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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다시 웃어봅시다, 찰스 스윈들

by liefd 2024. 1.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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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립보서에 나타난 기쁨의 원리

 

너는 나를 충실하게 섬기면서도 역시 너 자신 그대로의 모습으로 살 수 있어. 악의 종이 된다고 해서 웃지 말아야 하는 것은 아니야!

 

삶이 우리에게 던져주는 도전에 직면할 때 가장 도움이 되는 것은 기뻐하는 마음 자세이다.

테레사 수녀는 자신과 함께 칼카타의 어두컴컴하고 좁은 골목에서일하고 싶다는 어떤 사람에게 두 가지 필요 조건을

제시하였는데 그것은 열심히 일하려는 열망과 기뻐하는 마음 자세였다.

오늘날 내걸 문구는 긍정적인 태도와 기쁨이 가득한 마음 그리고 예라고 외치는듯한 얼굴 표정을 갖고 있는 사람을 나에게 보내 주십시오.

 

상황을 초월하여 사는 사람들은 대부분 유머 감각이 잘 개발되어 있다.

지속적으로 웃는 사람들은 꼭 이러저러 해서가 아니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웃는다.

역경에도 불구하고 웃었던 한 사람, 바울을 만나보라(고후 11:23-28, 1:3-4, 21-25, 2:1-2, 25-29, 3:1, 4:4, 10-19).

기쁜 마음을 갖고 있는 사람은 현재에 단단히 고정되어 있는 사람이다.

나는 과거를 후회하며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는데...불현듯 나의 주께서 이렇게 말씀하고 계셨습니다.

내 이름은 현재에 스스로 있는 자란다. (헬렌 말리코우트).

 

바울이 갖고 있는 기쁨의 근원 또는 비결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믿음이었다.

 

빌립보서 1장에서 우리는 삶 가운데 웃음이 있음을 배운다.

원하는 것을 얻든 얻지 못하든 상관없이, 어려운 상황에도

불구하고, 갈등이 있을 때조차도, 웃으며 살 수 있다는 것이다.

 

빌립보서 2장에서 우리는 섬기는 가운데 웃음이 있음을 배운다.

 

빌립보서 3장에서 우리는 나누는 가운데 웃음이 있음을 배운다.

 

마지막으로 4장에서 우리는 쉬는 가운데 웃음이 있음을 배운다.

 

두 종류의 사람이 있다. 기쁨을 선택하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다.

기쁨을 선택하지 않는 사람은 웃음이 가져다주는 위안을 받을 수 없다.

기쁨은 선택이다. 기쁨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에서 비롯되는 마음의 태도이다.

 

엘라 월러 윌콕스, 운명의 바람의 시, 바람은 한 방향으로 불고 있지만, 어떤 배는 동쪽으로 어떤 배는 서쪽으로 가누나

우리가 가는 길을 정해주는 것은 바람이 아니라 돛의 방향이니라 인생의 여정을 가는 동안 운명의 길은 바다의 바람과 같은 것이니 인생의 목표를 결정하는 것은 고요함이나 고난이 아니라 내 영혼이 세운 방향이니라

 

은혜란 우리가 받을만한 자격이 없는데도 우리에게 주어지는 것이다. 평안은 우리 내면에서 생기는 것으로 밖의 상황이

결코 흔들어 놓을 수 없는 것이다. 위로부터의 은혜와 내면의 평안을 갖고 있는 사람에게 어째서 기뻐할 이유가 없겠는가?

평안은 원래 함께 묶는다는 뜻인데 한 사람의 마음과 영혼이 어떤 사람과 결합되면, 평안한 관계를 유지하게 되며,

거기서 조화가 생겨난다. 이러한 은혜와 평안의 조화가 이루어지면 자연적으로 기쁨을 선택하게 된다.

 

기쁨을 빼앗아가는 가장 심각한 세 가지 요인

 

첫째는 근심이고, 둘째는 스트레스이며, 셋째는 두려움이다.

근심은 일어날지 일어나지 않을지 모르는 일에 대한 터무니없는 염려이다. 스트레스는 근심보다 더 심각한 것이다.

