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우리는 하나님을 소개할 때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며, 공의로 역사를 이끄시는 분임을 강조한다. 그리하여 인과응보적 가르침에만 치중하는 경향이 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복을 받고 또 장수하게 된다고 가르쳤는데(신 30:15-20), 실제로 그러한 경험을 하지 못하는 자들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 평생 주님을 섬기며 의롭게 살아온 자들이 사업에 실패하고,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를 당해 죽게 될 때 우리는 어떻게 설교해야 하는가?
잠언이나 욥기 등에서 강조되는 하나님의 주권자 사상과 인간 지혜의 한계에 근거한 겸손을 요구하는 가르침이 필요하다고 본다.
잠언에 지혜는 인간의 모든 삶을 바른 길로 인도하는 지표가 됨을 강조한다. 세상을 살면서 부닥치는 다양한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있어서 올바른 기준을 제공해 주는 것이 바로 지혜라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잠언은 모든 지혜와 지식의 근본이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다고 결론지음으로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최고의 지혜요 하나님의 선물임을 강조한다(1:7, 9:10).
잠언은 참된 지혜가 무엇인지를 일상적인 삶에서 찾고 있다. 구체적인 예를 들자면 지혜로운 자는 부모를 공경하는 자요(15:20, 23:22, 25), 자녀를 바르게 교육하는 자요(13:24, 22:6), 음녀를 경계하는 자요(2:16-19), 현숙한 여인이요(31:10-31), 부지런한 자요(6:6), 겸손한 자요(15:33, 16:19), 언어생활에 조심하는 자요(10:19, 12:13-14, 17:27-28), 뇌물(15:27)과 거짓 증인(12:17)을 멀리하는 자요, 술을 금하는 자요(23:30-35), 구제를 좋아하는 자요(11:25-27, 28:27), 함부로 보증을 서지 않는 자요, 분노를 억제하는 자요(15:18, 16:32), 너그럽고 관대한 자(10:12)라는 것이다.
그러나 잠언은 인간의 지혜가 삶 속에서 모든 문제들에 대한 최종적인 해답이 아님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있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16:9). 그렇다면 참된 지혜는 무엇인가? 그것은 사람이 만들어낼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비롯되는 것이요(2:6), 지혜의 근원은 하나님을 경외하는데 있다(1:7, 9:10).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야 말로 모든 지혜와 지식의 시작이요, 최고의 우선적인 지혜이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최고의 지혜를 소유하는 자에게는 생명(10:27, 14:27), 풍족함(19:23, 22:4), 마음의 평안(15:16), 선한 삶(8;13, 16:6) 등의 다양한 복들이 약속되어 있다.
하나님 경외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가? 그것은 삶의 모든 영역 속에서 하나님의 절대주권을 인정하는 가운데 그를 두려워하는 태도를 뜻한다. 그것은 하나님의 전능하심과 그의 주권을 인정하는 동시에 그를 전적으로 의지하고 신뢰하는 삶의 자세를 의지한다. 그 가장 대표적인 예가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이삭을 제물로 바치고자 한 아브라함의 행위에서 찾아볼 수 있다(잠 22:12).
의인과 악인
잠언이 말하는 지혜는 단순히 개개인의 행복과 사회적인 성공만을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 전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고 있다.
잠언에서 지혜로운 자가 의로운 자 또는 정직한 자와 동일시되고 있다. 의로운 자나 정직한 자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잘 지키는 사람들이요, 신앙 공동체의 평화를 도모하는 사람이다. 그는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을뿐만 아니라 이웃 사람들과도 바른 관계를 가지고 있어서 항상 남에게 유익을 주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이다.
더 구체적으로 얘기한다면 의로운 자는 고아와 과부와 나그네 등을 보살피는 자들이요, 힘없고 약한 자들의 재판을 돕는 자들이요, 가난한 자들에게 너그럽고 관대한 자들이요, 이웃에게 항상 선을 행하면서 그들과 바른 관계를 맺으려고 애쓰는 자다.
