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교회 성장 학자인 엘머 타운즈(Elmer Towns)는 십일조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십일조를 믿는다. 왜냐하면 십일조는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며 십일조는 교회를 번영시키는 것이며 십일조는 영혼을 얻기 위한 것이며 십일조는 은혜 속에서 나를 자라게 하며 십일조는 재정적으로 나를 윤택하게 해 주기 때문이다. '
정상적인 신자라면 누구나 십일조에 대한 고민과 갈등을 경험한 때가 있을 것입니다. 교회에 처음 나와 신앙생활을 시작하면서 제일 먼저 실천해야 하고 해결해야 될 갈등이 십일조입니다. 그러나 많은 신자들이 십일조의 타당성이나 왜 십일조헌금을 해야하는지에 대해 정기적인 훈련이나 교육이 부족했기 때문에 교회에 나오는 믿음이 없는 신자의 경우 목사의 헌금 설교나 십일조에 대한 말씀을 듣게 되면 부담을 갖거나 거부 반응이 나타나고 헌금에 대한 부담감 때문인지 교회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나타났습니다.
또한 장기간 교회 출석을 하는 신자인 경우도 분명한 십일조 의식의 부족은 그들의 신앙생활이나 축복생활에 변화를 주지 못했습니다. 다만 점차적으로 믿음이 성장하면서 십일조 생활은 교회의 문화이고 신자의 기본생활처럼 받아들이는 정도입니다.
여기서 오늘의 교회에 나타나고 있는 십일조에 대한 부정적인 내용들과 거부하는 유형들을 보면 다양합니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왜 십일조가 현대시대에도 필요한가라는 의문을 갖는 경우도 있습니다. 십일조 제도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성경적 제도인가? 아니면 오늘날 그리스도인과는 전혀 상관없는 불필요한 구약 제도는 아닌가 하며 혼란을 겪는 분들도 있습니다.
① 십일조는 구약의 율법시대에 행하여진 옛 제도로서 신약의 복음 시대에 와서는 더 이상 강요되거나 반드시 시행되어져야할 필요가 없는 죽은 계명이라고 반문할 수 있습니다.
② 십일조는 예수께서 권장하거나 사도 바울이 인정한 성경적 제도가 아니며 교회가 만들어낸 필요악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⑤ 십일조는 단순히 축복을 전제로 하는 기복신앙과 같이 주고받는 개념에서의 미신적 행위라고 타당성을 부인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④ 십일조는 교회의 재정을 늘리고 목사의 사례비나 교회 운영을 위한 기부금이나 후원금으로 생각하며 별로 소중한 가치 있는 헌금으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이제는 십일조헌금에 대한 분명한 성경적인 답변과 십일조를 해야 하는 타당성을 점검하고 위에서부터 내려오는 신앙문화나 헌금문화이니 나도 순응해야 한다는 의식이나, 십일조헌금을 하지 않으면 직분도 제대로 감당하지 못하고 교회에서 인정받지 못하기 때문에 한다는 정도의 꺼림직 한 조건 반응이 아니라 분명한 타당성과 의미, 책임과 의무, 명령과 순종, 제도와 신앙, 율법과 은혜 차원에서 다루어 보고자 합니다.
십일조학교는 구별된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것과 사람의 것, 써야될 것과 쓰지 말아야 될 것, 선한 것과 악한 것, 하늘의 것과 세상 것에 대한 기독인의 바른 물질관과 축복관을 다루고 막연하고 의미를 모르고 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자긍심과 확신과 보람 있는 온전한 십일조헌금 생활을 하도록 도와 줄 것이며 아직도 최소한의 헌금 생활인 십일조 생활을 하지 못하는 분들에게는 새로운 하나님의 축복 세계로 갈 수 있도록 하는 전환점이 될 것입니다.
십일조학교를 통해 당신의 헌금 생활과 드림의 생활을 바로 하며 하나님이 준비하신 그 하늘의 위대한 축복을 누리는 풍성한 그리스도인이 되는데 도움이 되리라 확신합니다.
지금 우리의 교회 안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부요하심이나 풍성하심의 축복들이 메마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오늘의 교회나 성도들의 물질생활이 회복되기를 원하고 계십니다. 십일조학교를 통해서 하나님이 일하시는 훈련과 축복을 경험하여 누군가가 변화된 십일조 생활로 인하여 하나님이 보이시는 십일조의 축복을 보여주는 교회 안에서의 빛이 되기를 기대해 봅니다.
1.헌금이란 무엇인가?
성경에 나타난 하나님께 드리는 드림 행위의 첫 출발은 가인과 아벨의 제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창 4:3-5 세월이 지난 추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 제물은 열납하셨으나/ 가인과 그 제물은 열납하지 아니 하신지라 가인이 심히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
하나님께 드리는 첫 드림의 행위는 제물이었습니다 가인과 아벨의 드림에 대해 신약의 히브리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히브리시 11:4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거 하심이라. "
하나님은 아벨을 칭찬하셨습니다.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드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물에 대해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이 무엇인지를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모든 제물을 무조건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드리는 예물이든 제물이든 하나님께서 주신 모범을 따라야 하나님은 받으십니다. 하나닝이 합당하게 여기시는 것을 드려야 받으십니다.
