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의 선택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의 포로로 사로잡혀 가게 됩니다. 거룩한 성전 예루살렘이 바벨론에 의해 파괴되고 성전의 모든 기물까지 다 빼앗기고 맙니다. 하나님의 축복이 저주로 바뀌는 안타까운 현상을 보게 됩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러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단 말입니까?
북쪽 이스라엘이 앗수르에 의해 멸망받았던 때가 주전 722년이고, 남쪽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받은 때가 주전 586년입니다. 즉 남쪽 유다는 북쪽 이스라엘이 보다 136년 후에 멸망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남쪽 유다는 북쪽 이스라엘이 왜 멸망했는지 그 원인을 찾고 준비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남쪽 유다는 자신들은 그래도 선택받은 민족이고 하나님께서 결코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므낫세가 유다를 통치하고 있을 때 유다의 멸망은 이미 예견되었습니다. 왕하 24:3-4에 보면 하나님께서 므낫세의 지은 모든 죄로 인해 나라를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습니다. 므낫세가 지은 커다란 죄가 무엇입니까? 왕하 21:2절에 보면 므낫세가 백성들로 하여금 이방 사람의 가증한 일을 본받게 했습니다. 또한 왕하 21:16절에 보면 “무죄한 자의 피를 심히 많이 흘려 예루살렘 이 끝에서 저 끝까지 가득하게 하였더라”. 즉 무죄한 자의 피를 많이 흘리게 했습니다.
므낫세의 죄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사하시기를 즐겨하지 않으셨습니다. 이것이 가장 무서운 죄입니다. 멸망받을 죄에 대해서는 더 이상 기도하지도 말라고 성경은 말씀하고 있습니다. “벌을 면죄하지는 아니하고”(출 34:7). 사망에 이르는 죄가 있으니 이에 관하여 나는 구하라 하지 않노라”(요일 5:16). 물론 므낫세의 아들 요시야 왕은 우상을 척결하고 성전을 수리하고 유월절을 지키고 언약의 말씀대로 순종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미 므낫세의 엄청난 죄를 돌이키게 하는 데는 역부족이었습니다.
게다가 요시아의 아들, 므낫세의 손자 여호야김은 왕하 23:37절 보면 “그의 조상들이 행한모든 일을 따라서 여호와의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악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여호야김은 열조의 행한 일들 가운데 나쁜 부분만 골라서 본받았습니다. 여호야김의 아들 여호야긴은 어떤 영향을 받았을까요? 왕하 24:9절 말씀에 보면 여호야긴 역시 그 부친의 나쁜 행위를 그대로 본받아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다고 했습니다.
바벨론 왕은 여호야긴을 내좇고 대신하여 그의 삼촌 맛다니야를 왕으로 삼았습니다. 그의 이름은 시드기야로 고쳤습니다. 그런데 시드기야는 어떻게 했을까요? 왕하 24장 19절에 보면 시드기야 역시 여호야김의 나쁜 것만 본받아서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습니다. 이와같이 부모는 자녀에게 얼마나 커다란 영향을 끼치는지 모릅니다. 여기서 악이란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는 것,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것을 말합니다. 하나님 보다 돈이나 이 세상의 그 어떤 것에 더 많은 관심과 애착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왕하 25장에 보면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 왕이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공격하였고 결국 시드기야 왕은 두 눈이 뽑히고 사슬로 결박되어 바벨론에 포로로 사로잡혀 갑니다. 그후 느부갓네살 왕 제 19년에 예루살렘을 성전을 파괴하고 궁전을 불사르고 성전의 모든 기물을 다 빼앗아갔습니다.
옛적에 하나님께서 다윗과 솔로몬에게 내가 택한 예루살렘 성전에 영원히 두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자동적인 것이 아니라 분명한 조건이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므낫세 왕과 유다 백성들에게 나의 모든 명령과 율법을 지켜 행하면 다시는 유리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듣지 않았습니다(왕하 21:8). 이전에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이 성전을 짓고 낙성식을 할 때 그에게 나타나셔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왕하 9장 6,7절 말씀 다같이 읽겠습니다. "만일 너희나 너희 자손이 아주 돌아서서 나를 따르지 아니하며 내가 너희 앞에 둔 나의 계명과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고 가서 다른 신을 섬겨 그것을 경배하면 내가 이스라엘을 그들에게 준 땅에서 끊어버릴 것이요 내 이름을 위하여 내가 거룩하게 구별한 이 성전이라도 내 앞에서 던져버리리니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가운데서 속담거리와 이야기거리가 될 것이며.“
성전 그 자체가 자연스럽게 거룩해지거나 축복받는 처소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성도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생활을 할 때 하나님께서 성전을 통하여 약속한 축복을 베풀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유다 백성들은 예루살렘 성전을 자신들이 출입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결코 자기를 버리지 않을 것이라고 착각하고 있었습니다.
언제나 우리는 축복 신드롬에 빠져 자신의 영적 상태가 나태하고 해이해 지지 않도혹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자기 고집대로 살아가면서 축복을 계속 받게 될 것이라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과거의 축복을 현재 자신의 삶과는 그대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착각을 버려야 합니다.
우리는 축복이 저주로 바뀔 때 빨리 깨닫고 돌이켜야 합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즐겨 사하지 않겠다는 자리에 까지 가면 안됩니다. 은혜 받을 만한 때가 있습니다. 구원받을만한 때가 있습니다. 회개할 때가 있습니다. 그 기회를 놓치면 통곡하게 될 날이 반드시 옵니다. 이제는 저주를 축복으로 바꾸는 자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설교' 카테고리의 다른 글
제직 헌신예배 설교, 김덕선 목사 (0) | 2024.06.04 |
---|---|
축복의 약속(히 6:13-20), 김덕선 목사 (1) | 2024.06.04 |
권위와의 전쟁(민 12:1-10), 김덕선 목사 (0) | 2024.06.02 |
그 이름을 위하여(행 5:33-42), 김덕선 목사 (1) | 2024.06.02 |
기도의 에바댜(요일 3:17-24), 김덕선 목사 (1) | 2024.06.0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