악인에 대한 가르침 역시 지헤가 공동체의 평화와 안녕을 지향하는 것임을 밝히고 잇다. 악인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기를 싫어하고 또 자신에게 있는 권세와 힘을 가지고 이웃 사람들, 특히 힘없고 약한 자들을 괴롭히는 것을 즐거워하는 자다.
미련함과 어리석음
지혜와 반대되는 개념이 바로 미련함과 어리석음이다. 잠언에서 말하는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지능이나 지성이 결핍된 자를 일컫기보다는 세상 속에 있는 기본적인 삶의 질서를 따르지 않는 사람을 가리킨다. 탐욕에 눈이 멀어 재물을 숨긴 아간의 행위나(수 7:15) 다윗에 대한 나발의 태도(삼삼 25:25)와 사울의 태도(삼상 26:21)가 그 점을 보여 준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가르침에 도무지 귀를 기울이지 않는 사람이다. 그는 지혜와 지식과 훈계를 멸시하는 자요(1:7, 22, 12:1), 지혜가 없는 까닭에 그 가르침에 역행하는 행동을 취한다.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에 관한 잠언의 설명들을 좀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그는 귀가 얇아서 아무 말이나 함부로 믿으며(14:15-16), 게으르기 이를 데 없는 자(6:6, 19:24, 20:4, 26:13-15). 그는 또한 부모를 괴롭히고 심지어는 저주까지 하는 자요(19:26, 20:20, 30:17), 교만한 자요(16:18), 말이 많아서 남의 비밀을 누설하면서 남의 험담을 하는 자요(10:14, 18, 11:13, 20;19, 26:7), 입을 지키지 못하여 여호와께 미움을 받는 자요(12:22, 13:2-3, 18:13, 16), 뇌물을 좋아하는 자요(15:27, 17:23), 술에 잠긴 자요(23:30-35), 음녀와 이방 계집의 유혹에 빠지는 자요(6:32, 7:4-13), 악을 행하기를 즐거워하는 자요(10:23), 탐욕을 품고서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요(14:31, 28;15-17), 재판할 때 악인을 변호하고 의인을 억울하게 하는 자요(18:5), 잘못된 저울추와 말로 속여 파는 자요(20:10), 마음이 조급하여 쉽게 분노하며(12:16, 14:17, 29, 15:18, 29:11), 다투는 자요(20:3), 미움과 증오심이 가득한 자이다(10:12).
미련하고 어리석은 자는 지혜의 가르침에 귀를 기울이지 않을 뿐 아니라 인간의 이성적인 능력과 지혜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도무지 인정하지 않는다. 그는 인간의 지혜만으로 모든 것을 성취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기에 그는 하나님을 경외할 줄 모르며(1:7), 하나님의 지혜와 생명과 구원이 있음을 믿지 않는다. 그에게 있어서 하나님은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할 분이 아니다. 시편 14:1의 표현을 빌면 어리석은 자는 그 마음 속에 이르기를 ‘하나님은 없다’ 한다.
아버지와 아들
잠언은 지혜의 가르침을 매우 자주 아버지가 아들에게 훈계하는 형식으로 전달한다. 잠언은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계속 이어지는 “ 내 아들아”라는 표현이 그 점을 잘 보여 준다(1:8, 10, 2:1, 3:1, 11, 21, 4:1, 10, 20, 5;1, 7, 20, 6:1, 20, 7:1, 24, 8:32, 19:27, 23, 23:15, 19, 26:13, 31:2).
이 형식은 본래 이스라엘 사람들이 일상생활 속에서 널리 통용되던 다양한 지혜 요소들을 씨족이나 지파의 넓은 남자들에게 가르칠 때 사용하던 방식이다.