시편 51:17에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 고 했습니다. 단순히 재물만을 받으시는 하나님이 아니심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십일조이든 헌금을 드릴 때 하나님께 초점이 맞추어져야 합니다. 내가 골라서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드려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무 것이나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맞는 것을 드려야 받으십니다. 그러므로 십일조의 경우도 나를 기준으로 판단해서는 안됩니다.
내가 하고 싶어서 드리는 것이 아니며 내가 드리고 싶지 않다고 마음대로 거절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이면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명령하신 것이면 지켜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라고 말씀하신 것을 따라야 합니다. 가인과 아벨의 첫 드림에서 하나님이 받으시는 것과 받지 않으시는 것에 대한 드림 원리를 보았습니다.
헌금이나 십일조헌금이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서 드리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십일조를 드리기 전에 먼저 하나님이 십일조를 원하시는 것인가? 십일조를 드리는 것이 성경적인가? 이런 질문에 대한 확인이 먼저 있어야 하고 옳은 일이라고 믿어질 때는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이 필요한 것입니다.
십일조는 하나님과 나와의 일대일의 관계입니다. 막연하게 남들이 하기 때문에 하는 것도 아니며 교회가 요구하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한다는 차원을 넘어 하나님과 나와의 물질신앙이나 축복신앙에 대한 바른 신앙고백을 통해 하나님의 자녀로서 바른 드림의 신앙생활을 해야하고 하나님의 자녀로서 누려야할 수많은 신비한 하나님의 비밀들을 체험해야 합니다. 헌금이나 십일조는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찾아 행동으로 옮기는 실천생활입니다.
2.헌금의 성경 모범은 누구인가?
"누가복음 21:1-4"예수께서눈을 들어 부자들이 연보궤에 헌금 넣는 것을 보시고/ 또 어떤 가난한 과부의 두 렙돈 넣는 것을 보시고/ 가라사대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이 가난한 과부가 모든 사람보다 많이 넣었도다/ 저들은 그 풍족한 중에서 헌금을 넣었거니와 이 과부는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의 있는 바 생활비 전부를 넣었느니라 하시니라, "
위의 말씀은 예수님께서 헌금 정신에 대한 중요한 원칙을 제시해 줍니다. 풍족한 사람 중의 한사람과 가난한 사람 중의 한사람을 비교하여 주님은 헌금하는 모습을 보시고 주님께로부터 인정받는 헌금에 대해서 가난한 한 여인의 손을 들어 주셨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생활비 전부"를 드렸다는 이 여인의 헌금 정신을 높이 평가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헌금하는 것을 아신다는 것입니다. 얼마를 드리는지, 무엇을 드리는 지, 어떻게 드리는지 모두 아실 뿐만 아니라 두 렙돈을 넣는 것까지 세밀하게 알고 계십니다.
그렇다면 헌금이란 무엇입니까? 헌금이란 내 안에 있는 믿음을 밖으로 표현하는 헌신입니다. 많이 가진자라 할지라도 믿음이 없으면 인색하게 드릴 수밖에 없고 적게 가진 가난한 사람이라도 믿음이 있으면 크게 드림니다. 이것은 돈의 액수 문제가 아니라 믿음의 분량 문제이며 마음을 움직이는 것이 믿음임을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헌금을 드리는 것은 믿음의 영향력입니다.
바울도 이런 헌금 정신을 말씀했습니다."고린도후시 9:11-14"너희가 모든 일에 부요하여 너그럽게 연보를 함은 저희로 우리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게 하는 것이라/ 이 봉사의 직무가 성도들의 부족한 것만 보충할 뿐 아니라 사람들의 하나님께 드리는 많은 감사를 인하어 넘쳤느니라/ 이 직무로 증거를 삼아 너희의 그리스도의 복음을 진실히 믿고 복종하는 것과 저희와 모든 사람을 섬기는 너희의 후한 연보를 인하여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
"고린도후서 8:20 "이것을 조심함은 우리가 맡은 이 거액의 연보로 인하여 아무도 우리를 훼방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 "
바울은 "너그러운 연보" "후한 연보" "거액의 연보"를 말씀하는데 그런 헌금하는 자의 기초는 고린도후서 9:7에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누가 헌금을 즐겨 낼 수 있으며 기쁨으로 드리며 마음에 정한대로 흔들림 없이 할 수 있습니까? 믿음의 사람입니다. 믿음이 약하면 헌금도 약하고 실천하는 힘도 연약합니다. 그러므로 헌금은 믿음의 중거이며 믿음의 열매입니다. 헌금은 돈을 드리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드리는 것입니다. 억지로 하려하지 마십시오. 오히려 믿음으로 하도록 하십시오. 믿음이 물질을 지배하는 것이 성경의 원리입니다. 믿음이 사람을 움직이고 믿음이 하나님이 원하는 것을 알게 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믿음이란 무엇입니까? 헌금할 수 있는 믿음입니다. 혹 나는 헌금하는데 은사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헌금하는 믿음은 성숙된 믿음이며 주님을 닮은 믿음입니다. 우리는 가져도 모자라고 손에 움켜져도 부족한데 즐겨 낼 수 있다는 것은 깊은 믿음이나 하나님께 사로잡힌 믿음의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헌금이나 십일조의 근거를 믿음에 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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