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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당신은 어떤 열매인가?(마 7:16-2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2.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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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신앙생활하면서 열매보다는 결과에 더 치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물론 결과가 중요합니다. 축구에 있어서도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한 골만 넣으면 그동안 잘못해도 인정받습니다. 한 골만 넣으면 결과만 좋으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이러한 경향은 장점도 있지만 휴유증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무엇을 교훈하는 것일까요? 우리는 결과가 좋아야 나무가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과연 그럴까요? 성경 역시 결과가 좋아야 한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58절입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성경은 성공이나 어떤 결과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는 않습니다. 어디에 맞추고 있는가 하면 열매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우리는 많은 열매도 맺어야 하지만 좋은 열매도 맺어야 합니다. 오늘 본문은 많은 열매를 맺어야 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좋은 열매란 어떤 것일까요?

 

요한복음 158-9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과실을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가 내 제자가 되리라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 어떤 과실을 맺어야 할까요? 사랑의 과실입니다. 서로 옆에 계신 분들에게 이렇게 인사합시다. ‘사랑의 과실을 많이 맺읍시다.’

 

우리가 주일날 교회에 나오는 두 가지 목적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것이고, 두 번째는 사랑의 과실을 많이 맺기 위하여 섬기는 것입니다.서빙도 하구요 위로도 하구요 격려도 하구요.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사랑의 과실이 점점 말라버리면 신앙생활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처음 할때나 오래되었다 하더라도 주님 앞에 설 때까지 사랑의 과실을 많아져야 합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사랑의 열매 맺는 것에 실패하면 안됩니다. 우리가 어떤 것을 할 때 하나님의 사랑이 나를 통해 흘러 넘치기를 축원합니다.

 

요한복음 156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이는 너희로 가서 과실을 맺게 하고 또 너희 과실이 항상 있게 하여”. 하나님께서 우리를 바라보실 때 사랑의 과실이 항상 주렁주렁 맺혀 있기를 그토록 보기를 원하십니다.

 

어느날 주님께서 열매를 바라시고 무화가 나무 가까이로 가셨습니다. 그런데 무화과 나무에는 열매가 하나도 없었습니다. 주님은 그 나무를 보시고 저주하십니다. 그때에 뿌리까지 말라버립니다. 어떤 사람은 열매 맺을 때도 아닌데 주님께서 뿌리까지 저주하셨을까? 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왜 그러셨을까요? 사랑의 열매를 맺지 않은 채 삶속에서 사랑을 찾아볼 수 없는 당시의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을 향하여 , 어떻게 보면 믿음이 좋은 것 같은데 생활 가운데서 사랑의 열매를 찾아볼 수 없는 그들을 저주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 오래하면 할수록 사랑의 열매를 많이 맺어야 합니다. 목회자들도 직분자들도 성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이것이 빠져버리면 내게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아무런 유익이 없습니다. 고린도전서 1313절은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우리는 항상 있는 것을 붙잡아야 합니다. 돈은 있다가도 없을 수도 있습니다. 명예도 있다가 없을 수 있습니다. 믿음만큼은 날마다 붙잡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소망만큼은 날마다 품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사랑만큼은 언제든지 열매를 맺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 중에 제일은 사랑입니다. 아무튼 우리가 우리 가정이 주님 오실 때 사랑의 열매를 맺는 이 부분에 있어서는 좋은 결과가 있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716절 다같이 읽겠습니다. “ 그 열매로 그들을 알찌니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여기서 열매가 단수일까요? 복수일까요? 우리는 열매들에 관심을 둡니다. 우리는 상품 가치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우리 주님의 관심사는 그것이 아닙니다. 그 열매가 좋은 열매인가? 나쁜 열매인가? 그것을 보십니다. 그 열매가 크지, 작은 지 적고 그것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일까요?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따겠느냐?”왜 이런 비유를 드셨을까요?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싶어하시는 부분이 무엇일까요?

