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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청지기

by liefd 2025. 1.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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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1:1)

 

오늘부터 우리는 10교회원리 가운데 청지기에 대하여 말씀을 전하겠습니다. 신자의 청지기 삶은 하나님의 교회를 세워가는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뿐만 아니라 신자의 청지기 삶은 우리 인생의 목적과 관련된 보다 넓고 깊은 주제이기도 합니다.

 

영어에서 청지기기란 단어는 가장 잘못 사용되는 단어 중 하나입니다. 만약 여러분들이 교회에 출석하는 사람들에게 청지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묻는다면 대부분 사람들은 돈, 십일조, 또는 헌금 등과 관련된 의미만으로 대답할 것입니다. 그러나 청지기는 반드시 물질관한 것만이 아닙니다.

 

교회는 청지기 삶에 대하여 반드시 강조하고 가르쳐야만 합니다. 그 이유는 성경이 청지기 삶을 중요한 주제로 다루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은 구원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구원에 대하여 말할 때 항상 청지기 삶에 대하여 가르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 지옥, 기도 그리고 다른 주제들보다 청지기 삶에 대하여 더 많은 말씀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비유 가운데 반 이상이 청지기에 관한 것입니다. 사실상 복음서에는 여섯 구절마다 청지기와 관련된 말이 나옵니다. 이정도면 이 주제가 성경에서 얼마나 중요하게 다루어 졌는지 충분히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저는 성도 여러분에게 청지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하여 말씀드리고자 하는데 특별히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주제를 따라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배워온 것과는 다른 방법에서 청지기를 이해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걱정하지 마십시오! 돈에 대하여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인간을 위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말하고자 합니다.

 

그렇다면 청지기 삶(stewardship)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웹스터 사전은 이 단어를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청지기 삶(stewardship)이란 다른 사람의 자산이나 소유물 또는 부동산등을 맡아서 관리하는 것을 말한다.” 청지기 삶은 자기의 것이 아닌 어떤 것을 관리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청지기에 대한 이 정의에서 가장 핵심 되는 단어는 관리라는 말입니다. 청지기(steward)라는 말은 매니저(manager)즉 관리인을 의미합니다. 청지기는 영어에서 매니저 대신 사용되었던 구어입니다. 그러므로 당신이 사업장이나 직장에서 매니저이거나 관리자의 위치에 있다고 하면 당신은 청지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당신의 일은 관리하는 것을 포함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다루는 청지기적 삶은 여러분들의 삶을 어떻게 관리하는가에 대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청지기 삶에 관하여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창세기 11절로 거슬러 올라가야만 합니다. 청지기 삶을 이해하는 일은 시간의 시작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청지기 삶에 관하여 제대로 이해하면 거기에 엄청난 축복과 유익이 있음을 알게 될 것입니다. 사실상 청지기 삶은 기독교인의 삶을 이해하는 열쇠입니다. 당신이 청지기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신앙생활을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이 청지기 삶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왜 당신이 지구위에 존재하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당신은 하나님이 왜 인간을 만들었는지를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창세기 11절 말씀으로 보시겠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이것이 청지기 삶의 첫 번째 원리입니다: 창세기 11절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고 선포하십니다. 우리들은 지구가 나의 아버지의 세상이라고 노래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십니다. 그분은 오렌지 과수원을 소유하십니다. 그 분은 그 과수원 안에 있는 나무도 소유합니다. 그분은 그 오렌지 안에 있는 주스도 소유합니다. 그분은 모든 식물, 모든 바위, 모든 동물, 모든 사람, 그리고 세상의 모든 것을 소유하십니다. 성경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하늘이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고 궁창이 그 손으로 하신 일을 나타내는 도다.”

 

그렇다면 왜 하나님은 모든 것에 대한 소유권을 선언하실 수 있는 것입니까? 첫째, 그분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이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모든 것을 하나님이 소유하십니다. 그러나 여기에는 그 이상의 의미가 있는데 그것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주관하시고 유지하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모든 것을 붙잡으시고 우주의 질서를 유지시키신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모든 것을 만드시고 섭리하기 때문에 그 모든 것을 소유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하나님은 당신과 나 그리고 이 땅도 소유하시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저와 여러분도 하나님이 만드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셨다는 것이 반드시 모든 것이 그분의 의도하심대로 사용된다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분명히 많은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방식대로 사용되지 않고 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제가 여러분들에게 질문하고 싶은 것이 다음과 같습니다. 왜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셨는가? 왜 저와 여러분은 여기에 있는가? 왜 내가 여기에 있는가? 왜 사람은 창조되었는가?

 

창세기 1장 창조과정을 보면 하나님은 5일 동안 창조를 하십니다. 그리고 5일째 되는 날 만드신 모든 것을 내려다보십니다. 하나님께서 땅, 하늘, 궁창, 동물들, 식물들 그리고 모든 것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25절에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을 31절의 말씀과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여섯째 날 모든 창조를 마무리하신 후에 하나님은 다시 창조된 세계를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보시기에 참 좋았더라.” 25절과 31절 사이에 무엇이 창조되었습니까? 하나님은 사람을 창조하셨습니다.

 

하나님은 5일째 되는 날 그분의 창조물을 바라보셨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참 잘 만들었지만 뭔가 부족한 것이 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인간이 이전에 창조된 것들과 근본적인 차이들을 가져왔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인간을 만드셨습니까? 인간은 두 가지 면에서 동물들과 다르게 창조되었습니다.

 

첫째, 사람은 동물과 본질에 있어서 다릅니다. 하나님은 인간을 우리의 형상을 따라만드셨다고 성경은 말합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나는 나의 형상과 모습을 따라 사람을 만들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본질에 있어서 하나님과 같습니다. 우리는 완벽한 건가요?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뭔가를 만들 수 있는 창조적인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창조자이십니다. 그 분은 우리를 창조적으로 만드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우리는 신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닮았습니다.

 

둘째, 사람은 동물과 해야 할 일이 다릅니다. 28절에 보면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고 명령하십니다. 215절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그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사 그것을 다스리며 지키게 하십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인간을 세계의 관리인(caretaker), 매니저, 그리고 하나님이 창조하신 모든 것의 청지기가 되도록 만드셨습니다. 이것이 인간을 창도하신 목적입니다.

 

창세기 1:28절을 보시기 바랍니다. 첫째, 생육하고 번성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은 동물들과 차이가 없음을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물고기와 새들에게도 똑같은 주문을 하셨습니다(1:22). 생육하고 번성하는 것이 인간이 지킬 수 있었던 유일한 명령이었습니다. 분명히 우리는 하나는 지켰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다른 모든 피조물도 지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육하고 번성할 뿐만 아니라 다음과 같은 다섯 가지를 행하고 누리기를 원하셨습니다. “땅에 충만하라, 정복하라, 통치하라, 경작하라, 그리고 그것을 보살펴라.” 하나님은 사람으로부터 다섯 가지 모두를 기대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일입니다. 이 모든 일을 한단어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매니지먼트(management)즉 관리입니다. 하나님은 사람을 매니저로 창조하셨습니다. 이것이 두 번째 원리입니다.

 

첫 번째 원리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소유하신 다는 것입니다.

 

두 번째 원리는 우리는 하나님께 속해있는 소유물을 관리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이 사실이 성경이 가르쳐주는 인간 창조의 유일한 이유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땅위에 두신 모든 것을 관리하고 그것들을 통치하고 정복하도록 창조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첫 번째 하신 명령은 청지기 삶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땅을 관리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그것을 현명하게 사용할 책임이 있는 것입니다. 어떤 의미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작은 파트너로 창조하신 것입니다. 그분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자 여기에 원자재와 원료들이 있다. 이제 가서 그것으로 뭔가를 만들어라. 너는 매니저다. 내가 소유자이지만 네가 관리하고 운영해라. 너는 관리자이고 나의 청지기이다. 너는 나의 작은 파트너(partner)이다. 왜냐하면 너는 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기 때문이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인간을 만드신 이유입니다.

 

지금까지 사람들에게 있어서 가장 근본적인 문제는 창조된 이유를 잊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목적을 잊어버렸습니다. 처음에 사람은 하나님이 주시고 창조하신 것을 관리했습니다. 그러나 얼마 되지 않아 사람은 모든 것이 자기의 소유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관리자일 뿐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위치를 바꾸려고 시도합니다. 우리는 마치 세상을 창조한 주인처럼 행동하기 시작합니다. 우리는 나의’, , ‘나의 것같은 단어들을 사용하기 시작합니다: 나의 삶, 나의 계획, 나의 소유들, 나의 시간.

 

그러나 누가 그 모든 것을 당신에게 주었습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분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너를 땅위에 두겠으니, 너는 세상을 사용하라, 세상을 관리하라,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즐겨라. 그러나 내가 그 모든 것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절대로 잊지 말라. 내가 그것을 만들었고 유지하기 때문이다.”

 

어떤 사업이나 물건에 대한 최종적인 지배권은 주인에게 있지 매니저에게 있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주어진 모든 것을 사용하고 운영하고 그리고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의 소유주는 하나님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 삶입니다.

 

창세기 128절 말씀에 주목하시기 바랍니다. “나는 네가 모든 것을 통치하기를 원한다.” 개역 성경에 보면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원래 창조 시에 사람으로 하여금 모든 것을 다스리도록 의도하셨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 일어났습니까? 사람은 모든 것을 엉망으로 만들었고 뒤바꿔버렸습니다. 지금은 물건들이 우리를 지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소유에 의하여 소유되어집니다.

 

하나님은 삶에 있어서 너의 최고 목표를 단순히 뭔가를 얻거나 소유하려는 일에 두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다. 나는 단지 그것들을 너에게 단기간동안 빌려준 것뿐이다. 너는 이곳에서 잘하면 60, 70, 80, 또는 90년 동안을 머물 것이다. 그 기간 동안 나는 너에게 그것들을 빌려줄 것이다. 너는 그것을 운영할 수 있다. 그리고 사용할 수 있다. 그리고 그것들을 즐길 수 있다. 그러나 그 다음에 너는 죽게 될 것이고 영원 속으로 들어오게 될 것이며 나는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빌려줄 것이다.” 실제로 저와 여러분은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합니다. 그것들은 단지 대여된 것에 불과합니다. 우리가 죽은 후에 하나님은 그것들을 다른 사람에게 대여하십니다. 사람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당신은 아무것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왜 그렇습니까? 그것은 단지 우리에게 대여된 것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몇 가지 권세를 부여하셨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분은 우리를 자신의 형상을 따라 만드셨고 땅위에 두셨습니다. 그리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제 내가 너에게 준 것을 최고로 만들어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을 최고로 만드십시오.

여러분에게 주어진 시간을 최고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복으로 주신 모든 것을 최고로 만드십시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에게 원자재들을 공급한다. 그리고 너희에게 창조할 수 있는 능력을 주었다. 너희는 창조적이다. 이제 뭔가를 하도록 해라!” 하나님은 숲을 제공하셨습니다. 사람은 그 숲을 취하여 집으로 만듭니다. 사람은 물체를 취하여 모든 종류의 것들을 만듭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창조적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땅위에서 하나님의 관리인입니다.

 

청지기 삶은 하나님의 동반자입니다. 그것이 전부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여러분을 위의 다섯 가지 일을 하도록 땅위에 두신 이유입니다. 고전3:9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들이요라고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과 함께 일합니다. 우리는 그 분의 파트너 입니다.

 

만약 성도 여러분들이 마음에 이러한 개념을 받아들이고 진실로 이 사실을 이해한다면 이 사실은 여러분의 삶에 혁명을 가져다 줄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 모든 것을 만드시고 우리를 그것의 매니저로 세우셨음을 이해하게 될 때, 어떠한 유익을 가지게 되겠습니까? 현명한 청지기에게는 두 가지 유익이 있습니다. 나의 삶에 대해 현재적인 유익과 미래적인 유익이 있습니다.