아버지가 아들을 가르치는 이러한 전통적인 지혜 교육의 방법은 나중에 지혜를 일반대중에게 널리 보급하고 가르치는 지혜자들의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사용되었을 것이다. 그들은 다수의 사람들을 상대할 수 있는 성문 어귀나 광장, 또는 사람들이 많이 왕래하는 길머리나 서거리 등지를 중요한 교육 장소로 애용하였다(1:20-21, 8:2-3, 욥 29:7-10).
그것은 또한 왕족이나 귀족의 자제를 가르치는 공적인 교육을 담당하던 지혜교사의 권위를 표현하는 방식으로 이해되었을 것이다. 지혜교사는 왕정의 시작과 더불어 궁정지혜가 회람되면서 지혜만을 전공하여 그것을 사람들에게 가르치는 독립된 사회계층에 속한 사람으로서(사 29;14, 렘 8:8-9), 이스라엘의 왕정 안에서 서기관직에 종사하기도 하였으며, 왕의 정치 고문 역할을 수행하기도 하였다(삼하 13:3, 14;1-24, 15:31-37, 왕상 12:3-14, 대하 25:16-17).
구약성경의 지혜
1. 외향적 지혜(대인(對人)적 삶의 지혜)
타인과의 관계 또는 사회적. 국가적 활동에 있어서 필수적으로 요구되는 삶의 지헤를 가르킨다. 대표적 인물이 솔로몬이다.
공의로운 재판(왕상10:6-9), 통치적 행적능력(왕상 4:1-19), 백과사전적 지식과 정보(왕상 4:29-34), 건축가 또는 장인의 기술(출 35:30-36, 브살렐과 오홀리압), 선박건설자 또는 뱃사공의 기술(시 103:23-27), 온전한 행위(잠 2:7, 21), /예를 들면 의(1:40), 정직과 진실(잠 1:3), 겸손(잠 3:34-35), 근신(잠 1:4), 인내(12:16), 긍휼과 자비(11:17), 선행(2:9), 부지런함(6:6-11), 부모공경과 순종(1:8), 순화된 언어와 선한 말(10:8), 화목,화평(12:20), 사랑과 용서(10:12), 충성(13:17), 성실(11:3), 절제(2:16-19), 등이다. 장수와 물질의 부요함(잠 3:2), 모략(지략)과 영리함(잠 1:5).
2. 내향적 지혜(대신(對柛)적 삶의 지혜)
인간의 우선적 관계는 하나님과의 영적인 관계인데, 여호와 하나님을 경외할 뿐만 아니라 최선을 다하여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랑하는 것을 지혜와 행복의 근본으로 강조하고 있(잠 3:11-12, 16:3, 20, 9, 17:3, 18:10, 19:21, 22:4).
다음은 악의 문제, 즉 악에 대처하는 자세와 방법, 그리고 의인의 고난문제
지혜의 근원
지혜서의 하나님은 일반적으로 율법서나 예언서에서 강조하는 특별계시로서의 언약의 하나님, 또는 구원의 하나님 사상보다는 자연계시의 근저를 형성하는 창조신학에 근거를 형성하는 창조신학에 근거를 둔 창조주 하나님 사상에 더 치우쳐 있음을 엿볼 수 있다(전 1:13-14, 전 2:24, 전 2:1-3, 11, 2:15).
1. 인과율 또는 인과응보의 법칙
구약의 지혜자는 자연계의 형상을 관찰함으로써 터득한 지혜 가운데 대표적인 것이 인과율이다. 이 원리는 “심은 대로 거둔다”는 원칙이고 동시에 함정을 파는 자가 오히려 그 함정에 빠지게 된다는 원칙이다(잠 26:27).
예를 들어 형과 부친을 속인 야곱도 결국 외삼촌과 아들들에게 속임을 당하게 된다는 원칙이다. 이와 같은 인과율에 기초한 지혜의 잠언의 몇 가지 실례를 들어 본다.
