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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나를 기념하라(고린도전서 11:24-2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5.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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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스턴의 교외에 위치한 병원의 목사로 봉사하고 있던 패트 노벡은 어느 여름, 병명이 밝혀지지 않은 질병으로 입원한 환자를 방문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습니다. 존이라는 60대의 남자는 어떤 검사를 해보아도 이상이 발견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날로 쇠약해졌으며, 벌써 2주일 동안이나 아무것도 삼킬 수조차 없었습니다. 간호사들은 있는 모든 것들을 시도하다가 실패하고, 결국 목사의 사무실을 두드렸던 것입니다.


패트는 존을 찾아가서 대화를 나누던 주님께서 자신에게 무엇인가 특별한 일을 시키려 하심을 느꼈습니다. 존에게 성찬을 받고 싶은지 물어야 한다는 생각이 떠올랐던 것입니다. 패트는 성령이 이끄시는 대로 했습니다. 순간 존이 울음을 터뜨리며 소리쳤습니다. “그럴 없어요! 죄는 용서받을 수가 없어요!

 

패트는 ‘누구든지 올바른 마음가짐 없이 성찬에 참여하면 자기 자신을 정죄하는 것과 같다’는 바울의 경고를 알려 주었습니다. 그리고 존에게 죄를 고백하기를 원하는지 물었습니다. 존은 감사한 표정으로 끄덕였습니다. 패트가 기억하기로 존의 고백이 특별히 엄청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럼에도 죄는 존의 인생을 비참하게 만들었다. 존은 회개하고 흐느꼈으며, 패트는 그를 껴안으며 그의 죄가 사함 받았다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함께 성찬을 나누었다. 패트는 고린도전서 11장을 인용하면서 엄숙하게 성찬 예식을 거행했다. 존은 빵을 입에 넣고 천천히 씹었다. 그리고 포도주를 받아 마셨다. 그는 이미 자유로워졌다. 3 만에 존은 병원을 자기 발로 걸어서 나갔다.- 「이것이 교회다」/ 찰스 콜슨

 

구원의 은혜를 시시때때로 잊고 살아가는 우리에게는 성찬식을 통해서   은혜를 현재적으로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설교(말씀) 통해서 우리의 믿음을 불러 일으키고, 성례를 통해 믿음을 강화시킵니다. 기독교는 오직 가지 성례, 세례와 성찬만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세례는 믿음을 인치고, 성찬은 그리스도를 먹고 마셔 우리의 믿음이 강건해지도록 도우시는 은혜입니다. 세례는 개인에게 일평생 번만 시행되는 것에 반하여 성찬은 지속적으로 시행됩니다. 세례는 신앙을 고백하는 특정 개인에게 시행되지만 성찬은 세례에 참여한 모든 신자들에게 시행됩니다.

 

1.성찬에 참여해야 할까요?

 

성찬은 단순히 인간이 만든 제도가 아니라 주님께서 제정하신 것입니다. 23절입니다. 내가 너희에게 전한 것은 주께 받은 것이니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떡을 가지사. 성찬은  예수께서 잡히시던 밤에 행하신 예식입니다. 예수께서 성찬을 행하시던 때가 언제인지 아십니까? 가롯 유다는 돈을 받고 예수님을 팔아 넘길 것을 아시고 만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번씩이나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하셨던 날입니다. 제자들이 예수님을 버려두고 도망칠 것을 아시면서 제자들과 만찬을 가지셨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잡히시던 밤에 성찬을 향하신 것은 제자들의 신앙을 강화시켜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날 밤에 예수님이 떡을 가지시고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24절입니다.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25절입니다. 후에 또한 그와 같이 잔을 가지시고 이르시되 잔은 피로 세운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최후의 만찬을 가지신 것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게 것을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성찬은 예수님이 우리에게 십자가의 사건, 복음의 감격을 다시 회복하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떡을 가지사 축사하시고 제자들에게 떼어 주실 어떤 심정이셨을까요?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몸이니 이것을 행하여 나를 기념하라. 그때까지만 해도 제자들은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실 것을 여러 말씀하셨지만 그것 자체를 받아들일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떡을 떼어 주실 때는 자신의 몸이 십자가에서 갈기갈기 찢기시는 장면을 예상하시면서 나누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 잔을 가지시고 잔을 피로 세운 언약이니 이것을 행하여 마실 때마다 나를 기념하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마리부터 발끝까지, 마지막에는 창으로 옆구리에서 피를 쏟아 주셨습니다. 흘림이 없이는 사함이 없다고 하셨습니다. 구약 시대에 사람이 죄를 지었을 때는 소나 양으로 희생 제물을 바쳐야 했습니다. 자신의 죄를 짐승에게 전가하고 짐승을 피를 흘려 죄가 사함받는 예식을 행하였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의 모든 죄를 예수님이 대신 담당하심으로 십자가 위에서 흘려 죽으심으로 단번에 우리의 모든 죄를 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 거듭난 신자는 지속적으로 영적인 생명력을 얻기 위해 예수님의 몸과 , 그분의 죽으심의 효력을 받아야만 합니다. 세상에서 우리가 죄악을 이기고 거룩한 삶을 살아가기 위해 우리는 보혈의 능력을 힘입어야 합니다.  

 

2. 성찬에 누가 참여해야 하나요?

