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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나의 자랑하는 복음, 마틴 로이든 존스

by liefd 2024. 3. 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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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의 본질은 불붙은 논리, 마음을 움직이는 이성이다.

로이드 존스 박사는 기독교가 무엇보다도 합리적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는 웨일스 사람들이 감동은 쉽게 받지만 마음은 좀처럼 변화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설교할 때 그들의 피부에 직접 와 닿으며 촌각을 다루는 중요한 메시지를 전했습니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이 신음하고 있는데 그들에게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구원을 통한 치유가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에게 가장 시급한 것은 스스로 자신들의 필요를 바라볼 수 있도록 돕는 일이었습니다.

그래서 로이드 존스 박사는 언제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세상-길을 잃고 헤매며 도무지 소망없는-을 언급하며 설교를 시작했습니다.

 

인간이 다양한 해결책을 시도했지만 실패한 원인이 무엇일까요? 인간이 하나님께 반항하여 죄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그는 빈틈없는 논리를 사용해 설교를 듣는 사람들에게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약속 만이 유일한 해결책이 된다는 증거를 제시하곤 했다.

 

1장 인생의 문제(딤후 1:12)

 

여기세 제기되는 문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 어떻게 승리하는 삶을 살 것인가, 불확실하고 문제투성이인 삶에 맞서 어떻게 승리를 거둘 것인가, 지배당하는 삶이 아니라 승리하는 삶을 어떻게 살 수 있을까? 하는 것입니다. 이 주제를 다룰 때 두 가지 핵심사항은 바로 삶에서 승리하는 방법과 복음의 진정한 본질을 파악하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성품이나 기질상 분명 쉽게 좌절하고 낙담하는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감옥에 갇혔다는 소식을 듣고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감옥에 갇히는 최악의 상황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고난을 받되 부끄러워하지 아니함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노라(딤후 1:11-12). 여러분의 경험 속에 "그럼에도 불구하고"가 있습니까?

 

바울은 타고난 낙천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타고난 염세주의자였습니다. 지나치게 예민하고 걸핏하면 신경질을 부리며 쉽게 좌절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고린도 갔을 때 약하고 두려워하고 심히 떨었습니다(고전 2:3).

 

복음이란 무엇인가?

첫 번째 원리는 기독교는 모든 것을 망라하는 인생관입니다. 복음은 단순히 윤리와 행위와 도덕과 행동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독교는 아주 의기양양하게 삶과 죽음 그리고 모든 것을 조망할 수 있게 해주는 총체적 관점입니다. 가독교는 폭풍 가운데도 기뻐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입니다.

 

두 번째 원리를 소개하겠습니다. 복음이라는 기독교 메시지는 단지 위안과 격려를 주는 모호한 메시지가 아닙니다. 복음이 우리의 고통과 문제를 잊게 해준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기독교는 현실적입니다. 성경은 현실적이고 솔직하고 숨김없는 책입니다. 기독교 메시지는 일종의 최면제가 아닙니다. 거기에는 엄중함과 늠름함과 솔직함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사실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사실을 넘어섭니다.

 

명확한 세 번째 원리를 제시하겠습니다. 기독교 메시지는 우리가 아무 일 하지 않더라도 자동적으로 작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우리로 하여금 생각하게 하고, 그 메시지를 적용하게 합니다. 디모데야 너는 왜 내가 한 말을 잊고 있느냐? 왜 내게 들은 메시지를 적용하지 않느냐? 왜 그렇게 낙담하고 있느냐? 이제라도 내게 네게 했던 말을 떠올리고 네 안에 있는 은사를 활용해라. 기독교는 이해를 요구하며, 그 이해를 바탕으로 우리가 바울의 말과 행동을 본받을 수 있게 합니다.

