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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원수를 이렇게 대하라(로마서 12:19-21),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5. 8.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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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 소설의 주제는 권선징악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권선징악이란 선한 것을 권하고 악한 것을 벌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동사양을 막론하고 그렇게 사회가 제대로 작동하게 됩니다. 그런데 아직도 어떤 나라에서는 권선징악이라 아니라 권악징선이 통하는 나라가 있습니다. 악한 것을 권하고 선한 것을 벌하는 거꾸로 가는 나라가 있습니다. 성경은 어떻게 교훈하고 있을까요? 로마서 12 9절입니다. 사랑에는 거짓이 없나니 악을 미워하고 선에 속하라.

 

우리는 세대를 본받지 말고 마음의 변화를 받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뜻대로 자신을 드리기를 힘써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몸이 되어 서로 지체가 되었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합니다. 각자의 은사대로 은사를 발휘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과의 관계에 있어서는 존경하기를 먼저 하며 대접하기를 힘써야 합니다. 무엇보다 서로 마음을 같이하며 스스로 지혜있는 자처럼 하지 말아야 합니다. 오늘은 도저히 용서가 안되는 사람, 원수와 같은 사람에게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해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마이어의 [용서의 심리학]이란 책이 있습니다. 저자는 하나님은 무서운 힘으로가 아니라 사랑과 용서의 부드러운 힘으로 악을 선으로, 원수를 친구로 만들고 우리들 미음 속에 평화가 넘치게 해줍니다. 용서는 지극히 열악한 상황에서 지극히 선한 것을 이끌어 내는 기적과도 같습니다. 저자는 자신의 어머니가 조언해 주신 말을 인용합니다. 사람들이 네게 야비한 짓을 저질렀을 용서하지 않으면 너만 상처를 입는다. 그들은 전혀 신경을 쓰지 않는다고충고하곤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어떻게 하기를 원하실까요? 로마서 12 7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은 인간적입니다. 선을 악으로 갚는 것은 마귀적입니다. 악을 선으로 갚는 것은 신앙적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 때문에 화가 났다면 당신은 사람에 정복된 것과 같습니다.

 

1.자신을 너무 힘들게 하는 사람을 만날 어떻게 해야 할까요?

 

로마서 13 17절입니다.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어떤 사람에게는 악을 악으로 갚고 싶은 사람이 있습니다. 도저히 사람은 안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너무 힘들게 하기 때문입니다. 하는 스타일이 너무 마음에 들지 않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렇게 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도 이해해 주실 꺼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무에게도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구제불능이라고 생각되는 사람에게도 선한 일을 도모하라고 하십니다.

 

악을 악으로 갚고 싶은 마음을 갖는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지 모릅니다. 도저히 이해할 없고 힘든 시간을 보냈기 때문에 그냥 넘어갈 없다고 생각하는 자체가 충분히 이해가 됩니다. 지금은 내기 힘이 없어서 당하고 있지만 언젠가 내가 힘을 키워서 반드시 복수를 하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유가 어째튼 복수의 칼을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에게 일이 풀릴까요? 누구에게 심한 상처를 받은 사람은 죽을 때까지 용서하지 않겠다고 말합니다. 이런 태도는 건강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어 예상보다 일찍 유명을 달리하기도 합니다. 찰리 존스는 상처를 받았을 용서를 거부한다면 자기 연민과 복수심에  사로잡힐 뿐이다라고 했습니다.  

 

[상도]라는 책에 보면 임상옥이 절에 들어갑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를 억울하게 죽음으로 몰고간 박주명으로 복수심으로 가득 있었습니다. 임상옥에 스님에게 하산하겠다고 하지 자신의 주먹진 손을 내밀며 묻습니다. 손안에 무엇이 들어 있으냐?그리고 답을 알기까지는 절에 계속 있으라고 합니다. 임상옥은 화두에 계속 집중하다가 어느 깨닫습니다.

