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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

언어의 시험을 통과하라(약 3:1-12), 김덕선 목사

by liefd 2024. 5.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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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상을 이야기하고, 평범한 마음을 가진 사람은 사건을 이야기하기를 좋아하고, 협소한 마음을 가진 사람일수록 사람이야기를 좋아한다고 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교회에 대하여 혐오감을 갖고 교회에 상처받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사람 이야기를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 이야기를 하는 사람들 가운데 협소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흩어져 있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은 혀로 말미암아 자신들의 공동체인 교회를 파괴시키며 사랑해야 할 사람들에게 가슴 아픈 체험을 안겨 주는 일들이 많았습니다. 교회처럼 말 많은 데가 없습니다. 그래서 교회부터 심판이 시작됩니다.

 

말은 혀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시작됩니다. 마태복음 1511절입니다.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니라.”여기서 입에서 나오는 것이란 말을 가리킵니다.즉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 사람을 더럽힙니다.

 

그런데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부터 나옵니다. 마태복음 1518절입니다. “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그런데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무엇일까요? 마태복음 1519절에 보면,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말을 들을 때에도 말의 내용보다는 말의 의도를 파악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마가복음 2장에 보면 한 중풍병자를 네 사람의 친구가 예수님께 데려옵니다. 예수님이 그들의 믿음을 보시고 중풍병자에게 네 죄 사함을 받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마음속으로 어떻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가? 이건 신성 모독이다. 그들은 예수님의 말 꼬리를 잡아서 문제시하고 해치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들은 그들의 말을 하는 의도와 그 중심을 간파하셨습니다. 마가복음 28절입니다. “그들이 속으로 이렇게 생각하는 줄을 아시고 예수께서 곧 중심에 아시고 이르시되 어찌하여 이것을 네 마음에 생각하느냐.”상대의 말을 잘 파악해서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말 꼬리를 잡아서 상대방에게 상처를 끼치는 사람이 있습니다. 아비가일은 분노한 다윗의 감정을 누그러뜨릴 정도로 지혜롭게 말하여 다윗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반면에 나발의 미련한 말 한마디는 다윗을 격동시켰습니다. 그래서 가문이 쑥대밭 될 뻔했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부정적으로 프로그램화되어 있으면 다른 사람들에게서 부정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반면에 우리 마음이 선하고 긍정적인 것으로 가득차 있으면, 우리는 쉽게 다른 사람들에게서 긍정적인 것을 보게 됩니다. 대체로 선생의 위치에 있는 사람은 감수성이 예민한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는 위치에 있기 때문에 말 한마디 한 마디가 중요합니다.

 

선생은 특히 말을 통하여 일을 하는 직책인데 선생은 하는 모든 말들에 대해 마지막 날에 심판이 있기 때문이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심판 날에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12:36-37).

 

우리가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을 때 주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이 사람이 마음 속에 무엇을 담고 이런 말을 하는지 헤아려 보아야 합니다. 그 사람의 표현 뒤에 감추어진 생각과 의도를 파악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람들의 마음의 중심과 의도를 늘 파악하셨습니다. 마태복음 1225절입니다. “예수께서 그들의 생각을 아시고 이르시되 스스로 분쟁하는 나라마다 황폐하여 질 것이요 스스로 분쟁하는 동네나 집마다 서지 못하리라.”

 

우리가 어떻게 말의 시험을 통과할 수 있을까요?

 

우선 내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다스릴 수 있어야 합니다. 내 마음 속에 상처가 있고, 분노가 있으면 절대로 바른 대회가 되지 않습니다. 이런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아픔을 주고 실족하게 합니다.

말을 할 때 자신의 선입견으로 속단하고 극단적으로 말하는 것을 조심해야 합니다.

