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해가 되지 않는 경우에 순종을 요구하시는 경우
사실은 그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고, 다란 축복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께서 원수를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하셨습니다. 인간의 감정의 상태로는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 무리한 요구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서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라고 하신 것은 도저히 이해가 가지 않는 대목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아들 이삭을 제물로 바치는 그 자체를 요구하신 것이 아니라 아들 이삭까지도 아끼지 않고 바칠 수 있는 각오가 되어 있는가를 보신 것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큰 복을 내리시고 축복의 통로로 사용하셨습니다.
2. 나는 도저히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 하나님께서 나에게 요구하시는 경우
많은 경우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에 자원하는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때때로 나 자신의 한계에 매여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용하기를 원하시는 기회를 놓치지 않도록 조
심해야 합니다.
그러한 경우에는 하나님께서 그 일에 순종하려고 할 때 필요한 지헤와 자원과 능력을 공급하여 주십니다.
3. 복음을 위해 희생해야 하는 경우
사도 바울과 같이 자신이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결박을 당하고 죽음을 맞게 될 것을 분명히 알았지만 복음을 위하여 자신을 희생해야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우리가 모르면서도 당하는 경우가 있지만 알면서도 복음을 위하여 희생과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경우가 분명히 있습니다. 이러한 경우에 우리는 단순히 피할 길을 찾을 것이 아니라 주님의 고난에 참여하는 길을 택해야 합니다.
사실 예수님께서는 아무 죄가 없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얼마든지 십자가의 고난을 피할 수 있는 능력과 길이 있으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우리의 죄 때문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다는 사실을 알아줄 때까지 십자가에 못박히신 것을 보류하지 않았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저희의 죄를 사하여 주옵소서. 언젠가는 깨닫고 돌아올 것을 아시고 미리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고 기다려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이해할 수 없어도 십자가에 못박히시기까지 순종하셨던 것입니다.
4. 그러나 우리가 언제나 경계해야 하는 경우
사람이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이해할 수 없더라도 맹종해야 하는 것처럼 주장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자신의 유익을 위한 것인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인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아무리 주의 종의 말이라 하더라도 죄를 짓게 하는 일에 맹종해서는 안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에 벗어난 일이라면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는 이해할 수 없어도 절대적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그러나 인간의 권위는 언제나 잘못된 방향으로 흐르기 쉽기 때문에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근본적인 자세는 권위자의 말에 순종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그러나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볼 때 과연 그러한 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 예를 들면 사도들이 오순절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을 때 가는 곳마다 예수가 그리스도이심을 증거하였습니다.
당시에 종교적 지도자들이 사도들에게 매를 가하고 감옥에 투옥하고 석방시켜 주면서 다시는 예수를 증거하지 말라고 엄포를 놓습니다. 그때 사도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보다 사람의 말을 듣는 것이 옳은지 분별하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서 과연 그러한가 분별할 줄 알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