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교육

찬양대 세미나 강의안 10

by liefd 2025. 8. 5.
반응형

10. 찬양대 솔루션(Solution)

 

 

- 새로운 찬양대 개발의 문제 -

 

우리는 예배 회복을 통하여 교회 회복을 시도해야할 중요한 시기에 서있다. 교회는 점점 사역의 영역들이 확대되고 특히 예배 사역의 영역은 전문화되는 과정 가운데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교회에서 찬양대 사역에 대한 어떤 메뉴얼이나 찬양대를 이끄는 리더십에 있어서는 열악한 환경 속에 교회들이 준비하고 있다는 것이다. 찬양대에 대한 새로운 회복이 곧 예배의 회복과 더불어 교회의 성장과 부흥 그리고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예배를 드리게 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찬양대는 단순히 음악을 하는 집단이거나 예배의 순서를 돕기 위한 그룹 이상의 가치를 지니고 있는 기관이다.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찬양대 사역이 변화되고 개혁되어서 바른 사람들이 바른 예배를 드리고 찬양으로 봉사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1) 음악의 개발(Developing the music)

 

새로운 예배나 부흥을 위하여 음악을 발전시키는 것이 중요하다. 이것은 음악이 지니고 있는 고유한 힘을 새로이 시작하는 예배가 소유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예를 들어, 새로운 예배를 위해서 찬양대 또는 다른 음악그룹을 둘 수 있다. 아마도 이를 위해서 찬양대지휘자나 피아니스트 혹은 다른 음악 리더들이 함께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새로운 예배를 드리기 위해서는 이제부터 새로운 찬양대가 만들어져야 한다. 현재의 찬양대는 과감한 변화를 통해 다시 태어나야 하고 새로운 대원들이 충원이 되고 교회 전체가 찬양대에 대한 관심과 협력이 있어야한다.

 

새로운 예배를 시도하려면 새로운 찬양대가 있어야 한다. 지금과 같은 찬양대의 모습과 자질을 가지고는 고결함과 정체성, 생명력과 신뢰성을 갖지 못한다. 새로운 사역을 위한 새로운 조직이 시급하다. 그리고 예배의 종류에 따라 찬양대의 수도 늘려야 한다. 현재의 교회 상황은 새로운 성가대를 키우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러나 하나의 찬양대가 두 예배를 섬기는 것은 더욱 어려운 일이다. 그것은 자신들이 담당하던 예배에서 잘 하고 있는 찬양대에게 매우 불합리한 일이며, 새로운 예배의 참석자들에게도 부당한 일이다. 새로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 가운데에는 새로운 찬양대에 참여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

새로운 찬양대를 만들고 개발하기 위해 역점을 두어야 한다.

 

2) 새로운 찬양대지휘자(A New Choir Director)

 

당신이 새로운 예배를 추가하려 한다면, 새로운 찬양대지휘자 또한 추가해야 한다. 대부분의 교회에서, 이미 존재하는 지휘자는 파트타임 사역자이거나 자원봉사자이다. 새로운 예배는 11시 예배와는 다른 시간에 모이게 될 것이며, 가능하면 주중에 모이게 될 것이다. 새로운 예배에까지 음악 부분에 있어서 책임감을 요구하는 것은 주일 11시 예배에서 최선을 다하고 있는 파트타임 사역자나 자원봉사자에게는 새로운 예배까지 책임을 지우는 것은 매우 불합리한 요구가 된다. 그 사람이 지금 하고 있는 사역에 최선을 다하도록 도와라. 그리고 새로운 예배의 음악을 책임질 다른 사람을 선택하라.

 

현재의 예배를 위해서 파트타임 지휘자를 두고 있다면,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려 할 때 새로운 파트타임 지휘자를 임원회에 소개하는 것에 대해서 자유롭게 생각하라. 그 사람은 새로운 예배를 위해서 자신이 지닌 성실함으로 강력한 음악을 만들어 가는 최고의 위치에 서게 될 것이다. 음악은 새로운 예배를 통해서 당신이 돕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다가설 수 있도록 선곡되어 질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예배를 위한 비용과 새로운 예배가 교회재정에 미치는 영향에 대하여 걱정할 수 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우리가 새로운 지휘자를 채용할 만한 여력이 없다고 걱정할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들은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는 데 투자되는 모든 에너지들을 더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는데 투자되는 것이 낫다고 걱정할지도 모른다. 거기에는 단순히 교인들의 숫자를 늘리는 것이 더 많은 헌금을 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내재되어있는 것이다. 실질적으로 헌금은 늘어나는 것은 교회회원의 중가보다는 교회출석자가 많아야 된다고 말하는 것이 보다 정확할 것이다.

