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찰스 브리지스는 시편 119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은 시편 중의 시편이라고 합니다. 시편 전체의 주제와 내용을 함축적으로 표현한 시편은 1편입니다. 시편 1편은 구원받는 복된 성도가 걸어갈 행로를 선명하게 지시합니다. 곧 복 있는 자가 되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복 있는 사람이 된 자로서 마땅한 도리를 지시합니다.
시편 1편 1, 2절입니다.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시편 119편 1, 2절입니다. “행위가 온전하여 여호와의 율법을 따라 행하는 자들은 복이 있음이여 여호와의 증거들을 지키고 전심으로 여호와를 구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시편 119편은 계속해서 성도의 참된 행보를 풀어내고 있습니다. 바른 신학, 체험적 은혜, 경건의 실천을 이룬 참된 성도의 행보가 무엇인지 적시하고 있습니다. 시편 119편의 탁월한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사랑입니다. 시편 119편은 하나님의 말씀에 철저하게 복종하는 규범적 실천입니다.
176절에서 네 절을 제외하고는 (84, 121, 122, 132절) 모든 절에서 말씀, 율법, 법, 증거, 법도, 율례, 계명, 판단, 규례, 도와 같은 단어들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은혜의 샘이 있고, 그 샘에서 마신 자만이 하나님이 주신 영적인 갈증을 채우고 그 말씀을 통하여 일어설 능력을 갖추게 됩니다.
헨리 벤은 이렇게 말합니다. “성경을 읽으면 귀하의 영혼이 즐거워하고, 양식을 성취하여 힘을 얻고, 또 생각이 제 자리로 돌아오는 것을 경험하지 않습니까? 오늘 저는 시편 119편 92절을 중심으로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아니었더라면”이란 제목으로 함께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본문을 다시 한번 읽어드리겠습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1.고난 당할 때 기쁨이 없으면 절망하게 됩니다
시인은 자신이 고난을 당할 때에 주의 법이 자신의 기쁨이 되지 않았다면 멸망하고 말았을 것이라고 표현합니다. 당신은 고난을 당할 때 어떻게 지탱하십니까? 어떤 사람은 고난을 당할 때 시험에 빠지거나 매몰당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에서 시인은 고난 당할 때 주의 법이 자신의 기쁨이 되었기 때문에 망하지 않았다고 고백합니다. 현대인의 성경은 이렇게 번역합니다. 주의 법이 내 기쁨이 되지 않았더라면 나는 고통 가운데서 죽었을 것입니다.
야고보서 1장 2절입니다. “내 형제들아 너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 한 가지 시험만이 아니라 여러 가지 시험이 닥쳐오면 낙심이 되고 슬퍼집니다. 이런 경우에 기쁘게 여기는 것이 어떻게 가능합니까? 그것도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는 것은 이해가 안됩니다. 성경에서 이해가 안되는 본문이 있다면 그것이 인생의 의미를 푸는 열쇠가 됩니다. 인생은 알고 보면 여러 가지 시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시험은 언제든지 우리에게 달려들려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당하는 시험은 믿음의 진정성을 알아보는 기회입니다. 살아가면서 당하는 슬픔이나 고통, 실망과 같은 인생의 폭풍우 앞에서 우리의 믿음이 무너져버리는 것은 자주 반복됩니다. 그러나 이러한 시련 가운데서도 믿음으로 견디고 인내하는 과정을 통해서 신앙이 성숙하게 됩니다.
우리가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할까요? 시험 그 자체가 기쁘기 때문이 아닙니다. 히브리서 12장 11절에 보면 징계가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입니다. 후에는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기 때문입니다. 온전하고 구비하여 조금도 부족함이 없게 되기 때문입니다.
만약 여러 가지 시련을 당하여 힘들어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시다. 괜찮은 걸까요? 이 일이 일어난 것을 기뻐하세요. 하나님은 이 일을 통해 당신의 성품을 다듬어 가십니다. 이렇게 되면 욥이 말한 것처럼 재난을 주는 위로자가 되는 것입니다. 슬픔을 당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조언하면 오해를 불러 일으킬 수가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사로가 죽은 후 마리아와 마르다를 만났을 때 이 일에는 하나님의 목적이 있다고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먼저 그들을 위로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우셨습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시험을 당할 때 내가 뭘 잘못해서 이런 고난을 주십니까? 이에 대해 하나님을 비난하기보다는 그것을 기쁨으로 여겨야 합니다. 이 시련들을 성숙함을 낳기 때문입니다.
2.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되면 고난을 능히 극복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입니다. 92절입니다.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고난 중이 기쁨을 갖는 것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런데 어떤 것이 고난 중에 당신의 즐거움이 되고 있습니까? 고난의 리스크에 대처하는 최고의 방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되어야 합니다. 시인은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라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14절입니다. “내가 모든 재물을 즐거워함과 같이 주의 증거들의 도를 즐거워하였나이다.” 주의 말씀을 깨닫는 것보다 재물이 늘어나는 것에 더 즐거워한 적은 없으십니까? 당신은 어떤 것에 대하여 더 부요하십니까?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십니까? 아니면 자신의 욕심에 대해 부요하십니까?
우리가 주의 자녀인지 알아볼 수 있는 것은 두 가지를 통해 알 수 있습니다. 16절입니다.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 한 가지는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고 있는지, 다른 한 가지는 주의 말씀을 기억하고 있는지를 보면 알 수 있습니다.
자기 재산에 대해 탐욕이 있는 노인이 자기 보화를 숨겨둔 곳을 잊어버렸다는 것을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다른 것에는 침해에 걸려도 돈에는 침해가 걸리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만큼 소중하게 여기는 것은 기억한다는 것입니다. 보물이 있는 곳에는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마 6:21).
