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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복음이 나를 결정한다, 홍정길, 이동원, 이용규 외

by liefd 2024. 2. 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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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하늘의 법칙을 따라 복음을 자랑하는 사람이 된다

1. 내 평생을 붙잡을 풍요의 사명(홍정길)

게네사렛은 풍요의 정원이란 뜻이다. 게네사렛은 땅이 비옥할 뿐 아니라 물고기도 풍성합니다.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깊은 데로 가서 그물을 내려 고기를 잡으라(5:4)고 하셨습니다. 이 말은 세 가지 부분에서 틀렸습니다.

 

첫째 고기를 잡으라고 명령한 사람은 목수입니다.

 

둘째 그 때는 밤이 아니었습니다. 이미 그때는 한낮이 되었을 겁니다. 물고기는 주로 밤에 잡습니다. 그 이유는 물고기는 밤에는 아무 것도 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셋째는 깊은 데로 가라는 말이 틀렸습니다. 그물을 바닥까지 내려서 끌어야 물고기가 도망가지 못합니다. 그러자면 아무래도 얕은데로 그물을 내려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할 때는 하나님의 인격을 믿는다는 말입니다. 인격을 믿는다는 말의 구체적인 증거는 무엇일까요? 그가 하는 말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즉 하나님을 믿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김용기 장로님은 자기가 말한 그대로 사시는 분입니다. 그분이 제게 홍군, 자네는 말이야, 말 한 마디가 보증수표 같은 인생이 되게.“

 

시몬 베드로는 만선보다 더 귀하고 영광스럽고 아름다운 복을 세 가지나 더 붙잡았습니다.

 

베드로가 첫 번째 붙잡은 것은 주님입니다(5:8).

베드로가 두 번째 만난 것은 바로 그 자신이었습니다. 주여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베드로가 세 번째 붙잡은 것은 사명입니다(5:10). 이제 후로는 사람을 취하리라.

 

테일러 선교사님, 그렇게 일하시면 부족한 재정을 어떻게 보충합니까?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명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넘치는 축복의 손길이 끊기는 법은 절대로 없습니다.

그래서 사명은 풍요자체입니다. 사명은 인생의 강한 보루입니다.

 

세상을 바꿔볼 마음은 없는가?(이동원)

우주인 가운데 제임스 어우니은 19717월 아폴로 15호를 타고 달에 도착했습니다. 그가 지구로 돌아오고 있을 때 우주 공간에서 작고 푸른 색깔의 공과 같은 지구를 바라보는 순간 그는 갑자기 우주에 충만한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작은 공과 같은 지구를 바라보면서 그는 2000년 전에 하나님께서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이런 지구에 보내신 사실이 생각났다고 말합니다.

 

그때 불같이 뜨거운 열정으로 그의 마음속에 떠오른 성경 구절 하나가 있었습니다. 요한복음 316절 말씀입니다. 그 순간에 지구촌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그의 마음을 가득 채웠다고 합니다. 그는 우주에서 경험한 하나님의 사랑, 하나님의 마음과 비젼을 가지고 하나님의 사랑을 증거하는데 그의 일생을 헌신하기로 작정합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것보다 더 중요한 일은 세상에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한동대 교문에 문구가 나를 사로잡았. Why not change the world?

 

사도행전 13장에는 세상을 바꾼 어느 공동체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안디옥 교회는 자기들이 살고 있는 세상을 복음화시키기 위해 선교사 두 사람을 파송합니다. 바울과 바나바입니다. 1세기의 세상은 이들로 말미암아 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다.

 

우리는 어떤 사람이 되어야 그들처럼 세상을 바꾸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요?

 

첫째 예배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13:2), 그들이 주께 예배를 드리며 금식하고 있을 때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예배입니다.

 

둘째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13:2)

 

금식은 기도의 간절함을 나타내는 것입니다. 기도는 왜 하는 것입니까?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싶어서 하는 것입니다. 주님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안디옥 교회를 향해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바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13:2).

 

셋째 순종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이상으로 중요한 것은 순종입니다. 순종이 성령의 역사를 만드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들에게 이르시되 항아리에 물을 채우라 하신즉 아귀까지 채우니(2:8). 갖다 주라 하시매 갖다 주었더니, 이것이 순종입니다. 앤드류 머레이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 되자 마자 학교에 입학한다. 그 학교의 이름은 순종이다.” 그리스도인이 한 평생을 걸고 배워야 할 과목은 순종입니다.