1) 언어와 관련된 지혜(잠1 5:23, 25:11, 15, 26;17, 27:14)
3) 명예와 부요한 삶의 가치(잠 13;8, 18:11, 16, 21:20, 22:1)
4) 인간관계의 슬기(잠 17:17, 20;6, 24:17, 28, 29, 25:17, 21-22, 26:6)
5) 겸손과 자기절제의 지혜(잠 22:4, 25;28, 29:23)
6) 효도와 화목한 가정의 행복(잠 4:1, 6:20, 10:1, 13:1, 15:5, 17, 17:25, 23:25, 28:7, 30:17)
7) 공동체 의식의 가치(잠 14:31, 19:17, 21:13, 28:27)
8) 의로운 삶의 가치(잠 3:33, 11:8, 12:7, 12:21, 13:9, 14:32, 15:29, 21;18, 24:16, 28:1, 29:2, 29:27)
2. 반인과율적 지혜
이스라엘의 지혜는 결국 일관된 인과론만으로 만족하지 않으며, 판에 박힌 인과응보적 획일성만을 보여주지 않는다. 이스라엘의 지혜자는 인간 경험의 다양성과 인생사의 복잡성 및 불가해성을 과감히 수용하여 역설적이고도 반인과율적인 지헤에도 길을 열어 놓고 있음을 볼 수 있다. 그 대표적인 주제로서 욥 1장, 합 1장, 시 37편, 73편 의인의 고난을 들 수 있다.
3. 초인과율적 원칙으로서의 신앙적 지혜(여호와 경외사상)
유일하신 참 하나님이시며 만물의 창조자,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은 인과론을 초월하실 뿐만 아니라 인간의 지혜로 파악하기 힘든(욥 9:22-24, 잠 16:4, 7) 초인과율적인 신비한 방법으로 역사를 주관하시기에, 모든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논리를 초월하여 지혜의 근본이신 여호와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경외하는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지혜로운 삶의 길이라는 사상이다.
신약적인 관점에서 볼 때 이 초인과율적인 지혜의 대표적인 사례가 예수께서 행하신 수많은 기적사건과 이신득의 신앙, 즉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역설적으로 만난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의 사건을 자신의 사건으로 믿음으로 의로워지고 구원을 얻는 지혜라고 할 수 있다.
신앙적 지혜(여호와 경외 사상)의 지리적 배경
이스라엘의 여호와 경외사상의 지리적 배경을 고찰함에 있어서 가장 먼저 제기되는 질문은 왜 하필 가나안 땅인가?라는 것이고, 이와 같은 질문의 배경에는 지정학적/지리적으로 가나안 땅이 안고 있는 부정적 조건이 전제되어 있다.
1. 고난의 용광로
가나안 땅은 고난의 땅, 곤란한 땅, 고난의 용광로, 고난의 완충지대라는 별명이 있다. 가나안 땅이 고난의 땅일 수밖에 없는 새 가지인데 그중 하나는 지정학적 조건에 있어서 강대국 사이에 있기 때문이다. 가나안은 주변의 3대 문명권(이집트 문명, 메소포타미아 문명, 히타이트 문명), 3대 제국의 틈바구니에 끼여 있어 3대 세력의 각축장으로 짓밟히고 고난을 당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가나안 땅이 3대 제국의 각축장이 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이유는 가나안의 지적학적 조건 때문이다. 땅이 비좁고(한국의 경기도와 강원도를 합친 것보다 작음) 척박하여 강대국으로 부흥할 여건이 갖추어져 있지 않으며 이스라엘의 역사 가운데서 다윗제국이라 불렀지만 이집트나 앗수르(또는 바벨론, 페르샤) 제국에 비하면 새발의 피와 같은 작은 제국이었다.
가나안 땅에 사는 사람들이 필연적으로 고통과 눈물과 비극을 경험할 수밖에 없엇던 세 번재 이유는 우선 이들 강대국 황제들의 정복욕구에서 비롯된 빈번한 전쟁때문이었고, 특히 교대 전쟁의 미개성과 잔인성과 무자비성 때문이었다.
