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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건강한 교회 목회 패러다임과 실제

by liefd 2024. 10. 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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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시작하면서

 

역사를 살펴보면 모든 나라와 민족의 운명에는 흥망성쇠가 있었습니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나 목회에도 흥망성쇠가 있습니다. 성경 말씀처럼 망할 때가 있으면 흥할 때가 있습니다. 잘 안될 때도 있지만 잘 될 때도 있습니다. 지금 한국 교회는 영적 교차로에 직면해 있습니다. 지금까지 교회 성장이나 목회에 만족하며 안주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부흥의 시대를 기대하며 도약할 것인가? 안티 기독교 세력과 대결하는 영적 전쟁에서 패배자로 마감할 것인가? 아니면 수많은 장애물과 걸림돌을 디딤돌 삼아 새롭게 도약할 것인가? 하나님의 뜻을 바로 이해하지 못한 채 자존심을 내세우고 사람과 환경 탓하며 영적 부흥의 대열에서 낙오 될 것인가? 아니면 새로운 미래를 꿈꾸며 건강한 교회를 향한 하나님의 비전이 이 땅에 실현되는 것을 볼 것인가?

 

기독교 역사를 살펴볼 때 수많은 교회들이 세워지고 없어졌습니다. 변해가는 시대에 변화되지 못하고 복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하는 교회들은 사라져 갔습니다. 이렇게 세상은 발전하고 시대는 변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이 있다면 각 시대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르며 하나님께 쓰임 받은 교회들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교회들은 병든 교회, 부패한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였습니다. 큰 교회, 커다란 건물을 소유한 교회가 아니라 건강한 교회, 복음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교회였습니다. 작은 자가 천을 이루고 약한 자가 강국을 이루게 하신 다는 이사야 6022절의 말씀처럼 작지만 큰 영향력을 끼치는 건강한 교회들에 의해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어 왔습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목회에 새로운 전환점이 마련되어야 합니다.

 

정광호 씨가 쓴 책 [우화경영]에 보면 솔개의 장수비결에 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솔개는 가장 장수하는 조류로 알려져 있다. 솔개는 최고 약 70세의 수명을 누릴 수 있는데 이렇게 장수하려면 약 40세가 되었을 때 매우 고통스럽고 중요한 결심을 해야만 한다. 솔개는 약 40세가 되면 발톱이 노화하여 사냥감을 그다지 효과적으로 잡아챌 수 없게 된다. 부리도 길게 자라고 구부러져 가슴에 닿을 정도가 되고, 깃털이 짙고 두껍게 자라 날개가 매우 무겁게 되어 하늘로 날아오르기가 나날이 힘들게 된다. 이즈음이 되면 솔개에게는 두 가지 선택이 있을 뿐이다. 그대로 죽을 날을 기다리든가 아니면 약 반년에 걸친 매우 고통스런 갱생 과정을 수행하는 것이다. 갱생의 길을 선택한 솔개는 먼저 산 정상부근으로 높이 날아올라 그곳에 둥지를 짓고 머물며 고통스런 수행을 시작한다. 먼저 부리로 바위를 쪼아 부리가 깨지고 빠지게 만든다. 그러면 서서히 새로운 부리가 돋아나는 것이다. 그런 후 새로 돋은 부리로 발톱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그리고 새로 발톱이 돋아나면 이번에는 날개의 깃털을 하나하나 뽑아낸다. 이리하여 약 반년이 지나 새 깃털이 돋아난 솔개는 완전히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게 된다. 그리고 다시 힘차게 하늘로 날아올라 30년의 수명을 더 누리게 되는 것이다.”

 

목회도 마찬 가 지 인 것 같습니다. 새로운 교회 성장과 부흥을 위해서는 어떤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물론 가장 큰 전환점은 담임목사가 바뀌는 것입니다. 풀러 신학교에서 교회 성장학을 가르치던 피터 와그너 박사의 말처럼 교회 부흥의 가장 큰 변수는 그 교회 담임 목회자이기 때문입니다. 담임 목사가 교체되는 것 외에도 교회 건축이라든지, 교회 이전 등을 통해 교회 부흥의 새로운 전환점을 마련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런 계기를 억지로 만들 수는 없습니다. 목회가 안 될 때마다 목회지를 바꿀 수는 없습니다. 이런 외부적인 변화에 편승하지 않고 교회가 부흥하기를 꿈꾼다면 목회 패러다임을 바꿔야 합니다리더의 생각이 바뀌면 교회가 바뀝니다. 리더의 목회 방향이 바뀌면 교회의 칼라와 내용이 바뀝니다. 어떤 목사님들은 패러다임의 변화 없이 목회 방법을 바꾸어 성장을 시도합니다. 다른 목사가 좋다는 프로그램을 도입해 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목회 패러다임과 철학으로의 근본적인 변화와 전환이 없이는 목회자만 지칠 뿐입니다. 방법이 아니라 철학이 목회를 만들기 때문입니다.

 

얼마 전 우리 교회에서 연세 드신 집사님 한분이 소천 하셨습니다. 그분의 자녀들은 본 교회에서 신실하게 신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들 하나만 유일하게 교회를 다니지 않고 있습니다. 소천하신 집사님의 장례식을 교회에서 잘 치러드린 후 저의 고등학교 동창이기도 한 이 친구가 인사차 저를 방문했습니다. 함께 온 동생들이 오빠도 이제는 교회에 나와야 된다고 강하게 권면합니다. 그러자 이 친구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도 언젠가는 교회에 나올 것이다. 그러나 살기 힘들고 어려운 세상에서 생존하려면 적당히 사기도 치고, 거짓말도 해야 하는데 교회에 나오면 더 이상 세상 방법으로 살 수 없으니 나중에 성공한 뒤에 교회에 나오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친구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 나이가 50세가 다되어 가는데 지금까지 자네 생각과 방식대로 살아왔어도 성공적인 삶을 살지 못했지 않은가? 그렇다면 지금까지 자네가 살아오던 삶의 방식을 가지고 앞으로 30년을 더 발버둥 친다고 해서 달라진다는 보장은 없네. 그러니 동생들처럼 교회에 나와 새로운 생각과 영적인 삶의 방식으로 방향을 전환해서 사는 것이 성공적인 삶이라고 권면했습니다. 지금 이 친구는 그 다음 주일 바로 교회에 등록 한 뒤 교회 나오며 신앙생활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목회도 마찬가지입니다. 지금까지 내 방법과 방식을 가지고 부단히 애를 썼어도 부흥이 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지금까지 해왔던 것처럼 열심히 목회한다고 해서 교회가 부흥하기란 어려운 일입니다. 건강한 교회로의 전환과 교회 부흥을 위해서는 목회에 새로운 전환점이 필요합니다. 단지 목회 방법에서 변화를 주는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목회 패러다임과 철학의 변화가 필요합니다. 큰 교회, 많은 교인을 추구하는 목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 하나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려는 열망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부흥하게 됩니다. 일부 교회들의 성장은 탁월한 목사의 개인 리더십과 목회 역량에 따라 이루어질 수 있습니다. 진정한 교회 부흥은 사람의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방법으로 이루어집니다. 부흥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 패러다임(1)

 

교회 성장 속도보다 목회 방향이 중요하다

 

2006년 유럽 선교사 세미나를 인도하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세미나를 마치고 루터가 종교개혁을 일으켰던 비텐베르크 성당을 보러 가게 되었습니다. 안내해주시던 선교사님에게 아우토반(속도 무제한 고속도로)에서 제가 운전할 수 있냐고 물어보았습니다. 평소 독일에 오면 달려보고 싶었던 곳이었기 때문입니다. 선교사님은 흔쾌히 저에게 운전대를 맡겨 주었습니다. 기회다 싶어서 가속페달을 힘껏 밟았습니다. 계기판의 속도가 160Km, 180Km 올라가기 시작했습니다. 200Km 가까이 되었을 때 손에서 땀이 나기 시작했습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경험해보는 속도였습니다. 옆에 계시던 선교사님이 말합니다.

