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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사랑으로 연결된 교회(요일 4:16),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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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결혼을 앞둔 젊은이들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을 결혼 상대자와 삼으면 좋겠다고 말합니다. 그러면 신앙이 좋은 사람인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습니다. 그러면 이렇게 대답합니다. “신앙이 좋은 사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서 자신이 행복하고 그 하나님의 사랑을 흘려 보내어 상대를 행복하게 하는 사람이다.” 

 

제 개인적으로는 나름대로 착하다는 말을 듣고 자랐지만 사람에 대해서는 별로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나 같은 죄인을 살려 주시려고 독생자 예수님을 보내주셨다는 사실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믿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나에게 쑥 들어왔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내가 이렇게 받았는데 그 사랑을 나타내고 싶어서 미칠 것 같았습니다. 사람이 귀찮고 힘들게 하는 대상이 아니라 사랑의 대상으로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전에 없었던 제가 찾아온 놀라운 변화였습니다. 

 

그러면 믿음이 좋은 사람의 기준이 무엇일까요? 

 

요한일서 4장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시느니라.”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우리가 하나님 안에 거하신다는 것을 입증하는 증거가 됩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으신다면 우리는 결코 사랑 안에 거할 수 없으며 서로 사랑할 수도 없습니다. 

 

교회에 열심히 다닌다고 신앙이 다 좋은 게 아닙니다. 교회는 다니지만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도 신자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교회 다니는 불신자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지만 신자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인본주의 교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지만 신자들을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불완전한 사랑을 가진 교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서 신자들을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온전한 사랑을 가진 신자입니다. 나는 어떤 부류에 속하고 있습니까?  

 

1.나님을 사랑하는데 성도들을 미워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그럴 수가 있을 것 같은데 성경은 뭐라고 할까요? 그것은 있을 수 없는 것이라고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20절입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어렵습니까? 보이는 형제를 사랑하는 것이 더 어렵습니까? 보지 못하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는 눈에 보이는 형제들을 사랑하는 더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미워한다는 것은 거짓말하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를 미워하는 사람은 거짓말하는 사람이라고 규정합니다. 왜 그런지 아십니까? 가까운 사람을 사랑하지 못하면서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필연적으로 하나님께 사랑받는 자들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장 1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이심을 믿는 자마다 하나님깨로부터 난 자니 또한 낳으신 이를 사랑하는 자마다 그에게서 난 자를 사랑하느니라.” 

 

2.사랑으로 연결되지 않으면 어떻게 될까요

우리가 서로 사랑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거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아십니까? 본문 12절입니다.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으되 만일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니라.” 우리가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는지를 깨닫게 됩니다. 서로 사랑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신자들 가운데 두려움에 사로잡혀서 자신이 노력한 것에 비해 일이 잘 안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걸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18절입니다.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나니 두려움에는 형벌이 있음이라 두려워하는 자는 사랑 안에서 온전히 이루지 못하였느니라.” 

 

사랑 안에는 두려움이 없다고 했는데 왜 우리는 두려워하여 일을 그르칠까요? 그 사랑이 온전한 사랑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온전한 사랑은 어떠한 사랑일까요? 본문 12절에 보면 우리가 서로 사랑하면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시고 그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지느니라.” 

 

신자들 가운데 자신이 과거에 지은 죄에 대한 심판이나 현재 좀 더 거룩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에 대한 벌로 불길한 일이 일어나지 않을까 두려움 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 결과 무슨 일을 하든지 위축당하게 되고 일이 꼬이게 됩니다. 마귀는 그것을 틈타고 우리를 고소하고 죄책감에 사로잡히게 합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신자가 그렇게 살아기기를 원하실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들이 자신감을 갖고 담대하게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예수님이 우리의 죄를 위하여 보혈을 흘려 주셨기 때문에 우리는 더 이상 죄와 사망의 법이 아니라 생명과 성령의 법에 따라 살아가게 된 것입니다. 

 

서로 사랑하지 못한 상태에 있으면 두려움에 사로잡힌 채 있어야 합니다. 신자가 어떤 이유에서든지 누군가를 사랑하지 못하고 미워하면 그것으로 인한 피해는 엄청납니다. 

 

본문 20절에 보면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느니라.” 신앙 자체가 무너지게 됩니다. 

 

요한일서 3장 14, 15절입니다. “ 우리는 형제를 사랑함으로 사망에서 옮겨 생명으로 들어간 줄을 알거니와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사망에 머물러 있느니라 그 형제를 미워하는 자마다 살인하는 자는 살인하는 자마다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아니하는 것을 너희가 아는 바라.” 

 

충격적인   말씀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어떤 사람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을까요? 형제를 사랑하는 자입니다. 형제를 여전히 미워하는 자에게는 영생이 그 속에 거하지 않는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형제 사랑으로 반드시 나타나야 합니다. 

 

우리가 형제 사랑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어떤 분의 글을 인용합니다. “우리는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서 그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는 그분을 사랑해야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해야 합니다. 

 

3. 어떻게 사랑으로 연결되어야 할까요?

