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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위험한 순종, 케이 워렌(릭 위렌의 사모)

by liefd 2025. 12.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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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적 관계는 궁극적으로 순종으로 시작해서 순종으로 끝난다. 순종이란 하나님께 예라고 말하는 것이다

아픈 마음 때문에 이 세상에 하나님의 목적이 이루어진다면 하나님이 당신의 마음을 아프게 하신 것에 감사하라(오스월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에이즈 환자를 돌보라는 하나님이 주시면 사명에 순종할 것인가? 모른 척 할 것인가? 드디어 하나님께 라고 멀했다. 그 순간 내 마음이 무너져 내리면서 제 자신이 산산조각 깨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마치 하나님이 내 마음을 붙잡아서 쇄목기(나무를 잘게 부수는 기계)에라도 집어 넣으시는 것 같았다.

 

은행에 약간이라도 저금한 것이 있고, 지갑에는 현찰이 좀 있고, 집에 남아도는 그릇이 있다면 그 사람은 세상 8%에 해당하는 최고 부유층의 한 명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있는 시간과 돈과 물질을 오로지 우리 자신과 가족에게만 사용하고 있다는 데에 양심의 가책을 느껴야 한다. 그것이 올바른 죄책감이다.

 

예수님을 자신의 구세주로 인정하는 신앙들조차 날마다 삶에서 자신의 뜻을 굽히고 하나님의 뜻에 순복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 우리는 너무나 자만에 차 있고, 자신 맘대로 결정하는 일에 너무도 익숙해져 있다.

하나님의 뜻을 발견하는 일에 마치 폴라로이드 카메라 사진을 현상하는 일과 같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그저 짙은 회색 일뿐 아무런 형상도 보이지 않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지나면서 조금씩 물체의 형상이 또렷해진다.

 

하나님이 내 기도에 응답을 잘 해주신다고 내가 믿음이 좋은 사람이 아님을 알게 되었다. 도대체 하나님이 무엇을 하시는지 궁금하고 답답해도 변함없이 감사하며 섬기는 사람이 진짜 믿음이 좋은 사람이다.”(게리 토마스)

 

하나님은 평범하지만, 자기가 가진 모든 걸 하나님께 드리는 사람을 사용한다는 내용의 평범한 사람들이란 노래를 통해 기쁨과 평강의 눈물이 찾아왔다.

하나님 아버지 잘난 게 없다고 늘 불평하고 투정부려서 정말 죄송합니다. 이제부터는 저를 평범하게 만들어 주신 사실을 기쁘게 받아들이겠습니다. 언제든, 어디든, 무엇에든 당신 마음대로 저를 사용해 주옵소서.

 

마리아는 어떤 결과가 올지 알지도 못한 채 주의 여종이오니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1:38)라고 순종했다. 얼마나 위험한 순종인가?

 

프랑스 사제 페놀롱, “다른 조건에서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고, 특정 조건에서만 섬기겠다고 말하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자기 맘대로 섬기겠다는 말이다. 그러나 순종에 조건을 달지 않는 것이 진정으로 자신에 대해 죽는 것이다.”

 

하나님은 이 세상 문제에 대해 당신의 마음이 심란해지기를 바라신다. 하나님은 남녀노소 국적을 불문하고 하나님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사람들을 찾고 계신다.

 

라는 대답이 장차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여전히 당신은 하나님께 라고 말하겠는가?

하나님께 순종하지 못하는 최대의 걸림돌은 인간의 욕심이나 비뚤어진 욕망이 아니라 자기 인생을 자기가 알아서 살겠다는 태도다.”(게리 토마스).

 

고통 받는 사람들을 도와주라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지 못하는 이유는 한 마디로 고통 받는 사람들보다 나 자신을 더 소중히 여기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가장 먼저 언급하신 자기 부인은 위험한 순종의 핵심요소라고 할 수 있다.

우리가 지고 가야 할 십자가는 예수님을 위해서라면 어떤 결과도 강구하겠다는 전적인 순종의 태도를 말한다.

 

하나님은 날마다 우리의 삶 속에 일어나는 상황과 역경을 통해 십자가를 지고 자기 스스로에게 죽어야 할 기회를 부여하신다. 상황이나 역경 자체가 십자가는 아니다. 다만 그 상황을 어떤 식으로 헤쳐 나가느냐 하는 것이 십자가를 졌는지의 여부를 측정하는 잣대가 된다. 예를 들면 병이 낫기를 기다리는데 낫지 않는다. 자녀가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 볼 수밖에 없다. 아이를 갖고 싶지만 임신이 되지 않는다. 취업을 해야 하는데 직장을 구할 수가 없다. 이런 상황들이 우리가 하나님께 순종하느냐 마느냐를 증명하는 기회들이다. 우리는 욥의 아내처럼 하나님을 욕하고 죽으라고 말할 수 있다(2:9).