 

첫째로, 현재적인 유익은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것을 충성심을 가지고 관리하는 것을 행복으로 여기게 됩니다. 더 좋은 청지기가 될수록 여러분의 행복 지수는 커지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그럴 수 있습니까? 예를 들어, 만약 하나님이 당신에게 재능을 주셨는데 그것을 최선을 다해 사용하지 않는다면 당신의 삶을 불만족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에게 주어진 재능을 사용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에게 부를 주셨는데 그것을 사용하지 않거나 잘못 사용한다면 당신은 긴장과 압박 그리고 걱정과 근심 가운데 나날을 살게 될 것입니다. 만약 하나님이 당신의 시간을 주셨는데 당신이 주어진 시간을 현명하게 사용하지 않고 낭비해 버린다면 당신은 스트레스 가운데 하루하루를 보낼 것이며 패배감을 느낄 것이고 실망감을 가지게 될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이 관리하도록 맡기신 것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할 때마다 그것은 부정적인 결과를 가져옵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우리가 현명한 매니저가 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관리하도록 더 많은 것들을 주십니다. 우리는 그러한 것들을 관리함과 동시에 그것을 즐기게 되고 사용하게 됩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창조하신 모든 것들을 즐기는 땅위의 매니저인 우리들을 보시면서 놀라운 기쁨을 가지십니다. 그분이 모든 것을 만들었고 우리는 그것들을 관리하고 즐깁니다. 하나님은 그러한 우리들을 보시면서 기뻐하십니다.

 

그뿐만이 아닙니다.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이 복으로 주신 모든 것을 더 성실하게 관리하면 할수록 더 많은 것들 맡기신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가 모든 것에 대하여 더 성실하고 현명한 매니저가 되며 청지기가 될수록 그 분은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맡길 수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더 많은 복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네가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으로 네게 맡기리니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나의 삶의 청지기 삶에 대한 현재적인 유익들입니다.

 

둘째로, 미래를 위한 유익함이 있습니다. 성경은 우리가 받을 영원한 상급은 이 땅에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긴 삶을 어떻게 관리했는가에 근거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적은 일에 충성한다면 하나님은 당신이 영원한 일에 더욱더 충성할 것이라고 생각하십니다. 이렇게 본다면 지금 이 땅에서 우리들의 삶은 더 큰 상급을 위한 하나의 시험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보시며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수고하였다. 너의 인생, 너의 시간, 너의 재능, 너의 재물, 그리고 너의 삶 모든 영역에서 네가 충성하였느니라.” 이 땅에서 우리들의 청지기 삶은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원한 삶을 위한 준비과정입니다.

 

로마서 1412절에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우리 각인이 자기 일을 하나님께 직고하리라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에게 주신 모든 은혜와 축복에 대하여 우리가 얼마나 충실하고 지혜롭게 관리했는지 하나님 앞에 모든 것을 고해야 할 때가 분명히 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청지기 삶을 평가하십니다. 우리는 그 평가에 따라 상급을 받게 될 것입니다.

 

창조자는 하나님이 십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계획하시고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관리자입니다. 우리에게는 관리자로서 그 보상이 주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하늘나라에서 주어지는 영원한 상급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 주어지는 일시적인 상급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일시적인 세상 것에 우리들의 인생을 낭비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여러분 분명한 것이 있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것은 단지 우리가 빌린 것에 불과합니다.

 

여러분들은 다음과 같이 말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다 좋은 소리인데, 그렇다면 무엇을 관리하란 말인가? 만약 하나님이 나를 관리자로, 청지기로 그리고 모든 것을 돌보고 정복하고 다스리는 사람으로 만드셨다면, 특별히 무엇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말하고 있는 것인가?

 

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대답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물론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맡겨준 모든 것들에 대한 관리자입니다. 모든 것을 관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이 살도록 이 환경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생태학과 이 지구의 자연 환경까지도 여러분이 관리해야할 영역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육체를 허락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청지기적 의무에는 몸을 관리하기 위해서 운동을 하고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도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날마다 그날 그날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렇다면 청기로서의 삶에는 시간을 관리하는 일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부요함과 재물과 물질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청기기 삶에는 물질 관리와 재정관리 등 모든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어떤 직위와 권한을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여러분에게 아주 특별한 책임을 허락하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청지기 삶에는 당신의 영향력을 선하게 사용하는 것이 포함됩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을 구원해 주셨습니까?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새로운 삶을 선물 받았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의 청지기 삶에는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이 포합됩니다.

 

지금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저와 여러분의 인생에 있어서 너무나 중요한 문제를 다루고 있는 것입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창조되고, 이 땅에 보내진 이유이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모든 것의 관리자가 되는 일입니다. 이 문제는 창세기 11절에서 시작합니다. 그리고 성경전체를 통해서 발견되는 주제입니다. 청지기 삶이란 가장 기초가 되는 우리들 인생의 원리입니다. 이것은 여러분이 이 땅에 살고 있는 이유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을 창조하신 목적을 성취하는 일입니다. 이것은 우리 삶을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 문제입니다. 나의 시간, 나의 재물, 나의 가족, 나의 가정, 나의 사업, 나의 자원, 나의 친구 등 내 인생에 포함되는 모든 영역이 청지기 삶이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우리들의 청지기 삶에 대하여 돌아볼 수 있는 기회를 의도적으로 만들어야만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청지기 삶에 대한 명확한 개념을 잃어버리면 우리는 수많은 시간을 낭비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원이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원이 낭비되기 보다는 올바로 사용되기를 원하십니다. 청지기 삶이란 하나님의 자원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청지기 삶의 모든 것입니다.

 

십일조와 헌금은 어떻습니까? 십일조는 가장 큰 목적은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십일조를 드리도록 하신 유일한 이유입니다. 십일조는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전체의 10%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감사함으로 우리들 수입의 10분의 1일 돌려 드릴 때,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주셨다는 사실을 가장 먼저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내 수입의 10%로를 취하시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90%를 가지고 살도록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10%로 십일조들 드리는 것은 나의 수입이 어디서 왔는가를 기억하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만약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면 너는 아무것도 소유하지 못했을 것이며, 하루 밤 사이에 너의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는 사실을 네가 기억하고 잊지 않기를 원한다. 하룻밤 새에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점에 대하여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입니다: “그것은 내 생각인데. 이것은 내가 개발한 것인데.” 그렇다면 당신에게 그 마음을 주신분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우리를 나무로 만드실 수 있었습니다. “인생에서 내가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내가 열심히 일했기 때문이다! 나는 스스로 해내는 사람이다!” “이 모든 것을 내가 했다!” 만약 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한 축복의 손길을 거두신다면 당신은 일할 수 있는 건강조차도 잃을 수 있으며 생각할 수 있는 마음조차도 잃을 수 있을 것입니다. 당신에게 그 창조적인 마음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당신에게 그 일을 창조하고 생산하며 행할 수 있는 능력을 주신 분이 누구십니까? 하나님이 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것의 근원이 바로 나임을 잊지 않기를 원하노라. 내가 바로 창조자이며, 만약 그것들이 나를 위한 것이 아니면 너는 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너의 인생이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내가 너를 만들었으며 내가 너의 조성자이다.”

 

미국의 남부지역에서 급성장했던 교회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차공간을 확보할 수 없을 정도로 교회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일 날 영업을 하지 않는 건너편 수퍼마켓의 주차 공간을 사용하기를 원했습니다. 그래서 그곳의 주차장을 사용할 수 있도록 수퍼마켓의 주인과 협의했습니다. 그때 그 수퍼마켓의 주인은 한 가지 조건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일년에 51번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겠습니다. 그러나 단 52번째 주일은 사용을 허락할 수 없습니다.” 교회 사람들은 그 이유가 무엇인지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당신이 51번은 사용을 허락하고 52번째 주일은 사용을 허락하지 않는지 그 유에 대하여 말해달라고 청했습니다. 수퍼마켓 주인이 다음과 같이 대답했습니다: “왜냐하면 이 주차장이 수퍼마켓 소유라는 것을 당신들이 잊지 않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십일조의 모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소유한 것이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저와 여러분이 잊지 않기를 원하십니다. 우리가 받은 축복의 근원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우리는 단지 관리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것들을 관리하기 위해서 소유하며 이것들을 즐기고 사용하고 발전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것들을 소유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들은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신명기 8장 말씀을 보십시오. 저는 지금 우리의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말씀드리고 있습니다. 이것은 왜 우리가 여기에 존재하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신명기 817-18또 두렵건대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오늘날 우리들의 생각과 너무나 똑같지 않습니까? “네가 마음에 이르기를 내 능력과 내 손의 힘으로 내가 이 재물을 얻었다 할까 하노라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을 주셨음이라

 

하나님은 우리들을 축복하셨습니다. 우리들은 풍요로운 환경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축복하시고 이르기를 내가 너에게 능력을 주었음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너에게 창조적 능력과 일, 생산과 변화 그리고 무엇을 개발하고 그것을 관리하는 열정을 내가 주었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을 위해서 내가 너를 이곳에 두었으며 열심히 일하는 너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이 바로 나의 기쁨이다. 그러나 주인은 바로 나이며 너는 관리자라는 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당신에게 부를 이룰 수 있는 능력을 주신분이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1422절은 십일조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는 구절입니다. 십일조는 우리의 모든 소유와 우리의 모든 수입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신명기 1422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신명기 1423절 마지막 부분에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이것이 바로 십일조를 드리는 목적입니다.

 

리빙 바이블(Living Bible)은 이 구절을 다음과 같이 번역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최우선 순위에 두는 것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다.” 우리들이 하나님을 돕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가난하십니까? 하나님께서 내가 드리는 십일조에 의존 하십니까? 하나님은 부족함이 없는 분이십니다. 실질적으로 하나님은 우리의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드리는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을 최우선에 두기 위함입니다. 이것이 십일조를 통해서 우리를 가르치려는 목적입니다.

 

한 가지 예를 들어 말씀드리겠습니다. 초등학교에서 23일 수학여행을 떠납니다. 그 때 부모님은 자녀에게 얼마간의 용돈을 주십니다. 여행지에서 이것저것 기념이 되면서도 선물이 될 수 있는 물건을 구입하게 됩니다. 부모님을 위해서 대나무로 만들어진 효자손 또는 나무망치를 선물로 사고, 형제들을 위해서는 대부분 연필을 사게 됩니다. 여행지에서 돌아와 부모님께 선물을 보여드립니다. 대나무로 만든 효자손 또는 나무망치를 보시고 부모님들은 그 어느 때 보다도 즐거워하십니다. 사실 효자손이 필요하셨으면 시장에서 직접 얼마든지 구입할 수 있는 물건입니다. 그럼에도 부모님은 자식이 사온 그 물건을 보시고 너무나 흐뭇해하십니다. 부모를 생각하는 어린 자녀의 마음을 보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청지기라는 너무나 소중한 직분을 주셨습니다. 그 참된 의미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청지기로서의 의무와 책임 그리고 놀라운 권리를 충만히 누리시는 성도여러분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풍성한 삶과 드림 (12:41-44; 고후 8:7)

 

우리들은 청지기라는 주제를 가지고 계속하여 말씀을 나누고 있습니다. 크리스천의 청지기 삶은 교회를 세워가는 원리 가운데 하나입니다. 이 주제의 첫 번째 말씀은 당신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우리는 우리들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에 대하여 이미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의 모든 만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만물의 소유주는 하나님 이십니다. 하나님은 저와 여러분을 하나님이 창조하신 피조물의 관리자로 세우시기 위해서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우리의 소유가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께 속해있는 것을 관리하도록 우리에게 맡겨진 것입니다. 이것이 청기기 삶의 기초입니다. 이것이 저와 여러분을 향한 분명하고 명확한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오늘 저는 청지기 삶의 다른 한 면을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그것은 헌금에 대한 말씀입니다. 즉 성도여러분의 풍성한 삶과 넘치는 드림에 관한 말씀입니다. 저를 비롯해서 대부분의 목회자들이 헌금에 대하여 설교하는 것을 매우 부담스러워 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성도들의 헌금은 하나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헌금은 성도들의 마땅한 행위라는 측면에서 이 문제를 설교하고 가르쳐야하는 것은 목회자의 마땅한 의무이기도 합니다.

