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 빅터 이야기
청소년이나 자신을 믿지 못하거나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읽으면 좋을 책입니다. 이 책의 주인공은 빅터입니다. 빅터는 IQ가 73점이라서 학교에 가면 친구들로부터 바보 취급을 받습니다. 자신이 정말 바보인줄 알고 그렇게 생활하게 됩니다.
또 한명의 등장 인물이 나오는데 로라입니다. 로라는 가족에게도 계속해서 못난이라는 소리를 들었기 때문에 자신이 정말 못생긴 줄 알고 그렇게 여기며 살아갑니다. 빅터와 로라는 자신을 그렇게 생각 하면서 어린 시절이 보내고 어느덧 성년이 되었습니다. 성년이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이둘은 난 바보이고 나는 못났다라고 생각을 합니다. 늘 쭈욱 그렇게 지내왔으니까 그게 당연하다고 생각을 하는 것이죠. 주변에서 하도 그렇게 하니까 정말 그렇게 생활을 하는 것이죠.
주변환경에 따라서 어떻게 사람이 바뀌는지 빅터와 로라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빅터는 학교에 선생님이 IQ가 173인데 73으로 잘못 봐서 그렇게 바보 취급했던 것입니다. 빅터는 바보가 아니라 천재였고 로라는 못난이가 아니라 정말 아름다운 소녀였습니다. 엄마가 로라를 백화점에 데리고 갔다가 유괴당한 일이 있었습니다. 결국 찾긴 했지만 자기 딸이 너무 예뻐서 앞으로 무슨 일이 생길까 봐 겁이 나서 아예 못난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빅터는 이렇게 말합니다. "난 정말 바보였어. 스스로를 믿지 못한 나야말로 진짜 바보였어!. 다시 용기를 내고 일어납니다. 정말 놀라운 게 뭐냐면 훗날 멘사회장이 됩니다. 멘사회장의 실화 이야기가 바로 바보빅터입니다. 요즘 청소년들이나 사람들을 보면 자신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이 많은 것 같아요. 자기 자신을 먼저 사랑해야 모든 일이 잘 풀립니다. 바보 빅터에서 소제목으로 이런 제목이 있습니다. "포기, 세상에서 가장 쉬운 선택." 정말 포기하는 것은 쉬운 선택이기는 하지만 많은 후회를 남길 것 같아요.
브레네 브라운이 쓴 “완벽을 강요하는 세상의 틀에 대단하게 맞서기”라는 책에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대중 음악에서 ”우리“라는 말은 점점 적게 쓰이는 반면 ”나“라는 표현은 점차 많이 쓰이고 있다는 사실을 밝혀냈습니다. 항상 무언가 ”부족해 문화“, 우린 충분히 갖지 못한 것에 대해 불평하고 걱정하며 많은 시간을 허비합니다. 결핍감의 3대요소가 있습니다. 수치심, 비교, 소외입니다. 부족함의 문화가 우리에게 끼친 기장 큰 해악은 우리 스스로 취약성을 받아들이고 자존감을 지키며 세상을 끌어앉는 능력을 빼앗아 갔다는 점입니다. 오늘날 청소년들 가운데 자존감이 낮고 열등감에 시달리는 학생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자존감과 열등감
자존감과 열등감은 객관적 조건의 문제가 아니라 관점의 문제입니다. 여기에 코가 콜라가 있습니다. 코카 콜라를 바라보면 어떤 생각이 드십니까? 어떤 학생은 코카 콜라의 병이 예술이라고 말합니다. 코카 콜라의 색깔이 너무 에쁘다고 말합니다. 콜라를 들이마실 때 탁 쏘는 맛이 짜릿하다고 합니다. 코카 콜라 병은 양이 너무 적다고 말합니다. 콜라를 먹으면 치아나 건강에 안 좋다고 말합니다. 이렇게 사람마다 관점이 다릅니다.
마찬가지로 우리가 자신을 이해하고 관점을 바꾸면 열등감의 감옥에서 나올 수 있습니다. 전 세겔에서 나 같이 생긴 사람은 하나 밖에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모두는 귀하고 특별합니다. 손주가 왜 그렇게 이쁠까요? 학벌이 좋거나 돈이 많거나 인기가 있어서가 아닙니다. 미모 때문에 사랑스러운 것은 아닙니다. 손주가 그렇게 소중하고 사랑스러운 것은 조건 때문이 결코 아닙니다. 우리 가족의 일원으로 태어나 준 그 자체가 고맙고 귀합니다. 조건이 아니고 존재 자체 때문에 소중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형상으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이기 때문에 존귀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시 때문에 당신은 킹카요 퀸카입니다.
열등감은 자신에 대한 잘못된 평가에서 나옵니다. “나는 못난이야, 나는 무능해, 나는 배운 것이 없어.”그래서 사람들이 나를 무시하는 거야. 이렇게 자기를 생각하는 것이 열등감입니다. 다윗과 골리앗의 싸움은 덩치와 무기가 아니라 관점과 신앙의 차이였습니다.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 백세희의 에세이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괜찮아, 그늘이 없는 사람은 빛을 이해할 수 없어.“저는 청소년 수련회에 오신 여러분들에게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구름이 잔뜩 덮인 하늘에도 햇빛은 여전히 비치고 있단다.”
