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옷이 날개"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은 우리의 삶에 웃이 차지하는 비중을 잘 표현 해 주고 있습니다. 의식주라는 단어에서 나타나는 대로 우리 민족은 먹는 것보다 입는 것을 더 중요하게 강조해 왔습니다.
사람은 하나님이 만드신 피조물 총에서 유일하게 옷을 지어 입습니다. 물론 요즈음은 애견에게도 옷을 입히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본래 최초의 사람 아담과 하와는 옷을 입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벌거벗고 지냈음에도 부끄러워하지 않았습니다(창 2:25).
인간은 타락한 이후에 자신의 부끄러움을 가리기 위해서 무화과나무 잎을 엮어서 치마를 만들었습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그 후에 가죽으로 옷을 만들어 입혀주셨습니다. 따라서 옷은 우리가 죄인의 자손임을 깨닫게 해주시 는 동시에 우리에게 임하시는 은혜의 통로입니다.
전에는 경건한 사람일수록 옷 맵시에는 거의 신경을 안쓰는 것이 보통이었습니다.
그러니 요즈음은 많이 달라졌습니다. 목회자들 가운데서도 세련된 못차림을 하는 분들이 많습니다. 교회의 여러 모임에 가보와도 멋쟁이들이 적지 않습니다. 확실히 옷차림에 대한 의식이나 기준이 많이 달라진 것같습니다.
1. 그리스도인의 옷 차림에 대한 자세
첫째로 옷 자체에 대한 생각입니다.
사람에 따라 웃을 좋아하고 옷입기를 즐기는 사람이 있습니다. 그것은 문제가 안됨니다. 그러나 도가 지나쳐 옷 문제로 걱정을 하거나 욕심을 내는 것은 신앙적인 세가 아닙니다. 예수님은 옷입는 문제로 걱정하는 사람들을 책망하셨습니다(마 6:25-28), 요즈음 옷입는 문제로 지나치게 걱정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둘째로 자신의 옷차림에 대한 자세입니다.
신경을 써서 자신의 스타일에 맞는 옷을 찾아 세련된 옷 차림을 하는 것은 보기에 좋습니다. 그러나 지나치게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신경을 쓰이게 하는 것은 문제가 됩니다. "이와같이 여자들도 아담한 옷을 입으며 염치와 정절로 자기를 단장하고(당전 2:9).
셋째로 다른 사람의 옷차림에 대한 자세입니다.
신앙이 있는 사람이라면 다른 사람의 못차림에 대해서 폭넓게 이해해 줄 수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없는 사람이 상처를 입고 예배에 참석했다가 책망을 듣고 충격을 받기도 합니다. 지혜로운 권면이 필요합니다.
2. 그리스도인의 패션에 대한 가치관
요즘은 유행을 지칭하는 패션이라는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패션을 성경적인 안목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패션의 추구 자체는 선합니다.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선한일입니다
-패션의 기준은 시대에 따라 변화합니다. 따라서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남에게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패션에 대한 취향은 개인적입니다. 사람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지만 획일적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패션이 독특하다고 일방적으로 윤리적 판단을 내려서는 안됩니다.
-패션을 추구하는 내적 동기를 윤리적으로나 영적으로 반드시 평가해야 합니다. 패션은 시각의 만족이 가장 중요한 기준이며 죄의 유혹에 노출될 가능성이 많기 때문입니다(창 3:6.요일 2:15-16).
-패션은 사회적인 영향을 고려해야 합니다.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나쁜 영향력을 준다면 그것은 잘못입니다. 그러므로 패션에는 절제가 필요합니다( 갈5:23). 모든 것이 내게 가하나 다 유익한 것이 아니요(고전 6:12).
따라서 그리스도인은 주변이 패션 문화를 변화시키는 크리스찬 패션리더가 될수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는 베드로전서 3:3절에서 너희의 단장은 머리를 꾸미고 금을 차고 아름다운 것으로 할 것을 권면하고 있습니다.
옷을 입는 자세에 있어서 외모로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베드로는 아내들이 자기 남편을 성기고 기쁘게 하는 가장 좋은 방법에 관해 우선적으로 다룹니다. 아내의 치장하는 외모보다 그녀의 거룩하고 순종하는 내적인 삶이 남편에게 깊은 영향을 줍니다. 아내들이 피해야 할 다양한 형태의 외모를 단장하는 모습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머리를 꾸미고'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이 단정하게 머리를 마는 것까지도 금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고대 로마에서는 여인들이 머리를 맡아서 계단처럼 여러 겹으로 쌓아올린 스타일이 유행했었는데 베드로는 이처럼 지나치게 머리를 호화롭게 꾸미는 것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2) '금을 차고' -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금으로 된 장식품은 무엇이든지 절대 금하는 명령이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은 이 표현을 화려하고 지나친 치장을 금하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3) 아름다운 이 표현이 어떤 특정한 입지라는 영향은 아닐지라도 화려하고 너무 값비싼 옷을 입지 말라'는 권면을 하고 있습니다.
이사이 3:16-25점을 통해 하나님께서 모든 형태의 지나친 치장을 어떻게 생각하시는가를 보십시오. 그리스도인의 복장과 장식품들에 대한 문제는 문제에 있어서 모든 그리스도인, 즉 여자들뿐만 아니라 남자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지침이 있습니다.
3. 그리스도인의 옷 차림에 대한 지침
첫 번째 원칙은 비용입니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돈을 의복에 소비하고 있습니까? 그것들은 나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입니까? 의복에 소비한 돈을 보다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었습니까?