 

저는 오늘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에 대하여 성경이 어떻게 말씀하고 있는지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모든 선입견들을 버리십시오. 그리고 마음의 문을 활짝 여십시오. 그리고 성경말씀에 귀를 기울이십시오. 성도여러분이 성경 말씀에만 귀를 기울이게 된다면 우리 주변에서 물질과 관련하여 일어나는 문제들을 올바로 평가하고 올바로 이해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될 것입니다.

 

크리스차니티(Chris·ti·an·i·ty-기독교, 그리스도교; 기독교적 신앙[정신, 성격]의 실천)의 핵심적 요소인 헌금은 성도 여러분 삶의 한 부분입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이라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이 세상을 그리고 저와 여러분을 그 분은 너무나 사랑하셨다.”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물질을 드리며 살도록 원하시는 것은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이 행하신 행위를 우리가 닮기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후히 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위해 온전히 자신을 드리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들이 그분처럼 후히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주다(Give)”는 단어는 성경에 1500번 이상 사용되었습니다. 성경에서 이처럼 빈번하게 사용된 단어의 용례는 그리 많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크리스차니티의 핵심은 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이 예수님과 바울의 말을 살펴보면 아주 흥미 있는 차이를 발견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헌금의 양 보다는 헌금에 대한 동기를 훨씬 중요하게 생각하신 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예수님은 얼마큼을 헌금하느냐 보다는 우리가 헌금하는 이유가 무엇인지에 대하여 훨씬 관심을 보이신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양보다는 질에 관심이 있으신 분입니다. 예수님은 헌금의 자세가 헌금의 양보다 훨씬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하나님은 너희가 올바른 자세로 헌금하지 않는 다면 차라리 헌금하지 말라고 말하십니다. 왜냐하면 억지로 하는 헌금은 아무런 보상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성도들의 책임이라고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헌금은 책임 그 이상의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은 헌금은 성도들에게 주어진 하나의 기회라는 것입니다. 저는 왜 성경이 우리들에게 후히 헌금하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는지 그 이유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거기에는 세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이 세 가지 이유를 성도여러분이 분명하게 이해하신다면 성도 여러분들의 청기기 삶(헌금을 드리는 삶)에 어떠한 압력이나 죄책감 같은 것은 자리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성경은 세 가지 측면에서 헌금이 하나님을 향한 성도들의 반응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첫째: 과거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둘째: 지금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신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셋째: 미래에 하나님께서 나에게 베푸실 은혜에 대한 나의 반응입니다.

 

이 세 가지가 저와 여러분이 헌금을 드리는 세 가지 이유입니다. 다른 이유가 있기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무엇을 얻기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나 자신을 위해서 헌금하는 것이 아닙니다. 명예나 명성을 얻을 목적으로 헌금하는 것도 아닙니다. 드리지 않으면 죄의식에 사로잡히기 때문에 헌금하는 것도 물론 아닙니다.

 

고린도후서 8장과 9장은 헌금에 대하여 말씀하는 성경장입니다. 그래서 헌금장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헌금에 대하여 성도여러분과 고린도후서를 함께 나눌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기쁘고 감사한지 모릅니다. 헌금에 대하여 제가 알고 있는 한 가지 분명한 것은 헌금에 대한 결과입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 기쁨으로 충만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의 삶 가운데에서 하나님께 드려지는 헌금은 하나님이 주시는 놀라운 축복으로 우리들에게 돌아오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헌금에 대하여 한 가지 해결해야만 할 문제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드림에 대하여 부정적인 반응을 보이거나 흡족한 마음으로 헌금하는 일에 참여하지 못하는 이유에 관한 문제입니다. 가장 첫째 되는 이유는 모든 사람들이 내 것이라는 생각에 사로잡혀있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내 것이라는 생각에 완전히 사로잡혀있습니다. 즉 내 것인데 드려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오늘 저는 이 문제에 대한 대답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이 가난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이 필요하시기 때문이 아닙니다. 우리들이 가난해 지기를 원해서도 아닙니다. 다만 하나님이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이유들을 주시기 원하시기 때문입니까?

 

먼저 고린도후서 8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오직 너희는 믿음과 말과 지식과 모든 간절함과 우리를 사랑하는 이 모든 일에 풍성한 것같이 이 은혜에도 풍성하게 할찌니라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드리는 삶, 사랑, 지식 가운데에서 성숙한 신앙인으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이 드리는 삶을 통해서 성장하기를 원하십니다.

 

1. 헌금은 과거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헌금이 과거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는 것은 드림의 첫 번째 이유인 동시에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헌금은 어제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도들의 헌금에 대한 가장 큰 동기부여가 되는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9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먼저 하나님은 성도 여러분들이 죄의식이나 어떤 부담감 때문에 헌금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또한 기쁨으로 드리는 성도들의 헌물은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의 필요를 채워주기 위해서 뿐만 아니라, 모든 영역에 있어서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감사가 넘치게 하려 하심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바로 지금까지 주신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우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소유는 그 뿌리와 기초를 하나님께 두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우리의 재능과 능력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모든 자연적 요소들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의 주인이며 모든 것의 근본이 되십니다. 즉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하나님이 먼저 우리에게 그 분의 것을 허락하셨기 때문입니다.

 

고린도후서 89을 보시겠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부요하신 자로서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그의 가난함을 인하여 너희로 부요케 하려 하심이니라 하나님은 자신이 먼저 우리에게 주셨기에 우리도 하나님께 드려야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너희가 값없이 거저 받았으니 값없이 다른 사람에게 돌려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들은 가족이나 친구 가운데 생일이나 기념일을 맞이하면 선물을 준비할 것입니다. 선물을 주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대방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에게 감사한 마음이 있기 때문입니다. 누군가에게 선물을 주는 것은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가장 일반적인 행위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의 일부를 드릴 때, 우리는 하나님을 향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의 일부를 드리는 것은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사랑합니다.” “하나님! 나의 마음이 항상 당신을 향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당신이 행하신 모든 일에 무한히 감사드립니다.”

 

고린도후서 88에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

하나님은 우리의 드림이 그 분을 향한 우리들의 사랑을 증명하는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우리들이 어떠한 말을 하는가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인생에 대한 우리의 생각이 드러나는 것입니다. 헌금을 드리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들이 부담감 때문이 아니라 우리들에게 베푸신 하나님의 은혜와 축복에 감사를 표현하려는 것입니다.

 

2. 헌금은 현재 삶의 동기와 우선순위를 점검하게 합니다.

 

헌금은 현재의 삶 가운데 나의 드림에 대한 동기를 다시 살펴보도록 우리를 돕는 역할을 합니다. 헌금은 자신이 필요로 하는 것들이나 내 자신이란 범위를 넘어 그 이면을 보도록 우리들을 돕게 됩니다.

 

본능적으로 사람은 자기중심적인 존재입니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나를 위한 것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오직 자기 자신만을 바라보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정기적으로, 우리의 가치관에 대하여 점검할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들의 행위에 대한 동기가 무엇인지, 그리고 삶의 우선순위가 무엇인지 살펴보아야만 합니다. 내가 과연 지금 무엇을 위해 살고 있는지, 내 자신만을 위해 살고 있는지, 아니면 다른 누군가를 위해 살아가는지, 뒤돌아보아야 할 필요성이 있는 것입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나 자신을 돌아보도록 만드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해 있다는 사실을 다시 일깨워주게 만드는 역할을 합니다. 저에게 있어서 헌금은 나는 그저 하나님의 관리자로 세움을 받아다는 사실을 깨닫도록 도와줍니다. 헌금은 축복해 주신 과거에 대한 나의 감사의 표현 일 뿐만 아니라, 지금 내 삶에 있어서 나의 우선순위가 무엇이며, 내가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분명히 알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내가 하나님께 드리는 동기가 무엇인지 살펴보도록 나에게 기회를 제공해 줍니다.

 

우리가 드리는 헌금에 대한 두 번째 이유를 성경은 이기심을 막기 위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말씀드리면, 헌금은 균형 잡힌 우선순위를 유지하도록 성도여러분들을 도와줍니다. 신명기 14:23은 십일조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십일조의 목적은 하나님을 제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마태복음 6:33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의 우선순위를 제자리에 돌려놓으시기를 바랍니다.

 

저는 아내와 결혼한 후, 맨 처음으로 결심한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어떠한 일이 있어도 우리의 삶에서 하나님을 가장 우선순위에 두겠다는 결단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분은 우리 인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분이며 첫째가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저는 십일조란 개념을 이해하기 위해서 애썼던 경험이 있었습니다. 십일조는 우리가 만든 소득의 10분의 1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저는 하나님! 당신은 정말 이 10%를 저보다 더 필요로 하십니까? 라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저에게 이렇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너는 지금 핵심을 놓치고 있다. 나는 너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내가 필요로 하는 것은 너의 돈이 아니라 그 돈이 상징하는 것이다. 너의 돈은 너의 인생을 상징한다. 내가 원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돈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그분이 원하시는 것은 물질이 상징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당신입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인생을 원하십니다. 그는 당신이 당신자신을 그에게 온전히 의탁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성도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온전히 이해하신다면 여러분들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께 드림의 삶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이 사실이 헌금에 대한 바울의 가르침이었습니다. 바울은 아낌없이 그리고 큰마음으로 베푸는 신자들을 자랑으로 여겼습니다. 고린도후서 8:5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우리의 바라던 것 뿐 아니라 저희가 먼저 자신을 주께 드리고 또 하나님 뜻을 좇아 우리에게 주었도다.”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이 같은 행위는 정당하고 옳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드림에 대한 아주 중요한 순서와 원리를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그들은 그들 자신을, 즉 그들의 인생을 하나님께 드렸습니다. 그러고 나서 그들은 그들의 헌금을 다른 사람들을 돕기 위해 큰마음으로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이것이 올바른 순서입니다. 이것이 올바른 우선순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내가 너의 인생을 가지고 있지 않다면 너는 나에게 헌금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염려조차 할 필요가 없다. 나는 너의 돈이 필요한 것이 아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물질을 필요로 하시기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자신들의 필요 때문에 헌금을 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하나님께 헌금을 드림으로 우리들은 이기주의로부터 벋어날 수 있게 되기 때문입니다. 헌금은 우리들이 스쿠루지가 되는 것을 막아주고 자기중심적인 삶에 빠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우리가 마치 하나님인양 생각하는 우를 범하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들은 왜 드림의 삶을 살아야만 하는 것입니까? 우리들의 죄 때문에 헌금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눈치나 무언의 압력 때문도 아닙니다. 우리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어려운 일들을 피하기 위한 방편도 아닙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는 이유는 첫째로 우리가 받은 과거의 축복에 대하여 감사함을 표현하는 것이며 둘째로 현재 우리들이 살아가는 삶의 동기가 무엇인지 돌아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삶과 행위들에 대한 동기를 돌아보는 것은 인생의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울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줍니다. 이것은 올바른 우선순위를 세우는데 도움을 주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 우리들에게 헌금의 삶을 살도록 요구하시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 16:1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청지기적 직무와 영성은 불가분의 관계입니다. 이 둘은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게 됩니다.

 

저는 왜 자신이 성장하지 않는지 이해하지 못하고 있는 많은 크리스천들, 한 번도 기도의 응답을 받지 못한 사람들, 자신들의 삶에 어떠한 변화를 경험하지 못한 사람들 그리고 물질적인 문제와 잘못된 습관이나 행동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수많은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어 보았습니다. 이 모든 것의 근본적인 문제는 누가 나를 소유하고 있는가? 하는 문제와 직결됩니다. 그리고 그것은 청지기 삶을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청지기 삶은 주권에 대한 문제입니다. 청지기 삶은 예수 그리스도여! 모든 것의 주가 되옵소서-시간, , 물질, 그리고 모든 것....”