사탄은 말씀이 마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자주 막습니다., 마음에 뿌려진 말씀을 빼앗아 가기도 합니다. 너무 자주 그 말씀이 마음의 토양에서 자라지 못하거나 시들어 버리게 합니다. 그러나 착하고 좋은 마음으로 말씀을 지키어 인내로 결실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핑요할 때 마음의 곳간에 저장해 놓은 말씀은 거룩의 원리로 사용하거나, 죄가 침투하지 못하게 막아주는 도구가 됩니다.
신자에게 있어서 가장 위험한 순간은 하나님의 말씀을 잊어버릴 때입니다. 신자가 주의 말씀을 잊는 순간 탄식하게 되며, 시험에 드는 원인이 됩니다. 기억력이 좋지 못한 사람이라도 은혜는 그 사람 속에 선한 마음이 남아있게 합니다. 시인은 133절에서 자기에게 위험이 가중되고 있을 때마다 “나의 발 걸음을 주의 말씀에 굳게 세우시고 어떤 죄악도 나를 주관하지 못하게 하소서”라고 고백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당신이 어떤 것을 붙잡는가? 그것이 당신의 인생의 목적입니다. 그것을 잃어버렸을 때 당신이 어떤 태도를 취하는가? 그것이 당신의 가치관입니다. 고난을 당할 때 그것이 주는 압력에 눌리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당신은 어떤 것을 묵상하십니까? 잃어버린 돈입니까. 떠나 버린 사람입니까? 당신이 이전에 잘못 살았던 것입니까, 당신이 받은 상처입니까? 당신이 고난 당할 때 당신의 마음에 떠오르는 것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고 그것을 나의 기쁨으로 삼는다면 당신은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힘을 얻게 됩니다.
시편 119편 50절입니다. “ 이 말씀은 나의 고난 중의 위로라 주의 말씀이 나를 살리셨기 때문이니이다.” 내가 힘들어할 때 누가 위로해 줍니까? 시인은 주의 말씀이 나의 고난 중에 위로라고 고백합니다. 상황이 너무 어렵고 힘들 때 어떻게 헤쳐 나가십니까? 105절입니다. “주의 말씀은 내 발에 등이요 내 길에 빛이니이다.” 많이 답답하고 당신의 마음에 무엇이 떠오르는가? 그것이 당신의 인생을 결정합니다. 억울하고 섭섭한 감정입니까? 그것이 혹시 떠오른다 하더라도 주의 말씀이 떠오르면 좋겠습니다. 주의 말씀은 고난 중에 위로이기도 하지만 주의 말씀이 나를 살려 주십니다.
그런데 가중되는 고난으로 인해 근심할 때 주의 법이 즐거움이 된다는 것이 이해가 되십니까? 고난의 때에 그 어떤 사람도 나에게 찾아와도 마음이 닿도록 할 수 있을까요? 그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이 일은 하나님이 하실 수 있는 고유한 특권입니다. 이사야 40장 2절입니다. “너희는 예루살렘에 마음에 닿도록 말하여 그것에게 외치라 그 노역의 때가 끝났고 그 죄악이 사함을 받았느니라 그의 모든 죄로 말미암아 여호와의 손에서 벌을 배나 받았느니라 할지니라 하시니라.”고난의 순간에 주의 도움을 받으려면 반드시 하나님의 말씀이 나의 즐거움이 되어야 합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 그것을 해결하는 가장 좋은 방안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시계가 고장 나면 어디에 가야 할까요? 시계방입니다. 컴퓨터가 고장 나면 AS센터로 가야 합니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야합니다. 우리 인생이 고장 나면 교회로 가야 합니다.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 누구 때문에 이런 일을 당했다고 원망하는 것은 가장 안 좋은 일입니다. 자책하면서 그 문제를 혼자 끌어안고 딩구는 것은 그 다음으로 안좋은 일입니다. 은혜의 보좌 앞에 나와서 문제를 새로운 차원으로 바라보는 것이 최고의 방안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을 통해서 나를 여전히 사랑한다는 사실을 깨닫고 기뻐하고 힘을 얻는 것이 고난의 해독제입니다. 인생의 갖가지 고난을 허락하시는 하나님 안에서 풀어가는 것이 최선의 방책입니다.
우리는 고난과 손실이 매우 크다는 것을 알면서도 소망을 잃지 않고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의 고난에는 목적이 있어,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것을 도구로 사용하여 내 안에서, 나를 통해 역사하심으로써 참으로 귀하고 영원토록 선한 것을 이루시기 때문이야. 하나님께서 나를 어려운 상황에 처하게 하신 이유는 그런 기쁨을 허락하시기 위해서야”(폴 트립, 고난). 고난을 당할 때에는 성경을 통해서 하나님의 목적과 위로를 바라보십시오. 그러한 행동이 날마다 당신을 기쁘게 할 것입니다.
고난은 인생이 가장 혹독한 고통과 가장 놀라운 은혜의 축복아 마주치는 교차점입니다. 고난을 당하면 자연스레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규정하는 것으로 받아들이기 쉽습니다. 따돌림괴 괴롭힘을 당하면 감당하기 어렵지만 그것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짓지 못합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잃는 것이든, 친구의 배신이든, 육체적인 질병이든, 경제적인 몰락이든, 이 세상의 어떤 시련도 우리를 규정하지 못합니다.
하나님이 나의 정체성을 결정하십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다! 주님이 우리의 정체성을 결정하신다면 그 무엇도 우리에게 의미와 목적과 축복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고난 당할 때 주의 법이 나의 기쁨이 된다면 주의 법이 나를 세워주실 것입니다. 주의 말씀이 내 인생의 마스터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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