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렘
좋아하니 계속하고 계속하니 깊어집니다. 그러면 손님들은 카운터에서 인사드리는 것보다 어째 훨씬 더 좋아하십니다.
"어, 사장님도 우리처럼 막국수 드시네? 안 질리세요?" “네, 안 질려요. 너무 맛있어요."
막국수를 좋아하는 저와 남편은 1년에 280번은 막국수를 먹습니다. 1년에 300일 정도 영업을 한다고 해도 정말 많이 먹지요. 이렇게 거의 매일 막국수를 먹는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그저 막국수가 좋아서입니다. 좋아하니까 막국수 생각만 하게 되고, 생각에 생각을 더하다 보니 어느새 막국수를 만들게 되었습니다. '좋아하니까 막국수 장사를 한다. 이것이 저희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러웠지요. 만약 제가 좋아하지도 않는 음식을 손님에게 권해야 한다면 얼마나 괴로울까요. 제가 먹었을 때 도통 맛이 없는 음식을 맛있다고 팔아야 한다면 얼마나 힘들었을까요. 좋아하는 음식이니 손님에게도 권할 수 있고, 제가 먹어도 맛있는 만큼 자신 있게 팔 수 있습니다.
막연히 좋아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특히 어떤 점을 좋아하는지를 세세하게 들여다보았던 것도 중요했습니다. 어떻게 하면 내가 좋아하는 것을 남들도 좋아하게 만들 수 있을지 조금씩 터득해나갈 수 있었거든요. 제가 맛본 막국수의 느낌을 하나씩 전함으로써 손님들이 맛있다고 눈을 반짝이는 순간이 짜릿합니다. 다른 사람들도 막국수를 좋아하게 되는 것을 보면 말로 표현하기 힘든 기쁨을 느낍니다.
장사는 손님이 오기 전부터 시작된다
다른 하나는 그날의 막국수를 평가하기 위해서입니다. 어제와 오늘의 막국수 맛이 일정한지. 손님 입장에서 끊임없이 맛보고 테스트합니다. 새로 들어온 고춧가루가 맵던데 숙성한 양념장은 좀 부드러워졌는지, 간장을 몇 CC 더 넣었는데 혹여나 간이 확 세진 것처럼 느껴지는지, 염도계로 측정되지 않는수치 사이에서 육수의 간이 세밀하게 달라지진 않았는지, 매일 생길 수밖에 없는 미세한 차이조차 더 줄일 방법을 고민합니다.
손님의 이야기를 담는 공간
"혹시 막국수 좋아하세요?" 남편은 마치 제게 막국수의 세계를 알려주려고 나타난 사람 같았습니다. 처음 만난 날에도 메밀 면과 다른 면, 또 막국수와 냉면의 차이를 열심히 설명했지요. 그 눈이 유난히도 반짝거린 탓인지 저도 모르게 '너무 좋아해요” 라고 대답하고 말았습니다. 이제야 고백하자면, 제가 자신 있게 좋아한다고 했던 그 막국수는 학창 시절 닭갈비집에서 후식으로 먹던 쟁반 막국수였습니다. 남편은 지금도 그 사실을 모릅니다만.
사람들이 다시 오고 싶게끔 만드는 것 말이에요. 그렇습니다. 국숫집을 새로 짓기로 하면서 가장 신경 쓴 건 손님들이 다시 찾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저희가 새집으로 이사할 때, 줄곧 받았던 질문이 “이사하면 많이 넓어지나요?" 였습니다. 조금 커지기도 했지만, 테이블 공간보다는 주변 공간을 더 넓혔습니다. 전문가들이 본다면 비효율적이라고 흉볼지도 모르겠어요.
먼저 대기하시는 손님의 공간부터 넓혔습니다. 나지막한 돌담 사이 계단을 오르면, 지붕을 얹은 야외 공간에 테이블과 의자가 눈에 들어옵니다. 이곳까지 찾아와 주신 분들이 잠시 고단함을 내려놓고 설렘으로 기다리시기를 바랐습니다. 다음으로 재료를 위한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솔직히 손님한 분이라도 더 받을 수 있게 테이블 수를 늘리고 싶은 마음도 컸습니다. 하지만 자리가 없어 돌아가시는 손님을 보며 아쉬워할 때마다 남편은 말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손님을 더 받는 게 아니야. 메밀 자체의 맛을 일정하게 유지하는 게 가장 중요해.” 음식 장사는 맛에서 시작합니다. 따라서 맛의 바탕이 되는 재료를 다루는 일이 기본이 되지요. 수확한 메밀은 겉껍질을 벗겨내 초록빛을 띠는 녹쌀이라는 이름으로 국숫집에 옵니다. 도정된 지 7일 이내의 녹쌀은 곧바로 매장 내의 저온 저장고에 보관됩니다. 껍질을 벗겨두었으니 온도는 일정하게 유지하고 습도를 조절하여 산화를 최대한 늦춥니다. 쌀을 비롯한 곡식, 과일, 커피까지 껍질로 싸인 모든 열매는 산소에 노출되면 맛과 향이 떨어지게 마련이니까요. 결국 우리는 손님의 식탁에 오르기까지 메밀의 품질을 유지하기 위해 저온 저장고를 증축하기로 했습니다. 메밀을 최상의 상태로 보관하고 싶은 마음은 매장 규모를 넓히는 일보다 중요했지요.
