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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

관계 세미나 강의안

by liefd 2024. 4.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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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계를 위한 마음 훈련

 

1. 마음 전쟁 끝내기

 

사람이 이루는 일과 이루지 못하는 일은 모든 자신의 생각에서 비롯된다(영국의 철학자 제임스 앨런).

생각은 관계, 자아상, 재정상태, 건강, 일터, 가정, 시간 관리, 삶을 대하는 태도까지 모든 면에 빠짐없이 영향을 미친다.

대저 그 마음의 생각이 어떠하면 그 위인도 그러한즉”(23:7).

하나님과의 관계와 그분의 말씀에 대한 이해가 깊을수록 원수를 상대하는 능력은 강해진다.

 

올림픽 금메달 리스트인 스콧 해밀턴은 인생의 유일한 장애는 부정적인 태도뿐이다."

부정적인 생각은 아무 것도 변화시킬 수 없다. 단지 상황만 악화시킬 뿐이다.

하나님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우면 이 세상에 해내지 못할 일이 없다.

윈스턴 처칠은 태도는 작은 것이지만 큰 차이를 만든다.”

 

긍정적인 태도를 위한 5가지 법칙

 

첫째, 상황이 나쁠수록 긍정적인 태도를 유지하라

 

모든 것은 우리의 선택에 달려 있다. 나쁜 생각을 선택하면 불행해지고, 좋은 생각을 선택하면 행복해진다.

 

둘째, 영원한 시련은 없다

 

아무리 모진 고난도 물러갈 날이 반드시 온다. 야고보서 12-3절에 따르면 하나님은 시련과 고난을 통해서 열매 맺게 하신다. 아무리 힘든 날도 정해진 기간이 있다.

 

셋째, 성급히 결정을 내리지 마라

 

비바람이 한창 몰아칠 때에는 중요한 결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인생의 풍랑이 밀려 올 때는 최대한 마음을 진정시키는 것이 급선무이다. 상황이 복잡하면 마음도 실타래처럼 꼬이므로 되도록 중요한 걱정을 내리지 말아야 한다.

 

넷째, 관제탑과의 통신을 유지하라

 

항공 교통 관제사는 전체 상황을 볼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다. 조종사가 비행기를 적시에 안전하게 운행하려면 관제탑과의 통신을 항상 유지해야 한다. 이와 같이 우리도 하나님과의 통신을 유지해야 한다. 왜냐하면 오직 하나님만이 우리 인생의 전체상황을 보시고 만사를 조율하실 수 있기 때문이다.

 

다섯째, 상황을 정확히 판단하려고 노력하라

 

어려운 일이 생기면 부정적인 단면만 보지 말고 풍랑 속에서도 긍정적인 면을 찾으려고 노력하라. 다윗 왕도 절망스러운 상황의 한복판에서 희망을 보려고 노력했다(시편 42).

 

마음은 사탄과 싸우는 전쟁터다.

 

사탄이 가장 애용하는 두 가지 무기는 걱정, 그리고 머리로 다 이해하려는 태도다.

사탄은 이 두 가지 외에도 우리에게 있는 많은 약점을 통해 마음속으로 들어와 견고한 진을 쌓는다.

견고한 진은 부정적인 마음 자세와 생각의 방식이다(고후 10:4-6).

고린도후서 105절에서는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라고 말한다.

 

우리가 부정적인 생각을 사로잡지 않으면 부정적인 생각이 우리를 사로잡을 것이다.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야말로 부정적인 생각을 몰아내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다.

하나님은 근심과 걱정이 밀려올 때 진리를 선포하라고 내게 가르쳐 주셨다. 자신이 무가치하며 무엇을 해도 실패할 수밖에 없다는 거짓된 생각이 밀려오면 이렇게 선포하라. "내 인생을 위한 하나님의 소중한 목적이 있어. 하나님이 승리로 이끄실 거야".

 

성경의 생각을 품으라. 그것은 곧 하나님의 생각을 품는 것과 같다.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기만 하면 우리의 삶은 놀랍게 변할 수 있다.

잘못된 생각을 한 번 물리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계속해서 옳은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 필요하다.

나쁜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애쓰는 대신 좋은 생각을 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나쁜 생각은 하지 않으려면 할수록 더 강해지는 법이다. 좋은 생각으로 마음을 꽉 채우면 나쁜 생각이 들어올 틈이 없어진다. 좋은 면을 자주 생각할수록 실제로 인생의 문젯거리가 줄어들었다. 성경은 성령을 따라 행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룰 수 없다고 말한다(5:16, 4:8).

 

신명기 3019절에서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두셨다고 말씀하신다. 우리가 먼저 생명의 생각을 선택하지 않으면, 사탄이 우리를 사망의 생각으로 선택하려 할 것이다.

하나님은 말씀을 통해 우리를 가르치시고 성령을 통해 도와주시지만, 실제로 생각을 바꾸는 것은 어디까지나 우리의 몫이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생각을 바꾸면 위대한 삶을 살 수 있다.

의식적으로 위대한 생각을 선택하는 것이야 말로 위대한 삶을 위한 열쇠다. 누구보다 많은 돈과 명예를 갖고 있으면서도 불행하게 사는 사람이 너무 많다. 사랑과 평안, 올바른 신앙과 좋은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삶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에 있어서 위대한 삶이다.

 

의식적인 생각하기를 위한 3가지 원칙

 

1. 마음을 고정하라

 

골로새서 32절은 생각에 관한 귀중한 교훈을 주고 있다. “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하지 말라”.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기시는 것(위의 것)을 생각함으로 마음에 좋은 생각들을 가득 채워야 한다는 뜻이다.

위의 것에 생각을 고정한다는 함은 꿋꿋하게 하나님의 길로만 가지로 마음을 먹는다는 뜻이다.

 

마음을 고정하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는 미리 단단히 마음을 먹지 않으면 실제로 유혹이 닥쳤을 때 뿌리치기가 힘들기 때문이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확신했기 때문에 흔들리거나 의심을 품지 않았다고 말한다(4:20-21).

말로 표현하는 것은 마음을 고정하는데 효과적이다.

 

다른 사람에 대해 나쁘게 생각하거나 험담을 하지 않겠다. 뒷담화 하는 자리에 끼지 않겠다. 성령을 근심하게 만들지 않겠다.

 

오늘밤 식탁에서는 과식하지 않겠다. 배가 부르면 즉시 숟가락을 놓겠다. 몸에 좋은 음식을 먹고 감정에 휘둘려 먹지 않겠다.

 

인생의 어떤 영역에서도 극단으로 치우치지 않겠다. 균형 잡힌 삶을 살겠다.

 

그 무엇에도 불평하지 않겠다. 내게는 감사할 거리가 정말 많다. 그것들을 생각하겠다.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겠다. 사람들과 어울리게 하기 위해서 내 신앙과 윤리 의식을 타협하지 않겠다.

 

불필요한 스트레스를 날려 버리겠다. 지나치느니 모자라게 살고 최대한 가볍게 살겠다.

 

긍정적인 생각과 긍정적인 말만 하겠다.

 

2. 마음을 새롭게 하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12:2).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은 한순간에 이루어지 않는다. 마음을 새롭게 하는 일은 낡은 집을 새롭게 수리하는 일과 비슷하다.

마음이 새로워지려면 계속 옳은 생각을 해야 한다. 마음의 모든 영역을 새롭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자신에 관한 생각, 돈에 관한 생각, 건강에 관한 생각, 가족에 관한 생각, 미래에 관한 생각, 휴가와 휴식에 관한 생각, 직업에 관한 생각, 미래에 관한 생각 등, 우리는 모든 영역에서 마음을 새롭게 해야 한다.

생각의 방식을 바꾸기 위해서는 막대한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

 

3. 마음의 허리를 동이라

 

베드로전서 113, “너희 마음의 허리를 동이고 근신하여 예수 그리스도 나타나실 때에 너희에게 가져다 주실 은혜를 온전히 바랄지어다.”

마음에 허리를 동이라는 뜻은 하나님이 주신 경주에 장애되는 모든 요인을 몰아내라는 뜻이다. 즉 꼭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는 뜻이다.

 

우리가 하는 생각에는 바꿔야 할 생각이 정말 많다. “나는 별 볼일 없는 사람이야, 내 인생은 끝났어, 나는 잘 하는 것이 하나도 없어, 이런 생각을 할 시간이 있다면 하나님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에 대해 더 많이 생각하기를 바란다.

종일 자신이 처한 문제나 상처를 묵상하느니 아예 머리 속을 비우는 편이 낫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 자신을 유익하게 만드는 일을 묵상해야 한다.