 

안 목사님 이 차는 220Km까지 속도가 나니 더 밟아 보세요.” 긴장이 되었지만 속도감을 즐기며 더 힘껏 달리려고 속도를 올리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200Km 이상의 속도로 달리는데도 제 차를 추월하는 차들이 있었습니다. 바짝 긴장 하며 집중해서 운전하고 있는데 옆 자리에 앉아 있는 선교사님이 말합니다.

 

목사님 저기 앞에 보이는 출구로 나가야 합니다.” 황당해졌습니다. 1차선에서 속도를 내면서 달리고 있는데 어떻게 갑자기 나갈 수 있겠습니까? 달리는 차들을 신경 쓰며 제일 가장 자리 차선으로 변경하며 속도를 줄였습니다. 그러나 워낙 빠른 속도로 가다보니 출구에서 약간 지나쳐서 갓길에 멈추게 되었습니다. 할 수없이 비상등을 켜고 약간 후진해서 출구로 나갈 수 있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참으로 무모한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그 때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을 말입니다. 교회 성장의 속도보다 더 중요한 것은 목회 방향과 철학입니다.

 

제가 미국에서 개척할 때의 일입니다. 대부분 목사님들이 그렇듯이 가능한 모든 힘을 쏟고 최선을 다해 사역했습니다. 이렇게 열심히 목회 하면 교회가 놀랍게 부흥될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현실은 비참했습니다. 저의 수고와 열심에도 불구하고 만족할만한 열매를 맺지 못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역했는데 사람들은 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 때 저는 간절함과 절박함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하나님께 전적으로 항복한 이후 교회는 건강하게 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많은 목사님들이 큰 교회, 성공한 목사가 되기 위해 열심을 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핵심을 잡는 것입니다. 릭 워렌 목사가 지적한 것처럼 하나님이 원하시는 뜻과 목적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 채 열심만 내는 것은 오히려 위험한 것입니다. 내가 하고 싶은 목회가 아니라 주님이 하라고 하시는 목회를 해야 합니다. 내가 보기에 멋진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 보기에 좋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내가 원하는 교회가 아니라 주님이 기대하시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가 아무리 커도 건강한 교회가 아니라면 짝퉁 교회에 불과할 뿐입니다.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교회에 불과할 뿐입니다. 교회가 성장하지 않는 것보다 더 위험한 것은 잘못된 성장입니다.

 

오늘날 교회가 세상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이유는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교회가 건강한 교회로 성장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살찌는 것과 성장하는 것은 다릅니다. 크지만 병든 교회가 있고 작지만 건강한 교회가 있습니다. 교인이 많은 교회와 건강한 교회에는 분명한 차이가 존재합니다. 교인 수나 교회 건물에 관계없이 교회는 건강한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교회 사이즈와 관계없이 건강한 교회로 전환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이 땅에 교회를 세우셨던 본래의 목적과 하나님의 뜻에 충실해야 합니다. 교회 성장을 꿈꾸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교회로의 부흥을 꿈꿔야 합니다. 교회가 건강하면 교회는 자연스럽게 성장하게 됩니다. 교회 부흥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건강한 목회 철학에 있습니다. 에머슨의 말처럼 생각이 열쇠입니다. 생각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생각의 부흥이 일어나야 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목회 철학을 가져야 합니다. 목회 철학의 재정립이 필요합니다.

 

제가 건강한 교회 목회를 추구하게 만들어주었던 결정적인 성경구절은 마태복음 722~23절의 말씀입니다. 그 날에 많은 사람이 나더러 이르되 주여 주여 우리가 주의 이름으로 선지자 노릇하며 주의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며 주의 이름으로 많은 권능을 행치 아니 하였나이까 하리니 그 때에 내가 저희에게 밝히 말하되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리라.”

 

이 말씀은 부흥에 대한 간절함보다 성장에 대한 욕심이 앞설 때 제 생각을 잡아주는 다림줄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은 명확합니다. 우리가 어떤 일을 얼마나 위대하게 성취했느냐보다 얼마나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느냐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내 주장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이 중요합니다. 우리가 세우고 싶은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이 세우고 싶은 교회를 세워야 합니다. 얼마나 많은 일을 했고 얼마나 훌륭한 목사로 인정받았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어떻게 인정하시고 평가하는지가 더 중요합니다. 목회가 점점 힘들어지는 이유는 나의 힘이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내가 뭘 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교회 부흥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이 주시는 부흥을 경험하려면 목회의 힘을 빼야 합니다. 모든 운동이 그렇듯이 운동의 기본은 힘을 빼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 이뤄보려고 하는 욕심과, 이기심과 자존심을 다 내려놓아야 합니다.

그럴 때 비로소 건강한 목회가 시작됩니다. 어떻게 목회를 할 것인가 고민하는 시간보다 목회란 무엇인가를 묵상하는 시간이 많아야 합니다. 기본이 갖춰지면 실력은 빠르게 향상되는 법입니다.

 

개념 원리라는 고등학교 수학 참고서가 있습니다. 개념과 원리를 이해하면 문제가 풀어지는 것입니다. 목회도 마찬가지 인 것 같습니다. 오늘날 많은 목사님들이 교회 부흥을 위한 자료와 프로그램에 목말라 합니다. 좋은 성경 공부 교재를 찾습니다. 목회에 도움이 될 만한 세미나를 찾아다닙니다.

 

하지만 건강한 교회는 바른 신학과 건강한 목회 패러다임의 변화로부터 시작됩니다. 교회 부흥은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철학에 달려있습니다. 목회 철학과 개념이 분명하다면 목회 프로그램은 얼마든지 개발할 수 있습니다. 목회 방향이 결정되고 추구하는 목회 철학이 확실하다면 창조적인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자료가 빈곤하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 것이 아니라 목회 철학과 개념이 빈약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제 목회 철학을 정리를 해놓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목회를 잘하려면 목회자가 품고 있는 생각과 비전을 교인들과 소통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소통되어야 형통한 목회를 할 수 있습니다. 모든 문제는 불통으로부터 시작합니다. 목회자는 교인들과 목회 패러다임과 철학을 공유해야 합니다. 독불장군 리더십이 아니라 함께 가는 리더십이 되어야 합니다. 성도들과 동일한 비전을 품고 한 마음으로 공감할 수 있어야 교회 부흥을 이룰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말씀드리면 목회자가 분명한 소명감과 목회 철학을 갖고 목회 원리를 따라 최선을 다하면 건강한 교회로 성장하게 되어있습니다. 비전이 분명하고 열정이 있으며 창조적인 목회 전략을 가지고 교회를 섬긴다면 부흥하게 되어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떤 문제가 생기거나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할 순간이 다가올 때마다 깊은 묵상을 통해 제가 포기할 수 없는 목회 원리들을 정리해놓습니다. 길이 막힐 때마다 나는 누구이며 무엇을 위해 어디를 가고 있는 지를 생각합니다. 작은 문제라도 항상 기본적인 질문에서 출발 합니다. 다음 글에서는 그동안 제가 건강한 교회 목회를 위해 필요하다고 생각해 정리해 놓은 목회 철학과 원리 중에서 중요한 것을 중심으로 소개하도록 하겠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 패러다임(2)

 

목회 철학과 원리

 

탈무드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우리는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모습 그대로 사물을 본다.” 이것은 생각과 철학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건강한 교회 목회를 위해서는 건강한 목회 철학과 원리를 가져야 합니다. 생각하며 살지 않으면 사는 대로 생각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일관성 있는 목회철학과 원리가 없으면 상황에 따라 살아가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번 주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그동안 정리해 놓은 저의 목회 철학과 원리 일부를 소개합니다.