마지막으로 배려를 위한 공간을 만들었습니다. 내부에 들어서면 한가운데에 세운 벽이 보입니다. 그 공간까지 테이블을 더 들여놓을 수도 있지만, 직원과 손님 모두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벽을 기준으로 공간을 분리해 한쪽은 손님의 공간, 다른 한쪽은 직원의 공간을 확보했습니다. 손님들은 주방 기물이나 반찬통 등이 보이지 않는 상태에서 여유 있게 지나다녔으면 했고, 직원들은 간혹 손님과 동선이 꼬여 위축되거나 죄송한 마음이 드는 일 없이, 음식 준비에만 집중할 수 있거든요.
국숫집을 이렇게 짓기까지 고민이 많았습니다. 하지만 분명한 이유가 있었지요. 우선 균형을 생각했습니다. 어느 식당에는 주방에서 맛의 품질을 지킬 수 있는 범위와 홀에서 손님을 응대할 수 있는 범위가 있습니다. 공간을 배치할 때 저희가 생각하는 균형이 흔들리지 않는 지점까지 철저히 고심해 지키고자 했습니다.
다음으로 손님을 생각했습니다. 이곳을 다녀가시는 분들은 단지 허기를 채우고 가시지 않습니다. 손님들은 사랑하는 이들과 편안하고 맛있게 음식을 먹었던 기억, 식당에 오기까지의 여정과 도착해서의 첫인상까지 담아가십니다. 그 기억이 최고의 순간이자 특별한 경험으로 남을 수 있도록 공간을 갖추어왔습니다.
이렇듯 국숫집은 가격을 올리지 않은 대신, 가치를 올리고자 했습니다
다른 식당 사장님들처럼, 저희도 손님들에게 “맛있어요.”라는 말을 가장 듣고 싶었습니다. 물론 “가격에 비해 맛이 없어요”라는 말은 안 들었으면 했고요. 그런데 사람들 입에서 '맛있다'는 말이 절로 나오게 하는 데는 실제 음식 맛뿐만 아니라 주변의 다양한 자극이 복합적으로 작용합니다. 저희가 손님이었을 때만 돌아봐도 왠지 맛있게 느껴지는 집들이 있었습니다. 똑같은 음식이라도 상황에 따라 그 맛과 분위기가 다르게 느껴지는 것을 보면, 분명 맛있게 느껴지게 하는 요소 역시 중요하다는 말이겠지요.
파인다이닝에 가야 볼 수 있었던 생화를 막국숫집에 놓아두었습니다. 마루 탁자에는 센터피스를, 창틀과 화장실에는 라넌큘러스, 리시안셔스, 튤립, 거베라 등의 계절 꽃을 볼 수있도록 준비했습니다. 흰 벽에는 간결해서 더 인상적인 메뉴판이 걸려 있습니다. 오픈 주방에서 입는 조리복, 특히 홀에서 손님을 맞을 때입는 앞치마는 주문 제작으로 맞추었습니다. 음식을 낼 때는 직원이 맛있게 먹는 방법을 빠뜨리지 않고 안내합니다. 그냥 손님으로 오셨던 분들이 그 순간만큼은 음식 앞에서 몰입하는 경험을 하시길 바라서지요..
손님이 머무시는 방마다 맑은 음질을 갖춘 스피커를 설치했습니다. 식사에 방해가 되지 않도록 음역대가 넓지 않은 피아노곡을 선곡합니다. 거기에 주문을 받거나 그릇을 치우는데 큰 소리가 나지 않도록 유의하여 손님이 자연스럽게 음식에 집중할 수 있도록요. 조도와 온도도 섬세하게 조절했습니다. 자연광과 조화를 이루는 조명은 통창으로 쏟아지는 햇살을 즐길 수 있게 하지요. 한여름에는 실내 공기를 시원하게 하더라도 바닥은 따스하게 하여 한기를 느끼지 않게 합니다.
기다림이 설렘이 되도록
"얼마나 기다려야 해요?" 처음 국숫집에 손님들이 기다리시기 시작했을 때, '밖에서 힘드실 텐데. 이걸 어쩌나?' 싶었습니다. 그러니 저도 모르게 안에서 식사 중인 손님을 쳐다보게 되더라고요. 심지어는 다. 드시고 나가는 손님들조차 "아유, 빨리 먹고 일어나줘야지. 저렇게 사람들 기다리는데.” 하고 말씀하시는 게 아니겠습니까.
손님이 줄 서는 집들 중에 처음에 장사가 잘되었던 이유를 잊고 맛이든 서비스는 그저 빨리빨리 해치우는 길을 선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기는 한꺼번에 삶아 진공포장을 해두고, 면을 만들 가루도 미리 다 빻아놓습니다. 또 식사를 마친 테이블을 치우기도 전에 다음 손님을 불러 앉히고, 소리 높여 주문을 넣으며 직원들을 몰아칩니다. 이런 행동이 반복되다 보면 사람도 차츰 변합니다. 주문받은 음식이 다 나갔으면 얼른 먹고 갔으면 좋겠고, 그 자리에 다음 사람을 앉히려고 마음이 급해집니다. 꾸준히 오는 단골손님보다 한 번에 많이 팔아주는 사람이 반가워지면서 손님을 돈으로 보게 됩니다. 물론 이를 가장 먼저 알아차리는 건 바로 손님들입니다. 다시 오고 싶은 마음 하나 남기지 않고 발길을 돌리게 되지요.