청소년들의 열등감에는 몇 가지 유형이 있습니다.
열등감의 유형
첫째, 외모 열등감 : 못생겨서 사랑받을 자격이 없어
외모는 내가 선택한 것이 아니라 타고난 것입니다. 청소년들이 가장 많은 열등감을 느끼는 것이 무엇일까요? 자신의 외모입니다. 눈에 대한 열등감이 제일 많고, 다음은 코, 여성의 경우 가슴 등의 순입니다. 외모 열등감을 가진 사람은 유별나게 타인의 시선을 의식합니다. 남들에게 내가 흉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합니다. 내 인생은 깨어진 유리와 같다고 낙심하지 마십시오. 깨진 유리로 모자이크로 유명한 작품을 만든 설계자가 있습니다.
둘째, 집안 열등감 : 교수 집안에서 태어났더라면, 은수저, 금수저
교육을 많이 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부모나 친척을가진 사람에게서 느끼는 열등감입니다. 가난하고 무식한 가정에서 태어난 것에 대해 느끼는 열등감입니다.
셋째, 타고난 조건에 대한 열등감 : 마음에 달렸다.
선천적 조건에 대한 열등감이 모든 열등감의 60%를 넘습니다. 이런 선천적 열등감을 해결하는 방법은 단 한 가지, 주어진 현실을 받아들이는 것밖에는 없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것이 그렇게 쉽지 않습니다. 현실을 인정하는 데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자기를 알고 사랑하고 다른 사람들도 인정하며 사는 것이 행복한 삶입니다.
넷째, 아무리 노력해도 이것 밖에 안돼 : 능력에 대한 열등감
나는 무능해, 나는 공부도 못하고 항상 이 모양이야, 대졸 정도는 돼야 사람 대접을 받을텐데! 나는 고졸이야 다른 사람이 나를 무시할거야. 학생들은 성적이 올라 갈 때 자존감을 느낍니다. 직장인들은 연봉이 높아질 때 자신감이 생깁니다. 능력에 위한 자존감은 객관적이고 가시적인 성공을 이를 때 얻습니다. 이런 자존감은 남들이 보기에 성공했다고 생각될 때만 유지됩니다. 능력 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은 유년기의 패배경험이 현재의 생황을 더 비극적으로 만들고 있는지 점검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경쟁에서 늘 이기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나 건강한 직장인은 나름대로 부족한 부분을 노력으로 채우며 삽니다. 그것이 건강한 인생입니다.
다섯째, 가난에 대한 열등감 : 가난해서 결혼도 못하겠네
부자들은 자존감을 느낍니다. 반대로 가난한 사람은 열등감을 느낍니다. 가난하고 초라한 자신을 보면 자존심이 상합니다. 가난하다는 것은 불편할 뿐인데 수치심과 열등감을 느끼는 경우가 많습니다.
남이 가진 재산이나 탤런트를 부러워하고 좌절감을 느낍니다. 이런 열등감을 극복하는 비결은 자기 탤런트를 개발하고 키우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가난은 내가 어찌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나는 공부를 잘 할 수 있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것에 승부를 거십시오. 사람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것이 있습니다. 성경은 그것을 은사라고 표현합니다.
여섯째, 내가 고졸이라서 무시하나 : 학벌 열등감
고졸 출신의 어떤 부인이 자기 아파트 관리소장에게 “안녕하세요”. 인사했지만 소장은 인사를 받는 둥 마는 둥 했습니다. 자존심이 팍 상했습니다. “내가 고졸이라고 인사도 안받는구나” 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관리 소장이 그녀의 학벌을 알 리가 없습니다. 자기 혼자 하는 생각뿐입니다. 그녀가 관리소장에게 무시당하고 있는 것이 실제적 현실이 아니고 심리적 현실입니다. 그 부인의 경우 표면적으로는 학벌이 문제인 것 같지만 사실은 낮은 자존감이 문제였습니다. 어릴 때 사랑받지 못하고 소외감을 느끼며 자란 사람은 자존감이 낮습니다.
일곱째, 왕따 열등감, 자존감을 무너뜨리는 유년기 경험 중 하나의 중요한 요인은 왕따 경험입니다. 왕따란 집단 괴롭힘이다. 요즈음은 은따, 은근히 따돌린다는 뜻이다. 반항도 못하고 당하기만 하는 나 같은 놈은 비열한 놈입니다. 창피해서 죽고 싶습니다.
열등감은 왜 생기는 것일까요?
자신에 대한 관점이 부정적이기 떼문에 생기는 것입니다. 열등감은 자신의 능력을 실제보댜 더 낮게 보는 것입니다. 대개 어릴 때의 경험이 좌우합니다. 열등감은 외적 조건에 상관없이 자기의 가치를 인정하고 자기 권리를 주장할 수 있을 때 사라집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나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받아주는 경험을 하면 회복됩니다. 진정으로 자기를 좋아해 주는 사람을 만나면 치유가 나타납니다. 신앙을 통하여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경험할 때 회복됩니다. 미운 오리 새끼의 자존감으로 고통을 받는 아이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넌 왜 그모양이니, 뭘 좀 제대로 해봐라. 무엇 하나 제대로 하는 게 있어야지.