 

마지막 근본원리는 기독교 진리를 믿지 않으면 기독교 메세지, 기독 신앙이 우리에게 어떤 위로나 위안을 제공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그들에게 곧바로 위로를 주지 않습니다. 복음을 믿기 전에는 성경과 복음의 위로와 위안이 무엇인지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가 주는 혜택을 누리지 못합니다. 본질적인 것은 믿음을 갖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이 부끄러워하거나 낙담하지 아니하고 절망가운데 포기하지 않습니다. 그 이유는 자신이 누리는 위로와 확신의 근거를 자신의 믿음과 신념에서 발견하고 있습니다.

 

우리에게 소망을 줄 수 있는 유일한 것이 기독교에 있습니다. 인생과 그 난제에도 불구하고 우리로 하여금 승리할 수 있게 해주는 유일한 것이 기독교에 있습니다. 기독교는 모호하고 기이한 정신이 아닙니다. 기독교는 교리체계입니다.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는 것이다. 지키는 것, 붙잡는 것, 보호하는 것, 방어하는 것, 변론하는 것, 빼앗길 수 없는 것이다.

 

2장 진정한 기독교(딤후 1;12)

 

기독교는 오늘날 이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입니다. 기독교는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가 교회에 가는 것은 생명과 삶을 논의하기 위해서입니다. 복음은 모든 인간을 위한 소망입니다. 복음은 진리를 제시합니다. 위로는 진리에 따른 결과입니다.

 

3장 올바른 진단(딤후 1:12)

 

바울은 디모데에게 기운을 내라고 하지 않습니다. 디모데의 시선을 복음을 향하게 함으로써 그에게 용기를 북돋워줍니다. 고난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강한 긍정을 나타냅니다. 나는 대단히 자랑스럽게 여긴다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절에도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않는다는 것은 나는 복음을 크게 기뻐한다는 뜻입니다. 내가 이루 말할 수 없이 행복한다는 것은 내가 믿는 자를 내가 알고 또한 내가 의탁한 것을 그날까지 그가 능히 지키실 줄을 확신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나의 나된 것은 내가 복음을 신뢰했기 때문이다. 디모데야 너는 내게서 들은 이 바른 말을 본받아 지키고 그것을 붙잡고 절대적으로 신뢰해야 한다.

 

일반이나 전체를 무시한 채 특정한 상황에 자나치게 관심을 가지는 것은 마치 의사가 질병에는 무관심하고 증상 그 자체에만 관심을 보이는 것과 매우 흡사합니다. 환자는 언제나 증상에만 관심을 보입니다. 정말로 중요한 것은 증상이 아니라 잘병입니다. 증상은 질병을 다루는 과정에서 부수적으로 치료됩니다. 복음은 전체를 바라보는 위대하고 심오한 관점입니다.

과학자 제임스 경은 만물의 배후에는 어떤 위대한 지성이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성경은 영혼을 다루는 위대한 안내서이자 교과서입니다. 성경은 우리 문제에 실제적인 답을 주는 책입니다.

현대세계는 인간으로 시작해서 인간으로 끝나기 때문에 온갖 문제가 발생합니다. 결국 혼란과 무질서 가운데 끝납니다,

여러분은 복음을 믿습니까? 여러분 자신으로 시작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으로 시작하고 그분의 관점에서 자신을 살펴본 후에 계시 전체를 믿으십시오,

 

4장 인간은 어떤 존재인가?(딤후 1:12)

 

6-14절까지의 전체 문맥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감옥에 갇힌 바울은 비참하다고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마음속에 환희와 기쁨이 넘쳤습니다. 기독교 메시지는 우리로 하여금 삶을 살아내도록 권면하는 메시지입니다. 복음의 위대한 점은, 그것이 인간으로 하여금 고귀한 자세로 살아가게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은 인간으로 하여금, 삶뿐 아니라 죽음과 죽음 이후의 삶을 바라보면서 넉넉히 승리할 수 있는 하나의 관점입니다.

 

사람들은 복음이 먼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현재의 생활에 적용할 수 없는, 비현실적인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살아가는데 도움이 되는 것은 오직 복음뿐입니다.