손님들이 기다려주신다면, 그만큼 우리의 시간을 손님에게 쏟는 게 맞는다고 생각했습니다. 조금 느리게 가더라도 음식의 맛과 서비스를 유지하고자 했지요. 국숫집에서는 손님들이 여유롭게 식사를 즐길 수 있는 것은 물론, 기다린 보람까지 느낄 수 있게 해드리고 싶었습니다. 이런 마음에서 손님들이 기다리는 시간부터 살펴드려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몰려드는 손님을 제대로 응대하는 방법을 찾느라 처음에는 시행착오도 겪었습니다. 그저 도착한 순서대로 노트에 연락처를 기재하는 방식이었을 때는 얼마나 기다려야 되냐는 손님들의 물음에 정확하게 답해드리지 못했습니다. 마음이 급한 분들은 여러 번 본인 차례를 확인하러 오셨고요. 저 역시 순서가 된 분들을 부르며 찾아다니다 보니, 홀에서의 서비스에 집중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점차 요령이 생기면서 조금 나아지기는 했지만, 종일 어수선함 속에서 마감한 날도 많았습니다.
그러던 2017년 당시 카카오톡 기반으로는 국내에서 처음 개발된 대기 시스템을 도입했습니다. 대기실에 마련된 야외 화장실에도 가봅니다. 언제든 안심하고 사용하실 수 있도록 휴지를 넉넉히 채워두고, 휴지통에 버린 휴지가 넘쳐흐르지 않도록 꾹꾹 눌러 담아줍니다. 세면대에서 손도 씻어봅니다. 수도꼭지가 한쪽에 치우쳐 있으면 온수와 냉수 중간 정도로 돌려놓고요. 거품 비누가 모자라지는 않은지 센서에도 손을 대봅니다.
밖으로 나오면 주차장 쪽으로 걸음을 옮깁니다. 마당에 담배꽁초나 빈 생수병이 떨어져 있지는 않은지 훑어봅니다. 대개는 쓰레기가 거의 없습니다. 손님들이 깨끗하게 이용해주시는 덕분이지요. 여기까지 살피고 나면 거의 마무리된 것입니다. 이렇게 손님의 눈이 되어 모든 동선을 살피는 일은 그리 오래 걸리지는 않습니다. 카운터를 지키는 직원과 반갑게 인사를 나누기까지 5분이면 충분합니다. 매일 손님이 되어보는 경험으로 하루를 시작하는 것은 이제 자연스럽게 몸에 배었습니다.
손님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는 일은 식당 내부에서도 이어집니다. 제일 신경 쓰는 부분은 화장실입니다. 고급 호텔 화장실에 가면 항상 처음 사용하는 것 같은 인상을 받습니다. 심지어 휴지도 새것 같고요. 알고 보니 손님이 한 번 이용할 때마다 바로바로 정리하는 서비스를 시행하고 있더군요. 그 덕분에 여러 손님이 드나들어도 아직 아무도 사용하지 않은 듯한 느낌을 받았던 것이지요..
수년간 운영을 했는데도 기억나는 손님이 별로 없었습니다. 우리가 기억하는 손님이 없는데 손님이라고 우리 가게를 기억해줄 리가 없다는 걸 그때는 미처 몰랐었지요. 이제야 그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지금은 많은 분이 국숫집을 기억해주고 계십니다. 제가 먼저 손님들을 기억하기 때문이겠지요. "어엇, 오늘은 아드님네와 같이 오셨네요? 좋으시겠어요." 손님은 작은 것들에 마음이 움직입니다. 작은 것이 모여 결국 손님에게 기억됩니다.
서로 다른 두 사람이 펼치는 운영의 묘
부부는 사실 자신이 그러한 것만큼 서로의 단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배우자가 이를 굳이 지적하면 화부터 내기 쉽지요. 장점은 어떤가요? 배우자가 내 칭찬을 해주면 더 잘하고 싶어지고, 선물처럼 조금씩 상대에게 안겨주고 싶지요. 인정하기 어려운 단점보다는 서로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는 것이 바로 우리 부부가 해온 일이었습니다
맞이 화려한 서비스보다.정교한 진심으로
좋은 상권보다 중요한, 찾아오게 만드는 힘
누구든 식당을 하겠다고 하면 제일 먼저 받는 질문은 '무엇을 파는가?'와 같이 메뉴에 관한 것이겠지요. 그 다음 받게 될 질문은 아마 입지는 좋은가?'일 것입니다. 그 지역에 사는 사람뿐 아니라 출퇴근 등으로 지나다니는 사람이 많은 곳에 식당이 있으면 아무래도 성공할 확률이 높아진다고 하니까요. 주변 상권이 활성화되어 있으면 더할 나위 없을 테고요. 블로그는 단지 온라인상에서 글을 나누는 공간이 아니라, 사람이 모이는 공간이었습니다. 온라인상의 관계는 오프라인을 통해 더 확장되었습니다.