 

그러므로 첫째로 우리들은 하나님이 베푸신 과거의 은혜에 감사하기 위해서 헌금을 드리며 둘째로 우리들 행위에 대한 동기를 확인하기 위해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여금 온당한 길을 가도록 도와주며 유리를 균형 있는 크리스천이 되도록 도와줍니다.

 

3. 헌금은 미래에 대한 보다 큰 기대를 허락합니다.

 

헌금은 세 가지 영역의 행위입니다. 과거 하나님의 축복에 대한 감사함을 표현하는 행위입니다. 현재 나의 행위에 대한 동기와 우선순위에 대한 균형을 유지하도록 도와줍니다. 그리고 헌금은 미래에 대한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는 행위입니다.

 

고린도후서9:6에서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이 가르치고 있습니다. 이것이 곧 적게 심는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바울은 농사의 비유를 들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농부가 들판에 나가서 많은 양의 씨를 뿌리면 가을에 많은 수확물을 얻게 되는 것과 아주 똑같다는 말입니다. 만약에 당신이 아주 적은 양의 씨를 뿌린 다면 당신이 예상할 수 있는 수확이 얼마나 되겠습니까? 물론 적은 양의 수확을 얻게 될 것입니다. 당신이 씨를 풍부하게 뿌리면 당신은 풍부한 양을 수확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성경이 가르치는 기본원리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는 뿌린 만큼 수확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부족(또는 인색)하게 씨를 뿌리면 당신은 부족한 양을 수확하게 될 것입니다.

 

헌금은 우리의 믿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헌금은 마치 한 알의 씨를 심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다. 이것은 예금과도 같은 것입니다. 통장에 돈을 넣지 않으면 찾을 것도 없는 것입니다. 헌금은 씨를 심는 것입니다. 헌금은 미래를 위해서 투자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보물들을 쌓아두지 말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천국에 보물들을 쌓아놓을 것을 가르치셨습니다. 성도여러분 미래를 위해 투자하십시오. 그렇다면 미래를 위해서 어떻게 투자를 할 수 있습니까? 간단합니다. 당신이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삶을 사는 것이 당신의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입니다.

 

내가 헌금을 할 때 나는 매번 미래를 위해 투자하는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잠언 19:17 말씀을 하신 이유입니다. 가난한 자를 불쌍히 여기는 것은 여호와께 꾸이는 것이니 그 선행을 갚아 주시리라.” 하나님께서는 나는 네가 헌금하는 것이 그저 과거에 대한 감사함과 현재의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만이 아니라고 본다. 나는 헌금은 미래를 위한 투자라고 본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성경은 우리의 선한 행위는 그 것이 무엇이든지 보상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제공된 냉수 한잔도 하나님께서는 상으로 갚아주십니다. 이것이 천국에 보물을 쌓아놓는 방법입니다.

 

우리들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보다 더 크고 많은 것을 돌려드릴 수는 없습니다. 그분은 우리보다 훨씬 더 큰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더 많은 것으로 그분께 드릴수록 그분은 언제나 우리가 드린 것보다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돌려주십니다.

 

말라기서는 십일조에 대해서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3:10)”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들은 이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있습니까? 하나님은 말라기서에서 그것으로(십일조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모든 말씀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은, 누구든지 적게 심으면 적게 거둘 것이며, 누구든지 많이 심으면 많이 거두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이것은 다른 말로 이렇게 말씀드릴 수 있습니다. 당신의 헌금은 당신의 인생에 하나님이 어떻게 간섭하시는지를 결정하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청지기 직분에 대한 가장 기초적인 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심는 만큼 거둔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삶에 어떻게 관여하시느냐는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께 드리느냐에 달려있는 것이기도 합니다.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우리의 인생에 무엇을 행하시기를 기대하십니까? 여러분들은 하나님께서 얼마만큼 우리의 인생을 축복해 주시기를 바라십니까? 당신은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여러분의 삶에 역사하기를 기대하십니까? 당신은 지금 얼마만큼 하나님을 믿고 그 말씀에 순종하고 있습니까? 만약 당신이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원하신다면, 만약 당신이 얼마만큼 하나님께서 당신 미래의 삶에 역사하실는지 알고 싶다면 하나님을 향한 당신의 드림 즉 헌금 생활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우리가 심은 만큼 거둔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풍족한 삶은 풍족한 드림에서부터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충동적인 감정으로 드리는 것은 옳지 못한 행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죄책감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것도 잘못된 행위입니다. 다른 사람들의 눈 때문에 헌금을 드리는 행위도 올바른 자세가 아닙니다.

 

우리들은 감사의 표현으로 헌금을 드리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에 있어서 하나님이 최우선 순위에 있음을 나타내는 행위이며 다음과 같은 우리들의 믿음을 표현하는 행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축복해 주실 것을 믿기에, 나는 그분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릴 것이다.” 하나님은 가장 좋은 것으로 드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행위는 믿음의 표현이기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무엇을 받치든지 너를 향한 나의 축복보다 더할 수는 없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성경 속에 나타난 위대한 약속들이 드림과 관련되어 나타나는 이유입니다. 누가복음 6:38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여기에서 말하는 주체가 누구입니까? 텔레비전에 나오는 어떤 설교자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그분의 약속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길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이러한 약속이 우리로 하여금 때로는 약속헌금을 하도록 하게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약속을 결단하는 것은 바로 믿음의 행위인 것입니다. 왜냐하면 약속에는 언제나 위험성이 내제되어있습니다. 약속은 지키지 못할 경우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럴 때, 믿음이 필요한 것입니다. 믿음이 우리로 하여금 이 약속을 이행하도록 힘을 주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항상 약속을 지킬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수많은 약속들을 하며 살아갑니다. 여러분들은 약속을 하지 않고 인생을 살아갈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학교에서, 결혼식에서, 일터에서, 약속을 하며 살아갑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의 약속은 마치 구속당한다는 느낌을 가지게 됩니다. 우리는 모든 분야에서 금전적인 약속을 하며 살아가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경제력이 미약하고 불안정하다는 이유로 물질적 약속을 거부합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20년 건강보험을 계약하고, 3년 할부로 자동차를 계약하며, 신용카드를 사용합니다.

 

이와 같은 우리들의 삶에 대하여 솔직히 말하면 나는 집과 자동차 그리고 다른 모든 금전거래에 대해서는 지불할 수 있는 경제력과 신용이 있지만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킬 수 있는지는 확신할 수 없다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이중적인 행위는 그 타당성을 인정할 수 없는 것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종류의 헌금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성적 헌금과 계시에 의한 헌금입니다. 이 둘 사이에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이성에 의한 헌금은 집에 돌아가서 당신이 가지고 있는 재정적 상황을 면밀히 검토한 다음 이렇게 말합니다. “이것이 내가 드릴 수 있는 최선의 액수이다계시에 의한 기부는 집에 돌아가서 당신은 이렇게 기도합니다. “주님 당신은 제가 얼마만큼을 드리기 원하십니까? 저는 당신이 원하시는 그 만큼을 헌금하기 원합니다. 그리고 그 액수를 드릴 수 있도록 주께서 힘을 공급해 주실 것을 기대합니다.” 성도여러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신앙으로 드리는 것이 최상의 형태입니다.

 

사람들은 나는 빚을 많이 졌습니다. 나는 다른 사람을 위해 헌금할 여유가 없습니다.”라고 말을 합니다. 저도 한 때는 그렇게 말한 경험이 있습니다. “하나님 저는 물질적 자비를 베풀 수 없습니다. 저는 빚이 있습니다.” 그 때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물질적 도움을 줄만한 여유가 없느냐? 그러면 너의 삶은 나의 복을 필요로 한다. 내가 너에게 복을 주마.”

 

예수님은 한 과부에 관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그분은 성전에 앉아 헌금을 하고 있는 사람들을 보고 있었습니다. 모든 부자들이 와서 많은 액수의 헌금을 연보 궤에 넣었습니다. 그리고 과부가 와서 단 두 개의 동전을 넣었습니다. 그 광경을 목격하신 예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이 여인은 모든 사람들보다 많은 것을 드렸도다. 그녀는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을 드렸느니라.” 그녀는 믿음으로 드린 것입니다.

 

당신이 실제로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의 양 또는 약속 헌금의 정도는 당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헌금의 양에 대하여 여러분에게 말할 어떤 자격도 없습니다. 그것은 극히 개인적인 문제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성급하게 결정해야하는 문제가 아닙니다. 당신은 그것에 관하여 기도하고, 의논하고, 생각하고, 그리고 기도제목으로 내놓아야 할 문제입니다.

 

고전 16:1-2에서 바울은 우리에게 헌금의 특징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이 원하실 것이라고 생각했던 방법과는 완전히 다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헌금은 다음과 같은 세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도를 위하는 연보에 대하여는 내가 갈라디아 교회들에게 명한 것같이 너희도 그렇게 하라 매주일 첫날에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 내가 갈 때에 연보를 하지 않게 하라.”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당신들이 미리 연보를 따로 모아 놓기를 원합니다. 내가 거기에 갔을 때에 바로 수거하여 재난과 큰 위기에 있는 예루살렘의 사람들에게 가져가기를 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들에게 도움을 제공하기를 원합니다. 여기에서 바울은 물질을 드리는 것에 대하여 세 가지 중요한 사실을 말하고 있습니다.

 

첫째: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매주일 첫날에즉 일주일에 한 번씩 거두어 저축하라고 말합니다. 규칙적이고 체계적으로 하고 즉흥적으로 또는 불규칙적으로 하지 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마치 당신이 하나님에게 팁을 주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잘못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그들이 하나님에게 드리는 것 도다 더 많은 돈을 여종업원에게 팁으로 줍니다(음식값의 15%를 팁으로 주는 것이 서양에서의 통상적인 관례입니다). “매주일 첫날에한번 규칙적으로 그리고 체계적으로 하나님께 드리시기 바랍니다.

 

둘째: 계획적으로 드려야 합니다.

 

순간적인 감정에 이끌리어 헌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성경은 너희 각 사람이 이를 얻은 대로 저축하여 두어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미리 계획하고 준비하여 예물을 드려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다른 사람이 성도여러분의 감정을 자극하여 충동적이고 성급하게 결단하지 않도록 주의 하십시오.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하고 계획한 후 결단하고 행동으로 실행하는 것이 성서적인 방법입니다.

 

아내와 나는 십일조에 대하여 특별하게 관리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와 헌금을 따로 떼어두어서 다른 돈과 섞이지 않도록 합니다. 계획적이고 규칙적인 십일조가 되도록 하기 위한 방법입니다.

 

셋째: 헌금은 수입에 비례해야 합니다.

 

성경은 헌금에 대하여 이를 얻은 대로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많은 축복을 주셨습니까? 그렇다면 당신은 그에 상응하는 물질을 하나님께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적게 축복해 주셨습니까? 그러면 적게 드리실 수 있습니다. 헌금은 수입의 정도에 합당하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신명기16:17에는 각 사람이 네 하나님 여호와의 주신 복을 따라 그 힘대로 물건을 드릴찌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원칙이 십일조입니다. 이 원리가 십일조의 모든 것입니다. 십일조는 헌금의 출발점입니다.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의 10%를 하나님께 돌려 드리는 것입니다. 만약 여러분들 가운데 지금까지 이러한 신앙적 행위를 이행하지 못하시는 분들이 있다면 다시 한 번 이 문제에 대하여 하나님 앞에서 깊이 생각해 보시는 기회를 만드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 문제에 대하여 기도하십시오. 그러나 우리들 가운데는 지금까지 지속적으로 십일조를 드려온 성도 여러분들이 있습니다. 그런 분들에게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희가 풍성히 주는 삶 안에서 자라가기를 원하노라.” 바울이 말한 것처럼, 저와 성도여러분은 십일조 그 이상의 헌신을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

 

지금까지의 말씀을 요약해 보겠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아주 간단합니다. 그것은 결코 힘든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텔레비전이나 여러 가지 방법들을 통해서 헌금을 요청하는 사례들을 보아왔습니다. 헌금하는 것은 어떤 굉장한 기술을 요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이유입니다. 우리는 왜 하나님께 헌금을 드려야만 합니까?

