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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염려를 초월하는 비결(마 6:25-34),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2. 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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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려는 그림자와 같습니다.

나를 언제나 어디서나 따라다니는 것이 염려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를 떨쳐버리고 사는 사람은 없습니다.

 

도대체 이 염려란 무엇입니까?

사전적인 의미로 염려는 마음을 놓지 못하고 걱정하는 것입니다.

걱정은 근심으로 속을 태우는 일이라고 합니다. 그럼 근심은 무엇일까요? 근심은 괴롭게 애를 태우거나 불안해하는 마음을 말합니다.

 

어원적 의미도 있습니다.

염려(Worry)란 말은 "merimnao"라는 희랍어에서 유래되었습니다. 그것은 나누다를 뜻하는"merizo"마음을 뜻하는"nous"의 합성어입니다. 그러므로 염려는 마음이 나누이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 l 8절의 말씀처럼 두 마음을 품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로다.”

염려로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은 정서적으로 지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분열되어 있습니다. 삶이 흔들흔들합니다. 인생을 흔들어 놓습니다.

 

1. 염려는 의지력을 앗아갑니다.

마음이 나누이고 흔들리고 좌절당하므로, 그들은 아주 작은 결단도 의지적으로 내릴 수 없는 지경에 빠집니다.

 

2. 염려는 죄가 됩니다.

 

. 하나님을 믿지 못하게 합니다.

 

요한 1510절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자로 만드나니.”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이 염려할 때에 그것은 하나님을 거짓말장이라고 비난하고 있는 것입니다.

성경은 로마서 828절에서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염려는 그것은 거짓말이다.”라고 말합니다.

사도 바울은 내게 능력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413). 염려는 할 수 없다고 속삭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서 135절에서 내가 과연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과연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 하십니다. 그런데 염려는 하나님은 어디에 계신가라고 묻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마태복음 633절에서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염려는 이 모든 것이 어디에 있느냐고 항변합니다.

당신이 염려할 때 당신은 불신이라는 장갑을 끼고 하나님을 모독하는 것입니다.

 

. 염려는 하나님의 성전인 인간의 몸을 상하게 하므로 죄입니다.

 

잠언 17:22절입니다. '마음에 근심은 뼈를 썩히느니라.' 뼈가 썩어 들어 가고, 말라가는 병이라면 얼마나 치명적인 것입니까? 염려하고 있는 사람들은 마음을 상하고 몸을 상하게 합니다. 염려는 두통을 일으킵니다. 염려는 잘 볼 수 없게 합니다.

염려는 병을 일으킵니다. 염려는 몸을 해칩니다.

 

우리 하나님은 염려는 무익하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합니다. 해봐야 소용이 없고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27절에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하므로 그 키를 한자나 더할 수 있느냐”고 반문합니다. 키 작은 사람에게 염려 주사를 놓는다고 해서 한 번에 한자나 자라는 것을 보셨습니까? 아무도 염려해서 키가 자라는 사람은 없습니다. 누구나 그것이 소용없다는 것을 잘 압니다. 이렇게 염려는 무익한 것입니다.

 

또한 염려는 어리석은 것이기 때문에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34절을 읽어 보시기 바랍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 날 괴로움은 그 날에 족하니라

"내일"이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아직 나에게 이르지 아니한 시간입니다. 내 것이 아닙니다. 아직 이르지도 않았고 내 것도 아닌 시간과 날을 놓고 걱정 한다는 것은 정말 어리석은 짓이라는 말입니다.

 

무익하고 어리석은 염려를 뛰어 넘어 사는 비결은 없는 것일까요? 당신은 염려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견고한 공식을 알고 있는지요? 바로 지금부터 사용할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지 않은지요? 염려의 그늘에서 벗어나 참된 자유, 희열, 평강을 누리고 싶지 않은지요?

 

염려를 초월하여 사는 비결

1. 기도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81절에서 항상 기도하고 낙망치 말라.”고 하십니다. 항상 기도해야 합니다.

기도란 단어를 너무 들어 식상하지만, 진부할지라도 기도해야합니다. 기도는 우리의 약함에 대한 하나님의 치료책 중의 하나입니다. 마음속에 근심 있는 사람 주 예수 앞에 다 아뢰어라

2. 기뻐해야 합니다.

신약성경의 빌립보서는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 4:4).

당신은 이렇게 말할지 모릅니다. 나는 기쁨을 누리는 체질이 아닙니다. 나는 억지로 가쁨을 갖지 못하겠습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환경, 처지, 여건, 형편에 자신을 맡깁니다.