식당을 한다면 누구나 좋은 상권에서 안정적으로 시작하고 싶을 기예요.. 좋은 상권은 분명히 존재합니다. 하지만 상권은 수시로 변합니다. 사람이 기의 없던 고기리에도 하루가 다르게 커피점이 들어서고 있으니까요. 저는 부동산은 전히 모르는 사람이지만 요즘은 이런 소리도 듣습니다. "이찜, 이렇게 공기 좋은 곳에 자리를 잡으셨어요? 손님도 끊이지 않고, 도대체 어떤 안목이 있으시기에. 제게 그런 안목이 있을 리가요. 다만 무언가가 있다면, 손님의 마음으로 이어지는 길을 찾은 덕이겠지요.
메뉴가 이것밖에 없어요?
“여기 어떤 게 맛있어요?" “다 맛있어요.” 아, 이 대답은 맛이 다 별로라는 말처럼 들립니다. 사장님께 추천 받은 음식은 대개 가장 비싼 메뉴였습니다. '저 손님은 겨울에도 우리 식당에 올 수밖에 없는 단일 메뉴를 선택하여 기본에 집중하는 만큼 성과도 따랐습니다. 매일 막국수를 만들고 맛을 개선해나갔습니다. 같은 작업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여도 매 순간 발전하고 있음을 조금씩 알게 되는 시간이었습니다. 맛이 좋아지니 자연스레 손님도 많아졌습니다. 그러면서 음식 맛이 더 빠르게 나아지는 선순환이 일어났지요.
식당 사장님이 메뉴를 늘리는 건 두 가지 마음 때문일 거예요.
첫 번째는 배려하는 마음입니다.
“막국수는 애들 먹기 매우니까 어린이 돈가스 같은 메뉴가 있었으면 좋겠어요” 라는 손님의 말만 듣는 것이지요. 손님의 말에 그렇겠구나 싶어 어렵게 메뉴를 준비해놓으면 그 손님은 오시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가스 전문점으로 가셨을 테니까요.
두 번째 마음은 불안감입니다.
장사가 처음인 사장님은 물론이거니와 오래 해오신 분들도 마찬가지일 거예요. 한두 가지의 메뉴로 식당을 시작한다는 건 다리가 후들후들 떨리는 일이지요. 여러 가지 메뉴를 준비해놓으면 일단 본인의 마음이 편해집니다. 어떤 주문도 다 받아낼 수 있으면 적어도 다른 식당으로 가는 손님은 막을 수 있을 것 같고요.
역지사지를 담은 메뉴
“이게 사리예요?" 국숫집에서는 오늘도 손님들의 탄성이 터집니다.
국숫집 사리의 법칙!
하나, 사리라도 원래의 양과 똑같은 한 그릇이 나갑니다. 사리라고 해도 온전히 드실 수 있도록 양념장을 정확히 계량기에 얹고 육수도 콸콸 부어 나갑니다.
둘, 마음 같아서는 우리 막국수를 더 드시겠다고 하는 고마운 분들께 공짜로 드리고 싶지만, 장사하는 사람이니
값은 받습니다. 다만 사리는 반값만 받습니다.
셋, 다른 막국수 사리도 가능합니다. 들기름 막국수를 드셔도 비빔사리를 드실 수 있고, 비빔 막국수를 주문하셔도 물사리를 드실 수 있습니다. 물 막국수 드시고 또 물사리 드시는 것도 당연히 가능하고요.
국숫집에는 '아기막국수'라는 특별한 메뉴가 하나 더 있습니다. 이 메뉴 역시 제 경험에서 비롯되었습니다. 엄마 손님들은 대개 아기부터 챙겨주고 비로소 본인 몫을 먹는데, 사실 먹을 때도 아이를 챙기느라 정작 자신은 먹는 둥 마는 둥 하지요. 그런데 대부분의 식당에서는 어른들 위주로 메뉴를 만듭니다. 그러니 자신이 먹고 싶은 것보다는 아이가 먹고 싶어 하는 메뉴를 고르거나 아이 몫을 따로 덜어주느라 애쓰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기가 화장실 맞아요?
“식당에 그런 화장실이 웬 말이니?” “얼마 안 가서 포기할걸? 결국 물 뿌려서 박박 청소해야 해." 결정하기 어려웠던 만큼
주위의 우려도 컸습니다. 하지만 건식형 바닥재 공사를 시작으로 꿈꿔왔던 화장실의 모습을 하나씩 갖추어 나갔습니다. 휴지걸이 하나도 기성품을 쓰지 않고 원목으로 제작했지요. 언뜻 의식하지 못해도 뭔가 배려받은 듯한 느낌이 손님에게 전해진다면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한쪽에는 잡지에서 본 듯한 쪽빛 소파도 들여놓았습니다. 손님들이 잠깐이라도 앉아 흐트러진 매무새를 가다듬을 수 있기를 바랐습니다. 아이를 앉혀놓고 휴대전화도 들여다볼 수 있을 테지요. 수도꼭지는 앤티크한 동색으로 달았습니다. 나이테처럼 홈이 가늘게 파여 그 자체로 결을 만들어내는 세면대, 그 아래에는 물기를 빠르게 흡수하는 규조토 매트를 깔아두었습니다.