 

12가지 마음 훈련 프로그램

 

성경 말씀을 큰 소리로 반복해서 읽기를 권한다. 글로 쓰고 말로 선포하면 새로운 마음이 더 빨리 자리를 잡는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이 바뀐다(노먼 빈센트 필).

 

내면 훈련

 

1. 자신감 훈련으로 끝내라 :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인생을 훈련시키는 첫 번째 마음 훈련은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4:13).

다시 말해 나는 인생의 어떤 상황도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어떤 그리스도인은 자신을 통해 역사하시는 그리스도의 능력에 대해서는 까마득히 망각한 채 어떻게든 자기 힘으로 해내려고 발버둥을 친다. 우리는 하나님의 동역자다. 우리가 하나님의 역할을 대신 할 수 없고, 하나님 역시 우리 역할을 대신해 주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되 어디까지나 하나님을 믿고 그분의 인도하심을 따라야 한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의 인생 속에서 인격적으로 역사하시는 동시에 그를 통해 나를 빚어 가신다. 따라서 그 사람의 변화를 위해 기도하되, 하나님이 내게 모든 상황을 능히 이길 능력을 주심을 믿고 하루하루를 기쁨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을 믿으신다. 그렇다면 이제는 당신이 당신 자신을 믿을 차례다.

 

중요한 것은 시련이 아니라 시련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이다. 우리의 태도를 긍정으로 바꾸면 인생의 시련이 생각만큼 커 보이지 않는다.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자신감과 믿음을 갖기 바란다.

지금 당장 변명의 보따리를 내던지고 그 대신 믿음의 보따리를 준비하라. 믿음의 보따리 안에 그 일을 할 수 있는 이유를 꽉꽉 채우라.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8:37).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어떤 문제와도 맞서 싸울 수 있다.

 

2. 자존감 훈련으로 끝내라 : 나는 사랑받는 존재다.

 

"곧 창세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서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1:4)

나는 왜 이 모양일까?” 사탄이 사람의 마음에 가장 많이 심는 생각 중의 하나다. 이런 생각은 우리의 자존감을 무너뜨린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바른 길로 인도하시만, 그보다 먼저 우리를 아무런 조건없이 사랑하신다. 하나님의 사랑을 깊이 경험할수록 그분을 닮아 가고 싶은 마음이 강해지지 때문이다.

사탄은 우리를 향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신호를 보낸다. “너는 항상 못났어.”. 너는 항상 이 모양이야.“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충분히 사랑받을 만한 자라고 말씀하신다. ”이제 우리가 그의 피로 말미암아 의롭다 하심을 받았으니“(5:9).

 

세상은 내가 잘해야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러다 보니 많은 사람이 성과참된 정체성보다 중요하다는 거짓말에 넘어가 비참한 삶을 살고 있다. 하나님은 당신의 정체성으로 인해 당신을 사랑하신다. 우리의 정체성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사실이다.

당신의 삶은 아직 부족한 구석이 많아도 당신의 정체성은 더 없이 귀하다.

 

3. 두려움 떨치기 훈련으로 끝내라 :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려워하는 마음이 아니요 오직 능력과 사랑과 절제하는 마음이니”(딤후 1:7).

사람들이 가장 자주 상담해 오는 문제는 두려움이다. 건강에 대한 걱정, 재정 문제에 대한 걱정, 사랑하는 사람을 잃을까 봐하는 걱정, 등 사람들은 삶 자체를 두려워한다.

 

두려움에 사로잡히면 어떤 일을 해도 기쁘지가 않다. 두려움은 우리의 심신을 괴롭혀 인생의 기쁨을 누리지 못하게 만든다. 두려움은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든다.

모든 두려움은 사탄에게서 비롯되며, 예수님이 주신 생명을 빼앗는 것이 목적이다. 두려움이 감정의 한 가지라고 생각하기 쉬운데, 두려움은 마음뿐 아니라 몸에도 영향을 미친다. 캐롤라인 리프 박사는 두려움이 “1400 가지 이상의 육체적, 화학적 반응을 촉진하고, 30가지 이상의 호르몬과 신경 전달 물질을 분비시키며 모든 스트레스의 근원이 된다고 말한다.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불행한 삶을 살게 만드는 사탄의 도구다.

 

로마서 815절은 이렇게 말한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우리가 아빠 아버지라고 부르짖느니라.두려움의 감옥에 갇혀 살 필요가 없다. 담대한 마음과 용기를 품고 인생의 모험을 즐겨도 좋다.

두려움이 생기기 시작하면 즉시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겠다라고 말하고 기도하는 습관을 기르라.

능력의 쌍둥이란 기도와 선포이다.

믿음은 감정이 아니라 삶의 태도다. 우리가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확신하며 담대히 행할 때 사탄이야말로 두려움을 느낀다.

 

4. 염려 맡기기 훈련으로 끝내라 : 나는 하나님을 신뢰한다.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신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3:5)

질병의 87%가 부정적인 사고방식에서 온다. 근심은 부정적인 생각의 범주에 들어가는 데, 모든 부정적인 생각은 뇌를 자극해 우리 몸에 안 좋은 화학물질을 분비하게 만든다.

 

걱정은 죄다. 왜냐하면 걱정은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걱정은 나중에 하고 일단은 해야 할 일부터 하라.

우리는 문제에 집착하지 말고 오히려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생각하라.

어떤 상황에서도 걱정이 아닌 믿음을 선택하도록 매순간 연습하라.

 

성경은 믿음의 주요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님을 바라보지 못하게 만드는 모든 것에서 눈을 떼라”(12:2).

우리에게 불가능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께 가능한 일을 더 자주 생각하라. 힘든 상황에만 주목하면 절망감이 찾아온다.

염려와 걱정은 감정과 관련된 불안만이 아니라 머리와 관련된 고민도 동반한다.

근심과 걱정이 생기는 즉시 기도로 그 짐을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기도는 승리하는 인생의 청사진이다.

걱정과 염려는 사탄에게 괴롭힘을 당하는 지름길이지만, 예배는 하나님의 임재 속으로 들어가 평안과 기쁨을 누리게 해준다.

 

사탄이 위기상황이나 부정적인 생각으로 우리 마음에 근심과 걱정을 일으키려고 한다면, 우리는 즉시 믿음의 방패를 들어 올려야 한다.

인생에게 가장 부담스러운 짐은 바로 자기 자신이다. 믿음으로 자신을 하나님께 온전히 맡기지 않으면 자신의 삶과 감정, 성미, 내면을 다스리는 것이 그렇게 힘겨울 수가 없다.

계속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공부하고 기도하며 맡은 일에 충실하고 사람들을 도우려고 애쓸수록 인생의 문제가 빨리 해결된다.

 

5. 감정 훈련으로 끝내라 :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다.

 

그러나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은 큰 유익이 되느니라(딤전 6:6).

하나님이 내게 주신 최고의 복 중에 하나는 안정된 감정과 만족감이다.

감정에 따라 사는 사람은 삶의 원칙이 없다. 감정에 휘둘리면 영적일 수가 없다. 감정이 생길 수는 있지만 그 감정을 무조건 믿어서는 안된다. 감정의 성숙을 인생의 주요한 목표중 하나로 삼으라. 감정의 성숙을 위해 진심으로 기도하라.

 

감정을 다스리는 데 도움이 되는 성경 구절들은 다음과 같다.

 

예레미야 17:8과 시편 1:3은 단단히 심겨진 나무처럼 되라고 가르친다.

 

베드로전서 5:8-9은 사탄에게 잡아먹히지 않도록 마음을 잘 다스리라고 가르친다. 사탄의 공격을 잘 견뎌내려면 강하고 흔들림이 없어야 한다.

 

빌립보서 1:28은 사탄이 공격해 와도 하나님을 의지해 두려워하지 말라고 가르친다.

 

시편 94:13은 하나님은 역경에도 흔들리지 않을 힘을 주신다고 말한다.

 

감정의 기복은 삶을 무너뜨리는 주된 이유 중 하나다.

어떻게 해야 만족감과 안정감을 얻을 수 있을까요? 해법은 바로 인내와 절제다. 성숙하고 균형이 갖춘 사람이 되려면, 감정에 따라 행동하지 않겠다고 결단해야 한다.

절제가 뒷받침되어야만 성숙한 사람이 될 수 있다. 절제하면 자존감과 자신감이 높아진다.

결정, 특히 중요하거나 까다로운 결정을 내려야 할 때는 명확한 답이 떠오를 때까지 절제하고 기다려야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

 

우리는 하나님께 신뢰를 얻어야 하고, 사람들에게도 믿을만한 모습을 보여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격이 안정되고 성숙해야 한다.