도저히 용서가 안된다고 안타까워 하는 청소년들이 있습니다. 나를 억울하게 만든 사람을 용서하기란 정말 힘듭니다. “이웃 사랑은 이를 악물고 하는 거예요” 라고 안이숙 여사는 말했습니다. 용서도 이를 악물고 하는 것입니다. 용서하기로 결심하고, 의지로 용서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생각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아버지도 그럴 수 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을 거야.“ 이렇게 용서하고 나면 마음이 편해집니다. 자신감이 생깁니다. 열등감, 그 책임은 궁극적으로 당신에게 있습니다.
혹시 나를 싫어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냥 싫어하게 놔두십시오. 상황이 바뀌거나 그의 생각이 달라지면 사과하고 돌아올 수 있습니다. 그의 감정을 그에게 맡기고 우리는 비록 부족하지만 사랑하며 삽시다. 당신은 자존감이 낮은 편입니까? 높은 편입니까? 자존감이 높은 사람은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하며 여러 문제에 접했을 때 적극적으로 임하므로 성공적인 결과들을 가져옵니다. 그러나 자존감이 낮은 사람은 자신을 부정적으로 보게 되며 소극적인 자세로 임하게 됩니다. 문제에 직면했을 때 마지못해 하기 때문에 성공보다 실패로 가게 됩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자존감
인간이 타락하여 죄로 인해 삶 전체에 영향을 미쳤습니다. 죄의 영향이 지성에 미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어두워졌습니다. 죄의 영향이 감성에 미쳐서 기쁨과 행복과 평안과 만족이 슬픔과 분노와 좌절과 불만과 불행의 그림자가 드리워졌습니다. 죄의 영향이 의지에 미쳐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던 태도가 반항하는 태도로 변하게 되었습니다. 죄로 인해 인간이 하나님의 길을 버리고 악한 길로 행하게 되었습니다(롬 3:10-18), 죄로 인하여 인간은 자화상도 변질되었습니다. 자화상이 비뚤어진 사람은 생각과 말과 감정과 행동도 비뚤어집니다. 반면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받은 성도는 건강한 자화상을 가질 수 있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자존감의 유형
첫째, 브닌나의 우월의식(삼상 1:6)
브닌나는 자신의 강점을 가지고 한나의 약점을 공격했습니다.
둘째, 한나의 열등의식(삼상 1:7)
한나는 자식을 낳지 못하는 핸디캡 때문에 울었습니다. 남편 엘가나가 한나에게 특별히 잘 해 주었지만 한나는 울고 먹지 않고 슬퍼했습니다(삼상 1:8). 한나는 마음이 괴롭고 힘들 때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면서 극복했습니다(삼상 1:10).
셋째, 사울 왕의 비교의식(삼상 7:8-9)
사울 왕은 자신에게는 천천이요 다윗에게는 만만이라는 노랫소리에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때부터 사울 왕은 다윗의 일거수 일투족을 주목합니다. 우리는 각자에게 주신 은사와 장점에 대하여 서로 인정하고 돕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우리의 인체에 가장 약한 부분이라 하더라도 필요하지 않는 것이 없습니다. 저는 어려서 수술할 때 맹장을 떼어냈는데 공군 관제사로 비행기를 타는 기회가 있을 때 맹장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넷째, 사울 왕의 체면의식(삼상 15:30).
사울 왕은 사무엘 선지라로부터 책망을 받으면서도 이스라엘 백성 앞에서도 자기를 높여달라고 애원했습니다.
다섯째, 잘못된 죄책감(고후 7:10).
죄책감 자체는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하지만 잘못된 죄책감은 우리를 정죄의식과 사망으로 인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건강한 죄책감은 회개에 이르게 됩니다(시 32:3-5).
여섯째, 유대인들의 시기심(행 13:44-45).
우리의 뼈를 썩게 만드는 시기심을 다 십자가 앞에 내려놓고 성령 안에서 새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일곱째, 비판의식(마 7:1-5).
자신이 심판자의 위치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고 지적하는 태도를 가리킵니다. 다른 사람을 비판하기 전에 먼저 자신의 잘못을 고치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여덟째, 정탐꾼의 패배의식(민 13:30-14:10).
그들은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싫어하기 때문에 그 땅을 악평했습니다(민 13:32). 사실을 과장하고(민 13:32-33), 선동하였습니다(민13:32). 패배의식에 빠진 그들은 집단 우울증에 빠졌습니다. 패배의식에 사로잡힌 사람은 열등의식에 뿌리를 박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호수아와 갈렙처럼 현실을 정직하게 객관적으로 파악해야 하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면 하나님이 책임져 주십니다(민 13:8-9).
아홉째, 교만한 바리새인(눅 18:9-12).