스트레스는 우리가 변화시키거나 조정할 수 없는 상황, 즉 우리가 통제 밖에 있는 어떤 일에 대하여 심하게 긴장하는 것을 말한다.

반면에 두려움은 근심이나 스트레스와 다르다. 위험, 불행 또는 고통이 있을 때 느끼는 무서운 불안정이다.

 

기쁨을 빼앗아가는 이런 것들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는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1:6).

하나님을 확고하게 신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손에 맡긴다는 것이다. 어떤 일을 시작하신 그분은 그 일의 곤경을 견디고

그의 더 큰 영광을 위하여 그가 계획하신 그대로 정확하게 이루실 것이다.

우리는 바울이 항상 기쁘게 살 수 있었던 비결이 바로 행복한 추억을 갖고 하나님을 견고하게 신뢰했기 때문이었다.

세 번째 비결은 그가 동료 신자들에 대한 따뜻한 사랑을 갖고 있었다(1:7, 8).

 

존 포웰의 왜 나 자신을 밝히기를 두려워하는가, 대화의 다섯 단계

가장 바끝 쪽에 해당되는 가장 얕은 겉돌기 식의 대화 단계에서부터 가장 안쪽의 원에 해당하는 가장 친숙한 대화의

단계이다.

 

5단계는 가장 바깥쪽의 피상적인 단계로서 상투적인 대화라고 부를 수 있다.

4단계는 서로에 관한 사실을 보고하는 대화의 단계이다.

3단계에서는 생각과 판단의 영역으로 나아간다.

2단계는 감정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1단계는 가장 개인적이며 친숙한 대화로 들어가는 것이다.

 

빌립보서 1장을 정리하면 감사할 일들에 관심을 집중할 때, 하나님에 대한 신뢰감이 기쁨을 가져다준다.

하나님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할 때, 그분에 대한 신뢰감이 기쁨을 가져다준다.

우리의 사랑을 적절한 한계 안에 유지할 때, 그분에 대한 신뢰감은 기쁨을 가져다준다.

 

기쁨은 자기를 둘러싼 상황에도 불구하고 기쁨을 추구하기로 결단한 사람에게 찾아온다.

다른 사람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기뻐하라(1:15-18).

블확실 속에서도 소망을 잃지 말라(1:19-20)

그리스도가 삶의 중심이었기 때문에 만족하라(1:21)

행복을 추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가 중심이 되며 그리스도가 주관하는 삶을 키워가는 것이다.

 

세 가지 기억해야 할 사실

그리스도는 우리가 처한 상황의 차원을 넓혀 주신다.

그리스도는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마음을 빼앗기지 않도록 해 주신다.

그리스도는 우리 자신과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잠잠케 하신다.

 

우리 스스로 든든히 서는 것을 배울 때 빨리 성숙할 수 있다.

우리 삶에서 필요한 요소가 있을 때 다른 사람들을 돕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을 수 있지만, 그런 일이 일상화되어서는

안된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혼자가 아니다. 우리에게는 승리가 약속되어 있다. 우리는 다른 것도 있지만

고난을 위하여 약속되어 있다. 전투를 할 때 우리는 훌륭한 전우들과 함께 있다.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태도는 어떤 것인가?

많은 사람이 그것을 사랑이라고 대답할 것이다. 타당한 말이다.

인내라고 대답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릇된 답은 아닐 것이다.

나는 마음이 온유하고 겸손한 태도는 이기심이 없다는 말이다. 이것이 가장 그리스도인다운 태도로서 세상에 보여 줄 수

있는 것이다. 예수님은 그렇게 겸손하셨으므로, 즉 이기심이 없었으므로 항상 자기보다 다른 사람을 먼저 생각하셨다.

이기심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마음이 겸손한다는 것은 철저하게 복종한다는 뜻이다. 자신의 필요를 채우는데 급급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이 필요로 하는 것을 위해 봉사하는데 관심이 있다는 것을 포함한다.

 

헬라 철학은 지혜를 얻으라, 너 자신을 알라고 말한다.

로마는 강건하라, 너 자신을 훈련하라고 말한다.