불만이 가득하면 쉽게 화를 내게 되고, 상황에 상관없이 만족하기로 선택하면 감정이 안정을 이룬다.

사도 야고보는 하나님께 자신의 필요를 아뢴 뒤 믿고 기다리지 않고 스스로 필요를 채우려는 태도를 불만족의 근원으로 꼽았다. 남이 가진 것을 부러워해도 불만족의 늪에 빠질 수밖에 없다. 우리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구해야 하며, 혹 구한 것을 얻지 못해도 하나님이 더 좋은 것을 예비하셨다고 믿을 수 있어야 한다.

 

사도 바울은 디모데에게 자족하는 마음이 있으면 경건이 큰 유익이 있다고 했다(딤전 6:6). 우리는 유익하지 않은 것을 좇다가 가치 있는 것을 놓칠 때가 많다.

하나님을 믿고 사람들을 사랑하는 것이 만족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반대로 하나님을 믿지 않고 사람들을 사랑하지 않으면 불만족과 불행이 앞 다투어 몰려온다.

 

6. 필요 채우기 훈련으로 끝내라 : 하나님이 풍성히 공급해 주신다.

 

사랑하는 자여 내 영혼아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 2절)

실제로 하나님은 성경 곳곳에서 무엇이든 필요한 것을 공급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으며, 자녀의 필요를 채우시는 것은 그분이다. 그래서 구약에서 하나님을 부르는 호칭 중 하나가 여호와 이레‘, 우리의 공급자 하나님이다.

 

우리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면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주신다(4:19).

진정한 번영은 물질의 풍요보다 훨씬 더 광범위한 개념이다. 사도 바울은 몸과 영혼의 번영에 대해 이야기 했다. 영혼이 번영하면 내면의 꽃을 피운다. 평안하고 기쁨이 충만해진다. 목적의식도 분명해지고 영적으로 성장하며 사람들을 깊이 사랑할 수 있다.

 

내가 먼저 짜기 시작하면 하나님이 실을 주실 것이다’(독일 속담).

성경은 하나님이 그분의 백성에게 복 주실 기다리시되, 그 복을 기대하는 사람을 찾으신다고 말한다(30:18).

우리가 싸구려 정신을 벗어 던져야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신다.

우리는 번영하되 목적이 있는 번영을 추구해야 한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데는 다른 사람에게 복을 나눠 주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다(고후 9:8-10).

 

7. 절제 훈련으로 끝내라 : 날마다 새롭게 결단한다.

 

무릇 징계가 당시에는 즐거워 보이지 않고 슬퍼 보이나 후에 그로 말미암아 연단 받은 자들은 의와 평강의 열매를 맺느니라(12:11).

쉽게 얻은 승리는 그 영광도 가볍다(토머스 페인).

절제하는 삶이야말로 능력 있는 삶이다.

절제는 자유로 향하는 문이다. 절제하지 않으면 종으로 전략하고 만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많은 자유를 주셨다. 우리는 무엇을 생각하고 말하고 행할지 스스로 선택할 수 있다.

그러기 위해 우리 마음이 새로워져야 하고, 예수님처럼 생각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을 우리도 원하게 된다.

 

절제는 훈련에서 나온다. 생각의 영역에서 훈련은 행복과 불행, 사탄의 종노릇하는 삶과 하나님 안에 자유로운 삶을 결정짓는 요인이다.

사탄이 한번 우리 마음에 견고한 진을 쌓으면 결코 순순히 물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옳은 생각을 하기로 결심했으면 최후의 승리를 얻을 때까지 포기하지 말아야 한다.

 

특히 잠들기 전에 다음과 생각들을 반복해서 묵상해 보라.

나는 그리스도 안에서 무엇이든 할 수 있다.

 

하나님은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

 

두려움 속에서 살지 않겠다.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

 

나는 사람들을 사랑하고 즐거이 돕겠다.

 

나는 하나님을 믿기에 아무 것도 걱정하지 않는다.

 

나는 늘 만족하고 감정적으로 흔들림이 없다.

 

하나님이 내 모든 필요를 풍성히 채워 주신다.

 

하나님, 나 자신, 남들과의 화평을 추구하겠다.

 

현재 속에서 살며 매 순간을 즐기겠다.

 

나는 절제할 줄 아는 사람이다.

 

하나님을 내 인생의 중심에 모시겠다.

 

마음은 전쟁터다. 삶에서 이기느냐 지느냐가 마음속에서 결정된다. 우유부단, 자신감 결여, 두려움, 방황하는 생각들은 모두 훈련하지 않은 결과다.

원하지 않은 생각을 떨쳐 내기 위한 방법은 의외로 간단하다. 다른 생각을 하면 된다. 이때 주변 분위기를 바꿔보면 된다.

나쁜 생각이 떠오른다고 해서 나쁜 사람은 아니다. 하지만 그 생각을 즉시 좇아내지 않으면 정말로 나쁜 사람이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내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30:19).

하나님은 선택 사항을 제시할 뿐 선택권은 우리에게 맡기셨다. 옳은 길을 알면서도 가지 않는 것은 죄다(4:17).

판단은 하나님께 맡기고 우리는 화평 하는 일에 힘써야 한다(5:9,23-24).

하나님은 우리에게 절제의 열매를 주셨고, 우리가 자신을 선하게 다스릴 수 있기를 기대하신다.

자녀를 교육하지 않는 사람은 대개 스스로 훈련되지 않은 사람이다.

 

 

관계훈련

 

8. 용서 훈련으로 끝내라 : 나는 용서할 능력이 있다.

 

주의 법을 사랑하는 자에게는 큰 평안이 있으니 그들에게 장애물이 없으리이다”(119:165.

누군가 내 심기를 건드리거나 무례하게 굴 때, “나는 감정에 휘둘리지 않는 사람이다.”라고 말하라.

그러면 평정심을 유지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 이렇게 말한 뒤에는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는 기도를 드린다.

기도와 선포는 쌍둥이처럼 함께 다녀야 한다.

 

사탄의 가장 기만적이고 음흉한 미끼 중 하나는 모든 그리스도인이 경험하는 미끼다. 그것은 바로 모욕이다. 사실 모욕 자체는 치명적이지 않다. 하지만 모욕을 마음에 두고 곱씹으면 마음이 상한다. 그리고 마음이 상한 사람은 상처, 분노, 질투, 다툼, 원망, 미움, 시기 같은 열매를 맺는다.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 말세의 징조 중 하나는 서로의 마음을 상하게 하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이다(24:10).

우리가 남을 용서하지 못하는 이유 가운데 하나는 용서가 어렵다고 스스로에게 최면을 걸어 두었기 때문이다.

화를 낸들 상대방은 변하지 않고 우리만 나쁜 쪽으로 변할 뿐이다. 원망과 복수심은 우리 자신의 심신만 갉아 먹는다.

원수를 위해 기도하고 축복하는 일이 불가능해 보이지만 마음만 먹으면 얼마든지 해낼 수 있다.

상처를 받았다고 해도 하나님을 믿고 기다리면 그분이 반드시 우리의 억울함을 풀어 주신다.

하나님은 심지어 우리의 고통까지 유익하게 사용하신다(8:28, 61:7).

 

나에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가장 영적이고 강력한 일 중 하나이다(12:21). .

무언가 이유가 있을거야라고 생각하면 상대방을 용서하기가 훨씬 쉬워진다(고전 13:7).

하나님과의 관계가 깊어지면 사람들을 믿어 주고 그들의 좋은 면을 보는 태도의 힘을 발견하게 된다.

복음은 우리가 용서받았다는 좋은 소식이다. 이로써 우리는 다른 사람을 용서할 능력을 얻었다.

미움과 원망을 품은 삶은 마음의 감옥에 갇힌 사람이다(18:34).

우리가 용서하지 않으면 우리의 믿음이 제대로 힘을 발휘하지 못한다(11:22-26).

 

9. 화목 훈련으로 끝내라 : 하나님, 사람과 화목을 추구한다.

 

악을 버리고 선을 행하며 화평을 찾아다닐지어다(34:14).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죄를 숨기지 말아야 한다. 하나님과 우리의 화목은 우리가 그분의 용서가 필요한 죄인임을 깨닫고 그 죄를 고백함으로 시작된다(요일 1:9).

하나님과 화목하려면 최선을 다해 그분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문제에 집중하지 말고 예수님과 그분이 행하신 일에 초점을 맞추라, 하나님이 나를 무조건적으로 사랑하신다는 것에 초점을 맞추라.

용서는 인간관계도 풍성하게 만든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처음부터 용서하겠다는 마음을 가져라.

우리가 하나님과 다른 사람과 나 자신과 건강한 관계를 맺을 때 불필요한 고통의 세월을 피할 수가 있다.