 

첫번째 교회 비전입니다.

 

교회 비전은 모든 신자가 사역자로 섬기는 사랑의 공동체 되어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추구하는 핵심은 만인 제사장 정신입니다. 모든 신자들이 성직 의식을 가지고 자신들 삶의 현장을 선교지로 생각하며 섬길 수 있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모든 신자가 사역자로 섬기는 것이 건강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본질상 공동체입니다. 교회가 공동체 됨을 구현하려면 함께 예배하고 소그룹으로 모이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이를 위해 목장 교회 시스템은 필수적입니다. 실제로 꿈의 교회 목회는 대부분 목자들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면 교역자의 역할은 뭐냐고 묻는 분들이 있습니다. 교역자는 성도를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고 하나님의 사역자로 섬기는 일에 온전하도록 구비시키는 영적 코치입니다(4:11~13).

 

교역자는 이 일을 위해 부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는 목자들과 사역자들을 포함한 모든 성도들이 교회와 세상에서 왕 같은 제사장으로 섬기도록 깨우고, 가르치고, 돌보고, 세우는 일에 전력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를 통해 세상에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거룩한 영향력을 끼쳐야 합니다. 세상에 의해 변질되지 않고 예수 이름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교회가 하나님의 꿈입니다.

 

두번째 교회 사명입니다.

 

꿈의 교회는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 나라에 대한 거룩한 비전을 가지고 세상을 향해 나아가 사람들에게 복음을 증거하고 그들을 교회 공동체 안에서 훈련하고 세워서 가정과 직장, 나아가 지역사회와 세상 속에서 주님의 사역자로서 공헌하는 축복된 삶을 살게 한다는 사명을 품고 있습니다.

 

교회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며 교회의 비전과 사명이 무엇인지 성도들에게 일깨워주는 것은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데 중요한 요소가 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매 주일 예배 시간마다 성도들과 함께 비전과 사명을 낭독합니다.

 

세번째 목회 철학입니다.

 

이것은 크게 세 가지 문장으로 요약됩니다.

(1) 하나님 나라를 향한 위대한 비전 (2) 건강한 교회에 대한 거룩한 열정 (3) 거룩한 도시와 행복한 성도를 위한 창조적 전략 입니다.

 

목사는 하나님 나라 확장에 대한 비전이 성도 한 사람으로부터 모든 민족에 이르기까지 실현될 수 있게 만들어야 합니다. 자기 목숨을 위해 사는 것이 아니라 주님을 위해 목숨을 걸만한 비전을 갖고 살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는 건강한 교회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건강한 교회가 세상의 희망입니다. 그런데 교회는 건강한 교회를 세워나가려는 목회자의 열정만큼 부흥하는 것 같습니다. 때문에 창조적인 전략은 필수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창조성이 일부 목회자에게 주어진 은사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거룩한 도시를 만들고 성도들을 믿음 안에서 행복하게 만들겠다는 깊은 사랑과 건강한 교회를 향한 열정이 넘친다면 창조성은 개발됩니다.

 

네번째 사역 원리입니다.

 

건강한 교회 비전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사람들을 개발하며, 사람들과 연결되고, 사람들을 통해서, 사람들과 함께 일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프로그램이나 방법에 있는 것이 아니라 사람에게 있습니다. 사람을 살리고, 고치고, 키우고, 세우고, 보내는 것이 목회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목회 평가는 교회 건물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얼마나 훌륭한 사람들을 남기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저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 진리와 복음에 위배되지 않는 한 창조적이고, 주도적이고, 혁신적이고, 전략적이며, 문화적인 접근 방법을 사용합니다. 예로부터 성을 쌓는 민족은 망했습니다. 로마처럼 길을 닦는 민족이 강성하게 되어있습니다. 열린 생각을 갖고 하나님 나라 관점에서 목회를 바라봐야 합니다.

 

다섯번째로 의사 결정 원리입니다.

 

목회를 하다보면 결정을 내려야 하는 수많은 순간을 맞이합니다. 목회자의 결정에 따라 교회 미래가 결정됩니다. 목회자의 결정이 성도를 하나 되게 만들기도 하고 교회를 분열시키기도 합니다. 탁월한 리더십은 모든 성도들이 공감할 수 있고 순종할 수 있는 의사 결정을 이끌어 냅니다.

 

저의 의사 결정 원칙을 다음과 같습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아니라면 결코 동의하지 않는다.

 

(2) 건강한 교회의 필요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무리하게 시도하지 않는다.

 

(3) 나를 설득할 수 없는 일이라면 다른 사람도 설득하지 않는다.

 

(4) 성경적이라는 확신이 들면 변화를 주저하지 않는다.

 

(5) 진리와 본질과 비전에 대한 것이 아니라면 가능한 모든 것을 양보한다.

 

(6) 일보다는 관계를, 관계보다는 교회와 하나님의 영광을 따라 결정한다.

 

(7) 다수의 의견이 아니라 진리와 교회 공동체의 유익을 위해 결정한다. 목사는 성도들의 중론을 모으지만 정론을 따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목회자에게 순복하게 되어있습니다.

 

여섯번째로 직분자 임명 원리입니다.

 

교회 직분은 명예가 아니라 역할입니다. 직위가 아니라 사명이며 하나님에 대한 자신의 신앙고백입니다. 건강한 교회는 직분에 대한 바른 이해를 가진 헌신된 사역자들에 의해 세워집니다. 그러나 이런 사람이 교회 안에 많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을 키워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어떤 성도를 어떤 위치에 세우느냐는 건강한 교회를 세우는 중요한 요인이 됩니다. 그래서 저는 다음과 같은 철학을 가지고 사람을 세웁니다.

 

첫째 헌신된 사람은 중요한 자리에 세웁니다.

둘째 책임질 믿음이 있는 사람을 책임질 수 있는 자리에 세웁니다.

셋째 탁월한 사람은 크게 사역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웁니다.

넷째 충성된 사람은 믿을 수 있는 자리에 세웁니다.

다섯째 가능성이 있는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웁니다.

 

조금 부족하지만 관계나 상황 때문에 세워야 할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 사람은 성장할 수 있는 자리에 세웁니다. 세운 후 성장할 수 있도록 돕고 후원하고 격려해서 헌신된 사역자로 만들어 갑니다.

 

일곱 번째로 인간관계 원리입니다.

 

목회 성공과 실패는 사역이 아니라 관계에서 결정 됩니다. 아무리 탁월하고 능력이 있어도 관계에 실패하면 목회에 실패하게 됩니다. 저의 관계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중요한 사람은 중요하게 취급한다. 목사는 교회에 헌신하는 중요한 리더들을 중요하게 섬기고 예우해줘야 합니다.

 

두번째 소외된 사람은 소중하게 여긴다. 목사는 소외된 사람에게 예수님의 심장으로 다가가는 따뜻한 마음을 가진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안식년을 마치고 돌아와 제일 먼저 한 일이 병들고 소외된 사람들에 대한 심방이었습니다.

 

세번째 특별한 사람을 특별하게 대우한다. 성도들을 차별하지 않되 구별하여 이끄는 지혜로운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네번째 민감한 사람을 민감하게 다룬다. 예민한 성도들이 상처받지 않도록 세심하게 품어주고 챙겨주는 자상한 리더가 되어야 합니다. 목회자가 분명한 목회 철학을 가지고 원리와 원칙을 따라 사랑으로 목회한다면 건강한 교회를 세울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이끄는 목회 패러다임(3)

 

교회 사명에 따른 사역원리

 

요즘 히트치고 있는 놈놈놈이라는 영화가 있습니다. 원래 제목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입니다. 일제시대 만주를 무대로 벌어지는 액션 영화입니다. 이 영화에는 도둑질과 각종 나쁜 짓을 도맡아 하는 나쁜 놈이 있습니다(이병헌). 그리고 이런 나쁜 놈을 잡아 현상금을 타는 좋은 놈이 있습니다(정우성). 이것도 저것도 아닌 것 같은 이상한 놈(웃기는 놈)도 있습니다(송강호).