직원을 위하는 일이 곧 손님을 위하는 일
또 하나 늘 지키는 것이 있습니다. 문 닫는 시간입니다. 저녁 9시에는 가스불도 조명도 다 꺼야 하지요. 그 시간에 닫기 위해서는 오시는 손님을 다 모실 수가 없습니다. 한 여름에는 마당에 가득한 손님의 숫자를 파악한 후 일찍 마감합니다. 처음에는 막국수 드시러 멀리서 오셨다는 손님의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약해졌지요. 하루는 대전에서 올라오셨다는 손님까지만 모시자고 이야기했더니, 펄펄 끓는 면솥 앞에서 남편이 말했습니다.
“손님은 한 번씩 오시는 거지만 우리 직원들은 이게 매일 반복되는 일이야. 더 못 팔아도 오늘은 7시 30분에 마감하자. 그래야 9시에 마칠 수 있어. 직원들 쉬어야 해." "어쩜, 가게가 이렇게 바쁜데 직원들이 다 친절해요?"ㅍ직원을 위해야 음식 준비가 잘 되고, 음식 준비가 잘되어야 손님에게 맛있는 국수를 드릴 수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결국 손님을 위하는 길임을 믿어요..
사소한 곳에서 묻어나는 위생
행주는 손님이 안 보고 싶어도 계속 볼 수밖에 없는, 식당을 대표하는 소품입니다. 정리 중인 테이블 위에 널브러져 있거나 이미 사용된 채로 주방에 대충 쌓여 있는 것을 봤다면 그 잔상이 음식을 먹는 도중에 불쑥 튀어나오기도 하지요. 음식을 먹는 데서 즐거움을 느끼려면 안전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심리학자 매슬로의 욕구 이론에 의하면 위생과 건강과 같은 안전의 욕구가 채워져야 비로소 정서적 교류와 같은 애정과 소속의 욕구를 지향합니다. 아무렇게나 던져진 행주를 보면서 음식이 깨끗하다는 것을 믿거나 즐겁게 식사하기는 힘든 일이겠지요.
식당의 청결은 음식 자체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습니다. 손님들은 행주나 수저, 물통, 냅킨을 보면서 위생 상태를 가늠해보지요. 혹은 언뜻 보이는 조리대나 한쪽에 쌓아둔 식자재를 보면서 상상할 때가 많습니다. 그렇다면 손님을 안심시키고, 청결하다는 것을 은연중에 알려드리기 위해 행주처럼 사소한 데서부터 위생을 신경 써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국숫집에는 위생을 위해 특별히 마음을 쓰는 부분이 하나 더 있습니다. 바로 '김치는 아주 적은 양이라도 항상 새 접시에 나간다'는 원칙입니다.
김치를 더 요청하면서 무심코 드시던 접시를 내미는 손님이 간혹 있습니다. 먹던 접시를 받아 가서 모자란 반찬을 가져다주는 다른 식당 문화에 익숙해서 혹은 설거짓거리가 늘어나지 않도록 배려하려는 것이겠지요. 하지만 이미 사용한 접시에 새 김치를 덜어드리면, 그릇에 묻은 양념이나 국물로 인해 여러 가지 원치 않는 상황이 벌어질 수 있습니다. 아직 많은 식당에서 테이블 위에 각자 덜어 먹도록 공용 김치통을 둡니다. 손님들이 뚜껑을 열 때마다 김치 양념은 점점 말라가고, 어떨 때는 아예 열려 있기까지 합니다. 거기다가 식사 중에는 이야기를 하거나 재채기를 하는 일도 빈번합니다. 부족함 없이 편하게 드시라는 사장님의 선의가 무색하게, 위생상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와 안타까울 때가 있습니다.
단체보다. 한 사람
" 예약되나요?" 예약을 문의하시는 손님에게는 따로 예약을 받지 않고, 오시는 순서대로 모신다고 안내합니다. 식당에서 한 번에 안정적으로 많은 인원의 예약을 받는 것은 무척이나 매력적인 제안이지요. 하지만 한 번에 열 분, 스무 분씩 당장의 매출을 올리는 것보다 한 번 오신 분이 열 번, 스무 번 찾아주시는 것이 저희에겐 더 소중합니다. 사람을 대할 때 가장 중요한 것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이 사람이 세상에 유일한 단 한 사람이라는 것을 잊지 않는 마음이었습니다.
카운터에서 손님을 배웅할 때, 손님의 신용카드를 받으면서도 눈으로는 새로 들어오시는 다른 손님을 좇으면, 그 손님과 교감할 기회를 영영 놓치게 되더라고요. 생각을 바로잡은 뒤에는 그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애썼습니다. 카운터에서는 마치 오늘 그 손님께 감사 인사를 드리기 위해 태어난 사람처럼 배웅합니다. 오늘도 한 분 한 분 어떻게 하면 손님들을 다르게 모실까 생각합니다. 다르게 모시는 게 목적이 아니라 손님을 떠올리면 저절로 다른 응대가 된다는 사실을 깨달았거든요.