 

교회회원 수의 증가와 헌금 사이에는 아무런 상호관계가 없다는 것을 명심하라. 헌금의 증가는 예배 참석자의 증가와 서로 연관 있는 것이다. 많은 교회에서 교회의 회원 수는 증가하지만 예배참석자의 수는 정체하고 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헌금도 정체하고 있다. 헌금이 정체상태라면 당신은 예배의 참석자 수가 정체하고 있다는 사실을 항상 발견하게 될 것이다. 당신이 새로운 예배를 시작 한다면 당신은 새로운 헌금을 얻게 된 것이다. 새로운 예배를 위한 음악을 계발시키기 위해서 새로운 파트타임 지휘자나 피아니스트(혹은 음악 팀 혹은 이미 논의되어진 10가지 가능성들)를 위해서 물질을 투자하는 것은 매우 합리적인 것이다.

 

당신이 사용하게 되는 물질은 현명한 투자가 될 것이다 새로운 예배에 참석하는 사람들로부터 드려진 새로운 헌금은 당신이 처음에 투자한 물질을 상회할 것이다. 문제는 새로운 파트타임 찬양대 지휘자를 위한 물질이 아니다. 문제의 열쇠는 선교적인 입장에서 당신이 다가서기 원하는 사람들에게 의미가 되어 줄 방식으로 새로운 예배나 찬양대 모두를 즐겁게 성장시켜나갈 뛰어난 찬양대 지휘자, 피아니스트, 그리고 또는 기악 그룹을 찾아내는 것이다. 이러한 사람들을 발견하는 것은 지혜를 필요로 한다. 물질은 따라오기 마련이다.

 

 

3) 예배 인도자의 개발(Advancing the worship leadership)

 

새로운 예배를 추가하는 단계는 예배 인도자를 성장시키는 것이다. 처음 90-120명의 새로운 사람들 가운데에서 새로운 예배를 위한 리더십을 키워라. 당신은 새로운 사람들로부터 새로운 출석자 영접 위원, 안내 위원, 예배 인도자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새 사람들로부터 지역사회에서 가장 훌륭하고 가장 도움을 줄 수 있는 예배가 되기 위한 모든 예배의 요소들을 세워나갈 수 있다. 새로운 예배를 위해서 이미 11시 예배를 통해 봉사하고 있는 사람에게 리더가 되어달라고 요구하는 것은 도움이 되지 않는다.

 

이들에게 새 예배를 위해서 새로운 출석자 영접위원, 안내자, 예배 인도자 되어달라고 요청하는 것은 다음과 같은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이것은 그들을 좋은 일로부터 끌어내게 된다. 그들은 이미 11시 예배에서 즐겁게 일하고 있다.

 

한 가지 일에 온전히 헌신하지 못함으로 고통을 당한다. 만약 그들이 11시 예배에서 온전한 안내자라고 느낀다면 새로운 예배에서는 단지 돕는 사람이 라고 느끼게 된다.

 

새로운 사람들에게 새로운 출석자 영접위원으로, 안내자로, 자리 안내자로, 그리고 예배 인도자로서 봉사할 수 있는 기회가 차단된다.

 

당신은 이 새로운 예배를 통해서 섬김을 받고 도움을 받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새로운 예배를 위한 예배 인도자를 키워야 한다. 이것은 새로운 예배가 그 자체의 힘을 갖게 되는 것을 의미하며, 기존의 예배에 의존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게 하는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를 견고하게 하며 지역사회에서 당신 교회의 선교사역을 더욱 강화할 것이다.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라. 말 많고 침체된 예배에 당신의 시간을 투자하지 말라.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는 것은 마치 새로운 교회가 성장하는 것과 같다.

 

선교 그룹들을 발견하라. 비공식적인 준비를 행하라. 음악을 개발하라, 그리고 예배 인도자를 세우라. 새로운 예배는 새로운 사람에게 다가간다. 새로운 예배를 시작하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아직 전도하지 못한 사람들을 전도하기 위함이다. 그것을 멋지게 수행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당신의 전도사역을 도우실 것이다.

 

4) 현재와 미래에 대한 집중(Focusing on the present & the future)

 

우리는 개척자이다. 우리는 순례의 여정을 살아가는 사람들이다. 구약성경에 나타나는 하나님은 우리보다 앞서 가시는 하나님임을 알 수 있다. 그 분은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우리를 위해 약속하시고 준비하신 미래로 우리를 인도하신다. 신약성경에 나타난 하나님의 이미지는 무덤을 열고 부활하신 주님 그리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주시는 분이다. 우리는 과거에 묻혀 살 수 없다. 과거는 이미 지나간 사간이며 그저 과거일 뿐이다.

