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수기 19장에는 붉은 암송아지를 태운 재를 물에 타서 뿌리는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에 관한 이야기는 우리 신앙생활에 대단히 중요한 문제 한 가지를 다루는데, 바로 ‘예수님을 믿고 구원받은 사람이 매일매일 짓는 죄를 어떻게 처리할 것인가?에 대한 것입니다.
우리는 현재의 삶 가운데서 죄의 영향력으로부터 벗어나는 성화의 과정을 거쳐야 합니다. 사람이 죄로부터 차츰차츰 벗어나서 거룩함에 이르면 성화를 크게 이루고 천국에서도 많은 상급을 받는 사람이 됩니다. 반면에 우리가 매일 짓는 죄를 제대로 처리하지 않는다면 영적으로 큰 손실을 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타난 ‘붉은 암송아지의 재’ 교훈은 한 마디로 ‘매일 매일 죄의 오염을 씻으라’는 것입니다. 광야 40년의 삶 동안 이스라엘 백성들은 오염되기 쉬운 환경 속에 늘 노출되어 있었습니다.
1. 이스라엘 백성들의 오염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패를 통해 오염되는 경우는 네 가지입니다.
먼저 “사람의 시체를 만진 자는 칠일을 부정하리니”(19:11). 시체와 직접 접촉하면 그 사람은 부정해 집니다.
두 번째로 “장막에서 사람이 죽을 때의 법은 이러하니 무릇 그 장막에 들어가는 자와 무릇 그 장막에 있는 자가 칠일 동안 부정할 것이며”(19:14). 장막에서 여러 사람이 살고 있는데 그 중에서 한 사람이 죽었다면 시신을 만지지 않았다고 할지라
도 장막에 함께 있는 모든 사람이 오염되어 부정해지는 것입니다.
세 번째로 “무릇 뚜껑을 열어 놓고 덮지 아니한 그릇도 부정하니라”(19:15). 장막 안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그 장막 안에 뚜껑을 덮지 않은 그릇이 있다면 뚜껑 덮지 않은 그릇과 함께 그 내용물도 부정하다는 말씀입니다. 이것은 부주의함에서 오는 부정입니다.
마지막으로 16절입니다. “누구든지 들에서 칼에 죽이운 자나 시체나 사람의 뼈나 무덤을 만졌으면 칠일 동안 부정하리니”(19:16) 들을 지나가다가 전쟁통에 활에 맞아 죽은 군인의 시신이나 뼈에 몸이 닿아도 그 사람이 부정해 진다는 말입니다.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오염의 위험에 처해 있었습니다.
2. 오염 처리의 필요성
그리스도인들이 살아가고 있는 이 세상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죄에 오염될 환경에 처해 있습니다. 늘 죄인들과 접촉하고, 죄인들과 함께 살아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오염을 처리하지 않게 되면 큰 위험과 손해가 옵니다. 오염을 처리하지 않고 부정한 채로 살아가는 사람에 대해 13절과 20절 말씀이 그 결과를 이야기합니다.
“누구든지 죽은 사람의 시체를 만지고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는 자는 여호와의 성막을 더럽힘이라. 그가 이스라엘에서 끊쳐질 것은 정결케 하는 물을 그에게 뿌리지 아니하므로 깨끗케 되지 못하고 그 부정함이 그저 있음이니라”
어떻게 보면 작은 범죄에 비해 너무 큰 형벌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벌이 큽니다. 또 20절을 보면 “사람이 부정하고도 스스로 정결케 아니하면 여호와의 성소를 더럽힘이니 그러므로 총회 중에서 끊쳐질 것이니라. 그는 정결케 하는 물로 뿌리움을 받지 아니하였은즉 부정하니라”고 했습니다. 지나가다가 자기도 모르게 시체 한 번 건드렸다가 암송아지의 잿물 한번 안 뿌렸다고 해서 이스라엘에서 그 사람을 끊어버리는 것은 너무 가혹한 형벌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 사소한 부정에도 큰 벌을 명하셨을까요? 우리에게 강한 메시지를 심어주기 위해서입니다. 성도들이 이 세상에서 죄에 오염된 채 살면서도 그 부정을 날마다 처리하지 않으면 그것은 위험천만한 일이요, 엄청난 손해를 초래하는 일이라 하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3. 오염 처리의 방법
그렇다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시체에 접촉했을 때, 그 오염을 어떻게 처리했을까요? 붉은 암송아지를 태워서 그 재를 받은 후에, 흐르는 물을 취하고 그 재를 물에 타서 우슬초로 찍어 정한 사람이 부정하게 된 사람에게 뿌렸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지 않았지만, 이스라엘의 문헌을 참고할 때 일주일 동안 부정하기 때문에 제 삼일과 제 칠일에 각각 일곱 번씩 뿌려서 그 사람이 정함을 입게 하였습니다.