2. 고난 속에 터득한 지혜
이와 같이 부정적인 지리적 조건, 가난과 전쟁과 눈물로 가득찬 고난의 용광로를 수없이 통과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터득하고 배운 삶의 철학과 신학은 무엇인가? 그것은 한 마디도 지혜였다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출애굽 사건과 가나안 정복(주전13세기)에서 시작하여 포로이후 제 2성전 시대 또는 헬라제국시대(주전3세기)까지 약 1000us동안, 가나안 땅에 거주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전쟁과 가난과 눈물로 얼룩진 역사를 이어가면서 터득하고 배운 것이 있다면 무엇보다도 먼저 생존을 위한 삶의 지혜였던 것이다.
세계 어느 민족보다 지혜의 최고 가치를 추구하는 유대인의 의식구조는 이와 같은 역사 지리적 배경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이스라엘 지혜의 집대성이라고 할 수 있는 토라교훈은 인류 역사상 가장 강도 높은 고난의 용광로에서 생산된 것으로서 유다왕국의 멸망 이래(주전587년) 2500년간 이상 세상의 떠돌리로 방황했으면서도 결코 소멸되지 않고 살아남을 수 있었던 비결을 보여 주고 있다.
3. 궁극적 지헤의 발견
이스라엘 백성이 고난과 역경을 통해 터득한 삶의 지혜 가운데 가장 가치있고 소중한 지혜 곧 영원하고 참된 궁극적인 지혜는 다른 아닌 신앙의 지혜였다. 이 궁극적 지혜는 고난의 극한 상황 속에서 터득한 지혜로서 하늘을 바라보는 지혜요 하나님께 부르짖는 지혜였다.
잠언에 나타난 부자의 모습
부자를 지켜주는 견고한 성은 오직 재물이다(10:15). 즉 부자란 재물의 보호를 받는 사람이다. 둘째 부자는 실제로 사람들의 미움을 받지 않는다. 오히려 친구가 많다(14:20). 셋째 부자는 사람들을 지배할 수 있다(18;23, 22:7).
부가 복이 되려면 근심과 번뇌가 따라오지 않는 재물이어야 한다(10:22, 15:16). 복에 재물이 포한되는 것은 분명하지만, 재물 그 자체가 복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이다.
부가 복이 되려면 영광과 생명이 수반되어야 한다(22:4). 따라서 겸손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은 부를 얻는 방법이 아니라 복을 얻는 방법이다(잠19;14, 18;22).
진정한 복은 죄를 짓지 않는 것이다(잠 30:7-9).
잠언에서는 부요함에 이르는 방법을 가르치지 않는다. 가장 적극적인 권면은 단지 주어진 재물 또는 재산을 지키라는 것이다.
잠언에 나타난 인간관계
1. 좋은 이웃은 형제보다 가깝다
첫째로 형제(가족)와 그것이 확장되어진 친척은 어려울 때 사로 도와야 할 책임이 있다(신 15:7-11, 25:5-10).
둘째로 의인은 이웃을 생명의 길로 이끈다. 하지만 악한 사람은 이웃을 파멸에 빠뜨틸 수 있음을 알고 지혜롭게 대처해야 한다.
2. 재물에 대한 이웃의 태도
잠언은 가난한 자에게는 친구가 적지만 많은 재물은 친구를 많이 사귀게 한다는 교훈을 하고 있다(잠19:4, 6, 7, 10:15, 28). 여기서는 재산이 긍정적인 측면에서 사용되고 있지만 28:8에서는 부정적인 측면에서 사용되었다. 이처럼 잠언에서는 재산에 대해 긍정적으로 볼 뿐 아니라 부정적인 측면도 언급하고 있다.
둘째로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는 요구를 하면서도 이웃에 대해 보증하는 것은 데해서는 반대하고 있다(11:15, 17:18, 20:16, 22:16, 27:13).
