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가지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구약의 법과 신약의 법 가운데 어느 것이 지키는 것이 쉬울까요? 구약의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만으로도 완전하였습니다. 그러나 신약의 법은 겉으로 드러난 행위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지켜야 합니다. 마태복음 5장 27절에 보면 구약시대에는 행동으로 간음하지 않으면 되었습니다. 그러나 신약시대에는 마음에 음욕을 품는 것조차도 간음하였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도 구약의 법과 신약의 법의 차이를 누구 보다 절실하게 느끼고 있었습니다. 빌립보서 3장 6절 말씀에 보면 사도 바울은 자신의 겉의 법에서 볼 때는 율법의 흠이 없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로마서 7장 19절에서는 자신의 의지와 노력으로는 속의 법을 지킬 수 없다고 탄식하고 있습니다.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7장 9-10절에서 율법을 깨닫지 못했을 때에는 내가 살았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계명을 깨달았을 때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게 되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즉 사도 바울은 자신의 행위로는 아무 죄를 범치 않았기 때문에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속의 법으로 자신의 모습을 비추어 볼 때 살인, 간음, 탐심 등과 같은 죄를 범하고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탄식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로마서 7장 24절에는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에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여기에서 “오호라 곤고한 사람로다” 라는 말은 사형을 언도받았다는 뜻입니다. 이와같이 사도 바울은 사형언도를 받은 죄수가 특별한 도움이 없이는 결코 사형을 면하지 못하고 죽게 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자신의 속사람 역시 특별히 누군가의 도움이 없이는 죄의 본성과 싸워 이길 수 없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잠시 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노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로마서 7장 25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우리 주 에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 그러면 무엇이 율법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던 사도 바울을 감사하게 만들었을까요?
로마서 8장 1-2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우리를 해방하였다는 의미는 3-4절에 잘 나타나 있습니다.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시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
3절에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께서 하시나니.“는 접속사 ‘곧’에 의해 이후의 말씀과 연결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첫째 선을 행하기 원하는 자에게 악이 함께 있습니다.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나를 죄의 법아래로 사로 잡아가니 결국 사망에 이를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이런 우리를 위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람의 모양으로 보내사 십자가에 대신 죽게 하심으로 우리를 죄를 사하시고 사망에서 구원하셨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육신에 져서 육신대로 살다가 결국 죽게 될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말미암아 성령을 부어 주사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고 율법의 요구를 이룰 수 있게 해주셨다는 것입니다. 연약하여 지킬 수 없었던 속의 법까지도 성령의 능력으로 지킬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한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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