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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피차 복종하라(엡 5:18-2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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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인을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고통 당하신 그리스도를 삶의 구주로 모실 때 성령은 우리 안에 내주하십니다. 그 순간부터 그리스도인의 삶은 시작됩니다. 성령의 인도함을 받는 삶을 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입니다. 본문에서는 "오직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5:18)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는 성령으로 충만하여 성령으로 지배받는 삶을 살라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어떤 결과가 나타납니까? 성령충만의 결과를 19-21절에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1) 성령충만의 첫 번째 결과는 기쁨입니다(19).

성령충만한 사람은 주님께 마음으로 노래하며 찬송하게 됩니다. 그 찬송은 우리에게 기쁨이 있을 때 그 기쁨이 찬양으로 표현되는 것이다. 시편기자는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42:8)라고 노래했습니다.

 

바울과 실라는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을 때 하나님을 찬미하였습니다(16:25). 고통 중에 가장 열악한 환경가운데서도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는 찬양이 있었습니다. 성령충만한 사람은 마음으로 부르는 노래가 있는 것입니다.

 

2) 성령충만의 두 번째 결과는 감사입니다(20).

성령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의 은혜를 깨달아 감사하는 삶을 살게 됩니다. 은혜를 알 때 감사하게 됩니다. 성령충만한 삶의 그 두드러진 특징은 감사하는 삶입니다. 어떤 사람은 '가정은 내가 최상의 대접을 받으며 불평을 가장 많이 하는 곳이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가장 좋은 대접을 받는 곳에서 가장 많은 불평을 하게 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중세 때 이런 전설이 있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두 천사에게 성도들의 기도를 모아오라는 사명을 주었습니다. 한 천사는 성도들의 간구(청원)를 모으는 일이요, 다른 천사는 성도들의 감사를 모으는 일이었습니다. 간구를 모으는 천사는 너무 많아서 한 번에 가지고 갈 수 가 없었습니다. 반면 감사를 모으는 천사는 한 손으로 등에 지고 갈 수 있었습니다.' 이 말은 한낱 이야기에 불과하지만 아니지만 우리에게 교훈 하는 바가 큽니다. 우리 기도 속에 구하는 것은 많아도 진정한 감사는 적다는 말입니다. 감사하는 삶이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어떤 사람이 성령충만하고,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는 사람인지를 알 수 있는 방법은 얼마나 감사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성령충만한 삶을 살게 될 때 감사가 넘쳐납니다.

 

3) 성령충만의 세 번째 결과는 피차 복종하는 것입니다(21).

성령충만한 삶의 결과인 피차 복종하는 것에 대하여 생각해보고자 합니다.

 

I. 피차 복종한다는 것의 의미

1) 소극적인 의미

 

피차 복종하는 사람은 생각하고 행동하고, 생각하고 말하는 사람입니다. 인생의 많은 문제가 생각하지 않고 행동하고, 생각하지 않고 말하는데서 오는 것입니다. 충동적인 행동으로 인해 관계가 파탄됩니다. 충동적인 행동에 의해 불행이 옵니다. 말하기 전에 좀더 생각했더라면, 행동하기전 좀더 생각했더라면 하는 후회를 하게 될 때가 많습니다. 구원받은 사람의 두드러진 특징은 성령을 좇아가는 삶,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입니다.

 

어리석은 사람은 주님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지혜로운 사람은 주님의 뜻을 이해하는 사람이다(5:17). 생각하는 사람은 말씀을 묵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할 때 말씀의 지배를 받게됩니다. 성령은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역사 하십니다. 성령은 말씀을 벗어나지 않습니다.

 

성령충만함을 받아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사람은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이기적이거나 자기중심적이 되지 않습니다. 이기적이요 자기중심적인 사람은 피차 복종하는 것을 모르는 사람입니다. 한편이 이기적이게 되면 다른 한편은 불행하게 됩니다. 남편이 이기적인 사람이면 아내는 불행하게 됩니다. 피차 복종할 때 이기적이거나. 자기 중심적인 사람이 되지 않습니다.

 

자기 주장을 중단해야 합니. 자기 주장은 '복종'의 반대입니다. 복종한다는 것이 진리에 대한 소신이 없다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또한 자기 의견이 없다는 말도 아닙니다. 자기의 주장이나 자기의 생각을 양보할 수도 없고, 굽힐 수도 없고 반드시 자기 생각대로 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안 된다는 말입니다. 의견은 있어야 하지만 고집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성경은 "제 고집대로 하지 아니하며"라고 말씀합니다(1:7). 이는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성령의 지배를 받아 성령충만한 삶을 살아가는 사람에게서 나타나는 특징입니다. 고집을 부리면 '파탄'을 불러오고,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줍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인이 되려고 하지 않는다. "너희 중에 있는 하나님의 양 무리를 치되 부득이함으로 하지 말고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자원함으로 하며, 더러운 이를 위하여 하지 말고 오직 즐거운 뜻으로 하며, 맡기운 자들에게 주장하는 자세를 하지 말고 오직 양 무리의 본이 되라. 그리하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시들지 아니하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으리라"(벧전5:2-4) 주인이 되려하지 말라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양을 인도하는 목회자들에게 하신 말씀이지만, 이 말씀은 일반적인 원리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주장하는 자세는 주인이 되려고 하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에게 주인이 되려고 하게 될 때 다른 사람을 경멸합니다. 교회는 주님의 몸입니다. 우리 몸의 어떤 지체 중에 어떤 한 부분을 있으나마나하고, 아름답지도 못한 지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발가락이 없어져야만 가락의 중요성을 깨닫습니까? 모두가 다 중요합니다. 그러므로 주인이 되려고 하지 말고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판단을 받거나 비판을 받을 때 분개하지 않습니다. 피차 복종하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견해에 대하여 인내합니다. 피차 복종할 줄 모르는 사람은 전혀 듣지 못합니다. 주안에서 형제의 말을 듣지 못하면 하나님의 말씀도 듣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은 지독한 자아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는 삶을 모르며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모르는 것입니다.