 

기대의 수준을 조금만 낮추면 사람들과 화목할 수 있다.

 

1단계 : 하나님과 화목하고 자기 자신과 화평하도록 노력하라. 그런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관계 속에서 화목할 수 있다.

 

2단계 : 사람들이 완벽하기를 바라서는 곤란하다. 그러므로 애초에 자주 용서 하겠다는 마음으로 관계를 시작해야 한다.

 

3단계 :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소망이다.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기질이 다르다.

 

4단계 : 사람들의 기를 꺾는 사람이 아니라 격려해 주는 사람이 되라

 

10. 나눔 훈련으로 끝내라 : 주는 것이 받는 것보다 행복하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13:34).

인간이 가는 곳마다 사랑을 베풀 기회가 있다. 예수님처럼 되고 싶다면 그분처럼 은혜롭고 무조건적이며 용서하는 사랑을 실천해야 한다.

사랑은 내 이웃을 내 몸과 같이 대하겠다는 결단으로 시작해, 실제로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워 주는 행동으로 끝맺는다.

 

다른 사람을 위해 매일 최소한 한 가지 일을 하기로 하나님 앞에서와 자신 앞에서 결단하십시오.

사랑을 당신 인생의 주제로 삼으면 가치 있는 삶을 살 수 있다.

남을 돌보는 것은 인간으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일이다.

남들에게 무엇을 해줄까를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한다(6:10).

우리가 가진 것으로 하나님과 사람을 섬기면 우리의 필요는 하나님으로 인해 언제나 풍성하게 채워질 것이다.

 

11. 인생 즐기기 훈련으로 끝내라 : 순간순간이 하나님의 선물이다.

 

이 날은 여호와께서 정하신 것이라 이 날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기뻐하리로다”(118:24).

어제는 역사이고 내일은 미스터리이며, 오늘은 선물이라서 ‘present’라고 부른다. 과거에 집착하지 말고 너무 먼 미래까지도 고민하지 말며, 현재는 하나님이 바로 지금 우리에게 주신 선물임을 알고 최선을 다해 살아가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인생을 즐기기를 바라신다(2:24).

우리는 자신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예수님을 위해 인생을 즐겨야 한다(10:10).

 

12. 우선순위 훈련으로 끝내라 : 하나님께 인생의 주권을 드린다.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20:3).

우리는 생각과 말, 결정의 중심에 하나님을 모셔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의 사업과 직업과 생각과 대화, 자녀를 키우는 방식, 시간관리, 돈 사용, 먹고 마시는 습관, 여가 생활, 등 모든 삶에 참여하기를 원하신다.

 

 

. 관계가 주는 기쁨

 

우리 모두는 성화되는 과정 중에 있다. 그렇게 때문에 계속해서 싸워가야 하는 것이다. 이기심, 교만,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 짜증, 조급한 성미가 고개를 치켜들더라도 두려워하거나 절망하지 말라. 그 혼란의 소용돌이 한 가운데서 하나님의 일하심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여러분이 관계를 맺는 데 있어서 가정에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알고 싶다면 두 가지 질문에 답해보자.

첫째 가족들이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들을 여러분도 소중히 여기는가?

둘째, 가족들이 힘들어하는 일에 대해 여러분도 염려하고 있는가?

가정환경은 관계를 보는 우리의 관점에 영향을 미친다.

 

C.S 루이스는 하나님과의 관계가 인간관계의 근간이 된다고 말한다. 이 땅의 그 어떤 사랑스러운 것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될 때 우리는 이 땅의 것을 진정으로 사랑할 수 있다. 지금껏 우리는 하나님보다 그들을 더 사랑하고, 하나님보다 그들을 더 섬겨왔다. 그러면 이 땅의 것을 제대로 사랑할 수 없다.

 

삼위일체 관계 속에 계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관계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218절에서 하나님은 사람을 공동체적인 존재로 창조하셨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죄가 들어옴으로서 관계가 혼란과 절망에 빠진다.

창세기 3장에서 아담과 하와는 선악과를 먹는 범죄를 시작으로 하여 서로 비난하는 죄를 저지르고,

4장에서는 형이 아우를 살해하는 죄를 짓는다. 죄로 인해 모두가 혼란과 절망 속에 빠져버린다.

 

하나님께서는 왜 아담과 하와가 관계를 맺도록 창조하셨을까?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위해서이다.

성경은 그리스도만이 모든 관계의 유일한 희망이라고 말한다.

 

관계에서 실망하게 되었을 때 당신은 어떤 반응을 보이는가?

 

다른 사람을 탓하고 문제를 인정하지 않고 외면하고 위협을 가하는가? 아니면 잘못을 인정하고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 용서를 구하는가? 인내하고 상처를 훌훌 털어 버리고 다른 사람들을 격려하고 존중해주는가?

갈등하는 관계 속에서도 하나님의 관심은 오직 우리의 구원에 있다.

 

관계에서 가장 위험한 것은 인간적인 연약함이 아니라 우리가 자신의 힘을 의지하고 오용하는 것이다. 자신의 능력을 의지하면 관계는 파탄으로 치닫게 되지만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그분의 도우심을 구하면서 문제를 하나하나 해결해 가면 친밀감이 회복된다.

 

화목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예수님은 먼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회복시켜주셨다. 이를 근간으로 우리의 모든 인간관계가 회복될 수 있는 것이다.

신약은 그리스도인 관계의 덕목이 겸손과 온유와 인내이며, 관계를 통해 정직과 평화, 용서와 긍휼 그리고 사랑이 나타난다고 가르친다.

 

우리의 모든 관계는 분리와 몰입이라는 두 극단 사이에 놓여 있다.

 

관계의 문제들 대부분은 아래의 세 가지 유형들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1. 절망적인 관계

한 사람은 분리지향적이고, 다른 한 사람은 몰입지향적이라고 하자. 한 사람은 안전을 기대하고 다른 한 사람은 친밀감을 느끼고 싶어한다.

분리지향적인 사람은 가방에 책을 넣을 것이고, 몰입지향적인 사람은 둘이서 함께 할 수 있는 놀이계획을 세우는데 여념이 없을 것입니다. 분리지향적인 사람은 답답함을 몰입지향적인 사람은 거절감을 느낀다.

2. 의존적 관계

두 사람 모두가 몰입지향적이다. 이들은 서로의 감정에 휘둘리는 롤로 코스터를 타게 된다. 서로에게 의존적이라 상대방이 자신의 필요를 만족시켜 주지 않으면 쉽사리 상처를 받는다.

3. 고립된 관계

두 사람 모두가 분리지향적일 경우 그들은 관계의 위험을 잘 알기에 항상 안전지대에만 있으려고 한다. 그들은 비인격적이고 제한적이며 조심스럽게 대화하고 자신을 좀처럼 드러내려고 하지 않는다,

 

다시 말해 관계 그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이 아니라 관계에 대한 마음과 기대치에 문제가 발생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알아야 한다. 하나님은 이런 관계를 통해 내가 무엇을 깨닫기를 원하실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우리는 우선 하나님의 성품을 알아야 인간관계의 본질을 이해할 수 있다.

예수님의 공생애 사역 기간 동안 가장 중요하게 여기셨던 것이 공동체이시다. 예수님은 그 무엇보다도 주님의 백성이 하나가 되도록 기도하셨다(17:20-26).

 

앞서 말한 관계의 세 가지 유형에서 궁극적인 결함은 하나님의 목적보다는 개인적인 욕망에 좌우되는 인생을 사는 데 있다.

자기중심주의는 관계를 단절시키는 죄의 본질이다(고후 5:14-15).

하나님과의 연합이 진정한 공동체의 유일한 출발점이다.

공동체로 존재하는 사람만이 하나님의 형상을 온전히 나타낼 수 있다.

 

성경은 관계에 많은 어려움이 따르고 많은 수고가 필요함을 전제로 하고 있다.

 

너희 중에 싸움이 어디로부터 다툼이 어디로부터 나느냐(4:1). 관계에 있어서 문제의 원인은 대개 우리 안에 있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시한다.

우리는 자신이 원하는 것과 상대방에게 기대하는 것을 하나님보다 더 중시한다. 이 말은 자신이 가장 궁극적인 가치이며, 하나님은 다음이라는 뜻이다.

 

관계란 본래 타자중심적인 것인데도 그와는 다르게 죄의 자기중심적인 태도를 갖게 되면 결국 하나님의 의도와 어긋난 방향으로 가게 마련이다.

건강한 관계는 두 사람이 하나님의 통치를 인정하고 복종할 때 이뤄진다. 자기 자신이 왕이 되려는 생각으로는 결코 관계를 튼튼하게 세울 수 없다.

