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한 달 동안은 내가 해야 할 일과 하나님이 해 주시는 일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우리가 모든 것을 하나님께 맡기면 하나님께서 다 알아서 해 주실텐데 뭐가 걱정이야 그냥 모든 것 다 맡겨 그러면 하나님이 모든 것 자 채워주실 거야. 어떻게 보면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그래도 내가 뭔가 해야 할 것 같다는 부담감이 생깁니다.
1.내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해 주실 일이 연결되어 있습니다.
복음 성가 가운데 “당연한 것 하나도 없고 모든 것이 은혜, 모든 것이 은혜”라는 찬양이 있습니다. 정말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그렇다고 나는 가만히 있으면 되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10절입니다.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다.” 사도 바울이 이전에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지만 이제는 주의 복음을 위하여 살아가게 된 것이 하나님의 은혜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은혜가 헛되지 않도록 하기 위하여 다른 사도들 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다는 사실을 토로하였습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내가 한 것이 아니요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은혜가 너무 크기 때문에 더 많이 수고하였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수고 역시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는 것입니다. 분명한 것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였지만 은혜가 헛되지 않게 위하여 우리가 수고가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나의 할 일과 하나님이 할 일이 분명히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가 기도만 하면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일까요? 출애굽기 17장 8-16절에 보면 이스라엘이 아말렉과 싸우는데 희한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모세가 손을 들면 이스라엘이 이기고 손을 내리면 아말렉이 이기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아론과 홀이 돌을 가져다가 모세의 팔 아래에 놓고 그들이 각각 손을 붙들어 해가 지도록 내려오지 않게 하였습니다. 이 전쟁에서 이스라엘을 대승을 거두게 되었습니다.
모세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이 승리하게 해 주셨습니다. 모세는 그냥 기도만 했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9절에 보면 모세가 여호수아에게 군사들을 모집하여 아말렉 군사와 싸우라고 지시했습니다. 여호수아는 아멜렉과의 전투에서 열심히 싸워야 했습니다. 라틴어에 이런 표현이 있습니다.“ ora et labora(기도하고 일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해주시는 일이 있고 내가 해야 할 일이 있다는 것 잊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능력이 없으셔서 이스라엘 군대가 싸우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능하신 분이시기 때문에 얼마든지 단독으로 전쟁에서 승리하게 하실 수가 이으십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이나 우리를 개입시키는 것은 우리로 하여금 승리의 하나님의 경험하게 해주시길 원하시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경우에 하나님의 도우심은 직접 개입하셔서 이루시기 보다는 우리를 통해서 이루어가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반응을 요구하시는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는지 확증하게 하십니다. 우연이 자꾸 일어나는 것이 하나님의 간섭하심 때문입니다.
2. 그러나,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 7절은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스스로 지킬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지켜주셔야 합니다. 상황이 너무 힘들고 어려워지면 우리의 마음과 생각은 흔들리기 쉽습니다. 그러나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내 마음이 이렇게 불안하고 어쩔 줄 몰라 한다면 하나님께서 평강을 안 주셔서 그런 걸까요?
하나님의 평강은 인간이나 그 어떤 제도가 만들어 낼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에게 임할 때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지켜줍니다. 하나님의 평강의 카버리지는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이란 인간의 한계와 이해를 초월하는 것입니다. 믿음의 심지가 견고한 사람에게 하나님께서는 평강에서 평강으로 지켜주십니다(사 26:3).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의 모든 근심과 염려로부터 지켜 주십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환경을 변화시켜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어떠한 상황에 있든지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내가 할 일과 하나님이 해주는 일이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신자가 누리는 참된 평화는 단순히 기도만 한다고 해서 주어지는 것이 아니라 기쁨의 관리, 섬김의 행동이 따라야 합니다. 그 어떤 것보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될 때 그것이 다른 관계에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과의 관계가 불평하고 상황이 너무 어려워 마음이 뒤숭숭할 때 예배를 드리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바퀴벌레가 불을 보면 달아나듯이 우리의 염려와 근심이 사라집니다. 또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행할 때에 참된 평화를 누리게 됩니다. 빌립보서 4장 9절입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것은 어떤 것을 의미할까요? 성경에는 “그리하면”단어가 여러번 나타납니다. 이렇게 하면 그런 결과가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6장 33절입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 그리하면 뒤에 나오는 결과만 붙들지 말고 그리하면 앞에 나오는 명령에 유념해야 합니다.
3. 하지만 내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첫째,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본문 4절입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하나님의 평강은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방식과 연결되어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해야 합니다.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자신이 처한 상황과 형편을 바라보면 힘들고 마음이 아픈 것이 사실이지만 주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와 사랑을 생각하면 기뻐할 수가 있습니다.