본문에 보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일러서 온전하여 흠이 없고 아직 멍에 메지 아니한 붉은 암송아지를 네게로 끌어오게 하고”(19:2) 말씀하고 있습니다. 오로지 붉은 빛이 나고 멍에를 메어보지 않은 흠 없는 암송아지만이 오염을 제거할 수 있다는 말씀입니다.
이 붉은 암송아지가 상징하는 것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붉은 암송아지가 태어나면 제사장에게 가져옵니다. 본문 당시의 제사장은 아론의 셋째 아들인 엘르아살이었습니다. 사람들이 붉은 암송아지를 엘르아살에게 데리고 오면 엘르아살은 붉은 암송아지를 끌고 이스라엘 진영 바깥으로 나가고, 그 송아지를 끌고 온 사람은 제사장 앞에서 붉은 송아지를 잡았습니다. 그러면 제사장은 그 피를 받은 후에 손가락에 찍어서 회막 정문을 향해 일곱 번 뿌렸습니다.
이처럼 붉은 암송아지는 재도 중요하지만 피도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재로 정결함을 받는 것도 중요합니다만, 피가 더욱 중요한 것입니다. 피를 일곱 번 뿌린다는 것은 완전한 속죄를 의미합니다.
4. 붉은 암송아지의 상징
제사장이 피를 손으로 찍어서 일곱 번 뿌린 후에 피를 뿌린 붉은 암송아지의 고기와 가죽, 피와 똥까지 모두 불사르게 됩니다. 이때 제사장은 붉은 암송아지를 태우는 곳에 세 가지를 더 던져 넣게 됩니다.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입니다. 이 세 가지와 함께 붉은 암송아지가 다 타면 남는 재를 거둬서 깨끗한 항아리에 담아 진 밖에 둡니다. 이제 이스라엘 백성들이 부정을 입게 될 때에는 흐르는 물을 받아다가 그 재를 물에 타서 우슬초에 찍어 제 삼일과 제 칠일에 뿌려주게 되는 것입니다.
이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더럽게 된 것을 정결케 하는 목적이 있다고 말씀 드렸습니다. 그러므로 이 피와 재를 생각할 때에 이 붉은 암송아지가 누구를 상징하는 것이냐 하는 데에 있어서는 이견이 없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붉은 암송아지는 흠 없고 죄 없이 영문 밖에서 죽임을 당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렇다면 백향목과 우슬초와 홍색실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성경에 기록되어 있지는 않지만 많은 성경학자들이 백향목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우슬초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홍색실은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이처럼 붉은 암송아지의 재는 하나님의 성도들이 죄에 오염된 채로 살지 말라는 교훈을 줍니다. 요한복음 13장 10절에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미 목욕한 자는 발밖에 씻을 필요가 없느니라. 온 몸이 깨끗하니라. 너희가 깨끗하나 다는 아니니라” 유다는 목욕을 못한 존재로 말씀하십니다. 여기서 목욕은 죄사함의 구원을 말합니다. 그러나 목욕한 것이 끝은 아닙니다. 인생을 가다가, 길을 가다가 발이 자꾸 더러워지면 발 씻는 일을 해야 합니다. 이 발 씻는 일이 매일의 오염을 씻는 성화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절에도 모든 무거운 것과 얽매이기 쉬운 죄를 벗어버리라고 했습니다. 우리의 인생은 마치 마라톤 경주와 같습니다. 만약 씻지 아니한 오염, 고백하지 아니한 죄를 우리가 지니고 있다면 이는 무거운 짐을 지고 마라톤 경주에 참가하는 사람과 같은 것입니다. 무거운 짐을 진 마라토너는 빨리 뛸 수도 없고 금방 지쳐 버려서 결국 상을 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오염된 죄를 씻고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오염된 죄를 씻는 방법은 복잡하지 않습니다. 구약성경 시대에는 붉은 암송아지 잿물을 뿌렸습니다만, 지금은 붉은 암송아지의 재가 필요 없습니다. 요한일서 1장 9절에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저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케 하실 것이요”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오염된 죄를 자백하기만 하면 됩니다. 자백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시지만, 자백하지 않고 가만히 있으면 깨끗함을 받을 수 없습니다. 날마다 자신을 반성하고 오염된 죄를 자백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씻음을 받게 되면 우리의 심령은 날마다 깨끗해지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 될 줄로 믿습니다.
예수님은 누가복음 17장 4절을 통하여 베드로에게 다른 사람이 죄를 짓고 와서 하루에 일곱 번씩이라도 용서를 빌면 그를 용서해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사람에게도 이렇게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하물며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얼마나 신속하게 자주 우리를 용서하시겠습니까?
그러므로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민수기 19장의 말씀을 통해 예수 믿고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이 날마다 죄악 가운데 오염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으시고, 날마다 자백하여 예수님의 보혈로 씻음을 받아 심령이 정결하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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