 

좋은 관계는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다. 타락한 세상에서 관계를 맺으며 살아갈 우리에게 하나님은 말씀을 주셨다. 그 말씀은 풍성하고 지혜로운 원칙이다. 또한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령을 주셨다.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잘못을 깨닫게 해주시고, 우리에게 악을 행한 사람들을 긍휼히 여길 수 있게 해주신다. 하나님은 또한 우리에게 동시대를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의 공동체를 허락해 주셨다. 그 안에서 우리는 지속적으로 자기 자신을 교정하고 사람들의 격려를 받는다.

 

관계에 대한 만족도가 클수록 자신이 타산적이라는 사실을 의식하지 못한다. 이같은 타산적 습성은 관계를 파괴하는 병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우리의 목적은 개인적인 행복이지만, 하나님의 목적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도록 하는데 있다.

 

그리스도인들의 관계는 소중하게 여기고 유지해야 하는 선물이다.

 

하나님은 우리로 하여금 서로 다른 사람들과 교제함으로써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도록 하셨다(4:7-16).

다양성은 장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이루는 중요한 도구이다.

 

바울은 관계를 해치고 하나님의 목적이 성취되는 것을 훼방하며 갈등을 지속해서 일으키는 일곱 가지 악한 성향이 있다고 말한다.

 

자기도취 (19-24) : 관계 속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따르지 않고 내가 원하는 대로 행동한다.

 

기만(25) : 관계 속에서 내가 원하는 것을 갖기 위해서라면 거짓말도 할 수 있다.

 

분을 냄(26-27) : 화를 내면서 관계를 내 마음대로 좌지우지하려 들고, 상대방에게 분을 품어 기어코 내 말을 듣게 만든다.

 

이기심(28) : 내가 가진 것을 상대방에게 베풀면서도 섬기고 싶지는 않다,

 

효과적이지 않은 의사소통(29-30) : 상대방의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서가 아니라 내가 편해지려고 말을 한다. 그로써 내가 우위에 있다는 느낌이 든다.

 

분열(31) : 관계에 어려움이 있을 때 상대방을 동반자가 아닌 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다.

 

용서하지 않으려는 마음(32) : 내게 잘못한 사람들은 기필코 그 대가를 치러야 한다.

 

우리는 관계에서의 갈등을 직면하고 이를 해결하려고 하는 태도를 보일 때 하나님이 임재하시고 역사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우리를 위한 하나님의 계획은 우리의 생각보다 훨씬 더 지혜롭다(19-24).

 

열매 맺는 삶으로 변화시키는 능력이 있다(25).

 

온유와 인내 그리고 사랑의 치유능력이 있다(26-27).

 

섬김의 기쁨을 알고 누군가를 필요로 하게 된다(28).

 

사랑과 건강한 의사소통의 가치가 있다(29-30).

 

관계의 기능적인 연합이 주는 아름다움이 있다(31).

 

용서가 주는 자유가 있다(32).

 

좋은 관계는 두 개의 주춧돌 위에 세워지는데, 그것은 바로 정체성과 예배이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관계를 맺으려면 견고한 새 기초를 세우는 작업과 더불어 재건과 복구 그리고 회복을 시작해야 한다. 이러한 기초는 우리의 말과 행동에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비롯된다. 나는 누구인가?(정체성)에 대한 성경적인 관점을 삶에서 드러내고, 하나님은 어떤 분이신가?(예배)에 대해 확신을 가질 때 건강한 관계를 유지할 수 있다.

어디에서 정체성을 발견하느냐에 따라 관계에 대해 노력할 수도 있고 포기할 수도 있다.

 

 

말에는 역사하는 힘과 방향성이 있어 항상 그 결과물을 거두게 된다.

말은 창조주가 우리에게 허락하신 것으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사용되어야 한다. 야고보는 말이란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절실히 필요로 하는 존재임을 가르쳐 주는 가장 강력하고 지속적인 도구라고 했다(3:2).

언어습관을 바꾸기를 원한다면 우선 마음의 변화를 받아야 한다(6:45).

우리의 말이 하나님의 회복 역사가 아닌 자기 마음의 욕구를 반영할 때 끊임없이 문제가 일어난다.

 

 

우리는 성경적인 관점으로 말해야 한다(4:29-30).

 

1. 사람을 고려하라(오직 덕을 세우는데)

바울은 상대방을 세워주지 못하는 말은 하지 말라고 했다.

 

2. 문제를 고려하라(소용되는 대로)

말을 하기 전에 지금 무엇이 문제일까? 가장 필요로 하는 것이 무엇인가를 생각해야 한다.

 

3. 과정을 고려하라(듣는 자들에게 은혜를 끼치게 하라)

과정을 고려하는 것은 최선의 방법으로 말하기 위해서다. 대화방식도 대화내용 못지않게 상대방을 세우는데 큰 역할을 한다.

 

장애물

 

관계에서 갈등을 겪게 되는 것은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신비로운 방식이다. 모든 고통은 구원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이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 죄를 회개하게 하시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어진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도록 역사하신다.

 

여러분은 갈등을 기피하는 사람인가? 정면으로 부딪히는 사람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관점을 가지고 갈등 속으로 들어가는가?

우리는 갈등을 기꺼이 받아들여야 한다. 하나님은 갈등을 통해 우리가 성장하기를 원하신다. 갈등이 도가니가 성숙의 장이 된다는 사실을 속히 경험하길 원하신다.

 

왜 우리는 다투는가?(4:1-3)

 

우리는 대체로 이런 말을 한다. “당신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내가 그런 거야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을 위해 섬기고자 하지만 결국 자기 의를 내세우려고 하는 이기적인 마음이 나타나서 결국은 자기 자신을 섬기는 것으로 끝나고 만다.

 

여러분의 인생에서 갈등을 일으키는 요인이 무엇인가?

 

편안함 : 나는 편안하기 원하고, 그래야만 하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누구도 나의 편안함을 방해할 수 없다. 나는 힘든 일이 무섭다.

 

즐거움 : 나는 즐겁기 원하고, 그래야만 하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나를 즐겁게 해 달라. 나는 고통스러운 것이 두렵다.

 

인정 : 나는 인정받기 원하고, 그래야만 하며,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그렇지 않다면 나는 절망할 것이다. 나는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것을 참지 못한다.

 

: 나는 힘을 원하고, 힘을 가져야만 하며, 그것을 누릴 자격이 있다 내가 말하는 대로 따르라. 나는 누군가 내게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을 제일 싫어한다.

 

통제력 : 나는 통제하기 원하고, 그래야만 하여,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나는 잘 정돈된 내 작은 세계를 누군가 흩뜨려 놓으면 실망한다. 나는 예측할 수 없는 일들이 두렵다.

 

용납 : 나는 용납받기 원하고, 그래야만 한다고 생각하고 그럴만한 자격이 있다. 사람들은 나를 용납해야 한다. 나는 거절당할까봐 두렵다.

 

인간관계의 갈등의 대분은 자신에게 중요한 것이 명예였고, 사람들에게 인정받는 것이다.

하나님의 영광과 다른 사람의 유익보다도 자신의 욕심을 더 중시하는 것은 잘못이다(4:4).

 

갈등의 축복

 

하나님은 관계의 어려움을 통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추구하던 우리 자신을 발견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사용하신다(4:4-6).

그래서 갈등이 축복이 되는 것이다.

 

야고보는 갈등에 빠진 사람은 지금 영적 전쟁을 치르고 있다고 말한다(4:7-10). 마귀는 다른 사람들을 이용해서 아직 죄성을 지니고 있는 우리를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도록 만들고, 자기 영광과 자기 사랑이라는 함정에 빠지길 학수고대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관계로 인해 갈등할 때 그분이 행하신 대로 따르라고 명령하신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갈등에 대처하는 방법이 무엇인가?

 

첫째, 갈등을 불신앙적인 양상으로 몰아가는 원인이 무엇인지 판별하라.

 

둘째, 갈등에 대해 어떤 자세를 취하고 있는가? 자기가 옳다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정면으로 싸우는가? 다른 사람이 자기에게서 등을 돌리는 게 두려워서 갈등을 회피하고 있는가? 불편한 게 싫어서 갈등을 외면하고 있지 않은가?

 

셋째, 구체적이고 분별력 있는 영적 싸움을 싸우라. 우리가 회개를 통해 믿음을 고백하고 영적으로 성숙해 지는 길을 걷게 된다.

 

넷째, 다른 사람을 배려하라. 갈등을 신앙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살전 5:14-18). 상대방을 권면하고 도움을 줘야 한다. 이를 위해 하나님을 예배하는 일을 최우선으로 삼아야 한다. 16절에 항상 기뻐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을 예배하는 삶에서 관계를 올바르게 세우는 법을 가르쳐 주고 있다.

