들을 찾지를 않았어요. 그냥 기도했어요. 그리고 '하나님이 좋은 사람 보내 주시겠지. 나하고 일할 수 있는 좋은 지도자를 보내 주시겠지.'

 

그리고 보내 주신 사람들은 좀 부족해 보여도 내가 함께 일할 수 있는 하나님 이 보내 주신 사람들. 이런 생각으로 함께 같이 일하곤 했어요. 뭐 그러니까 좋더라고요. 오래 일할 수 있는. 거의 제 주변에서 일하는 분들은 오래 일합니다. 오래 일하고 또 특별한 사정으로 사역지를 옮겨도 같은 범주 안에서 늘 같이 동역을 하는 관계를 갖고 있어요. 그렇게 크게 아픔을 가지고 헤어진 경험이 없습니다. 그 이유 중의 하나가 기도하고 하나님이 보내 주신 사람들이니까.

 

내가 개척하고 나서는 참 아주 갈등이 많았어요. 개척하고 사람들이 많이 빨리 빨리 오기는 오는데 보니까 하여튼 대한민국에서 교회에서 상처받고 교회에서 싸움을 많이 하신 역전의 용사들이 다 오시더라고요. 처음에 한 1년쯤 개척하고 나서는 하나님 앞에 기도했습니다."하나님, 어쩌자고 이런 사람들만 보내십니까?" 그러나 그 다음에는 제가 이런 기도를 했어요.

"하나님, 나를 이렇게 높이 평가해 주십니까? 이 분들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 이 있다고 주님 평가를 해 주십니까? 주님이 보내 주셨다면 사랑해야지요. 사랑하기 어려운 사람, 껄끄러운 사람, 아파하는 사람, 상처받은 사람도 하나님 이 보내 주신 사람이라면 받아야지요" 제가 이런 마음을 가졌어요.

 

기도 안에서 팀웍은 시작된다. 기도 안에서 팀웍은 만들어져 간다. 저는 다른 모든 유형의 소위 세클러 리더십과 구별되는 독특한 크리스찬 리더십의 특성이라고 생각해요. 기도 안에서 팀웍은 만들어 져야 한다. 그러면서 예수님이 제자들을 부르시지 않습니까? 101절에 '예수께서 그 열 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

 

그랬습니다. 제자들이 세상적으로 볼 때는 별 볼 일 없는 사람들 아닙니까? 이렇게 탁월하고 뛰어난 사람들 아니에요. 주님은 그들을 믿어 주셨고 신뢰하셨고 훈련하셨고 그들을 보내셨고 그리고 별 볼 일 없어 보이는 지극히 평범한 이들에게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 저는 이것보다 이 세상에서 일어난 더 코믹한 코미디는 없을 거라고 생각을 해요. 생각해 보세요. 팔레스타인 바깥을 여행해 본 일이 없었던 촌사람들, 촌놈, 네 저는 촌 교회에서 온 사람이에요. 여기는 서울 한 복판이고 저는 촌인데 저희 교회가 지구촌 교회인데 저희 교회를 '수지 지구 촌 교회' 이렇게 부릅니다.

 

저는 촌에서 온 사람인데, 사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아주 촌사람 같은 사람들, 아주 평범한 사람들, 고기 잡던 사람들, 세금 걷던 사람, 세금 걷는 게 뭐 굉장한 관리가 아니에요. 같은 동족들에게 로마에 붙어 있는 반역자들이라고 조롱 받고 손가락질 당하던 사람들, 아무것도 아닌 사람들이에요. 그 중의 한 명은 이미 반역을 해서 떠나갔고 이런 11명의 제자들을 옆에 놓고 말이지요. 가서 세상 땅 끝까지 가서, 아니, 팔레스타인 경계선을 넘어 보지 못 한 이 촌사람들에게 너희는 가서 말이지요. 전세계의 모든 곳으로 가서 땅 끝까지 가서 이 모든 족속으로 내 제자를 삼으라. 이런 코미디가 어디에 있어요 ?

 

예수님의 팀웍은 거기에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예수님의 팀웍은. , 우리가 예수님의 팀 리더십뿐만 아니라 신약 교회가 매우 일관성 있게 보여주는 팀 리더십의 성서적 근거를 계속 찾아보겠습니다. 빌립보서 11절을 한 번 보세요. 저는 빌립보 교회는 초대 교회들 가운데에서 매우 이상적인 교 회 중의 하나라고 생각을 합니다. 문제가 없었던 것은 아니에요. 빌립보 교회 안에도 문제가 있었어요. 문제없는 교회는 존재하지 않습니다.