3. 이웃 간에 험담을 하지 말아야 한다
험담에는 험담하는 자가 말하는 것이 사실일지라도 분별함 없이 말함으로 이웃을 곤경에 빠지게 하는 악의가 없는 험담(11:12, 17:9, 25:9)과. 이웃을 무너뜨릴 생각으로 거짓을 말하거나 자기 입장만 반영하는 악의가 담딘 험담(18:17, 24:28, 25:18)을 모두 반영하고 있다. 험담은 공동체를 파괴한다.
또한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개인의 행복을 중시하며, 그 권리를 방해하지 말라는 요구를 하고 있다. 너는 이웃집에 자주 다니지 말라. 그가 너를 싫어하며 미워할 까 두려우니라(25:17). 이른 아침에 큰 소리로 자기 이웃을 축복하면 도리어 저주같이 여기게 되리라(27:14).
잠언과 인간의 마음
오직 하나님만이 인간의 마음을 명확히 볼 수 있는 것이다. 심지어 자신이 모르는 것까지 하나님은 통찰하신다(잠 14:13, 14:10, 21:2, 15:11).
인간의 마음을 훤히 들여다보고 계시는 하나님과 대화를 할 때에는 우리의 자세도 마음 문을 활짝 열고 마음을 쏟아놓을 수 있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감정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
기쁨과 슬픔으로 대표되는 감정의 파도가 끊임없이 물결치고 있는 곳이 바로 인간의 마음이다(15:13, 17:22, 14:30).
이성이 자리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
잠언에서는 특별히 마음판에 새기라는 구절이 여러 번 반복된다(3:3, 6:21, 7:3). 지식과 지혜를 저장하는 마음의 이성적 기능을 나타내는 구절이지만 단순히 저장한다는 차원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법과 명령을 수시로 생각나게 하는 마음의 기능을 강조한 것이다.
의지가 자라잡고 있는 인간의 마음
마음의 중요한 기능은 바로 의지로 결단하는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명령과 법도를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것이 중요하다(23:26).
히브리인들의 사고방식에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마음에 두는 것은 곧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하는 것을 의미하였다(22:17).
신앙의 자리인 인간의 마음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받아들이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면 분명 신앙의 자리는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따라서 지혜자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지하고 신뢰하기를 원한다(3:5).
잠언의 지혜자는 인간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보면서 지혜자의 훈육을 통해 올바른 방법으로 마음을 인도할 수 있다고 희망찬 시도를 한다. 그러나 이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으며 반드시 하나님의 인도와 연단을 통해서만 성취될 수 있다고 강조한다.
아무도 사람의 마음의 고통과 기쁨에 참여할 수 없지만 오직 하나님만은 마음의 세밀한 부분까지 알고 계시기에 하나님 앞에 마음을 쏟아 놓고 마음을 열어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것을 권유한다. 마음판에 새긴 하나님의 말씀으로 비로소 지혜자가 될 수 있고 마음을 지키기로 결단하며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여호와의 크신 뜻에 동참할 수 있게 되는 것이다.
목회상담학적 관점에서 본 잠언(1-4장 중심)
지탱하기, 인내하기, 치유하기, 화해시키라는 네 가지 대표적 목회적 돌봄 기능 중에서 잠언은 안내하는 기능을 두드러지게 제공한다.
하나님과의 관계
솔로몬은 여호와를 경외하는 것이 지식의 근본이라는 말씀으로 잠언의 전체 내용을 요약한다(1:7, 9:10, 15:33, 31:30). 솔로몬은 하나님 중심적 삶, 즉 하나님 앞에서의 삶이 올바른 길을 가는 안내자의 역할을 한다고 보았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삶을 살려면 하나님이 누구신지 제대로 알아야 한다. 그리고 하나님이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어떤 삶을 원하시는지를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창조주이시다(3:19-20)
하나님은 찾는 자에게 주시며 구하는 자에게 응답하신다(마7:7).
솔로몬은 지혜를 구하였다(대하 1:7-12, 약 1:5).
하나님은 정직한 자를 위하여 승리를 예비하신다.
