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사장 아히멜렉은 그의 몰골이 초라한 것을 보고 놀랬습니다. 그리고 그가 왕궁의 호감을 잃었다는 말을 들었기에 그를 수상히 여겼습니다. 아히멜렉은 다윗을 환대하였다가 사울의 불만을 살까 저으기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리고 무엇이 그로 하여금 그런 비참한 몰골을 만들었는가를 알아보고자 하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물었습니다. "네가 어찌하여 홀로 있느냐?" (막 2:26 참조) 그는 몇 사람과 함께 거기 갔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의 몸종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는 다른 때 여호와께 물으려고 올 때 데리고 왔던 궁인(宮人)들이나 그의 신분에 알맞는 사람들을 데리고 오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리와 동행하여 하나님의 집으로 가는 습관이 있었다(시 42:4)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그는 지금 단지 두 세 사람과 함께 왔으니만큼 아히멜렉이 그에게 "어찌하여 네가 홀로 있느냐?" 고 물을만 합니다.
다윗은 나라의 일을 위해서 사울의 보냄을 받아 왔다고 아히멜렉을 속인 다음, 그에게서 필요한 것들을 공급해 달라고 요청하였습니다(2,3절).
1. 다윗은 사울이 자기에게 급한 일을 맡겼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자기의 종자들은 여차여차한 곳으로 보냈으며, 비밀로 일처리를 하라고 했기 때문에 비록 제사장에게라도 말을 하지 못하겠노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모두 새빨간 거짓말이었습니다. 그것은 전적으로 잘못된 처사였습니다. 그 결과도 나빴습니다. 그 때문에 "여호와의 제사장이 죽었습니다." 다윗 자신도 나중에는 이 일을 애석하게 생각하고 후회하였습니다(22:22).
그는 이처럼 제사장을 속일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가 만일 사실을 이야기했다면, 사무엘이 그랬던 것처럼 그에게 숨을 곳을 제공해 주고, 그를 구해 주었을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물어서 그에게 더 좋은 길을 보여 줄 수 있었을 것입니다. 다윗은 매우 위대한 신앙과 용기가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이때 두려움과 겁때문에 실패하였고 부정을 저질렀습니다
2. 다윗은 아히멜렉에게 두 가지, "떡과 칼" 을 구하였습니다.
첫째, 다윗은 떡을 요구했습니다(3절).
모든 사람들이 자기의 먹을 것을 가지고 다니던 때의 여행은 무척 고생스러운 것이었습니다. 더우기 돈도 없던 다윗에게는 더욱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그렇지 않았다면 다윗은 떡을 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때 제사장은 자기에게 떡이 없고, 다만 거룩한 떡인 "진설병" 이 있을 따름이라고 하였습니다. 이 떡은 성전 안에 한 주간 동안 진열했다가 내려놓은 것으로써 제사장과 그의 가족들이 먹을 수 있는 것입니다(4절). 아히멜렉은 다윗과 함께한 젊은이들이 한동안 그것이 자기의 아내였다고 할지라도, 여인들과 가까이 하지 않았어야 이 떡을 먹을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여인을 가까이하지 않아야 된다는 것은 "율법을 주실 때" 에 요구되었습니다(출 19:15).
다윗은 그와 또 그와 함께 한 소년들이 충분히 거룩한 떡을 먹을 수 있다고 해명하였습니다. 그들은 삼일 동안 여자를 가까이 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거룩함과 존귀함으로 자기의 그릇을 취할 줄을 알았기에" (살전 4:4, 5), "그들의 그릇(즉 그들의 몸)이 성력하다" 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특별히 돌봐 주시며, 필요한 것을 부족함 없이 공급해 주실 것이며, 이 일을 제사장께서 하여 주시도록 원하실 것이라고 했습니다. 이처럼 거룩하기에 거룩한 것을 그들도 먹을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이에 아히멜렉이 다윗에게 떡을 주었습니다. "그는 거룩한 떡을 그에게 주었다" (6절). 어떤 사람은 이것 때문에 "그가 여호와께 물었다" (22:10)라고 생각합니다. 그는 충실한 종으로서 주어진 주인의 허락이 없이는 주인의 것을 마음대로 처리하고자 하지 않았습니다. 이 떡들은 성결된 떡이기에 다윗에게는 더욱 합당한 떡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에게서는 모든 청결된 것들이 더욱 가치를 지닐 수 있었습니다. 진설병은 모두 열 두 덩어리였습니다. 하지만 그 외에는 다른 떡이 더 없으므로 그는 다윗에게 다섯 덩어리를 주었다(3절). 그는 하나님의 섭리를 믿었습니다.
둘째, 다윗은 칼을 원했습니다.
제사장에게는 칼이 없었습니다. 성전에는 어떤 무기도 없었는데 다만 골리앗의 칼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영광스러운 승리를 기념하기 위해 에봇 뒤에 놓아두었던 칼입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거기에 여호와 앞에 사울의 신하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도역이었고 나중에 사울에게 다윗과 아히멜렉의 일을 고자질하였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습니다(7절). 그는 비록 사울 밑에서 출세를 하기 위해 유대교로 개종은 했지마는 이스라엘에 대한 에돔 사람들의 오래고도 인습적인 적개심은 그대로 지니고 있었습니다. 그는 목사장이었습니다. 아마 당시의 그의 직책은 오늘날의 마구 관리인보다 훨씬 더 명예로운 직분이었을 것입니다.
