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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믿음의 의(창세기 15장),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3.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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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15장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을 믿었을 때 하나님은 그것을 의로 여기셨습니다(6). 본장은 로마서나 갈라디아서의 주제처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에 대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함을 얻었다는 것은 '이신칭의' 혹은 '이신득의'라고 하는데 이것은 기독교의 교리 가운데 가장 위대하고 중요한 교리 중에 하나입니다. 이신득의의 교리는 소위 신학적으로 말하면 바울 신학의 핵심입니다. 이것은 또한 종교개혁의 주제였습니다. 믿음의 의'에 관해 맨 처음 성경에 나타난 장면이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믿음의 의 '에 관해 좀 더 자세히 알기 위해 본문의 배경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삼백 십팔 명의 병사를 거느리고 네 나라의 왕과 대결하여 승리합니다. 그런데 이 승리는 기습적인 승리였습니다. 비록 그들이 이기기는 했지만 적의 군대가 훨씬 많았으며, 전술 전략적인 차원에서 볼 때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그런 싸움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승리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다시 적에게 반격을 당하지 않을까하는 심각한 두려움에 싸이게 됩니다.

 

바로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십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1). 하나님의 은혜로 승리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현실적으로 볼 때 아브람은 두려워 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두려워 하는 아브라함에게 긍휼의 은혜를 베푸시고 두려움과 염려 대신 소망과 기쁨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에게 방패와 상급이 되신다는 의미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무조건적인 은혜를 베푸시고 그의 전부가 되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상급은 아브라함의 편에서 공로나 선행의 댓가로 주어지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것이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자신을 받은 것으로서 아브라함이 얻게 될 최상의 상급인 것입니다.

 

창세기 12:1-3에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룰 것과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실 것을 약속하시고, 창세기 13:14-18에서 롯이 아브라함을 떠난 뒤에 하나님께서는 다시 나타나셔서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줄 것과 아브라함의 자손이 땅에 티끌과 같이 많아질 것을 약속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약속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실현되지 않은 약속의 말씀에 대한 의심이 그에게 있었습ㄴ;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아직도 자녀가 없기 때문에 그의 상속자는 그의 종 엘리에셀이 될 것이라고 말했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씨를 통한 후손이 복을 받을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을 마음에 믿었습니다(12:13). 그러나 그는 자기에게 후손이 없는 사실에 대해서 약간은 불만스럽게 생각하며 다메섹 사람인 엘리에셀을 자신의 상속자로 삼을 수 밖에 없다는 뜻에서 그렇게 말한 것입니다. 이렇게 말한 아브라함의 태도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신앙과 인간적인 연약한 생각을 동시에 발견하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엘리에셀 역시 후사가 아니며 하늘의 뭇별을 보여 주시며 아브라함의 후손이 이루 다 셀수 없을 만큼 번성하고 창대케 될 것을 강조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습니다. 여기서 잘못 이해하면 아브라함은 스스로의 노력과 순결한 정신에 의해 믿음을 쌓아갔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그의 탁월한 수준을 보시고 그를 의롭다 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 의롭게 된 것은 그의 믿음이나 선한 의지 때문이 아닙니다. 그는 여전히 죄많은 인간에 불과했으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믿음을 선물하시고 그 믿음을 통해 하나님께서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 뿐입니다.

 

