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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광야를 읽다, 이진희

by liefd 2023. 1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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들어가는 말

광야로 들어가다, 인생의 광야, 하나님과 함께 하라

광야는 아무 것도 없는 곳이다. 그뿐만이 아니다. 광야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곳이다.

이런 절망적인 광야에 딱 하나 있는 것이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바로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광야로 몰린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은 늘 우리 곁에 계신다.

광야는 샘이나 우물이 없다. 그 대신 오아시스가 있다.

생텍쥐페리는 어린 왕자에서 광야가 아름다운 것은 어딘가에 오아시스가 숨어 있기 때문이라고 했다.

 

광야에서는 축복이 아닌 은혜를 구하라.

우리는 광야를 지나면서 축복 타령을 할 때가 얼마나 많은가? 하나님의 은혜로 무사히 광야를 벗어나게 해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우리는 복을 받지 못해도 살아갈 수 있지만, 은혜 없이는 살아갈 수 없다. 복은 불편함과 관련된 문제이다.

그러나 은혜는 생존과 관련된 문제이다.

 

1장 암갈색, 우리 인생에도 잿빛 광야의 시기가 있다

 

광야에서 만나는 어려움들은 경제적, 사회적 인간 관계적인 면에서 불쑥 나타나 우리를 괴롭힌다.

우리가 만나는 여러 종류의 광야는 가나안에 이를 때까지 계속 될 것이고 우리는 그 광야를 견뎌내야만 한다.

가나안에 들어가려면 반드시 광야를 통과해야 한다. 그것이 하나님의 방식이다.

출애굽기에서 민수기, 신명기로 가면서 점점 더 진한 암갈색으로 변하게 된다.

푸른색빛깔은 신명기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게 되는 여호수아서에 가서야

서서히 나타나기 시작한다.

 

2장 양, 광야에서는 목자의 돌봄이 절실하다

 

시편 23편에 나오는 의의 길은 우리가 생각하는 올바른 길이 아니고 양들이 다니는 길을 말한다.

양들이 하루종일 꼴을 찾아 험한 산길을 헤매다가 우리로 돌아오면 목자는 양들에게 기름을 발라 준다.

여기저기 찢기고 상처 난 양들을 치료해 주는 것이다.

이 노래는 끝없이 펼쳐진 초원에서 부르는 노래가 아니라 황량하고 삭막하고만 한 암갈색 광야에서 부르는 노래이다.

동물학자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것 가운데 인간이 돌봐주지 않았으면 지구상에서 가장 먼저 사라질 피조물로 양을 꼽는다. 하지만 목자만 있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3장 나침반, 방향만 정확하면 광야도 두렵지 않다

 

사막에서는 성공이 목표가 아니다. 정상에 오르는 것이 목표가 아니다. 무사히 빠져나가는 것이 목표다.

살아남는 것이 목표다. 광야에서는 살아남기만 해도 성공한 것이기 때문이다.

20-30대는 인생이 마치 산에 오르는 것 같이 보인다. 그러나 40-50대가 되면 인생이 다르게 보이기 시작한다.

인생은 정상을 향해 오르는 것이 아니라 언제 끝날지 모르는 사막을 지나는 것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성경은 정상에 오르는 법을 가르쳐 주지 않는다.

어떻게 광야의 길을 무사히 걸어갈 수 있는지, 어떻게 약속의 땅 가나안을 들어갈 수 있는지를 이야기한다.

산을 오를 때에는 지도가 필요하지만, 광야에서는 나침반이 필요하디.

광야를 통과하는 방법은 더 깊숙이 광야로 들어가는 것 뿐이다.

광야를 무사히 통과하는 것이 성공이다.

 

4장 베두인, 생각을 바꾸면 광야가 즐겁다

 

베두인들은 환대를 중요시한다. 광야는 혼자서는 살아남기 어려운 곳이기 때문이다.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죽을지도 모른다. 그렇기때문에 누구든 손님으로 맞아들이고 대접을 하는 것이다.

베두인은 낯선 사람이 오면 사연도 묻지 않고 무조건 받아들인다. 이름도 성도 묻지 않는다.

일단 손님으로 받아들인 사람은 목숨을 걸고 지켜 준다. 이것이 베두인의 환대문화다.

 

5장 수도원, 더 깊은 광야로 들어가 하나님을 만나다

 

광야는 절대 고독과 절대 침묵만이 흐르는 곳이다. 하나님은 자신을 나타낼 장소로 바로 그 광야를 선택하셨다.

광야는 하나님이 만나는 장소이다.

사람들이 왜 광야로 나갔는가? 예언자들에게 들려주신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서다(3:1-2).

 

카톨릭 신학자 까를로 까레또는 도시의 광야라는 책에서 "나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마련하라"고 했다.

또 당신이 광야로 갈 수 없거든 당신의 생활 속에 광야를 만들라고 했다.

헨리 나우웬은 광야의 영성을 한 마디로 하나님과 함께 그리고 그분하고만 혼자 있을 수 있는 시간과 장소를

따로 마련하는 것이라고 했다.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는 광야를 가질 수 있다.

일상생활 속에서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하고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할 수 있는 광야를 만들 수 있다.

 

6장 장막, 베두인에게서 떠남의 미학을 배우라

 

배두인에게 있어서 소유는 큰 의미가 없다.

광야 전체가 내 땅이고, 아무 데서도 살아도 누구 하나 뭐라 하는 사람이 없다.

그렇게 장막을 치고 살다가 양들에게 먹일 꼴이 떨어지면 미련없이 장막을 거두어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

베두인들은 평생을 그렇게 산다.

 

나그네는 항상 떠날 준비를 한다.