종교는 선하라, 순응하라고 말한다.

쾌락주의는 욕정적이 되라, 너 자신을 만족시키라고 말한다.

교육은 많은 지식을 얻으라. 지식의 범위를 넓히라고 말한다.

심리학은 자신감을 가지라,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라고 말한다.

물질주의는 많이 소유하라. 자신을 기쁘게 하라고 말한다.

금욕주의는 겸손하라. 참으라. 자신을 억누르라고 말한다.

인본주의는 실력을 쌓으라. 너 자신을 믿으라고 말한다.

교만은 우세한 자리를 차지하라. 너 자신을 앞세우라.”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이기심을 버리라. 너 자신을 낮추라고 말씀하신다.

 

이 세상에 유명한 사람은 우리의 동기를 유발시켜주시지만, 우리를 변화시킬 수 있는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경우는 다르다. 너는 나의 삶을 살기 원하느냐? 여기 나의 능력이 있느니라

그는 우리 내면에 힘을 주신다. 그는 성령으로 우리에게 힘을 주신다.

 

빌립보서는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세 가지 균형을 제시하고 있다

 

1.목적과 능력의 균형(2:12-13)

구원을 이루라는 말씀은 우리의 믿음을 삶으로 나타내 보이는 것을 말한다. 우리는 구원을 이룸으로써 우리는 목적을

전부 이루는 것이며 우리의 존재 이유를 달성하는 것이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의 더 큰 영광을 위한 것이다.

그 목적을 홀로 이루어야 하는가? 결코 그렇지 않다. 여기 균형 잡힌 해답이 있다.

하나님이 우리 안에서 일하신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힘을 주시며 우리가 성실할 수 있게 하신다.

 

2. 태도와 행동의 균형(2:14-16)

부정적인 면에서 당신의 태도를 주의하라.

우리가 홀로 행하는 것으로는 원망이며, 다른 사람과 함께 행하는 것으로는 시비가 있다.

 

바울은 그리스도를 아는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의 분명한 차이 네 가지를 밝힌다.

 

비난받지 않음. 삶의 정결성을 말하는 것으로 흠잡을 데가 없고 위선적인 면이 없는 삶을 뜻한다.

순전함. 동기가 때 묻지 않고 성실한 것을 말한다.

흠없음. 제단에 드려지는 희생양에 대해 말한다. 결점이 없다는 뜻이다.

. 어둠에 둘러 싸여 별처럼 빛을 발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소리치거나 비명을 지르거나 굉장한 짓을 할 필요가 없다. 단지 빛을 발하면 된다. 원망과 시비가 없이 살면 된다. 그렇게 상이점을 보여주는 삶 자체가 그들에게 충격을 줄 것이다(5:16). 게다가 우리는 삶을 헛되이 살지 않을 것이다

]

3. 심각함과 기쁨의 균형(2:17-18)

바울은 균형 잡힌 사람이었다. 마지막을 살고 있는 것인지 모른다는 생각은 가장 심각하지만, 그는 여전히 기뻐할 수 있었다.

 

웃음은 우리의 심각한 삶을 가볍게 할 뿐 아니라, 적어도 네 가지 방식으로 고통을 통제할 수 있게 돕는다.

첫째 우리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고,

둘째로 우리를 누리는 중압감을 감소시키고,

셋째, 우리가 예상하던 일에 변화를 가져오며,

넷째 신체에서 자연적으로 고통을 죽이는 엔돌핀의 생성을 촉진시킨다.

 

구원받을 때까지만 기쁜 소식이며, 그 후로는 끝없는 죄의식의 여정이 이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죄의식 센터가 교회인

경우가 많다. 끝없이 죄의식을 건드리기 때문에 이 모든 어두움과 불확실성이 발생하게 된다.

 

균형잡힌 삶을 시작하기 위한 몇 가지 제안이 있다.

1. 자신의 공로를 인정하라는 욕구를 통제하라.

자아가 최고 통치자가 되면, 개인적인 만족의 순간을 위하여 산다. ucla 브루윈 선수단 농구단에서 수년 동안 코치로 일하며 전국 대회에서 여러 번 우승했던 존 우든은 다음과 같이 훌륭한 조언을 한다.