 

첫째,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지금까지 축복해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감사를 표현하기 위해서 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당신은 우리를 축복해 주셨습니다. 여기 당신에게 일부를 돌려 드립니다. 저는 이 모든 것이 처음부터 당신으로부터 왔음을 인정합니다.” 우리는 감사함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주인께 돌려드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항상 기억해야만 하는 첫 번째 사실입니다.

 

둘째, 우리가 드리는 헌금은 현재 삶의 동기와 우선순위를 되돌아 보기위한 것입니다. 성도여러분이 하나님께 헌금을 드리는 것은 우리 삶 가운데 하나님이 첫 번째임을 상기시켜 줍니다. 헌금은 이기심으로부터 벋어나도록 도와주며 다른 사람들을 생각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우리가 헌금을 드리기 위하여 계획하고 기도하며 준비할 때 그것은 삶에 있어서 물질 이상의 가치가 있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온전히 우리에게 돌아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물질을 돌려드리는 것은 우리는 단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의 관리자에 불과하다는 것을 상기시켜 줍니다. 모든 것의 주인이 하나님이심을 인정하는 행위입니다.

 

셋째, 물질을 드리는 것에는 미래를 위한 요소들이 있습니다. 헌금은 성도들로 하여금 더 큰 소망을 소유하도록 만들어 줍니다. 하나님이 당신을 위하여 어떠한 일을 행하시기 원하십니까? 당신의 믿음을 보여줄 수 있는 가장 실질적인 방법은 당신의 헌금과 물질관리입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은 믿음의 행동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하늘에 보물을 쌓아 두는 것입니다. 그것은 심고 거두는 것입니다. 저축을 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행위입니다.

 

저는 여기에 모인 모든 성도여러분들이 겸손함과 믿음으로 다음과 같은 질문 앞에 서시기를 바랍니다.

 

* 나는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있는가?

* 나는 얼마나 하나님께 감사하고 있는가?

* 나의 우선순위는 어디에 있는가?

* 나는 규칙적이고 계획적이며 하나님이 허락하신 축복에 비례하여 물질을 돌려드리고 있는가? 이 문제들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 서십시오. 그리고 깊이 있는 대화를 나누십시오.

 

여러분들 가운데 어떤 분들은 십일조를 드리기로 작정하실 수 있습니다. 어떤 분들은 그 이상을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일어날지 저로서는 아무것도 알 수 없습니다. 여러분들이 어떠한 결정을 하시든지 그것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에서 행해지는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의 결단에 대하여 괴로워하지 마라, 그리고 그것에 관하여 걱정하지 마라. 내가 원하는 것은 너의 물질이 아니다. 내가 원하는 것은 네 자신과 물질이 대변하는 너의 헌신과 신앙이다.”

 

 

 

하나님의 투자 전(16:1-13)

 

 

오늘 저는 성경이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투자 전략에 대하여 살펴보기를 원합니다. 성경에는 여러 비유들이 언급되고 있습니다. 그 비유 가운데 절반 이상이 금전과 물질의 소유에 관하여 언급하고 있은 비유입니다. 마태복음, 마가복음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여섯 구절 가운데 한 구절이 금전이나 또는 물질의 소유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천국에 대한 것보다 물질에 대하여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지옥에 대한 것보다 물질에 대하여 더 많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이는 참으로 흥미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왜 물질에 대하여 이처럼 강조하셨을까요?

 

저는 물질이 우리의 삶에 미치는 영향력을 하나님이 아시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은 돈을 벌기 위해서 대부분의 시간을 사용합니다. 하나님은 그런 우리들에게 물질을 지혜롭게 사용하는 방법을 가르치실 필요가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있는 시대입니다. 금전적인 스트레스가 이혼사유가 되는 시대입니다. 최근 미국의 한 연구조사에 의하면 이혼한 사람들의 56%가 금전적인 압박 때문이라는 조사가 발표 되었을 정도입니다.

 

여러분 가운데 우리가 물질을 올바로 관리하지 않으면 물질이 우리를 주관하게 된다는 사실을 경험하신 분들이 있습니까? 물질이 우리를 주관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이상의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물질은 하나의 시험이라는 것입니다. 물질은 영적인 시험입니다.

 

누가복음 1611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

 

성경에는 여러 비유들이 나타납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비유의 본 의미를 곡해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비유 또한 우리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 비유 가운데 하나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비유의 말씀을 읽을 때, 예수님께서 마치 거짓말을 종용하는 것으로 오해합니다. 그러나 이는 사실과는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혜롭게 간접적으로 그리고 완곡하게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본문의 비유를 이해하기 위해서 우리는 누구에게 말하고 있는 것인가를 파악해야만 할 때가 있습니다.

누가복음 1614에 보면 예수님은 지금 바리새인들을 향해서 말씀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14에서 이렇게 증거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돈을 좋아하는 지라

 

본문의 비유를 이해하는데 8절은 열쇠를 제공합니다. 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믿는 성도들을 향하여 하신 말씀입니다. 무엇을 의미하고 계신 것입니까? 세상에는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는 성도들보다 더욱 지혜롭게 물질을 관리합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의 돈에 대한 가치관은 비록 우리와는 다르지만, 우리는 그들로부터 물질을 사용하는 방법을 배울 수 있습니다.

먼저 지혜로운 청지기를 통해서 주는 교훈을 살펴보겠습니다.

 

I. 지혜로운 청기기(1-8)

 

예수님은 본문의 청지기와 같이 주인을 속이는 사람이 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라 본문에 나타난 청지기의 행위를 통해서 우리가 배울 것이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지혜로운 청지기 이야기입니다.

 

누가복음 161절과 2을 보시겠습니다.

“1 또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어떤 부자에게 청지기가 있는데 그가 주인의 소유를 허비한 다는 말이 그 주인에게 들린지라 2 주인이 저를 불러 가로되 내가 네게 대하여 들은 이 말이 어찜이뇨 네 보던 일을 셈하라 청지기 사무를 계속하지 못하리라 하니

여기에서 청기기(manager)’ 란 단어에 밑줄을 그으십시오.

 

이 이야기는 상징적 의미를 포함하고 있는 비유입니다. 성경은 세상 만물의 소유주가 하나님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저나 여러분들이 진정으로 소유하는 것은 하나도 없는 것입니다. 저나 여러분은 이것들을 60-90년 정도 사용하는 사용자일 뿐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사용한 다음에는 다른 사람에게 넘겨지게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의 모든 것은 그 분이 만드셨기 때문에 하나님의 소유물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지어 이 세상의 관리자로 삼으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청기기와 관리자는 같은 의미의 단어입니다. 하나님께서 저와 여러분을 관리자로 이 세상에 보내셨습니다. 그러므로 저와 여러분은 청기기이며 관리자인 것입니다.

 

성경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청지기처럼 우리는 때가되면 하나님 앞에서 셈을 해야만 한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언제가 저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에서 나에게 맡겨준 물질을 어떻게 사용했는지 하나님은 내게 물으실 것입니다. 이것이 마지막 시험이며 최후의 시험이 될 것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청기기는 부정을 행했습니다(1). 그는 자신의 부정으로 인하여 쫓겨날 것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한 가지 일을 꾸몄습니다. 그리고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어떤 사람에게는 50%, 다른 사람에게는 20%, 우리는 그 이유를 알 수 없지만 이 청지기는 그들의 빚을 일방적으로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지기가 사람들에게 빗을 탕감해준 이유가 무엇입니까? 성경은 그 이유를 4절에 말하고 있습니다.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할 것을 기대했기 때문입니다. 아마 사람들은 청지기가 자신들의 빚을 탕감해 준 사실을 기억할 것입니다. 사람들이 만약 이 청지기에게 도움을 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이 청지기는 사람들에게 협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사실 이러한 청지기의 행동은 자신의 주인을 속이는 행위였습니다. 사람들은 청지기의 계획에 공범자가 된 셈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주인이 이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청지기에게 그 이유에 대하여 해명할 것을 요구하지 않고 있습니다.

 

8을 보시기 바랍니다. 주인이 이 옳지 않은 청지기가 일을 지혜 있게 하였으므로 칭찬하였으니 이 세대의 아들들이 자기 시대에 있어서는 빛의 아들들보다 더 지혜로움이니라 주인은 청지기의 부정에 대하여 언급하기 보다는 그의 행동이 지혜롭다고 칭찬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지기의 행위를 지혜롭다고 말한 이유가 무엇입니까? 우리는 세 가지 이유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그는 앞을 내다보았습니다.

3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청지기가 속으로 이르되 주인이 내 직분을 빼앗으니 내가 무엇을 할꼬 땅을 파자니 힘이 없고 빌어먹자니 부끄럽구나 그는 앞으로의 일에 대하여 생각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지금 이 땅에서의 삶이 전부라고 생각하고 살아갑니다. 그들은 미래의 삶에 대하여 전혀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계획도 없습니다. 그들은 그저 현재 이 땅에서의 삶에 안주하고 살아갑니다.

 

둘째: 그는 앞서 계획했습니다.

 

4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할 일을 알았도다 이렇게 하면 직분을 빼앗긴 후에 저희가 나를 자기 집으로 영접하리라 하고 청지기는 계획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물질에 대하여 앞서 계획하고 생활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앞을 내다보지 않고 생활합니다. 그들은 앞을 내다보고 앞서 계획하지 않습니다.

 

셋째: 그는 즉각적으로 행동했습니다.

5-6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주인에게 빚진 자를 낱낱이 불러다가 먼저 온 자에게 이르되 네가 내 주인에게 얼마나 졌느뇨  말하되 기름 백 말이니이다 가로되 여기 네 증서를 가지고 빨리 앉아 오십이라 쓰라 하고 6절에서 빨리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그는 주인에게 빚진 자들을 불렀습니다. 그리고 즉각적으로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자신이 청지기로 있는 동안 재빠르게 행동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신자인 우리들에게 이렇게 교훈하십니다. 이 땅에서의 삶은 순간에 지나지 않는다. 너희 물질로 청지기가 행한 것 같이 지혜롭게 행하라. 앞의 일을 생각하고, 앞서 계획하며, 그리고 기회가 주어졌을 때 즉각적으로 행하라.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투자 전략입니다.

 

이와 같은 상황에, 예수님은 물질에 대하여 네 가지 교훈을 말씀하십니다. 다행스럽게도, 예수님은 우리에게 본문 9-13에서 비유를 해석해 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드림의 목적, 삶의 방식, 축복의 원리 그리고 우선순위에 대한 교훈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물질을 관리하기 원한다면 예수님은 이 네 가지를 행동으로 실천하라고 권면하십니다.

 

 

II. 물질에 대한 네 가지 교훈

 

1. 드림의 목적에 대한 교훈입니다.

 

본문 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불의의 재물로 친구를 사귀라 그리하면 없어질 때에 저희가 영원한 처소로 너희를 영접하리라놀랍지 않습니까? 세상의 물질을 친구를 사귀는 일에 사용하라 그러면 당신이 하늘나라에 이를 때, 그들이 당신을 환영할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이 본문이 말하고 있는 핵심적 요지가 무엇입니까? 이 말씀은 물질로 천국을 얻으라는 말이 아닙니다. 물질로 구원을 사라는 말도 아닙니다. 천국에 들어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뇌물을 사용하라는 말도 아닙니다. 구원은 값없이 주어지는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성경은 분명히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이 사실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기만 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본문이 의미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나의 물질을 가장 유용하게 사용하는 방법은 영혼 구원하는 일에 물질을 사용하는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이것이야말로 나의 물질을 가장 값지게 사용하는 방법입니다. 이것은 그 어떠한 일과 비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영혼 구원하는 일에 투자하십시오. 이것이야말로 영원히 없어지지 않는 투자입니다.