 

목사도 사사사가 있는 것 같습니다. 바른 신학의 바탕위에 바른 목회철학을 갖고 원칙 중심의 목회를 하는 좋은 목사가 있습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꿈꾸시는 교회에 대한 소명감 대신 교회를 자기 생활의 방편이나 명예를 위한 도구쯤으로 여기는 나쁜 목사가 있습니다. 분명한 원칙과 바른 목회에 대한 생각이 없이 상황과 자기 이익에 따라 움직이는 이상한 목사도 있습니다. 교회도 나쁜 교회, 좋은 교회, 이상한 교회가 있는 것 같습니다. 좋은 교회는 교회 사명을 잘 수행하는 건강한 교회입니다. 좋은 교회, 건강한 교회로 부흥되기 위해서는 교회 사명과 사역 원리를 분명히 해야 합니다. 제가 추구하는 교회 사명에 따른 사역 원리는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목회 리더십에 대한 원리입니다.

 

저는 하나님의 자녀와 하나님의 사역자로 변화시키기 위해 전인 목회를 추구합니다.

 

이것은 Five Touch 리더십으로 표현됩니다.

 

첫 째로 인성터치 리더십입니다.

 

성도들은 강단에서 선포되는 목회자의 말보다 강단 아래에서 보여지는 목회자의 삶과 인격을 통해 더 많이 배웁니다. 목회자 이전에 인격자가 되어야 합니다.

 

두번째로 영성터치 리더십입니다.

 

영성은 어거스틴의 말처럼 그리스도 안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그리스도를 위하여, 그리스도처럼 살아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앎과 삶이 일치하고 말과 행동이 일치하는 삶을 의미합니다. 생활 속의 영성은 성도들에게 큰 영향력을 끼칩니다. 성령 충만한 목회자의 삶은 성도들을 변화시키는 가장 강력한 무기입니다.

 

세번째로 지성터치 리더십입니다.

 

사람은 배우고 아는 만큼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양육과 설교를 통해 성도들의 지성을 흔들어 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성도들의 생각과 삶의 변화가 일으키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네번째로 감성터치 리더십입니다.

 

사람은 지식만으로 변화되지 않습니다. 감동이 되어야 변화되고 결단합니다. 목사의 권위로 사람을 윽박지를 수는 있지만 성도를 사랑하고 섬기는 리더십만이 성도들에게 깊은 존경과 순종을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능력터치 리더십입니다.

 

목사는 성도들 속에 있는 모든 가능성과 은사를 개발해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도전하고 개발하는 사람입니다. 목사는 성도들이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영적 전사가 될 수 있도록 거룩한 야성을 개발시켜야 합니다.

 

둘째, 예배에 대한 원리입니다.

 

예배는 교회 심장과도 같습니다. 담임 목사는 모든 성도들이 하나님을 만나고 하나님께 나아가는 영적 예배가 될 수 있도록 가능한 모든 역량을 집중해서 예배를 기획하고 준비해야 합니다. 저는 감동적인 예배를 위해서라면 어떤 종류의 투자도 아끼지 않습니다. 예배가 살면 교회가 부흥됩니다.

 

이를 위해 단편적인 설교나 절기에 맞춘 설교보다는 일 년 동안의 목회 계획에 맞춘 시리즈 설교를 합니다. 6~8주간 진행되는 각 설교 시리즈마다 강단의 데코레이션에 변화를 주고 설교에 필요한 주제제기(영상, 드라마 등)를 활용합니다. 담임 목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통해 도전 받고 성령이 충만한 역동적인 예배가 될 수 있도록 사용 가능한 모든 에너지를 쏟아 부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성도들의 영적 결단과 믿음의 도전이 있는 예배 실행을 위해 필요한 어떤 변화도 주저하지 않습니다. 성도들이 다음 예배를 기대하게 만들고 예배를 통해 은혜 받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합니다.

 

셋째, 목장에 대한 원리입니다.

 

목장은 영적 가정입니다. 건강한 가정으로 존재하기 위해서는 영적 가정의 부모인 목자들이 성령이 충만하고 열정이 넘쳐야 합니다. 그래서 저는 탁월한 목자들을 키우고, 세우고, 동기 부여하고, 후원하는 목회에 집중합니다. 건강한 교회는 건강한 목자와 건강한 목장에 달렸기 때문입니다. 목회 성공은 얼마나 좋은 목자를 키워내고 세우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좋은 목자가 건강한 목장을 만들기 때문입니다. 건강한 목장이 많아질수록 건강한 교회로 부흥됩니다. 좋은 목장의 기준은 영적 공동체의 삶을 나누되 목장의 존재 목적을 단지 자기 자신들에게만 두지 않습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서 영혼을 살리고, 고치고, 세우고, 키우고, 보내서 또 다른 목장을 세우는 목장이 좋은 목장입니다. 목장의 존재 가치는 분 목의 열매를 통해 증명되기 때문입니다.

 

넷째, 증거에 대한 원리입니다.

 

 

복음 증거와 선교는 교회의 존재 목적이므로 교회의 모든 사역은 복음 증거와 선교를 목적으로 정렬되어야 합니다. 릭 워렌의 말처럼 교회의 모든 사역이 아무리 탁월해도 증거의 열매를 맺지 못한다면 야구에서 홈인하지 않는 주자에 불과한 것입니다. 물론 각 목회자마다 선교에 대한 생각이 다를 것입니다. 그러나 저의 선교 마인드는 일만 명에게 복음을 직접 증거 하는 것보다, 열 명의 탁월한 현지 지도자를 키우는 것이 더 효과적인 선교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우리 교회는 가능한 지도자를 키우는 선교 사역에 집중합니다. 선교란 어려운 선교사를 구제하는 자선 사업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영적 전투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교회는 탁월한 사역의 열매를 맺는 선교사와 협력하여 일하는 정책을 고수합니다. 해외에 선교하는 일 뿐만 아니라 삶의 현장에서 성도들이 증거 하는 삶을 실천 할 수 있도록 계속해서 동기부여하고 복음을 전할 수 있는 적절한 기회와 프로그램을 교회 차원에서 계속해서 제공합니다.

 

다섯째 ,양육에 대한 원리입니다.

 

우리 교회의 양육 철학은 모든 사람들을 양육하고(nurture) 많은 사람들을 구비시키며(Equip), 적은 사람들을 발전시키는(develop) 교회가 되는 것입니다. 양육은 성도들이 자신의 존재 목적을 발견하고 이해하도록 돕는 일종의 신앙의 의식화 작업이기 때문입니다. 이를 위해 모든 양육 훈련은 다른 방법으로 재미있게 계속해서 반복하도록 합니다. 그리고 양육은 성도들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증명하는 열매를 맺도록 만드는 신앙의 생활화 작업입니다. 따라서 모든 양육은 성도들의 삶에 변화가 일어나도록 촉진합니다. 삶에 적용하지 않는 양육은 단지 성경 공부에 불과할 뿐이기 때문입니다.

 

여섯째 ,사역에 대한 원리입니다.

 

사역은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철학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이를 위해 (1) 각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은사가 어떻게 발견되어지고 사용될 수 있는지를 배우게 합니다. (2) 주님의 사역자로서 교회와 세상에서 어떻게 적용할 수 있는지를 이해시킵니다. (3) 그들의 가능성과 강점을 새로운 방법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개발합니다. (4) 봉사와 헌신의 기회를 계속 제공함으로서 진정한 자유와 특권을 경험케 합니다. (5) 섬김을 통해 영적 기쁨을 누리고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되도록 도전합니다.