자기를 의롭다고 믿고(9절), 다른 사람을 멸시합니다(9절). 자기를 들어내려고 하고 스스로를 높입니다(11절). 남들과 비교하고 정죄합니다(11절). 자기를 차별화합니다(11절).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지 않습니다(11절).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물리치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십니다(벧전 5:5).
2)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자존감의 특징(골 2:18-23)
첫째, 일부로(꾸며낸) 겸손(골 2:18)
“아무도 꾸며낸 겸손과 천사 숭배를 이유로 너희를 정죄하지 못하게 하라 그가 본 것에 의지하여 그 육신의 생각을 따라 헛되이 과장하고.”당시 골로새 교인들은 거짓 교사들의 영향을 받아 일부로 겸손하려고 했습니다. 천사 숭배를 주장하던 사람들은 사람이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교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중보 역할을 하고 있는 천사를 숭배하였습니다. 거짓 교사들은 복음이 아닌 그릇된 행위와 의식을 주장하여 그것이 없으면 구원을 받지 못한다고 주장하였습니다.
둘째, 지나친 과장(골 2:18)
거짓 교사들은 자신들의 신비한 체험을 근거로 자신을 자랑하며 자신들을 추종하게 하였던 것입니다. 어떤 목적을 가지고 겸손을 가장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것입니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을 헛되이 과장하려고 하는 것을 뿌리쳐야 합니다. 전혀 그렇지 않은데 억지로 그렇게 보이려고 하는 유혹을 과감히 제거해야 합니다.
자기 방식대로 겸손해지는 것을 경계해야 합니다. 일부로 겸손해지는 것은 상황에 따라 교만해질 가능성이 높습니다. 어떤 목적이나 이유를 가지고 겸손해지는 것은 자기 방식대로 되지 않으면 순식간에 교만으로 빠지게 됩니다. 어떻게 하면 참된 겸손의 자리에 들어갈 수 있을까요? 머리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붙들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한순간에 교만의 충동에 빠지게 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잘못된 자존감으로 인해 영적으로 방황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됩니다. 잘못된 자존감으로 인해 우울증과 정신분열증과 죄책감에 시달려 고통받는 분들이 종종 있습니다.
셋째, 쉽게 상처를 받음(삼상 20:30)
많은 그리스도인이 겪는 힘든 문제 중에 하나가 낮은 자존감입니다. 사단은 낮은 자존감을 이용하여 우리를 넘어뜨리려고 합니다. 낮은 자존감이란 자신의 가치를 경멸하고 무시하는 감정을 말합니다. 낮은 자존감의 가장 큰 문제는 자신을 신뢰하지 않기 때문에 다른 사람의 의존도가 높습니다. 결국 사람에 대한 실망 때문에 다시 절망에 빠지는 악순환이 반복됩니다. 낮은 자존감은 자신과 대인관계를 파괴시키고 결국 하나님과의 관계를 악화시킵니다.
2.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스바냐 3:14-17)
그리스도의 건강한 자존감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창조하시고 구속하시고 능력을 주시기 때문에 나를 사랑스럽고 소중하게 여기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확신하는 사람은 자기를 용납할 줄 압니다. 그래서 자기가 얼마나 귀중한 존재인지를 인식하고 자기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수용합니다. 자기를 수용할 수 있는 사람만이 상대를 있는 그대로 수용할 수 있습니다. 사랑을 모르는 사람은 자기 자신으로 살지 못하고 남으로 삽니다. 하나님은 남으로 살지 않고 자신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십니다. 야곱은 에서로 살지 않고 야곱으로 살아야 합니다. `사랑은 열등감을 이깁니다. 자식에게 열등감을 느끼는 부모는 없습니다. 사랑에는 열등감이 생기지 않습니다.
아들러의 “미움받을 용기”라는 책에 보면 이런 내용이 있습니다. “자네가 불행한 것은 과거의 환경 탓이 아니네. 그렇다고 능력이 부족해서도 아니고 자네에게는 그런 용기가 부족한 것뿐이야. 말하자면 행복해질 용기가 부족한 거지. 행복해지려면 ‘미움 받을 용기’도 있어야 하네. 그런 용기가 생겼을 때, 자네의 인간관계는 한 순간에 달라질 걸세. 자네가 변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 변하지 않겠다고 결심했기 때문이라네. 왜 자기 자신을 싫어하는가? 단점만 눈에 들어오는 것은 자네가 나 자신을 좋아하지 말자고 결심했기 때문이야.”
건강한 자존감은 자신을 공정하고 정확하게 보는 것을 말합니다. 자신의 가치를 잘 알고 자신을 좋게 평가하는 경향을 지니고 있지만 자신의 부족한 점에 대해서도 인정할 줄 압니다. 스바냐 3장 16절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못된 자존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자신들이 화를 당하게 되어 있다고 두려워합니다. 그런 쓸데없는 생각은 하지 말라고 해도 자신은 이미 그런 운명으로 타고 났다고 생각합니다. 오랜 세월 동안 그렇게 형성되어 왔기 때문에 작은 일에도 크게 놀랍니다. 어려운 상황에 부딪히면 쉽게 포기해버립니다. “그날에 사람이 예루살렘에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시온아 네 손을 늘어뜨리지 말라”(16절).