하나님은 보호하시는 분이시다(잠2:8).
하나님은 의지할 분이시다(3:26).
그러면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며 전심으로 신뢰할 때 하나님 중심적인 삶을 살 수 있다.
하나님은 자기 자녀들에게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을 제시하셨다. 그것은 헌금 또는 헌물을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십일조와 기타 헌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탐욕이란 치명적인 죄에 빠지는 것을 막아주는 예방책이다.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3:8).
하나님과의 관계를 맺으며 살아가는 사람은 결과적으로 풍성한 삶을 약속받는다.
하나님에 대한 신앙은 마음에 생기는 불안을 사라지게 하는 치료약이다. (빌 4:6-7). 마음의 평화와 기쁨은 류마티스 관절염과 같은 병을 예방하며 치료할 수 있다.
대인관계
가족 안에서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녀, 형제와 형제,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는 중요한 대인관계가 이루어지는 관계이다. 예수님은 이웃 사람이 율법의 강령이라고 말씀하셨는데 대인관계를 잘 하는 것이 이웃사랑을 실천하는 지름길이라고 말할 수 있다. 1-4장에서 대인관계는 주로 소극적인 의미에서 이웃 사랑을 하라는 내용이 주를 이룬다.
“네 손이 선을 배풀 힘이 있거든 마땅히 받을 자에게 베풀기를 아끼지 말며”(3:27). 어떤 힘을 행사할 수 있을 때 그 힘을 오용하여 일처리하지 하지 말 것을 권면하는 말씀이다. 예를 들면 관공소에서 건축허가를 신청한 민원인의 서류를 이유없이 지체시키거나 뒷돈을 요구하는 것은 자신의 직위를 오용하는 것이다.
“내게 있거든 이웃에게 이르기를 갔다가 다시 오라 내일 주겠노라 하지 말며”(3:28). 돈이든지 물건이든지 갖고 있음에도 없다고 말하면서 내일 주겠다고 말하는 것은 사실상 주고 싶지 않은 마음을 표현한 것이다. 반대로 거질하기 힘든 상황을 역이용해서 당당하게 빌리는 사람이 있는데 이런 경우에는 단호하게 거절해야 합니다.
“네 이웃이 네 곁에서 안연히 살거든 그를 모해하지 말며”(3:29). 주변에서 신실하게 살아가는 이웃에 대해서 상처를 주거나 상해하려고 모의하지 말라는 말씀이다. 아합 왕의 아내 이세벨은 나봇의 포도원을 빼앗기 위하여 하나님을 저주하는 나봇의 말을 들었다고 주장하는 거짓증인들을 만들도록 해서 결국 나봇을 돌로 쳐죽이는 죄악을 저지르고 말았다(왕상 21:1-25, 왕하 9;25-37).
잘못된 관계
음녀는 배우자와의 자녀들과의 관계만 파괴시키지 않는다(2:16-17, 6:24). 음녀라는 표현은 방탕하고 성적으로 충동적인 성향을 의미한다. 음녀라는 표현은 남성중심적 관점에서 사용되었지만 남성이나 여성 모두에게 적용된다. 제 7계명인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지키는 것이 지혜로운 것이며 결혼한 이후에는 배우자에게 정절을 지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결혼을 했음에도 다른 이성에게 관심을 갖고 접근하는 것은 경계선을 넘는 행동이다. 일반적으로 여성이 약한 것은 유혹적인 말이며, 청각적인 유혹에 약하다고 한다. 반면 남성이 약한 것은 시각적인 유혹이라고 한다. 그러나 기혼자들의 경우에는 모두 대화가 통하는 사람들에게 유혹되기 쉽다. 배우자에게 듣지 못했던 칭찬이나 인정, 관심과 배려를 표현하는 말을 들을 때 유혹적인 말이 되어 이성을 잃게 만드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어떤 이기적 동기보다 공감과 관심과 동정을 통해 외도의 고통에 쉽게 빠진다고 확신한다. 세상은 공감할 수 있는 귀와 기대고 울부짖을 수 있는 어깨와 굶주리고 외롭고 쉽게 상처받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조그만 도움으로 시작된 동정심이 다정함으로 자연스럽게 이끌려가고 그 다정함이 사생할의 필요를 채워주고 그 사생활이 육체의 위안을 주게 되고 그 위안이 곧바로 외도에 빠지게 한다.