 

말로 인해 받는 상처와 폐해가 너무 크기 때문에 말에 실수가 없도록 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32절입니다. “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 능히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 감수성이 예민한 어린이의 가슴 속에는 단 몇 마디의 실망스러운 부모의 말이 오랫동안 심각한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 한 상담가는 어린아이의 가슴이 박힌 한 마디의 부정적인 말을 파내는데 서른 일곱 마디의 긍정적인 말이 필요하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말을 할 때 성을 내거나 분을 참지 못하면 너무나 많은 것을 잃게 됩니다. 야고보서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형제들아 사람마다 듣기는 속히 하고 말하기는 더디하며 성내기도 더디하라.” 일본 사람들은 한국 사람들을 보고 회담할 때 자기들끼리 이렇게 이야기한다고 합니다. 한국 사람들을 다스리기는 쉽다. 먼저 화를 내도록 유도하라. 그러면 한국 사람은 성질을 낼대로 다 낸다. 성질을 낸 다음에는 미안해서 질질 끌려 다닌다고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성이 나면 두 번 다시 해서는 안될 말을 합니다. 성난 사람들은 지독한 욕설을 퍼붓습니다.

 

야고보는 말의 부정적인 영향에 대해 크게 우려하고 있습니다. 분노에 차서 함부로 내뱉는 부정적인 말은 교회에 아주 안 좋은 영향을 미칩니다(3:5-6). 아주 작은 말 한 마디가 한 바퀴가 돌아서 올 때에는 생사람을 잡는 철퇴가 되어 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분노로 하는 말은 살인하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 사람은 의사 전달 방법에 명령조가 많습니다. 이것은 가장 안 좋은 의사 전달 방법입니다. 우리 부모들이 자녀들을 향하여 무심코 던진 말 한 마디, 포기해 버린 놈, 쓸데없고 가치 없는 놈이라고 한 마디 한 것이 그 아이의 일평생 동안 생애바퀴를 불사르게 합니다. 따지기를 좋아하는 것은 무익하게 혀를 사용하는 것이며, 친구를 얻거나 사람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 아닙니다.

 

부정적인 사람은 그 언어가 항상 부정적입니다. 어떤 사람은 처음부터 끝까지 힘들고 피곤하고 바쁘고 죽겠다는 것입니다. 말에 실수를 통해서 나타나는 페단은 산에 작은 불씨가 마침내 전체를 불태워 없어지게 하는 것과 같습니다. 말을 잘 통제해서 좋은 열매를 맺기 보다는 말을 통제하지 못함으로 화를 당하는 일이 훨씬 더 많습니다. 타락한 인간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지옥과 같은 본성으로부터 불의의 불이 계속하여 솟아올라 혀에 담겨서 말을 할 때마다 뿜어져 나옵니다. 혀에서 나오는 말 한마디가 행복으로 가득 찼던 생의 바퀴를 확 돌려서 불행으로 빠트리고 맙니다.

 

사도 바울은 말로 짓는 죄를 저희 목구멍은 열린 무덤이요 그 혀로는 속임을 베풀며, 그 입술에는 독사의 독이 있고, 그 입에는 저주와 악독이 가득하고“(3:10-18)라고 하였습니다. 언어 폭력을 받은 사람들 중에는 두통, 염려, 신경과민, 불면증, 스트레스, 피곤, 낮은 자존감, 우울증으로 고통당하는 자들이 많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자녀가 다른 사람의 삶에 이런 악영향을 미치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습니다.