 

교회 안에서 사역이 효과적으로 이루어지도록 만드는 구체적인 실행 원칙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모든 신자는 하나님의 사역자며 하나님을 섬기는 목적으로 구원받았다. (2) 사역을 위한 사람이 있으면 사역 팀을 만들고 사람이 없으면 사역 팀은 해체된다. (3) 모든 사역 팀은 자비량 헌신이 원칙이며 필요시 부족한 부분만 교회에서 지원한다. (4) 하나님은 우리에게 주어진 기회에 대한 책임과 우리 세대에 대한 책임을 물으신다. 따라서 모든 사역자는 맡겨진 사역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위해 죽도록 충성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목회에 대한 저의 바람은 이렇습니다. “나는 믿음으로 살고 사랑으로 알려지며 희망의 목소리가 된다. 꿈의 교회는 공주 전역에 걸쳐 영적인 지주가 되고 구비된 하나님의 사람들을 세우고 세상 끝까지 보내는 파송의 주체가 된다.” 그렇습니다. 세상을 위해 한번 사고(事故)치고 싶다면 사고(思考)부터 우선 고쳐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패러다임을 이끄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

 

가치관의 변화 (1)

 

20041111일 국민일보에 갓 피플이라는 기독포털 사이트에서 그리스도인들이 비 기독교인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은 무엇인가? 에 대해 설문조사한 결과가 소개되었습니다. 가장 많은 질문은? “믿는 사람과 안 믿는 사람의 차이는 무엇인가?” 였습니다. 오늘날 교회 안에는 믿음의 현상만 있지 믿음의 삶은 사라진 것 같습니다. 믿음의 말은 풍성한데 믿음의 열매는 찾을 수 없습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는데 경건의 능력은 상실했습니다. 훌륭한 교회 건물은 세워지는데 훌륭한 성도는 사라지고 있습니다.

 

저는 목사아들로 태어나 교회에서 자라고 교회를 섬기는 목사로 살면서 한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거룩한 성도인데 왜 교회 밖에서는 세상 사람들과 다를 바가 없을까? 성경에 보면 하나님을 만난 사람들 모두는 혁신적으로 변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성도들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예수 믿는 다는 진정한 의미에 대해 바르게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단지 주일에 예배 출석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삶의 가치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인생관이 바뀌고, 세계관이 바뀌고 물질관이 바뀌고 직업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삶의 목적과 존재 이유 자체가 바뀌는 것입니다. 운명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인을 새로운 피조물이라고 선언하십니다(고후 5:17).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로 신분이 바뀌어 집니다. 이 사실을 정말 믿는다면 환경은 변하지 않아도 우리 생각과 가치관은 변하게 되어있습니다. 물질이 생애 최고 가치였던 사람이 예수그리스도가 최고의 가치로 바뀌게 됩니다. 명예와 사람들의 평판이 인생의 최고 목표였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가 최고의 목표로 바뀌게 됩니다. 고전 1031절의 말씀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게 됩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이 그랬습니다. 죽음을 두려워하던 이들이 그리스도를 위해 죽은 것을 기쁘게 여겼습니다. 자신의 것을 아끼지 않고 교회 공동체와 다른 지체들을 위해 나누었습니다. 세상 사람들의 평가보다 하나님의 평가를 두려워하는 이들이 되었습니다.

 

시시한 이 땅의 일들과 사소한 욕심에 집착하지 않고 교회 공동체와 다른 지체들을 섬기는 일에 헌신했습니다. 육신의 일과 이 땅의 목숨을 구걸하지 않고 주를 위해 순교하는 것을 영광으로 여겼습니다.

 

불행하게도 오늘날 교회 안에서 이런 성도들을 발견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명목상의 그리스도인들만 넘칩니다. 경건의 모양은 있지만 경건의 능력은 상실되었습니다. 명품 그리스도인 대신 짝퉁 교인들만 넘칩니다. 이제 교회다운 교회로 회복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로 부흥하기 위해서는 가장 기본 적인 질문이지만 가장 중요한 질문으로 시작해야 합니다. 예수 믿는 다는 성경적 의미가 무엇인지 성도들에게 분명히 가르쳐야 합니다.

 

첫째로 예수 믿는 것은 삶의 가치관(패러다임=관점)이 바뀌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보다 나은 사람(Better Person)이 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사람(New Person)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가치관이 바뀌면 삶이 달라지게 되어있습니다. 생각이 바뀌면 사람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자신이 처한 환경과 인생을 하나님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시작합니다. 저는 믿음은 자신의 삶을 하나님의 관점으로 재해석하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어떤 상황과 환경이라도 합력해서 선이 이루어지게 하시는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이기 때문입니다(8:28). 이 사실을 믿는다면 보이는 것으로 보지 않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말씀을 기준으로 세상을 바라보게 됩니다. 육적 관점에서가 아니라 영적 관점에서 보게 되어 있습니다.

 

구약에 보면 요셉이 등장합니다. 성경은 그가 꿈꾸는 자였다고 말합니다. 하지만 요셉은 그 꿈 때문에 형제들에게 미움을 받아 애굽의 노예로 팔려가게 됩니다. 어린 소년의 몸으로는 차마 견디기 힘든 수많은 고난과 고통을 당합니다. 드디어 이런 수많은 난관과 역경과 위기를 넘어 애굽의 총리가 됩니다.

 

우여곡절 끝에 애굽으로 이주한 모든 가족들은 당시 몰아닥친 극심한 대흉년 속에서도 요셉 때문에 풍족함을 누리며 잘 살게 됩니다. 그런데 아버지 야곱이 죽자 요셉의 모든 형제들은 두려움이 떱니다. 요셉의 발 앞에 엎드려 절하며 자신들의 과거 잘못에 대한 용서를 구합니다. 그 때 요셉은 형들을 끌어안고 이렇게 말합니다. “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45:5)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죽을 곳으로 던져졌습니다. 어린 나이에 노예가 되었고, 감옥에 갇혀 죽을 고비도 넘겼습니다. 인간적으로 생각하면 당연히 복수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며 걱정하지 말라고 위로했습니다. 형들이 자기를 죽이려고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자기 가족들을 구원하시려고 형들 앞서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것이라고 위로합니다. 요셉은 인간적인 생각으로 판단하고 해석하지 않았습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관점에서 자신의 삶을 재해석했습니다.

 

영적인 관점에서 결론을 내렸습니다.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고 시도하고 노예로 팔았지만 요셉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드렸습니다. 진정한 믿음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현실을 재해석하는 것입니다. 사는 것이 아무리 힘들고 괴로워도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믿음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세상을 하나님의 시각에서 바라보는 것이 진정한 믿음입니다.

예수 믿는 다는 것은 요셉처럼 인생의 가치관과 패러다임이 변화하는 것입니다(4:23).

 

두 번째로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의 주인이 바뀌는 것입니다.

 

세례는 구원받은 하나님의 자녀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살아가겠다는 믿음의 고백을 의식을 통해 하나님과 교회 공동체 앞에서 서약하는 것입니다(2:20). 성경에 보면 죄의 본질은 자기주장입니다. 원래 사람은 하나님을 섬기고 하나님은 사람을 책임지는 바른 관계 속에서만 행복하도록 창조 되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습니다(53:6). 하나님이 창조하신 뜻과 목적대로 살지 않고 자기 생각과 고집과 주장으로 살아 왔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예수를 믿는 순간 인생의 모든 주도권을 하나님께 넘겨 드렸습니다.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회복해야 믿음이 바로 세워집니다. 예수님을 우리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예수 믿는다는 진정한 의미이기 때문입니다.