 

순종의 기도는 우리의 인생을 획기적으로 전환시키는 힘이 있다. 순종에는 언제나 평강이 따른다.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십자가를 거부하고 살아가는 삶이 십자가를 진 삶보다 훨씬 견디기가 힘들다.

부활하신 주님이 베드로에게 그래 네가 정말로 나를 사랑한다면 나를 사랑한 결과가 어떻게 되는가를 알려 주마라고 하시는 것처럼(21:18-22).

 

주님의 뜻을 발견하는 게 우리가 할 일이 아니다. 주님을 따라가는 게 우리의 할 일이다.

확실한 것을 믿는다면 그건 믿음이 아니다. 하나님만이 확실한 분임을 믿는 것이 진짜 믿음이다(오스왈드 챔버스, 주님은 나의 최고봉).

 

성경에 보면 고난과 시험이 우리의 믿음을 드러내어 진짜 색깔을 보여 준다고 했다.

나는 고통 중에도 하나님은 선하시다는 불변의 진리를 믿었기에 하나님을 떠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달려갔다.

얼마나 살지는 내 뜻대로 할 수 없으나 어떻게 살지는 내 뜻대로 할 수 있다는 사실에 평정을 찾았다. 할 수 있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고 할 수 없는 일은 하나님께 맡기자.

 

어떤 어려움과 위기가 닥치든지 우리에게는 두 가지 선택권이 주어진다. 하나님께 달려가거나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달아나는 것이다. 하나님께 달려간다고 고통이 없어지거나 불가능한 상황이 갑자기 돌변하지는 않는다. 하지만 우리가 겪는 고통이 의미 있는 고통이 된다.

 

베스 모여 여사, “하나님께 순종하기로 결심했을 때 과연 하나님이 무엇을 요구하실지 겁이 나서 완전히 순종을 하지 못하는 경향이 인간 모두에게 있다. 불행은 오고 있고 누구나 불행을 겪을 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모든 것을 드린 사람은 불행이 올 때 절대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지 않습니다.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는 사람은 두려움, 걱정, 혼동, 당황, 외로움을 겪게 되고, 고난의 시기에 하나님께로 달려가는 사람은 그분의 위로, 자비, 인도, 힘을 받게 된다.”

 

자신의 잘못에 쏟아지는 비난의 화살을 피하기 위헤, 혹은 불의에 맞서는 사람을 핀잔주기 위해 '비판을 받지 않으려거든 비판하시 마세요'라는 말씀을 인용하면 안된다. 예수님은 비판 그 자체가 잘못되었다고 말씀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이 다른 사람을 평가하는 잣대로 동일하게 평가를 받게 된다는 것이다.

 

헨리 나우웬이 말했듯이 제대로 거울을 본 사람은 달라져야 한다. 인간은 누구나 동일하다는 사실을 깨닫고 인정한 사람은 이 땅에 오신 주님의 은혜를 받게 된다.

 

남을 고쳐보려고 애쓰는 대신에 그를 위한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다.

 

사람은 몸이 아프면 다른 사람과의 신체적 접촉을 한층 더 그리워한다고 한다. 그들의 어깨를 감싸 안고 뺨에 입을 맞추어 주고, 따뜻하게 악수를 나눈 행동은 모두가 그들이 여전히 사랑스럽고 존귀하고 소중한 존재라는 사실을 확신시켜 주기 위함이다. 예수님이 손수 우리에게 그와 같은 본을 보여 주셨다. 신체적 접촉은 용남과 사랑을 전달하는 통로다. 무언중에 나는 너를 깊이 마음속에 두고 있다는 점을 전하는 것이다.