 

유명한 얘기가 있잖아요. 스펄전 목사님에게 어느 날 어떤 청년 하나가 찾아와서 이런 질문을 했대요."목사님, 저는 아주 교회 생활에 환멸과 상처를 많이 받았습니다. 목사님, 완전한 교회 하나 소개해 주십시오." 완전한 교회. 이런 단어를 썼대요.

그래서 스펄전 목사님은 빙그레 웃으시면서 이 청년보고 "형제여, 당신이 그 완전한 교회를 찾거든 나에게도 알려주시오. 당장 목사를 사표내고 나도 그 교회 교인이 되겠소. 나 그 교회 갈 꺼요. 그러나 형제여, 만약 당신이 그 교회를 찾거든 당신만은 절대로 그 교회의 멤버가 되지 마시오.""왜요?" 그러니까 "당신이 끼면 그날부터 그 교회의 완전은 깨지니까 말이요." 우리 불완전한 인간이 모여서 형성하는 공동체는 언제나 문제가 있지요. 문제 가 없을 수가 없어요. 이 빌립보 교회도 문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빌립보 교회는 문제를 넘어 서서 성장해 가고 있었던 그런 교회였습니다.

 

, 이 교회를 향한 바울의 편지를 우리가 빌립보서 11, 바울의 첫 번째 메시지, 11절 한 번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시작!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과 디모데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빌립보에 사는 모든 성도와 또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편지하노니' 저는 빌립보 교회가 큰 교회가 아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지금 생각하는 것처럼 큰 교회가 아니었을 거예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 11절에 보시면 '감독들과' 라는 단어가 나오지요. '감독들과 집사들에게' 그러니까 이 정도 사이즈 그랬으면 지금 같으면 목사님 한 분이면 아마도 행정적으로 감당을 할 수가 있는 교회일 가능성이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바울 사도는 이 교회의 지도자가 한 사람이 아니었다. '감독들' 복수를 주목해 보세요. 여러 명의 지도자들이 함께 일하고 있었던 교회, 또 감독들뿐만 아니라 집사들, 평신도를 대표하는 리더십이라고 할 수가 있겠지요. 또 소위 지금 식으로 말하자 면 목회자를 대표하는 리더십, 그것도 한 사람, 솔로 리더십이 아니라 신약 교회 리더십은 항상 솔로 리더십이 아니었습니다. 여러 지도자들이 함께 어울러져 만들고 있었던 일종의 지도자군, 팀 리더십이 신약 교회의 아이디얼한 리더십의 모습으로 등장합니다.

 

저는 이 팀 리더십의 형태는 매우 다양할 수가 있다고 생각해요. 요즘 팀 리더십 하면 또 어떤 분들은 생각하기를 뭐 팀 미니스트리(teem ministry)를 한다 고 그러면 목사님들도 동등한 어떤 위치, 동등한 자격, 동등한 월급, 동등한 그런 위치에서 몇 사람이 모여서 함께 하는 교회만 생각합니다. 그런 것도 하 나의 모델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지 않을 수도 있어요. 궁극적인 책임을 지고 있는 담임 목사가 있을 수 있고 또 전문성을 가진 여러 사역자들이 있을 수가 있지만 그것이 어떤 우열이 아니라, 높고 낮음의 관계가 아니라 진정한 동역의 관계에서 얼마든지 저는 팀 리더십을 이룰 수가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지금 전세계의 교회의 경향은 교회들이 점점 많은 지도자들이 함께 모여서 사 역을 하는 그런 멀티 스텝(multi-step)의 교회 상황으로 교회들의 형태가 발전해 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작은 교회들도 크다 보면 목사님들이 여러 분 와서 함께 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 또 그것이 정상적인 하나의 발전과 성숙의 방향이라고 저는 생각을 해요. 그랬을 때 제일 중요한 것은 어떻게 이들이 정 말 팀이 될 수가 있느냐? 목회자들끼리도 팀이 될 수가 있느냐? 또 목회자와 평신도 지도자들이 어떻게 어울러져 한 팀이 될 수가 있느냐? 또 모든 성도들 이 궁극적으로 전 교회가 하나의 팀이 될 수가 있느냐? 여기에 바로 팀 리더십의 과제가 있다고 저는 생각을 합니다.