컴플레인을 하는 손님도 손님
“저런 분들은 애정이 있어서 괜찮은 거야. 제일 무서운 손님이 누군지 알아? 아무 말도 안 하고 가서 다시는 안 오는 사람이야.” 불만을 속으로만 갖고 있는 손님의 약 80% 이상이 말로 표현하는 일 없이, 다시는 오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지만 컴플레인하는 손님을 어떤 태도로 응대하느냐에 따라 진짜 손님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이름으로 불러드립니다.
국숫집에 오시면 대기 시스템에 이름을 입력하시도록 안내합니다. 물론 숫자만 입력하면 더 효율적이겠지요. 그런데 제가 김윤정이 아니라 번호로 불렸던 은행, 대형병원, 서비스센터 등에서의 경험이 썩 유쾌하지 않았어요. 사람이 숫자가 되어 재빠르게 처리되는 느낌을 손님에게 드리고 싶지 않았습니다. “김승현 손님이시죠?” 손님의 표정에는 사뭇 놀라움이 스칩니다. 막국수를 먹으러 왔을 뿐인데 번호 대신 이름이 불리니 마치 초대받은 느낌이 든다고도 하시고요. 가끔은 본인이 앞서 입력한 것을 잊고, 어떻게 이름을 알았느냐고 되묻는 분도 계십니다만, “로또 당첨된 것 같아요." "대학 합격한 것 같네." 이름이 불릴 때마다 웃음을 감추지 못하시는 분들이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이 선물 같은 경험은 국숫집에서의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 기억은 소중한 인연으로 이어지겠지요. 우리가 서로의 이름을 알고부터 진정한 만남을 이루어왔던 것처럼요. 이름으로 시작된 그 힘은 부드럽고도 강력합니다. “우리 신재근 손님은 5번 테이블로 모셔주세요."
마음을 움직이는 국숫집의 언어
고기리막국수 글씨를 써주신 서예가 소운 박병옥님이 말씀하시길, 글자는 그것이 쓰이기 전에 쓰는 이미 마음먹기에 달린 것이기 때문에, 거기에 쓰는 사람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하셨습니다. 꼭 작품이 아니더라도, 누군가의 글 하나, 그림 한 점의 힘은 보는 사람에게 메시지를 주고 마음을 전한다는 데 있습니다.
직원들의 공간입니다.
손님들은 이 메모를 보면서 직원들의 공간' 하고 되뇌어 봤을지도 모릅니다. 내 한 끼 식사를 준비해주는 다른 사람의 존재가 새삼스럽게 느껴졌을지도요. 분명 흔히 보이는 관계자외 출입 금지'라는 글을 봤을 때와는 다른 느낌이었을 겁니다. 관계자는 누구이고 관계가 안 된 사람은 누구란 말입니까? 손님이 관계되지 않은 식당은 식당일 수 없을 텐데요. 식당의 어떤 공간도 누군가를 소외시키지 않기를, 나아가 손님도 식당의 일부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묻기보다 가만히 귀 기울이면
후기를 읽으면서 손님들이 국숫집을 좋아해 주시는 이유를더 잘 알게 되었습니다. '막국수인데 막 만들지 않는다' '아는 사람만 먹는 메뉴가 있다' '손님에게 혜택을 주려는 집이다. ''손님이 아무리 많이 오더라도 질서 있고 공평하게 운영한다' 등등. 손님이 우리를 알아봐 주시고, 계속 지켜봐주신다고 생각하니 잘하는 것은 더 잘하고 싶었습니다.
그런가 하면, 손님의 솔직한 목소리가 담긴 후기를 듣고, 개선점을 찾을 때도 많습니다.
설명하지 말고, 대화하세요.
여긴 일단 들기름 막국수부터 시켜야 해. 아는 사람만 먹는 메뉴거든. 손님들은 일방적인 주인의 이야기를 믿지 않아요. 대신에 가까운 사람의 이야기를 믿지요.
손님을 살피면 쌓이는 빅데이터
빅데이터의 시대입니다. 엄청난 양의 정보를 한데 모아 관리하고 분석해내면 다양한 현상의 흐름을 읽어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많은 빅데이터도 개별 데이터가 모인 것이고, 낱낱의 데이터에는 사람의 일상과 취향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그 깊이까지 읽어내고자 할 때 비로소 손님의 실제 목소리를 찾아낼 수 있지 않을까요. 저희가 데이터를 대하는 방법은, 예를 들어 '오실 때마다 물막국수만 드시고 가는 손님은 어떤 분들일까? 다른 메뉴를 권해드려도 좋을까?' '석 달 동안 꾸준히 오시다가 안 오시네. 이 손님에게 혹시 서운하게 해드린 건 없을까?' 등과 같이 구체적이고 작은 질문에서 시작하는 것입니다.