그러자 성경은 이성간의 잘못된 관계에 빠질 때 따라오는 결과를 경고하고 있다. “ 그 집은 사망으로 그 길은 음부로 기울어졌나니 누구든지 그에게로 가는 자는 돌아오지 못하며 또 생명길을 얻지 못하느니라”(2;18-19). “그 집”은 음녀의 집을 말한다. 즉 간음을 행하는 배우자가 있는 가정은 죽음과 파멸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배우자의 부정이 있는 가정은 부부관계가 깨어짐으로써 부부 사이에 심리적으로 죽음을 경험한다. 배우자의 부정은 상대방에게 심리적으로 살인하는 것과 같기 때문이다. 외도가 있는 가정에서 자라나는 자녀들 또한 죽음에 맞먹는 심리적 충격을 경험하며 아빠나 엄마에 대한 신뢰감을 상실한다. 외도로 인하여 부모가 갈등하여 다툴 때 불안과 분노, 혼란, 충격, 우울을 경험한다.
특히 외도로 인하여 이혼으로 이어질 때 그 가정은 사망신고를 하는 것과 같다. 자녀들은 예기치 않게 부모로부터 신체적, 감정적, 정신적으로 버림을 받는 경험을 하는 것이다. 이 모든 역동성을 잘 알고 계시는 하나님은 십계명에 “간음하지 말라”는 계명을 주셔서 행복한 가정생활을 하기 원하신다. 간음을 금지한 것은 성적 억압을 위해서가 아니라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한 적극적인 뜻이 있기 때문이다.
악인의 특징과 결과
악인들의 특징을 잘 이해할 때 우리는 세상에서 비둘기처럼 순하고 뱀처럼 지혜롭게 생활할 수 있다(110-16).
첫째, 그들은 꾀며 유혹한다. 겉으로는 친구처럼 행동하지만 실제는 넘어뜨리는 걸림돌이 되는 것이다.
둘째, 우리와 함께 가자는 표현에서 악한 자들은 동요의식을 부추긴다.
셋째, 악인의 특징은 죄없는 자의 생명을 죽이는 것이다.
넷째, 악한 자들은 숨어서 기다리는 공경하는 것이 특징이다.
다섯째, 그들은 빼앗은 것으로 자기의 집을 채우는 자들이다.
여섯째, 그들은 악을 행함에 있어서 정상적인 사람들이 겪는 갈등을 거의 겪지 않는다. 양심의 가책을 거의 느끼지 않는다.
악인들의 악행의 결과는 단기적인 유익은 있을지 몰라도 장기적으로 볼 때 결국 스스로에게도 타인에게도 해가 되는 인생이 되고 만다.
악인에게는 파멸과 재앙이 예기치 않게 갑자기 닥칠 것이다.
복과 저주는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임한다. 율법을 순종하지 않는 자에게는 저주가 임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자에게는 복을 베푸신다.
미련한 자의 특징과 결과(1:7, 22)
미련한 자는 지혜와 훈계를 멸시한다. 그는 자기애성 성격장애적 요소를 발견할 수 있다. 자기를 매우 괜찮은 사람으로 생각하기 때문에 다른 사람에게 배우려고 하거나 충고나 조안을 소화하지 못한다. 심지어 분노한다. 상대방의 말을 경청하거나 이해하려는 태도를 갖는 대신 합리화, 이성화라는 방어기제를 사용하기 때문에 생기는 것이다.
악인은 타인을 살해하며 멸망시키는 동기가 강한 반면 어리석은 자는 자신을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동기가 강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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