 

본문 17-18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이와 같이 좋은 나무마다 아름다운 열매를 맺고 못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나니 좋은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을 수 없고 못된 나무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을 수 없느니라.” 좋은 나무가 어떤 열매를 맺습니까? 아름다운 열매를 맺습니다. 못된 나무는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착각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나는 분명히 좋은 나무인데 왜 나쁜 열매를 맺을까? 저도 종종 그렇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혹시 여러분 가운데 나는 나쁜 나무인데 왜 이렇게 좋은 열매를 맺을 까? 걱정이 되고 이해가 안되는 분들이 계십니까? 아니면 나는 나쁜 나무이니까 나쁜 열매를 맺는 것이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아니면 나에게 지금 어떤 열매가 맺히는 가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이 없이 살아가고 계십니까? 요즈음 어떻게 지내십니까? 물어보면 그럭저럭 살아간다고 합니다. 참 어렵게 살아가는 것입니다.

 

서로 옆에 계신 분들에게 어떤 열매를 맺고 계십니까? 물어보십시오. 대답은 하지 마시구요. 뭐가 뭔지 잘 모르겠습니까? 우리가 지금까지 80, 70, 60, 50, 40년 살아오면서 과연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고 살아왔습니까? 아름다운 열매입닊따? 아니면 나쁜 열매입니까? 주님께서 원하시는 열매를 맺고 있습니까? 주님께서 우리에게 원하시는 열매가 무엇일까요?

 

그런데 우리는 열매를 누가 달아준다고 생각합니다. 열매는 달아주는 것이 아니라 맺는 것입니다. 달아주는 것은 크리스마스트리입니다. 저도 일전에 크리스마스트리에 달려있는 열매가 진짜인줄 착각할 때가 있었습니다. 과연 우리의 신앙생활은 크리스마스트리로 장식하는 것과 같지 아닌지? 주일날 교회에 나오면 열매를 붙였다가 교회에 나가면서 걷어가는 모습은 아닌가요?

 

성경은 열매에 대해서 많은 말씀을 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38절에 보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하십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지우리라.“다른 것 몰라도 이제 신앙생활 잘하겠다면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주님이 기뻐하시는 뜻 가운데 들어가야 합니다. ”누구든지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요 주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간다고 주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행하지 못하는 부분이 있다면 회개하고 돌이켜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중고등부 학생들에게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리라라는 제목으로 설교를 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에 학생들이 저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목사님 그 말씀은 너무 잔인하고 섬찍하지 않습니까? 그렇지만 주님의 말씀이잖아. 마태복음 310절에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미 도끼가 나무 뿌리에 놓였으니 좋은 열매 맺지 아니하는 나무마다 찍어 불어 던지우리라.”오랫동안 졿은 열매맺기를 그렇게 기다렸는데 주님의 심정이 어떠하셨을까요?

 

6월 달이 빠르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월드컵 경기가 있어서 그런지 더 빠르게 지나갑니다. 남은 시간 동안 하나님 이렇게 시간이 계속 가면 안됩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누가 열매를 맺어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있는 가정, 직장, 교회에서 열매를 맺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어떻게 열매를 맺어갈 수 있을까요? 요한복음 15장에 보면 우리가 붙어있어야 합니다. 누구에게요? 예수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붙어있지 않으면 저절로 맺을 수가 없습니다. 열매는 오토매틱이 아니라 스틱입니다. 주님께 붙어있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님들 한분 한분우리 주님께 붙어있기를 축원합니다.

 

우리가 주님께 붙어있다는 의미가 무엇일까요? 요한복음 157절에 보면 너희가 내 안에 거하고 내 말이 너희 안에 거하면” “붙어있다는 의미는 주님의 말씀 안에 거한다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720-21절에 보면 좋은 열매, 나쁜 열매를 구분하는 기준이 잘 나타나 있습니다. “이러므로 그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라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천국에 다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아버지의 뜻대로 항하는 자가 붙어있는 자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주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에 대해서는 관심이 덜하지 않습니까? 아직도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축복에 관심이 있지 않습니까? 이제는 우리가 주님의 뜻이라면 거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실 때 탄생부터 십자가 지시기까지, 주님은 순간순간마다 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루려 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공하는 것, 출세하는 것 우리에게 중요합니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우리 또한 매순간 마다 주님의 말씀을 이루는 일에 쓰임받는 생애가 되어야 합니다. 주님이 십자가 지실 때에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것처럼 우리 또한 주님 말씀하시면 나아가고 주님 멈추시면 우리도 멈추는 자가 되기를 소원합니다.