 

초대교회 시절 로마 인사말 중에 하나는 가이사는 우리의 주인(헬라어로 퀴리오스)이시요라는 것이었다고 합니다. 그러면 인사를 받는 사람은 그렇습니다. 가이사는 우리의 주인(퀴리로스)입니다.”라고 대답을 했습니다. 하지만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아니요 그리스도가 우리의 주인(퀴리오스)이시요라고 대답 했습니다. 초대 교회 성도들은 박해 속에서도 예수님의 구주되심을 부인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시인하다가 순교당하는 것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다고 고백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자신의 이익을 따라 변질되고 세상과 타협하는 오늘날 일부 성도들과는 전혀 다른 모습이었습니다. 우리가 구주로 영접했다고 할 때 구원자' ‘주인'을 의미합니다. 오늘날 교회에 반쪽짜리 신자들이 많은 이유는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만 강조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구원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삶의 주인 되심을 인정할 때 자연스럽게 얻어지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지만 예수님을 구주로 영접했다는 의미는 새롭게 정의되어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단지 구원받아 천국에 가는 것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우리 인생의 주인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하나님 말씀에 순종하게 되어있습니다. 예수 믿는 의미를 새롭게 가르쳐야 합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처럼 살아도 주를 위해서 죽어도 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인 입니다(14:8). 예수님을 진짜 구주로 믿는 사람들로 가득 찬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 패러다임을 이끄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

 

가치관의 변화 (2)

 

배가 목적지를 향해 가면 항해라고 합니다. 목적지가 없이 가고 있는 배는 표류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는 다는 것은 우리가 가야할 분명한 목적지가 생겼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경의 가르침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의 목적어가 바뀌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전도서는 인간의 삶에 대한 깊은 통찰력을 주고 있습니다. 전도서는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의 목적어가 바뀌는 것이라는 사실을 강력하게 증거 합니다. 사실 인간적인 관점에서 전도서를 읽으면 염세주의에 빠지기 쉽습니다. 그러나 전도서는 하나님 없는 이 땅의 삶이 얼마나 허무 한 것인지에 대해 말해주고 있는 책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간의 노력과 시도는 허망한 것임을 강조합니다.

 

전도서 11절을 보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다는 말로 시작 됩니다. 그러면서 무엇이 허무한 것인지 2장에서 자세히 풀어 설명하고 있습니다(2:4~11). 전도서 기자는 이 땅의 사람들이 추구하는 모든 것을 누려본 사람입니다. 이 땅의 사람들이 목표로 삼아 추구하던 모든 부귀영화를 누렸습니다. 그런데 전도서 2장을 주목해 읽어보면 계속 반복되는 단어가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전도서 저자는 나를 위하여 했던 모든 것들이 헛되다고 한탄합니다. 그러다가 전도서 1213절에서 이렇게 결론 내립니다.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제가 생각할 때 전도서는 1213절 한 절을 위해 존재하는 것 같습니다. 이 땅에서 하는 모든 인간의 수고와 노력은 결국 헛된 것이며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이 행복의 본질이라는 것을 명확히 보여주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인생의 목적어가 바뀌는 것입니다. 나를 위해 살았던 사람이 하나님을 위해 사는 것입니다. 바울의 고백처럼 먹든지 마시든지 살든지 죽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의 영광을 목적으로 사는 것입니다(고전10:31). 목적이 바뀌는 삶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옛사람은 삶의 목표를 일생에 두고 삽니다(요일2:16). 새 사람은 영생을 목표로 살아갑니다(10:28). 옛 사람은 삶의 가치를 목숨에 둡니다. 새 사람은 영원한 생명에 둡니다(10:10). 세상 사람들은 목숨과 생명을 동일한 것으로 취급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목숨(헬라어로 푸쉬케)과 생명(헬라어로 조에)을 명확히 구분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보면 예수님은 목숨을 위하여 무엇을 마실까 염려하지 말고 먼저 그의 나라와 의를 구하라고 말씀합니다(6:33). 그러나 예수님이 세상에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기 위해오신 것입니다(10:10). 목숨은 육체를 살립니다. 생명은 영혼을 살립니다. 육신을 위해 가장 필요한 것은 물질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물질에 집착합니다(딤전6:10). 새 사람은 하나님께 집중합니다.

 

영생을 목표로 생명을 위해 살아가는 새 사람에게 가장 큰 관심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고전10:31). 그리스도인의 행복과 참된 의미는 오직 하나님 안에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 믿는 것은 인생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물질을 자신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2). 새 사람들은 물질을 청지기적인 관점에서 바라봅니다(벧전 4:10). 모든 것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의 것이기 때문입니다. 옛 사람은 보다 많은 물질을 소유하기 위해 서로 경쟁하며 사는 진화론적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고전3:3). 진화론의 핵심은 경쟁에서 승리하는 강한 자만 살아남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세상 사람들은 서로 질투하고 미워하고 시기하고 경쟁할 수밖에 없습니다.

 

새 사람은 창조론적인 사고를 갖고 있습니다(6:10). 창조론은 우리가 노력하고 애쓰고 승리해야 살아남는 다고 가르치지 않습니다. 우리가 있는 모습 그대로 모두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의 은혜와 공급하심으로 삽니다. 거저 받았으니 거저 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인은 서로 사랑하고 나누고 섬기는 일을 즐겨합니다(2:42). 예수 믿는 것은 물질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옛 사람은 육체의 소욕과 죄악 된 본성이 이끄는 대로 살아갑니다(3:3). 유혹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 가는 육신을 위해 삽니다(8:44). 새 사람은 성령이 그의 안에 거하므로 성령을 따라 살아갑니다(5:16). 죄악 된 본성이 아니라, 거룩한 영성을 따라 삽니다(갈  5:24). 옛 사람은 자기를 주장하며 더러운 죄의 열매를 맺습니다(7:5). 영성을 따라 사는 새 사람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며 성령의 열매를 맺습니다(5:22).

 

이 땅에 소망을 두는 옛 사람의 삶의 척도는 위대한 업적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고 바벨론을 쌓았던 죄의 후손답게 세상에 자기의 이름을 남기려고 노력합니다(7:21~23). 새사람은 자기 명예대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아무 것도 아니며 아무런 의미도 없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15:5). 옛 사람은 무엇을 할 것인가(What to do)에 많은 관심을 쏟습니다. 새 사람은 어떤 사람이 될 것인가(Who to be)에 관심을 가집니다. 옛 사람의 삶의 기준은 사람들의 평가입니다(살전 2:6).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업적에 대해 어떤 평가를 해주느냐에 따라 천당과 지옥을 오갑니다. 그러나 새 사람에게는 세상 사람들의 평가가 중요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평가만 중요합니다(1:10). 옛 사람의 삶의 결과는 불신과 염려와 두려움에서 오는 지독한 절망만이 남게 합니다(21:8). 새 사람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서 함께 하시며 도우시는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 순종함으로 기적과 평안을 경험합니다(14:27; 21:4). 예수 믿는 것은 세계관이 바뀌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 믿는 것은 삶의 목적어가 바뀌는 것입니다. 인생관, 물질관, 세계관이 달라지는 것입니다. 이러한 삶을 살았던 초대 교회 성도들은 자신을 핍박했던 로마를 복음으로 정복합니다. 일부 성도들은 이렇게 사는 것을 부담스러워합니다. 이것은 믿음 좋은 일부 성도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초대 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기 시작할 때부터 이렇게 살았습니다. 나중 이야기가 아니라 처음 이야기가 되었습니다.