그러면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을 때 여호와께서 그것을 '그의 의'로 여기셨다는 뜻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이 여호와를 믿었다는 말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언약(4, 5)을 믿었다는 뜻입니다. 믿음이란 단순히 어떤 사실을 동의한다는 의미보다 그 분을 온전히 믿고 신뢰하고 그 분 안에 나의 모든 것을 던져 넣는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아브라함이 구약시대에 이미 하나님을 믿어 의롭다 함을 얻은 것은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의를 입혀 주실 것의 모형으로서, 신약 시대의 성도들이 누릴 그리스도의 의와 영광을 예표합니다. 예수께서도 이러한 사실을 언급하습니다.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 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8:56). 바울은 이제 모든 유대인과 이방인에게 아브라함의 발자취를 따라 오직 믿음으로 의롭게 되어 영생을 누릴 것을 촉구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아브라함이 무엇을 믿었는가 하는 질문이 제기됩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4:20)을 굳게 믿었습니다. 바울은 여기서 약속의 개념을 중요시 하고 있습니다. 약속은 계약과 유사한 개념이나 계약은 의식적인 면을 내포하고 있고, 약속은 하나님이 신실하심에 강조점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전혀 소망이 없는 가운데서 하나님의 약속을 신뢰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그의 위대한 점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에 자신을 내어 맡겼습니다. 약속하신 그것을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는(4:21) 믿음을 하나님께서는 의로 여기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어떤 행위가 의의 근거가 아니라 바로 이 믿음이 그를 의롭게 한 것입니다. 그런데 더욱 더 중요한 것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은 이 믿음이 모든 인류가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믿는 믿음의 계시라는 사실입니다. 이렇게 믿음의 본질을 나타낸 아브라함을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조상으로 예정하시고 에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을 의로 여기셨다는 것은 아브라함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예수를 구주로 믿는 우리 모두를 위한 것입니다(4:22-24).

 

그런데 여기서 주의할 것이 있습니다. 믿음을 구원의 조건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믿음 그 자체가 의를 가져오는 것이라고 생각하면 안는 것입니다. 믿는다는 것은 자기 자신이 아니라 믿는 대상인 하나님이 강조되어야 합니다. 불가능한 약속을 약속하신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나의 구원입니다. 그 하나님이 나의 생명입니다. 인간이 의롭게 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이며, 그 믿음을 가능케 하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죄인을 용납하시고 의인되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긍휼은 진정 죽을 수 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는 유일한 능력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과연 아브라함을 위해 무엇을 하셨을까요? 하나님은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내셨습니다. 갈대아 우르에서 아브라함을 이끌어 내신 목적은 그에게 가나안 땅을 유업으로 주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업을 삼게 하려고"(7). 이는 본래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을 차지할 아무런 권리나 명분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상속자로 삼으셨다는 사실을 나타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베푸신 은혜의 기초요 시작으로서 특별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하나님께서 죄인들을 불러 내신 목적이 악한 세대로부터 구원 받아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한 것과 그 의미가 같습니다.

 

당시 근동지방은 매우 타락한 곳이었습니다. 왜 이렇게 극악하고 타락한 곳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시려 하실까요? 이런 극심한 타락한 곳에서 악을 제거하고 여기에 하나님 나라를 세우시려는 하나님이 의도는 하나님 나라의 성격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위 횃불 언약을 체결하심으로써 그에게 땅과 후사에 대한 확신을 심어 주셨습니다. 쪼개진 짐승 사이로 불이 지나갑니다. 이는 하나님 현현의 상징입니다. 이것은 언약입니다(covenant, making ceremony). 횃불이 지나갔다는 것은 하나님이 지나가심을 나타냅니다. 여기서 쪼개진 제물 사이를 지나는 행위는 언약을 체결하는 자들이 짐승을 잡아 그것을 둘로 나누어 놓고 쌍방이 그 사이를 지나감으로 언약이 성립되는 의식입니다(34:18-19).

 

이런 특이한 의식이 의미하는 바는 쌍방 중 한쪽에서 그 언약을 파기한다면 그 사람은 쪼개인 짐승처럼 처참히 죽게 된다는 것입니다. 즉 이 약속은 결코 변할 수 없는 강한 의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해야 할 사실은 쪼개진 제물 사이로 지나간 것은 언약 쌍방인 아브라함과 하나님이 아니라 횃불 곧 하나님만이 지나갔다는 점입니다. 이러한 의식을 계획하시고 실행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심과, 이 의식을 통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가나안을 기업으로 주실 것이라는 영원 불변의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특히 이 언약은 인간에게는 약속 이행 능력이 없음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오직 당신의 성실과 사랑의 집념으로 맺으셨음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언약은 쌍방간에 이루어 지며, 이것이 언약의 본질입니다. 하지만 횃불 언약은 엄밀히 따져 약속을 확증하시려는 하나님의 자기선언이었습니다. 이것은 불완전한 인간을 사랑하시며 이해하시는 하나님의 지고한 섭리에 따른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이처럼 극적, 감동적으로 나타낸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 스스로 저주를 짊어지신 것입니다. 이 약속은 하나님이 반드시 이루실 것을 확약하신 후 하나님 나라의 지경과 경계를 말씀하십니다. 흔들거리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언약을 통해 굳게 하십니다. 하나님 왕국의 건설과 구체적 계획의 진행을 말씀하신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보여 줍니다. 하나님 나라의 건설은 아브라함 당대에 단기적으로 걸쳐 이루어질 일이 아니요, 장기간에 걸쳐 여러 세대 및 몇 백년에 걸쳐 진행될 장기적 계획인 것입니다. 사 세대에 걸쳐 애굽에서 돌아올 것입니다. 사백년 동안 이방의 객이 되었다가 그후에 돌아와 하나님의 왕국이 건설될 것입니다.