 

우리가 사역이나, 하나님의 일을 위해 우리가 물질을 드릴 때, 두 가지 일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첫째 나는 사람들이 주님과 교제하도록 주님 앞으로 나아오도록 돕는 것이며, 이 땅에서 뿐만 아니라 하늘나라에서도 그들과 영원히 친구가 되는 것입니다.

 

둘째로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영원한 상급을 받게 됩니다. 이 세상은 지나가는 순간에 불과합니다. 하늘나라는 영원한 곳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물질을 가장 유용하고 값지게 사용하는 것은 영원한 곳에 투자하는 것입니다. 일시적인 소유물을 영원한 곳을 위하여 사용하는 지혜로운 성도들이 되시기를 기원합니다.

 

이와 관련된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마태복음 620-21입니다.오직 너희를 위하여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저기는 좀이나 동록이 해하지 못하며 도적이 구멍을 뚫지도 못하고 도적질도 못하느니라 21 네 보물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이 땅에서 내가 무엇을 취하든지 그것은 결국 썩든지, 도둑맞든지 아니면 없어진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영원한 것이 없습니다. 만약 내가 새 차를 구입했다고 해보십시오. 결국 페인트가 벗겨지며, 부딪치고 녹슬게 될 것입니다. 내가 만약 옷을 구입했다고 합시다. 결국 낡아서 버리는 날이 오게 됩니다. 세상 것은 영원한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이것이 가장 중요한 핵심입니다. 세상 것을 위해서 여러분의 물질을 모두 사용하지 마십시오.

 

그러나 사람은 영원히 존재합니다. 사람들은 지옥 아니면 천국 둘 가운데 한 곳에서 영원히 존재할 것입니다. 나의 시간과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내가 어느 곳에 영원한 시간을 보낼지 결정됩니다.

풍자만화에서 본 이야기입니다. 한 남자가 천국에 갔습니다. 주변에 수많은 저택들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천사는 그 남자를 자루에 집어넣었습니다. 그 남자는 어떻게 저 많은 집들을 놔두고 나에게 자루를 줄 수 있냐고물었습니다. 그 때 천사는 당신이 우리에게 보낸 돈 전부로 우리가 준비한 것이 이것입니다.” 라고 말했습니다.

 

성경은 재물을 하늘나라에 쌓아두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어떻게 이 일을 할 수 있습니까? 전도하는 일에 물질을 투자하십시오. 그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하늘나라로 인도하는 일에 물질이 사용되게 하십시오. 이것은 하늘나라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여러분들이 이 땅에 살아있는 동안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목적은 궁극적으로 영혼을 구원하기 위해서입니다.

 

2. 삶의 방식에 대한 교훈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물질을 저축하고, 사용하는 일에 대하여 우리 스스로가 책임질 것을 원하십니다. 본문 10을 보시겠습니다. 지극히 작은 것에 충성된 자는 큰 것에도 충성되고 지극히 작은 것에 불의한 자는 큰 것에도 불의하니라

 

만약 내가 지금 가지고 있는 것에 충실 한다면,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우리에게 맡길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만약 내가 작은 일에 충성한다면 큰 것에도 충성할 것이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 진리는 우리의 삶 전반에 걸쳐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만약 당신이 적은 달란트를 소유했다면 그것에 충실하십시오. 그것을 발전시키십시오. 하나님은 더 큰 달란트를 주실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저는 하나님께서 모든 사람이 백만장자가 되기를 원하신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문제의 요점은 우리가 어떤 것에든지 충성한다면 성공은 충성하는 곳에서부터 오게 된 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적은일의 관리자로 충성되게 행한다면, 우리는 큰 것을 얻게 된다는 것입니다. 크던지 작던지 맡겨진 일에 충성하는 것이 상을 받게 되는 것입니다. 운동선수에게 물어보십시오, 음악가에게 물어보십시오. 세일즈맨에게 물어보십시오. 전문가에게 물어보십시오. 적은 일에 열심을 내면 놀라운 결과를 얻을 수 있게 된다고 한결같이 말할 것입니다. 당신이 적은 일에 충성하면 하나님은 당신을 위해 큰 것을 준비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적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지금 맡은 일에 충성하십시오.

 

내가 많은 것을 소유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물질을 사용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을 만나보신 경험이 있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그 말을 믿지 않으십니다. 만약 지금 내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충성하지 않는다면 더 많은 것을 소유했다 해서 충성할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3. 축복의 원리에 대한 교훈입니다.

 

본문 11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세상의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참된 부로)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이 말씀을 다른 말로 생각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나는 너를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물질을 사용한다라는 말씀입니다. 저는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이 여기에서 말하는 원리에 대하여 진정으로 이해하고 있지 못하다고 생각합니다.

 

본문에서, 성경은 아주 분명하게 우리에게 교훈하는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소유한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우리의 삶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이 결정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헌금하면 백만장자가 된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이것은 본문을 통해서 예수님이 가르치는 의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본문에서 참된 것참된 부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로또가 아닙니다. 그러나 나의 물질에 대한 관리와 영적 삶과는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것이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물질에 대한 나의 관리와 하나님의 영적 축복과는 직접적으로 연관 있다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크리스천들은 이 원리에 대하여 충분히 이해하지 못하고 신앙생활을 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저는 많은 사람들을 접할 기회가 있습니다. 그 중에는 나는 정말 되는 것이 없습니다. 내 인생은 앞이 보이질 않습니다. 나는 영적으로 공허합니다. 나는 아무리 교회에 출석해도 신앙이 성장하지 않습니다. 내 인생은 너무나 무미건조합니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을 만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을 향한 나의 충고는 항상 동일합니다. “당신은 당신의 물질을 어떻게 관리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사람들이 뭐라고 말하든 그것은 상관없습니다. 그 사람이 무엇을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지, 그 사람이 무엇에 시간을 사용하며, 무엇을 위해 물질을 사용하는가에 나타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일관성이 없는 드림은 일관성이 없는 삶을 가져 준다고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만일 불의한 재물(세상의 재물)에 충성치 아니하면 누가 참된 것(참된 부로)으로 너희에게 맡기겠느냐이것이 축복의 원리입니다. 물질을 얻고, 물질을 사용하며, 물질을 드리는 일에 승리하는 사람을 하나님이 축복해 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 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겠습니다. 그러나 물질만큼은 제외시켜주십시오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물질은 저와 여러분 삶 모든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무에게나 영적인 능력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물질을 통해서 시험하십니다. 그리고 우리를 지속적으로 지켜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를 축복하십니다.

 

4. 우선순위에 대한 교훈입니다.

 

본문 13에서 예수님은 모든 것을 요약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집 하인이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혹 이를 미워하고 저를 사랑하거나 혹 이를 중히 여기고 저를 경히 여길 것임이니라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여러분은 두 명의 주인을 섬겨본 경험이 있으십니까? 두 명의 주인을 섬기는 것이 얼마나 힘겨운 일이지 경험하신 분들이 있으십니까? 동시에 두 주인을 즐겁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아마 스트레스로 불치병에 걸리고 말 것입니다.

 

예수님은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것이 너무나 자명한 사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는 이 말씀에서 다음과 같은 두 가지 교훈을 얻을 수 있습니다.

 

첫째: 우리는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을 선택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선택의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두 주인을 사랑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물질에 대한 문제에 있어서, 그 상황이 아무리 복잡해도 최종적으로 우리는 이 선택 앞에 서게 됩니다. 선택은 매우 간단합니다. 왜냐하면 두 가지 중에 하나를 선택하는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물질 가운데 내가 더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가 하는 선택입니다.

 

우리는 삶에서 가장 사랑하는 것을 선택해야만 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가장 첫 번째 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있게 말찌니라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것이 무엇이든지 나의 시간과 나의 생각과 나의 에너지를 빼앗는 것이 나의 우상이 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에서도 가장 위험한 요소가 물질입니다.

 

둘째: 물질 자체가 나쁜 것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물질은 좋은 것도 아니며 그렇다고 나쁜 것도 아닙니다. 물질은 그저 물질일 뿐입니다. 그러나 물질을 어떻게 사용하고, 물질을 어떻게 모으며, 물질로 무엇을 하느냐에 따라 긍정적일 수도 부정적일 수도 있는 것이 물질입니다. 부자가 되는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 자체에 악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성경에서 위대한 사람들 가운데는 부자였던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욥은 거부였습니다. 솔로몬도 다윗도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나사로도 부유한 사람이었습니다. 아리마데 요셉도 부자였습니다. 물질이나 부가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문제는 우리가 물질을 사랑할 때 시작되는 것이지, 물질자체가 악의 뿌리는 아닙니다. 우리가 물질을 사랑하게 되면 우리는 사람을 이용하게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돈을 사랑한다면 돈은 우리의 우상이 될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돈을 사용 한다면 돈은 우리를 섬기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동시에 하나님과 돈을 위해 살려고 시도한다면 우리의 삶은 완전히 엉망이 되고 말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 가운데 첫 번째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그럴만한 가치를 지니신 분입니다.

 

문제는 우리의 삶 가운데 하나님이 가장 우선순위에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알 수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이 사실을 알 수 있도록 가르쳐주는 성경구절이 있습니다.

 

신명기 1422-23 말씀입니다.

너는 마땅히 매년에 토지소산의 십일조를 드릴 것이며 ------- 네 하나님 여호와 경외하기를 항상 배울 것이니라.”

 

23절 마지막 부분에 대하여 리빙바이블(Living Bible)은 우리가 아주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십일조의 목적은 삶 가운데 항상 하나님을 최우선순위에 놓는 것을 배우게 하는 것이다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십일조는 히브리어로 10을 의미합니다. 10%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의 모든 소득의 10%를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의미가 10일조의 원리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10%가 필요하기 때문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10%를 필요로 하지 않으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가난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물질이 필요한 분이 아닙니다. 우리들의 헌금을 필요로 하는 것이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들은 헌금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은 십일조의 목적을 모든 것이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고백하도록 하기 위함이며, 하나님이 허락지 않으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음을 고백 하도록 하기 위함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우리 삶 가운데 최우선순위에 놓도록 하는 것이 십일조의 목적입니다.

 

결국 이 말은,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면 나는 하나님을 내 삶 가운데 최우선순위에 두고 있습니다.”라고 고백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우리가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위해서 가장 많은 시간을 사용합니다. 그리고 우리들 삶 대부분을 우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얻기 위해서 사용합니다.

 

십일조를 한다는 것이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때때로 십일조를 우리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한 도구로 사용하십니다. 만약 여러분 가운데 지금 물질적으로 어려움 가운데 처해있는 분들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물질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들은 물질적 어려움으로부터 벗어나기 위해서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이러한 하나님의 계획을 따른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두렵게 느껴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분명히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하나님은 그 분의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물질보다 더 많이 다루어진 주제는 없습니다.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믿음으로 하나님께 드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 가장 큰 영적인 수업이며, 영적 능력을 가져다주는 것이며, 기쁨을 가져다주는 것입니다. 소유하는 것 자체가 우리에게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소유물을 사용할 때, 비로소 우리들은 그것으로부터 기쁨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고후 9:6-13)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를 어떻게 채워주신다고 생각하십니까?

저는 오늘 여러분의 인생에서, 여러분을 도와주고, 여러분이 물질을 모으도록 도와주며, 여러분이 재정적 어려움에서 벗어나도록 도와주고, 여러분에게 기쁨을 더해주며, 여러분에게 주님을 향한 사랑을 더욱 깊게 해 주고, 여러분에게 산 증거를 주며, 여러분의 믿음을 견고하게 세워주는 원리에 대하여 말씀드리기를 원합니다.