 

인내에 한계에 이르러 문제에 대해 지적하겠다는 생각이 들면 다음 방식을 따르라. 먼저 자신이 잘못으로 갈등이 깊어졌다면 그 죄가 무엇인지 분명히 알아두자. 문제를 구체적으로 명시하라. 단 한 번에 한 가지씩 다루라. 가능한 해결책을 모색하라. 그래도 관계가 걔선되지 않는다면 좌절하지 말고 외부의 도움을 구하라.

용서(88:8-9)

 

용서할 기회와 용서를 구할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관계는 더욱 악화된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실천하면 관계는 회복되고 성숙의 길을 향해 진일보한다.

18 :21-35절에서 예수님은 용서의 중요성에 대해 바로 알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용서하기 위해서는 빚을 탕감해 줘야 한다. 즉 용서란 손해를 보더라도 다른 사람의 빚을 탕감해 주는 의지적인 행위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사람에게 그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고 허락하는 것이다.

 

빚을 받아낼 수 있는 권리를 포기함으로써 최소한 세 가지 약속을 하게 된다.

 

첫 번째 약속은 빚을 빌미로 상대방을 제압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약속은 그가 저지른 잘못을 자꾸 상기시켜 응분의 대가를 치르게 하여 원한을 풀려고 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세 번째 약속은 그의 잘못을 다른 사람들에게 말하지 않겠다는 것이다.

 

용서에는 대가가 따른다. 그러나 용사하지 않으면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된다.

마가복음 1125절에는 어떤 일이 있어도 용서를 베풀어야 할 것 같고, 누가복음 173절에는 회개할 때에만 용서하라고 한다. 즉 수평적인 측면에서 용서를 언급하고 있다. 마가복음 1125절은 수직적인 용서이고 무조건적인 용서이다.

 

마태복음 181-5절에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면 다른 사람의 죄를 겸손한 자세로 지적해 주어야 한다고 말한다. 성경은 사람들이 내게 쉽게 죄를 짓도록 그냥 놔두라고 말하지 않는다. 그와는 달리 구원을 이루는 방향으로 죄의 문제를 다룰 수 있도록 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12:18). 바울도 평화를 이루기 위해 노력하라고 당부한다.

 

용서를 구할 때 잘못한 사람이 구체적으로 그 죄를 인정하고 용서해야 한다. “소리 질러 미안해. 내가 정말 잘못했어, 널 용서해 줄 수 있겠어 ? ”그럴 때 괜찮아라고 대답해서는 안된다.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워, 용서해 줄게라고 해야 한다. 용서를 실천할 때 겸손하고 진실하게 말해야 한다.

 

희망(59:9-11)

 

관계를 세우는 것은 종종 덜컹 거리는 자동차 안에서 바늘귀에 실을 끼우는 것과 같다. 우리의 관계는 언제나 시련 한 가운데에 있다. 따라서 좋은 관계를 이끌어가려면 성숙한 인격이 뒤따라야 한다.

주변 사람들의 죄 문제와 약함을 다루기 위해서는 인내심이 필요하다. 변화란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지속되는 과정이기에, 우리의 관계가 변화되려면 절제할 줄 알아야 한다. 누군가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분노를 극복하려면 그를 용서해야 한다.

 

위로는 고민에 빠진 이들을 마음의 눈으로 바라보고, 그들이 보지 못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볼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따뜻하고 진실한 위로가 상대방의 상한 마음을 더 깊이 어루만질 수가 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마음의 눈으로 상대방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관계에서 실망하고 마음이 무거워지는 이유는 문제가 무엇인지를 모르기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바라보지 않기 때문이다.

 

모든 인간관계는 이미아직사이의 긴장을 맴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위로가 필요하다. 주변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볼 수 있도록 여러분은 얼마나 헌신하고 있는가?

 

부담감(42:3)

 

마가복음 1035-45절에서 예수님은 하나님 나라의 삶이 이 땅에서의 삶과 전혀 다른 것임을 지적하고 계신다. 크고자 하는 자는 남을 섬겨야 한다. 여러분은 관계 속에서 갈등이 해소되고 다른 사람이 이해되며, 자신을 부인했던 적이 얼마나 있었던가?

 

요한복음 131-17절에서 예수님은 심각한 위기의 한 가운데서 섬김을 받을 자격도 없는 자들을 위해 섬김을 베푸셨다. 예수님은 섬김을 통해서만이 제자들이 자기 영광과 자기 사랑에서 자유로워질 수 있음을 알고 계셨다.

섬길만한 가치가 없는 사람들을 섬길 때 변화되고, 우리의 섬김을 통해 하나님은 다른 이들의 삶 속에 강권적인 역사를 펼치신다. 겸손과 섬김에는 사람을 사로잡는 강한 영향력이 있다.

 

섬김

 

구체적인 관계 세 가지를 떠올려 보라.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 어려운 사람과의 관계, 적과의 관계, 이들을 마음에 품고 묵상하고 실제적인 명령을 되새겨 보라.

 

서로 헌신하라(12:10) : 다른 사람을 가족처럼 여기고 사랑하라

 

서로 존중하라 : 누군가를 존경한다는 것은 그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여기고 진심으로 대한다는 뜻이다.

 

서로 용납하라(15:7) : 서로 차이점을 강조하면 공동체에 문제가 발생한다. 다른 사람을 용납하지 못하면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상실한다.

 

서로 짐을 지라(6:2) : 다른 사람이 어려움에 처해 괴로워 할 때 그의 곁에서 함께 문제를 해결하라.

 

서로 참으라(4:2) : 누군가로 인해 짜증이 나더라도 참으라는 말이다. 예수님이 얼마나 참으셨는지 생각해 보라. 그런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해주신다는 것이 그저 감사할 따름이다.

자비(3:15-17)

 

하나님은 우리가 서로에게 자비로운 마음으로 반응하기를 원하신다(2:1-13).

자비로움이 없는 관계는 주님의 말씀에 어긋난 것이다.

자비를 베푸는 데는 생각보다 더 큰 희생이 뒤따른다.

자비란 친절하게 공감하고 용서하는 과정을 통해 상대방이 피로와 부담을 덜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다. 또한 자비는 인내와 행위가 따르는 긍휼히 여기는 마음이다.

 

진정한 자비를 베풀려면 상대방을 향해 어떤 행동을 취하게 하는 긍휼한 마음이 있어야 한다.

 

자비의 마음을 갖게 하는 세 가지 인격적인 특질이 있다.

 

긍휼 : 긍휼은 다른 사람의 고통을 깊이 인식하여 돕고자 하는 열정을 갖게 한다. 이는 자신이 어려움을 초월해 다른 사람의 어려움을 돌보려는 마음이다.

 

용서 : 용서는 해를 끼친 사람을 죄인으로 대하지 않고 원한을 품지 않는 것이다.

 

인내 : 인내는 화가 나는 상황에도 참는 것이다. 자신의 인생이 더 힘들어지더라도 어려움을 당한 사람 곁에서 함께 해 주는 것이다.

 

관계와 자비

 

자비는 우리를 변화시키고 또한 관계를 변화시킨다. 자비는 관계의 고통에 기꺼이 동참한다. 다른 사람의 연약함과 고통으로 자신의 삶이 어려워도 괜찮다고 말할 수 있는가? 가난한 자들과 함께 하는 것을 기뻐할 수 있는가? 관계에서 편파적인 모습을 보이는 것은 우상숭배이다(2).

 

자비는 고난을 마주했을 때 도망가지 않고 그 안으로 들어가 문제를 해결해 주는 것이다.

자비의 삶을 살게 되면 개인적인 행복이 아닌,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데서 큰 기쁨을 누리게 된다.

자비를 구하는 사람들과 함께 있다 보면 그들에게 상처를 받게 되는 일이 있다. 그때 우리는 날마다 용서해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그분의 본을 받아 용서를 베풀어야 한다.

 

자비로운 사람은 싸우기를 싫어하고 성질을 부리지도 않으며, 다른 사람의 말이나 행동에 쉽게 상처를 받지 않는다. 이런 상황 속에서도 관용을 베푼다.

자비로운 사람은 상대방이 죄를 지었다고 해도 그를 정죄하지 않으며, 그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일에 집중한다.

자비를 베푸는데 갈등이 일어나는 이유는 하나님과 그 분의 영광보다 더 갈망하는 것이 있기 때문이다. 갈등 가운데서 우리는 안락함, 소유, 지위, 권력, 인정과 같은 지배를 받고 있음을 깨닫게 된다.