 

예수님도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만 믿어야 합니다. 그리스도의 주재권을 확실히 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C.S.루이스의 말처럼 제일 중요한 것을 먼저 하면 두 번째 것은 저절로 따라옵니다. 그러나 두 번째 중요한 것을 먼저 하면 첫 번째 것과 두 번째 것을 모두 잃게 됩니다. 예수를 제대로 믿는 것은 부담이 아니라 행복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할 때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을 섬길 때만 행복하도록 만드셨습니다. 행복한 삶을 살려면 내가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며 사는 것을 인생의 목적으로 삼아야 합니다. 전도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사람의 본분은 하나님을 섬기는 것입니다.

 

베드로 사도는 모든 성도가 하나님을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선언합니다(벧전 2:9).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모든 신자들이 성직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세상을 자신의 선교지로 여겨야 합니다. 성직자와 평신도를 구분하는 것은 비 성경적입니다. 목회자는 교회 안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고, 성도들은 세상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입니다.

 

목회 패러다임이 바뀌지 않으면 모든 신자를 사역자로 세우는 건강한 목회를 할 수가 없습니다.목사는 교회 안에서 성도들을 키우고 세워서 세상으로 파송하는 사람입니다. 목사의 직분을 단지 직(= 위치와 신분)의 관점이 아니라 업(= 역할)의 관점에서 바라보아야 합니다(4:11-13). 목사의 역할에 대한 분명한 인식과 목적이 달라져야 합니다. 목사가 자신의 위치와 역할에 대해 분명한 철학과 원칙을 갖고 목회할 때 건강한 교회로 부흥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 패러다임을 이끄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

 

하나님의 목적 (3)

 

중학교 2학년 여름 수련회 때였습니다. 수련회 마지막 날 캠프 파이어를 했습니다. 담당 전도사님께서 불타는 장작을 하나를 꺼내시더니 땅 바닥에 불을 비벼 끄며 이렇게 설교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불 가운데 타는 장작처럼 쓸모없는 너희들을 꺼내어 잘 다듬어 훌륭한 조각품으로 만드셨다. 하나님이 너희를 구원하신 것에는 분명한 목적이 있다. 잘 사는 삶이란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삶이다.”

 

당시 저는 그 말씀의 진정한 의미가 무엇인지 잘 몰랐습니다. 하지만 그 때 들은 한편의 설교는 제가 목회를 하는 동안 나는 무엇을 위해 목사로 부름 받았는가?” “하나님이 세우고 싶어 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인가?”라는 질문을 갖게 만들었습니다. 내 평생 사는 동안 어떤 일을 하던지 늘 하나님의 목적에 대해 생각해 보도록 만드는 거룩한 도전이 되었습니다.

 

성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더러운 죄인인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으셨다는 말입니다. 그러나 어찌된 일인지 구원의 필요성은 너무나 강조되는데 구원 그 이후는 어떻게 살아야 되는지 명확하게 가르쳐 주는 사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감히 상상할 수도 없는 비싼 대가를 치르면서 우리를 구원하셨습니다.

 

믿는 자에게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의 축복을 주셨습니다. 하지만 이것이 끝이 아닙니다. 모든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을 섬기는 거룩한 하나님 사역자의 특권도 받았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모든 신자가 사역자로 섬기는 교회입니다. 하나님 섬기는 것을 자기 인생의 목적으로 삼으며 사는 성도가 진정한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삶(Being)과 사역(Doing)이 균형 잡힌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몇 해 전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는 목적이 이끄는 삶이라는 책을 통해 한국 교회에 강력한 도전을 주었습니다. 건강한 교회를 세우기 위해서는 목적이 이끄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각 성도들에 대한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각 교회에 기대하시는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교회의 비전과 사명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목적이 성도들 삶에 비전과 사명으로 나타나야 합니다. 모든 일이 하나님의 뜻과 목적 안에서 이루어져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진 사람이요 엄청난 정신적 능력의 소유자입니다.

 

영원한 것들을 생각하고 썩지 않는 꿈을 꾸라고 부름 받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구원을 얻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지 않습니다. 사소한 일에 목숨을 겁니다. 아무 것도 아닌 것에 매달리다 죽어갑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은 목숨을 위해 살지 않고 하나님을 섬기는 일에 목숨을 걸고 사는 사람들입니다.

 

만일 우리가 진리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진정으로 믿는다면 AW 토저의 말처럼 진리는 우리 눈에 끼어 있는 더러운 것들을 말끔히 닦아 주기 때문에 시간, 공간, () 그리고 하다못해 양배추까지 제대로 볼 수 있게 됩니다. 성령의 조명을 받아 지혜의 눈을 얻은 그리스도인은 사물의 가치를 정확히 알기 때문에 거짓에 속지 않습니다. 무지개를 얻겠다고 입찰에 나서지 않으며, 신기루에 계약금을 걸지 않습니다. 세상의 헛된 것과 무의미 한 것에 목숨을 걸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을 위해 삽니다. 이를 위해 알아야 할 몇 가지 사실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자녀에게 분명한 목적을 두고 행하십니다.

 

빌립보서 2장에 보면 하나님은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성도들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고 말합니다. 소원을 두고 행한다는 의미는 목적을 두고 일하신다는 말입니다. ‘소원이라는 말은 헬라어로 텔레마인데 목적을 뜻하는 텔레스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목적을 두고 행하십니다. 우리 교회에 강정미 자매가 있습니다. 그 자매는 조그마한 옷 가게 점원이었습니다.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별다른 인생의 목적도 없이 하루하루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자매가 예수 믿고 목장 교회를 통해 삶의 목적을 발견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을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목적으로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 자매는 여러 가지 어려운 상황을 극복하고 공부를 시작하여 대학교 사회복지학과에 입학했습니다. 사회복지사로 일하며 교회 목자로 섬겼습니다. 지금은 특수교육을 통한 사회복지사로 하나님을 섬기는 비전으로 업그레이드 하였습니다.

현재 30세가 넘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특수교육과에 편입하여 열심히 공부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 하나님의 목적을 생각하게 됩니다. 열정이 삶을 변화시킵니다. 삶의 목표가 새로워집니다.

 

미국 흑인 인권 운동의 전설로 불려지는 마틴 루터 킹 목사는 목숨을 걸만한 일을 발견하지 못한 이의 삶은 진정한 인생이라 할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목적지가 없는 배에게는 어떤 바람도 순풍이 될 수 없는 법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발견하지 못한 사람은 진정한 인생을 사는 것이 아닙니다. 아무리 많은 돈을 벌고 높은 지위에 있어도 자신의 존재 목적이 하나님의 사역자라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면 잘 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새들백 교회 릭 워렌 목사는 우리는 왜 이 세상에 존재하는가?’ 라는 질문을 던지고 다섯 가지 원리로 하나님의 목적을 설명합니다.

 

(1) 나는 하나님의 기쁨을 위해 지음 받았다(예배).

(2) 나는 하나님의 가족이 되도록 지음 받았다(교제).

(3) 나는 예수님을 닮기 위해 지음 받았다(양육).

(4) 나는 하나님을 섬기도록 지어졌다(사역).

(5) 나는 복음 전파를 위해서 지음 받았다(증거).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구원받았고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살아야할 소중한 존재들인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값없는 구원에는 값비싼 목적이 있습니다.

 

우리가 얻는 값비싼 구원은 우리의 노력이나 행위나 공로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2:8-9). 값없는 하나님의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목적을 따라 값비싼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에베소서 210절에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한 목적에 대해 말씀해주십니다. “우리는 그의 만드신 바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선한 일을 위하여 지으심을 받은 자니 이 일은 하나님이 전에 예비하사 우리로 그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선한 일을 위해 구원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에베소서에서 말하고 있는 선한 일을 세상적인 기준으로 해석합니다. 선한 일을 다른 사람에게 선행을 베푸는 도덕적인 일쯤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세상 사람들 보다 나은 사람이 되게 하기 위해 구원한 것이 아닙니다. 새로운 사람이 되도록 구원한 것입니다(고후5:17). 에베소서에서 말하는 선한 일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선한 일이 아닙니다.