이 원리는 궁극적으로, 기쁨이 넘치는 교회, 성장하는 교회, 그리고 하나님의 원리 가운데 세우어져가는 교회가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과 함께 나누는 이 원리는 여러분 혼자만 필요한 것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에게도 반드시 가르쳐야 하며 여러분의 친구에게도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그들과 함께 우리의 필요를 채워주시는 하나님의 방법에 대하여 함께 나누시기 바랍니다.

 

빌립보서 4:19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이 땅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절실히 필요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서하심을 따라 우리의 모든 쓸 것을 채워주신 다고 약속하십니다.

 

여기서 모든이란 단어에 주위를 기울이십시오.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요구하는 것 모두를 채워주시기로 약속하셨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요구하는 모든 것을 채워주신다는 말입니다.

 

어떤 분들은 어째서 이 구절이 나에게는 적용되지 않는가? 나도 필요로 하는 것들이 있고, 나도 누구 못지않게 하나님을 사랑하며, 교회에 출석하고, 기도하며, 성경책도 읽는데, 왜 나에게 채워지지 않은 요구들이 있는 것이지. 아마도 하나님은 나를 다른 사람들만큼 사랑하시 않으시나봐라고 생각하실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 나는 너의 모든 요구를 채워 줄 것이다.” 라고 말씀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어째서 이 약속은 우리들 신앙생활에서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어째서 내 삶 가운데 적용되지 않는 것입니까?

 

성경에 언급된 모든 언약 뒤에는 그 언약을 이루기 위한 하나의 전제가 있습니다. 오늘 저는 여러분들에게 나는 너의 모든 요구를 채워 줄 것이다라는 언약의 말씀에 담겨있는 비밀을 밝히는 열쇠를 보여드릴 것입니다. 그 열쇠를 우리는 고린도후서 9장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6절에서 우리는 원리를 발견하게 될 것이며, 7절에서는 진행과정을, 그리고 8절에서는 9:6에 우리는 원리를, 7절에는 진행을, 8절에서는 언약을 재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먼저 이 약속의 원리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I. 원리: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씨를 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일에 대하여 본문 6절에서 말씀하십니다. 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것이 곳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하는 말이로다.” 이 말씀이 제가 오늘 성도 여러분께 전하고자 하는 말씀의 핵심이며 전부입니다. 이것이 뿌리고 거두는 원리이며, 저와 여러분의 인생 모든 범위에서 하나같이 동일하게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에너지, 시간, 재능, , 선물, 그것이 무엇이 되었든 간에 인생에서 우리들은 심은 만큼 거두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삶입니다.

 

 

한 농부가 땅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는 그의 땅을 바라보지만 그곳에 아무런 농작물이 보이지 않습니다. 아무것도 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과연 자기 자신에게 뭐라고 말하겠습니까? 불평 할까요? “나에게는 수확물이 하나도 없어!” 소리치며 불평하고 걱정하고 초초해하고 화를 낼까요?

 

농부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들로 나아가 씨를 뿌리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뿌린 것에 비례하여 수확을 하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100평에 심으면 우리는 100평만큼 수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심는 만큼 거두는 것입니다. 만약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다면, 가장 먼저 당신이 해야 할 일은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빚을 진 두 명의 농부가 있다고 가정해 보겠습니다. 엄청난 빚을 진 첫 번째 사람이 말을 합니다. “나는 씨를 뿌릴만한 여유조차 되지 않아. 그것은 너무 비싸. 나는 그것을 할 만한 여유가 안 돼. 난 그냥 내 씨를 가지고 있겠어.” 둘 가운데 다른 사람이 말을 합니다. “내가 가진 빚으로부터 빠져 나갈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내가 가진 모든 것을 심는 것이야.” 성도 여러분! 우리는 심은 만큼 거두게 됩니다. 이 이야기의 중점은 풍성하게 베푸는 것 입니다. 씨의 양에 따라서 수확하는 양이 결정됩니다.

 

필요를 채우지 못했다고 해서 포기를 하는 것은 너무나 어리석은 행동입니다. 이것은 비논리적입니다. 이사야 558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에 내 생각은 너희 생각과 다르며 내 길은 너희 길과 달라서

 

그렇다면 재정상의 문제를 해결하는 우리들의 방법은 무엇입니까? 돈을 빌려서 사용합니다. 여러분 중에 몇 분이나 시도를 해보셨습니까? 아마도 대부분이 이러한 경험이 있으실 것입니다. 여러분은 TV에서 나오는 광고나 길거리에 붙어있는 현수막을 보셨을 것입니다. 빗진 자들을 위로하고 그들에게 문제를 해결해 줄 것같이 말하는 광고들이 과연 문제를 해결해 줄 수 있습니까? 가령 그들의 도움을 받았다고 해도 그것으로 근본적인 금전문제가 해결된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높은 이자에 이자가 꼬리를 물게 되며 결국 더 큰 빗을 떠안게 되는 결과를 초래합니다.

 

구걸도 해봅니다. 이웃들에게 간곡히 부탁하거나, 가까운 친척에게 빌리거나, 그들의 소유물을 담보로 대출을 받기도합니다.

 

로또에서 당첨되기를 간절히 소원해 봅니다. 그러나 일주일 뒤에는 그 소망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맙니다. 극단적으로 다른 사람 물건에 손을 대기도 합니다. 그리고 어떤 분들은 더 많은 시간 일을 하고 보조 수입을 벌기위해 더 많은 수고를 감당합니다. 이런 것들이 물질적인 문제들을 해결하는 우리들의 방법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구걸하는 것도, 남의 물건에 손을 대는 것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해결책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하나님의 해결책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필요에 대한 해결책은 베푸는 것’, ‘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정말 어처구니없는 해결책이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전혀 논리에 맞지 않으며, 비이성적이라고 말씀하실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그러나 베푸는 것’ ‘주는 것이 하나님의 방법입니다. 하나님은 내 길은 너희 길과 다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방법만이 분명한 해결책입니다. 다른 어느 방법도 필요의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이 될 수 없습니다.

 

누가복음 638에서 예수님은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 곧 후히 되어 누르고 흔들어 넘치도록 하여 너희에게 안겨 주리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도 헤아림을 도로 받을 것이니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제가 말한 것이 아닙니다. 어떤 성공한 선생님의 말도 아닙니다. 어떤 기금을 모으는 사람이 말한 것도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것이니.”

 

성도 여러분!

이것이 심고 거두는 하나님의 원리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나는 베풀며 살기를 원한다. 하나님께서 나의 요구를 다 채워주시면 난 그때부터 베푸는 것을 시작할 것이다,” 라고 말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을 먼저 행하라. 네가 먼저 실천하라라고 말씀하십니다. “너를 채워 줄 것이니 그러면 베풀어라.” 라고 말씀하지 않았습니다. 누가복음 638을 주의 깊게 보십시오. 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줄 것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원리는 아주 공평합니다. 당신은 인생을 풍성하게 살고 싶습니까? 아니면 인색하게 살기를 원하십니까? 풍족하게 심으시겠습니까? 아니면 인색하게 심으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우리가 얼마냐 베푸느냐에 따라서 우리 삶을 향한 하나님의 축복이 결정된다고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원리입니다. 당신이 필요로 하는 것이 있을 때, 당신은 씨를 심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에는 방법이 있습니다. 7절에는 방법에 대하여 언급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방법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

 

II. 진행: 바른 마음가짐으로 베풀어라.

 

하나님께서는 당신이 베풀 때에 양보다는 당신의 마음가짐에 더 관심이 있으십니다. 하나님에게 양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중요한 것은 드리는 사람의 마음과 태도이지 드리는 양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가 얼마만큼 베풀고, 하나님께 드리는가 하는 문제가 아니라 왜 드리는가 하는 문제입니다. 이것은 양의 문제가 아니라 드리는 사람의 질에 관련된 문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네가 만약 돌려받기를 기대하고 드린다면 다음과 같은 네 가지 방법을 따라서 드리라고 말씀하십니다. 고린도후서 9장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1. 하나님이 원하시는 4가지 방법

 

1) 깊이 생각하고 행하십시오.

 

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 대로 할 것이요

이 말씀은 기도하고 면밀히 계획한 다음 심사숙고 끝에 결정하라는 말입니다. 우리들의 헌금은 미리 계획되어져야만 합니다. 미리 생각하고, 심사숙고하여 계획하고, 결단되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 텔레비전을 시청하는 중에, 또는 설교를 듣다가 갑자기 마음이 감동되어서, 순간적으로 지갑을 열거나 재산을 헌납하거나 헌금하는 것은 옳은 행동이 아닙니다. 충동적으로 드려지는 기부금이나 헌금을 하나님은 성숙하지 못한 헌금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도 여러분! 갑작스런 감정의 변화나 강압에 의한 헌금은 자제하십시오. 그리고 깊이 생각하고 미리 계획하며, 마음으로 결정한 물질을 하나님께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적용하는 첫 번째 방법입니다.

 

2) 열심으로 행하십시오.

 

7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찌니

여기에서 인색함으로나라는 말에 주목하십시오. 죄의식 때문에 헌금하는 것은 옳지 않은 일입니다. 헌금하지 않으면 죄를 받을 거야 하는 마음은 잘못된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죄의식 때문에 헌금하려 한다면 오히려 헌금을 하지 않는 편이 유익합니다. 마지못해서 인색함으로 헌금하는 것을 옳은 일이 아닙니다.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 상처를 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인색함으로 드리지 마십시오. 열심히 행하십시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적용하는 두 번째 방법입니다.

 

3) 자원해서 행하십시오.

 

7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억지로 하지 말wl니

우리가 물질을 드리는 것은 하나님의 약속을 얻는 진행과정입니다. 우리교회는 억지로 헌금하도록 성도 여러분들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어떤 기관이든지, 복지단체든지, 어떤 사역이든지, 그곳에서 물질을 강요한다고 느끼신다면 헌금이나 기부를 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이러한 헌금은 보상을 받지 못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강요에 의해서 헌금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들의 물질보다 물질을 드리는 우리들의 마음과 태도를 더욱더 중요하게 생각하십니다. 그러나 자원해서 드리십시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적요하는 세 번째 방법입니다.

 

 

4) 즐거운 마음으로 행하십시오.

 

7 말씀을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즐거운 마음과 기쁜 마음으로 드리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세 가지보다도 더 중요한 것이 기쁨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여기에서 사용된 헬라어는 힐라로스(hilaros)입니다. 힐라로스는 들뜬, 명랑한, 즐거운; 들떠서 떠드는; 웃음을 자아내는, 재미있는의미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힐라로스 한 헌금을 사랑하시고 힐라로스 한 마음으로 드리는 사람을 사랑하십니다. 신약성서에 나타난 크리스천들은 드리는 일을 사랑했던 사람들입니다. 즐거움으로 드리십시오. 이것이 심은 대로 거두는 원리를 적요하는 네 번째 방법입니다.

 

물질을 받는 사람보다 주는 사람이 행복한 사람입니다. 행복한 사람은 주는 사람입니다. 가장 행복한 사람은 자기의 시간, 자기의 삶, 자기의 에너지, 자기의 물질 그리고 모든 것을 후하게 베푸는 사람입니다.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후하게 베푸는 사람이 많은 교회가 행복한 교회입니다.

 

우리들 가운데 다음과 같이 고백하시는 분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후한 마음으로 드리고 하나님의 약속을 내 것으로 만들기를 진실로 원합니다. 그러나 나의 필요를 생각하고 나의 형편을 생각하면 드리면서도 즐거운 마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처음에 가졌던 열정적인 마음이 사라져 버립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즐거운 마음으로 드리는 자가 될 수 있습니까? 다음 두 가지를 생각하십시오.

 

2. 즐거움으로 드리는 2가지 방법

 

1) 소유의 근원을 기억하십시오.