어떻게 하면 우리가 건강한 자존감을 가질 수 있을까요?
스바냐 3장 17절에 보면 “너희 하나님 여호와가 너희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시라 그가 너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인하여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이란 하나님과의 관계 회복에서 가능합니다. 자신과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살아갈 때 올바른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언제나 하나님의 눈을 의식하면서 살아갈 때 자신의 소중한 가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자신의 부족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나로 인하여 기쁨을 이기지 못하여 하신다는 사실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관점에서 바라보기 때문에 부모, 형제자매, 동료, 선생님,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전문상담가, 머리스 와그너 박사는 그의 훌륭한 저서인 [가치있는 사람이 된 느낌)에서 건전한 자화상을 구성하는 세 가지 기본요소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였습니다. 첫째 요소는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속감입니다. 이것은 누군가가 자기를 원하며 용납하며 돌보아 주며, 즐기며 사랑한다는 것을 단순히 느끼는 것입니다. 두번째 요소는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입니다. 이것은 내적 믿음과 감정을 의미합니다. 나는 가치가 있어, 내게는 뭔가 내놓을만한 것이 있거든 세번째 요소는 자신감입니다. 이것은 느낌으로부터 오는 생각입니다. 나는 이 일을 해낼 수 있어,나는 어떤 상황에서든지 잘 처신해 나갈 수 있지,나는 생애 대한 자신감이 있어.
1)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의 요소
첫째, 죄의 용서
사람이 죄의식에 사로잡히면 자신을 경멸하게 되고 깊은 절망에 빠지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에게 대속의 은혜를 주셨습니다. 하나님께 우리의 죄를 고백할 때, 우리는 의로운 자가 되며 죄의식에서 벗어나 승리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므로(고후 5:17), 긍정적인 자존감을 갖게 됩니다.
둘째, 십자가 사건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인간의 슬픔과 고통과 죄를 담당하셨습니다. 나누셨습니다. 그분이 상함으로 우리는 나음을 얻었습니다. 십자가는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의 객관적 기초입니니다. 하지만 자기 삶에 죄의 존재가 계속된다는 이유로 자신을 경멸하거나 미워해서는 안됩니다. 죄를 범할 때 죄의식을 느끼는 것은 당연하지만 우리는 그 죄를 자백하고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현재의 죄인의 모습 너머, 미래의 구속된 모습을 보며 자신을 귀히 여길 줄 알아야 합니다.
처음에 교회에 나왔다고 서로 다투고 비난하는 성도들을 보고 딸이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어머니 다시는 교회에 오지 마세요. 일요일이면 내가 소풍을 모시고 다닐 테니. 다시는 교회에 오지 맙시다. 그러자 그 어머니는 나는 평생 교회를 다니면서 예수님만 봤는데, 너는 교회에 딱 하루 나와서 참 많은 것을 보았구나.“ 딸은 깨달았습니다. 어머니는 자기처럼 저속하게 문제만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고 가치를 볼 줄 아는 그런 눈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복음에 대한 참된 감격을 느끼지 못한 채 사람 때문에 상처를 받아 교회를 나오지 못하는 분들이 이외로 많습니다.
셋째, 하나님의 용납하심
인간은 누구에게나 용납받고 싶어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용납하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조건 없는 용납을 받은 사람은 다른 사람들을 사랑함으로 용납할 수 있는 인격을 가지게 됩니다. 다른 사람이 고통스러워 할 때 “참 힘드셨겠어요. 그 말을 들으니 나도 마음이 아파요”라고 건네는 말 한 마디의 위력은 정말 대단합니다.
존 맥다른 교수는 마음이 아픈 학생에게 이렇게 말을 건냅니다. “자네 인생에서 가장 힘들고 가슴 아팠던 일이 무엇인지 그것을 내게 들려줄 수 있겠나? 듣고 나서 그는 학생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자네 말을 들으니 나도 가슴이 아파. 그런데 자네가 하나님께 그렇게 불평을 늘어 놓는 데....사실 자네 애기를 들으면서 난 자네가 하나님을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지, 하나님을 향한 자네의 열정과 사랑이 얼마나 뜨거운지 알 수 있었다네. 나는 그 엄청난 고난을 통해서, 앞으로 하나님께서 자네를 통해 도대체 어떤 일을 하시려고 하는지, 하나님께서 자네를 통해 기대하시고 이루시려는 그 일들이 무엇인지 궁금해 뎐딜 수가 없네. 정말 무척이나 기대가 되네, 분노의 존재를 알아주고 무조건적인 사랑으로 보살펴주면 그 분노의 에너지는 창조적이고 긍정적인 에너지로 바뀔 수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을 죄수 중의 죄수(딤전 1:5)라고 묘사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자신을 비하하거나 다른 사람들 앞에서 숨기려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항상 자신의 죄를 생각하면서도 동시에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했습니다. 그가 자신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믿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삶에서 가장 깊은 두려움이 무엇일까요? 그건 실패가 아닙니다. 그러면 뭘까요? 거부입니다. 내가 실패한 후에 다른 사람에게, 나 자신에게, 때로는 하나님께 거부당할 것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나의 가장 큰 두려움은 실패가 아닙니다. 거부도 아닙니다. 수치심입니다. 내가 실패한 후 거부당했을 때 느끼는 수치심입니다.