재능은 하나님이 주시는 것이니, 겸손하라. 명성은 인간이 주는 것이니 감사하라. 자만은 자아가 주는 것이니, 조심하라.

 

2. 책임을 맡으려는 자아의 취향을 정복하라.

오래 살면 살수록 당신은 그리스도가 당신 삶을 통치하시는 것이 좋다는 사실을 더 많이 깨닫게 된다.

루터가 교황, 고위 성직자, 추기경, 황제가 듣는 자리에서 말을 하기 직전에, 한 친구가 수도사인 루터에게 물었다.

형제 루터여 두렵습니까? 루터는 이렇게 놀라운 대답을 했다. 아닙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교황과 그의 모든 추기경보다 더욱 대단하고 큰 교황인 내 자아입니다. 우리는 자아라는 주인을 권좌에서 끌어내리고 그 권좌에 합당하신

우리 주께 그 자리를 내어 드려야 한다.

 

삶을 즐겁게 해주는 친구들

여행을 다니며 내가 배운 것이 있다면, 사람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것이다. 돌봐주는 사람, 도움이 되는 사람,

재미있는 사람, 친근한 사람, 사려 갚은 사람 등 다른 사람의 존재가 필수적이다.

과정에 몰두하여 그 과정을 마련한 원래의 중요한 목적을 잊어버리는 일이 얼마나 쉽게 일어나는지 모른다.

사람은 서로에게 중요하다. 무엇보디도 사람은 하나님께 중요하다. 주님이 가장 좋아하시는 것은 연합된 노력이다.

하나님과 사람이 함께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는 것이다.

 

삶의 열정, 삶을 포기하지 않으려는 의지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려는 열망이 우리 안에 솟아나려면,

우리 인생의 항해에 기쁨이 있어야 한다. 오늘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기쁨, 즉 말로 설명할 수 없는 기쁨이다.

 

성취욕이 강한 사람들을 위한 복된 소망

 

육십이 넘은 이 나이에 나는 꿈꾸던 모든 일을 성취했으며, 그에 따른 상도 받았습니다.

문제는 고생하여 이룩한 것을 즐기고 누릴 방법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내가 진심으로 웃었던 때가 언제인지 기억할 수

없습니다. 좀 더 행복해지려면 더욱 노력해야 할 것 같습니다.

우리 모두는 인간적인 칭찬을 들으면 마음이 따뜻해진다.

우리는 우리 노력이 인정을 받고 보상을 받을 때 좀 더 잘하고 싶은 동기가 생기는 것이다.

하지만 인간의 마음 속 깊은 곳에 결여되어 있는 것을 채워줄 수 없다는 사실을 얼마나 쉽게 잊어버리는가?

그런 것은 지속적인 만족을 줄 수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런 일들로 하나님의 은혜를 살 수 없다는 것이다.

 

우리는 일하고 밀어붙이고 노력하여 우리가 가치 있는 사람이고 우리가 최고이며 우리는 최상의 명예를 받을 만한 사람이라는 것을 증명하기 원한다.

이것은 교만이다. 왜 그런가?

첫째, 하나님이 주는 의는 필요하지 않다.

둘째, 내 자신이 노력하여 지속되는 기쁨을 찾을 것이다. 이 둘은 환상의 섬에서 발견되는 양쪽으로 막힌 길이다.

 

교만이 자리 잡았을 때 항상 자동적으로 나타나는 표식이 있는데 그것은 즐거움이 사라진다는 것이다.

체스톤은 다음과 같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미친 사람은 항상 심각하다. 그들은 유머가 없어서 미친다.”

행악하는 자들을 삼가라(3:2). 그들의 메시지는 더 많이 일하라. 더 열심히 일하라. 더 오래 전도하라.

더 열심히 기도하라는 것이다.

 

당신이 어느 정도가 되어야 하나님이 만족하실지 모른다면 당신은 계속해서 수치를 느낄 것이며 강박관념을 갖게 될

것이다. 당신은 결코 쉼을 누리지 못할 것이다.