주 안에 있다는 것은 우리가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이고 영생을 얻었고, 천국의 시민권을 갖고 있다는 뜻입니다. 신자들은 홀로 버려진 존재가 아니라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다. 신자의 기쁨은 성령 안에서 누리는 기쁨이기 때문에 상황을 초월하는 기쁨입니다. 신자의 기쁨은 주 안에서의 기쁨이 크기 때문에 세상에서 당하는 고난과 슬픔을 능히 이길 수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둘째,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본문 5절입니다.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느니라.” 관용을 베풀라는 것은 어떤 사람에게도 과격한 반응을 나타내지 않고 여유있게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자신에게 당연한 권리를 포기하고 다른 사람을 향해 너그럽게 대하는 태도를 말합니다. 때로는 손해나 역경을 당해도 관대한 마음을 계속해서 유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소한 문제에 대해 지나치게 화를 내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신자가 누구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까요? 가까운 사람이나 좋아하는 사람뿐 아니라 처음 만난 사람이나 불편하게 느끼는 사람에게도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내가 좋아하고 코드가 잘 맞는 사람에게는 관대할 수 있는 데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푼다는 것이 가능할까요? 사람들이 끝까지 싸우는 이유는 이 세상의 삶이 유일하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왜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할까요? 예수 그리스도께서 언제 어느 순간에 다시 오실는지 알 수 없기 때문에 모든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또한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우리가 선악간에 행한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5장 10절입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면서 살아가는 사람은 작은 것에 매이지 않고 넉넉한 마음으로 상황을 이해하고 관용을 베풀게 됩니다.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께서 가까이 계시기 때문에 관대하게 됩니다. 주님의 재림을 의심하거나 믿지 않는 사람은 자기 중심적이고 이기적으로 변할 수 밖에 없습니다
주님이 알아주시기 때문에 우리는 사람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합니다. 그 사람 때문에도 그렇게 하지만 주님이 그렇게 하기를 원하시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렇게 하면 나에게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는 이유는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가 가까이 왔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에게 관대한 마음을 가지십시오. 다른 사람들을 따뜻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대해 주십시오. 당장에 좋은 일을 택하지 마시고 지나고 나면 두고 두고 기분 좋은 일을 많이 만드십시오.
다른 사람을 배려하고 섬길 때 마음이 넉넉해집니다. 마음이 넓어지고 평안해집니다. 자신의 것을 고집하지 말고 자신의 것을 통해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기회로 삼으십시오. 가장 가까운 사람들에게 잘 하십시오. 사랑할 수 있는 기회가 많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과 불편한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은 마음의 평강을 누릴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 때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당신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셋째,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감사함으로 아뢰어야 합니다
본문 6절입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내 계산으로 내 능력으로 도저히 해결할 수 없는 것들을 하나님께 맡가지 않고 자신의 힘으로 해결하려고 할 때 염려가 생깁니다. 염려는 많이 하는 사람은 그만큼 기도가 안됩니다. 염려가 될 때마다 기도하는 사람은 그만큼 염려가 줄어듭니다. 어떤 사람은 기도하면서도 염려를 여전히 붙잡고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는 믿음이 없는 기도를 하거나 죄를 품고 기도하기 때문에 응답을 받지 못합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찾아오면 낙심이 되어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염려가 몰려올 때는 한 구석에 틀어박혀 불평을 하기가 가장 쉽습니다. 하지만 문제[를 하나님께 거져갈 때 거기서 벗어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살아가는 것이 가능할까요? 우리가 생각할 때는 불가능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왜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염려한다는 것은 불안한 마음과 걱정으로 마음이 나누어진다는 뜻입니다. 염려의 덫에 걸리면 빠져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염려란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해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그냥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는 방도를 마련해 주셨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당면한 문제가 힘들 때는 걱정이 생기고 초조하거나 불안해질 때가 있습니다. 염려에 대한 해결첵은 기도와 간구입니다. 그런데 너무 힘이 들고 기도가 잘 안될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께서 기도하고 싶은 마음이 생길 때까지 기다려야 할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왜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상황이 생기게 되었는지, 왜 이렇게 내가 하는 일은 꼬이고 잘 안되는지 불평하지는 마십시오.
감사는 상황 자체를 좋게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심을 받아들이는 것을 말합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모든 것을 내어맡기는 것을 말합니다. 요한일서 4장 14, 15절입니다. “그를 향하여 우리가 가진 바 담대함이 이것이니 그의 뜻대로 무엇을 구하면 들으심이라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을 안즉 우리가 그에게 구한 그것을 얻은 줄을 또한 아느니라.” 신자는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선하게 이루어 주실 것을 확신합니다. 우리가 무엇이든지 구하는 바를 들으시는 줄 알기 때문에 미리 감사하는 것입니다.
감사함으로 아뢴다는 것은 기도 응답에 대한 확신을 미리 보고 감사하는 기도를 말합니다. 기도하는 사람은 염려하지 않고 감사할 수 있습니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모든 필요를 아신다는 확신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감사는 염려되는 모든 것을 하나님께 아뢰고 맡기는 것입니다. 너의 모든 짐을 혼자 지려고 하지 말고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우리는 기도할 때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오히려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어야 합니다. 이렇게 힘들고 어려운 일이 생겼는데 어떻게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을까요? 문제 그 자체로 인하여 감사하기보다는 문제로 인하여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으로 바꾸어 주실 것을 확신하기 때문에 감사한 것입니다. 염려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서도 기도와 간구로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우리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십니다.
이 세상 그 어디에도 참된 평안을 얻을 수 없습니다. 마음에 평안하게 가져야지 한다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성공해서 명예를 얻거나 소유가 풍부하다고 해서 평안을 누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내가 왜 이런지 모르겠다고 말합니다. 내 마음을 내가 알 수 없다고 말합니다. 부모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친구가 내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많은 돈이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사람들의 인기와 명예가 내 마음과 내 생각을 지켜주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신다는 것은 구체적인 기도의 응답보다 훨씬 더 근본적인 것을 해결해 주신다는 의미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기도하면 모든 것을 주시겠다고 하시지 않고 하나님의 평강으로 마음과 생각을 지켜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빌립보서 4장 7절에서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왜 참된 평화를 가져야 하는 이유를 가르쳐 줍니다.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모든 관계의 회복의 마스터키는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 하나님의 평강은 믿는 자의 마음을 지키는 초소를 지키는 보초처럼 모든 근심과 실망으로부터 성도들을 지켜 보호해 줍니다. 참된 평화는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지는 선물입니다. 로마서 5장 1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의롭다하심을 받았으니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평을 누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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