 

, 우리는 빌립보 교회의 모본, 대표적인 하나의 모본이라고 생각을 하겠습니다 마는 함께 대부분의 신약 교회들이 이런 팀 리더십의 어떤 형태를 가지고 있었을 것이라는 것을 성서적으로 능히 추측해 볼 수가 있습니다. , 뿐만 아니라 우리는 신약 성경, 특별히 바울 서신에서 바울이 자기가 돌아다니면서 사도로서 개척했던 대부분의 교회 그리고 세워졌던 교회들을 향해 서 소위 편지를 쓸 때 바울 서신, 이 바울 서신 속에서 바울이 제일 많이 쓰는 바울을 바울 되게 하는 독특한 특성을 흔히 두 가지로 말합니다.

 

하나는 바울이 편지 많이 쓴 단어가 그리스도 안에서 앤 크리스토, 인 크라이스트(in christ) 그리스도 중에서라는 단어를 바울이 굉장히 많이 쓰지요. 그 단어와 함께 바울이 또 하나 많이 쓰고 있는 단어가 있어요. 그것은 뭐냐 면 서로 서로 라는 단어입니다. 원 어나더(one another) 서로 서로.바울이 얼마나 많이 썼는지 몰라요. 제가 대표적인 것만 뽑아 왔습니다 마는 이게 전부가 아니에요. 대표적인 것만 뽑아 왔습니다. 서로 사랑하라. 너희는 서로 받으라. 받으라.

 

그런데 한국 교인들은 이 받으라라는 말을 잘못 읽어 가지고 받으라 그랬으니 까 받으라 그래서 머리로 서로 그냥 계속 받으려고 피투성이가 되도록 받고 싸우시는 분들이 있는데 발음을 잘해야 될 것 같아요. 받으라. 수용하라 이 말이지요. 용납하라. 서로 서로 용납하라. 있는 모습 그 대로 상대방을, 내 주변의 사람들을 그대로 받아 주어라. 용납하라. 이 말이 에요. 수용하라. 자꾸 상대방을 바꾸려고 그렇지 말고 자기 기준으로 바꾸려고 그렇지 말고 하나님이 주신 그대로 말이지요. 우리가 다 다르잖아요. 우리가 다르다는 사실, 얼마나 희한합니까?

 

한 번 옆에 주변에 있는 사람들, 주변에 있는 인간들을 한 번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옆에, 우측에, 뒤에, 앞에. 한 번 쳐다보세요. 정말 한 번. 한 번 쳐다보시라니까. 느낌이 어떻습니까? 희한하게들 생기지 않았습니까? 희한하게 다르지 않습니까? 우리가 얼마나 희한하게 달라요. 우리가 다 다르잖아요. 다 달라요. 하나도 똑같은 작품이 없어요. 다 달라요. 그 다르게 지어 주신 창조주의 아이디어가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세요? 다르게 살아야 돼요. 다르니까. 자꾸 바꿔서 내 기준에 맞추려고 그러지 말고 다른 모습 그대로 받아 주어야 돼요. 개성도 다르고 지성도 다르고 개성, 개 같은 성질이라면서요? 지성 지랄 같은 성질. 개성도 다르고 지성도 다르고. 그러나 그 모습 그대로 상대방을 있는 모습 그 대로 수용하고 용납하고 받아 주는 것, 굉장히 중요한 것 아니에요? 서로 서로 받아 주고.너희는 서로 덕을 세우는 일에 힘써라. 덕을 세워라 서로. 서로 용납하라. 서로 인자하게 하고 불쌍히 여기며 서로 용서하라.

 

인간관계는 깊어질수록 용서를 필요로 합니다. 저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용서할 수 있는 모습이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대부분 교회 생활을 깊이 하다 보면 상처받지요? 상처를 받아요. 그래 가지고 그 다음에 뭐냐면, '다른 데 가서는 절대로 일하지 않는다. 아주 기분 좋은 교회 생활은 그냥 목사님 예배 선언하고 시작되고 5분 후에 나타났다가 축도 끝나기 전에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그리고 교회의 내부 일은 절대로 내가 간섭하지 않겠다.' 상처받은 사람들이 대부분 그런 의식을 많이 갖습니다. 저희도 보면 신도시 쪽에 있다 보니까 이 안에서, 서울 장안에서 상처받은 사람들이 이사오게 되 면 오더라구요. 대부분 다 5분 후에 등장해 가지고 5분전에 많이 사라지려고 그래요. 그리고 뭐 일하라고 그러면 ", 여기 와서는 조용히 지내겠습니다." 그래, 제가 그 분들에게 늘 하는 얘기는, "조용히 지내시려면 공동묘지로 가십시오."