 

인생이란 무엇일까요? 인생이란 하나님이 시키는 일을 성취하도록 맡겨주신 삶과 시간의 길이다.

39세에 총탄에 맞아 아깝게 쓰러졌던 마틴루터 킹 목사님은 생전에 자주 이렇게 말했습니다. “모든 비극 중에 최악의 비극은 젊어서 죽는 것이 아니다. 75살까지 살아도 한 번도 인생을 제대로 살지 못하고 죽는 것이다. 그것이 가장 커다란 비극이다.”

 

남을 위해 포도원 하는 사람(김동호)

마태복음 20장의 포도원 주인 비유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자기 포도원을 위하여 일꾼을 고용한 것이 아니라, 일꾼을 고용하여 품삯 주고 싶어서 포도원을 경영하는 사람 같아 보인다. 예수님이 말씀하신 포도원 주인은 자기의 포도원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이 사람은 자기 포도원에 나간 게 아니고 장터에 나갔습니다. 일자리를 얻지 못한 사람에게 일을 줘서 먹고 살게 해주려고 나간 것입니다.

 

천국은 이와 같은 마음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입니다.

일반 기업은 빵을 팔려고 사람을 고용하고, 사회적 기업은 고용하려고 빵을 팝니다.

 

저는 할 수 있느냐 없느냐는 생각 안합니다. 해야 할 일인가 아닌가만 생각합니다. 할 수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합니다. 해야 할 일을 하다가 할 수 없어서 망하는 것은 망한 것이 아닙니다. 왜요?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니까요. 해야 할 일인에 안해서 망하지 않았다면 사실은 그게 망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하는 비밀(오정현)

요즘 정보는 많지만 어떤 일을 이루거나 영향력을 끼칠 능력이 없을 뿐입니다.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도 복음에 대한 정보는 잘 알고 있지만 복음의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나는 할 수 있는대로 로마에 있는 너희에게도 복음 전하기를 원하노라"(롬 1:15). 로마서 16절에 보면 그들은 복음을 이미 알고 있는데 다시 한번 복음을 전하려고 했습니다. 성경학자들은 바울이 로마서를 쓴 시기가 로마교회가 세워지고 약 20년 지났을 때라고 추정합니다.

 

로마서 1313-14절에 보면 당시의 성도들이 단정히 행하지 않고, 방탕하고, 술취하지 않고, 음란하고, 서로 다투고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복음의 핵심이 희석되었습니다.

 

오늘날 한국교회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지 않는 이유는 두 가지라고 생각합니다.

 

첫째현상은 경직된 형식주의입니다.

 

교회 다닌지 3-4년까지는 눈물 콧물 흘리며 주님을 잘 섬기지만, 10년만 지나면 신앙이 화석화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복음에 의한 생명의 역사가 사라진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툭 건드리기만 하면 상처받았다고 합니다.

 

둘째 냉소적인 비판주의입니다.

 

어떤 잘못이나 문제를 발견하면 칼날처럼 날키롭게 지적하고 비판하기는 잘 합니다. 하지만 문제를 해결하거나 일을 이루어 낼 능력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비판은 잘 하지만 건강하게 세우지는 못하는 것입니다.

 

복음의 능력을 체험한 개인의 삶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현상이 나타나게 될까요?

 

첫째 기뻐하게 됩니다(5:11).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 안에서 또한 즐거워하느니라.

 

둘째, 미래가 보장됩니다.

 

또한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믿음으로 서있는 이 은혜에 들어감을 얻었으며 하나님의 영광을 바라고 즐거워하느니라(5:2).

 

이 말씀은 보장된 미래의 일을 바라보고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셋째, 환난 중에도 즐거워합니다.

"다만 이쁜 아니라 우리가 환난 중에도 즐거워하나니 이는 환난은 인내를, 인내는 연단을, 연단은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로다(5:3-4)

 

상처가 변하여 별이 된다(scar into star)

 

초대교회의 성도의 70%는 노예 신분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들이 전한 복음의 능력 앞에 에베소가 문을 열고 빌립보가 항복하고 로마제국이 백기를 들었습니다.