 

가장먼저 우리는 나의 소유가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해야만 합니다. 본문말씀 10을 보시겠습니다. 심는 자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주시는 이가 너희 심을 것을 주사 풍서하게 하시고 너희 의의 열매를 더 하게 하시리니 성경은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왔는지 기억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여러분들이 소유하고 있는 것들이 어디로부터 온 것들입니까?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 들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는 모든 것들은 하나님께 속한 것들입니다. 우리가 소유하고 있다고 해서 우리에게 속한 것들이 아닙니다. 다만 60-90년 동안 우리가 사용할 수 있도록 맡겨진 것뿐, 그 이후에는, 모두 뒤에 남겨두고 떠나야만 합니다. 우리는 무엇 하나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 수입의 10분의 1일을 돌려드릴 때, 저는 10%로를 드리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저는 하나님, 90%를 제가 사용할 수 있도록 허락해 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말합니다. 90%마저도 사실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내 손으로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입니다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손은 어디서 얻은 것입니까? 만약 하나님께서 주시지 않았다면 우리는 스스로 아무것도 소유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것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우리가 기억할 때, 물질을 드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너그러운 마음을 소유하는 것이 훨씬 쉬워지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우리들의 소유물이 근본적으로 하나님께 속한 것임을 기억하십시오.

 

2) 하나님의 약속을 기억하십시오.

 

이 약속은 놀라운 보증입니다. 고린도 후서 911을 보시겠습니다. 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하나님의 보증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축복하심으로 갚으실 것입니다.

 

사람들은 받기 위해서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물론 돌려받을 목적으로 드리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은 지난날에 대한 감사의 표현입니다.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나를 위해서 미리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더 얻기 위해서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이 우리의 동기가 되어야만 합니다. 우리가 드릴 때 하나님이 돌려주시는 것은 필연적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주시기를 즐기시는 분입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주는 사람이 되기를 원하십니다. 당신이 더 많은 것을 주면 하나님께서는 당신 것보다 더 많은 것을 당신에게 허락하십니다. 당신이 아무리 넓은 마음을 소유했다 해도 하나님의 후하심을 능가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성경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하나님 자신이 즐겨 주시는 분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주시는 것을 사랑하십니다. 당신이 가지고 있는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에게 주신 것들입니다. 우리가 즐겨 낼 때, 그 순간 우리들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너그러운 마음으로 즐겨 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사랑이며 베풀지 않는 사랑은 없다고 성경은 말을 합니다. 내가 할 수 있는 가장 큰 사랑의 표현은 나의 시간을 주는 것입니다. 나의 생명을 주는 것입니다. 나의 물질을 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 자신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의 모든 것입니다.

 

고린도후서 88을 보시겠습니다. 내가 명령으로 하는 말이 아니요 오직 다른 이들의 간절함을 가지고 너희의 사랑의 진실함을 증명코자 함이로라하나님은 나의 드림이 내가 하나님을 향한 나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어쩌면 우리는 하나님 당신이 정말로 사랑합니다. 그러나 나의 드림이 당신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나타내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 물질만 빼고 나의 모든 것을 당신께 드리기를 원합니다.” 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의 드림이 나를 향한 너의 사랑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향하여 즐겨 내는 것이 그 분을 향한 우리의 사랑을 보여준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습니까? 한 남편이 있습니다. 하루는 남편이 아내에게 당신을 사랑한다고 연거푸 말을 합니다. 그리고 남편은 아내를 너무나 사랑하기 때문에 밍크코트를 사주겠다고 굳게 약속을 합니다. 그리고 아내에게 다음과 같이 주문합니다. 홈 플러스에 이월상품 행사가 있으니 그 곳에 가서 골라보던지, 아니면 하자가 있어 공장으로 반품된 물건을 취급하는 창고에 가서 가장 값싼 것으로 고르라고 말한다면 아내의 기분이 어떻겠습니까? 사랑한다는 남편의 말에 믿음이 가겠습니까? 그런 선물을 아내가 받았다고 합시다. 그 선물이 기쁘고 즐겁겠습니까?

 

우리 스스로를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들은 어떠합니까? 그래도 우리들이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우리들이 나는 크리스천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는 것은 그분을 향한 나의 신실한 사랑을 증거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즐거이 내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그 누구도 주님을 닮아갈 수 없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즐거운 마음으로 나의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는 것을 배우기 전에는 나는 결코 주님을 닮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의 절차요 진행과정입니다. 이것은 콩이 필요하면 씨를 심는 것과 같은 원리입니다. 씨를 심을 때 비로소 우리는 콩을 얻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물질을 드리기 전에 깊이 생각하십시오. 헌금은 강제적으로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넓은 마음으로 씨를 심으십시오. 그리고 지속적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기쁨으로 하십시오. 자발적으로 행하십시오. 즐거움으로 행하십시오. 그 이유가 무엇입니까? 왜냐하면 하나님은 기쁨으로 내는 자를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닮아가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는 이 일을 기쁨으로 행해야만 합니까? 왜냐하면 모든 것이 하나님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인정하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그 분의 약속을 내가 믿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주라 그리하면 채워주리라

 

III. 약속: 나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기대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약속을 이행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그 약속을 지키십니다.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실 것을 기대하십시오. 8을 보시겠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게 하려 하심이라

 

8절에서 모든 이란 말에 주목하십시오. * 이 말씀은 우리가 어떤 것으로 풍성하게 될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 이 말씀은 내가 가끔 너를 축복한 다는 것이 아니라 항상 축복한다는 말입니다.

* 이 말씀은 네게 필요한 일부분의 것을 채워주겠다는 말이 아니라 너의 모든 필요를 채워준다는 것입니다.

 

자동차 수리가 모든 필요에 포함됩니까? 물론입니다.

병원비가 모든 필요에 포함됩니까? 물론 포함됩니다.

학비가 모든 필요에 포함됩니까? 포함됩니다.

 

물질을 드리는 것은 내가 하나님을 얼마나 믿고 신뢰하느냐 하는 문제입니다. 그리고 가장 근본적이고 기초적인 것은 하나님께서 나의 필요를 공급해 주실 것 이라는 믿음입니다. 여러분이 헌금을 시작할 때, 지속적으로 하십시오. 그 때, 그 때 여러분의 기분에 따라 좌우되지 마십시오. 만약 당신이 무엇인가 필요하다면, “주님,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습니다. 그래서 그 씨를 심고 있습니다.”라고 말하십시오. 그리고 염려하고 걱정하지 마십시오. 우리의 염려와 걱정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그저 아무 일 없었던 것처럼 모두 맡기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의 원리가 역사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심고 거두는 법칙입니다.

 

예를 들어 농부가 밭에 나아갑니다. 그리고 씨를 뿌립니다. 농부는 씨를 뿌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와 추수를 거두기까지 몇 달 동안 근심하고 걱정하지 않습니다. 근심과 걱정이 싹이 나고 열매를 맺는 것에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사실은 농부가 씨를 뿌린 것이 믿음으로 시작한 행위입니다. 그리고 뿌린 씨는 싹을 내고 열매를 맺을 것입니다. 농부의 느낌이나 감정이 아무런 영향을 주지 못합니다. 농부의 기분이 좋든 아니면 우울하든 씨는 자라날 것입니다. 이것이 씨를 뿌린 자가 추수를 하게 되는 법칙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이 원리를 벗어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물질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의 계획에 참여한 결과가 무엇입니까? 하나님은 왜 우리가 헌금하기를 원하십니까? 12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여 넘쳤느니라

 

이 시대에 가장 영향력 있는 목사 가운데 한 사람인 릭 워렌 목사의 간증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가 대학에 재학 중이었습니다. 그의 은행에는 단지 50$ 남아있었고 학기가 끝나려면 아직도 5-6주가 남아이었습니다. 그리고 학교에 학비 500$불을 내야만 했으며 친구에게 빌린 돈 10$ 을 갚아야만 했습니다. 어느 날 웨렌은 뿌림과 거둠에 대한 성경 구절을 읽게 되었습니다.

 

그때 그는 하나님을 시험해 보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리고 은행에서 50$ 을 찾고 은행 구좌를 없애버렸습니다. 그리고 웨렌은 봉투 속에 하나님께서 당신의 필요를 채워주시기를 기도하며 마지막 남은 50$ 전부를 당신에게 보내드립니다.” 라는 편지와 함께 그 돈을 기독교 단체인 어메리칸 바이블 소사이어티(American Bible Society)에 기부했습니다.

 

그리고 몇 주일이 지나서 그는 L.A에 있는 한 교회로부터 설교자로 초대를 받았습니다. 설교를 마쳤을 때, 교회의 담임 목사님 불숙 일어나 성도여러분, 이 가난한 학생을 위해서 사랑의 헌금을 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때 전교인이 헌금에 동참했고 헌금으로 모두 565$가 모였습니다. 웨렌은 500$로 학비를 지불하는데 사용했고 10불은 친구에게 빌린 돈을 갚았으며 그리고 남은 돈 55$ 은 십일조로 하나님께 돌려드렸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나의 놀라운 인생은 이 경험으로부터 시작되었다.”

 

여러분은 이 간증이 릭 웨렌 목사에게만 있는 간증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여러분 가운데는 이와 같은 간증을 소유하고 살아가는 분들이 있을 것입니다. 심은 대로 거두는 것은 하나님의 법칙입니다. 이 하나님의 법칙은 언제든지 어디서든지 변하지 않는 법칙입니다. 당신은 심은 것을 거두게 됩니다. 만약 우리가 아무것도 심은 것이 없다면 우리는 아무것도 거두지 못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무엇을 선택할 것인가 그 선택만이 남았습니다.

 

 

말라기서 38-11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 8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것을 도적질하겠느냐 그러나 너희는 나의 것을 도적질하고도 말하기를 우리가 어떻게 주의 것을 도적질하였나이까 하도다 이는 곧 십일조와 헌물이라 9 너희 곧 온 나라가 나의 것을 도적질하였으므로 너희가 저주를 받았느니라 10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너희의 온전한 십일조를 창고에 들여 나의 집에 양식이 있게 하고 그것으로 나를 시험하여 내가 하늘 문을 열고 너희에게 복을 쌓을 곳이 없도록 붓지 아니하나 보라 11 만군의 여호와가 이르노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12 황충을 금하여 너희 토지소산을 멸하지 않게 하며 너희 밭에 포도나무의 과실로 기한 전에 떨어지지 않게 하리니

 

이 말씀은 성경 가운데 아주 특별한 구절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을 시험의 대상으로 허락하십니다. 하나님은 나를 시험하라, 나를 검증해봐라, 참인지 거짓인지 확인해봐라, 내가 정말로 존재 하는지 눈으로 확인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하나님의 이 과감한 제안에 응해보시지 않으렵니까?

사실 하나님은 이러한 약속을 해야 할 필요가 없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그저 십일조를 드려라, 왜냐하면 그것이 네가 나에게 진 빚이며 나는 그 빚을 요구하는 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 우주만물의 창조자로서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권리가 있는 분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하나님은 너그러우신 분이며, 주시기를 사랑하시는 분이기에, 스스로 자신을 시험의 대상으로 삼도록 허락하셨습니다.

 

성도 여러분!

 

하나님이 살아계십니까?

하나님이 정말로 존재하십니까? 하나님은 정말 사랑이십니까?

그분은 약속을 지키시는 분이십니까?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발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여러분이 십일조를 드리는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드리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으로 돌려주십니다. 우리들은 결코 하나님이 주시는 은혜와 견줄 수 없습니다. 저는 이 사실에 대하여 확신이 있습니다. 그래서 청지기에 대한 말씀을 전달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원리입니다. 이것이 교회가 세워져가는 원리입니다. 여러분들이 더 많은 것으로 베푸십시오. 하나님은 더 많은 것으로 당신을 축복하고 이 교회를 축복하실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만약 지금까지 네 번에 걸쳐 말씀드린 청지기 삶에 대하여 저와 여러분이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면 우리들은 스스로 상처를 받을 뿐입니다.

성도여러분들에게 다시 한 번 간곡히 말씀드립니다.

 

시도해 보십시오!

여러분이 저보다 더 이 일을 사랑하시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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