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털같이 많은 날들이 있어도 모든 일에는 때가 있습니다. 농사를 짓는데도 때가 있습니다. 지금 들녘에는 농부들의 바쁜 발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긴 겨울을 지나고 날씨가 풀리면서 한해의 농사를 위해 씨앗을 심을 준비를 하는 계절입니다. 씨앗은 파종의 때를 놓치면 풍성한 수확을 거둘 수가 없습니다. 농사짓는 일뿐 아니라 인생사에도 때가 있는 법입니다.
때를 놓치면 후회의 인생을 살게 마련입니다.
오늘 읽은 전도서 3:1-8에 보면 매사에 때가 있다는 것을 잘 노래하고 있습니다.
『범사가 기한이 있고 천하 만사가 다 때가 있나니,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 심을 때가 있고 심은 것을 뽑을 때가
있으며, 죽일 때가 있고 치료할 때가 있으며 헐 때가 있고 세울 때가 있으며, 울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며 슬퍼할 때가
있고 춤출 때가 있으며, 돌을 던져 버릴 때가 있고 돌을 거둘 때가 있으며 안을 때가 있고 안는 일을 멀리 할 때가 있으며,
찾을 때가 있고 잃을 때가 있으며 지킬 때가 있고 버릴 때가 있으며, 찢을 때가 있고 꿰맬 때가 있으며 잠잠할 때가 있고
말할 때가 있으며, 사랑할 때가 있고 미워할 때가 있으며 전쟁할 때가 있고 평화할 때가 있느니라.』(전 3:1-8)
천하에 범사가 기한이 있고 모든 목적이 이룰 때가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기한을 정하시고 시간의 여로에서 두 가지 때가 교차하도록 하십니다. 인생이란 이 두 사이에 끼어 몸부림치고 수고하고 애쓰다가 생을 마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동시에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수 없게 하셨습니다.
출생해서 죽고 심고 뽑히고 매맞고 치료받고 울고 웃고 버리고 취하고 사랑하고 미워하고 살아가는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무엇이 유익이 있는가? 도대체 하나님은 범사에 때를 정하시고 인생들로 측량할 수 없도록 하셨을까요.
그러나 죽음과 질병과 노쇠와 상실과 눈물과 패배와 파괴와 약탈과 침묵과 미움과 전쟁을 지켜 보면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비관주의와 허무주의에 빠집니다.
이 모든 때를 주신 목적이 무엇입니까?
도대체 인생이 두 가지 기한을 다 채우고 인생을 정리해 보면 결국은 무슨 유익이 있으며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주사
수고하고 애쓰게 하신 것인데 그 목적은 어디에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전도서 3장 9, 10절입니다. "일하는 자가 그 수고로 말미암아 무슨 이익이 있으랴 하나님이 인생들에게 노고를 주사
애쓰게 하신 것을 내가 보았노라
오늘 본문을 통해서 범사에 때를 정하신 하나님의 의도를 솔로몬의 고백을 통해서 깨닫기를 바랍니다. 이것을 깨닫게 될 때 우리는 인생을 소중하게 다룰 수 있고 바로 헌신할 수 있고 주님이 원하시는 목적을 이루어 드릴 수가 있습니다.
1. 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아름답게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시간의 격량속에서 예견치 않았던 죽음이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질병과 노쇠와 상실이 눈물이 실패가 파괴가 약탈이 갑자기 내앞에 서있음을 발견합니다.
어쩔 수 없는 인생,이런 인생의 격량속에서 구원자를 절대자를 찾게되며 복음을 요청하며 주님을 찾게 됩니다.
두 가지 대비되는 때를 정하사 우리에게 수고하게 하시고 노고를 주신 하나님은 인간으로 하여금 때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우리 주님이심을 깨닫게 하는 것입니다.
범사에 주님의 주권을 인정해야 합니다.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주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슬플 때나 기쁠 때 행복할 때나 불행한 때 성공한 때나 실패한 때 얻을 때와 잃을 때 사랑할 때와 미워할 때 평안할 때와
불화할 때 모든 때를 정하신 주님의 주권이 이루어야할 목적이 있다는 것입니다.
긍정적일 때는 찬송하고 부정적인 상황에서는 기도하는 것입니다. 이 모두가 신앙의 사건입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과 섭리인 것입니다. 모두가 계시적인 사건입니다.