여러분이 복음의 중심 메시지를 믿을 때까지는 기독교가 주는 유익을 얻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셨다는 것이 성경의 증언입니다. 그것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분은 창조하셨을 뿐 아니라 다스리고 유지하고 간섭하십니다.

 

우주 전체는 어떤 목적이 있고 만물의 배후에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근본적인 진술입니다.

인간은 어떤 존재입니까?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인간을 지으셨기 때문에 인간은 본질적으로 독특한 존재입니다. 나아가 하나님은 인간에게 도덕적 성품을 주셨습니다. 무엇보다 종교적 심성이 있습니다. 성경에 따르면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았기 때문에 신에 대한 의식이 있습니다. 영혼은 인간의 독특한 본질입니다. 인간은 자신을 성찰하고 다른 이들과 소통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대로 지음 받은 인간은 피조 세계를 다스리고 이 땅에서 하나님의 대리인이 되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영화롭게 하는 것과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하는 것아 인간에게 부여된 사명입니다.

인간의 행복을 결정하는 본래 요인은 무엇이었습니까? 인간은 본래 완전하면서도 만족스런 삶을 살도록 예정되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계획이었습니다. 인간의 행복이 그가 처한 환경에 따라 결정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었습니다. 인간의 행복은 한 가지에 달려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과의 관계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만이 행복을 보장합니다.

 

5장 우리 구주 그리스도(딤후 1:12)

 

인간의 절망적인 상황에 대한 유일한 대답은 구원입니다. 에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하나님, 완전한 인간이십니다. 그분이 나타나셨습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중심 제시지입니다. 우리 구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셨습니다. 이제는 우리 구주 그리스도 예수의 나타나심으로 말미암아 나타났으니 그는 사망을 폐하시고 복음으로써 생명과 썩지 아니할 것을 드러내신지라(딤후 1:10).

 

6장 하나님의 변함없는 뜻(딤후 1:12)

바울은 디모데후서 1:6-14에서 하나님의 위대한 뜻을 일깨우고 있음을 여러분에게 상기시키고자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삶과 이 세상에 뜻을 두고 계십니다. 이 위대한 뜻은 영원 전부터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주신 바 되었습니다(딤후 1:9).

제가 강조하고자 하는 것은 기독교 구원이 역사에 기초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성령의 역사를 바라보고 믿는 순간 모든 것이 변화됩니다. 우리는 더 이상 어둠 속에 있지 않고 빛 가운데 있습니다. 우리 자신과 삶과 죽음에 대한 시작이 새로워집니다.

 

7장 하나님의 구속방식(딤후 1:12)

 

기독교 메시지는 이 세상에서 가장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삶의 방식입니다. 우리에게 구원과 해방을 가져다주는 새로운 삶의 방식입니다. 승리와 기쁨을 누릴 수 있는 방식입니다.

감옥에서 바울은 걱정하는 디모데에게 나는 부끄러워하지 않습니다. 나는 마음이 흔들리지 않습니다. 나는 의기소침하지 않는다고 말하면서 자신의 확신에 대한 근거를 제시합니다. 여러분은 내게 무슨 일이 일어나 내 앞길에 재앙이 덮치더라도, 나는 두려워하지도 당황하지도 희망을 잃지도 않습니다.

 

복음을 믿지 않고서는 구원이 주는 축복을 알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이 세상에서 가장 크고 강력한 것입니다. 기독교는 중요한 체험을 하게 하는 위대한 지적체계입니다. 기독교는 위대한 통합체입니다.

 

기독교 메시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인간은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선 인간은 죄책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둘째로 인간은 죄책에서 구원받아야 할 뿐 아니라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인간은 죄책과 죄의 권세에서 구원받아야 할 뿐 아니라 죄의 오염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그분의 축복을 누릴 때까지는 행복과 평안을 맛볼 수 없습니다. 진정한 승리의 삶을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되어 그분과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까요? 이것이 구원이라는 포괄적 문제의 핵심입니다.

