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은 오늘 본문에서 왜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고 말씀하셨을까요? 당시에 시대적 배경, 정치적 배경을 살펴보아야만 그 이유를 보다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 당시에 열성당원들은 군사적인 메시야를 간절히 원하고 있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기적을 행하는 메시야를 학수고대했습니다.
사두개인들은 물질적인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에세네파는 금욕주의적인 메시야를 원했습니다.
그런데 예수께서는 나는 너희에게 온유한 메시야를 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먼저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함에 대해서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온유함은 연약함이 아닙니다. 제어된 힘입니다. 겸손은 하나님 앞에서 자신을 비우고, 낮추며, 마음을 찢는데서 오는 부산물입니다. 온유함은 자신의 뜻을 하나님 앞에 내려놓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함은 또한 무기력한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온유함이다. 잠언 16:32절입니다. “노하기를 더디하는 자는 용사보다 낫고 자기의 마음을 다스리는 자는 성을 빼앗는 자보다 나으니라.”
온유함은 단순한 비겁함이나 자신감의 결여나 인간적인 친절함도 아닙니다.
그러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온유함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온유한(프라우스)는 점잖은, 겸손한, 사려 깊은, 예의바른 것을 말합니다. 또한 이러한 자질들을 이루기 위하여 절제를 행하는 것 등을 의미합니다.
온유함의 차원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을 향한 온유가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사람을 향한 온유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온유란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을 말합니다.
야고보서 1장 21절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더러운 것과 넘치는 악을 내버리고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
온유는 사람에 대해 참고 견디는 것을 말합니다.
온유는 급한 마음과 반대입니다. 전도서 7장 9절입니다. “급한 마음으로 노를 발하지 말라 노는 우매한 자들의 품에 머무름이니라.”
온유는 보복과 반대입니다. 로마서12장 19절입니다.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갚은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온유한 사람은 인내심 있고, 순종적인 사람입니다. 온유는 예수님의 성품이었습니다. 스가랴 9장 9절입니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겸손하여서(meek)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온유한 자는 또한 자신의 소유가 약탈당하는 것을 기쁘게 받아들입니다. 왜냐하면 그에게는 더 나은 영구한 산업이 있다는 사실을 알기 때문입니다(히 10:34). 히브리서 10장 34절입니다. “너희가 갇힌 자를 동정하고 너희 소유를 빼앗기는 것도 기쁘게 당한 것은 더 낫고 영구한 소유가 있는 줄 앎이라.”
그는 결코 자신의 상처나 손실을 걱정하지 않습니다. 그는 결코 원한을 품지도 않습니다.
온유한 자는 결코 자신을 변호하지 않습니다. 왜나하면 자신이 자격이 없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신에게 일어난 일에 대해서 결코 화를 내지 않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나 스스로는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 그러나 하나님으로는 모든 것이 가능하다.
베드로전서 2:23입니다. 예수께서 “욕을 받으시되 대신 욕하지 아니하시고 고난을 받으시되 위협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공의로 심판하시는 자에게 부특하시며.” 이것이 온유함이다. 예수님은 결코 자신을 변호하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변호하셨습니다.
온유한 사람은 자신이 죄임임을 깨닫고 인정하기 때문에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하게 됩니다. 로마서 12장 10절입니다. “형제를 사랑하여 서로 우애하고 존경하기를 서로 먼저 하며.”
우리가 하나님 앞에서 솔직해져서 자신이 죄인임을 인정하는 것은 비교적 쉽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그렇게 말하도록 허용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면 온유한 자는 어떤 복을 누리게 될까요?
온유한 자는 땅을 기업으로 받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그런데 우리는 그 반대라고 예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온유한 사람들은 오히려 아무 성과도 얻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들이 그들을 무시하거나 아니면 함부로 다루고 발로 짓밟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예상과는 다르게 온유한 사람은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영원한 관계에 기초하여 지속적이며 참된 기쁨을 누리게 됩니다.
온유함이 없이는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들일 수조차 없습니다. 야고보서 1장 21절입니다. “너희 영혼을 능히 구원할 바 마음에 심어진 말씀을 온유함으로 받으라.”신앙 생활에 대해 궁금해 하는 사람들에게도 온유함으로 나누어야 합니다. 베드로전서 3장 15절입니다. “너희 마음에 그리스도를 주로 삼아 거룩하게 하고 너희 속에 있는 소망에 관한 이유를 묻는 자에게는 대답할 것을 항상 준비하되 온유와 두려움으로 하고.”
온유한 사람은 자신을 모함하는 아픔 속에서도 모든 것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축복의 손길을 깨닫습니다.
로마서 8장 28절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니라.”
사무엘하 16장 11-12절에 보면 다윗이 압살롬에게 좇겨 피난할 때 시므이는 감람산에서 다윗을 저주했습니다. 그때 아비새가 시므이를 죽이려고 하자 다윗은 “여호와께서 저에게 다윗을 저주하라 하셨으니, 저주하도록 내버려두라”고 말했습니다.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깨서 선으로 내게 갚아주시리라 하고.“
시편 37편 1, 11, 22, 34절에 보면 “악을 행하는 자들 때문에 불평하지 말라고 합니다. .온유한 자들은 땅을 차지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를 바라고 그의 도를 지키라 그리하면 네가 땅을 차지하게 하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온유한 자는 땅을 차지하며 풍부한 화평으로 즐기게 됩니다(시 37:11). 온유한 자는 풍부한 화평 때문에 이 땅에서 소유한 것이 많든 적든 강에 그것으로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마음에 참된 만족을 누리게 됩니다. 온유한 사람은 그리스도께 속한 특권을 누리게 됩니다. 온유한 자가 천국을 누릴 자격을 갖추고 있습니다.
언제나 예수 그리스도의 온유한 마음을 날마다 배우고 닮아가기를 소원합니다. 언제나 우리의 심령에 온유함을 달라고 기도하기를 소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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