 

그는 스님에게 자신의 주먹을 내밀며 안에 있는 것이 무엇입니까? 스님은 칼이라고 답합니다. 임상옥도 스님 손에는 칼이 있다고 답합니다. 스님은 손에 있는 칼은 어떤 칼이냐고 물으십니다. 멈칫하는 임상옥에게 안에는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이롭게 있는 천개의 칼이 있지만 임상옥에는 단지 사람을 죽이는 하나의 검이 있다고 합니다. 같은 화두이고 같은 검이지만 검이 사람을 살릴 수도 있고 죽일 수도 있고, 천개의 칼을 가지면 가슴의 원한도 떨쳐버릴 있다고니다.

 

2.원수를 내가 갚지 않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까요?

 

본문 19절입니다.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갚으라고 하셨나요, 아니면 갚지 말라고 하셨나요? 하나님께서는 원수를 갚으라고 하셨습니다. 그런데 누가 원수를 갚아야 할까요? 내가 갚아야 할까요? 하나님이 갚아주실까요? 하나님께서는 너희가 직접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원수를 갚아주시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명기 32 35절에는 이스라엘의 원수들은 교만하고 강하지만 그들이 실족할 때를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자신이 간섭하여 택한 백성을 구원하기에 적절한 순간이 언제인지 정확하게 아십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원수를 갚으시고 우리의 구원을 약속하십니다. 보복과 처벌은 우리의 특권이 아니라 하나님의 특권입니다.

 

그래도 원수를 내가 깊고 싶은데 어떻게 해야 합니까? 그런 경우라도 악을 악으로는 갚지 말라고 하십니다. 도저히 참을 없는 상황에서도 원수를 저주하지 말아야 합니다(14). 그러고 싶은데 그렇게 하면 안되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악을 악으로 갚으면 악에게 지기 때문입니다. 악을 악으로 갚으려고 우리는 다른 악을 행하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계속해서 악순환이 일어나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은 어떠한 상황에서도 보복과 복수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우리는 말로 쏘아붙이거나 괴롭히는 자들에게 되갚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물론 법정에서는 악을 행하는 자가 벌을 받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개인적인 경우에는 상처를 받았다고 해서 상처를 입히지 말아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 9절입니다.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벤자민 프랭클린은 상처를 가하는 행위는 스스로를 원수보다 못한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고, 복수하는 것은 스스로를 원수와 대등한 위치에 올려놓는 것이며, 용서를 베푸는 것은 스스로를 원수보다 나은 사람으로 만드는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본문 19절에 보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친히 원수를 갚지 말라고 하신 이유는 이렇게 하는 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고 아끼시기 때문에 그렇게 하라는 것입니다.

 

마음속에 남아 있는 복수에 대한 원한이 그대로 남아있는데 어떻게 제거해야 합니까? 원한을 제거하기 위한 번째 단계는 그것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렇게 되었는지를 밝혀내야 합니다. 번째 단계는 현재 자신이 어떤 상태에 있든지 스스로 자신을 용서하고 또한 과거에 당신에게 중요한 존재였던 사람들이 당신에게 했던 행동과 사람들을 용서하는 것입니다. 당신이 아직 조금이라도 보복하려는 노력을 하고 있다면 원통한 감정은 제거될 없습니다.

 

루이스 스미즈는 이것을 다음과 같은 말로 표현했습니다. “용서하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같습니다. 우리는 모두 그것을 조금씩 배워야 필요가 있고, 온전히 배우기까지는 많은 갈등이 따르게 마련입니다. 많은 사람은 용서하기 원하는 마음과 보복하고자 하는 가지 마음의 갈래길에서 발은 이쪽에, 다른 발은 저쪽에 놓고 삽니다. 우리는 고정된 상태에서 꼼짝 못하고 묶여버리고 맙니다.

 

과거에 상처를 주었던 사람을 용서한다는 것은 사람에 대한 불신과 원통한 마음을 버리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변화되는 것입니다. 원통함을 품는다는 것은 자신의 감정 상태를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조정하게 내버려두는 것을 의미합니다. 권한을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대신에 예수 그리스도께 맡겨드리고 그분이 가운데 역사하시도록 허용하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모욕하고 비난하고 저주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십자가에 못박히신 주님을 생각할 때에 우리의 가슴 속에 있는 원한의 칼이 벤허처럼 뽑혀나가게 것입니다.