 

우리가 성찬식에 참여하려고 언제나 신경 쓰이는 말씀이 있습니다. 27, 28절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주의 떡이나 잔을 합당하지 않게 먹고 마시는 자는 주의 몸과 ; 대하여 죄를 짓는 거셔이니라 사람이 자기를 살피고 후에야 떡을 먹고 잔을 마실지니라. 조금이라도 마음에 꺼리끼는 죄나 허물이 있으면 성찬에 참여하지 말라는 뜻일까요?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회에서 주의 만찬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것에 대해 책망하고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1 20절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함께 모여서 주의 만찬을 먹을 없으니. 이유가 무엇일까요? 초대교회에서는 성만찬을 갖기 전에 애찬을 나눔으로써 성도의 교제를 가졌습니다. 교인들이 각자 음식과 음료를 가지고 와서 서로 나누어 먹었습니다. 그런데 부자들은 가난한 자들이 일하고 돌아오기까지 기다리지 않고 그들이 가져온 음식을 자기들끼리 먼저 먹고 마셨습니다. 그러다 보니 가난한 자들은 부끄러움을 당하며 배고픈 상태로 집으로 돌아가야 했습니다(22).

 

사도 바울은 이러한 폐단을 지적하면서 본문 33절에서 형제들아 먹으러 모일 때에 서로 기다리라고 권면합니다. 가난한 자들이 하루 종일 일하고 교회에 와서 애찬을 갖는다 그들을 생각해서 기다려 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누구든지 시장하거든 집에서 먹고 오면 된다는 것입니다. 성찬을 앞두고 이렇게 서로이 마음을 상하게 하는 것은 성찬의 의미를 제대로 알지 못한 것으로 책망하고 있습니다(34). 이러한 자세는 성만찬의 본질에 정면적으로 위배되는 것입니다. 당시에 고린도 교회는 주의 만찬이란 이름으로 모였지만 부유한 자들의 잘못된 행동으로 인해 자신들의 만찬으로 변질시켰던 것입니다. 몸에 참여하는 거룩한 성찬이 오히려 가난한 사람들을 민망하게 교회에 해로운 영향을 끼쳤던 것입니다.

 

성찬에 참여하기 위하여 먼저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고린도 교회의 일부 성도들은 성찬을 자신들의 배를 채우는 식사로만 생각하였습니다. 가난한 성들은 수치심을 느끼게 하고 분란을 초래하였습니다. 이는 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일로 인해 그들은 징계를 받았습니다. 30-32절에 보면 약한 자와 병든 자가 많오며 심지어 일로 인해 죽임을 당한 사람도 적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성찬예식을 아무런 생각없이 참여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묵상하며, 자신이 어떠한 존재인지 돌아보며 십자가의 은혜가 아니면 없는 존재임을 확인해야 합니다.

 

고린도전서 10 16, 17절입니다. “”우리가 축복하는 축복의 잔은 그리스도의 피에 참여함이 이니며 우리가 떼는 떡은 그리스도의 몸에 참여함이 아니냐 떡이 하나요 많은 우리가 몸이니 이는 우리가 떡에 참여함이라. 하이델 베르크 요리분답에서는 누가 주의 성찬에 참여할 있습니까?라는 질문에 이렇게 답합니다. 성찬에 참여할 있는 사람은 자기의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 그러나 그리스도의 고난과 죽음에 의해 자기의 죄가 사하여지고 남아있는 연약성도 가려졌음을 믿는 사람, 또한 자신의 믿음이 더욱 강하여지고 돌이킨 삶을 설기를 간절히 소원하는 사람이 참여할 것입니다.

 

그러면 죄가 있는 사람은 성찬에 참여하지 말아야 할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우리는 회개하면서 성찬에 찬여해야 합니다. 우리는 아무런 자격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는 믿음으로 성찬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구약으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약속이 그리스도를 통해 성취되었음을 기념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찬에  합당치 못한 죄인을 받아 주신 은혜에 감사하며 우리 또한 주님이 가신 길을 걸어가게 해달라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주님의 고난과 십자가의 소통에 대해 단순히 슬퍼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오히려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삼아 주시고 주님의 식탁에 초대해 주신 것에 감사하며 주님의 몸된 교회됨을 하나 됨을 이루어 가며 섬기는 마음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3. 성찬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얻는가?

 

성찬은 누구를 위한 것인가요? 고린도전서 11 24절에 전반절에 의하면 이것은 너희를 위하는 몸이니. 성찬은 우리를 위하여 주님이 제정하신 예식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이 우리를 위해 찟기셨고, 그리스도의 피가 나를 위해 흘리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머리는 가시관에 찔렸습니다. 손과 발은 못에 박혔습니다. 허리는 창에 짤라셨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이 죽음이 죄인을 위한 대속의 제물로 돌어가심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돌아가셨을까요? 바로 나의 때문입니다. 어디에서 가장 확신할 있을까요? 성찬식을 통해서 입니다. 눈으로 떡이 떼어지고 피가 쏟아지는 것뿐 아니라 그것이 우리에게 분배되는 것을 눈으로 확실히 봅니다. 성찬에 참여하는 사람은 먼저 자신이 죄인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그분의 대속을 필요로 합니다. 

 

첫째로 떡과 포도주가 육신의 생명을 유지키겨 주듯이 십자가에 달리신 주님의 몸과 흘리신 피가 우리 영혼을 영생으로 이끄시는 참된 양식과 음료라는 사실을 가르쳐 줍니다.

 

둘째로는 우리가 성찬에 참여함으로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지체로 연합되어 있다는 확증을 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성찬은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친밀한 교제를 가능하게 합니다. 또한 성도들 간에 서로가 교통하며 하나가 되어서 서로 섬기는 교제를 돈독케 합니다. 

 

셋째로 떡을 먹고 마신다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위해 성취하신 모든 , 구체적으로 말하면 사함, 몸의 부활과 영생을 누린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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