 

2부 복음의 능력을 입고 민족을 사랑하는 사람이 된다

내 아픔 되시는 아버지 품으로(이용규)

하나님에 대한 오해가 있습니다. 왜 그럴까요?

 

첫째, 믿지 않고 기도할 때가 있습니다(3:23-28).

 

23절에서 모세는 하나님이 한 번 안된다는 것을 다시 간구한 것입니다.

때로는 그리 아니하실지라도의 믿음을 갖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나님께 구했다가 안 들어주시면 어떻게 하지?라는 생각 때문에 처음부터 구하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잘못된 것입니다. 하나님 제가 믿음이 없습니다. 하지만 믿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일하시는 하나님을 신뢰합니다.

 

둘째, 이해 못하거나 응됩되지 못할 기도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같은 보통 사람들의 기도만 안 들으시는 게 아니라 때로는 정말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인정받는 사람들의 기도도 듣지 않으실 때가 있습니다. 모세는 백성들을 데리고 가나안 땅에 잘 들어갈 수 있게 해달라고 소원을 품고 기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거부하십니다(3:25-26).

 

그 이유는 모세가 백성들 앞에서 반석에게 명하여 물을 내야 했는데 오버해서 반석을 쳤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인자한 성품을 드러내지 못하고 분노했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정탐꾼 사건을 통해서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 외에는 누구도 가나안 땅을 밟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14:30).

 

하나님이 계획이 도대체 어디에 있는지 우리가 알 방법은 없습니다. 욥이 고난을 당할 때 하나님은 그 이유를 말씀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이해할 수 없는 질문만 던지십니다. 이 질문의 핵심은 두 가지 입니디.

 

첫째 내가 하는 말을 너는 이해할 수 있는가?

 

둘째 내가 하는 일을 너는 할 수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이 알고 계신 것을 알 방법이 없다는 것입니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님의 절규도 하나님이 듣지 않으시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듣지 않으셨던 영역 가운데 때로는 우리의 사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서 발견하실 수 있는 가능성은 우리가 가진 장점이나 능력이 아닙니다. 우리의 아픔과 실패의 경험을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 나라의 사역을 위해 사용하시기 원하십니다.

 

우리의 아픔 가운데 우리의 사명이 숨겨져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 때문에 섬겨야 할 대상이 있습니다.

아빠 지금은 뭐 부탁하고 싶어서 이러는 게 아니구요. 그냥 아빠가 보고 싶어요. 아빠가 그리워요. 아빠를 원해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내 마음 다하여 내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더 깊이 더 간절히 주님을 원합니다.

 

나의 필요보다 먼저 구할 것(안민)

가는 곳마다 아이들에게 자살하면 안된다. 아무리 길이 보이지 않더라도 포기하면 안된다. 절대로 좌절하지 말라.

중요한 것 붙잡으면 모든 것이 해결된다. 중요한 것 붙잡으면 모든 것이 따라 온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 6:33).

 

복음의 다이너마이트가 되라(이재환)

감비아에 사는 한 할아버지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그때 그 할아버지가 이렇게 말했습니다. “왜 이제 오셨습니까? 내가 태어났을 때는 다른 종교를 선택할 기회가 없었습니다. 당신이 너무 늦게 왔기 때문에 나는 이 종교(모슬렘)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갑비아 사람들은 아침에 일어나서 하는 인사가 굉장히 깁니다. “아버지가 집에 있느냐? 어머니가 집에 있느냐? 동생들이 집에 있느냐? 식구가 다 있느냐? 손님도 다 있느냐? 그 옛날 아침에 일어나 보면 노예 사냥꾼들에게 시구들 가운데 누군가 잡혀 가고 있는 겁니다. 뿌리의 영화가 만들어진 배경이 바로 이 나라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는 순간,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와 주님으로 받아들인 그 순간에 이미 선교라는 DNA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소명은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있는 것입니다.

폴 투르니에(스위스 정신과 의사)는 말하기를 우리에게는 두 가지 본성이 있는데, 하나는 모험에 대해 도전하는 본성이 있는 것이고, 또 하나는 모험하고 싶지 않고 안주하려는 충동을 동시에 가지고 있습니다. 어느 쪽에 당신의 본성을 투자하겠습니까?