 

그러나 정말 성숙한 사람은 뭐냐면 상대방의 약점 우리가 상처를 주고받을 수 있는 인간 관계의 역동성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피차가 서로가 서로를 어떻게 용서할 수가 있느냐? 또 서로 복종하라. 저 사람 안에 있는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의 형상. 저 사람 안에도 하나님의 형상이 있다. 야고보서에 있는, 너희가 너의 말로 입으로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사람을 어떻게 저주할 수가 있느냐 이런 말이 나오잖아요. 그러니까 싫은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이다. 저는 이 말씀을 읽다 가 아주 깊은 교훈을 받았어요. 목사도 목회하다 보면 힘든 사람이 있고 역겨운 사람이 있게 마련이지요. 그러면 저는 야고보서 그 말씀을 저에게 이렇게 적용시킵니다.

 

저에게 좀 부담스러운 사람이 있으면 저는 마음으로 속으로 그 사람을 늘 째려보면서 저 혼자 하는 소리가 있어요. 그 사람을 쳐다보면 서 이렇게 말합니다. '저 인간도 하나님이 만드셨다.' 하나님의 작품이지요. 하나님의 작품은 존중해 줘야지 하나님이 저렇게 만드셨는데. 옆에 사람 쳐다보시고 "당신도 하나님이 만드셨군요." 한 번 해 보세요. , 그러니까 우리가 서로의 인격을 정말 존중한다면 그 사람의 인격을 정말 존중하기 때문에 서로가 서로에게 복종할 수 있는 관계.서로 서로 위로하라.

 

얼마나 우리가 상처받고 살아요? 아프고 외롭고 위로해도 시원치 않아요. 그런데 교회까지 와서 계속 상처를 준다는 말이지요. 교인들이 상처를 주기도 하고 또 어떤 교회는 목사님이 교인들에게 막 상처를 주기도 하고.어떤 목사님에게 왜 교인들을 때리시냐고 하니까 목사님이 제가 성경에 어느 날 보니까 내 양을 치라 그래서 막 치신대요. 서로 돌아보아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서로 서로 돌아보아서 사랑과 선행을 격려하라. 만날 때마다 사랑하고 격려하고 말이지요. 서로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하고 서로 봉사하라. 서로 대접하라. 대접할 수 없거든 소접이라도 하라. 대접하기를 원망 없이 서로 봉사하라. 서로 서로 봉사하라.

 

, 그럼 어떻게 성경적인 팀웍이, 성경적인 팀 리더십이, 비브리컬 팀 리더십이 형성될 수가 있을까요?

 

첫째로 제일 중요한 것은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한다.

 

우리가 비전을 알아야 돼요. 뚜렷해야 돼요. 한 교회가 제대로 되려면 무엇보다도 비전이 뚜렷해야 돼요. 한 교회가 얼마나 비전이 뚜렷한가를 알아 볼 수 있는 제일 좋은 방법은 교회 그냥 어쩌다가 나오는 사람더러 이 교회 비전이 뭐예요? 그러면 모를 수가 있겠지요. 적어도 그 교회의 재직쯤 된다면 재직, 집사님, 권사님, 감리교회에 가니까 속장님, 겉장님 이런 분들 많이 있더라고요. 그런 분들 붙들고 말이지 요. 물어 봐요. 한 번 교회 재직들에게 이 교회의 비전은 뭡니까? 당신 교회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것을 분명하고 뚜렷하게 말할 수 없다면 그 교회 나가는 목표가 좀 희미한 거예요. 비전이 분명해야 돼요. 목표가 분명해야 돼요.

 

적어도 스텝들이 비전을 확신하고 그 비전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재직들이 라도 이 비전을 확신하고 이 꿈을 공유하고 나갈 수가 있는가? 요즘 많이 쓰이는 말이 있어요. 비전, 미션, 목적 이런 단어들이 많이 쓰여지지요. 기술적으로 이 비전과 미션이라는 단어는 아주 중요한 연관이 있는데 조금은 다르다고 생각해요. 제가 다른 비전 강의하는 분들이 이 얘기할지 안 할지 모르지만 저는 이 비전에 관한 책을 읽으면서 자꾸만 혼동이 되더라고요.

 

비전과 미션이 어떻게 다른가? 제가 이렇게 쉽게 설명을 해 보겠어요.

, 예수님의 비전은 뭐겠습니까? 예수님의 비전. 예수님의 비전은 하나님의 나라였다고 생각해요. 하나님의 나라. 그 공생애의 제 일성이 뭐냐면 회개하라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그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의 비전이에요. 하나님의 나라의 확장.