하나님은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요한일서 3장 10절입니다. “이러므로 하나님이 자녀들과 마귀의 자녀들이 드러나나니 무릇 의를 행하지 아니하는 자나 또는 그 형제를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 속하지 아니하니라.” 만일 서로 사랑하지 않는 다면 하나님의 자녀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분명한데 형제들을 미워할 때가 있습니다. 그런 경우에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제 경우에는 이렇게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가까운 사람을 미워하는 것이 말이 되니? 안되는 것 같은데요?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하지? 사랑해야 겠네요? 그리고 사랑하면 됩니다. 많은 경우에 이게 잘 안됩니다. 사랑하는 감정이 안 생기는데 어떻게 사랑합니까?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감정적인 사랑이 아니라 실천적인 사랑입니다. 성경적인 사랑은 조건적인 사랑이 아니라 언약적인 사랑입니다. 

 

본문 2절은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하면서 형제들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심각한 문제를 제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여기서 사랑하지 아니하는 사람이란 누구를 가리킬까요? 본문 1절에 보면 형제들 간에 서로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말합니다. 우리가 형제들을 사랑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그렇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8절 하반절에 보면 하나님은 사랑이십니다. 

 

본문 9절에 보면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우리끼리의 관계를 통해서 나타나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나타났는지 아십니까? 로마서 5장 6절에 보면 우리가 아직 연약할 때입니다. 10절에 의하면 우리가 원수되었을 때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께서 도저히 우리를 사랑하실 수가 없을 때입니다. 바로 그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낸 바 되었습니다. 로마서 5장 8절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 

 

요한일서 4장 9절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이렇게 나타난 바 되었으니 하나님이 자기의 독생자를 세상에 보내심은 그로 말미암아 우리를 살리려 하심이라.” 도저히 사랑받을 수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에게 나타난 바 되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 죄 때문에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우리가 살아나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본문 15절입니다. “누구든지 예수를 하나님의 아들이라 시인하면 하나님이 그의 안에 거하시고 그도 하나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이 우리 안에 거하신다는 것이 무엇일까요? 

 

본문 16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사랑을 우리가 알고 믿었노니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 안에 거하는 자는 하나님 안에 거하고 하나님도 그의 안에 거하느니라.” 하나님 안에 거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믿는다는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다는 사실을 알고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순간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 들어오게 됩니다. 

 

혹시 우리 가운데 이전에 하나님의 사랑을 뜨겁게 체험한 적이 있는데 지금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고 생각하는 분이 계십니까? 하나님이 더 이상 나를 사랑하시지 않아서 그런 것일까요? 이전에는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뜨거웠는데 지금은 그렇지 못한 이유가 무엇일까요? 기도를 열심히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까? 말씀을 잘 보지 않아서 그런가요? 

 

그런 이유도 있겠지만 보다 근본적인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의 사랑이 계속 충전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충전되는지 아십니까? 신명기 30장 6절입니다.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게 하사 너로 생명을 얻게 할 것이며.

 

 어떻게 할 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고 생명을 얻게 될까요? 

 

신명기 30장 2절입니다. “너와 네 자손이 네 하나님 여호와께로 돌아와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한 것을 온전히 따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충전됩니다. 

이전같이 하나님을 사랑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가 무엇일까요? 본문 11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은즉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하도다.” 그런데 우리는 서로 사랑하는 것이 마땅치 않다고 말합니다.  

 

왜 그렇다고 생각할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기억하지 못하고 서로에 대하여 생각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을까요? 본문 10절입니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아들을 회목 제물로 보내셨음이라.” 

 

서로에 대해 사랑하지 못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를 잊어버리기 때문입니다. 언제나 우리는 하나님이 어떻게 사랑해 주셨지여기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무한한 사랑을 받았기 때문에 그 사랑을 흘러 보내야 합니다. 

 

하나님은 단지 우리가 죄 사함을 받아 지옥에서 구원받고 죄에 대한 징벌로부터 구출하시기 위하여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서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것은 또 다른 사람에게 흘러보내기 위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가 서로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형재를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이같이 사랑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은퇴를 앞둔 팀 매닝 목사는 자신의 교회를 돌아보며 내심 흡족하다. 활기가 넘치고 탄탄한 체계를 갖추어 어디에 내놓아도 부족함이 없는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익명의 편지 한 통과 뜻밖의 전화가 그의 마음을 뒤흔들어 놓습니다. 그 내용은 동일하게, 그의 교회가 가장 중요한 '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좌절에 빠진 팀은 중요한 조언자들을 찾아 나섭니다. 팀은 각각의 만남에서 교회와 자신이 회복해야 할 바를 깨달아 갑니다. 

 

한편 그 시간 부목사 마이크 역시 교회의 문제점을 인식합니다. 팀과 마이크는 힘을 합쳐 어떻게 하면 교회가 사랑을 회복할 수 있는지를 모색하는데.... 

 

삶을 가장 잘 사용하는 비결은 사랑하는 것이고, 사랑을 표현하는 최상의 도구는 시간이며, 사랑하기에 최고로 좋은 시간은 지금이라는 선명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습니다. 수적 증가와 안정적인 재정 확보라는 세상적 성공을 뒤로하고 ‘하나님과 이웃에 대한 사랑’이 넘치는 예람교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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