 

그런데 가나안 땅에 대한 약속을 몇번에 걸쳐 계시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곧 바로 실현시키지 않았던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당시 가나안 족속의 죄악이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을 받을 만큼 관영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관영치 아니함이라"(16). 가나안 땅에 살던 원주민들은 그들의 죄악으로 인하여 멸망당하여 좇겨난 것이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그곳에서 살도록 기회를 제공 받은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는 그 시초부터 모든 성공과 승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은혜였으며, 고난과 실패 마저도 당신의 은혜로운 경륜 안에서 진행된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노예 생활도 그들에게는 실망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오히려 하나님의 구속사의 한 과정임을 믿고 기뻐할 수 있어야 했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들어 하나님이 약속하신 후손과 기업에 대한 기대가 점점 희미해져 갈 때에도 재차 강조하시는 하나님의 언약을 믿습니었다. 이 믿음은 순간적인 감정이나 충동에 의한 것이 아니라 어떠한 충격에도 흔들림없이 지속적으로 신뢰한 전폭적 신앙을 가리킵니다.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셨다." 아브라함은 계속해서 베풀어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인해 참 믿음을 소유하게 되었으며 그러한 믿음을 소유하게 된 아브라함을 향하여 하나님은 '의롭다' 선언하셨습니다. 이와같이 우리들의 신앙의 주체는 ''가 아닌 '하나님'이시며 신앙의 유일한 대상 역시 '축복'이 아니라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우리 신앙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그 신앙의 열매는 하나님의 '의롭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구체적인 언약의 말씀을 하셨습니다. '두려워 말라, 후사를 주리라, 기업을 주리라, 등입니다. 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붙잡고, 믿었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하나님만을 신앙의 대상으로 삼을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서는 신앙을 소유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만을 근거로 했을 때 하나님을 신앙의 유일한 대상으로삼을 수 있습니다. 때문에 하나님을 경배하는데 인간의 사상이나 이성이 소산물인 합리성 등이 가미될 수 없습니다. 그렇게 될 때 그것은 이미 신앙이 아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영히 서리라고 했습니다(40:80). 그러므로 우리는 말씀을 근거로 하여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말씀 외에 하나님께 나아가게 하는 근거는 없습니다. 우리는 아브라함 처럼 말씀을 믿고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 인간과 약속을 맺으시면 절대로 폐기하지 않으시며 인간의 행위와는 상관없이 꼭 이루십니다(23:5-15, 6:12-20).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이 큰 민족을 이루며 지상의 모든 민족이 아브라함을 통하여 축복받을 것을 수차례 약속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불가능한 상황을 보고 결코 좌절하지 않았으며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약속을 시행하시는 신실한 분임을 믿었기 때문에 약속의 성취를 가져올 수 있었습니다. 인류의 죄인된 상황으로 볼때는 아브라함처럼 되는 것이 도저히 불가능하지만 하나님의 복음의 약속, 즉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약속을 믿는 자에게는 아브라함에게 일어난 약속이 동일하게 성취되는 것입니다. 결국 하나님의 약속을 믿는 자는 죄사함의 은총을 받아 그 약속대로 의롭다 칭함을 받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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