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믿은 후에 복은 고사하고 고난이 계속되는 것은 아닌가 하고 걱정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렇게 흔들리는 사람들에게는 고난에 대한 바른 이해가 필요합니다. 15~16절을 보십시오.
"유대인은 예수와 선지자들을 죽이고 우리를 쫓아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아니하고 모든 사람에게 대적이 되어 우리가 이방인에게 말하여 구원얻게 함을 저희가 금하여 자기 죄를 항상 채우매 노하심이 끝까지 저희에게 임하였느니라.'
처음 하나님 앞에 나올 때는 예수 믿으면 병도 낫고 만사형통하게 될 거라는 기대감이 있습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을 제대로 할 때 오히려 시련이 닥치기도 합니다. 이 때 하나님 탓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원망이 올라오게 됩니다. 반면 내 잘못으로 돌리면 자책감에 빠집니다.
그러나 고난은 특별한 것이나 잘못된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신앙생활할 때 고난은 당연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말미암아 고난 받는 것은 복입니다. ‘너희가 내 이름으로 환난을 받으면 기뻐하라’고 했습니다.
고난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올바로 신앙생활하고 있다는 증거이기 때문입니다. 이전에 내 삶은 흑암 가운데 있었습니다. 죄와 육신의 욕심가운데 있었습니다. 사단의 권세, 죽음의 권세 아래 있다가 예수안에 있는 빛가운데로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삶이 질적으로 바뀔때 단련과 연단은 반드시 있습니다. 당연히 변화에 따른 진통이 있습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이냐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너희가 아니냐 너희는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이니라“
19절을「표준 새번역 개정판」으로 읽으면 더욱 분명하게 이해가 되는데 "우리 주 예수께서 오실 때에 그분 앞에서 우리의 희망이나 기쁨이나 자랑할 면류관이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은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면 바울 사도는 데살로니가 교회의 성도들을 주님께 보이면서 자랑하겠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는 누가 있습니까?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저는 저 분 때문에 예수님 믿고 구원받아 이 곳 천국에 까지 올 수 있게 되었다고 이야기 해 줄 수 있는 사람이 누구입니까? 여러분들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또한 하나님 앞에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 어떠한 일로 가장 기뻐하시겠습니까? 두 말 할 필요 없이 영원히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이 예수님 믿고 회개하고 돌아오는 일일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이 세상에서 이러한 일을 하였다면 하나님 앞에 섰을 그때에 우리는 사도 바울의 고백과 같이 큰 영광을 얻을 것이며 또한 큰 기쁨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복음전파와 제자 양육의 사명은 단지 목사님이나 선교사의 사명이 아니라 우리 모두의 사명이라는 것을 다시 한 번 확인하시기 바랍니다.
바울처럼 우리들도 영혼을 사랑할 때 주님으로부터 면류관을 받게 되리라 믿습니다. 영혼을 사랑하여 복음을 전하고, 영혼을 사랑하여 양육하기 위해 목숨까지 주기를 즐거워하며 그 영혼을 열정으로 사모하는 그 마음이 우리에게 있을 때 우리의 상급이 되고 면류관이 되고 기쁨이 되는 것입니다.
마10:42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 소자 중 하나에게 냉수 한 그릇이라도 주는 자는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사람이 결단코 상을 잃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영혼을 사랑하여 섬기는 그 모든 것이 상급이 된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면류관을 얻을 수 있습니까?
영혼을 사랑할 때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사랑하면 사모하게 됩니다 목숨까지 주면서 섬길 수 있는 것입니다. 영혼을 섬기기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우리 교회가 될 수 있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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