 

그만두겠다는 위협을 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지 못하는 사람은 위협합니다. 자기의 주장과 자기의 생각이 관철되지 않으면 위협합니다. 불공평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럴 때 가정은 어려워지고, 직장이 어려워지며, 교회 공동체에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파멸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러므로 성령의 지배를 받고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한다는 사실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2) 적극적인 면

자기 자신에 대한 사실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 앞에서 나는 소망이 없었고, 나는 잃어버린 자였으며, 하나님 앞에서 정죄된 죄인이었다는 것을 보게 됩니다. 나의 자랑할 것들을 보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이 죄인인 것처럼 나도 죄인이고 멸망 받을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을 보는 것입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모든 믿는 자에게 미치는 하나님의 의니 차별이 없느니라.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3:22,23).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차별이 없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누구나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죄인인 자기를 볼 때 구원받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구원받은 것이 내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입니다(2:8,9). 은혜란 하나님이 하신 것입니다. 주님이 하셨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러기 때문에 자랑을 그만두게 됩니다. 자신을 알기 때문에 우리는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게 되기 때문에 복종하게 됩니다.

 

한 몸의 지체임을 깨달을 때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에베소서 4장은 교회의 은사와 각 지체들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 지체의 은사가 각기 다 다릅니다. 개인으로서 나는 중요하지는 않을 수 있지만 몸의 한 지체로서 나는 매우 중요합니다. 몸의 일부로서 몸의 유익을 구하기 때문입니다. 성령이 우리를 지배 할 때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자기 권리를 으뜸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피차 복종하는 사람은 듣는 사람입니다. 피자 복종하는 사람은 배우는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차 복종하는 사람은 인내합니다. 디모데와 두기고는 다른 사람의 사정을 잘 이해하는 사람입니다. 이들의 특징은 피자 복종하는 삶입니다.

 

몸을 위하여 고난받을 각오도 하니다.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고전 13:4-7). 너무나 잘 알려진 말씀이기 때문에 자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사랑은 성령의 열매입니다. 사랑하면 피차 복종하는데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2. 피차 복종의 동기는 무엇인가?

성령의 지배를 받게되면 그리스도를 기쁘게 하고, 그리스도를 자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예배란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모든 속성에 대한 인간의 전인적인 반응입니다. 예배란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이며, 또한 예배는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22절에 "아내들이여 !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내를 사랑하는 것은 주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아내가 남편에게 복종하는 삶은 주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개인의 삶 속에서 예배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을 살 때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입니다. 직장생활에서도 상사에게 그리스도께 하듯 할 수 있습니다(6:5). 이는 주님을 예배하는 삶을 살 때 가능하게 됩니다. 이 모든 동기가 주님 때문입니다.

 

주의 영으로 충만한 사람은 그리스도를 영화롭게 합니다. 성령의 지배를 받는 삶을 살게 됩니다.

1) 주님의 분명한 가르치심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섬기는 자가 큰 자이며, 종이 되는 자가 으뜸이 된다고 말씀하셨습니다(20:25-29). 예수님께서 섬기려고 오셨습니다. 우리는 섬기기 위해 있는 사람들입니다. 종이 상전보다 크지 못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의 상전은 누구입니까? 예수님께서 발을 씻겨주셨습니다.

2) 그분의 영광을 위하여, 그분을 사랑하기 때문이다.

"그런즉 우리는 거하든지, 떠나든지 주를 기쁘시게 하는 자 되기를 힘쓰노라"(고후 5:9). 그러므로 우리도 서로 발을 씻겨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의 영광을 위하며, 그리고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3) 어느 날 그 앞에서 헤아림을 받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우리가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각각 선악간에 그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으려 함이라"(고후 5:10) .살든지 죽든지 주님 기쁘게 하기 원하십니까? 피차 복종할 때 주님께서 기뻐하십니다.

4) 그의 본을 따르는 삶 때문이다.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입었으니 그리스도도 너희를 위하여 고난을 받으사 너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 오게 하려 하셨느니라. 저는 죄를 범치 아니하시고 그 입에 궤사도 없으시며,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탁하시며"(벧전 2:21-23).

 

우리는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고, 주님을 본받는 삶을 살아야 하기 때문에 피차 복종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성령을 좇아 사는 삶은 피차 복종하는 삶입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하기 때문에, 주님을 기쁘게 하기 때문에 그의 영광을 구하고 그를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은 피차 복종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 “주 안에서 순종하라.” “그들과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시고, 그분은 사람을 외모로 보시는 일이 없느니라.”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이 세상의 모든 인관관계에 똑같이 적용되는 기본원리입니다.

 

오늘 내가 어떤 자리, 어떤 역할을 맡았던지, 자기 역할을 다해서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사람이 됩시다. 부모는 책임지는 것으로 자식을 섬기고, 자식은 순종하는 것으로 부모를 섬깁시다. 남편은 아내를 책임지는 사람이 되어 아내를 섬기고, 아내는 남편에게 순종으로 협력해서 남편을 섬깁시다. 이것이 피차 복종하는 삶이요, 이것이 하나님이 정해 주신 기본 원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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