영화, 지붕 위에 바이얼린을 보면 러시아의 아나태브카라는 마을에 살던 유대인들이 하루 아침에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받게 된다. 마차에 짐을 싣고 떠나는 주인공 테브예가 이렇게 말한다. ”왜 항상 머리에 모자를 쓰고 있냐고요?

그것은 우리가 늘 떠날 준비를 하고 있기 때문이지요.

나그네는 짐이 없어야 한다. 그런데도 이사 갈 때마다 살림이 늘어나는 것을 볼 수 있다.

 

나그네의 삶은 자족하는 삶이다.

광야를 지나고 있는데도 가나안에 살고 있는 것처럼 살려고 한다면 불평불만이 생길 뿐이다.

인생의 광야를 지나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황금이 아니라 생수를 주신다.

지금까지 우리가 그 어렵고 힘든 광야를 지나오면서 쓰러지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말씀의 생수, 은혜의 생수, 성령의 생수 때문이었다.

광야를 지날 때에는 쌓아 두지 못한다고 불평해서는 안된다. 일용할 양식만으로도 감사해야 한다.

 

7장 오아시스, 지독한 갈증이 생수의 참 맛을 알게 한다

 

디즈니 만화 영화, 이집트 왕자를 보면 사막에서는 많은 황금보다 작은 생수가 더 귀하고 길 잃은 양에게는 양보다 목자가 더 필요하다."고 한다.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온 시내광야에는 450여 개의 오아시스가 있다고 한다.

교회에 와서 예수님을 통해 생수를 마시는 사람은 결코 광야와 같은 세상에서 쓰러지지 않을 것이다.

광야를 무사히 통과해서 가나안에 들어가게 될 것이다.

 

8장 그늘, 광야에서는 로뎀나무 그늘이라도 찾아가야 한다

 

교회는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이들에게 그늘이 되어 주는 곳이다.

지나가는 나그네들이 아브라함이 심어 놓은 에셀나무 아래에서 쉬었듯이, 엘리야처럼 지친 영혼들이 와서 쉼을 얻고

회복하게 해주는 로뎀나무와 같은 곳이 바로 교회다.

 

9장 가이드, 혼자 타고 생각할 때 손 내미는 이가 있다

 

광야에 들어갈 때는 두 가지가 필요하다. 하나는 낙타이고, 또 하나는 가이드다.

돌아서 가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돌아가게 하실 때는 다 이유가 있다.

반드시 지름길이 좋은 것만은 아니다. 때로는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한참 돌아가게 하시는 것도 하나님의 은혜다.

 

10장 낙타, 광야에서 로프가 아닌 낙타를 사라

 

낙타는 자기 짐을 지지 않는다. 주인이 실어주는 짐을 진다.

우리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우리에게는 하나님을 위해 져야 할 짐이 있다.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이 지워주시는 짐은 지지 않고 우리 짐만 지고 있다.

"빨리 가려면 혼자 가라. 멀리 가려면 같이 가라"는 말이 있다.

 

11, 이슬, 인생의 광야를 적시는 이슬 같은 은혜가 있다

 

광야에는 비가 내리지 않는 대신 이슬이 내린다. 매일 밤 수억개의 이슬 방울들이 내린다.

그것이 사막을 살린다(16:13-14).

만나는 이슬이 내린 자리, 이슬이 사라진 자리에 생겼다.

 

사막에 사는 여우는 바위에 맺힌 이슬을 핥아먹고 산다. 개구리는 머리와 눈 근처에 내린 이슬을 씻어서 핥아 먹는다.

뱀은 제 몸을 굽혀 돌려서 등에 내린 이슬을핥아 먹는다. 그러면 입이 등에 닿지 않는 풍뎅이는 이슬을 어떻게 먹을까?

풍뎅이는 자기의 몸에 내린 이슬을 먹기 위해 머리를 땅으로 낮게 내린다.

광야를 지널 때에는 이슬같이 내려 주시는 은혜에도 감사해야 한다.

광야를 지나면서 장맛비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날마다 내려 주시는 이슬에 만족해야 한다.

이슬 같은 은혜와 축복만으로도 광야에서 충분히 벼텨 낼 수 있다.

 

12, 싯딤나무, 견딤의 은혜로 광야를 통과하라

 

모든 살아있는 것들은 무엇인가 견뎌내며 살아가고 있다.

광야와 같은 인생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견딤의 은혜다.

버텨내는 것이 살아남는 것이다.

시련과 고통과 연단을 통해 인생의 마디가 만들어지고 그로 인해 우리 인생이 더욱 더 강해지는 것이다. 모든 시련은 언젠가 끝난다.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잘 참고 견디면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 받을 수 있을 것이다.

 

 

13. 떨기나무, 광야의 어떤 위협도 우리를 해칠 수 없다

 

하나님은 불붙은 떨기나무 같이 어떤 상황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어떤 시련이나 연단, 고통, 위협의 불이 우리를 불사르고 삼키려 해도 하나님은 그 모든 것들로부터 해를 받지 않도록

우리를 지켜 주실 것이다.

 

14장 백합화, 은혜의 장대비가 내리면 광야에도 꽃이 핀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여시고 은혜의 비, 축복의 비를 내려 주시면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도 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사막이 원래부터 사막이었을까 아니다.

지금 사막의 대부분은 바닥이거나 아니면 평원이었다고 한다.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지 않으면 지금의 초원도 언젠가는 사막이 되어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비를 내려 주시면 지금의 사막도 푸른 초원이 될 수 있다.

사막으로 시집을 간 중국의 여인 인위찐은 사막을 숲으로 만들기로 결심하고 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사막과 같은 우리 인생에도 하나님의 말씀의 생수가 흘러 들어오면 우리의 심령과 가정과 인생이 꽃처럼 활짝 피어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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