돈과 시간(39:6)

 

돈과 시간을 어떻게 관리하느냐가 우리의 관계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다(4:28, 5:16).

바울은 우리가 남을 돕기 위해 가진 돈을 충분히 쓰기 전까지는 그들을 진심으로 사랑하는 게 아니라고 말한다(4:25-32).

당신은 하나님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시는 일에 투자하고 있는가?

 

마게도냐 사람들의 구제는 그들과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영적인 가족들과의 연합 가운데서 이루어졌다(15:25-27).

마게도냐 사람들은 어떤 규범 때문에 구제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모든 것을 기꺼이 내어 주신 예수님의 엄청난 은혜에 감사 표시하기를 원했던 것이다(9).

 

지금 우리의 모든 역할을 통해 그리스도의 은혜를 나타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날마다 일어나는 인생의 문제를 장애물이 아닌 구원의 중요한 사건으로 깨닫길 원한다.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다른 사람들을 사랑하기 위해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축복을 사용해야 한다.

 

 

. 관계치료를 위한 8 가지 처방

 

연약한 것은 도와주라

 

하나님은 사람을 지으시되 혼자 온전하거나 완전하게 짓지 않으셨다(돕는 배필)의 도움을 받아야 하는 존재로 지으셨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연약함을 담당하라고 하신다(

15:1). 하나님은 연약함은 용납하라고 하신다. 용납은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는 자신의 연약함을 시인해야 한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의지를 신뢰했기 때문에 기도의 필요성과 절박성이 없었다.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고후 12:7-10)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던 중에 자신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진다는 귀한 진리를 깨달은 것이다. 그는 이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자신의 연약한 것에 대해 자랑하고 있다.

더 이상 약점에 인생을 걸지 말아야 한다. 연약함은 안고 가고 자신의 장점에 인생을 걸어야 한다. 약점을 개선하는데 시간을 쓰기보다 장점을 발전키는 데 시간을 쓰는 것이 효율적이다.

 

이제 연약함을 용납했다면, 한 걸음 더 나아가 연약함을 도우라. 나의 연약함을 도움을 받아야 하고, 다른 사람의 연약함은 도와야 한다. 사람이 도울 수도 있고, 기구나 도구를 이용해서 연약함을 보완할 수 있다.

사람을 도움을 주고받으며 사는 존재다. 서로 도우며 살도록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셨다.

도움을 받을 때는 감사함으로 받아야 한다. 도움 받는 것을 기분 나쁘게 생각하거나 자존심 상해하지 말아야 한다.

 

태어날 때부터 도움이 없으면 생존이 불가능한 존재가 사람이다.

사람을 만날 때마다 우리는 내가 늘 도와야 할 것이 무엇인지 찾아야 한다. 사람과 교제를 하면 연약함이 보일 것이다. 실망하지 말라. 그 부분이 우리가 도와야 할 부분이다.

돕는 일을 할 때는 도움을 받는 사람을 배려해야 한다. 일방적으로 도와주면 간섭하는 것으로, 무시하는 것으로 비쳐질 수 있다.

 

필요는 채워주라

 

하나님이 만드신 세상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의 집합체다(1:29).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있는 것이 정상이다. 부족함이 있는 그 자체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좋은 관계를 위한 기본이다.

부족함을 어떻게 인식하느냐에 따라 발전과 퇴보가, 행복과 불행이 나온다. 부족함을 채우기 위해서는 부족함을 느껴야 한다. 부족한 것은 우리로 하여금 그것을 채울 마음을 갖게 하고, 채우기 위한 노력을 하게 된다. 시편 기자는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다고 고백했습니다. 부족함이 있기 때문에 우리는 그것을 채우기 위해 여러 가지 시도를 하게 되고, 그것이 우리 삶을 풍성하게 하고 발전시킨다.

 

창세기를 보면 하나님은 아담에게 짐승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 이 과정을 통해 아담은 모든 짐승들에게 다 짝이 있는데 자신만 짝이 없는 것을 알았다. 배필이 없는 자신의 부족함을 알고 배필의 필요성을 절감한 것이다. 그래서 하와를 본 순간 이는 내 뼈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고 고백했다.

 

아무리 필요한 것이라 하더라도 당사자가 느끼기 전에 그것을 하라고 하면 힘들어합니다. 본인이 부족함을 느끼고, 필요를 느끼고 사모할 때 그 부족함을 채워주라.

사람의 부족함을 채울 때, 나 혼자 상대의 모든 부족함을 다 채울 수는 없다 그 부족함 가운데 내가 채워야 할 몫이 있고, 다른 사람이 채워야 할 몫이 있다. 다 채워 주어야 한다는 부담감을 가질 필요가 없다. 내가 채우고 남은 부분은 또 다른 사람이 채워 준다.

 

사람에게는 여러 사람에 의해 채움 받아야 할 다양한 부족함이 있다. 또한 사람은 정서적으로, 육체적으로, 영적으로, 경제적으로, 문화적으로, 지식적으로 채움 받아야 할 다양한 부족함이 있다.

사람에게는 사람이 채워주어야 할 부족함이 있는가 하면 하나님이 채워주셔야 할 부족함이 있다(3:13-18, 23:1, 34:9-10).

이스라엘 백성들이 범했던 죄가 있다. 생수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 채워야 것을 스스로 웅덩이를 파서 채우려고 했던 우를 범했던 것이다(2:13)

 

허물은 덮어주라

 

하나님이 금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것은 사람의 허물이다(3:17-19). 사람에게 허물이 있다는 것은 사람에게 죄가 있다는 말이다(2:1, 13:23, 14:17, 5:12).

 

이 죄를 어떻게 처리하느냐는 중요한 문제다. 천국을 가지 위해서는 죄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 하나는 죄를 지으면 안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사람은 죄를 짓지 않고 살 수 없다. 죄를 없애는 또 다른 방법은 지은 죄를 없애는 것이다. 죄는 용서 받으면 없어진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수님을 이 세상에 보내주셨다. 예수 믿고 회개하면 죄가 없어진다.

 

허물에 대한 하나님의 처리 지침은 허물을 덮어 주는 것이다(17;9, 10:12).

우리는 부모의 허물이 드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도록 해야 한다. 또한 우리와 교제하는 사람들에게 우리가 알고 있는 자신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만약 허물을 덮어주지 않고 드러내고 비방하면 허물이 있는 자의 권위를 부인하는 것이다.

 

모세가 이방 여자를 취한 것은 잘못이다. 허물이다. 그래서 미리암과 아론이 틀렸다고 한 것이고 그러나 그 후에 한 말이 있다. “여호와께서 모세와만 말씀하셨느냐 우리와도 말씀하지 아니하셨느냐(12:2). 이 말은 더 이상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할 필요가 없다는 의미다. 이와 같이 지도자의 허물을 비방하면 이내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 것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이 일이 계속되고 있다.

 

허물이 있는 사람의 권위는 인정하지 않아도 된다는 생각이 만연되고 있다. 하나님은 모세가 허물이 있지만 여전히 모세가 그들의 지도자임을 확인해 주신다(12:6-8, 9-10). 허물이 있는 지도자의 처리는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 하나님은 세우시기도 하고 폐하기도 하신다. 사울을 왕으로 세우신 분이 하나님은 세우시고 페하시기도 한다.

 

만약 허물이 있다 해서 그 권위를 인정하지 않는다면 이 세상에 지도자는 한 사람도 남지 않을 것이다.

지도자들도 아래 있는 사람들의 허물을 덮어 주어야 한다. 허물이 있을 때마다 내보내고 내친다면 그의 곁에 남을 사람이 누가 있겠는가? 허물이 있어도 다시 기회를 주어야 하고, 허물이 있더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해주어야 한다.

성경은 허물이 드러날 때 어떻게 해야 할지를 가르쳐 준다. 하나는 그 허물을 용서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기도하는 것이다.

 

좋은 것은 말해주라

 

자신이든 남이든 좋은 것의 비중만큼 좋은 것이 좋게 보이기만 해도 관계는 좋아진다.

시기는 다른 사람이 갖고 있는 좋은 것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이다. 다른 사람의 좋은 것에 대해 탐심으로 반응해서는 안된다.

 

좋은 것에 대한 믿음의 반응은 위로하는 것이다. 사람의 좋은 것에 대해 본받는 것이 믿음으로 반응하는 것이다.

본을 받겠다는 마음 하나가 관계를 행복하게 하고 인생을 얼마나 풍요롭게 하는 미 모른다. 본받기를 원하면 그를 인정해야 한다. 그래서 본받겠다는 것은 겸손이다.

 

다른 사람에게서 좋은 것을 보았을 때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다. 그것은 사모하는 것이다. 그것을 하나님께 구하는 것이다.