복음은 우리가 실패를 경험하지 않을 것이라고 보장하지 않습니다. 실패한 순간에도 주님은 여전히 나를 사랑해 주신다는 것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실패로 인한 좌절감과 수치심이 작동하지만 주님이 대신 십자가에 못 박히심으로 우리를 영광의 신분으로 바꾸어 주신 것을 믿습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진짜 신앙은 주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마음의 방향이 하나님을 향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기다리는 마음입니다. 해주고 싶지만 해주지 못하는 안타까움, 거기에서 진실이 나옵니다. 사랑은 안타까움을 이해하는 마음입니다. 반대를 포용하면 그만큼 넓어집니다. 반대를 포용하면 그만큼 더 강해지고 반대를 포용하면 더 자신감이 생깁니다(고후 6:13).
2)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의 특징
제 1 단계 : 낮은 자존감의 문제점 인정하기
낮은 자존감의 공통적인 문제점은 죄책감, 과민성, 혹평성, 당혹감, 부끄러움 타는 것, 익살을 떠는 것, 거만, 책임 전가, 비난받는 느낌, 외식, 대부분의 중독들, 동성애, 결혼과 가정의 문제로 나타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낮은 자존감을 인정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자신을 인정하는 것이란 이제껏 자기가 살아온 삶을 시인하는 과정입니다. “각자 자신이 최선을 다하고 있음을 확신하십시오. 그러면 남과 비교하지 않고도 자기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을 것입니다.”(갈 6:4). 나 자신을 인정한다는 것은 내가 다른 사람보다 뛰어날 필요가 없음을 말합니다. 바울 또한 우리 자신을 비하하는 것을 중단하라고 힙니다(골 2:18, 23). 비하는 겸손으로 이끄는 것이 아니라 자기 의로 이끌어갑니다.
제 2 단계 :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삶 속에 받아들이십시오
진실한 슬픔과 뉘우침에서 비롯되는 회개야말로 진정한 자기 수용의 필수요소입니다. 자존감을 이루는 하나의 기초는 자신을 사랑하고 용서하는 능력에 있습니다. 이 능력의 근원은 하나님과 나와의 관계입니다. 내가 하나님의 사랑과 용서를 경험하게 될 때 나를 사랑하며 용서할 수 있습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사랑을 수용할 때 이웃을 그렇게 사랑하고 용납할 수 있습니다.
제 3 단계 : 자기 사랑하기를 배우는 과정에서 인내하십시오.
자존감을 세우는 데는 인격적, 감정적, 영적 발달과 마찬가지로 시간이 필요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1:6절에서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영적인 삶과 마찬가지로 자존감도 계속적인 과정입니다. 또한 인격적인 성숙도 평생이 걸리는 과정입니다.
선한(착한) 사람들이 실패하는 9가지 이유라는 책에서 듀크 로빈슨은 매사에 완벽해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침묵하지 말고 자신의 감정을 솔직하게 표현하라는 것입니다. 분노를 억누르다가 나중에 폭발하는 것은 금물입니다. 상대가 감정이 폭발하는 발언을 할 때 합리적으로 대처하려고 하지 말고 그 감정을 이해하고 들어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이때 조심해야 할 것은 충고는 반감을 갖게 합니다. 상대의 문제를 해결해 주기 위해서 구원자로 나서지 말고 돕는 자의 역할을 해야 합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은 내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남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느냐가 아니라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보시느냐에 근거해야 합니다(빌 3:7-8).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은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돌보심에 근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오히려 자랑합니다. 그렇게 할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이 약할 때에 곧 그리스도 안에서 강할 때인 것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고후 12:9-10). 바울의 자존감은 궁극적으로 혈통이나 성취에 근거하지 않기에 그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습니다(빌 4:11). 바울의 자존감은 그 어떤 것도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서 빼앗아 갈 수 없습니다(롬 8:38-39).
3)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어떻게 높일 것인가? (엡 3:16)
사람이 살아가는 데에는 자신감이 필요합니다. 자신감이 있으면 생각이 넓어지고 매사에 적극적입니다. 그러나 자신감이 없으면 생각이 위축되고 열등감이 생깁니다. 자신감과 자존감이 없는 사람은 뇌가 20% 줄어들면서 기억력과 학습능력이 떨어진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자신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외면적 자신감과 내면적 자신감입니다. 외면적인 자신감은 외면적인 조건의 만족에서 오는 자신감입니다. 예를 들어 키가 작거나 잘 생긴 외모, 좋은 학벌과 능력. 남보다 우월한 가문, 재력, 명예, 높은 신분 및 권력 등에서 생기는 자신감을 말합니다.
내면적인 자신감은 내면적인 조건의 만족에서 오는 자신감을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면적 자신감(자긍심)을 속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에베소서 3장 16절입니다. ”그의 영광의 풍성함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 반면에 외면적 자신감은 겉 사람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4장 16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낙심하지 아니하노니 우리의 겉사람은 낡아지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지는도다.”
