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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화평케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마 5:9),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4. 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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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평은 평화, 평안을 말합니다. 성경은 에덴동산에서 평화로 시작해서 영워한 평화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에덴동산에서부터 평화가 깨어지고 말았습니다.

십자가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평화가 되셨습니다.

 

성경에서 평화라는 단어는 400회 가량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하시지만 세상에는 평화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불러 회복하게 하시고 타락 이후 잃어버렸던 것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상실된 이 세상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우리에게는 정치적 평화, 경제적 평화, 사회적 평화, 가정적 평화, 그 어느 것도 없습니다. 우리에게는 그 어느 곳에도 평화가 없습니다. 이것은 우리 마음에 평화가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인간은 서로 사이좋게 지낼 능력이 없습니다. 모든 관계가 위태위태합니다. 사람들은 전에 없이 정신적으로, 정서적으로 병을 앓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에게 특별히 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면 평화의 의미가 무엇일까요? 어떤 사람들은 평화를 갈등이나 싸움이 없는 것이라고 정의합니다. 유대인들의 인사 가운데 샬롬은 ' 전쟁이 없으시기를'이란 뜻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주실 수 있는 모든 의와 선을 가지시길' 이란 뜻입니다.

 

평화는 진리가 알려지고, 문제가 해결되며, 양쪽이 서로를 포용할 때 찾아 옵니다. 성경의 평화는 결코 문제를 회피하지 않습니다. 문제를 정복합니다. 그 문제가 때로는 분투를, 때로는 아픔을, 때로는 고뇌일 수 있습니다.

 

야고보는 "오직 위로부터 난 지혜는 첫째 성결하고, 다음에 화평하고' 라고 했습니다(3:17).평화는 결코 의를 희생해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두 사람이 자신의 죄와 실수, 그리고 서로의 증오와 잘못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바로 잡지 않으면 화해할 수 없습니다. 그렇게 해야 평화가 찾아오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 1214절은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평화와 거룩은 분리할 수 없습니다. 평화와 의는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모두 가정에서나 일터에서나 어느 곳에든지 필요없는 다툼을 피하고 싶어합니다. 그러나 진리를 희생하면서까지 다툼을 피하려 한다면 결코 평화를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은 때로는 싸움이 있은 후에 평화가 있을 수가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내게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어 왔노라"(10:34). 사람들이 당신과 행복하게 지내려면 먼저 그들이 당신에게 미치도록 화가 나게 만들어야 합니다. 먼저 칼이 떨어져야 그 칼에서 평화가 나올 수 있습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평화는 긁어 부스럼 만들지 않는 게 좋다는 그런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의에 초점을 맞추면서 진리로 다툼을 해결하는 것입니다. 평화를 막는 장애물은 불의와 거짓입니다. 평화는 의와 거룩의 결과입니다. 야고보서 318절은 "화평하게 하는 자는 화평으로 심어 의의 열매를 거두느니라'.

 

여러분의 생활에 의와 청결함과 거룩함이 있는가? 그렇다면 여러분은 평화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의 평화를 알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가장 휼륭하게 화평하게 하는 자였습니다. 평화는 인간적인 동기나 환경에서 찾아서는 안됩니다. 두 사람이 서로 다투고 있다면 문제를 회피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곧바로 문제에 뛰어들어 바르게 해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무질서의 하나님이 아니시오 화평의 하나님이십니다(고전 14:33). 하나님 없이는 화평이 없습니다. 로마서 1533절에도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살후 3:16절에는 그리스도를 가리켜 평강의 주라고 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20절은 평강의 하나님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214절은 그리스도는 우리의 화평이신지라고 하셨습니다.

 

이혼법정에서 티격태격 다투고 있는 부부가 있었습니다. 그때 네 살난 아들이 눈물을 글썽이며 아버지의 손을 잡아끌었습니다. 그런 다음 어머니의 손을 잡아끌어 잡게 하였습니다. 아들이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하신 일입니다. 그는 인간이 하나님의 손을 잡을 수 있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평화의 근원이십니다. 예수님은 평화의 현현이십니다. 성령의 평화의 대리자이십니다.

 

사람들은 말합니다. 왜 하나님이 이 세상에 전쟁들을 멈추시지 않는가? 하나님은 그러한 전쟁을 원하지 않으십니다. 예레미야 2911절에서 "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예수님은 "이것을 너희에게 이르는 것은 너희로 내 안에서 평화를 누리게 하려 함이라"(16:33). 새상의 아무리 많은 근심과 고통이 있다 하더라도 주님을 아는 사람은 평강의 안식과 폭풍우 속의 안식이 있습니다(3:15, 4:7).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화평 중에서 부르셨습니다(고후 7:15). 우리는 화평하게 하는 일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화평케 하는 자로서 무엇을 해야 합니까?

첫째 하나님과 화평하라

 

평화의 복음을 앋아들이십시오. 평안의 복음의 예비한 것으로 신을 신으라(6:15).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전가되었을 때 우리는 하나님과 화평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죄가 있을 때마다 재빨리 회개하고 고백해야 합니다. 그래야 우리와 하나님 사이에 평화가 찾아옵니다.

 

둘째 다른 사람이 화평하도록 도우십시오.

 

복음 전파는 화평하게 하는 일입니다.

 

셋째 사람들끼리 화평하라

 

그들이 서로 손잡게 하라. 이것이 항상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러나 화평하게 하는 자는 사람들 사이에 다리를 놓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원수까지도 화평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이 드러나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화평한다는 것이 때로는 엄청난 대가를 치러야 하기도 하고, 때로는 불가능하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이 할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과 더불어 화목하라고 하신 것은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마가복음 95-절에서 서로 화목하라고 하셨습니다. 배우자 사이에도 적용되어야 합니다. 부모와 자녀 사이에도 해당됩니다. 성도 사이에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이웃 사람과의 관계에서도 해당되는 말씀입니다.

 

화목하게 하는 자가 따르는 엄청난 축복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향하여 개인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연약함과 죄를 참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불완전한 섬김을 받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필요를 공급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모든 위험에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모든 죄를 계속해서 용서해 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상속자로 삼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위해 모든 것을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에게 천국을 주십니다. 누가 이러한 아들일까요? 화평하게 하는 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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