 

과거를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오직 두 가지 밖에 없다. 첫째는 이루시고 성취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일이며 둘째는 우리의 죄와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의 잘못들 대하여 용서해 주실 것을 간구하는 일이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서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우리 교회에 처음 출석한 사람들은 교회의 과거를 직접 경험할 수 없다. 사실, 우리 가운데 과거로 돌아갈 수 있는 사람은 한사람도 없다. 우리가 행한 것은 과거의 일이 뿐이다. 과거에 살았던 교인들은 더 이상 새로운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을 가질 수 없다. 이 시대와 앞으로 살아갈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새로운 사람들을 구원할 것이다.

 

당신이 현재와 미래에 초점을 맞춘 새로운 시도의 음악을 발전시키기를 권면한다. 이와 더불어 우리는 과거의 찬송들 그 중에서도 미래에 대한 비전을 담고 있는 노래들을 지속하여 부를 것이다. 애팔래치아에서 한 사회학자가 아주 흥미 있는 연구를 한 적이 있다. 그의 연구 결과 나무들을 자르고 오두막집을 지은 개척자들은 새롭고, 약속된 땅을 건설하고 있다는 확고한 희망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들이었다는 것이다. 그가 얻은 또 다른 결론은 그들의 후손들은 오늘날 미래에 대한 아무런 희망도 없이 무미건조하고, 무기력하며, 절망적으로 생계를 유지해 가고 있다는 것이다. 그의 연구를 진행하는 가운데, 어느 주일아침 다음과 같은 노래를 들을 수 있었다.

 

우리는 강가에 모이리," "안식의 땅에 거하리," "오래지 않아 즐거움에 거하리 이러한 노래는 과거를 회상하는 노래가 아니다. 이것은 미래의 희망에 대한 노래이다. 그 희망은 저 강 넘어 다음 세계에 연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찬송은 뒤를 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앞을 바라보는 것이다. 사람들은 현실과 가까운 미래 그리고 먼 미래에서 그들이 바라는 희망을 현실화 할 수 없음을 깨달을 때 그들은 그 희망을 저 강 넘어 다음 세계에서 기대하게 된다. 사람들은 기억보다는 희망을 바라보고 살아가는 것이다.

 

이 말의 의미는 과거의 음악 모두를 포기하라고 말하지 않는다. 지금 우리가 과거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많은 음악들 또한 그 당대에 있어서는 선구자적 음악이었으며 미래를 지향했던 음악이었다. 과거의 훌륭한 음악에 대하여 감사하고 미래에 대한 개척자적 정신 즉 하나님께서 복음전파를 향해 앞으로 전진 하도록 우리를 부르셨다는 정신으로 우리를 돕는 음악을 향하여 나아가야만 한다. 음악에 담겨진 이러한 정신은 당신 교회의 전도사역을 축복하게 될 것입니다.

 

당신의 예배 가운데 음악이 다음과 같은 역할을 하도록 해야만 한다.

 

사람들을 교회 안에 머무르게 만들기보다는 전도현장으로 나아가도록 만들어 야 한다.

 

개체성과 공동체 그리고 의미와 희망을 추구하는 인생의 근본적인 열망에 도 움을 주어야 한다.

 

복음과 부활의 능력을 함께 나누어야 한다.

 

사람들이 희망과 긍정적인 미래를 소유하도록 만든다.

 

전도에 초점을 맞춘 음악은 교회를 전도현장으로 나아가도록 만든다. 그러나 오직 교회 내부에만 초점을 맞춘 음악은 교회를 전도현장으로 나아가도록 도울 수가 없다. 당신의 회중들이 전도현장에서 사역하도록 도울 수 있는 음악을 노래하고 연주해야만 한다. 그리고 찬양대는 그 일을 위하여 돕는 그룹이 되어야한다.

 

음악을 살리는 것은 단순히 음악을 좋고 질적으로 높이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좋은 음악은 좋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다.

 

신령한 음악은 신령한 사람에게서 나온다. 그러므로 찬양대원, 찬양대 지휘자, 찬양대장 등은 우리 교회의 예배를 살리고 역동적인 예배 사역을 하기 위해서 새롭게 태어나야 한다.

 

 

반응형

'교육'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예배의 삶(요 4:23-24)  (5) 2025.08.11
신약의 재물관 2  (3) 2025.08.07
찬양대 세미나 강의안 9  (3) 2025.08.05
찬양대 세미나 강의안 8  (6) 2025.08.05
찬양대 세미나 강의안 7  (1) 2025.08.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