온전한 자신감 = 내면적 자신감(심리적, 종교적, 철학적 자긍심이 높을 때 생기는 자신감)+ 외면적 자신감(외모, 학벌, 소유, 전공, 권력, 명예 등 외적 조건에서 오는 자신감)
4가지 종류의 사람
첫째, 외면적인 자신감도 없고 내면적인 자신감도 없는 사람이 있습니다.
자신이 약자이기 때문에 주위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하면 열등의식이 강해 피해의식이 강하게 나타날 수 있습니다. 그것은 오만불손, 허풍, 남보다 낫게 보이고자 하는 가식 등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지존파가 막가파도 이러한 부류에 속합니다.
둘째, 외면적 자신감은 있지만 내면적 자신감이 결여된 사람이 있습니다.
이러한 사람은 일시적으로 잘 나갈 때에는 남에게 부러울 것이 없고 자신감이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늘 마음 한 구석이 외롭고 허전하며 전체적인 자신감이 부족할 수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세상에서 출세를 하였지만 종종 열등의식이 나타나고 그것을 보상하기 위하여 더욱 육적인 욕구로 과도하게 채우려고 합니다. 그 결말은 허무와 파멸에 이르는 수가 많습니다.
셋째, 외면적인 조건이 부족해도 내면적인 자신감이 충만한 사람이 있습니다.
내면적인 자신감을 갖고 있는 사람은 설사 외면적인 것이 약해도 쉽게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습니다. 외면적인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만나도 비굴해지지 않습니다.
넷째, 외면적인 자신감과 내면적인 자신감이 모두 동시에 충만한 사람입니다.
이집트 왕자였던 모세나 사도 바울이 그 예입니다. 그들은 족보나 학력이나 경력에서 흠 잡을 데 없는 엘리트였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충만히 받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가장 크고 넓게 그리고 귀하게 쓰셨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내면적인 자신감이 외면적인 자신감보다 더 중요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리고 내면적 자신감과 함께 외면적인 자신감도 함께 기른다면 열등의식을 해소할 수 있고, 또한 열등의식이 있다 해도 잘 절제할 수 있습니다.
먼저 내면적인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첫째, 신앙의 사람으로 교육해야 합니다.
신앙심이 강해지면 자신의 영적인 소속감이 분명해지고 자존감이 높아지며 자아형성이 뚜렷해집니다. 신앙심이 강해지면 속사람이 강해집니다. 바울은 교인들을 위해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속사람이 능력으로 강건하도록 기도하였습니다”(엡3:16). 그리고 신앙심이 강해지면 삶의 목적도 뚜렷해집니다. 즉 자긍심이 높아집니다. 이것이 바로 내면적 자신감의 핵심입니다.
미국 바나 리서치 그룹에서 성인 3천 명을 무작위로 추출하여 조사한 결과 무신론자들은 신앙을 가지고 있는 사람에 비해 자신의 생활에 만족하지 못하고 있으며, 신앙이 깊을수록 자신감, 행복감, 자존감이 높게 나타났습니다. 신앙의 용장 다윗이 높은 자존감을 가졌던 이유도 하나님과 자신과의 관계를 굳게 믿었기 때문입니다(시 139:13-16).
둘째, 어려서부터 뿌리교육, 철학, 역사, 사상 및 고전 교육을 많이 시켜 수직문화의 사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지체 높은 알렉산더 대왕이 나무통에서 책을 읽는 디오게네스에게 찾아와 물었습니다. 그대의 소원이 무엇인가? 철학자는 대왕을 한번 쳐다보고는 “대왕께선 햇볕을 가리지 마십시오.”라고 답했다고 합니다. 책을 읽는 데 방해가 된다는 말입니다. 이 말을 듣고는 알렉산더가 “내가 알렉산더가 아니라면 디오게네스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셋째, 고난의 역사 교육을 시켜야 합니다.
실제 고난을 통한 극기 훈련을 시켜야 합니다. 전인 교육은 교실에서 가르치는 이론만 갖고 되는 것이 아닙니다. 실제 고난을 체험하면서 깨달음과 지혜와 인내가 생깁니다. 그리고 강인해집니다. 남의 아픔을 이해하게 됩니다. 인생의 철이 듭니다. 깊이 있는 내면적 자긍심이 생깁니다.
고난은 하나님의 교육방법입니다. 욥은 고난 중에도 하나님이 자신에게 주시는 고난의 의리를 깨달았습니다(욥23:10-14). 어려서부터 자녀들에게 신문배달이나 아르바이트 등 힘든 노동을 시키는 것이 자녀들의 자긍심을 높이는 또 다른 방법입니다.
외면적 자신감을 높이는 방법은 무엇일까요?
