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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신앙은 결단이다(막 10:32-45),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4.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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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서 성공한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보통 사람들이 따라올 수 없는 결단과 노력을 한 사람들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성공을 추구하는 이유는 높은 자리에 올라가면 그 만큼 더 많은 명예와 특권을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가 최고의 자리에 올라가면 처음에는 성공에 도취되어 감격해 할 것입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갈수록 누군가 자신의 자리를 빼앗지 않을까 불안해 합니다. 더 이상 올라갈 자리가 없다는 것 때문에 허탈감에 사로잡히게 됩니다. 이 세상에 있는 복은 결코 오래 가지 않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진정한 행복은 죄 문제가 해결되어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결단하셨습니다. 이 세상에서 더 성공하고 높아지기로 결단한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정반대로 이 세상에서 가장 낮아지고 십자가에 못박혀 비참하게 죽기로 결심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렇게 하셔야만 인간에게 하나님의 복이 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절은 예수님의 인생 목표를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라. 우리에게도 두 가지 선택의 길이 있습니다. 하나는 다른 사람들처럼 이 세상에서 높은 자리에 올라가 모래성 같은 축복으로 살아가느냐? 다른 하나는 자신을 부인하고 낮아짐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복을 누리며 살아가느냐? 그 외에 다른 길은 없습니다.  

우리는 어떠한 위기 앞에서 좌절하거나 낙망해서는 안됩니다. 이 위기를 축복의 기회로 만들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 물론 우리가 좋은 일을 하는 데에도 결단이 필요합니다. 시간이 지나면 마음이 변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특히 자신의 희생이 필요한 경우에는 마음이 변하기 전에 결단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지금 인간에게 하나님의 복을 주시기 위해 십자가에서 고통과 죽음을 결단하셨습니다. 지금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시는 예수님의 태도는 이전과는 너무나 달랐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상당히 놀라고 두려워했습니다(32절).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당할 일을 또 다시 가르쳐 주셨습니다(33-34절).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올라갈 때 자신에게 일어날 일들을 너무나도 분명히 알고 계셨습니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서 너무나도 비인간적이고 비인격적인 고통과 수치를 당하게 되고 가장 고통스러운 방법으로 죽으셔야 하셨습니다. 예수님은 기꺼이 이 모든 일들을 당하시기 위해 제자들보다 한걸음 앞장서서 씩씩하게 예루살렘을 향해 걸어가셨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예수님은 부분적인 것을 보신 것이 아니라 전체적인 것을 보셨습니다. 부분적으로 보면 예수님이 가서 붙들려 재판을 받고 매를 맞아야 하고 욕을 얻어 먹어야 하며 침 뱉음과 채찍질을 당하고 나무에 못이 박혀 죽어야 합니다. 그러나 전체적으로 보면 예수님의 십자가의 고난을 통해 우리 죄가 사함을 받고 축복을 받게 되는 것이다. 예수님은 어쩔 수 없이 당하신 것이 아니라 순전히 우리를 위해 당하신 것입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이번에 예루살렘에 올라가면 왕이 되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약한 소리 하시는 것은 모두 쓸데없는 걱정에 불과하고 제자들은 예수님이 분명히 왕이 될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왕이 되시면 총리나 장관을 뽑아야 할 것인데 과연 누가 총리가 되고 장관이 될 것이냐 하는 것입니다(35-37절).  

 

드디어 세베대의 두 아들 야고보와 요한이 이 문제를 가지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36-37절). 야고보와 요한은 지금까지 예수님의 특별한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예수님은 다른 제자들을 데리고 가지 않은 곳에도 베드로와 이 두 제자를 데리고 다니셨습니다. 회당장 야이로의 딸이 죽었을 때도, 높은 산에서 변화될 때에도 그 둘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할 때도 이 두 사람을 데리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다른 어느 제자들보다 사랑하셨습니다. 이 두 제자는 그것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아예 예루살렘에 올라가기 전에 이 문제에 대해 예수님으로부터 분명히 약속을 받고 싶어했습니다. 오늘 다른 제자들 앞에서 예수님의 입으로 내가 너희를 내 오른쪽과 왼쪽에 두겠다는 발표를 해달라는 것입니다. 즉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이 왕이 되셨을 때 최고로 높은 장관이나 총리가 될 수 있도록 발표해 달라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루살렘에서 어떤 일이 기다리고 있는지 알지 못했습니다.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을 기다리는 것은 십자가의 처형인데 그들이 요구한 것은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에 못박히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구하는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38절). 잔은 속에 붓는 것입니다. 세례는 바깥에 붓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안으로 말할 수 없는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을 당하십니다. 또한 겉으로는 참을 수 없는 육체적 고통과 치욕을 당하십니다. 예수님은 안팎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돠 두려움과 비참한 것을 당하게 됩니다.  

지금 그들은 어떤 잔도 마실 준비가 되어 있지 않고 어떤 세례로 받을 수 없습니다. 물론 그들도 언젠가는 자신들의 잔을 마시며 세례를 받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아닙니다. 또한 예수님의 좌우편에 앉을 사람은 예수님이 정하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정하신다고 하십니다. 이 세상에서 아무 것도 희생하지 않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예수님으로부터 아주 멀리 앉아 있을 생각을 해야 합니다.  

야고보와 요한의 말을 듣고 다른 제자들이 난리가 났습니다. 자기들도 예수님께 부탁드리려고 했는데 야고보와 요한이 새치기를 했던 것입니다(41절).  예수님의 제자들도 그렇게 은혜를 받아도 성령 받기 전에는 높아지기를 좋아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이 세상에서 높아지기를 좋아한다면 하나님의 축복은 임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세상에서 출세와 하나님 나라에서 높은 자는 근본적으로 다르다고 말씀하십니다. 이 세상에는 높은 사람이 아랫 사람에게 명령하고 지시하면 복종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 세상에는 출세하면 더 권한과 능력이 커집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에게는 계급이 없습니다. 오직 있는 것은 섬기는 은사만 있을 뿐입니다. 예수님은 너희 중에 크고자 하는 자는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한다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돌보기 위해 가장 낮은 자리에 있습니다. 어머니는 아이들이 아프면 모든 것을 살펴주고 먹을 것을 챙겨 줍니다. 어머니는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모든 것을 어머니에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러나 어머니가 없으면 아이들은 불쌍하고 비참하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처음 믿을 때는 신앙적으로 어린아이 상태이기 때문에 먼저 믿는 자들이 섬겨 주어야 합니다. 부족한 것은 용납하여 주고 필요한 것은 챙겨주고 욕을 먹어야 할 것이 있으면 대신 욕을 먹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섬겨주고 챙겨주고 사람을 양육시키는 나라이지 계급사회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우리가 신앙적으로 자라면 자랄수록 자꾸 희생하게 됩니다.  

예수님이 오신 것은 군림하기 위해서 오신 것이 아니라 섬기기 위해 오셨다. 예수님은 우리의 인생을 살리기 위하여 자신의 생명을 주셨습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가지는 직책은 섬기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가 있는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잘 섬기는 기회로 삼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위나 자랑과 학벌과 돈을 가지고 교회에 외서 군림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실력이 있으면서 겸손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 최고의 서비스로 최고로 행복하게 해주는 것을 목표로 삼아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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