한편 대기 시스템을 도입한 이후로 재방문율을 확인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재방문율이 올라가면 그즈음 손님들에게 좋은 반응을 얻었던 부분을 찾아 더욱 강화하고자 했습니다. 반대로 재방문율이 조금 내려가면 그 수치에 연연하는 게 아니라, 손님이 덜 찾아오시게 된 이유에 주목했지요. 이를 위해 해당 기간의 후기를 모아 손님들을 불편하게 했던 점이 무엇인지 찾고 이를 개선하고자 노력했습니다.
기분 좋은 빚 안겨드리기
오히려 손님이 쿠폰을 쓰실 때 '나 이 집 단골이야.' 하는 자부심을 느끼기를 바랐습니다. 주인에게 괜히 미안하거나 걱정하면서 살짝 내미는 게 아니라, 주변 테이블을 쓱 둘러보면서 보란 듯이 내밀 수 있게 하고 싶었습니다. 우리가 평소에 아무하고 선물을 주고받지 않듯이, 국숫집에서도 주인과 손님이 선물을 주고받는다면 특별한 사이가 되었다는 의미일 테니까요..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국숫집만의 첫 쿠폰을 만들었습니다. 쿠폰으로는 가장 비싼 메뉴인 수육을 드리기로 하고, 크기도 소짜와 중짜 중에 고르실 수 있게 했습니다. 그러고는 한두 분이 오셔도 큰 사이즈를 먼저 권하도록 직원들에게 일러두었습니다. 사용 기한은 명확하게 정해두기는 했지만, 넉넉히 쓰실 수 있도록 두 달 반으로 했습니다. 본 메뉴 주문 시’ ‘주말사용 불가' 등 다른 조건은 하나도 쓰지 않았습니다.
수치화할 수 없는 태도
제가 생각하는 식당이란 매번 100점짜리 음식을 내는 곳이 아닙니다. 국숫집은 85점에서 95점 사이의 음식을 내려고
합니다. 선택받는 식당이 되기 위한 관건은 그 편차를 줄이려고늘 애쓰는 데 달려 있습니다. 주방의 인력이 종종 바뀌는 것을 가정하고 하루 1000여 명의 손님에게 일정 수준의 음식을 제공하려면, 레시피에 따라 정확한 계량을 하는 것은 기본입니다. 그렇다면 레시피만 정해지면 누가 만들어도 같은 결과물이 나올까요?
막국수의 주재료인 메밀은 다루기가 까다로운 편입니다. 아무리 세밀하게 계량해도 면을 만들 때는, 메밀 수확 시기에따른 알곡 자체가 지닌 건조도는 물론, 그날의 날씨, 습도, 반죽 시간, 농도, 반죽하는 물의 온도, 삶는 시간, 삶는 물의 양,헹구는 물의 온도 등에 따라서 결과가 다 달라집니다. 음식은 손을 거쳐 구현되지만, 실제로는 음식을 만드는 사람이 지닌 마음가짐을 통해 구체적으로 발현됩니다. 각각의 조리 과정이 융합되면서 세밀한 요소가 개입되는데 그 요소는 바로 수치가 아니라 '사람'인 듯합니다.
음식을 구상하고 어떻게 조리할지 반복해서 머릿속에 다 넣은 뒤에는, 손끝에서 이런 것들이 묻어나야 합니다. 재료를 대하는 태도, 집중하는 마음, 손님에 대한 존중 말이지요. 손님들은 사랑하는 사람과 먹는 한 끼에서 인생의 행복을 떠올립니다. 저희는 그 한 끼를 준비하는 사람이고 그 한 끼를 내어갈 때 손님과 마음을 다해 교류하는 것이 소명이라고 믿습니다.
맛을 좌우하는 디테일
아무리 작은 차이라도 그런 차이가 모이면 최종적인 음식 맛이 달라진다는 것이 바로, 남편이 디테일에 집착하는 이유입니다.
반복에서 창조되는 나만의 것
요리사는 단순한 일을 반복해야 합니다. 매일 양파와 마늘을 끼고, 씻은 대파의 물기를 벱니다. 무체도 썰어두어야 하고요. 소금, 고춧가루 같은 가루류는 죽 늘어놓고 개량하지요. 육수는 몇 시간 동안 불 조절을 하며 끓입니다. 식히고 다시
끓이기를 반복하는 동안 위에 뜨는 기름을 걷어내는 일도 계속됩니다. 돼지고기 수육은 여러 차례 나누어 삶습니다. 한 번에 다 삶아놓으면 맛이 없습니다. 절대 서두르지 말아야 합니다. 적어도 30분은 뜸을 들여야 속까지 촉촉한 수육이 완성됩니다. 곁들여 나갈 마늘과 고추는 얇게 저며 두고, 메주콩으로 직접 만든 쌈장도 준비합니다.
메밀을 쌓고 반죽해서 국수를 내리는 일은 제일 중요한 작업입니다. 반복되는 이 동작이 주방의 일과 대부분을 차지하지요. 종일 면을 뽑고, 삶고, 헹구고, 남은 물기를 꼭 짜서 모양을 냅니다. 중간중간 산처럼 쌓이는 설거지는 기본입니다. 마감을 한 뒤에는 면 삶는 커다란 솥을 구석구석 닦습니다. 또한 반죽 기계의 나사를 다 풀어 분해한 다음 새것처럼 세척합니다. 전날 쓰던 반죽이 롤러에 끼어 있으면 위생과 맛에 미세한 영향을 주기 때문입니다.