 

그러나 예수님의 미션은 뭘까요? 미션은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어떤 목표가 저는 미션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예수님의 미션은 뭐냐? 십자가에 죽으심과 부활하심으로써 인류를 죄에서 구원해 내시는 것, 그가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서 인류를 죄와 허물 가운데에서 구원해 내시는 것, 이게 그 분의 미션이었어요. 그 비전을 실현하기 위한 미션을, 그 미션을 분명히 알고 있었고 그 미션을 위해서 십자가를 향해서 한 걸음, 한 걸음 뚜벅뚜벅 걸어 가셨어요.

바울에게 물어 본다면 바울의 비전은 뭘까? 바울의 비전은 이방인 선교다.

 

크게 비전은 커다란 그림. 우리의 가슴을 설레게 하는, 감동시키는 큰 그림 이 바로 이 비전이에요. 비전. 그러나 미션은 뭡니까? 그것은 복음을 전하여 교회를 개척한다. 그것이 아마 바울의 미션이었을 거예요. 그래서 바울은 가는 데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고 그냥 둔 것이 아니라 복음을 전한 사람들로 하여금 교회를 이루게 하셨어요. 처치 플렌팅을 하셨어요. 그래서 교회를 설립하셨다는 말이지요.

 

조금 다른 각도의 다른 얘기를 해 보면 마하트마 간디, 간디의 비전은 뭘까요 ? 간디의 비전은? 자유로운 인도, 프리 인디아. 이것이 아마 마하트마 간디의 비전이었을 것입니다. 인도가 자유 하게 되는 것, 그러나 그것에 대한 미션이 뭐냐? 미션이 뭐였냐 하면 논 바이올런스. 무저항 운동을 통해서 영국의 압제에서 해방시킨다. 논 바이올런스 운동을 통해서 영국의 압제에서 우리 민족을 독립시킨다. 미션은 좀 더 구체적인 것입니다.

 

여러분의 교회의 비전은 무엇입니까? 그리고 미션은 무엇입니까? 저희 교회도 교회 나름대로 창립 비전이 있었고 또 5년을 지나면서 저는 계속 기도했어요. 앞으로 우리 교회의 방향이 뭐냐? 그래서 저희 교회 비전 스터디 커미티도 만들고 6개월, 1년 동안 연구하고 공부하고 지난 5월에 저희 교회에 서 축제를 하면서 이것을 노래로 만들고 연극을 하고 합창제를 하면서 계속 교인들에게 비전에 관한 이야기를 같이 나누었습니다. 뭐 여러 가지가 있지만 민족을 치료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그 미션이 뭐냐? 우리 교회는 텐트 메이커 미션(tent maker mission), 평신도 선교사를 만들어 세우고 파송하겠다. 학교의 교사들 이 그냥 학교로 가는 것이 아니라 선교사의 훈련을 받고 선교사의 마인드를 가지고 선교사로 교회에서 파송을 받아서 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친다면 학교가 바뀌지 않겠느냐, 직장이 바뀌지 않겠느냐, 그들이 해외에 나가면 선교사 의 역할을 할 수가 있지 않겠느냐? 그것을 통해서 우리 민족을 치유하고 세상 을 변화시키는 데에 기여하겠다.

 

우리 교회에 보니까 전문 직업인들이 많아요. 직업인들에게, 이 많은 직업인들을 보내 주신 이유는 아마도 이런 방향을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 같다. 기도하면서 그 비전을 캐치(catch)하고 비전을 함께 스터디하고 비전을 나누고 그랬더니 우리 교회에 전혀 그렇게 공부 많이 하지 못하신 그런 분들도 계시는데 그런 분들도 비전, 비전 괜히 그러고 기도할 때마다 민족을 치유하고 세 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되게 하옵소서. 하고 한참 하다 보면 그것을 믿고 될 수 있을 것 같은 흥분을 하고 또 가슴이 열리고. 그게 비전이에요. 그게 비전이고 그게 미션이라는 말이지요. 공동체의 비전을 공유한다.

 

그 다음에 두 번째 사역이 우선하는 팀웍을 형성한다.

 

사역이 우선하는 팀웍을 형성한다. 이건 그 다음의 말하고 중요합니다. 사역 이 우선하는 팀과 조직이 우선하는 팀에는 차이가 있다. 그 빌헐이라는 제자 훈련가, 한국에도 다녀가신 일이 있습니다 마는 이 분이 <21세기 교회의 변혁>이라는 책에서, "조직만을 강조하는 교회로는 21세기를 감당할 수 없다. 한국 교회는 지나치게 조직을 위한 조직이 많다." 저는 이렇게 느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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