좋은 것에 대한 믿음의 또 다른 반응은 기대하는 것이다. 다른 사람이 좋은 것을 받을 때 다음은 내 차례라고 생각해 보라.

그리고 다른 사람에게 좋은 것이 있으면 그것을 말해 주어야 한다. 표현해야 한다.

 

능력은 인정해 주라

 

하나님은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이 세상을 당신에게 주시며 세상을 정복하고 다스리라고 하셨다. 이 세상을 다스리고 통치할 능력이 당신 안에 있다. 이 세상을 관리 할 능력이 당신 안에 있다.

많은 경우 자신이 능력이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는 IQ에 사로잡혀 있어서 그렇다.

 

베르나드 베르테르는 인간의 능력엔 세 가지가 있다고 했다. 기억력, 적응력, 상상력. 또한 사람과의 좋은 관계를 맺는 것도 대단한 능력이다. 순종도 능력이다. 손재주가 있는 것도 능력이다. 그림을 잘 그리고 말을 잘 하고 글을 잘 쓰는 것도 능력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잘 하는 것을 인정해 주어야 한다. 하나님은 그의 자녀들을 인정하신다. 이것을 받아들여야 한다. 그처럼 우리는 다른 사람들도 인정해야 한다. 인정받고 싶으면 먼저 인정해야 한다(7:12). 다른 사람을 인정하면 자신도 인정받는다. 그런데 우리는 다른 사람을 비판하면 자신이 인정을 받는다고 착각하고 있다(15:1-3).

 

가족을 돌아보라(10:29-30, 10:34-39)

 

가족은 사람의 첫 관계이자 마지막 관계이다.

하나님께서 사람이 힘을 받는 충전소가 세우신 곳이 하나는 가정이고, 다른 하나는 교회다.

가정이 회복되어야 한다. 가정을 지으신 하나님의 지침대로 해야 한다. 아내를 사랑하고, 남편을 사랑하고, 자녀를 사랑해야 한다.

 

기족과 관련된 양 극단이 있다. 오로지 자기 가족만 아는 사람이 있고, 반대로 자기 가족을 돌보지 않는 사람이 있다.

우리는 가족을 사랑해야 한다. 그러나 가족 외에도 친구와 친척, 이웃과 원수도 사랑해야 한다.

반면에 다른 사람의 일은 돌아보면서 정작 자기 가족을 돌아보지 않는 것은 믿음을 배반한 자요 불신자보다 더 악한 자다.

 

아내와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는 여자나라 말을 배우라. 지식을 따라 너희 아내와 동거하라. 아내들이 힘들고 어려워서 토라질 때가 있다. 그럴 때는 그냥 들어주면 된다. 많이 힘들겠다고 따뜻한 한 마디 해주면 된다. 아내가 힘들다는 말을 하면 남자는 그것을 대책을 세워 달라는 말로 이해하고, 때로는 욕하는 소리, 불평하는 소리로 받아들인다. 그냥 내가 너무 힘드니깐 얼마나 힘드냐고 한 마디 해주고 손 좀 잡아 달라고 해야 한다. 여자에게는 염려와 관심, 배려가 사랑의 언어이며 이를 통해 사랑을 느낀다.

 

남편과의 행복한 관계를 위해서는 남자나라 말도 배워야 한다. 남자에게는 인정과 신뢰, 칭찬이 사랑의 언어이며 이를 통해 사랑을 느낀다. 남자는 충고 받는 것을 싫어한다. 왜냐하면 남자는 인정받고 싶고 신뢰받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아내가 남편에게 집안 일을 도와 주기를 원한다면 그게 설거지가 됐든 빨래 개키기가 됐든 벽에 못을 박는 일이든 간에 일을 맡겼으면 알아서 하게 내버려 두어야 한다. 남편은 잘했다는 말을 들을 때 자기가 그 일에 필요하다는 느낌을 가질 때 기꺼운 마음으로 일에 임한다.

 

이웃은 더불어 살라

 

이웃은 나와 가족을 제외한 사람들이다. 우리는 이웃의 연약함을 도와주고, 필요는 채워주고, 허물은 덮어주고 좋은 것은 말해주고, 능력은 인정해 주어야 한다.

웃는 이웃과 함께 웃어야 한다(12:15).

어떻게 하면 즐거워하는 자들과 함께 즐거워할 수 있을까요? 사랑하면 이것이 가능하다. 성경에 보면 즐거워하는 남편과 함께 즐거워하지 못한 아내가 등장한다. 다윗의 아내, 미갈이다.

 

우는 이웃과 함께 울라. 울어야 할 때 누군가 곁에서 함게 울어만 줘도 위로가 되고 힘이 된다. 오늘도 우리 주변에 욥이 있다.

강도 만난 이웃을 돌보아 주라. 주린 이웃에게 먹을 것을 나눠 주라. 병든 이웃을 위해 기도해 주라. 고아와 과부와 함께 즐거워하라. 나그네 된 이웃을 선대하라. 딱한 이웃으로 인해 마음이 아플 때는 기도하라.

 

원수는 없애라

 

성경 말씀 중에는 순종하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는데 순종하면 손해가 될 것 같은 말씀들이 있다.

너희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박해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라”(5:44).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라(19:18)

기타, 12:17, 19,20

 

하나님은 온전한 사랑을 우리에게 하라고 하신다. 이웃뿐 아니라 원수도 사랑하라고 하신다.

원수란 나와 불편한 관계에 있는 사람, 나를 힘들게 하는 사람, 나를 괴롭게 하는 사람이다. 원수는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사람이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은 원수를 안 만드는 것이다. 관계가 나빠지기 전에 수습하는 것이 지혜다.

어떤 연유로든 원수가 되었다면 가능한 빨리 그 원수를 없애라. 그것이 지혜다. 원수였던 사람과 다시 좋은 관계를 맺기 위해서는 그동안 잘 해왔던 것의 10% 힘만 써도 된다. 원수를 내 좇는 것이 능사는 아니다. 마음에 이 원수가 여전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또한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 원수를 괴롭게 하고, 힘들게 하고, 따돌리고, 무시하고 멸시한다. 그러나 이렇게 하면 할수록 원수의 존재는 더 커진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 속에는 큰 사랑이 들어 있다. 원수를 사랑하라는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나를 얽어매는 올무요 족쇄처럼 보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 말씀 속에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이 들어 있다. 그 말씀대로 하면 우리는 그야말로 엄청난 시간을 번다. 만약 우리가 핍박하는 사람을 미워하고 원수를 갚으려고 한다면 참으로 많은 것을 잃게 된다.

 

복수할 궁리를 하면 많은 시간을 버려야 한다. 증오심으로 마음을 채워야 한다. 그것으로 우리의 몸은 상하게 된다. 우리가 그를 미워하는 것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사람들을 붙잡고 그를 비방해야 한다. 그러는 사이 우리를 존경하던 사람이 우리에게 실망한다. 사람을 잃는다. 우리가 미워하는 원수를 비롯한 여러 사람을 없애야 한다.

 

원수를 없애야 한다. 그러나 하나님이 가르쳐 주시는 원수를 없애는 방법은 사랑하는 것이다. 원수를 미워하면 그 원수는 계속 나의 원수로 남아 있지만, 사랑하면 원수는 없어진다. 원수를 사랑하면 그는 나의 이웃이 된다. 형제가 된다. 동료가 된다. 그래서 하나님은 원수를 사랑하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이 원수를 사랑하라고 했다고 해서 억울해 하지 말라.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게 아니라 원수를 사랑하는 것이라고 오해하지 말라. 나를 위해 나를 사랑하셔서 하나님이 하시는 말씀이다. 이것이 악에게 지지 않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길이다.

 

사실 나를 힘들게 하고 괴롭게 하는 사람이 나를 훈련시키는 사명자이다. 하나님은 나를 통해서 그분을 사랑하는 것을 확인시키기를 원하신다. 하나님은 사랑하는데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면 주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 사람을 사랑함으로 날 사랑하는 것을 확인해 다오.

 

사이좋게 지내고 싶지만 맺힌 것이 있을 때는 풀어야 한다. 사람과 풀지 않으면 불행해진다. 맺힌 관계 그대로 두면 상대방이 불행해지는 것이 아니라 맺힌 채로 있는 자신이 불행해진다.

닫힌 관계를 푸는 열쇠가 있다. 그것이 회개와 용서다. 잘못한 것을 잘못했다고 말하는 것이 회개다. 깨어진 관계 속에는 내가 받아야 할 용서가 있고, 내가 해야 할 용서가 있다.

 

맺힌 것을 풀 때 하나님이 기뻐하신다(16:7). 사람이 그 행위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면 하나님이 그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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