 

또한 성경은 좋은 열매가 어떤 것인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724-27절에 보면 우리가 잘 아는 반석위에 지은 집, 모래 위에 지은 집이 나옵니다. 시험이 왔을 때 모래 위에 지은 집은 다 무너집니다. 시험이 왔을 때 넘어집니다. 평소에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삶의 중심이 되어 있는 사람은 시험이 와도 넉넉히 이깁니다. 이것이 삶의 중심이 되지 않을 때는 시험이 오면 무너집니다. 당신은 시험이 오면 넘어지는 편입니까? 오히려 그 시험을 올수록 반석위에 든든히 세워지는 편입니까? 그렇다면 우리는 좋은 열매를 맺고 있는 것입니다.

 

또한 이 열매가 무엇인가에 대해 누가복음 643-45절은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못된 열매맺는 좋은 나무가 없고 또 좋은 열매맺는 못된 나무가 없느니라 나무는 각각 그 열매로 아나니 가시나무에서 무화과를 또는 찔레에서 포도를 따지 못하느니라 선한 사람은 마음의 쌓은 선에서 선을 내고 악한 자는 그 쌓은 악에서 악을 내나니 이는 마음의 가득한 것을 입으로 말함이니라.”

 

여기서 좋은 열매는 언어와 관계됩니다. 우리의 입에서 무슨 말이 나가는가? 언어는 자신의 마음에 쌓아온 것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악한 마음을 쌓아두면 악한 말이 나가고, 선한 마음을 쌓아두면 선한 말이 나가게 되어 있습니다. 말이 이렇게 나갈 때 우리는 쌓아온 것을 돌이켜야 합니다. 좋은 열매인지, 못된 열매인지 나가는 말로 우리는 확인할 수 있습니다.

 

열매는 사람 됨됨이입니다. 열매는 인격입니다. 지난번에 어떤 분이 그런 말씀을 하셨는데요, 신앙이 좋은 것과 인격이 좋은 것과 상관관계는 따진다면 어떻까요? 과연 여러분 주위에 신앙이 좋은 분 가운데 인격이 좋은 편입니까? 아니면 인격이 별로 입니까? 신앙은 좋은 분들 가운데 인격이 좋은 분이 많습니까, 아니면 안좋은 분들이 많습니까? 우리 주님은 열매를 원하십니다. 성령의 열매도 인격이요 성품입니다. 빛과 소금의 사명도 바로 우리의 삶과 인격적인 영향입니다. 우리 사회에서 기독교의 입지가 어려워지는 이유 가운데 하나가 교회에서 신앙은 좋은데 주의에서 끼치는 영향이 너무 미미하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변에 있는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면서 기독인들의 좋은 점들을 이야기하곤 합니다. 그때마다 불신자들의 반응은 목사님! 기독교인들 가운데 좋은 영향을 끼치면서 사는 분들이 솔직하게 얼마나 있습니까?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돈 앞에서는 신앙이고 뭐고 상관이 없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교회 안에서 신앙도 좋고 세상 사람들이 볼 때도 인격이 좋은 사람이 되었으면 좋겠니다. 만약 우리가 복음을 증거한다고 해도 그 사람 때문에 안믿는다고 하면 딜레마에 빠지게 됩니다.

 

과연 우리는 어떤 열매를 맺어야 할까요? 우리는 가정에서부터, 사랑하는 내 아내, 남편, 자녀들에게 내 믿음이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신앙생활 아무리 오래했다 하더라도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만약 우리가 아직도 믿음의 영향력을 끼치지 못한다면 사람들에게 밟히는 소금과 같습니다. 더 이상 우리는 무기력하게 시간만 보낼 수가 없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좋은 열매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우리는 말씀 안에 거해야 합니다.

 

무엇보다 믿음의 생활에서 영향력이 중요합니다. 나무와 열매는 됨됨이를 가리킵니다. 유대인들은 그 사람이 됨됨이를 가리킬 때 이 본문을 인용한다고 합니다. 결과도 중요합니다. 반드시 맺혀야 열매가 맺히기를 축원합니다. 열매를 맺어야 하는데 하면서 너무나 많은 시간을 보내고 있지 않습니까? 이제 우리는 남은 생애를 가정과 직장과 교회와 사회에서 아름다운 열매를 맺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아름다움 열매를 맺히지 않으면 찍혀 불에 던지운다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에 우리가 아름다운 열매를 맺지 않으면 지옥에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사람들이 알아주는지 몰라주든지 간에 좋은 열매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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