 

빌립보서 44절의 말씀은 현재시제의 강한 명령입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맡겨진 사명이기도 합니다.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우리는 주 안에서 기뻐할 수 있습니다. 환희와 희열을 만끽할 수 있습니다. 주 안에서

3. 의지해야 합니다.

시편 37편은 우리에게 초조해 하지 말고 의지할 것을 말해줍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37:3).

염려는 마찰만을 불러일으킬 뿐 하등 힘을 발휘하지 못합니다. 염려는 속도를 내지 못합니다.

마태복음 6장에 나오는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하여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공중에 나는 새와 들에 피는 꽃들을 돌보신다면, 그 하나님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신 당신을 돌보아 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염려란 어떤 의미에서는 무신론의 한 형태입니다. 염려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주신다는 사실과 그리스도의 중보사역을 부인하는 것입니다. 솔로몬이 그의 모든 영화로도 들의 꽃만 같지 못했음을 마태는 우리에게 상기시켜 줍니다. 하나님만 의지하십시오.

4. 선을 행해야 합니다.

시편 37편은 말합니다. 여호와를 의뢰하여 선을 행하라.” 염려에 대한 최선의 치료책 중의 하나는 선한 일을 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 23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 만일 우리가 주님과 주님의 일을 우선으로 놓으면, 주님께서는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들을 우리에게 더하여 주실 것입니다.

 

5. 이미 받은 축복을 세어 보아야 합니다.

염려를 극복하는 비결은 당신의 축복을 열거해 보는 것입니다. 오늘 당신의 축복을 세어보십시오. 당신 주위를 살펴보시기 바랍니다. 사랑스러운 사람들, 아마 당신의 남편이나 아내, 부모님들, 당신의 직장, 당신의 조국, 당신의 건강, 당신의 재산, 교회에서의 당신의 교우관계, 하나님의 말씀, 예수 그리스도께 대한 당신의 믿음에 대하여 하나님께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6. 고개를 이웃에게 돌리셔야 합니다.

당신의 눈을 당신 자신에게 고정하지 말고 당신의 눈을 이웃에게로 돌리시기 바랍니다. 각각 자기의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라”(2:4).

 

7. 하루 하루를 마지막처럼 사셔야 합니다.

그러므로 내일 일을 위하여 염려하지 말라. 내일 일은 내일 염려할 것이요 한날 괴로움은 그날에 족하니라.”

오늘 단 하루만을 살라고 우리에게 가르쳐 줍니다. 우리가 오늘 하루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최선을 다한다면, 우리는 내일과 미래에 대하여 자동적으로 준비가 될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말씀하십니다.내일 일을 걱정하지 말라

 

 

여러분도 잘 아시는 헨리 나우웬이, 재미있는 표현을 했습니다. 염려한다는 건 뭐냐. '아직 내 앞에 오지도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무언가로 가득 채우려고 하는 것이다.' 말을 바꾸면 '마음이 혹시로 가득찬 것이다.' '혹시 암에 걸리지 않을까, 혹시 자동차 사고가 나지 않을까, 혹시 실직하지 않을까, 혹시 시집 못 가면 어쩌나, 혹시 학교 간 애가 안돌아 오면 어떻게 하나' 이런 식으로 아직도 오지 아니한 시간과 장소를 내 삶에 가득 채우는 것이 염려라는 말입니다.

 

얼마나 멍청한 짓입니까? 이런 '혹시'가 내 마음에 염려로 자꾸 차 오르기 시작하면 불안해지고, 두려워지고, 의심이 많아지고, 탐욕이 생기고, 조급해지고, 나중에는 우울해져 버립니다. 그래서 우리가 겪는 대부분의 고통은 이와 같은 쓸데없는 염려와 깊은 관계를 갖고 있습니다. 우리의 영적인 삶을 망가지게 만듭니다. 우리 안에서 자유롭게 호흡하시고 우리의 영혼을 날마다 새롭게 창조하시고자 하는 잡는 것입니다. 따라서 내가 비참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아직도 나에게 오지 아니하는 내일을 놓고 왜 그렇게 염려해야 합니까?

 

로마의 시인 호라티우스의 시구 가운데 유명한 시구가 하나 있습니다. '이런 자만이 행복하리라. 오늘을 내 날이라고 말할 수 있는 자만이 행복하리라.' 옳은 말입니다. 염려는 오늘로부터 나의 행복을 앗아가는 강도입니다. 주어진 오늘도 제대로 살 줄 모르면서 내일을 끌어안고 씨름하고 염려한다는 것은 바보짓입니다.

 

오늘을 내 날이라고 말하며 살아가는 참된 행복을 누리며, 인생의 여정에 염려의 그늘을 뛰어넘어 참된 자유, 환희, 평강을 강같이 누리는 주의 백성이 다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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