 

3.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21절입니다. 악에게 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우리는 악을 피하거나 지지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야 합니다. 그런데 선으로 악을 이기라고 하면 어떤 느낌이 되십니까? 나만 손해보고 억울하다는 생각이 들지 않습니까? 악을 악으로 갚으면 손해를 보게 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은 악을 멈추게 하는 하나님의 대안입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자기를 사랑하는 자에게는 악을 선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창세기 50 20절입니다.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뿐만 아니라 형들은 아버지 야곱의 죽음으로 요셉이 보복하지 않을 두려워하였지만 오히려 요셉은 이렇게 말합니다. 21절입니다.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출애굽기 23 4, 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원수에 대하여 어떻게 대할 것을 교훈해 주셨습니다. 네가 만일  원수의  잃은 소나 나귀를 보거든 반드시  사람에게로 돌릴지며 네가 만일 너를 미워하는 자의 나귀가 짐을 싣고 엎드려짐을 보거든 그것을 버려두지 말고 그것을 도와  짐을 부릴지니라. . 원수의 소나 나귀가 짐을 싣고 가다가 지쳐서 쓰러져 있을  가서 일으켜 세우며 도와주는 갓이 원수 사랑의 구체적인 예입니다.

 

선으로 악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본문 20절입니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가장 필요한 순간에 도움을 제공하라는 것입니다. 원수 깊는 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의 책임은 원수가 위기에 처할 그의 필요에 따라 사랑하고 섬기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그에게 최선을 도움을 주라는 것입니다.

 

잠언 25 21, 22절입니다. 원수가 배고파 하거든 음식을 먹이고 목말라 하거든 물을 마시게 하라 그리하는 것은 숯을 그의 머리에 놓는 것과 일반이요 여호와께서 네게 갚아 주시리라. 원수가 배고파 먹이고 하고 목말라 물을 마시도록 하는 것이 원수를 사랑하는 구체적인 행동입니다그렇게 하나님께서 네게 갚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원수를 대신 갚아주실 아니라 나의 손실과 상처와 아픔에 대해서 보상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그에게 쌓을 숯불은 상처를 주려는 것이 아니라 치유하려는 것입니다. 사실상 그를 부끄럽게 해서 회개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것은 단순히 원수를 사랑하는 것으로 기치는 것이 아니라 악과 싸워 악을 이기는 싸움입니다.  나를 그렇게 힘들게 하고 고통을 안겨주었던 사람에게 이렇게까지 해야 이유가 무엇입니까? 상대가 이뻐서 그렇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이 좋아서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좋기 때문에 하는 것입니다. 17절에 의하면 선한 일을 도모하라 것이 이런 의미입니다. 선한 일을 이루려고 수단과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말합니다. 여기서 말하는 선한 일이란 피해자로서 그의 원수를 사랑함으로써 그로 하여금 마음의 고통을 느껴 회개하도록 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머리에 쌓아 놓는 것입니다.  

 

"생후 20개월 만에 고속도로에서 연쇄충돌로 순식간에 숯덩이가 되었다가 기사회생하여, 어린 몸으로 50 차례의 수술을 받은 비운의 청년 조엘 군의 아름다운 믿음이 담긴 이야기입니다. 그는 사고 18 만에 열린 법정에서 가해자 운전사에게 말했습니다. 도트 , 당신은 저와 저의 아버지, 어머니의 행복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을 위한 수많은 사람들의 기도는 빼앗지 못했습니다.

 

저는 사고 이후부터 저를 환영하지 아니하는 세상 속에서 성장해야 했습니다. 제가 사람들 눈에 인간으로 보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저는 집이라는 안전한 울타리를 벗어날 때마다 질식할 같은 응시와 저것 ! 이봐, 가면 벗지 그래! 입맛 떨어져! 같은 모진 말로 공격을 받아야 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증오심으로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것입니다. 원망과 절망이 다른 고통을 낳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그렇습니다. 증오하며 살기에는 인생이 너무 짧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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