월간중앙 조사 2006년 8월에서도 외면적 자신감이 높은 사람이 그렇지 못한 사람보다 긍정적이고 자신감이 높다는 결과가 나왔습니다. 소득이 높을수록 매사에 자신감을 느낀다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기독교인은 청빈만 강조하거나 무능력하더라도 마음이 착한 것으로 덕을 삼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잘못된 교육입니다. 한 인간으로서 온전한 자신감을 가지려면 내면적 자신감뿐 아니라 외면적인 실력도 함께 갖추어야 합니다. 즉 생활력이 강한 사람으로 키워야 합니다. 기독교인도 외면적 자신감을 높여야 합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첫째, 각자의 생업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성도는 이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양식을 하나님께 구하고(마 6:9-13), 이를 위하여 땀 흘려 노동해야 합니다.
둘째, 하나님의 백성도 이 세상의 사람들과 더불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기 위해서, 이 땅에서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남에게 꾸어줄망정 꾸지 않도록 노력해야 합니다(신 28:12-13). 하나님께 풍성히 바치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남을 돕기 위해서 모든 면에서 실력을 갖추고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남을 돕는 것은 물질만 아니라 자신이 갖고 있는 재능 또는 전문분야도 보이지 않는 재산입니다.
셋째, 인간은 아무리 신앙이 좋다 해도 인간입니다.
누구나 다소의 열등의식이 있게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면적 자신감뿐 아니라 외면적 자신감의 조건도 만족시켜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은 내면적 자신감을 가진 사람을 쓰시지만, 이왕이면 외면적 자신감을 갖도록 훈련받은 사람을 더 크고 넓게 쓰십니다.
결론적으로 자신의 열등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첫째, 물질, 명예 및 권력과 같은 외면적 조건들에 굴하지 않고 이를 초월할 수 있는 내면적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둘째 이에 대하여 이웃도 도울 수 있는 그리고 사회에서 지도자가 될 수 있는 외적 조건들을 개발하여 외면적 자신감을 키우는 것이 필요합니다. 자신의 유익보다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누구나 크건 작건 열등의식을 가질 수 있습니다. 열등의식이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때로는 열등의식이 자신의 발전에 긍정적인 역할을 합니다. 사회생활에서 경쟁력을 키우는 동기유발이 되기 때문입니다. 열등의식을 어떻게 해소할 수 있을까요? 열등의식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두 가지 자신감, 내면적 자신감과 외면적 자신감을 고루 갖도록 해야 합니다. 누구에게나 상처와 아픔이 있습니다. 그러나 잃어버린 아픔이나 상처 때문에 원망하거나 이름다운 추억을 기억하면서 사느냐 하는 것은 당신의 선택에 달려 있습니다. 당신은 용기 있는 삶을 선택하십시오.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가졌던 소중한 추억들을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믿음의 시각, 하나님의 시각으로 바라보면 어려움은 작게 보이고 가능성은 크게 보여서 일을 쉽게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열등감, 실패에 대한 불안 때문에 시작부터 두렵게 만듭니다. 그리스도안에서의 자존감은 내가 십자가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의 사랑을 받고 있는 것을 말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그 하나님의 사랑을 흘러 보내고 싶은 것입니다. 사랑은 감정이 아니라 행동입니다. 게리 채프만이 말했던 것처럼 나 자신의 사랑의 언어를 발견하고 다른 사람의 사랑을 언어를 발견해서 행복한 인생, 영광스러운 인생을 살아내기를 소원합니다.
김난도의 [아프니까 청춘이다] 라는 책에 이런 글이 있습니다. 꽃은 저마다 피는 계절이 다릅니다. 개나리는 개나리대로, 동백은 동백대로, 자기가 피어야 하는 계절이 있습니다. 꽃들은 저렇게 만개의 시기를 알고 있는데, 왜 그대들은 하나같이 초봄에 피어나지 못해 안달인가? 그대 좌절했는가? 그대라는 꽃이 피는 계절은 따로 있다. 아직 그때가 되지 않았을 뿐이다. 그대 언젠가는 꽃을 피울 것이다. 그러므로 고개를 들라. 그대의 계절을 준비하라.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어떤 학생도 새로워질 수 있고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의 자존감 퀴즈 문제
1. 교육을 많이 받고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업을 가진 부모나 친척을 가진 사람에게서 느끼는 집안 열등감입니다.
2. 죄의 영향은 지, 정,의, 삶 전체에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닙니다.
3. 브닌나는 열등의식을 가졌고, 한나는 우월의식을 가졌습니다.
4. 그리스도인의 잘못된 자존감은 일부로 겸손, 지나친 과장, 상처를 전혀 받지 않는 것입니다.
5.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의 요소는 죄의 용서, 십자가 사건, 하나님의 용납하심입니다.
6.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화상은 사랑을 받고 있다는 소속감, 자신의 가치와 중요성을 느끼는 것, 자신감입니다.
7. 그리스도인의 건강한 자존감의 요소는 죄의 용서, 십자가 사건, 순종의 삶입니다.
8. 그리스도인의 자존감을 세워가는 데는 계속적인 과정이 필요없고 특별한 경험이 있을 때 가능합니다.
9. 내면적인 자신감만 있으면 외면적인 자신감은 따로 필요하지 않습니다.
10. 하나님의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면 자신의 상처가 은사가 될 수 있고,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도움이 됩니다.
해답
1.0, 2, X, 3. X, 4.X, 5. 0, 6, 0, 7. X, 8. X, 9. X, 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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