벨기에 조형 예술가 자크 리젠Jacques Lizène이 사망했을 때, 신문 부고란에는 흔치 않은 ‘실패’ 전문가의 죽음이 전해졌다. 실제로 이 실패 전문가는 실패의 예술이 엄연히 존재한다고 주장했고, 그렇게 함으로써 스스로 부와 명예의 유혹에서 벗어나려 했다. 그가 내세운 평범함의 미학은 역설적이게도 ‘중요하지 않은 것의 중요성’을 환기하는 데 있었다.
위니컷은 완벽한 부모가 되고자 하는 사람은 자녀에게도 완벽을 요구할 가능성이 크다고 지적했다. 그는 완벽한 엄마가 아닌 ‘그럭저럭 괜찮은 평범한’ 엄마가 자녀와 가정을 행복하게 할 수 있다며 부모들을 독려했다.
일확천금을 얻은 사람은 의심이 많아지고 탐욕스러워지며 친구에게는 버림받고 가족들은 그를 돈으로만 본다는 것이다.
나는 명예를 얻기 위해 내 삶을 소진한 후에야 편안히 쉴 수 있을 것이다. (중략) 우리 모두 치열하게 일하고 죽을 만큼 전력을 다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즐거운 일이다
에밀리 디킨슨이 언급한, 첫인상을 뒤바꿀 수 있는 ‘열한 번째 시간eleventh hour’(영어의 관용적 표현으로, 막판에 어떤 일이 벌어지는 상황을 의미한다 — 옮긴이)을 떠올리게 한다. -
왜 지적 세계에는 백발이 성성한 죄인들이 구원받는 영혼 세계의 ‘열한 번째 시간’이 없을까? 평범한 여자애들이 ‘현명’할지, 또 누가 아는가?
시인 옥타비오 파스Octavio Paz의 에세이 「멕시코 가면Máscaras Mexicanas」에 등장하는 하녀처럼 말이다.
어느 날 저녁, 옆방에서 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들려와 나는 큰 소리로 물었다.
“거기 누가 있소?”
“아무도 없습니다, 나리. 저예요.”
『신곡』에서 “누군가에게 욕도 먹지 않고 칭찬도 받은 적이 없는 불행한 영혼들”을 최악의 인간으로 규정하며 그들은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신곡』에서 “누군가에게 욕도 먹지 않고 칭찬도 받은 적이 없는 불행한 영혼들”을 최악의 인간으로 규정하며 그들은 비참한 모습을 하고 있다고 신랄하게 비꼬았다.
쇼펜하우어는 “삶이란 욕망과 권태를 오가는 시계추일 뿐”이라고 말했다. 그 교수는 ‘파괴적인’ 행복은 결국 존재론적 절망을 초래한다고 주장한 쇼펜하우어를 행복이라는 거대한 이상에서 벗어날 출발점으로 우리에게 제시했다.
욕망이 채워지지 않으면 결핍으로 괴롭고, 욕망이 채워지면 권태로 괴롭기 때문에 모든 만족감은 순간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쇼펜하우어는 『의지와 표상으로서의 세계』에서 삶은 권태롭고 만족감은 지나치게 높이 평가되고 있다고 말했다. 또한 그는 우리가 살아 있음을 느끼게 해주는 것은 결과가 아니라 무언가를 추구하는 그 자체에 있다고 주장했고, 나는 결국 그에게 설득당했다.
죽음의 문턱을 밟아본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쇼펜하우어의 말에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곤경에서 벗어나 느끼는 더할 나위 없는 안도감, 그 행복감은 몇 주, 심지어 며칠만 지나도 슬프지만 서서히 사라져버린다. 그리고 그런 허울뿐인 만족감은 이내 우울감으로 바뀐다.
평범함에 대한 두려움은 계급, 인종, 성별을 가리지 않는다. 평범함은 주로(그리고 유감스럽게도) 리더보다는 추종자에게서, 적극적인 사람들보다는 소극적인 사람들에게서 발견된다
토크빌Alexis de Tocqueville은 경제적 수준이 향상되거나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게 될수록 역설적이게도 사람들은 더 큰 기대감을 갖는다는, 이른바 ‘토크빌의 패러독스’라는 개념을 제시했다.
내 친구 하나가 성공할 때마다, 나는 조금씩 죽어간다”라고 말한 미국 소설가 고어 비달Gore Vidal의 자조 섞인 농담은 괜한 말이 아니다.
무기력한 모습을 한 채 닿을 수 없는 곳으로 멀어져가는 자폐아 자녀를 볼 때, 부모는 자책감에 빠지게 마련이다. 자신을 사랑해주는 부모를 이해하지 못하는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기 위해 부모는 초인적인 노력을 기울이며 상상이 되지 않는 낯선 세계에 살고 있는 그 존재에게 매달린다. 그러나 소통하기 위한 이런 노력이 모두 부질없이 느껴질 때, 부모가 느끼는 고통은 배가된다. (중략) 때로는 증상을 살피는 것만으로도 진단을 내릴 수 있겠지만, 그의 전 생애를 들여다보지 않고 자폐인을 이해하기란 요원한 일이다.
마이클 샌델은 전 세계 베스트셀러 『공정하다는 착각』에서 “능력은 승자에게 만족스러운 삶을 가져다줄 뿐만 아니라 자신보다 불운한 사람들에 대한 책임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게 해준다”라고 주장했다.
돌이켜 생각해보면, 평범하고 그만하면 괜찮다는 마음으로 가기 위한 여정을 가로막은 가장 큰 걸림돌은 오직 나 스스로, 나만의 능력으로 무언가를 성취할 수 있다고 믿은 나의 아집이었다. 나의 성공은 온전히 내 것이어야 했다.
이렇게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제임스는 그런 사람들이 대개 “자아의 경계가 모호하다”라고 지적했다)은 공교롭게도 타인에 대한 배려심이 가장 깊은 사람들이라고 덧붙였다.
부와 명예를 움켜쥔 사람들이 그 자리에 오를 수 있었던 것은 바로 드러나지 않는 곳에 존재하는 사람들 덕분이라고 말한다.
마이클 샌델은 능력주의에 관한 인터뷰에서 코헬렛(전도서) 9장 11절을 인용하며 가장 주목받는 사람들, 즉 ‘승자들’이 반드시 가장 칭송받을 만한 사람들은 아니라는 점을 강조했다. 우리가 흔히 능력이라 간주하는 것은 그저 행운일 뿐이라는 것이다.
나는 또 태양 아래에서 보았다. 경주가 발 빠른 이들에게 달려 있지 않고, 전쟁이 전사들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또한 음식이 지혜로운 이들에게 달려 있지 않고, 재물이 슬기로운 이들에게 달려 있지 않으며, 호의가 유식한 이들에게 달려 있지 않음을. 모두 정해진 때와 우연에 마주치기 때문이다.
일어날 수밖에 없는 일들을 아름답게 보는 법”을 배워야 한다는 것은 신성한 명령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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