2.사람들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시기 위합니다.
아무것도 영원할 수 없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물질도 명예도 건강도 행복도 지속되지 않습니다.
소유도 창조도 생산도 웅변도 사랑도 평화도 지속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은 우리 곁을 떠납니다. 모든 것은 변합니다.
전적인 허무와 전적인 절망속에서 결국은 인간이 영생을 바라고 영원을 사모하게 됩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처음과 나중을 두시고 출생과 죽음을 두셨을까요?
두 가지 때가 반복되면서 이땅에서 수고하고 고생하도록 하셨을까요?
그것은 시간의 허무속에서 영원의 지평을 바라보면서 종말적인 삶을 살도록 하십니다.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우리에게 다시 살 수 없는 유한적인 삶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하나님의 때를 정하신 이유를 알 수 있습니다. 유한하기 때문에 영원을 찾게되고 사모하게 되는 것입니다.
3.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출생해서는 생명을 주신 기쁨으로 죽을 때는 영생을 주신 기쁨으로 감사하고
생산을 주실 때는 주신이에게 감사하며 기뻐하고 거두어 가실 때는 연단을 주신 주님께 감사하며 기뻐하는 것입니다.
소유할 때는 주신 은총을, 잃을 때는 겸손케 하신 은혜를 기뻐하는 것입니다.
질병을 맞아 건강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고 실패를 경험하며 성공했던 감격을 누리며 ,슬플 때,기 쁜 나날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침묵할 때 말할 수 있음을 감사하게 되는 것입니다. 결국은 하나님의 은혜가 무엇인가를 깨닫게 하십니다.
4.심령으로 낙을 누리는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 하시기 위합니다.
솔로몬은 이와 같은 두가지 때를 주신 하나님의 의도는 오직 모든 인생의 기쁨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사실을
고백합니다.
진정한 심령의 낙은 주님이 주시는 지식과 지혜와 희락과 보화를 통해서 얻을 수 있는 분복인 것입니다.
이 모든 것이 주님의 선물임을 알게 됩니다.
5.사람으로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시기 위합니다.
전 3:14 무릇 하나님의 행하시는 것은 영원히 있을 것이라 더할 수도 없고 덜할 수도 없나니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심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
하나님께서는 범사에 때를 정하신 목적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외하고 높여드리고 예배하고 찬송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결론
하나님은 우리 모두에게 두 때 사이에 삶을 두게 하십니다.
천하에 범사에 때를 정하십니다.
그속에서 모든 목적이 이룰 때를 정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인간으로 하여금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를 인간으로 하여금 측량할 수 없게 하신 것은 시간의 주인이신
주님의 주권을 깨닫도록하신 것입니다.
역풍과 순풍의 교차속에서 이 땅에 영원한 것은 없으며 영원을 사모하게 하사 영생을 얻게 하시려 하신 것입니다.
어떤 환경속에서도 기뻐하며 감사하며 시간을 아끼며 시간을 주를 위하여 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진정한 인생의 낙은 하나님의 선물임을 알게하시기 위합니다.
이 세상의 범사는 두가지 때를 사이에 두고 반복됩니다.
그러나 그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지식과 지혜와 희락과 보화로 인하여 진정한 만족과 행복과 기쁨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리고 범사에 모든 때를 통하여 하나님 경외하기를 배우게 하십니다.
지금 당신은 어떤 때에 처해있습니까?
지금 당신이 해야 할 한 가지가 있습니다.
지금의 때를 주께 드리십시오
할 일이 생각나거든 지금 하십시오.
오늘 하늘은 맑지만
내일은 구름이 보일는지 모릅니다.
어제는 이미 당신의 것이 아니니
지금 하십시오.
친절한 말 한 마디가 생각나거든
지금 말하십시오.
내일은 당신의 것이 안 될지도 모릅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언제나 곁에 있지는 않습니다.
사랑의 말이 있다면 지금 하십시오.
미소를 짓고 싶거든 지금 웃어주십시오.
당신의 친구가 떠나기 전에
장미가 피고 가슴이 설레일 때
지금 당신의 미소를 주십시오.
불러야 할 노래가 있다면
지금 부르십시오.
당신의 해가 저물면 노래 부르기엔
너무나 늦습니다.
당신의 노래를 지금 부르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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