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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은 핑계와의 싸움이다(눅 14장 15-24절),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6.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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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목회를 하면서 이상하게 생각하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이외로 많은 신자들이 낙심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또 다른 하나는 만성질환에 가까울 정도로 핑계의 병에 걸려 있습니다. 예수께서 바리새인의 지도자의 집에서 식사 초대를 받으면서 본문 14절에서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잔치를 베풀 때에 갚을 능력이 없는 사람들을 초대하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부활 때에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의 말씀을 들었던 사람 중의 한 사람이 불쑥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서 떡을 먹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은 복될 것입니다. 이 잔치는 예수님 재림하실 때 혼인잔치를 시사한 것입니다(22:1-3). 이에 예수께서 17절부터 23절까지 의 말씀을 하십니다.

 

그리고 24절에서 예수께서 결론을 내리십니다. 내가 전에 청하였던 그 사람들은 하나도 내 잔치를 맛 보지 못하리라고 하십니다. 다시 말씀 드리면 유대인들 가운데 예수의 복음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은 한 사람도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꼭 믿어야 될 사람, 믿을 수 있는 좋은 환경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기회를 놓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유대인들의 풍습에 의하면 잔치를 여는 사람은 사전에 날짜를 정한 다음 종을 보내어 초청된 사람들에게 참석 여부를 물은 후에 그 수효에 맞추어 잔치를 준비합니다. 그리고 최초의 초청을 수락한 사람에게 다시 종을 보내서 잔차에 참석 여부를 확인하는 것이 당시의 관례였습니다. 이때 불가피한 사유가 아닌 한 잔치에 불참하는 것은 매우 큰 결례였습니다. 심지어 아랍인들에게는 두번째 초청을 거부하는 것은 선전 포고로 간주했다고 합니다.

 

종들이 찾아가서 확인한 결과 그들이 다 한결같이 사양하여 못 오겠다고 말했습니다. 정말 피지 못할 사정이 있어서 잔치에 참석하지 못한 걸까요? 한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밭을 샀는데 아무래도 할 일이 많아서 이번 잔치에 못 갈 것 같습니다. 제발 양해부탁드립니다. 자신의 재산, 부동산 때문에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공고롭게 오늘 밭을 사는데 계약을 하기 때문에도 아닙니다. 이미 밭을 샀습니다. 잔치 집에 같다 와서 밭에 나가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안가려고 핑계를 대는 것입니다. 핑계가 안되는 것을 우리는 이해시키려고 할 때가 많습니다.

 

두 번째 사람은 충분한 이유가 되는 걸까요? 나는 소 다섯 겨리를 샀습니다. 소가 일을 잘 하는가 시험하기 위해 오늘 나가봐야 되어서 잔치에 못갈 것 같습니다. 제발 내 사정을 잘 말씀해주시고 양해부탁드립니다. 오늘 불가피하게 소 다섯 겨리를 사려고 시간 약속을 잡은 것이 아닙니다. 이미 소를 샀습니다. 잔치 집에 갔다가 돌아와서 시험에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잔치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는 것입니다.일 때문에 못가겠다는 것입니다.

 

세 번째 사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장가들었기 때문에 잔치 집에 못 갈 것 같습니다. 아내 때문에 못 가겠다는 것입니다. 오늘 장가가기 때문에 못 갈 것 같다는 것이 아닙니다. 시간을 조정하면 얼마든지 됩니다. 잔치 집에 가는 것에 비중을 두지 않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은 잔치에 가고 싶은 마음이 없기 때문에 이유가 되지 않는 변명만을 늘어 놓았습니다.

 

오늘날도 돈 때문에, 일 때문에, 사람 때문에 하나님과 멀어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과의 약속이 이는데 더 중요한 약속이 있으면 조정합니다.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약속은 주님과의 약속입니다. 오늘 무엇이 예배를 드리려 가는 것을 막고 잇습니까? 무엇이 우리로 하여금 기도하는 것을 막고 있습니까?

 

그들이 가지 못하는 핑계를 대면서 하는 말이 양해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양해한다는 것은 곁으로 제쳐 둔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잔치에 참석할 의향이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는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 가야 합니다. 나는 당연히 예수 믿고 구원받았으니 천국 갈 것이라고 단언해서는 안됩니다. 그렇다고 불안해하고 떨면서 신앙생활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41-2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그의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을지라도 너희 중에는 혹 이르지 못할 자가 있을까 함이라 그들과 같이 우리도 복음 전함을 받은 자이나 들은 바 그 말씀이 그들에게 유익하지 못한 것은 듣는 자가 믿음과 결부시키지 아니함이라.”

 

신앙생활은 영적인 전쟁이기 때문에 시작하기가 힘이 들고 핑계를 하게 됩니다. 기도는 할 수 있기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라 해야 하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운동과 같아서 상황에 따라서 하려고 하면 잘 안하게 됩니다. 원칙을 세우고 뜻을 정하고 실천해야 합니다. 경건의 연습은 혼자하는 것보다는 같이 해야 좋습니다. 이상하게도 어떤 대상에 끌리는 마음은 그 대상의 가치에 반비례한다고 합니다. 하찮고 일시적이고 물질적인 가치에는 그렇게 끌리면서 영혼의 가치에 대해서는 그렇게 무십합니다.

 

종으로부터 보고를 들은 주인은 그들의 사유가 불가피한 것이 아니라 핑계에 지나지 않음을 알고 분노했습니다. 그래서 종들에게 빨리 시내의 거리와 골목으로 가서 가난한 자들과 몸이 불편한 사람들과 시각 장애인들과 거동이 불편한 사람들을 데려오라고 합니다.

 

잔치에 초대받지도 못한 사람들이 잔치에 참여하게 된 것입니다. 종이 주인에게 아직도 자리가 많이 남았다고 보고합니다. 그랬더니 성밖으로 나가서 길과 산 울타리 가로 나가서 사람을 강권하여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합니다. 이들은 이방인들을 가리킵니다.

 

주인이 종에게 말합니다. 처음에 천국 잔치에 초청받았던 유대인들은 복음을 거부함으로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고 오히려 죄인들, 가난한 사람들, 이방인들이 잔치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물론 유대인들 가운데 믿음의 조상들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리고 복음을 받아들인 유대인들은 천국에 들어갑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이 복음을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는 놀라운 은혜를 받게 된 것입니다. 청함을 받은 사람은 많지만 택함을 받은 사람은 적습니다. 천국에 들어갈 수 있는 것은 인간의 조건이나 자격이 아니라 하나님의 초청이 있어야 하고 이에 응해야 합니다. 영혼의 가치에 최 우선순위를 두고 살아가면 정말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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