육체를 신뢰하는 사람은 은혜의 요점을 전혀 모르는 사람이다.

 

굳게 잡고 사랑하라

 

래드패스의 말씀이 나의 마음 깊숙한 곳에 불타는 듯한 감동으로 들어왔기 때문이다.

불가능한 일을 하기 원할 때 하나님은 불가능한 사람을 택하여 그를 깨뜨리신다.”

하나님과 나의 관계는 이제 노력이 아니라 믿음에 기초를 두게 된다. 얼마나 안심이 되는 일인가?

 

바울의 생활 철학 다섯 가지

1. 완전이 아니라 진보를 계획해야 한다.

그가 잡지 못했다는 것은 그리스도와 같아지는 것이다. 불완전한 세상에서 불완전한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사는

우리 자신 역시 불완전하며, 날마다 불완전함을 보여주며 살고 있다.

이 사실을 기억하고 있는 사람은 행복하다.

 

2. 과거는 지나갔으므로 잊어버리라

바울이 원래 사용한 단어는 완전히 잊어버린다는 것을 뜻한다.

한 경기에서 다른 선수들을 앞선 주자에게 사용되는 용어였다.

일단 선두에 선 선수는 결코 뒤를 돌아보지 않을 것이다. 자기 어깨 너머로 뒤를 돌아보며 사는 사람은 가장 불행한

사람이다.

 

과거에는 무엇이 있는가? 오로지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위대한 성취나 업적으로서, 그것을 회상하면 우쭐해지기도 하고 냉담해지기도 한다. 아니면 실패나 패배로서 죄

의식과 수치심을 일으키는 것이다. 우리 마음에 떠도는 과거의 기억력만큼 교활하게 우리의 기쁨을 빼앗아가는 것도 없다. 바울은 과거를 잊으라고 말한다.

 

3. 미래에 우리에 소망이 있으니 그것을 얻도록 하자

삶이라는 경주에서 우리는 앞만을 바라보아야 한다. 어떤 꿈, 즉 어떤 특정한 목표를 열정적으로 좇고 있는가?

 

4. 비결은 각오하는 태도이다. 그 태도를 유지하라.

너희가 달리 생각하면 하나님이 이것도 너희에게 나타내시리라.

그러나 사도 바울은 강인하게 매달리며 결단력있는 태도를 유지하는 면을 모두 갖고 있었다(1:2-4).

시련과 시험은 우리의 인내에 영향을 주며 인내가 자랄 기회를 준다.

나는 이런 과정을 도미노 효과(하나의 사건이 다른 일련의 사건을 야기시크는 누적효과)라고 본다.

그렇다면 기뻐하십시오. 길이 험하면, 당신의 인내가 성장할 계기가 되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당신을 놀라게 할 변화는

없을 것입니다.

 

5. 높은 기준을 함께 지켜야 한다

굳게 붙드는 사람이 다른 사람과 함께 노력할 때는 더 잘 한다. 벤자민 프랭클린이 독립선언서에 싸인을 하며 말했던 것

같다. “우리는 모두 함께 붙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각각 흩어질 것이 확실하다.”

우리는 어디까지 이르렀든지 그대로 행할 것이니라.

우리가 선을 행하되 낙심하지 말지니 피곤하지 아니하면 때가 이르매 거두리라(6:9).

주의 일에 더욱 힘쓰는 자들이 되라(고전 15:58).

어제의 영광과 고난을 잊어버리고 내일의 도전적인 기회에 초점을 맞추고 그러는 과정 중에도 올바른 태도를 고수하며

우리가 함께 있다는 것을 기억하는 것이다.

 

미친 세상, 나쁜 세상, 슬픈 세상, 그러나

 

내가 최근 읽었던 글의 내용처럼 웃음은 소망의 마지막 무기이다.” 그리고 지금이 우리가 그 무기를 써야 할 때라고 나는 생각한다."