디모데전서 29젊은... 값진 옷으로 하지 말라'고 말함으로써 값비싼 옷을 입는 것 을 금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그 옷을 살 수 있는 이유가 있는지 없는지의 문제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이 값비싼 옷들을 구입하는데 재물을 소비하는 것은 죄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말씀이 그것을 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동정심 역시 그것을 금합니다. 다른 나라에 살고 있는 우리 이웃들의 절망적인 어려움, 영적인 면과 육체적 인 면에 있어서의 그들의 엄청난 필요들이 긴요하지 않은 값비싼 옷들을 사는데 재물을 소비하는 우리의 무관심을 지적합니다.
이것은 우리가 구입하는 의복의 질과 양 모두에 적용됩니다. 어떤 그리스도인들의 옷장은 마치 작은 옷가게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들은 휴가 여행을 떠날 때마다 승용차의 뒷좌석에 걸어놓은 옷걸이에, 견본품의 옷을 가지고 차를 타고 다니며 판매하는 세일즈 맨과 경쟁이라도 하듯 양복이며 셔츠며 여러 가지 옷들을 죽 걸어놓고 다닙니다. 우리가 이렇게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 자신의 고상한 기호와 훌륭한 외양이 다른 사람들의 칭찬과 선망의 대상이 되는 것을 즐기는 경향이 있습니다.
두 번째 원칙은 검소함입니다.
바울은 "모든 것을 적당하게 하고 질서대로 하라'고 말합니다. 여기에 사용된 "적당함"(propriety)이라는 단어가 가치고 있는 의미 중의 하나는 '알맞다"(decent)는 의미입니다. 의복이 지니고 있는 기능중의 한 가지는 사람의 벌거벗은 몸을 가리는 것입니다. 적어도 처음에는 거기에서부터 출발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의복은 인체의 많은 부분을 더 많이 노출하는 방향으로 고안되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인간은 자기의 수치를 오히려 영화롭게 꾸미려 합니다. 경건치 않은 사람들이 이러한 행동을 하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니지만 그리스도인들이 그들을 모방하는 것은 참으로 충격적인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하지만 검소함이 아름다움을 의미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그리스도인들이 깔끔하게 단장해야 한다는건을 의미합니다. 누추하고 단정지 못한 것이 멋이 될 수는 없습니다. 모스필드 M 버스(Oswald Chambers)는 '단장치 못한 것은 성령님께 대한 모독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신자들의 복장은 깨끗하고 단정해야 하며, 검소하면서도 잘 어울리는 것이어야 합니다.
일반적으로, 그리스도인은 자기 자신에게 사람들의 주의를 집중시키는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옷차림으로써 사람들의 주목을 끄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가는 이유가 될 수 없습니다. 그는 세상에서 장식품으로서가 아니라 열애를 맺는 포도나무의 가지로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병법으로 다른 사람들의 주의를 모을 수 있습니다. 유행에서 벗어나는 옷차림이라 할지라도 단정하고 깨끗하게 입고 다니는 것도 그 한 가지 방법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또한 상식에서 벗어날 정도의 괴상한 옷차림이니 누추한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인들은(이것은 특히 젊은 그리스도인들에게 문제가 될 수 있습니다) 선정적이거나 자극적인 옷차림은 피해야 합니다.
우리는 점점 "노출 지향적 인 추세로 나아가고 있는 의복문화에 대해 이미 언급했습니다. 하지만 설사 신체를 많이 드러내지 않는 옷을 입는다 할지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경건치 못한 욕심을 불러일으키도록 옷을 입는 것은 지향해야 합니다.
오늘날 유행하는 옷들은 영적인 면을 장려하기 위해 고안된 옷들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것들은 우리 시대의 성적인 강박관념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신자들은 다른 사람들로 하여금 건전치 못한 욕심을 품게 하거나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삶에 방해가 되는 옷들을 입어서는 안됩니다.
세상의 조류를 거슬러 올라갈 때 엄청난 사회적인 압박이 성도들에게 가해지는 것이 큰 장애물이 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러한 어려움은 어느 시대, 어느 성도들에 게도 있었으며 앞으로도 그럴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극단적인 유행을 따르지 아니하고, 세상적인 견해의 조류에 역행하며, 복음에 합당한 옷차림을 사기 위해서 는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만일 우리가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는다면 모든 영 역에 있어서 아름다운 덕을 세우게 될 것입니다.
신자를 진실로 아름답게 보이게 하는 옷은 속 사람의 아름다움입니다. 베드로전서 3:4에서는 '오직 마음에 숨은 사람을 은유하고 안정한 심령의 썩지 아니할 것으로 하라. 이는 하나님 앞에 값진 것이니라"고 권면했습니다. 세련되게 매만진 머리, 갈 진 진주, 그리고 값비싼 옷들은 영원한 것이 아닙니다. 영원한 아름다움과 일시적인 아름다움의 생생한 대조를 통하여 베드로는 우리로 하여금 올바른 선택을 하도록 격려합니다. F. B. 마이어는 이것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했습니다.
"외모를 아름답게 장식하면서도 속사람은 누더기를 걸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반면에 겉으로는 비록 가난하게 보일지라도 내면적으로는 영광으로 빛나는 사람들이 있 습니다. 사람들은 보화를 값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온유하 고 안정된 심령의 썩지 않을 것으로 자신을 단장하는 것이야말로 진실로 값진 보화 라고 말씀하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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