어떤 용무 때문이든지 간에 도액은 제사장을 만나기 위해 기다리고 있어야만 했습니다. 어떤 부정으로부터 정결함을 받기 위함이었든지 아니면 서약을 위한 것이었을 것입니다. 아뭏든 그의 용무가 어떤 것이었든지 간에 "그는 여호와 앞에 머물러 있었다" 고 합니다. 그는 성전에 아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이것은 다른 곳에서라면 몰라도 여호와 앞에서는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자기가 이 곳에 온 일을 생각하기 보다는 다윗을 해하며, 아히멜렉이 자기를 기다리게 한 것에 대해 보복을 하고자 계획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도 이런 양의 가죽을 쓴 이리 앞에서는 안전할 수가 없었습니다(참조, 갈 2:4).
3. 가드왕 아기스에게로 간 다윗(사무엘상 21:10-15)
다윗은 비록 왕으로 택함을 받았지마는 여기서는 한갖 유랑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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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다윗은 블레셋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거기서 다윗은 가드왕 아기스의 궁중이나 혹은 진영 속에 숨어 있기를 원했습니다(10절). 이스라엘의 사랑받는 용사가 불가불 이스라엘 땅을 버리고, 블레셋의 원수가 블레셋 사람들 속에 보호처를 찾게 되었습니다. 비록 블레셋 사람들은 다윗을 미워하였지마는 가드왕은 다윗의 공훈을 생각해서 그에게 개인적인 친절을 베풀기를 원했다고 보여집니다. 아마 다윗이 골리앗을 죽인 것이 아기스와 친하게 된 동기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아기스를 믿고 곧장 그에게로 갔습니다. 그리고 아기스도 다윗을 보호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자기 편 사람들의 불친절을 두려워하였습니다. 하나님의 고 난받는 성도들은 때로 이스라엘 사람들에게서 보다는 블레셋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2. 아기스 신하들은 다윗이 거기 온 것을 싫어하여, 이를 아기스에게 불평하였습니다(11절).
이는 다윗이 아니니이까? 그가 블레셋을 이긴 그 사람이 아닙니까?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한 사람이 아닙니까? (우리의 들은 바가 사실이라면) 이 사람은 그 땅의 왕이 틀림없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나라의 대적입니다. 그러나 아기스는 다윗을 환대하는 것이 자기의 책략이라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지금은 사울의 원수가 되었으며, 그래서 그들의 친구가 되었다고 말했습니다. 한 나라의 범법자는 보통 그 나라와 대적하는 나라에서는 보호를 받받습니다 그러나 아기스의 신하들은 아기스의 책략에 반대했으며, 다윗이 그들 가운데 있는 것이 전혀 못마땅하다고 말했습니다.
3. 이 때문에 다윗은 크게 놀랬습니다.
다윗은 아기스를 믿을 만한 확실한 몇 가지 근거를 가지고 있었는데, 아기스의 신하들이 그를 질투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자, 아기스가 그들에게 내어 주지 않을까 하고 몹시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는 "심히 두려워하였다" (12절). 그리고 그는 골리앗의 칼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이를 더 두려워 하였을 것입니다. 가드 사람들은 골리앗의 칼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자기가 골리앗의 목을 쳤듯이, 이번에는 그들에게 목이 짤리는 것이 아닌가고 두려워 하였을 것입니다.
4. 다윗은 그들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대책을 세웠다.
"그는 미친 체 하였다" (13절). 다윗은 천치의 모습과 행동을 취했습니다. 또 혹은 제 정신을 잃은 사람으로 보이게 하였습니다. 다윗은 그가 빠진 재난과 어려움이 그를 미치게 만든 것이 틀림없다고 그들이 믿을 줄로 생각하고 이런 행동을 취했습니다.
이러한 다윗의 은폐술이 조금도 정당화될 수는 없습니다(자기 자신을 얕보게 하는 것은 너절한 일이며, 자기를 잘못 나타내는 것도 진리에 모순되는 행동입니다. 따라서 다윗과 같은 사람에게 있어서는 그 명예를 매우 더럽히는 행동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는 용서받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철저한 거짓말이라기 보다는 일종의 전술상의 책략일 수 있기 때문이며, 그 자신의 목숨을 구하기 위해 원수들을 속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5. 다윗은 이런 방법을 통해 그 곳으로부터 피해 달아났습니다(14,15절).
나는 아기스가 다윗의 미친짓이 거짓된 꾸밈인줄 알면서도 다윗을 지켜 주기 위해 일부러 그가 정말 미친 것으로 알고 있는 것처럼 자기 신하들 앞에서 내색했던 것입니다.(나중에 알 수 있듯이 블레셋의 방백들이 다윗을 미워할 때도 그는 여전히 다윗을 사랑하였습니다(28:1, 2, 29:6)). 그래서 그는 이가 다윗이냐 아니냐를 물어볼 필요가 있었고, 그가 다윗이라고 해도, 아마 제정신이 아닌만큼 그가 아무런 해를 줄 수 없으니 조금도 두려워 말라고 하였습니다.
아기스의 신하들은 아기스가 다윗을 환대할는지 모른다고 의구심을 나타냈습니다. "아니다. 그렇지 않다" 고 그는 말했습니다. "그는 미친 사람이다. 나는 그에게 아무 볼 일이 없다. 내가 그를 후대하며 그의 편의를 보아 줄까봐 걱정하지 말라." 아기스는 신하들의 비위를 어느 정도 맞춰 가면서 일을 잘 처리하였습니다. "내게 미친 사람이 필요하단 말인가? 이 자가 어찌 내 집에 들어 오겠느냐? 나는 그에게 보여줄 친절이 없었습니다. 그러니 그를 해치지 말라. 그가 미친 사람이라면 동정을 베풀어 주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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