 

콘스탄츠 목사는 다음과 같이 말했다. ‘고아가 된 아이를 보거나 에이즈 환자를 대하거나 그런 일로 가슴이 무너질 때마다 하나님의 가슴도 무너진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이 죽어가는 사람을 보면서 울 때 하나님의 얼굴에도 눈물이 흘러내린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어떤 만행이나 고통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고 이 세상의 악한 인간들을 모조리 없애 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 때 하나님의 심정은 그보다 더 절실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여러분은 지금 하나님이 이 악한 세상에 대해 느끼시는 아픔의 일부분만을 맛보고 있을 뿐입니다. 여러분이 그런 아픔을 그대로 받아들인다면 하나님과 더 친밀한 관계로 나아갈 것이며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게 될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깊이 열정적으로 사랑하게 되면 자동적으로 하나님이 마음을 느까게 된다. 프랑소와 페놀롱의 말처럼 우리가 주님과 함께 고난을 받을 때 그곳에는 아름다운 마음의 일체가 생긴다. 당신이 하나님을 사랑하면 그분을 위해 어떤 고난을 당해도 상관하지 않게 된다. 당신이 진 십자가가 당신을 사랑하는 주님의 형상으로 만들어 줄 것이다. 주님과의 사랑의 유대감, 그것이 바로 당신에게 받게 되는 진정한 위안이다.

 

예수님과 친교를 누릴 수 있는 길은 우리 모두에게 열려 있다. 주님은 우리와 함께, 그리고 우리를 위해 고통 당하셨다. 이제 우리에게는 그분과 함께, 그분을 위해 고통을 당하고 그와 더불어 그분이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고통당할 수 있는 특권이 주어졌다. 그런데 불행히도 우리 모두는 주의력 결핍장애라는 영적 장애를 안고 있다. 쉽게 한눈을 팔고, 쉽게 잊어버리고, 쉽게 착각에 빠진다는 얘기다. 그래서 예수님은 자신의 고통을 상기시킬만한 가시적 증거를 주시어 그분과 하나가 되도록 하셨다. 주님이 우리에게 제공하신 것은 바로 그분의 살과 피다.

 

떡과 잔을 통해 주님과 친교를 나누는 것은 그분의 고통을 나누는 것이자 신앙생활의 가장 큰 특권이다. 오스월드 챔버스는 우리가 주님과 깊이 친교를 나눌 수 있게 되었다고 말했다. 신앙생활에서 두 번째로 큰 특권은 성도들 간에 나누는 깊은 친교다.

 

헨리 나우웬은 이렇게 말했다.

공동체보다 더 따스하고 정겨운 곳은 없습니다. 공동체란 기쁨과 슬픔을 숨기지 않으면서도 그 기쁨과 슬픔을 소망이라는 몸짓으로 표현하는 사람들이 모여 친교를 나누는 곳입니다. 공동체 안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인생은 얻을 때도 있고, 잊을 때도 있고, 기쁠 때도 있고 슬플 때도 있고, 좋을 때도 있고 나쁠 때도 있지만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혼자라고 느껴질 때에는 함게 잔을 듭시다. 견디기 힘든 상처를 서로 보듬으면 사랑 안에서 치료가 된다는 진리를 기억하며 우리 함께 축배를 듭시다".

 

교회는 인류를 위해 존재할 때에만 본연의 모습을 찾는다(다트리히 본회퍼).

 

기독교 공동체 내에서는 각각의 개인이 불가결의 고리로 연결되어 있느냐가 모든 것을 좌우한다. 가장 작은 고리까지도 단단하게 맞물려 있으면 그 고리를 절대 끊어지지 않는다...약자에게만 강자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강자 역시 약자 없이는 존재할 수 없음을 모든 기독교 공동체는 깨달아야 한다. 약자를 제거하는 것은 곧 친교의 죽음을 뜻한다.

 

영원히 잃어버릴 수 없는 것을 얻기 위해 영원히 간직하지 못하는 것을 버리는 사람은 결코 바보가 아니다(짐 엘리엇).

 

이 세상에 가장 안전한 장소는 하나님이 있으라고 하신 그곳이라는 말을 귀가 따갑게 들어왔다. 하지만 하나님이 원하시는 그곳이 가장 위험함 장소가 될 수 있다. 예수님의 고뇌에 찬 는 위험한 순종이 정확하게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예다.

 

위험한 순종에는 희생이 따른다. 그러나 얻는 것도 있다. 인격과 기술과 신앙을 갈고 닦게 해준다.

주님께 순종했을 때 평범은 비범으로 변했고 예사로움은 기적으로 바뀌었다. 하나님은 내 생애를 떡과 포도주로 만드셔서 영적으로 굶주리고 목마른 영혼들에게 소망을 주는 존재가 되게 하셨다.

 

하나님의 손에서 쪼개진 떡이 되기 전에는 먼저는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법을 배워야 한다.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 속에서 그분이 원하시는 일을 할 때 우리는 비로소 주의 자녀들을 먹일 떡과 포도주가 되는 것이다.

 

순종의 대가는 비싸지만 그만한 가치는 분명히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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