 

우리의 행위로는 구원받지 못합니다. 그리스도를 닮으려고 노력해보십시오. 여러분은 자신에게서 지옥을 보게 될 것입니다. 인간은 오직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그분이 행하신 일에 의해서만 구원받고 하나님과 화해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죄를 다루시고 용서하시며 죄를 대속하실 때까지, 우리는 그분의 축복을 받을 수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해야 합니다. 우리가 할 일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입니다.

 

8장 풍성한 삶(딤후 1:12)

 

성경은 삶에 대한 실제적인 책입니다. 하나님, 인간, , 죽음, 영원 그리고 우리에게 중요한 문제들, 그야말로 모든 것을 망라하는 책입니다.

참된 신앙을 소유하고 이 신앙에 헌신하며 복종하지 않는 한, 어느 누구도 삶과 죽음을 비롯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없습니다. 우리에게 가장 절실한 것은 용서받고 하나님과의 관계가 회복되어 그분의 은혜를 덧입는 것입니다.

 

인간에게 죄 사함 외에 더 필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놀랍게도 인간에게는 궁극적인 생명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삶의 목표나 목적이 없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것도 아니라 목숨을 유지하는 상태입니다. 이 세상 풍조를 따라 이런 저런 일에 조종되는 회전목마와 같은 인생입니다.

 

만약 인간이 자신을 변화시킬 수 있다면 그리스도는 오시지 않았을 것입니다. 어디에서 새로운 삶을 살 수 있을까요? 인간에게는 생명이 필요합니다. 인간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가르침이 아니라 새로운 능력입니다.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ㄱ서은 가르침이 아니라 능력과 권세입니다. 복음이 우리에게 새생명을 줄 때 우리는 능력과 권세를 받습니다. 새생명을 받는 것은 인간의 행위가 아닉라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기독교 메시지의 핵심은 인간이 새롭게 출발하고 새로운 생명을 가지며, 새롭게 시작함으로 또한 새로운 인간이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저는 예배드리러 오는 사람들의 이전 상태를 중요하게 여기지 않습니다. 설령 그가 역사상 가장 큰 죄를 지었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아시다시피, 사도는 단지 사람들에게 더 나은 삶을 권고하지 않습니다. 그는 용서받은 사실만을 말하고 권고하지 않습니다. 그들이 용서받을 수 있다는 사실만을 말하고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것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새롭게 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역사는 아주 신비로운 역사가 됩니다. 인간의 마음과 영혼을 변화시킵니다. 나아가 인간의 깊은 내면세계, 본질, 그리고 존재의 중심까지도 변화시킵니다(51:10, 36:26). 거듭남은 새로운 삶을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우리에게는 새로운 것이 있습니다.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입니다.

 

우리의 견해와 관점이 새로 바뀝니다. 새로운 목적의식이 싹틉니다. 새로운 삶의 목표가 생깁니다. 진정한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되면 자신을 위해서 살지 않습니다. 마지막으로 새로운 삶은 새로운 소망을 줍니다. 이 세상의 모든 불행, 삶의 모든 궁극적인 문제는 죄에서 비롯됩니다. 죄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죄에 늘 고통이 따르는 것은 바로 그 때문입니다(57:20).

 

죄는 언제나 불행을 낳습니다.

죄는 언제나 상실을 낳습니다. 자신의 정직함과 순결함과 순수함을 상실합니다. 이 모든 것은 결국 인격의 분열로 이어집니다.

죄는 언제나 두려움을 낳습니다. 현대인들이 쾌락에 빠지는 것은 두려움 때문입니다.

죄는 다른 이들과 블화를 낳습니다.

 

하지만 그리스도인이 되면 모든 것이 달라집니다. 그에게는 새로운 소망이 생깁니다. 그리스도인이 되면 삶과 죽음에 대한 시각이 바뀝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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