우리가 다른 사람과 다른 점은 기쁨이 있다는 것이다. 토저는 이렇게 사실적으로 지적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어쨌든 이상한 사람이다. 그는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분을 사랑하며, 볼 수 없는 분과 날마다 친숙하게 이야기를 하며, 다른 분의 공로로 천국에 가리라는 것을 알고, 충만하게 하기 위하여 자신을 비우며, 의롭다는 선고를 받기 위하여 자신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인정하며, 일어서기 위하여 아래로 내려가고, 가장 약할 때 가장 강하며, 가장 가난할 때 가장 부요하며, 가장 비참함을 느낄 때 가장 행복하다. 그는 살기 위하여 죽으며, 갖기 위하여 버리며, 소유하기 위하여

주며, 보이지 않는 것을 보며, 들리지 않는 것을 들으며, 지식을 초월하는 것을 안다.

 

그리스도의 이상한 전략은 효력이 있다

 

1. 외부로부터 오는 압박과 고통 가운데서 우리는 내적인 평안을 가질 수 있다(16:13, 33).

 

2. 하나님의 능력 덕분에 우리는 격리되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그렇다고 고립되어 사는 것은 아니다(17:1-3, 11-15).

 

3. 우리는 각각 독특하지만 연합해야 한다(17:16-17, 21, 23)

 

불협화음의 해소

 

큰 소리로 싸우는 신부라는 책에서 카렌 메인은 결혼식장에 일어난 위기의 순간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멋진 신랑이 반짝이는 구두, 단정한 머리에 흠이 하나도 없는 예복을 입고, 미소를 지으며, 기대에 차서 신부가 들어오기를 열렬히 기다리고 있다. 우아한 흰 드레스를 입고 미소 짓고 있는 아름다운 여인이 아니라, 절뚝발이 신부가 그에게

다가오고 있는 것이다. 그녀의 옷은 더럽고 찢어져 있으며, 다리는 뒤틀려 있는 것 같이 보인다. 찢겨진 소매 사이로 드러난 팔은 부딪힌 상처로 흉하다. 코에서 피가 흐르고 있다. 한쪽 눈은 멍들고 부어 있으며, 머리칼은 헝클어져 있다.

그리스도께서 심하게 싸우고 있는 신부 곁에 서 계신 모습을 그려 보라(5:25-27).

 

청교도인 토마스 브룩스, “늑대가 양을 괴롭히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다. 그러나 양이 서로를 괴롭히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교회 안에서 평상시 진실하며 좋은 의도를 갖고 있는 성도들이 지나간 자리에 병폐와 긴장된 관계, 불편한 감정이 남는 경우가 있다.

정치가는 선거인의 51%의 후원으로 만족하지만, 목사들은 자기 의견을 표현하는 교인 중 한 사람이라도 반대편이 되면 고통을 느낀다.

 

고린도와 갈라디아, 로마와 데살로니가 같은 곳의 그리스도인들은 오늘날 우리 마을이나 도시에 살고 있는 사람들과

똑같은 문제들을 갖고 있었다(4:1-3)

신자들 사이에 불협화음으로 말미암아 생긴 문제들을 해결하려면 자신의 만족이 아니라 주 안에서 견고하게 서야 한다

(1:27, 5:1, 살후 2:15).

 

주안에서 굳게 서라고 그렇게 강조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화합을 유지하는 가장 기본적인 원리가 되기 때문이다. 굳게 선다는 것은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르는 것이다.

해결책을 찾으려고 한다면 양측이 모두 주님에게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싸움이 매우 깊고 오래되었을 때는 종종 제 삼자가 필요하다(4:3).

 

 당신이 화홰를 도와주어야 하는 참으로 함께한 자가 되리면 세 가지 목표를 기억하라

궁극적인 목표: 화해(훈육이 아님)

 

전체적인 태도: 은혜(완력이 아님)

 

공동기반: 그리스도(논리, 교회, 전통 또는 당신의 의지가 아님)

 

얽매인 것을 벗어 버리고 다시 웃자

 

하나님은 그들을, 그리고 당신과 나를 자유의 기쁨을 누리고 그 책임을 지도록 만드셨다. 어떻게 그렇게 하셨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생각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지성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사랑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감정을 주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자유롭게 순종할 수 있도록 우리에게 의지를 주셨다.