 

성경은 성경의 상황과 문화와 언어로 이해해야 합니다. 성경에 보면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신 분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인이기 때문입니다(3:23). 디도서 115절에도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하는 모든 일은 하나님 보시기에 더럽고 악한 것이라고 선언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선하시고, 하나님께 속한 것만이 선한 것이고, 하나님을 위한 일만이 선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에베소서에서 선한 일을 위해 지으심을 받았다는 말은 선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로 구원받았음을 의미합니다. ‘선한을 뜻하는 헬라어 단어 아가도이스하나님을 위한 일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을 뜻하는 단어 디아코노스는 사랑이 동기가 되어 섬기는 자발적인 섬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선하신 하나님을 섬기는 자로 살도록 구원 받은 자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그리스도인은 진리의 말씀을 옳게 분별하여 하나님을 섬기는데 부끄러울 것이 없는 일꾼으로 충성해야 합니다(딛후 2:15). 뉴 헤이츠 교회 하난 목사의 말처럼 하늘나라를 위해 이 땅에서 차이를 만들어 내는 그런 성도와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건강한 교회 패러다임을 이끄는 세 가지 핵심 키워드

 

하나님의 목적 (4)

 

루터는 종교개혁을 통해 기독교 역사에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종교 개혁은 아직도 진행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해서 진행되어야 합니다. 루터는 사람의 행위가 아니라 믿음으로 구원받는 다는 진리를 확고하게 만들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는 너무나 당연한 진리지만 당시에는 위대한 희생을 통해 이루어낸 업적이었습니다. 모든 신자는 왕 같은 제사장이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로 섬겨야 한다는 사실은 실현되어야할 교회의 과제로 여전히 남아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오늘날 셀 교회 운동을 통해 모든 신자가 하나님의 사역자로 섬기도록 촉진하는 건강한 교회들의 출현은 진정한 의미의 종교개혁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적인 증거입니다.

 

이것은 교회 성장을 위한 일시 방편이나 부흥을 위한 목회자들의 선택 사항이 아닙니다. 주님의 교회라면 반드시 실행해야할 필수적인 과제입니다. 하나님이 꿈꾸시는 건강한 교회는 만인 제사장 정신이 구현되는 교회입니다. 틀에 박힌 종교 의식에 갇혀 있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며 계속해서 혁신되고 변화되는 교회입니다.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기 위해 끊임없이 움직이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건강한 교회가 되려면 무엇보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목적을 분명히 알아야 합니다. 저는 하나님의 목적이 가장 명확하게 나타나 있는 말씀이 벧전 29절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에 보면 성도들은 어떤 사람이며 무엇을 위해 살아야 하는 존재인지 명쾌하게 설명되고 있습니다.

 

벧전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절에서 강조하는 하나님의 목적은 네 가지입니다.

 

첫째로 모든 성도는 하나님이 택하신 족속이라는 것입니다.

 

이미 이방인 고넬료의 구원 사건을 경험한 베드로는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택하신 족속이 되고 영적인 선민이 된다고 가르쳐 줍니다.

 

로마서 58절 말씀처럼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하나님이 예비하신 구원의 은혜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적인 이스라엘입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의 자손이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의 택하신 족속입니다. 예수님을 구주로 믿는 사람은 누구든지 택하신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축복을 받았습니다.

 

둘째로 모든 성도는 왕 같은 제사장이라고 말합니다.

 

구약시대 제사장은 하나님을 섬기도록 구별된 사람들이었습니다. 원래 하나님을 예배하며 섬기는 일은 성별된 제사장에게만 주어진 거룩한 특권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기만 하면 하나님 앞에 나아가 하나님을 섬기는 제사장이 됩니다(15:38).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실 때 성소의 휘장이 찢어지는 사건은 이 사실을 확실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모든 그리스도인들은 예수님의 은혜로 하나님을 섬기는 왕 같은 제사장의 특권을 얻었습니다. 모든 신자는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위해 부름 받은 하나님의 사역자입니다.

 

셋째로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입니다.

 

고전12절에 보면 교회는 하나님께 소유된 백성들의 공동체라고 말합니다. 교회의 본질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 된 거룩한 믿음의 공동체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세우시려고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2028절에 보면 교회는 하나님이 자기 피로 사신 교회라고 선언합니다. 예수님 사역의 결정체가 교회입니다.

 

예수님은 교회를 통해 하나님 나라를 세워 가십니다. 죄를 범함으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예수를 믿고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에베소서 321절에 보면 예수 안에서와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은 교회의 머리입니다.

 

예수님과 교회는 하나입니다. 교회는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길버트 빌지키언 박사는 그리스도를 사랑한다고 하면서도 교회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라고 강조합니다. 그리스도를 사랑하면 교회를 사랑하게 되어있습니다. 교회를 사랑하는 것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소유된 백성인 교회 공동체를 통해 일하십니다.

 

넷째로 모든 성도는 거룩한 나라입니다.

 

거룩한 나라는 세상 나라와 구별된 하나님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살아야할 존재로 구원받았습니다. 하나님의 통치와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며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가 그리스도인의 최종 목적지이기 때문입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이 세우신 교회 안에서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누리며 하나님 나라 확장을 위해 섬기는 사역자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633절에서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고 말씀하십니다. 그의 나라는 하나님 나라를 의미합니다. 그의 의는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을 의미합니다.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사는 것을 중요한 삶의 과제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를 목적으로 헌신하는 하나님의 사역자로 사는 것이 하나님의 구원 계획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도록 성경을 주셨습니다. 성경에는 그리스도인에 대한 축복의 약속과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방법이 담겨 있습니다.

 

디모데후서 316-17절에 보면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이 주어진 목적은 크게 두 가지 입니다.

 

첫째,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Being)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자녀답게 성장하고 성숙하여 온전해지기를 기대하십니다. 성경 안에는 하나님의 목적대로 사는 일에 성공한 사람과 실패한 사람들의 모습이 적나라하게 드러납니다. 주님은 이 사람들이 우리에게 거울이 된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목적대로 살기 위해서는 성경을 영적 삶의 지침서로 삼아야 합니다.

 

둘째,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기 위해서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섬기는 삶을 보여주는 영적 지도와 같습니다. 언젠가 미국이 보스니아에 있는 중국대사관을 잘못 폭격하여 큰 논란이 일어난 적이 있습니다.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미국이 옛날 지도를 참고로 폭격을 하였다는 것입니다. 게리 해멀은 신대륙을 찾는데 예전의 지도를 사용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은 새로운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 새로운 인생의 지도인 성경이 이끄는 하나님의 목적을 위해 살아야 합니다.하나님은 하나님이 말씀하신 삶의 목적을 기준삼아 심판하십니다.

 

말라기 318절에 보면 그 때에 너희가 돌아와서 의인과 악인을 분별하고 하나님을 섬기는 자와 섬기지 아니하는 자를 분별하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은 믿지 않는 악인과 믿음으로 구원받은 의인을 구별해서 심판하십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사역자와 섬기지 않은 반역자를 구분하여 심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성도들은 하나님의 자녀답게 살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역자로 살기위해 최선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심는 대로 거두게 하시고 행 한 대로 갚아 주시는 공의로운 심판장이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반복해서 가르쳐줍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이 하나님 자녀의 축복을 누리고, 하나님의 사역자로서의 특권을 누리기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통해 거룩한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 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목적 위에 세워지는 교회가 건강한 교회입니다.

 

릭 워렌 목사는 목적과 사명이 없는 교회는 어제의 전통을 소장한 박물관으로 남을 뿐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제 우리는 결정해야 합니다. 박제된 모습으로 굳어진 박물관 교회를 만들 것인가? 생명력을 갖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건강한 교회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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