음식의 흐름 대신 손님의 흐름 따르기
많이 주면 남기게 될까 봐 김치를 추가로 요청하지 못하고 그냥 서둘러 드시려고 하겠지요. 저도 그랬으니까요. 김치 두 조각만 '어떤 음식을 얼마나 맛있게 만드는가' 보다는,'손님의 관점에서 얼마나 맛있게 드셨는가'라는 손님의 경험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그래야 이 집이 왜 잘되는지 알겠다며 끄덕이는 분이 더 많아지지 않을까요.
국숫집을 시작했던 건 사실 먹고살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런데 어느 순간 돈을 벌기 위해서가 아니라 장사 그 자체가 주는 재미를 알게 되었지요. 새로운 손님이 오시는게 신기했고, 한번 오셨던 손님이 다시 오실 때 가장 짜릿했습니다. 그 재미로 '왜 어떤 손님은 다시 들려주실까, 무엇 때문에 또 오시는 걸까' 그 이유를 찾고 또 찾았습니다.
여운
다시 찾게 되는 가게의 매력
결국 손님이 원하는 것은 '작은 눈치라도 보지 않는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손님들이 식당을 찾는 이유는 편안함과 따뜻함을 느끼고 싶어서니까요. 국숫집에서는 손님이 추가로 반찬을 요청하실 때 '응당 요구하실 수 있다' 는 표정으로 응대하는 것은 물론, 손님이 요청하시기도 전에 알아서 반찬을 갖다 드립니다. 만약 김치가 부족해 보이는 테이블이 있다면, 새 접시에 김치를 담아 갖다 드리지요. 그러면 대부분 “어, 저희 김치 안 시켰는데요?" 하고 놀라시는데, “조금 부족하실 것 같아서 미리 드렸어요” 라고 말씀드리면 아주 고마워하십니다. 부담을 갖지 않을 때도 손님은 편안함을 느낍니다. 세 분이 오셔서 수육 소짜와 중짜 중에 어떤 걸 주문할지 망설이는 분께는 작은 사이즈를 권해드립니다.
발 빠른 대응 이전에 공감의 말
이렇듯 위기가 닥쳤을 때 가장 먼저 했던 일은 소독이나 방역이 아니라 공감의 말이었습니다. 직원과 동료 그리고 손님들에게 건네는 말, 우리에게는 서로의 마음을 다독여줄 시간이 필요했고, 그 시간을 보낸 뒤에야 각자의 일을 차근차근히 해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이런 이유로 코로나 이전처럼 새로운 곳을 찾아다니기보다는 이미 아는 가게를 방문하는 경향이 짙어졌습니다. 사람들은 자신을 지키기 위해 가급적 낯선 사람보다는 잘 아는 사람과 만났고, 낯선 식당보다는 잘 아는 가게로 발길을 돌렸습니다. 아는 가게를 찾는 이유는 '신뢰'에 있었습니다. 손님이 우리 가게에 기대하는 위생과 안전을 보장하기 위해 일련의 체계를 잡아갔습니다.
우선 어려운 시기에도 찾아주시는 손님에게 필요한 것은 정서적인 허기를 달래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이곳까지 오신 분들에게 불안감을 안겨드릴 수는 없는 일이었습니다. 음식에서건 환경에서건 철저한 위생을 지키는 것, 재료와 식기의 선입선출을 지키는 것, 냉장과 냉동의 정해진 온도와 기간을 지키는 것, 동작이 바뀔 때마다 의식적으로 손을 씻는 것 등등. 당연하게 해왔던 이 모든 일에 더욱 집중할 때 손님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리리라 생각했습니다.
마치는 이이기
결국 손님의 마음에 스며드는 것
“좋아하는 것을 하거나 좋아하는 일을 찾는 것이 아니야. 내가 선택한 것을 좋아하도록 해야 한다. 내 앞에 주어진 것을 좋아하도록 노력해야지." 일본의 스시 장인 오노 지로가 다큐멘터리 영화 〈스시 장인: 지로의 꿈>에서 한 말입니다.
감사의 글
기본은 진심을 다할 때 비로소 갖추어졌습니다. 화려한 광고나 마케팅 전략으로 손님의 눈과 귀를 잠시 사로잡을 수 있을지 몰라도, 손님의 마음을 얻으려면 진심을 다해야 했습니다. 그리하여 손님이 오시기 전부터 맞이하기까지, 손님과 사이를 쌓아나가는 순간, 음식을 준비하는 동안, 식당만의 정서를 남기는 모든 과정에서 손님을 중심에 두고자 했습니다.
여덟 테이블로 시작했던 작은 가게에서 저희는 '태도'를 배웠습니다. 그리고 이는 저희 삶의 태도에까지 영향을 주었습니다. 우리가 진심을 다할 때, 상대방도 우리에게 마음을 열어준다는 단순하고 명쾌한 진리는 힘이 강했습니다. 손님들 덕분에 여기까지 올 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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