 

3부 미래의 사명을 알고 땅 끝을 회복하는 사람이 된다

통일 이후를 품는 온전한 복음(정진호)

이 세대 가운데서 이 시대의 통일과 부흥의 역사를 마무리할 느혜미야와 에스라와 에스더와 같은 인물들이 나타나야 합니다. 그것을 위해 청년들이 통일 이후를 준비해야 합니다. 그 전략과 무기는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첫째가 칼이요, 둘째가 활이요, 셋째가 물입니다.

 

첫째,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날카롭게 선 양날같은 칼을 준비해야 합니다.

 

양날의 한 쪽은 영성의 날이고, 다른 한쪽은 전문성의 날입니다.

 

둘째, 전쟁에는 활이 필요합니다.

 

활은 방향성을 뜻합니다. 전략과 비젼이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9;13). 우리 민족이 이 시대에 복음을 쏠 수 있는 활이라고 생각합니다.

 

셋째, 우리가 싸워야 할 전쟁이 있는데, 그것은 쓰나미처럼 몰려오고 있는 모슬렘의 엄청난 파도입니다.

 

이것을 경영할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그러자면 중국교회가 일어나서 모슬렘을 경영할 수 있도록 누군가 도와야 합니다. 조선족을 통하여 한국교회가 중국교회에 들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땅 끝을 위하여 회복되는 공동체(정민영)

복음의 원래 모습은 구약의 언약입니다. 그 언약 안에 처음부터 복음, 민족, 그리고 땅 끝이 동시에 함축되어 있습니다(12:1-3).

당신이 예수를 믿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복음 앞에 마땅히 서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편애하셔서가 아니라 아브라함과 그 후손인 히브리 민족을, 온 백성을 사랑하고 구원하기 위한 도구로서 언약 공동체를 삼으신 것입니다. 다시 말하지만 복음은 처음부터 공동체를 지향합니다. 이 시대는 교회조차 공동체를 잃었다는 것입니다.

 

구원은 깨어진 관계의 회복입니다. 깨어진 하나님과의 관계회복은 필연적으로 이웃과의 관계 회복을 낳는 것입니다. 그래서 처음부터 복음은 공동체적입니다.

 

복음은 원래 하나님께서 의도하신 공동체를 회복합니다.

신앙을 갖는 일이란 어쩌면 어떤 논리나 이야기를 듣고 지적으로 합의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공동체에 빨려 들어가는 즉, 접목되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내가 속한 공동체 교회가 강력한 흠입력을 가진 매력있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끈끈한 사랑을 가진 교회 공동체를 회복하라

간하배 선교사의 회한에 섞인 말을 하셨습니다. 원래 한국의 문화는 대단히 공동체적인 문화였는데, 선교사들이 복음을 제대로 전했더라면 한국교회가 대단히 공동체적인 교회가 됐을 텐데. 그러나 지독한 개인주의 영향으로 혼자 있을 때는 믿음이 좋은 것 같은 데 뭉쳐 놓으면 문제가 생기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꿈은 크게 행동은 구체적으로(이승장)

6.25 전쟁 당시에 목회자들과 예수 잘 믿는 분들의 기도는 민족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빨리 전쟁이 그치게 해주시고, 헤어진 가족들을 다시 만나게 해주시고, 통일이 이루어지게 해주시옵소서.” 그런데 사람들이 어느 정도 살게 되면서부터 개인이 예수 믿고 구원받고 찬당가는 것이 복음의 전부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졌습니다.

 

우리가 예수 믿고 구원받는 것은 기초입니다. 그런 다음 우리의 삶의 모든 목표는 예수를 닮는 것이 되어야 합니다.

존 스타트 목사님의 집,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주신 긍극적인 목적인 무엇인가? 그것은 예수를 본받는 것이다.

복음이 들어가서 민족을 변화시키든지, 아니면 세상이 교회를 변화시키든지 둘 중에 하나는 하게 되어 있습니다.

 

로렌 커닝햄은 하나님 나라를 세워나가야 할 일곱 가지 영역을 언급햇했습니다. 그것은 가족, 종교, 교육, 문화, 대중매체, 경제 정부 등입니다. 그 가운데서 어떤 분야든지, 각자가 하나님이 주신 비전과 부르심을 따라 은사를 잘 활용하여 작은 일에서부터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나아가고, 예수님을 닮은 인생을 살아가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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