 

18세기 프랑스 철학자, 장 자크 루소, 인간은 태어날 때는 자유롭지만, 그 후로는 어디에서든 사슬 묶여 있다라는 말을

했다.

근심이 우리의 생각을 누르고 진리를 질식시켜 버릴 때, 우리는 열매를 맺을 수 없다.

정신적으로 괴로움을 당하고 정서적으로 중독이 되어 영적으로 질식 상태에 이르는 것이다.

근심은 우리의 동기와 기쁨의 생명줄을 끊어버린다.

 

근심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책

 

첫째 성경이 당신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으라(4:4-7)

기뻐하라(4), 마음을 풀라(5, 관용을 알게 하라), 쉼을 누리라(7)

 

유머 작가 프레드 알렌, 웃음을 찹는 것은 해롭다고 했다. 그 이유는 발산되지 못한 웃음은 아래로 내려가

엉덩이로 퍼지기 때문이다.

 

우리의 시각 교정

당신의 마음을 긍정적인 생각으로 채우라(4:8)

격려가 되는 모범을 집중하여 바라보라(4:9)

모든 상황 가운데 평강의 하나님을 찾으라(4:9)

 

재미있게 살면서 성장할 수 있다

 

나이는 사실의 문제이다. 반면에 성숙은 선택의 문제이다.

진정으로 물어보아야 할 질문은 당신은 할 수 있느냐가 아니고 당신은 하려는 의사가 있느냐는 것이다(4:14-15, 벧전 2:1-25:14:6:1).

하나님의 목표는 우리가 과거의 모든 실패와 잘못에도 불구하고 성숙을 향해 움직이는 것이다. 상황이 좋지 않고

과거의 기록이 조금 떨어질지라도 우리의 태도가 변화하여 높이 비상할 수 있다.

하나님의 특기는 우리의 약점을 상기시키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강점을 새롭게 하시는 것이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받아들이라.

 

성숙은 어떻게 나타나는가

우리 자신보다 다른 사람에 대한 관심이 커진다. 지식 뿐 아니라 지혜와 이해의 마음이 생긴다. 높은 이상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을 이루기 위한 훈련을 감수한다. 도움이 필요한 경우를 보면 사랑으로 참여한다.

 

바울의 성숙 네 가지

1. 그는 다른 사람을 인정한다(4:10).

우리가 다른 사람의 성격과 동기와 마음에 대하여 감사를 표시할 때는 그들을 개인적으로 인정하는 것이다.

2. 그는 만족한다(4:11)

인정하는 태도가 귀한 만큼 성숙의 확실한 척도는 만족이다. 자족은 은사가 아니라 배워서 터득하는 것이다.

만족으로 번역되는 헬라어는 무슨 일이 있어도 나는 상관하지 않는다는 것이 아니다.

그리스도의 충족함 가운데서 평안하게 있는 것을 의미한다.

3. 그는 융통성이 있다(4:12)

비전-풍부-배고픔-배부름, 궁핍- 풍부

4. 그는 확신이 있다(4:13)

힘과 능력을 주시는 그리스도의 도움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내게 시키시는 일을 모두 할 수 있습니다.

 

기쁨과 은혜가 충만한 작별

 

우리는 무엇을 배웠는가?

1장에서 우리는 삶 속에 있는 기쁨을 발견했다 기억하는가?

그리스도가 나의 중심에 있는 한 그가 주시는 기쁨을

빼앗아갈 자가 없다

 

2장에서 우리는 섬길 때 기쁨이 있음을 발견했다.

그리스도가 우리의 모범이 되신다. 그는 순종과 수용의 태도로 세상 사람들을 섬기기 위하여 하늘의 영광을 버리고 오셨다.

 

3장에서는 순종할 때의 기쁨이라는 메시지가 눈에 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목표이시다. 그리스도의 의에 비하면 인간의 노력은 솜사탕에 지나지 않는다.

 

4장에서 우리는 쉬는 가운데 기쁨이 있음을 배웠다.

그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가 만족할 수 있는 이유가 되기 때문이다.

 

헌신된 기도, 지속적인 사랑, 진정한 웃음, 이런 것들은 얼마나 귀한 유산인가? 이런 것들은 전수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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