 

무릇 더러운 말은 너희 입 밖에도 내지 말고 오직 덕을 세우는데 소용되는 대로 선한 말을 하여 듣는 자들에게 은헤를 끼치게 하라(4:29). 베드로는 생명을 사랑하고 좋은 날 보기를 원하는 자는 혀를 금하여 악한 말을 그치며 그 입술로 궤휼을 말하지 말라고 경고합니다(벧전3:10). 괴테는 많은 사람과 대화하기를 좋아하였지만 악담이 나오면 엄하게 꾸짖었다고 합니다. 휴지 조각은 흩어 놓아도 좋습니다. 그러나 악담을 펴놓는 것은 삼가 주십시오. 그 악담은 다 주워 가십시오. 다시는 가져 오지 마십시오. 더러운 말은 티끌과 먼지보다 더 공기를 탁하게 하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세우는 말을 하고 무너뜨리는 말은 하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유익이 없는 말이나 덕이 안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6:2). 이웃에게 상처가 되는 말은 삼가야 합니다(5:4). 아침에 일어나면서 오늘도 누군가에게 좋은 말을 하십시오. 물건을 파는 사람들에게, 식당에서 서빙 하는 사람들에게 격려의 말을 한 마디 해야 합니다. 사람을 변화시키는 말의 공통적 특징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바로 긍정적이고 격려하는 말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그것을 축복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살았을 때 장미 한 송이 주는 것이 죽은 다음 화환을 주는 것보다 낫습니다. 살아 계실 때 한 마디의 칭찬이 돌아가실 때 화려한 추도사보다 낫습니다. 음식물이 육체의 필요를 채워주듯이 좋은 말은 영혼의 필요를 채워 주어 풍성한 삶을 살게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선한 말에 함께 해주시면 우리 안에 그것을 시작하신 하나님이 놀라운 결과를 만들어 주신다. 오늘 당신이 축복할 수 있는 사람을 보내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하십시오. 그리고 반드시 그 사람을 위하여 축복하십시오. 일반적으로 사랑은 의미있는 시간, 표현된 언어, 선물, 신체적 접촉, 그리고 봉사의 다섯가지 방법으로 소통된다고 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잘못했을 때 상대방에게 진심으로 사과해야 합니다. 어떤 아내의 말입니다. 남편이 미안해요 라는 말은 하지만 그것이 사과로 느껴지지 않아요. 그러면 남편이 무슨 말이나 행동을 해주길 원해요? 나는 남편이 잘못을 시인하고 내게 용서를 구하길 원해요. 또한 다시는 그런 일을 반복하지 않을거라고 내게 확신시켜주었으면 해요.

 

그리스도인은 하나님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방식으로 다른 사람을 용서해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용서하십니까? 우리가 죄를 자백하면 하나님이 우리 죄를 용서하십니다(4:32, 요일 1:9). 신 구약 그어디에도 죄를 자백하거나 회개하지 않는 사람을 하나님이 용서하신다는 언급은 없습니다. 진정한 사과는 용서와 화해의 기능성으로 가는 문을 엽니다. 그렇게 되면 우리가 관계를 계속 세워나갈 수가 있습니다. 사과 없이는 가해 행위가 장벽으로 사로잡고 관계가 훼손됩니다.

 

러브 스토리의 영화에는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결코 할 필요가 없음을 뜻한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5가지 사과의 언어가 있다고 합니다. 첫 번째 사과의 언어는 유감표명, “미안해요라는 말로 표현됩니다. 유감표명은 사고와 감정적인 측면입니다.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었다면 미안하다고 말해야 합니

 

우리가 무슨 말을 할 떼 수없이 확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내가 정말 이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에 사랑의 동기로 하는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좋은 말이라 하더라도 자기주장이 될 때에는 별로 좋은 영향을 주지 못할 뿐 아니라 내가 의도한 것과는 전혀 다른 쪽으로 반응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늘 자신의 영적인 상태를 파악해야 합니다. 좋은 의도로 시작하였지만 상황이 힘들다고 원망하지 말아야 합니다. 선한 일 하다가 힘들다고 포기하지 말아야 합니다. 마음이 상할 때 생각지 않는 말이 나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자신의 선입견으로 잘못된 판단을 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한쪽 말만 듣고 속단하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합니다. 양쪽의 말을 다 들어보고 판단해야 합니다. 좋은 말을 퍼뜨리고 안 좋은 말은 삼켜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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